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03:36:04

제물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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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7월 1일 중구·동구 폐지 예정
** 2026년 7월 1일 제물포구·영종구·검단구 설치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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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설치 예정인 자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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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구
濟物浦區
Jemulpo-gu
}}}
<colbgcolor=#aaa><colcolor=#fff> 구청 소재지 미정[1]
광역자치단체 인천광역시
하위 행정구역 18[2]
면적 21.74㎢
인구 100,857명[3]
인구 밀도 4,678.56명/㎢[4]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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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식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배준영
지역번호 032

1. 개요2. 지명 유래3. 자치구 설치 과정4. 지역 특징5. 교통6. 하위 행정구역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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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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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day(2026-07-01)]

인천광역시에서 설치 계획 중인 자치구이다. 흔히 동인천으로 알려진 인천 원도심 지역 전체를 관할하는 자치구로서 영종도영종구로 분리된 뒤 남은 중구 내륙 지역과 동구 지역을 통합해 원도심의 부흥을 꾀하기 위해 설정됐다. 행정구역상으로는 1914년에 설정된 옛 인천부의 행정구역과 유사해지게 됐다.[6]

2. 지명 유래

제물포라는 구 명칭은 조선 때 인천도호부 다소면(현재의 신포동·북성동 일대) 소재 수군 기지 일대를 지칭하던 지명 '제물량(濟物梁)' 내지는 '제물진(濟物津)'에서 비롯됐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제물량'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경기도 인천군 서쪽 15리 지역을 제물량이라한다"는 내용이 있다. 제물포라는 지명은 "제물량이 있는 구 지역"이라는 뜻이다. 이후 1876년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인천항이 외부로 개방되면서 해외 각국의 주민들이 제물포 주변으로 모여들고 1899년 경인선 철도 개통을 통해 서울과 제물포를 잇는 교통망이 열리면서 문학산관교동 일대에 있던 인천의 중심이[7] 제물포 일대로 이동하며 제물포는 인천 앞바다의 작은 포구 마을에서 일약 세계와 서울을 이어주는 해양 관문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물론 이 때까지도 제물포는 해안 포구 인근 지역만을 한정하던 이름이었고 인천 전체를 대표하는 지명은 아니었다. 일설에는 1899년 경인선 철도 개통 당시 서울 쪽 시점이 노량진역이고 인천 쪽 종점이 제물포역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물포'라는 역명은 영문 명칭이었고 철도 개통 당시에도 한글 역명은 '인천역'이었다. 다만 어째서인지 영문 역명은 'Chemulpo'로 명명됐다. 현재 답동성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천의 첫 번째 가톨릭 성당도 신설 당시에는 '제물포성당'이라고 명명됐고 자유공원 아래에 있던 외국인 거류민들의 사교장 명칭도 '제물포 구락부'였다.

제물포라는 명칭은 1945년 8.15 해방 직후 를 폐지하고 인천부 일대를 로 개편하려던 과정에서 '제물포시'라는 이름으로 다시 역사에 등장했으나 행정구역 개편이 17일 만에 좌초하면서 '제물포시'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그러다 1959년부터 제물포라는 이름이 인천시민들의 뇌리에 인식되는데 엉뚱하게도 과거에 제물포라고 부르던 포구 일대가 아닌 숭의동도화동 일대가 제물포로 불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 지역에 신설된 철도역 제물포역 때문이었다. 진짜 제물포와는 큰 연관이 없는 숭의동과 도화동에 어째서 '제물포'라는 이름의 역명이 붙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1959년부터 60년 이상 많은 시민들이 제물포역을 통해 숭의동·도화동 일대에 접근했기에 '제물포'라는 이름을 언급하면 옛 중구와 동구 등 원도심이 아닌 미추홀구를 떠올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이밖에도 제물포라는 이름을 가진 학교로 제물포중학교, 제물포여자중학교, 제물포고등학교가 있는데 제물포고만 실제 제물포구 내에 있고 나머지 두 중학교는 제물포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서구 가좌동과 미추홀구 주안동에 있다.[8]

이곳과 비슷한 사례가 부산광역시에도 있는데 부산진이라는 명칭이다. 부산진은 조선 수군의 기지가 있던 부산진성에서 유래된 명칭인데 1957년 부산시가 일반구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부산의 중부 지역을 '부산진구'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정작 부산진성은 부산진구에 있던 적이 없었고 실제로는 동구에 있었다. 아울러 부산진이라는 명칭이 들어간 부산진역, 부산진시장, 부산진세무서는 나란히 동구에 있다. 옛 지명을 따온 기관명은 실제 옛 지명 소재지에 있지만 엉뚱한 지역에 옛 지명을 따온 구 명칭이 들어간 것이라 인천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된 셈이다.

항만이 존재하는 동구와 달리, 제물포역 앞에는 항만조차 없기 때문에 분구와 함께 제물포역 주변을 대표할 수 있는 명칭으로 변경 논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3. 자치구 설치 과정

인천의 원도심 지역인 중구와 동구의 행정구역 통합 움직임은 사실 2000년대 초반부터 있었다. 1985년 시청중구 관동에서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전되고 인천의 행정구역이 지속적으로 확장되면서 구한말부터 인천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원도심의 위상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원도심의 위상 하락은 인구 감소에 따른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이어졌는데 1985년까지만 해도 도합 22만명(영종·용유 인구 제외)에 이르던 중구와 동구의 인구는 꾸준히 줄어들면서 2023년에는 10만명을 겨우 넘기는 수준까지 감소했다. 이 과정에서 1999년 인현동 화재 참사로 인해 원도심 지역 경제의 핵심이던 동인천역 일대 상권마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는 바람에 지역 환경은 급격히 쇠락했다.

