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차례로 플라시도 도밍고, 레온타인 프라이스, 셰릴 밀른즈.
1. 개요
주세페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 제목은 중세 유럽의 음유시인을 가리키는 것.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베르디 중기 작품 '빅3'라고 불린다. 국내에서 잘 올려지지 않은 이유는 인지도 탓도 있겠지만, 주연 배역을 잘 부를 수 있는 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메조 소프라노가 국내에서는 많이 없어서라고 할 수 있다.[1]리골레토가 카바티나와 카발레타 없이 아름다운 선율이 연이어서 나오는 것이라 하면, 일 트로바토레는 베르디의 초기작 나부코와 조반나 다르코같은 레치타티보-카바티나-단절부-카발레타의 구조로 이뤄져있다. 즉, 다시 벨 칸토 스타일로 후퇴한 것. 물론, 초연 당시 한물간 작풍을 재탕했다는 것과 스토리 전개가 너무 난해하다는 혹평도 있었지만 매력적인 저음 캐릭터[2]와 정열적인 음악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으니 조반나 다르코나 알치라같은 졸작으로 분류되지 않은게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하여간 쓰다만 성인용 동화 같은 스토리에는 너무 신경쓰지 말고, 줄줄이 나오는 앙상블의 아름다움과 아리아들이나 감상하도록 하자. 대본은 헐렁할지언정 스토킹의 제왕 루나 백작과 얀데레 중증 집시엄마 아주체나의 캐릭터가 매우 강렬하고 매력적이다.
2. 여담
- 80년대 중반 국제오페라단 국내공연 때, 배경을 베르디 활동 당대의 것으로 고친 연출이 등장했다. 집시소굴에는 이탈리아의 삼색기가 걸쳐져 있었고, 루나 백작과 그의 군대는 오스트리아 군복 비슷한 디자인의 의상을 입고 나왔다.
- 옛날에는 루나 백작에게 주목하는 여성관객들이 거의 없었으나[3] 러시아의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가 2000년 초반부터 이 역을 맡으면서 여성팬이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4] 국내든 외국에서든 모두 해당되는 사항. 이유인즉슨 그의 기품있고 섹시한 은발 미모와 광기마저 느껴지는 뛰어난 연기 덕분이라고. 물론 외모빨만 날린다는 건 아니고 중후하고 묵직한 음성으로 훌륭한 노래도 들려준다. 메트에서 잘생겼다고 아무나 세우는 게 아니니까... 결정적으로 2002년도 메트에서 적자 타개를 위해 공들여 기획한 영화관 상영용 프로덕션에서 흐보로스토프스키와 루나 백작의 존재감이 전세계 오페라 팬들에게 야무지게 자리잡았는데, 간지 폭발하는 장교 의상을 입고(만리코 역의 호세 쿠라는 체 게바라 스타일) 꽤 격렬한 결투 액션[5]을 소화하는 등 가히 전설로 남을 만한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다. https://youtu.be/4Qo7bBSJKqM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돈 카를로 다음으로 좋아했던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라고 한다. 1956년과 1977년 두 번에 걸쳐 EMI에서 음반 녹음한 것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극장과 빈 국립 가극장에서 일 트로바토레를 무대위에 꽤 많이 올렸다는 것이 그 증거.[6] 뿐만 아니라 돈 카를로에서 그랬던것처럼 연출과 무대 디자인도 카라얀 자신이 직접 담당했으니 이 작품에 얼마나 애착이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이탈리아의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7]가 2000년 라 스칼라 공연때 '저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에서 맨끝에 하이C(높은 '도'음)을 부르지 않은 바람에 관객들의 야유가 많이 터졌다. 이는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그 고집불통 성격답게 카덴짜에서 제지한 것이 그 이유였다.
- 이 오페라 2막 서두에 나오는 합창곡 '집시의 날은 누가 밝히나'는 흔히 '대장간의 합창'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 프로야구 올드팬들에게는 아주 익숙할 것이다. 과거 빙그레 이글스 선수가 대전야구장이나 청주야구장에서 안타를 치면 장내에 울려 퍼지던 노래가 바로 이 곡이다. 구단명이 한화 이글스로 변경된 후에도 한동안 안타 축하송으로 이 노래가 울려퍼졌지만 2000년대부터는 사라졌다.[8]
3. 등장인물 소개
- 루나 백작 (Count di Luna)[9] : 아라곤의 귀족이자 군대 지휘관 (바리톤)
- 만리코 (Manrico) : 우르젤 공작 군대의 젊은 지휘관 겸 음유시인 (테너)
- 레오노라 (Leonora) : 아라곤 공작부인의 젊은 시녀 (소프라노)
- 아주체나 (Azucena) : 만리코를 양육한 집시 여인 (메조 소프라노)
- 페란도 (Ferrando) : 루나 백작이 중용하는 늙은 장교 (베이스)
- 이네스 (Ines) : 아라곤 공작 부인의 시녀이자 레오노라의 친구 (소프라노 또는 메조 소프라노)
- 루이츠 (Ruiz) : 만리코 군대의 장교 (테너)
4. 스토리
4.1. 1막
첫 장면부터 루나 백작이 사는 성의 성문 앞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루나 백작의 병사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계속 일어나는 전쟁 때문에 망중한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그 때, 늙은 장교 페란도가 나타나서 병사들을 격려하고, 백작 가문에서 내려오는 공포스런 옛날 이야기를 해준다. 이 오페라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베이스 카바티나 "선대 백작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네(Di due figli vivea)" 이다.페란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강 이렇다. 지금 백작의 아버지였던 선대(先代) 백작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이는 현재의 루나 백작 이고, 둘째 아이는 '가르시아'라는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가르시아는 요람에 누워서 지낼만큼 너무 어렸는데, 하루는 한 집시 노파가 다가와서 아이를 뚫어지게 본 것이었다. 그 후 선대 백작의 둘째 아들 가르시아는 열병에 걸려서 의원들이 아무리 치료를 해도 낫지 않자, 선대 백작은 그 집시 노파의 저주 때문이라 생각하고, 그 노파를 잡아오게해서 화형시켰다. 그런데, 노파가 화형 당할 즈음에 요람 속에 있던 아이는 사라져 버렸고, 노파를 화형시킨 잿더미 속에서 타버린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5. 명반과 영상물
