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0 00:15:30

아프가니스탄/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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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역사 ( د افغانستان تاري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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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디수르무굴}}}

1. 개요2. 이슬람 도래 이전3. 이슬람의 도래4. 몽골의 정복5. 몽골 & 튀르크계 왕조의 지배6. 인도 / 이란 / 아프간7. 두라니 왕조8. 바라크자이 왕조9. 근현대 (20세기)
9.1.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9.2. 아프가니스탄 왕국 시대9.3.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시대9.4. 공산정권 시대9.5.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9.6. 나지불라 - 무자헤딘 내전9.7. 무자헤딘 - 탈레반 시대9.8.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10. 아프가니스탄은 어째서 막장이 되었는가11. 전망

1. 개요

중앙아시아의 국가 아프가니스탄역사를 다루는 문서.

국가변천사처럼 국기의 변화도 매우 현란하다.#

2. 이슬람 도래 이전


파일:bamianskie-statui-buddy.jpg
바미안 석불[1]
파일:afghan-landscapes-10.jpg
탈레반에게 파괴된 후의 모습안습

이 지역은 과거 페르시아인도 지역의 경계였던 곳이었고 그러다보니 알렉산드로스 3세의 원정 이후 인도와 그리스, 페르시아계 국가의 번갈은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당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생활상은 자체적인 역사 기록이 남아있지 못한 관계로 보통 그리스인들의 기록이나 중국,한국계 승려들의 기록을 참고하게 된다.

3. 이슬람의 도래


파일:312-1946.jpg

파일:Jam_Minaret_plate_2.jpg

서아시아의 이슬람이 정복 및 상업 활동을 통해 퍼지면서 이슬람 문화권이 되었다. 아프간의 불교 사회 지도자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이 지역의 불교 신자들은 급속히 무슬림으로 개종했다. 다른 한편 불교의 출가자와 승려 시스템이 이슬람 사회에 도입됨으로써 이슬람 학교 마드라사 시스템이 세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이슬람 신학이 발달한 지역 부하라,발흐 등의 중앙아시아 지역 도시들은 이전에 불교 대학으로 유명하던 곳이었다.

4. 몽골의 정복


칭기즈 칸이 이끈 몽골의 침공으로 국토가 초토화된다.

호라즘 왕조 무함마드 2세의 아들이던 잘랄 웃 딘이 바미안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1222년 칭기즈 칸손자무투겐이 이 전투 와중에 전사한다. 분노에 찬 칭기즈 칸은 바미안 왕조 도성인 샤흐르 에 조아크 성을 차지하면 성 안 모든 살아있는 것을 다 죽인다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몽골군은 1년이나 고전하다가, 잘랄 웃 딘의 딸인 릴라 하툰 공주가 배신하는 바람에[2] 결국 바미안을 불바다로 만들고 공언대로 살아있는 모든 것을 다 죽이며, 이후 페샤와르와 가즈니를 비롯한 곳을 차례로 점령했지만, 막판 죽길 각오하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잘랄 웃 딘 왕에게 막혀 결국 아프가니스탄 전역 점령을 포기한다.[3]

5. 몽골 & 튀르크계 왕조의 지배

이후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일 칸국티무르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6. 인도 / 이란 / 아프간

사파비 왕조, 무굴 제국의 인도-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반면 아프간에서 유래한 아프간인들이 인도-페르시아에 파슈툰 왕조(로디,수르,호타키조)들을 세우기도 하였다.역관광

7. 두라니 왕조

  • 두라니 왕조 (Durrani, 1747 ~ 1826)

그 이후 아프간의 자체적인 첫 통일 국가라 할 수 있는 두라니 왕조가 세워졌지만 이마저도 오래 못 가고 내분으로 멸망하였다.

8. 바라크자이 왕조


당시 러시아 제국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던 대영제국히바 칸국코칸드 칸국, 부하라 칸국을 복속시키며 남하하던 러시아 세력에게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로인해 미리 아프간을 자신의 구역으로 삼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9. 근현대 (20세기)

  • 영국령 아프가니스탄 (카불 인근 한정, 1881 ~ 1919)
  • 아프가니스탄 왕국 (Kingdom of ~, 1919 ~ 1973) -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였다. 부유하진 않았어도 매우 풍요롭고 근대화가 되어있었다고 한다.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Republic of ~, 1973 ~ 1978)
  •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1978 ~ 1992)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아미르국 (Islamic Emirate of ~, 1996 ~ 2001)
    • 탈레반(이슬람 아미르국) - 북부동맹(통일 이슬람 구국전선) 간 내전 (1996 ~ 2001) - 사실상 아직까지 탈레반의 지배와 내전은 이어져 오고 있다.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Islamic Republic of ~, 2001 ~ 현재)

