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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구의 행정동 청량리동 淸凉里洞 | Cheongnyangni-dong | |||
<colbgcolor=#b02474><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
기초자치단체 | 동대문구 | ||
행정표준코드 | 3050119 | ||
관할 법정동 | 청량리동 | ||
하위 행정구역 | 25통 191반 | ||
면적 | 1.20㎢ | ||
인구 | 18,739명[1] | ||
인구밀도 | 15,615.83명/㎢ | ||
정치 | {{{#!wiki style="margin:-0px -11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top:-5px;margin-bottom:-11px" | 국회의원 | 동대문구 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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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의 법정동이자 행정동. 법정동과 행정동이 일치한다. 염리동과 더불어 읍/면의 하위 행정구역 명칭인 리(里)가 유지된 사례이기도 하다.[3]동대문구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청량리동 주위로 붙어있는 전농동, 용두동, 제기동, 회기동, 휘경동까지 전부 청량리로 불리는 일이 흔하다. 거대한 환승역인 청량리역이 압도적으로 유명한 네임드역이기 때문인데, 사실 청량리역은 청량리동에 반만 걸쳐있다.[4]
행정구역상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동부 인창방에 속해있었으나, 한일합방 후인 1911년 경기도 경성부 인창면 청량리로 바뀌었다가 행정구역이 대대적으로 개편된 1914년 고양군으로 넘어가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청량리가 되었다. 1936년 경성부 대확장 당시 다시 경성부에 편입되어 청량리정(町)으로 바뀌었고, 1943년 동대문구에 편입되었다. 해방 후 1946년 청량리정을 청량리동으로 변경했다.
서울 동부의 교통 중심지로서 일제강점기의 주요 간선철도인 경원선(1911)과 중앙선(1939)이 서울로 진출입하는 관문이었다. 1971년 성동역 폐역 후부터는 경춘선 역시 청량리역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 당시 기점 서울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종착하는 종점이었다. 청량리역은 현재도 서울 서남부의 교통결절인 영등포역과 마찬가지로 KTX 정차역이며, 수도권광역급행철도 개통시 GTX-B와 GTX-C 노선의 환승역이 될 예정이다.
2. 역사
청량리의 유래는 지역에 위치한 절인 청량사(淸凉寺)에서 유래했다. 원래 청량사는 지금 홍릉 자리인 경복궁 동쪽 바리봉에 위치해있었다고 하나, 명성황후 시해 후 묘역이 조성되면서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고 한다(홍릉 역시 청량리동에 속한다.). 청량사가 있던 숲은 수목이 울창하고 맑은 샘물이 흐르는 데다가 남서쪽은 트여있었기 때문에 늘 청량한 바람이 불어 청량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옛 홍릉의 자리에는 현재 홍릉수목원과 국립산림과학원이 위치해있다. 홍릉수목원 바로 동쪽엔 KAIST 서울캠퍼스가 붙어있고, 회기로를 건너면 세종대왕 기념관이 있다.
조선시대부터 수도 한양의 동쪽 관문으로서 '보제원(普劑院)'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이동이 빈번한 교통의 요지였지만 발전이 더뎠고, 청량리를 포함한 흥인지문 밖 일대는 동쪽 교외 지역이라는 뜻의 ‘동교’로 불릴 만큼 낙후된 지역으로,[5] 청량리가 비로소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899년 5월 17일 조선 최초의 전차가 개통되면서부터였다. 당시만 해도 첨단 문명의 상징이었던 전차가 논밭만 가득한 청량리까지 연결된 것은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의 존재에 기인한 것으로, 미국인 사업가 헨리 콜브란은 고종이 쉽게 홍릉을 찾을 수 있도록 노선을 청량리까지 두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여 해당 노선의 전차를 부설했던 것이다. 참조
청량리 개발이 본격화된 것은 1920년대였다. 1919년부터 내지연장주의에 의거 동화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한 조선총독부는 제국대학 설립을 추진하며[6] 1922년 2월 4일 교육제도를 개정(제2차 조선교육령) 공포함과 동시에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조선의 민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일시동인(一視同仁)의 성지(聖旨)로 조선에 대학을 세우겠다”고 호언하고 청량리에 ‘조선제국대학[7] 예과’ 건물 신축사업에 들어갔다. 제국의회에서의 예산 배정 문제로 계획보다 1년 연기된 1923년 4월에 착공하여 연말에 완공된 청량리의 예과캠퍼스에는 1924년부터 경성제대 예과 신입생들이[8] 입학해 3년[9]간 수학하였다. 이 예과 생도회에서 공식 간행한 회지의 명칭이 바로「淸凉(청량)」이었다고 한다.
