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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기경 서남아시아의 형세 ■ 준빌 ■ 튀르크 샤히 ■ 카슈미르 왕국 ■ 신드 토후국 ■ 마이트라카 왕국 |
1. 개요
준빌(Zunbil/Zhunbil) 혹은 자불리스탄의 루트빌(Rutbils of Zabulistan)은 고대 아프가니스탄 남서부(자불리스탄)를 통치했던 왕조이다. '준빌'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중세 페르시아어로 '정의를 베푸는 자'를 의미하는 Zūn-dātbar에서 유래했다는 가설이 유력하다.이들의 영역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남서부의 자란즈와 북동부의 카불리스탄 사이에 걸쳐있었으며, 자민다와르 및 가즈니는 수도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랍 사료에 따르면 라크와드(아라코시아)와 보스트(라쉬카르가) 일대에도 이들의 영향력이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지배층은 에프탈과 튀르크의 혼혈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어느정도는 토착 민족들과 동화가 진행되었다는 증거가 있어 섣불리 단정짓기는 어렵다. 한편 피지배층은 소그드인이었다. 대략 680년에 세워졌으며 2세기 동안 존속하다가 870년 페르시아 방면에서 쳐들어온 사파르 왕조에게 멸망당했다.
2. 역사
2.1. 배경: 튀르크 통치 하의 자불리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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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무슬림의 인도 아대륙 정복#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무슬림의 인도 아대륙 정복#|]]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이슬람 제국이 사산 왕조를 멸망시킨 이래, 약 2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토하라 야브구국과 튀르크 샤히, 그리고 준빌은 이슬람 세력이 동방으로 팽창하는 데 있어 지속적인 장애물이 되었다. 아랍인들은 이 지역을 침입해왔으나 번번히 패퇴하여 쫒겨나야 했다. 이들은 이 지역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이슬람 군대를 이 지역에 묶어 놓았고,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아프가니스탄과 그 너머의 이슬람화를 약 3~4세기 이상 늦추었다.
2.1.1. 아랍의 초기 자불리스탄 침공
서기 643~644년경, 페르시아를 확고히 장악한 이슬람 군대는 시스탄으로 침입하여 여러 도시들을 약탈하고 수도 자란즈를 포위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남서쪽 방면에서 튀르크계 세력들이 지배하던 지역으로 진격하여 공세를 차츰 확대하였다. 이것은 정통 칼리파 시기의 이슬람 군대가 본격적으로 중앙아시아로 진입하는 초기 단계였다.653~654년, 압드 알 라흐만 이븐 사무라(Abd al Rahman Ibn Samura)가 이끄는 약 6,000명의 아랍 군대가 헬만드강 유역의 자민다와르를 점령했다. 당시 이 지역은 불교와 조로아스터교 등의 다양한 토착 신앙이 공존하던 지역이었는데, 사무라는 지역 주민들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이 지역에 이슬람 신앙을 확립하고자 했다. 사료에 따르면, 그는 자민다와르에 있던 유명한 준교 신전을 방문하자마자, '그들이 믿는 신의 무가치함'을 밝혀내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섰다. 그는 신전에 모셔져 있던 신상의 팔 하나를 부러뜨리고 눈에 박혀 있던 루비를 뽑아냈다고 전해진다.
시스탄의 토후(marzban)와 해당 신전의 사제가 이를 만류하자, 사무라는 그들을 내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지금 행한 것은 단순한 우상파괴가 아니라, 이것이 당신들에게 해를 끼칠 수도, 해를 막아줄 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정통 칼리파 시대가 막을 내리고 우마이야 왕조가 들어선 이후, 시스탄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된 압드 알 라흐만 이븐 사무라는 다시금 일대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그는 시스탄에서 헬만드강을 따라 진격하여 카불을 최초로 점령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로 인해 당시 그 일대를 지배하던 네자크 훈족이 큰 타격을 입고 세력이 약화되었다. 그러나 현지의 투르크계 통치자 바르하 테긴(Barha Tegin)이 곧 반격에 나서 아랍군을 격퇴하였으며, 카불과 자불리스탄(가즈니 일대)을 탈환하고, 더 나아가 아라코시아 지역을 칸다하르에 이르기까지 수복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약 665년경 투르크 샤히(Turk Shahis)라는 왕조를 새롭게 창건하였다.