9.1.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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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부터 1919년 독립까지 쓴 영국 치하의 국기.
원래 그 이전엔 아예 문양 없는 검은색이었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가 되자 아프가니스탄은 러시아영국의 완충지가 되었다.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식민지로 삼으려 하였지만, 세 차례에 걸친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영국군은 오랫동안 고전하였다. 결국 제3차 영아전쟁 끝에 1919년 아프가니스탄은 아프가니스탄 왕국을 성립시키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어냈다.[5]

이 때 영국은 '듀런드 라인'이라는 선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영국령 인도 사이의 국경을 지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사이의 국경이 되었다.[6]

9.2. 아프가니스탄 왕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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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부터 1973년까지 쓴 아프가니스탄 왕국 국기.
흑-적-록의 전통색을 사용하게 된건 1928년부터다.

아프가니스탄은 왕국으로써 역사를 이어가게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냉전 시절까지도 왕국을 유지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어낸 국왕 아마눌라는 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반발한 세력으로 인해 강제로 퇴위당했다. 그러나 아마눌라의 사촌인 나디르 샤 왕자가 이를 진압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가 죽은 후 무함마드 자히르 샤가 왕위에 올라 40년간 왕국을 다스렸다. 이때 아프가니스탄은 안정기를 맞았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리즈시절은 바로 이 시절의 사진이다.

파일:external/dc4bfe1fd3c3f07b38e6226bcc35043e86b8774b3ab0e5e9cb9d4e25ad32c501.jpg
그런데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게 저 당시 세계는 제1차 세계 대전의 후유증과 제국주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서 식민지배당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쟁터였는데 아프가니스탄은 저 시기가 전쟁터가 된 지금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최고의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시기였다. 서로간의 분위기가 뒤바뀌어버린 현대 세계와 아프간을 저때와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자히르 샤 국왕은 사촌인 무하마드 다우드 칸을 총리로 기용하였으나 다우드 칸은 급진적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고, 여론을 의식한 자히르 샤는 다우드 칸을 해임했다. 자히르는 입헌 군주제 도입, 정당 설립 자유화 등 민주화를 추진하였으며 냉전 체제에서 중립 외교를 고수하였다. 반면 다우드 칸은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결국 자히르 샤 국왕이 해외순방을 하던 도중 사촌 다우드 칸이 쿠데타를 일으켜 무함마드 자히르 샤 국왕을 몰아냈다. 다우드 칸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선포했다.[7] 그리고 여기서부터 아프가니스탄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9.3.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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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부터 78년까지 쓴 공화국 시대의 국기.

1973년, 쿠데타를 통해 바라크자이 왕정을 폐지하고 아프가니스탄 공화정을 선포한 다우드 칸은 새 공화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 겸 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보수적인 이슬람교의 영향력의 지배하에 있었던 아프간 사회를 바꾸려고 강력한 개혁 정책을 추진했고 외교적으로 친소련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한편으로 친소련 정책을 펼쳤던 다우드 칸 대통령은 정작 자국내에 있던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정치 세력들을 탄압했고 더욱이 다우드 칸은 공산주의자들 이외에도 이슬람주의자들을 탄압하는 등 권위주의적인 독재 정치를 펼치면서 국내의 불만을 키웠다.

결국 1978년 좌익계 군인들과 아프가니스탄 최대의 공산주의 정당이었던 아프가니스탄 인민 민주당이 쿠데타를 일으켜 다우드 칸 대통령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인민민주당은 다우드 칸 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대통령직에서 사직했다고 거짓 발표를 내보냈고 이후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 당수였던 누르 무하마드 타라키가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 인민 민주당 1당 공산 독재 정권이 수립되었다.

9.4. 공산정권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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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부터 80년까지 쓴 소련의 냄새가 느껴지는 국기.

공산 독재 정권을 세운 인민민주당은 아프가니스탄에 공산주의 체제를 심는 급진적인 공산화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이러한 인민민주당의 급진적 공산화 정책은 보수적인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반발을 키웠고 특히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의 특성상 종교의 영향력이 상당히 미쳤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교 세력들을 탄압하면서 보수적인 이슬람교 지도자들의 공산정권에 대한 반감은 나날히 커져갔다.