경성제국대학 캠퍼스 위치 |
청량리의 예과캠퍼스는 해방 이후 국대안 실시로 경성제국대학이 서울대학교가 된 후에도 1966년 12월 동숭동캠퍼스에 과학관(科學館)이 준공되어 문리대가 동숭동캠퍼스에 집결하기 전까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이학부와 의예과[10]로 사용되었다.[11] 예과 본관건물은 서울동산병원[12], 한림대학교 치과병원 및 의대 강의실로 이용하였으나 2015년에 철거되었다.[13] 정문이 있었던 자리에는 치과, 안과, 부동산, 비만클리닉, 고시학원 등이 밀집한 복합상가가 들어섰고, 운동장 자리에는 현재 동대문세무서가 자리잡고 있으며,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우거져 청량한 느낌을 줬다는 교사 뒷편의 소나무숲에는 청량리 미주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출처).
3. 주요 시설
4. 정치
서울 동북부에서 가장 보수성향이 강한 동네중 하나이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들이 서울 강북지역 대부분의 동에서 지는 와중에도 동대문구 청량리동만큼은 보수가 이겼다. 이후 2022년 8회 지선에서는 오세훈 시장이 청량리동에서 무려 62.93%를 득표했으며, 이필형 동대문구청장도 청량리에서 압승했다. 동대문구가 전체적으로 보수 우세 지역이지만, 동대문구 내에서도 가장 보수 성향을 가지는 동네이다. 이는 청량리역 일대 재개발 이슈도 한 몫을 차지하며, 근본적으로 노년층 인구가 청량리 일대에 많이 거주하고 있고 경상도 출신 거주민들이 많이 사는 덕분이기도 하다.[14]5. 특징
- 주변에 전통시장이 엄청나게 많다. 청량리동에 속하지 않은 시장들이 대부분이지만[15] 전부 청량리 전통시장으로 불린다. 평소에도 붐비고 추석이나 설날엔 모여드는 사람들이 정말많다. 인근 제기동역 부근엔 경동시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시장과 약령시도 있다. 그래서 교통은 언제나 헬게이트.
-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과서는 서울 부도심의 한 예로 청량리를 소개하고 있지만, 정작 가 보면 개발의 역사가 오래 된 강북 지역의 특성상 낡고 낮은 건물들이 대부분이라 꽤 초라한 편이다. 이는 강남이나 여의도[16][17]의 빌딩숲에 익숙한 21세기적 관점으로, 1990년대까지만해도 명실상부한 주요 부도심 중 하나[18]였고, 경기북부/강원도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교통·물류의 중심으로서 여전히 부도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노후한 시설물들이 리모델링, 재개발·재건축되며 현대적 도시 풍경으로 바뀌고 있다.
- 랜드마크인 청량리역은 경원선과 중앙선 두 간선철도의 분기역으로, 철도가 거의 유일한 장거리 교통수단이던 시절부터 발전을 시작해, 산업화 시기에는 1호선이 정차하는 중요한 역이었고, 현재도 1호선을 통해 강원도나 경기북부 지역에서 서울 도심으로 진입하기 위한 주요 관문으로서 기능한다. 1호선, 경의·중앙선, 경춘선, 수인·분당선 4개 전철 노선의 환승역이자, 경기도 구리시, 남양주시, 포천시, 가평군 등의 광역버스들이 종점으로 삼는 교통결절점으로, 도봉산역과 수유역, 노원역, 동서울터미널 등이 기능을 분담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곳이다.[19] 거대한 민자역사 앞에 정류장 4개로 이루어진 대형 버스환승센터가 있다. 기존에는 용산역처럼 음산한 이미지가 있었지만, 2010년에 민자역사가 완공되고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롯데시네마 청량리, 롯데마트 청량리점 등이 입주하여 역세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20]
- 청량리역의 존재로 인해, MT철이나 여름이 되면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1980년대부터 경춘선 열차의 시발역으로, 지금도 ITX-청춘을 이 역에서 이용할 수 있다. 2017년 12월 22일 경강선 KTX가 개통하면서 86분만에 강릉에 도착할 수 있게 되어 서울 사람들의 강원도 여행이 더욱 편리해졌다.
