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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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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이해3. 시끄러운 소수4. 존재 여부에 관한 논쟁
4.1. 존재하지 않는다4.2. 분명히 존재한다4.3. 제3의 시각
5. 침묵하는 다수가 승리한 선거6. 시장에서의 침묵하는 다수7. 유사 사례8. 가상 매체의 사례9. 관련 문서

1. 개요

"침묵할 때, 그들은 소리치고 있다." (Cum tacent, clamant.)
키케로, 카틸리나 반박문 中 (Cicero, In Catilinam 1,8)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는 직접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는 않는 다수의 대중을 의미하는 말로, 원래는 죽은 옛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죽은 사람의 숫자가 더 많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1969년 11월 3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한 연설로 유명해졌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목소리를 가진 소수(Vocal Minority)"와 달리 다수는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말을 처음 쓴 것은 닉슨이 아니며 1967년 공화당 지지 성향의 노조 간부의 입에서 나온 단어를 이후 닉슨의 연설 작성자가 썼다. 68 운동 때 혁명이 전세계를 휩쓸었음에도 1968년 미국 대선, 1968년 프랑스 총선 등에서 보수파가 연이어 승리하며 다수의 군중이 혁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 명확해졌고,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어 현재는 정치적 용어로 정착했다.

1969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미국의 중산층"이지만 타임지는 해당 불특정 인물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면서 68 운동에 반대하는 미국 교외의 전문직 종사자 중산층이 리처드 닉슨의 당선에 기여했음을 언급하였다.

2. 이해

국가 규모의 큰 민주사회에서 시위나 청원 등을 하며 열성적으로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에 비하면 소수인 경우가 많다. 어떤 서명운동에 10만 명이 동참했다면 분명 굉장히 많은 사람이 찬성하는 것이지만 그 사회의 인구가 1,000만 명이라면 엄밀히는 1%의 뜻일 뿐이다. 침묵하는 다수는 말 그대로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사를 가지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헌데 침묵(기권)도 하나의 권리인 건 맞는데 "침묵/기권=긍정도 부정도 안 함"을 "침묵/기권=긍정 함 or 긍정 안 함"으로 편집하면서 "봐라! 다들 찬성 or 반대하고 있지 않느냐!"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1]

이 때문에 실제로 어느 쪽이 다수 대중의 뜻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쟁점이 덜 중요한 사안이면 주로 여론조사를,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면 국민투표 등을 실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런 현상들은 당장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로도 잘 드러난다. 민주주의는 투표로 말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참고할 만한 다른 용어로는 커뮤니케이션학에서 다루는 "침묵의 나선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다수라고 느껴지면 마음껏 그 의견을 표출하지만 소수라고 느껴질 경우는 그냥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각종 여론조사 등에서 나온 결과가 실제 투표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이유를 일정 부분 설명해 준다. 어떤 집단이 실제로는 다수파인데 소수파가 하도 시끄럽게 굴어서 스스로를 소수라고 착각하고 침묵을 지키는 경우라면 침묵의 나선 이론과 침묵하는 다수의 논리가 교집합을 갖게 된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3. 시끄러운 소수

'침묵하는 다수'가 존재하기 위한 전제로 '시끄러운 소수(vocal minority)\'가 필요하다.

눈에 자주 띄면 실제보다 세력이 커 보이므로 군중심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소수파는 좀 민폐다 싶을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것이다. 이 작전이 성공하게 되면 어느새 진짜 다수가 되어 있다는 게 이 작전의 무서운 점이다.

하지만 이런 시끄러운 소수는 활동을 지속할수록 다수의 사람, 심지어 같은 편인 온건한 지지층들과도 멀어지면서 자기쪽의 이탈과 상대쪽의 단결을 불러올 수 있다.

게다가 '침묵하는 다수'보다는 '시끄러운 소수'가 활동에 적극적인지라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며 일부드립에서도 볼 수 있듯 관찰자의 시점에서는 결국 시끄러운 소수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몇몇 예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커뮤니티는 이 대분류에 속한다. 일단 어떠한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커뮤니티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부터가 대분모에서 소수의 인원으로 차출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커뮤니티의 의견을 실 사용자의 주 의견으로 판단하고 정책을 내릴 경우, 실제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 다수에게는 달갑지 않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임을 예시로 하자면 게임을 접속만 하고 공략 없이 즐기는 다수가 커뮤니티와 공략까지 찾아서 본격적으로 하는 소수와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비교적 헤비한) 후자에 의견만을 듣게 된다면 난이도를 지나치게 올리는 등의 우를 범할 수 있다. 네이버 뉴스 댓글창도 이에 해당된다. 네이버 댓글을 다는 사람은 실 사용자의 0.9%[2]에 불과하며 극단적인 정치적 의견을 가진다. 만약 정치인이 뉴스 댓글창을 전체 민의로 판단하고 정책을 내린다면 대한민국의 정책은 극좌/극우로 극단화될 것이다.