루트빌(Rutbil)은 이 시기 처음으로 사료에 등장한다. 아랍 사료에서의 가장 이른 언급은 666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바르하 테긴이 네자크 훈족의 마지막 군주였던 가르일치(Ghar-Ilchi)로부터 자불리스탄을 정복한 이후 해당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아마도 바르하 테긴의 형제였거나 또는 조카였을 것으로 보인다.
압드 알 라흐만 이븐 사무라가 시스탄 총독직에서 교체된 이후, 루트빌은 이름이 불분명한 카불의 왕과 연합하여 아랍 세력에 대한 군사 행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670년까지, 이들은 아랍인들을 대부분의 거점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시스탄 총독으로 부임한 라비 이븐 지야드 알하리티는 보스트에서 루트빌을 공격하여 그를 알루크하즈 지역으로 패퇴시켰으며, 그가 사망한 이후 673년경에 후임 총독으로 부임하게 된 우바이드 이븐 알라 이븐 아비 바크라 역시 계속해서 공세를 이어갔다. 그 결과 루트빌은 카불리스탄과 자불리스탄 양 지역을 포괄하는 평화 협정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 협정에서 이슬람 세력은 해당 지역에 대한 루트빌과 카불 왕의 종주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이를 통해 신생 투르크 샤히 왕조는 아랍 세력과의 일시적인 평화 속에서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통치를 이어갈 수 있었다.
2.2. 건국 (680년경)
투르크 샤히의 초대 통치자 바르하 테긴이 사망한 이후, 그의 왕국은 두 개의 정치적 실체로 분열되었다. 서기 680년경 투르크 샤히의 왕으로 즉위한 테긴 샤(Tegin Shah)는 카불리스탄에서 간다라, 그리고 자불리스탄에 이르는 지역을 통치하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공식적인 칭호는 호라산 테긴 샤(Khorasan Tegin Shah), 즉 '동방의 왕 테긴'이었으며, 중국 문헌에서는 오산특근사(烏散特勤灑)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칭호는 서방에서 압박해오던 우마이야 왕조의 위협에 맞서고자 했던 그의 정치적, 군사적 입장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680년에서 68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아랍 지리학자 알타바리(al-Tabari)의 기록에 따르면, 루트빌은 그의 친족이었던 카불의 투르크 샤히 왕과 결별하고 시스탄의 아랍 총독인 살름 이븐 지야드(Salm ibn Ziyad)에게 일시적으로 복속한 이후 준빌을 건국하였다. 이후 대부분의 자불리스탄 지역이 루트빌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는 투르크어 일타바르(Iltäbär)의 변형으로 추정되는 지빌(Zil), 혹은 지불(Jibul)이라고 표기된 화폐가 이 지역에서 대량으로 발견됨으로써 입증되었다.
투르크 샤히와 준빌 간의 관계는 때때로 적대적이었지만, 이들은 아랍의 침공에 직면했을 때에는 공동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루트빌은 당시 그 지역에 널리 퍼져있던 사산 왕조의 화폐를 모방하여 그의 주화를 발행하였는데, 앞면에는 박트리아어, 뒷면에는 팔라비 문자로 표기된 명문이 각각 새겨져 있으며, 여기에 더해 '존귀하고 위대한 통치자(Śrī Vākhudevaḥ)'라는 짧은 명문이 브라흐미 문자를 통해 병기되어 있다.
"왕 지불, 그의 영광이 드높아졌다[...] 신의 이름 아래, 위엄 있는 군주는 모든 용감한 자들의 왕이다(박트리아어)."
"존귀하고 위대한 통치자[...] 자불리스탄[에서], [그의 통치] 15년, 신의 이름과 명령 아래 주조되었다(팔라비 문자)."
"존귀하고 위대한 통치자[...] 자불리스탄[에서], [그의 통치] 15년, 신의 이름과 명령 아래 주조되었다(팔라비 문자)."