- 지금은 사라진 유명 집창촌 청량리 588[21]이 청량리역 5번출구 남쪽에 있었다. 이 오래되고 유서깊은 집창촌을 어떻게든 없애기 위해 1990년대부터 노력했지만, 건물주들과 사창가 업주들의 막강한 저항에 부딪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그러나 홍준표 국회의원[22]이 강력하게 집창촌 철거와 재개발을 밀어붙여 2000년대 들어 뉴타운사업대상지역으로 지정되어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2021년 현재 재개발 보상이 마무리되어서 모든 건물은 철거되고 대규모 주상복합 청량리역 롯데캐슬 SKY-L65이 건설되었다.
- 지상청량리역[23]과 옛 588은 전농동, 경동시장과 약령시, 청량리전통시장 등은 제기동, 청량리수산시장은 용두동에 있지만, 전부 청량리로 불린다. 이는 지역의 랜드마크 청량리역의 영향이다.[24] 실제 청량리동에 위치한 시설은 홍릉, KAIST 서울캠퍼스, 국립산림과학원, 영휘원, 세종대왕기념관, 서울동대문경찰서 등이다.
- 청량리청과물시장 내 먹자골목에서는 서울 물가와 단절감을 주는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때울 수 있다. 매운냉면, 통닭 등이 맛있다고 한다.
- 이 동네의 문제점으로, 길거리에 심각할 정도로 노점상들이 많고 지저분하다.[25] 강남 지역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또한, 지역 특성상 재래시장이 집중적으로 위치하고 있어서 노년층의 비중이 크기도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 동네이기도 하다. 사람이 다니는 인도나 횡단보도, 버스 정류장에서 거리낌없이 담배를 꺼내 무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으며, 길거리에 침을 밷는 사람들도 많다.
- 과거 경성제국대학(대학예과) 및 그 뒤를 이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이학부)가 청량리 미주아파트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또한, 서울대가 가진 여러부지를 떠돌아다니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가 현 종암동 부지에 안착전인 1967년부터 잠시 5년간 청량리에 소재했었다. 1972년 종암동 구 서울상대 부지로 옮겨가고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 국내 1호 정신병원인 청량리정신병원이 바로 이 곳에 위치하였다. 1945년 8월 청량리뇌병원으로 개업하였고, 2018년 경영악화로 영업을 중단했다. 하지만 여전히 건물과 넓은부지는 그대로 남아있으며[26] 건물 관리도 되고있고 간판도 아직 달려있다. 화가 이중섭이 옛날에 이곳에 수용되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6. 나무위키에 등재된 출신 인물
6.1. 출생 및 출신 인물
6.2. 출생 인물
6.3. 출신 인물
[1] 2023년 4월 주민등록인구[2] 청량리동 57-6[3] 한편 인근의 왕십리와 답십리는 같은 한자를 쓰는 거리 단위 리에서 유래했다.즉 왕+십리, 답+십리로 나눠진다.[4] 정확히는 1호선 청량리역은 청량리동에, 나머지는 행정구역상 전농동에 있다. 어차피 청량리동과 전농동은 붙어있기에 거리상 차이가 있는건 아니고, 그냥 동 경계선위에 역이 있는 것일 뿐이다.[5] 조선국왕들이 풍년을 기원하며 신농씨를 모시고 농사를 권하는 ‘선농단’이 위치해 있었을 정도로 논밭이 펼쳐져있었던 곳이었다.[6] 소학교, 구제중학교와 같은 6년제, 5년제로 변경되기 이전 보통학교(4년제), 고등보통학교(4년제) 졸업생들에게 제국대학예과 입시자격을 부여하기 위하여 신입생을 선발해 2년간 교육시키는 보습과를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설치하고 1921년 4월부터 수업을 개시하였다.[7] 당시 명칭은 도호쿠(1907), 규슈(1911), 홋카이도(1918) 등 3~5번째 제국대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방의 명칭을 따와서 조선제국대학이었으나, 1924년 4~5월 법제국 심의과정에서 도시의 이름을 딴 경성제국대학으로 변경됨. 