결국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공산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소위 '무자헤딘(مجاهدين)'이라는 이름의 이슬람 주의 반정부 게릴라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정부군과 무자히딘 간 충돌로 나라 전역이 내전 상태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인민민주당 내부에서도 심각하게 여러 파벌들로 분열되어 매우 취약했다. 이듬해인 1979년 당내 권력 투쟁에서 타라키가 살해당하고 하피줄라 아민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타라키를 죽이고 그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하피줄라 아민은 이슬람 세력들과 반공 세력, 당내 정파 세력들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아민의 정책은 오히려 아프간의 분열을 더욱 고착화시켰고 이로 인해 아프간 공산 정권은 붕괴 위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상에 인접국이었던 소련은 아프간 내부의 정치적 불안이 이 지역에서 쌓아온 소련의 영향력 상실과 이슬람 인구가 밀집된 소련 남부의 공화국들로까지 그 여파가 미칠 가능성을 판단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무력 개입 가능성을 슬슬 보이기 시작했고 1979년 12월 27일 소련은 육,공군 전체 병력을 이끌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무력 침공을 개시해 수도 카불을 점령시켜 아민 대통령을 사살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시작이었다.

9.5.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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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국기.

한편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하피줄라 아민을 제거하는데 성공한 소련은 인민민주당 당내 권력투쟁 과정에서 패해 체코슬로바키아 영사로 밀려나다시피한 바브라크 카르말을 대통령으로 옹립하여 아프가니스탄에 새로운 공산 정권을 수립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공산정권을 상대로 저항하던 무자헤딘 반군 게릴라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 점령한 소련군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무자헤딘 게릴라와 소련군과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한편 소련군과의 전쟁 와중에 무자헤딘은 친소 카르말 정부군도 공격하였고 무자헤딘은 산악지대가 많은 아프가니스탄의 지형을 이용해 산악전밑 게릴라전 형태의 전투 방식으로 소련군과 카르말 정부군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소련은 막대한 양의 돈을 전비로 쏟아붓고 병력을 추가 증파하였지만 상황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고 1985년에 접어들면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소련군 철수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한편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군사적 개입 중단을 고심할 무렵, 아프가니스탄 공산 정권 내부에서도 카르말이 물러나고 무하마드 나지불라가 대통령이 되는 권력교체가 일어났다. 한편 대통령이 된 무하마드 나지불라는 무자헤딘을 비롯 비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연정 수립 등의 유화 정책을 제시했지만 무자헤딘은 이런 나지불라의 제안에 반발하여 결국 나지불라의 유화 정책은 실패했다.. 한편 이때 소련은 1988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철수를 시작했고 이듬해인 1989년 마지막 주둔 소련군 병력마저도 철수하면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군의 퇴각으로 막을 내렸다.

9.6. 나지불라 - 무자헤딘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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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부터 92년 멸망까지 쓴 국기.
한편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실상 손을 떼자 무자헤딘은 이번에는 나지불라 정부를 공격하였고 결국 아프가니스탄은 나지불라 정부군과 무자헤딘 반군간의 유혈 내전으로 변질되었다. 내전 초기에는 소련군의 철수 이후에도 소련의 꾸준한 무기 지원과 주둔 소련군이 두고 간 전투기와 전차, 장갑차, 헬리콥터 같은 화력 강한 무기들로 무장한 나지불라 정부군이 우세했었고 강력한 정면전 구사로 무자헤딘 세력에 어느 정도 큰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전면전에서 나지불라 정부군에게 워낙 열세였던 무자헤딘들은 다시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산악지대를 거점삼아 나지불라 정부군에게 저항했고 정부군은 무자헤딘의 게릴라 전 공격에 수도 카불과 일부 평야 지대만을 장악한 채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강력한 게릴라전을 펼치는 무자헤딘에게 밀리다시피했다. 더욱이 무자헤딘을 잡는다는 미명하에 시작된 정부군의 공군폭격으로 애꿏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민간 산촌 마을에 대한 약탈과 강간, 방화 등을 일삼으면서 나지불라 정부는 국민들의 민심마저 잃고 말았다.[8] 결국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나지불라 정부군은 패퇴에 패퇴를 반복했고 정부군 내에서도 무자헤딘에 투항하거나 탈영하는 병사들과 장교들이 늘어났으며, 더욱이 1991년 소련마저 붕괴되면서 나지불라 정권에 대한 소련의 지원마저 끊기면서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그리고 무자헤딘은 카불을 제외한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였다.

드디어 1992년 4월 무자헤딘은 나지불라 정권의 최대 거점지자 수도 카불을 점령하기 위한 대대적인 무력 공세 작전에 돌입하였고, 치열한 전투끝에 마침내 카불 도심지 진입에 성공하여 대통령 관저와 국회 의사당, 방송국등을 장악하고, 나지불라 정부군이 무자헤딘 측의 거센 시가전 공세에 항복하면서 결국 나지불라는 고자가 되고 정권은 붕괴되었다. 그 결과 아프가니스탄은 부르하누딘 라바니, 시브가툴라 모자데디,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아흐마드 샤 마수드, 압둘 하크 등 무자헤딘 출신 인사들이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9.7. 무자헤딘 - 탈레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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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헤딘의 국기로,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지 않은 UN에게는 2001년 탈레반 패망 때까지 정식 국기로 인정되었다. 지금의 아프간 국기는 2002년을 기해 바뀐 것으로 이후로는 국장 도안만 조금씩 바뀌었다.