4. 존재 여부에 관한 논쟁

4.1. 존재하지 않는다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이 늘 동질적이지 않고[3] 시끄러운 소수의 의견 역시 동질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사실 밀리는 쪽의 정신승리 기법이란 주장이다. 대부분의 침묵하는 다수들은 해당 사안에 대해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독재 정권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자주 사용된 논리라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4]

4.2. 분명히 존재한다

침묵하는 다수는 존재하며 이들은 생활이 있기 때문에 대낮에 거리로 몰려나오기 힘들 뿐, 혹은 괜히 시끄러운 소수와 싸우기 귀찮아하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무엇보다도 정국이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큰 목소리를 내는 집단은 급격히 변할 수 있지만 실제 사회를 구성하는 대중들의 입장이 그만큼 급격하게 변하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침묵하는 다수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침묵하는 다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사례는 선거에서 모두가 A후보가 승리할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막상 투표결과 B후보가 승리하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에 많은 이들이 "나랑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A후보에 투표했는데 어떻게 B후보가 당선된거죠?"라는 의문을 갖기도 하고, 심할 경우에는 선거가 조작되었다음모론에 빠지기까지 한다. 실제로 선거가 조작되었을 가능성보다는 당신이 우물 안 개구리일 가능성이 더 크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과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설령 주변에 B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당신이 A후보가 반드시 당선되어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는 부류의 인간이라면 당신과 언쟁을 피하고 싶어 자신이 B후보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굳이 당신에게 밝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하자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다가 전혀 다른 결과에 충격받게 된다는 것이다.

"침묵하는 다수"를 유명하게 한 닉슨 자신이 1968년 대선에서 재기에 성공하며 사실상 34년간 계속되던 민주당 우위의 시대를 끝낸 것이 "침묵하는 다수"를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5]

1960년 일본에서도 안보투쟁으로 반정부 투쟁에 극에 달했던 가운데 당시 총리였던 기시 노부스케가 "국회 주변은 시끄럽지만 긴자고라쿠엔 구장은 이전과 다르지 않다. 나에게는 소리없는 소리(声なき声)가 들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을 뿐 안보투쟁에 동의하지 않음을 강조한 것이다.[6] 안보투쟁은 기시 본인의 퇴진이 있은 뒤에야 끝났다. 그렇다고 1956년과 1958년 참의원, 중의원 선거를 거치면서 자민당의 득표율은 50%대, 사회당의 득표율은 30%대 초반 가량으로 고착화된 구도에는 큰 변함이 없었고 사회당 위원장 아사누마 이네지로의 살해사건(도쿄 찌르기 사건) 등의 호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사회당은 공천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권을 교체할수있는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 이촌향도 현상에 의해서 자민당의 득표율이 40%대로 내려가면서 자민당 지지자들이 일본 유권자 구성에서 더 이상 다수를 차지하지 않게 되었지만 동시에 야권에 대한 지지세가 공명당, 공산당으로 분산되어 야당의 다당화 현상이 두드러졌고, 사회당은 1993년까지 만년 야당으로 지내야만 했다.

2015년에는 도널드 트럼프가 이 단어를 이용하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거의 매장당하다시피 하는 일이었다는 주장도 있으며 그래서 침묵하고 있었다는 트럼프 지지자의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대선 결과는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인단에서 승리했으나 전체득표에서는 민주당 후보 힐러리가 앞섰기 때문에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침묵하는 다수 때문이라고 보기 힘들다.

다만 이는 번역의 차이기도 한데 majority를 다수로만 번역하면 또다른 뜻인 주류를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침묵하는 다수에 드는 사람들은 이 논의가 활발한 투표율이 낮은 직접민주주의 국가(ex: 미국, 한국 등)에서 가장 인구수가 많고, 정치/사회적으로 다수인 덕에 주류의 지위를 차지하는, 예를 들면 중장년층, 중산층, (서구 한정) 백인 같은 분류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침묵하고 있어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한 사회의 주류기 때문에 정치적인 힘을 가질수 있기 때문에 투표라는 국민 공통의 참정권 및 여러가지의 참정 수단을 동원하여 정치를 그들의 성향에 맞게 흘러가게 할 수 있는 것.

실제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출구조사 세부 결과를 살펴볼 경우 중장년층에 해당하는 40대와 50~64세에서 트럼프가 각각 49%와 52%를 득표하여 46%, 44%에 그친 힐러리를 상대로 우세했다. 연가구소득 5만~10만달러의 중산층에서도 트럼프가 49% 대 46%로 앞섰으며, 백인에서도 57% 대 37%로 승리를 거뒀다. # 즉, 침묵하는 다수(majority)는 아닐지언정 침묵하는 주류(majority)에서는 트럼프가 승리한 것이 맞다고 볼 수 있다.