경성제대 이후 다이호쿠(1928), 간사이가 아닌 오사카(1931), 주부가 아닌 나고야(1939) 등 제국대학들은 전부 과거 사례인 도쿄(1886), 교토(1897)처럼 도시 명칭을 붙이게 되었음.[8] 법문학부로 진학할 문과 80명, 의학부로 진학할 이과 80명 등 160명 가량. 1938년부터는 이공학부로 진학할 이과甲 80명이 추가된 240명 가량.[9] 1934년(예과 11회)~1945년(예과 22회). 1924년(예과 1회)~1933년(예과 10회) 입학한 생도들의 경우는 수학연한이 2년.[10] 2012년 3월부로 자연과학대학에서 의과대학으로 소속변경[11] 서울대학교60년사 참조.[12] 1977년 한림대학교의료원에 의해 인수되어 1979년 동산성심병원으로 개칭하였고, 1992년 기존 170병상에서 202병상으로 증설하였으며, 1999년 1월 16일 폐원시까지 매년 약 11만명의 외래환자와 연인원 4만 2천명에 이르는 입원환자를 치료하였다. 1999년 3월 개원한 평촌성심병원으로 이어진다.[13] 붉은 벽돌과 아치형 입구가 인상적인 예과 본관 건물은 철거 때까지도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14] 경상도 출신 거주민들이 많은 이유로는 청량리역의 존재일 가능성이 높은데 청량리는 중앙선 철도의 기착지로 중앙선은 경상북도와 서울을 잇는 철도이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경상도 사람들이 철도를 이용해 청량리로 올라와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비슷한 사례로 인천과 충남이 있다. 도로교통 발달 전 해로를 이용해 충남 지역 사람들이(특히 서산, 태안, 당진, 보령 등 서해안 지역) 인천으로 많이들 올라와 자리를 잡았고 이 영향으로 2024년 현재도 인천에는 충남 출신 거주민들이 많이들 산다.[15] 대부분 제기동이다.[16]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하는 영등포와 단일 권역으로 묶여 있다.[17] 현대의 서울은 3핵도시로서 사대문안, 강남, 영등포/여의도는 그 위상이 거의 같다. 대법원, 국회의사당, 그리고 지금은 용산으로 이전한 옛 청와대의 위치가 괜히 현재와 같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 청량리와 비슷한 위상의 부도심은 신촌, 마곡, 수색, 잠실 등이다.[18] 이곳에 위치한 서울시립대학교는 부도심에 위치한 이점을 지키기 위해 강남 이전을 완강히 반대하기도 할 정도였다. 이 자리는 현재 서울교대가 들어갔다.[19] 실제로 당초 망우역 기종점으로 개통된 경춘선 전철이 춘천시의 강력한 건의로 일부 열차의 기종점이 청량리역까지로 연장된 바 있다. 집중도는 떨어졌어도 중요도는 여전한 셈.[20] 예전 롯데백화점 건물은 철거되었다.[21] 전농동에 위치해 있음에도 청량리역 바로 앞에 있어 이와 같은 명칭으로 불렸다. 그래서 청량리동 주민들이 대단히 싫어했다. 물론 전농동에 지상청량리역이 있다는 모순을 생각한다면...[22] 현재 대구광역시장인 그 홍준표 맞다. 서울을 떠나 영남(경남, 대구)으로 거점을 옮긴 지 오래되어 현재는 영남권 정치인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홍준표 시장은 원래 5선 중 3선(16, 17, 18대. 21대는 익히 알려졌듯 대구 수성구 을이고 15대는 송파구 갑에서 했다.)을 동대문구 을에서 지냈었던 서울 기반의 정치인이었다.[23] 다만 1호선 지하청량리역은 이름대로 청량리동에 걸쳐 있다.[24] 청량리동은 청량리역 맞은편 미주아파트부터 동쪽 시조사삼거리까지, 북쪽 KAIST 서울캠퍼스까지이다.[25] 2022년엔 개발 주도 성향의 이필형 구청장이 취임하여 불법 노점상들의 철거를 선포했다. 하지만 청량리-제기동 일대의 노점상 수가 많아도 너무 많은지라 시간은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노점상 노동조합은 반발하여 경동시장 일대에서 천막시위를 하는 중이다.[26]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로 142[27] 동대문구에서 출생. 홍릉국민학교(현 서울홍릉초등학교) 졸업.[28] 청량리동에서 출생.[29] 서울홍릉초등학교와 청량중학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