그러나 나지불라 정권을 무너트리고 아프가니스탄 정국을 장악하다시피한 무자헤딘도 각기 다른 여러 무장군벌파벌들로 이루어진 엉성한 연합체에 지나지 않았다. 아흐마드 샤 마수드 같이 몇몇 걸출한 무자헤딘 지도자들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군 철수 후 나지불라 정부군과 무자헤딘 사이에서 벌어진 유혈 내전 와중 서로 다른 파벌들을 통합시켜 단일 조직체로 만들려는 노력을 했지만 거의 실패했고, 결국 나지불라 붕괴 후 무자헤딘들끼리 전후 처리와 권력 배분 문제를 놓고 서로 전투를 벌이면서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내전 상태로 돌변하였다.

그러나 이런 내전의 혼란속에서 이슬람 성직자였던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가 여러 이슬람 학생들을 규합하여 1994년, 탈레반이라는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조직을 결성하였고 탈레반은 내부 분열로 약화되다시피 한 무자헤딘 세력들을 격퇴하였다. 그리고 탈레반나지불라 정권 붕괴 후 군벌 세력들의 횡포와 약탈에 지치다시피한 아프간 일반 민중들의 지지까지 얻어내어 그 영향력을 부풀려가기 시작했다..그리고 1996년 탈레반은 수도 카불에 입성하면서 이후 아프가니스탄탈레반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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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정권의 국기. 매우 심플하다. 그나마도 96년도에는 1년간 오로지 흰색 깃발이었다.
아프간 최악의 암흑시대
자세한 내용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문서 참조.

9.8.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9.11 테러가 발발하고 테러의 주모자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이끄는 알 카에다가 아프간의 탈레반들과 연합했으며 그들이 아프간에서 신변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 지역은 다시 한번 뜨거운 감자가 된다. 미국은 탈레반에게 이들의 신변을 넘겨 줄 것을 요구했으나 탈레반은 이를 거부, 결국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한다.

침공 자체는 한 달만에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금방 끝났고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반(反)탈레반 정권인 하미드 카르자이를 대통령으로 하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미군과 NATO군의 침공에 정권을 잃어버리다시피한 탈레반은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카르자이 정권에 항거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은 여전히 내전상태에 놓여있다. 결국 미국도 나토도 견디질 못하고 2014년부터 치안권을 아프가니스탄 정부에게 넘겨주고 서서히 철수하고 있다. 버틸 수가 없다 덕분에 한국군 파병은 흐지부지.

한마디로 미국에게는 이라크와 더불어 여기도 베트남 전쟁 재방송이 되었다. 미국 우익들은 미국이 진 게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이건 베트남 전쟁조차도 미국이 진 게 아니라능 징징거리고 있는 터라. 결국 "못 이기고 철군하는 게 진 거 아니냐?" 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미국 논객 토머스 프리드먼이 "결국 미국은 승자인 탈레반과 협상하는 게 전쟁 끝났다고 한거다." 라고 깠을 정도.

사실 미국을 몰아낸 과정만 유사할 뿐이지 현재 처한 정치적 상황이나 여러가지들을 종합해서 비교해보면 오히려 베트남에게 모욕일 지경이다. 베트남은 그래도 미국과의 전쟁이 끝나고 나서 국민 통합에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 베트남 전쟁으로 황폐화된 국토와 경제를 다시 재건하고 이후 개혁개방 정책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신흥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여 그럭저럭 살 만한 나라가 되었지만, 아프가니스탄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그리스 등 현재 자국내에 주둔 중인 서방 외국 군대가 철수하면 그놈의 탈레반 때문에 다시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 탈레반 정권 1기 시절이던 1990년대 중후반와 2000년과 같은 지옥도가 재현되거나 아니면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탈레반, IS와의 내전으로 죽고 죽이는 무주공산의 인간 도살장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9] 일각에서는 베트남군이 철수한 이후의 캄보디아처럼 미군이나 서방군대 철수 이후에 폐지되었던 바라크자이 왕조로의 왕정 복고 가능성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바라크자이 왕조가 복고되면 민심을 수습할 수 있을 거라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도 많다.