나무위키도 '침묵하는 다수'의 적절한 예시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일반적인 통념과 같이 나무위키에서 문서를 사유화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문서에 개인적인 시각을 떡칠해가며 사유화를 하더라도 대다수의 유저들은 문서 하나하나에 신경쓸 여력이 없고, 잘못된 정보가 계속 돌아오는 것을 (롤백) 토론으로 제지하기 위해 개인적인 시간을 쏟아부어봤자 보통 스스로가 딱히 얻는 게 없기 때문이며 사유자가 신고 기능까지 악용하면 다수자들 개인이 더 피곤해진다. 그러나 누군가가 결국 사유화된 문서에 토론을 열고 개입하면 좀 나아지지만 문제는 토론 시스템상 시간이 많으면 승리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별 지식 없는 백수가 이기면 아무리 전공자가 수정해도 별 의미 없게 된다. 거기다 극렬한 토론의 경우 투입되는 중재자는 정치적으로 편향적이다.

4.3. 제3의 시각

하지만 이런 주장의 맹점으로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정치적 무관심층이 많을 경우 "결국 침묵하는 다수도 관심 없는 진짜 다수에 비하면 소수가 아닌가"라는 비판을 얻을 수 있다.[7] 민주주의의 정당성은 투표로 보증되지만 무조건적인 투표만능주의(51% 독재)에 빠지면 곤란하다는 이야기. 또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이 아닌 것 역시 당연한 이야기다. 논리적 오류/비형식적 오류 문서에서 "군중에 의거한 논증" 참고.

침묵하는 다수 집단은 항상 시끄러운 소수 집단과 서로 적대적이거나 상반되는 입장을 갖는 건 아니다. 물론 목소리를 크게 내는 소수집단이 사회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용한 다수들이 그 소수에 반대할 것이라는 보장 역시 없다.

이런 면에서 침묵하는 다수라는 개념은 겉보기에 드러나는 집단의 구성이 반드시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배후집단의 구성과 일치하지는 않음을 지적하는 개념으로 제한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침묵하는 다수가 승리한 선거

  • 제51회 영국 총선 - 1992년에 치러진 선거이다. 당시 영국은 일시적인 경기 불황을 맞고 있었으며 직전 총리 마가렛 대처의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 있었던 만큼 집권 보수당에서 제1야당 노동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유력시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여론조사들도 노동당의 승리를 예측했다. 하지만 당시의 여론조사들은 보수당의 샤이 지지층을 파악하지 못했으며,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아도 실제로는 보수당 내각의 안정적인 국정능력을 신뢰하고 있던 이들은 당시 총리였던 존 메이저에게 여유로운 승리를 안겨주었다. 해당 선거는 샤이 토리의 영향력을 증명한 대표적인 선거로도 꼽힌다.
  • 제56회 영국 총선 - 2015년에 치러진 선거이다. 여론조사에서는 줄곧 보수당노동당의 경합으로 나왔다. 하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끌던 보수당 정부의 경제 성과를 인정하여, 보수당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주었다. 해당 선거에서 보수당이 획득한 330석은 보수당으로서는 18년만의 과반의석이다.
  •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 공화당리처드 닉슨민주당 후보 휴버트 험프리를 상대로 승리한 선거이다. '침묵하는 다수'의 원조이다.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 김대중 정부가 선거 3일 전에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발표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커진 상황이라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이 유리한 판세였다. 실제로 당시의 여론조사와 출구조사도 새천년민주당이 원내 1당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하지만 민주당계 정당에게 1당마저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에 보수층은 우파 제1야당 한나라당으로 결집했고, 덕분에 한나라당은 영남권 지역구들을 싹쓸이하는 동시에 수도권 접전 지역구들에서 대거 승리했고, 결국 한나라당이 원내 1당을 사수하는데 성공했다.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당시 이명박 정부는 임기말 레임덕 현상으로 인해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상황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정권심판론을 앞세운 민주통합당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었다. 비록 한나라당이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도 교체하고 정치개혁, 이념과 정책, 인적 구성 측면에서의 쇄신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야권연대가 과반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우세했고, 출구조사에서도 야권연대가 과반에 근접할 것이라고 예측되었다. 하지만 실제 개표결과에서는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예상외의 승리를 거두는데 성공했다.

6. 시장에서의 침묵하는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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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시가 팔리지 않게 된 3가지 이유

침묵하는 다수와 시끄러운 소수는 시장에도 존재한다. 기업이 시끄러운 소수의 요구를 무리하게 수용하려다가 침묵하는 다수를 외면하는 바람에 망하는 경우가 있다.