사학자 Anthony McNicoll에 따르면, 준빌 왕조는 약 250년간 칸다하르 일대를 지배하며 9세기 말까지 존속하였다. 이들의 수도이자 주요한 중심지는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헬만드주에 위치한 자민다와르(Zamindawar)였으며, 준교 신전의 성소는 헬만드주에 위치한 고대 유적지 무사 칼라(Musa Qala)에서 남쪽으로 약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성소의 흔적은 오늘날까지도 확인이 가능하다. 어떤 이들은 640년경 이 지역을 방문했던 현장이 목격한 '수나천 신전'이 바로 이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2.3. 우마이야 왕조의 공세 (698~700년)
698년경, 시스탄 총독 우바이드 알라 이븐 아비 바크라는, 이른바 '파괴의 군대'를 이끌고 준빌 왕조를 대대적으로 공격하였다. 그러나 그는 패배하였고, 그 결과 막대한 공물을 바치고, 자신의 세 아들을 포함한 인질을 보내며, 다시는 준빌의 영토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해야만 했다. 이후 약 2년 동안 이슬람 군대는 준빌을 감히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약 700년경, 동방 총독인 알핫자즈 이븐 유수프는 이라크 등지에서 대군을 징발하고, 휘하의 장군이었던 이븐 알아샤트를 그 지휘관으로 임명하여 '불신자들로 가득한' 자불리스탄을 정벌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원정 과정에서 알핫자즈가 보인 강압적이고 무례한 태도는, 지휘관 이븐 알아샤트를 포함하여 원정군의 대대적인 반발을 초래하였다. 준빌과의 협정을 통해 일시적으로 분쟁을 수습한 이후 군대는 이라크로 귀환하였으나, 귀환 도중 알하자즈에 대한 반란은 점차 확대되어 마침내 대규모 반(反)우마이야 봉기로 발전하였다.
이후에도 아랍 세력은 준빌에 대해 형식적이고 명목상의 종주권을 반복해서 주장하였다. 711년, 중앙아시아 정벌에서 큰 공을 세운 바 있던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은 준빌을 위협하여 이들에게 공물 납부를 강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725~726년 사이에 대(對)준빌 전선으로 파견된 시스탄 총독 야지드 이븐 알구라이프는 그와 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후 아랍군이 다시 공물을 확보한 것은 769년, 새롭게 부임한 만브 자이다 알샤이바니가 가즈니 인근에서 준빌을 격파한 이후의 일이었다.
2.4. 가즈니의 지배자 (714~715년)
서기 714~715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박트리아의 타기 사페다크(Tang-i Safedak) 비문에서는 가잔(가즈니)의 영주인 쿠라스의 아들 알키스가 그곳에 스투파(사리탑)를 봉헌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알키스는 당시 아프간 지역에서 번성했던 불교 문화의 후원자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며, 이 시기에는 동북아시아에서 전파된 중국계 불교와 그 지역에 잔존해있던 인도계 불교 문화가 혼합되는 양식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전에 아프간 지역을 통해서 인도의 불교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전파되었던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가잔의 영주인 쿠라스의 아들 알키스[...], 492년, 스볼의 달, [나는] 라그자마간에서 스투파를 봉헌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다. 투르크와 아랍의 왕들은 내가 만든 데이다르마, 즉 영원한 선물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러고 난 이후, 나는 훗다 사스트라에 대한 의지와 믿음을 담아서 지나이야카 데야다르마(?)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어떠한 공로가 발생하든, 현재와 미래에 걸쳐 알키스, 나의 부모님과 아내, 형제, 아들, 그리고 친척들 모두가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를 바라며, 부처께 경의를 표한다.
타기 사페다크 비문 일부, Nicholas Sims-Williams의 번역본에서 발췌
타기 사페다크 비문 일부, Nicholas Sims-Williams의 번역본에서 발췌
2.5. 토하라 야브구의 봉신
책부원귀와 같은 몇몇 중국 문헌들에 의하면, 카불의 투르크인들은 그들보다 북쪽에 위치해있던 토하라 야브구의 신하였다고 한다. 718년 당나라 장안을 방문한 토하라 사신 복라(僕羅)는 이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212개의 왕국과 그곳의 지배자들이 토하라 야브구의 권위를 인정하며, 이것은 그의 조부 시대, 즉 토하라 야브구국이 세워진 때부터 그렇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당시 토하라 야브구국이 카불과 자불리스탄 너머, 힌두쿠시산맥의 북부에서 남부까지 이르는 지역을 장악하였음을 시사한다.개원(開元) 6년 11월 정미(丁未)일, 아사특근(阿史特勤) 복라(僕羅)가 표문을 올려 말하였다.