10. 아프가니스탄은 어째서 막장이 되었는가


파일:external/dc4bfe1fd3c3f07b38e6226bcc35043e86b8774b3ab0e5e9cb9d4e25ad32c501.jpg파일:external/02varvara.files.wordpress.com/02-paghman-gardens-after-2007-e1279737631767.jpg
이랬던 곳이(1967년)이렇게 변했습니다. (2007년)[10][11][12]

그래도 이 나라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1960~70년대에는 이란과 더불어 서구화 정책도 이뤄져서 미스 아프가니스탄[13]을 뽑고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도 나가던 매우 드문 이슬람권 나라였었으며 왕국시절인 1960년대까지는 다민족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땅이었다. 심지어 공화정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현대식 '아시아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 '과거와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땅' 다원주의의 성공모델이자 명상 명소였다. 1960년대 초에는 1인당 GDP도 우리나라보다 약간이긴 하지만 높았었다. 그야말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변한 것.

그러나 위와 같은 온건한 개혁을 이루어냈던 아프가니스탄은, 70년대 급진 공산주의 정당의 쿠데타로 인해 혼란에 빠졌다. 국가의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공산 정권부터 수립하려다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반발을 샀고 이는 소련의 개입을 초래하여 나라 꼴을 엉망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오죽하면 자히르 샤 왕이 2002년 거의 30년만에 조국으로 돌아와 탈레반이 물러난 칸다하르를 둘러보고 "30년동안 내 조국이 이렇게 폐허가 되었단 말인가?" 라며 서글퍼했으며 결국 그는 2007년 93살로 세상을 뜨면서 죽기 전 지인들에게 "난 죽어서 알라에게 혼쭐날거야. 아름다운 곳을 이렇게 되도록 방치했으니...." 라고 두고두고 한탄했을 정도이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터지기 전의 아프간 모습과 그 이후의 지옥도는 할레드 호세이니가 쓴 연을 쫓는 아이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살짝 엿볼 수 있다

역사란에서도 보듯 이 지역은 고대부터 서에서 동으로 가는 길목이었으며 현재도 미국러시아중국, 그리고 인도이란을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최적의 요충지이다. 이 지역은 그렇기 때문에 매우 큰 가치가 있다. 그러나 영토 대부분이 산지이니 공격하는 입장에서도 상당히 피해가 크다. 비단길이 지나가는 경로였던 터라 여러 민족들이 오고 가는 곳이었다. 그 말은 이 지역의 주민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복자의 군대들과 계속해서 전쟁을 벌이든가, 아니면 자기들이 정복을 하든가 라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대에는 그리스계 왕조와 페르시아계 왕조의 지배를 번갈아 받았다. 이슬람이 도래한 후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칭기즈 칸의 침공으로 몽골 제국, 일 칸국의 지배를 받는다. 일 칸국이 무너진 후에는 티무르 제국, 사파비-무굴 제국의 지배를 받는 등 정말 다양하게 지배당했다. 이렇듯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세계최강 대영제국을 상대로 세차례 싸워서 이겼고[14], 20세기 후반 초강대국 소련과 10년간 전쟁을 벌여서 승리했고, 21세기 지금 유일 초강대국 미국과 싸웠으며 결국 미국도 이기지 못하고 사실상 지고 나갔다. 무서운 나라다(…). 여기에 엮이고 나서 멀쩡한 나라가 없다. 몽골 또한 바미안 왕조만 박살내고 나머지 나라들은 항복을 얻어낸 것이지 여기에 머무르면서 지배하던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근성과 투쟁의 역사.[15]

근성으로 외세와 싸운 역사가 있기 때문에 타국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며 산악지대에 고립 분포되어 있는 수많은 민족과 부족들로 갈라져 있어 사람들도 상당히 배타적이다. 게다가 기나긴 내전을 겪으면서 부족들 간에도 계속 투닥대며 싸우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현지 정보원이 연합군에게 자기가 속한 부족과 적대하는 부족들을 테러 조직이라고 구라를 쳤다. 결과는 당연히 민간인 대량 살상... 인구의 다수인 파슈툰족 자체도 파슈툰어를 할 줄 아는 부족을 파슈툰족이라 통칭하는 것이지 부족 내에서도 여러 파벌이 존재하고 서로 투닥대는 상황이니 말 다 했다.[16]

게다가 이 모든 문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탈레반은 파슈툰족이 아프간과 파키스탄을 걸쳐서 분포한다는 점을 이용해 파키스탄을 근거지로 다시 부활하였다(…).[17]