이처럼 쇠락해진 원도심 환경을 재건하고 도시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중구와 동구의 통합이 지속적으로 추진됐으며 중구-동구 통합은 인천 안팎에서 다수의 지지 여론을 받았다. 중구와 동구는 각자 자생력 강화를 위한 논의를 해왔는데 중구는 2015년 이전부터 과거 개항장 일대를 제물포라고 불렀던 지명 유래에 의거해 구 명칭을 제물포구로의 개칭하는 방안을 추진해왔고 동구 또한 구 명칭을 화도진구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두 자치구가 통합될 경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잃게 될 각 지역의 구의원과 구청장 등 지역 정치인들이 반대하면서 통합이 지연되어 왔다.

중구와 동구의 통합이 지지부진한 사이 영종용유도 일대에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고 영종국제도시무의도 일대가 인천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이 지역에 대한 개발이 본격화됐다. 이를 통해 영종·용유·무의 지역의 인구가 폭증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영종·용유·무의 지역 인구가 중구 내륙과 동구 인구의 합계를 넘어섰다. 결국 이 지역 주민들은 중구와 영종구의 분구를 요구하게 됐다. 영종·용유·무의 지역 주민들은 행정구역상으로만 중구에 속해 있었을 뿐[9] 중구청과는 동떨어져 있어서[10] 크고 작은 행정적 불편을 겪어왔기에 이 지역만을 전담하는 행정구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2022년 8월 31일 유정복 인천광역시장인천광역시 행정체제 개편안을 발표했는데, 원도심에서는 중구와 동구를 폐지 후 통합하고 옛 중구에 속했던 영종·용유·무의 지역을 별도 자치구인 영종구로 분리 설치하는 내용이 담겼다. 행정구역 개편을 위한 법안은 2023년 12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거쳐 2024년 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대통령 법안 공포 절차를 거쳐 2026년 7월 1일까지 행정구역 개편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행정구역 개편 절차가 마무리되면 중구와 동구라는 이름은 1968년 1월 1일 탄생한 이후 58년 6개월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4. 지역 특징

인천 본토의 중서부 지역을 관할하는 두 자치구가 합쳐졌지만 세부 생활권은 자치구 통합 이후에도 다소 나뉜다. 동인천역을 중심으로 하는 동인천동, 신포동, 화평동 일대와 송현동, 화수동, 송림동 일부가 소위 '동인천 상권'에 포함되는 지역이다. 또 인천역 주변 개항동(구 북성동+송월동) 일대는 차이나타운월미도를 필두로 한 관광 자원이 있으며 송현동 북부와 만석동은 현대제철, 동국제강, HD현대인프라코어 등이 있는 공장 밀집지역이다. 아울러 연안부두가 있는 연안동 일대도 같은 구 내의 다른 지역과 생활권이 다소 다르다.

인천역세권개발사업, 인천항 내항 1·8부두 항만재개발사업 예정이다.

5. 교통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제물포구/교통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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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6.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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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7. 둘러보기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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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행정구역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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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폐지 광역시 폐지 특별시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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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6년도 쯤에 제물포구가 신설된다면 옛 중구청이나 동구청사를 제물포구 임시청사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으며, 추후에 동인천역 민자역사를 철거한 뒤에 지어질 예정인 복합건축물에 제물포구 신청사가 입주할 가능성도 있다. 허종식 "동인천 민자역사 철거 결정 ⋅⋅⋅ 제물포구 신청사, 청년주택 증 검토해야"[2] 49개 법정동, 18개 행정동[3] 2024년 9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4] 2024년 4월 기준[5] 을 선거구는 미추홀구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동구 전 지역은 미추홀구 주안동, 도화동과 함께 갑 선거구에 속해 있다.[6] 1914년 행정구역 대개편 당시 인천부는 개항장과 그 주변 지역인 부내면(중구)와 다소면(동구) 일대로 한정됐다. 이 시절 영종도와 용유도는 부천군 영종면·용유면에 속했다가 부천군 해체 이후 옹진군으로 편입됐다. 옹진군에 속해 있던 영종도와 용유도가 중구로 편입된 것은 1989년의 일이다.[7] 온조왕의 형인 비류가 문학산 일대에 비류국을 세운 이후 줄곧 인천의 중심은 이쪽이었다. 현재 인천문학초등학교가 있는 자리에 인천도호부관아가 있었는데 '관교동'이라는 지역 명칭도 가 있는 지역이라는 뜻이었다. 관청과 향교가 있는 곳은 대대로 그 지역의 중심지를 뜻했다.[8] 이는 동인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교들도 마찬가지다. 동인천중학교, 동인천여자중학교, 동인천고등학교도 이름과 달리 동인천역 인근에 없다. 동인천중은 남동구 구월동, 동인천여중은 서구 가좌동, 동인천고는 남동구 만수동에 있다.[9] 1989년 옹진군에서 편입되었다.[10] 2019년 영종도에 중구청 제2청이 신설되기는 했지만 제2청에서 볼 수 있는 업무는 한정적이었다. 더구나 영종과 중구 내륙을 직결하는 도로가 없어서 이 지역 주민들이 자유공원 아래 중구청에 가려면 서구로 이어지는 영종대교연수구로 이어지는 인천대교를 건너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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