업계 측에서는 시끄러운 소수의 입장을 다수의 입장으로 착각하고 시끄러운 소수의 요구를 수용한 적 있는데, 그렇게 시끄러운 소수의 요구에 응했다고 해서 딱히 이들이 매출을 높여주는 것도 아니다.[8] 반대로 다수의 소비자들은 등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위의 경우와는 다르게 게임회사 측에서 소수의 하드코어 게이머의 요구에 응하다가 다수의 일반 게이머, 뉴비들을 놓치는 바람에 망하는 경우도 있다. 진짜 다수의 의견을 따랐지만 도리어 잠재적인 다수를 무시하여 미래의 이득을 놓친 것이다. 리듬 게임대전 격투 게임이 그 예.

물론 위의 논리대로라면 매출을 책임져주는 유저들을 포함한 침묵하는 다수가 논란을 신경쓰지 않는다면 오히려 비난이 불편러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져 묵살될 수도 있다는 의미도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슈타인즈 게이트나 우마무스메로, 이 두 게임은 한국에서 발작하기 딱 좋은 사례인 극우 논란, 일러레 페미 논란이 있는 게임들이지만 이 사실로 인해 난리가 난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의 흥행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도 못했다.

7. 유사 사례

특정 계층이나 집단 내에서 소속 인물 중 '소수'가 저지른 사건사고나 도덕적 해이가 외부에 알려졌을 때 제3자들은 이들에 대해서 주목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의 계층이나 집단 내에서 그 '소수'가 저지른 사건사고에 대해 '다수'가 침묵으로 일관할 경우 제3자들은 이들 계층이나 집단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사실상 암묵적으로 그들을 두둔하는 것이다' 식의 판단을 하게 되고, 이들 계층이나 집단의 이미지 악화로 이어진다. 이걸 잘 볼 수 있는 게 바로 나라 망신이다. 한 나라의 국민이 벌인 사건 때문에 타국에 민폐를 끼치면 그 나라의 이미지가 나빠지지만, 그것이 그 나라의 진짜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8. 가상 매체의 사례

9. 관련 문서



[1] 한마디로 어떤 사안에 대해 긍정을 주장하는 쪽이던 부정을 주장하는 쪽이던 양쪽에서 똑같이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2] #[3] 즉, 천만 명 중에서 서명운동에 동참한 사람이 10만 명이라면 분명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남은 990만 명이 해당 서명운동에 대한 반대파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4] 예를 들어 인구가 천만명인 국가에서 인구의 1%인 10만여명이 반정부 시위에 나왔다면 시위에 나온 1%인 10만명은 시끄러운 소수고 시위에 나오지 않은 990만명은 자신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침묵하는 다수라고 주장한다.[5] 다만 리처드 닉슨의 사례의 경우에는 1968년 대선에서 험프리와 득표율 차가 1%도 안 났기 때문에 이 예시에 들기에는 다소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닉슨보다도 더욱 강경하게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고 68 운동과 인종투쟁에 반대한 조지 월리스가 무려 14%를 득표했기 때문에 둘의 표를 합치면 58%로 험프리의 42%보다 확고한 우위에 있다. 월리스의 지지층은 남부 교외에 사는 고졸 중산층이었는데 월리스는 이러한 자신의 지지층을 "일반적인 미국인"이라고 불렀다.[6] 이에 대해 안보투쟁을 추진하던 시민들은 '소리 없는 소리 모임'(声なき声の会)을 결성해 기시의 발언을 비꼬았다.[7] 쉽게 말해 투표율이 60%보다 낮으면 가장 높은 비율의 유권자는 어느 정당도 아닌 무당파라는 건 당연지사.[8] 서브컬쳐계에서 시끄러운 소수에 해당하는 프로불편러페미니스트, SJW 등은 제작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어깃장 놓는 게 특기긴 하지만 그들 입맛에 최대한 맞춘 작품을 내줘도 별로 잘 질러주지 않는데 이들은 그냥 자기 눈에 보이는 불쾌한 걸 치우고 싶은 심리검열을 이용해 영향력을 설파하는 데 맛들린 엉터리 교조주의에 심취해 있는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자기들 맘에 안 드는 걸 후러치는 건 잘해도 작품이 이들의 의견을 수용한다고 해도 '당연히 그래야지 뭘 세삼스럽게?'하는 수준의 반응만 보일 뿐이다. 정말 질러주는 사람이 있어도 결국 소수고, 그들만의 리그 내에서 좀 반짝 했다가 결국 외면받는 경우가 다수다. 오히려 이들 입맛에 다 맞춰주다가 나오는 결과물은 그들마저도 외면할 정도로 틀에 박혀 있고 매력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장경제 한정으로 시끄러운 소수가 외면당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시장경제는 무조건 금전적인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데 아무리 목소리가 커봐야 매출에 영향이 없으면 소수의 의견을 존중해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시장 논리에 미숙하고 역사가 짧은 게임 계열 컨텐츠에 침묵하는 다수가 무시당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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