더불어 하도 많은 역사적 침입을 받다보니 무수한 인종이 뒤섞여서 지방 곳곳에서 자기들끼리 이뤄 살고 있는 점도 골치다. 이를테면 미국-아프간 전쟁 중 터키가 미국에 여러 도움을 준 것에 대하여 이슬람 보수파들이 비난하자, 한다는 변명이 군벌 가운데 하나인 압둘 라시드 도스툼이란 자가 튀르크계 형제라서 도왔다고 할 정도. 파키스탄에도 많이 살고 있는 파슈툰인, 오랫동안 아프간 산지에 살던 우즈베크인(우즈베키스탄의 원주민으로 주치의 후손), 투르크멘인(투르크메니스탄의 원주민이자 터키인과 같은 오우즈 부족), 하자라인(몽골 제국의 원정 당시 따라온 튀르크계 군인들의 후손으로 완전한 북방 황인종이다. 몽골 제국의 군사력은 튀르크인이었고 그들의 후손으로 남은 자들이 하자라인이다) 등의 튀르크계나 소그드인(토카라인)의 후손인 이란계 타지크인 같이 언어와 문화까지 다른 이들이 뒤섞이면서 오랫동안 피튀기며 싸우고, 통합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 막장상황에 기여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사실 미국은 최소 두 번이나 이 나라와,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를 구할 기회가 있었다.

1990년대 초반에 소련군이 물러나고 아흐마드 샤 마수드같은 친서방[18] 온건 이슬람 군벌들이 아프간의 정권을 확실히 잡았다면 탈레반이 득세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9.11 테러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21세기의 세계사가 크게 변했을 듯. 문제는 소련이 아프간에서 물러나고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아프간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끊어버렸고[19][20] 이는 아프간을 막장상태로 만드는 도화선이 되었다. 탈레반이 집권하는 결과를 낳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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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2001년 3월)[21] after

그리고 미국의 아프간 침공으로 이 나라에도 어쩌면 희망이 보였을 수도 있었다. 2002년 말경엔 탈레반이 사실상 궤멸 직전까지 갔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어 탈레반이 완전히 와해되었다면 지금 처럼 아프간이 막장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엉뚱한 데에 한눈을 파는 바람에 탈레반이 다시 세력을 모을 기회를 얻었고 상황은 또다시 막장으로 치달아 현재에 이르게 된다.

11. 전망

위와 같은 서술을 보면 이렇게 막장인 나라에도 아예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그래도 소말리아보단 낫잖어 2004년 첫 대선이 실시된 이후, 2009년, 2014년에 중단 없이 선거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카르자이가 힘 없는 정부, 막장 정부라는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민주적 대표성은 최소한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 2009년 대선에서는 카르자이가 재선되었다. 2014년 대선의 경우, 결선투표 끝에 아슈라프 가니 후보가 당선되었다. 결선투표에서 낙선한 압둘라 압둘라 후보는 부정선거 의혹과 재검표를 주장했다. 무려 2달에 거쳐 재검표를 진행하였고, 선관위는 아슈라프 가니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두 후보가 만나 권력 분점에 합의함에 따라, 2014년 9월 29일 카르자이 정부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기존에 없던 직책인 최고행정관을 신설해 총리격으로 두고 그 자리에 압둘라 압둘라를 임명했다. 아슈라프 가니는 전 재정부 장관으로, 서방세계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관료 출신이다. 아프가니스탄 인사 중에서는 친서방 인사로 분류된다. 탈레반의 반발과 공격 속에서도 투표장으로 나온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있는 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예전의 위용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2016년 5월 30일에 아프간 정부는 전쟁으로 파괴된 1920년대에 지어진 옛 왕궁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2016년 7월 23일, 다에시가 카불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일으켜 8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정정불안이 야기되고 있다.# 게다가 다에쉬가 아프간에 영향력을 키우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게다가 아프간 북부에서 다에쉬로 추정되는 무장단체에 의해 적십자 회원 8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9월 30일. 탈레반 다음으로 큰 규모의 조직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반군 세력 '헤즈브-에-이슬라미 아프가니스탄'(HIA)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

2017년 6월 14일에 계속되는 탈레반과 다에쉬의 테러활동으로 미국측은 미군 4천명을 아프간에 증파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토측도 아프간에 추가 파병을 결정했지만, 전투임무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7년 7월 14일에 미국 국방부는 지난 11일에 실시되었던 공습에서 아프간의 다에쉬 지부를 이끌던 아부 사예드를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2017년 8월 28일에 퍼트레이어스 전 CIA 국장은 아프간 미군은 주한 미군처럼 장기 주둔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프간은 2018년 10월 20일에 총선이 있을 예정이지만, 다에쉬와 탈레반에 의한 테러가 발생되고 있다.# 그리고 아프간은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의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의 수가 급증했다.# 그리고 아프간에서는 총선이 시작되었지만, 탈레반에 의한 테러가 발생되고 후보자들도 탈레반에 의한 테러로 희생되면서 투표 시한을 오는 2018년 10월 21일(현지시간)로 연장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아프간에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을 감축한다고 발표하자 혼란을 빚었다.# 그리고 미국측은 결국 아프간내 미군을 철군한다는 방침을 전하자 외신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미국은 탈레반과 협상하면서 미군철수 및 여러문제에 대해서도 협의했다.# 그리고나서 미군철수가 18개월뒤에 이뤄진다고 하자 탈레반 대변인은 부인했다.# 하지만 미국측과 탈레반측은 휴전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 탈레반측은 미군이 철수를 해도 아프간에서 권력을 잡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고 아프간 정부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군을 완전히 철수시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상원측은 아프간에서 미군철수를 반대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을 보이고 있다.#