"토화라엽호(吐火羅葉護)는 저의 형제인데, 그가 거느린 세력은 이백하고도 열두 개에 달하며, 거기에는 여러 나라의 왕과 도독, 자사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조국(曹國)과 가필시국(迦畢試國)의 왕은 병마 20만 명을 거느리며, 호다(護多)를 비롯하여 작한나(斫汗那), 게시(揭蘇), 수허난(輸訶難), 염달(厭噠), 구미타(拘彌陀), 박갈(縛喝), 골돌한(骨咄汗), 발한나(拔汗那), 열월지건(烈越地建), 파다차나(波多叉那)는 각각 병력 5만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책부원귀
"토화라엽호(吐火羅葉護)는 저의 형제인데, 그가 거느린 세력은 이백하고도 열두 개에 달하며, 거기에는 여러 나라의 왕과 도독, 자사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조국(曹國)과 가필시국(迦畢試國)의 왕은 병마 20만 명을 거느리며, 호다(護多)를 비롯하여 작한나(斫汗那), 게시(揭蘇), 수허난(輸訶難), 염달(厭噠), 구미타(拘彌陀), 박갈(縛喝), 골돌한(骨咄汗), 발한나(拔汗那), 열월지건(烈越地建), 파다차나(波多叉那)는 각각 병력 5만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책부원귀
2.6.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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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안서도호부#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안서도호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2.6.1. 당나라의 속령
준빌의 몇몇 통치자들은 중국 문헌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특히 서굴이(誓屈爾)이라고 알려진 한 통치자는 720년부터 738년까지 자불리스탄을 통치했으며, 710~720년 사이에 투르크 샤히에게 잠시 복속했다고 기록되었다. 신당서에 따르면 그의 칭호는 '갈달라지힐리발서굴이(葛達羅支頡利發)'였는데, 여기서 '갈달라'는 옛 아프간 지역에 정착했던 튀르크계 부족인 칼라즈(Khalaj)를, '지힐리발'은 튀르크어 일타바르의 한문 음차로 여겨진다.사율(謝䫻)은 토화라의 서남쪽에 있고 본디 조구타(漕矩吒) 혹은 조구(漕矩)라고 불리웠다. 현경 연간에는 가달라지(訶達羅支)라고 했는데 무후(武后)가 지금의 명칭으로 바꾸었다. 그 동쪽에는 계빈(罽賓)이, 동북쪽에는 범연(帆延)이 있는데 모두 400리 떨어져 있다. 남쪽에는 파라문, 서쪽에는 파사, 북쪽에는 호시건(護時健)이 있다. 그 왕의 거처는 학슬나성(鶴悉那城)이고, 땅은 7천 리이다. 아사니성(阿娑你城)을 도읍으로 삼기도 한다. 울금(鬱金)·구초(瞿草)가 많다. 샘물로 밭은 관개한다. 나라 안에는 돌궐·계빈·토화라 종족의 사람들이 섞여서 살며, 계빈은 그 자제들을 취하여 무기를 소지케 함으로써 대식을 방어한다. 경운(景雲) 초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고, 후에는 마침내 계빈에 신속하였다. 개원 8년(720), 천자가 '갈달라지힐리발서굴이(葛達羅支頡利發誓屈爾)'를 왕으로 책봉했다. 천보 연간(742~756)에 이르기까지 자주 조공을 바쳤다.