2018년 12월 26일, 아프간 선관위는 대통령 선거를 2019년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2019년 2월 6일, 탈레반은 미국측이 4월까지 아프간에서 미군의 절반을 철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9년 2월 14일에 미국의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은 나토와 합의없이 철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월 25일에 카타르 도하에서 미군과 탈레반측은 17년에 걸친 내전을 끝내기 위한 평화협상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탈레반과 18년만에 휴전을 맺는 대가로 병력 수천명을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2019년 9월 7일에 카불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미군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되자 미국측은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중단시켰고 이에 반발한 탈레반은 더 많은 미군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019년 12월 9일에 아프간 전쟁은 조작된 전쟁(!)이었고 온갖 거짓 정보로 포장해왔다고 보도했다.#

2월 29일에 미국과 탈레반은 도하에서 14개월이내에 미군을 철군하는 것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문제점이 생기고 탈레반이 재장악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낳았다.# 그리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측이 아프간 정부와 불협화음을 드러내며 서명 이틀 만에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자 미국 측이 공습으로 반격에 나섰다.#

3월 9일 대통령취임식에서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과 압둘라 압둘라 최고행정관이 각각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혼란이 생겼다.#


[1] 파괴되기 전에도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조금씩 부서져 왔다.[2] 릴라 하툰이 배신한 원인은 바로 잘랄 웃 딘 왕이 이웃 나라 가즈니 왕조 공주와 재혼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권력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그녀는 아버지와 나라를 배신하고 칭기즈 칸에게 성으로 들어오는 방법과 척박한 이 땅에서 그나마 성을 지탱하던 길 위치같은 중요한 정보를 죄다 일러바치고, 자신을 이 곳 군주로 남기고 칭기즈 칸과 결혼하길 원했다. 이 정보로 금세 성을 함락시킨 칭기즈 칸은 약속을 깨고, 릴라 하툰 공주도 결국 이 성에 살던 생물이라고 병사를 시켜 돌로 머릴 깨뜨려 죽였다고 한다. 자업자득. 그런데 잘랄 웃 딘은 가즈니로 결혼하러 간 통에 이 참극을 피하고, 그 뒤로 몽골군을 상대로 10년 가까이 저항을 한다.[3] 이후로 몽골군이 점령지에 남아 거주하면서 가즈니나 페샤와르를 비롯한 지역민들과 혼혈을 이룬 게 오늘날 하자라인이라고 한다. 이걸 봐도 알 수 있듯이 단일 국가, 외세 지배보단 지방 각 부족 국가나 부족들로 나누어진 작은 나라들이 이 나라 오랜 역사를 차지한다.[4] 압둘라 압둘라 전 장관과 공동 정부[5] 코난 도일의 소설 셜록 홈즈에서 왓슨이 홈즈와 만나기 전 바로 영-아 전쟁에 참전했다고 설정되어 있다. 그의 지팡이는 그 공로로 여왕이 하사한 것. BBC에서 셜록 홈즈를 재해석한 드라마 셜록을 만들었는데, 이때도 왓슨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상이군인으로 나온다. 이쪽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200년 가까운 갭이 있는데도 똑같은 설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데서 이 나라가 겪은 막장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난다.[6] 듀런드 라인으로 아프간 족의 영토 및 인구 절반이 졸지에 파키스탄의 영토가 되어버렸다.[7] 자히르 샤 국왕은 이탈리아에서 긴 망명 생활을 이어가다가 탈레반이 축출된 2002년에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와 국부 칭호를 받았다. 2007년 사망.[8] 그렇다고 나지불라 정권이 아프간 국내에서 지지 세력이 없는 소련의 괴뢰정권 취급을 받으며 무자헤딘과 불리하게 전쟁을 벌였던 것만도 아니었다. 1989년 잘랄라바드에서 무자헤딘을 상대로 일으킨 전투에서 정부군이 승리하기도 했었고, 내전 중 무자헤딘이 자행한 전쟁범죄로 가족이 죽었거나 그들의 악행에 치를 떨던 아프가니스탄 주민들까지 정부군 지지 세력으로까지 포섭하여 정권을 유지했을 정도였다.[9] 실제로도 탈레반 정권 시절에 정치적 탄압과 피해를 받았던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에 그나마 덜 포악한 아프가니스탄 현 정부를 지지하는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꽤 있다.[10] 믿기 힘들겠지만 같은 장소다.[11] 구글 이미지검색에서 '1950s, 1960s afghanistan' 따위로 검색해 보면 동시기 이란처럼 엘리트층 여성들의 복장이 매우 자유분방했다는 걸 알 수 있다.[12] 위 비교 사진은 과거 아프가니스탄이 현재 보수적인 집단 지배 하의 아프가니스탄보다 얼마나 세속적이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아프간의 극단적 이슬람식 복장, 구식 건물이라는 고정관념을 확실하게 깨는 사진이라 임팩트가 워낙 크기 때문. 하지만 실제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했던 사람 말에 따르면 당시(1950~60년대)에도 마찬가지로 전통 복식 착용이 대세였다고 한다. 사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아직 인구의 90% 정도가 농촌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1967년 신문기사를 보면 1958년경에 히잡 의무착용이 폐지되고 1965년에 여성참정권이 주어졌으며, 1950년대말과 비교해서도 10년 사이에 인식의 변화가 크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위의 사진은 아프가니스탄의 개방 구역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서방에 대한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이 구역만 특별히 전통을 따르지 않는 복식과 생활 양식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던 것이라고도 한다. 게다가 어디서나 이런 옷과 문물들이 유행이기는 했으나, 엘리트 청년층에서만 유행했다는 의견도 있다. 사진의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다소 남용되고 있는 사진이라 잘 가려서 보아야 할 듯싶다.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시 무함마드 자히르 샤 치세 아프간 왕정이 근대화와 세속화를 지향하고 있던 점은 분명해 보인다.[13] 1974년을 마지막으로 막장이 된 뒤로 사라졌던 미스 아프가니스탄은 2004년 30년만에 대회가 열렸으나 엄청난 반발로 정작 미스 아프가니스탄이 된 여성은 국적을 박탈당했다.[14] 사실 미국, 소련과 달리 영국상대로는 비긴거라 할 수 있다. 독립 전까지는 결국 보호국 신세가 되고 말았고 1919년에 독립한 것도 1차대전으로 영국의 국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독립당시 전쟁에서 오히려 아프간 쪽이 영국의 만만치 않은 반격으로 불리했다는 것.[15] 20세기 들어선 프랑스-일본-미국과 100년에 걸친 전쟁끝에 통일 독립국가를 건설한 베트남 정도가 비교 가능할 듯.[16] 게다가 대부분의 파슈툰족은 탈레반을 증오하고 있으나 우습게도 탈레반 상당수가 파슈툰 족이다.[17] 사실 이 문제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과거 제국주의 시절 강대국들끼리 멋대로 그은 국경선이 문제이다. 파키스탄이 과거 인도의 일부로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러시아 제국이 인도양으로 향하는 통로를 노리고 남하하자, 양쪽이 협정을 맺어서 세력권을 분할했는데 이때 파슈툰족 거주지역을 반으로 뚝 잘라서 남쪽은 영국이 인도 식민지로 먹고, 북쪽은 러시아 세력권의 아프가니스탄으로 정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듀런드 라인그레이트 게임 항목 참조. 현재 파키스탄은 카라치, 라호르를 중심으로 한 남부 펀자브 출신들이 주도하며, 북부의 파슈툰족들은 파키스탄인이란 정체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분리주의가 팽배하며 국경선이 의미가 없고 파슈툰족들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양쪽으로 맘대로 오가면서 활동한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여기에 묻어서 인력과 물자를 옮기는 것이다.[18] 딱히 친서방, 친미로 보긴 힘들다. 소련과의 전쟁기에 미국의 지원을 전혀 받지도 못했고. 하지만 탈레반처럼 무조건적인 반미도, 현 아프간 정권처럼 무조건적인 친미도 아니고 '도움이 되면 손을 잡는다' 정도의 유연한 성향이라 실제 집권을 했다면 미국과도 무난하게 지냈을 가능성이 높다.[19] 사실 냉전이 끝나고 CIA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어 관심가져 줄 여력이 없었겠지만.[20] 톰 행크스가 주연한 2007년작 <찰리 윌슨의 전쟁>이 이부분을 다루고 있다. 소련과의 전쟁기에 찰리 윌슨 하원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전폭적인 협조로 수천만달러의 무기를 반소게릴라(무자헤딘)에 지원하는 예산안을 손쉽게 얻어냈지만, 막상 소련군이 철수하자 학교건설 지원예산 단 5만달러는 의회와 언론의 무관심속에 완전히 묻히게 된다. 마지막에 '우리가 그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몰았으니 책임을 져야한다'는 톰 행크스의 이야기가 인상적.[21] 참고로 탈레반은 이 짓거리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욕을 처먹었다. 심지어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게서도 문화재 훼손하지 말라는 공식 규탄을 받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