신당서 221권 146제 서역열전
신당서 221권 146제 서역열전
2.6.2. 혜초의 방문 (726년)
726년 무렵, 신라의 승려 혜초는 자불리스탄을 방문하여, 이 지역이 불교를 숭상하는 투르크 왕들에 의해 통치되었다고 기록했다. 그에 따르면 카불의 왕은 자불 왕의 친척이었으며, 독립적인 세력을 일구었다고 한다.[...] 또 이곳 계빈국(罽賓國)에서 서쪽으로 7일을 더 가면 사힐국(謝䫻國)에 이른다. 그 나라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호라살타나(社護羅薩他那)에 이른다. 그곳의 토착민은 호인(胡人)이다. 그 나라의 왕과 병마는 곧 돌궐에 속한다. 그 왕은 바로 계빈왕의 조카로, 스스로 부락의 병마를 거느리고 이곳에 주둔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도 속하지 않고, 또한 그의 아숙(阿叔, 숙부)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왕과 여러 수령들은 비록 돌궐 사람이지만, 삼보를 극진히 공경하고 사찰과 승려를 넉넉히 갖추며 대승불교를 수행하고 있다. 또 한명의 큰 돌궐 수령이 있는데, 이름은 사탁간(娑鐸幹)이라고 한다. 그는 해마다 한 차례씩 찾아와 금과 은을 헤아릴 수 없이 베풀며, 그 규모는 그 나라의 왕보다도 더 많다. 그들의 복식과 풍속, 토지에서 산출되는 물산은 계빈국과 서로 비슷하나, 언어는 다르다.
혜초, 왕오천축국전에서
혜초, 왕오천축국전에서
2.6.3. 중국의 예술적 영향
이 시기, 중국의 영향력은 테페 사르다르의 불교 수도원에서 볼 수 있듯, 명목상의 정치적인 영향 외에도 실질적으로는 문화와 예술 전반에 두루 미쳤으며, 그에 따라 준빌이 남긴 예술품들 역시 중국 양식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기 680년부터 720년까지의 기간 동안, 이 지역에 널리 퍼져있던 굽타 양식의 미술 작품과 동북아시아 양식의 미술 작품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본격적으로 중국 양식이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은 720년부터 750년 사이의 기간으로 추정되며, 이는 아랍의 정복 이전까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번성했던 불교 문화 최후의 잔재였을 것이다. 이때 알키스와 같은 여러 투르크 통치자들이 불교에 지속적인 후원을 시도했다. 이때는 조각상의 얼굴형이 현저하게 변화했고, 이전 시기의 중국-인도 혼합양식에서 당나라풍이 물씬 느껴지는 미술양식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현상은 타지키스탄의 아지나 테페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남부 일대의 고전 유적지에서도 나타났다. 측천무후(624~705)의 치세 동안 중국에서는 특히나 불교과 번성했는데, 이때 아프간과 인도로 향하는 중국 순례자들의 활동이 급증했으며 아예 700년경에는 가즈니 지역에 정착하는 승려들도 생겨났다. 또한 7~8세기 즈음에는 타림분지와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에서 불교 수도원들이 여럿 지어졌고, 돌궐 제국의 붕괴 이후 등장한 서~중앙아시아의 여러 불교 왕국들 또한 이를 대대적으로 후원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중국 불교의 광범위하고도 강력한 영향력과 함께 동서 예술양식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이루어졌다.
안사의 난 이후 중국과의 교류가 끊어지면서, 이 지역에서의 중국의 예술적 영향 또한 사라졌다.
2.7. 아바스 왕조의 침입 (750년경)
750년 아부 알 아바스의 아바스 혁명으로 우마이야 왕조가 무너지고 아바스 왕조가 새롭게 들어서며, 이 지역에 대한 아랍의 공세 역시 한층 강화되었다. 아랍 문헌에 의하면 준빌은 제3대 아바스 칼리파 알 마흐디(775~785)에게 항복했지만, 이것은 단순히 명목상의 행위였을수도 있으며, 실제로 이 지역의 주민들은 계속해서 이슬람에 대한 저항을 이어나갔다. 이슬람 사학자 알 야쿠비는 저서에서 "알 마흐디가 준빌을 비롯한 여러 중앙아시아 왕들의 복종을 명했으며 또한 이를 얻었다"라고 기록하였다.알 마흐디는 왕들에게 사절을 보내어 그들의 복종을 요구했고, 그에 따라 대부분의 왕들이 복종해왔다. 이들 중에는 카불 샤의 왕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킹갈라였다. 그외에도 타바리스탄의 왕 아스바바드, 소그디아나의 왕 이흐시드, 토하리스탄의 왕 샤빈, 바미안의 왕 슈르, 이름이 불분명한 파르가나의 왕, 우슈루샤나의 왕 아프신, 카를루키야의 수령 자브구, 시지스탄의 왕 준빌, 튀르크의 왕 타르칸, 티베트의 왕 (?), 신드의 왕 알라힘, 중국의 왕, 인도와 아트라흐의 왕, 그리고 토쿠즈 오구즈의 왕 카칸 등[이 복속하였다].
알 아쿠비, 저서 '역사'에서
알 아쿠비, 저서 '역사'에서
769년경, 아랍인들은 거의 반세기 만에 다시 준빌로부터 조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아랍인들의 침입은 서기 795년 무렵에 기록되어 있다. 이슬람 학자 키타브 알불단은, 당시 아랍 군대가 준빌족의 사바하르(왕의 신전)을 공격해 파괴했으며, 그것은 "사람들이 숭배하는 우상"이라고 언급하였다. 사바하르는 아마도 준교의 신전, 혹은 성소였을 가능성이 높다.
2.7.1. 튀르크 샤히의 멸망 (822년경)
제4차 피트나(811~819) 당시, 투르크 샤히는 아바스 왕조가 혼란한 틈을 타서 호라산 동부 지역을 침공하였다. 그러나 이는 현지의 아랍 군대에 의해 격퇴되었으며, 이후 내전을 종결시킨 아바스 칼리파 알 마문은 휘하의 군대로 하여금 아프간 지역에 대한 공세를 재개하여, 카불을 점령하고 투르크 샤히에게 이슬람으로 개종할 것과 영토 일부를 할양한다는 내용의 평화 조약을 강요했다. 현지 주민들은 이에 대해 격렬히 저항했으나, 이슬람 군대는 곧 이를 물리치고 간다라와 인더스강 유역까지 도달하여 투르크 샤히를 끝장냈다. 마침내 카불리스탄 지역은 822년경 힌두 샤히가 세워지기 전까지 잠시나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한편, 준빌은 알 마문의 원정에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으나,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세력이었던 투르크 샤히가 멸망하면서 간접적으로 피해를 받았다.2.8. 사파르 왕조의 정복 (870년)
마침내, 준빌은 서기 870년경 사파르 왕조의 창시자였던 야쿠브 이븐 라이스 알사파르에게 패배했고, 그 여파로 시스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였다. 그는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아프간 지역에 대한 원정을 감행, 헤라트와 가즈니를 잇달하 함락시켰으며 나아가 바미안과 카불로 진격하여 힌두 샤히를 동쪽으로 밀어냈다. 그곳에서 그들은 힌두쿠시 북쪽으로 이동해 정복을 이어갔고, 따라서 870년대 중반에 이르면 호라산과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이 사파르 왕조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역사학자 C.E. Bosworth는, 야쿠브 이븐 라이스를 "약 2세기 동안 이어진 아랍 이슬람 세력의 공세와 현지 통치자들의 격렬한 저항 가운데서 처음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이슬람을 전파한 인물"로 평하였다.간다라와 아프간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존속한 힌두 샤히는, 서기 1026년경 가즈니 왕조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이슬람 세력의 동방 확장을 성공적으로 저지하며 저항을 이어갔다.
3.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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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준교#|]]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이들 공동체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잘 연구되지 않았으나 당시 서아시아 지역에서 번성하던 불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 힌두교도 아닌, 준교라는 제3의 종교를 믿었다.
1915년 독일의 사학자였던 요제프 마르크바르트(Josef Marquart)는 중국의 사료를 근거로 하여, 준빌의 왕이 황금으로 만들어진 물고기 왕관을 썼고 소그드인들과 습속이 비슷하며, 준(Zhūn)이라는 태양신을 믿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이들의 신앙이 힌두교의 아디트야(수리야)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준교가 유목민 토착 신앙과 결합한 힌두교의 계파라고 주장하였다.[1]
한편 또다른 사학자 안드레 윙크(André Wink)는 준교의 신들은 힌두교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불교가 도래하기 이전 티베트의 종교였던 뵌교에서 유래하였으며, 종교적인 의식 측면에서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4. 대중 매체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 769,867 시나리오에서 아프간지역의 지배 가문으로 등장하며 준교를 믿고있다.5. 둘러보기
- 토하라 야브구국
- 튀르크 샤히
- 힌두 샤히
[1] 그러나 다른 학자에 의하면 아디트야를 숭배하는 힌두교 공동체와 준빌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고 하며, 예시로서 준교를 믿는 공동체가 카피사에서 자불리스탄으로 남하한 것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