일 트로바토레는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자주 올려진 레퍼토리 였지만, 90년대 이후로 각 배역을 부를 수 있는 가수들이 많이 없어져서 희귀 레퍼토리가 되어버렸다. 그 때문인지 최근에 나온 일 트로바토레 음반이나 영상물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일 트로바토레 음악에 접근하려면 예전에 나온 음반이나 영상물을 접하는 것이 훨씬 이로울 것이다.위의 서술에서 바로잡을 점을 덧붙이면, 세계에서 일 트로바토레를 부를 가수가 없을 만큼 힘든 레퍼토리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희귀한 헬덴 테너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바리톤 아리아는 리사이틀의 단골 프로그램이다. 음반과 영상물 생산이 과거에 집중된 것은 인터넷 다운로드와 스트리밍의 득세, 음반 수요 하락, 메이저 음반회사들의 부실과 혼란 등등 업계 전반의 몰락에 기인한 것이지 일 트로바토레 출연진도 못 구할 정도로 성악가가 모자라서가 아니라는 것. 90년대 말, 2000년대는 유명 지휘자들부터가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메이저 레이블에서 떨려나갔고 오페라 전곡반 프로젝트들은 수직낙하했다. 새로이 녹음되는 스튜디오 음반은 씨가 마르다시피했고 음원과 공연티켓을 동시에 팔 수 있는 실황 영상물이 대세가 되었는데, 대세라지만 그 생산량은 황금기에 비할 수 없다. 이름값이라도 내세워야 팔린다는 계산인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스타 캐스팅이나 되어야만 제작되어 겨우 연명하는 상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흐보로스토프스키의 은발을 널리 알린 2002년 메트 프로덕션도, 티켓과 음반 판매에서 수지를 맞추지 못하는 오페라 업계의 부진을 개선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기획의 일부이다.
5.1. 음반
1956년에 젊은 카라얀의 지휘 아래 녹음된 음반이다. 말년의 그와는 달리 매우 열정적이고 파워풀하게 지휘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음반에서는 카라얀보다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존재가 더 눈길을 끈다. 사실 칼라스는 이 오페라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드라마틱한 표현와 벨칸토 창법이 역할에 잘 들어맞는다. 만리코 역의 명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도 훌륭한 노래를 들려준다. 파네라이의 루나 백작이나 바르비에리의 아주체나도 좋은 가창을 들려주나 여기에 소개된 다른 음반들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1976년에 리처드 보닝의 지휘 하에 조안 서덜랜드, 루치아노 파바로티, 메를린 혼, 잉그바르 빅셀이 각가 4명의 주역을 맡아 녹음한 음반이다. 유명한 베르디 바리톤인 잉그바르 빅셀을 빼고는 모두 벨칸토 오페라에서 활약을 한 가수들이라 상당히 호불호가 갈린다. 그러나 베르디의 근원이 벨칸토 오페라고, 그의 후기 오페라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오페라들이 벨칸토 창법을 요구하므로 딱히 엇나간 캐스팅은 아니다. 오히려 '히스테릭한 일 트로바토레'들에 질리고 '벨칸토 오페라로서의 일 트로바토레'를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서덜랜드는 50대에 들어 목소리에 무게가 실려 훌륭한 레오노라를 들려준다. 특히 유명한 아리아 'D'amor sull'ali rosee(사랑은 장미빛 날개를 타고)'에서는 그녀의 특기인 트릴을 마음껏 뽐낸다. 파바로티의 만리코나 메를린 혼의 아주체나, 잉그바르 빅셀의 루나 백작도 가창과 극적인 표현을 모두 적절히 갖춘 노래를 들려준다.
여담으로 이 레코딩은 '더블 데카'라는 염가 보급판으로도 재발매된 적이 있다.(현재 더블데카 시리즈는 절판) 이 시리즈의 오페라 음반들은 내지에 만듦새가 굉장히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해설이 들어 있는데 이 음반에서는 루나 백작이 무려 The evil Count di Luna로 소개되고 있다.
5.2. 영상물
1978년 빈 국립 가극장에서 열린 실황이다. 이 작품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봉을 잡고, 플라시도 도밍고가 만리코를, 라이나 카바이반스카가 레오노라, 피에로 카푸칠리가 루나 백작을, 피오렌차 코소토가 아주체나, 호세 반 담이 페란도를 맡는, 오페라 역사에 남을 초호화 캐스팅이다.[10]
플라시도 도밍고의 만리코는 이미지에서나, 연기에서나 찌질한 마마보이 주인공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그 유명한 카발레타 "저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Di quella pira)" 끝부분에서 고음처리가 갑갑한 것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훌륭하다. 특히 비극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신파조로 흐르지 않으면서 슬픔을 표현하는 도밍고의 노래는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만리코역은 플라시도 도밍고가 아닌 프랑코 보니졸리가 부르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보니졸리가 리허설 도중 카라얀과 충돌을 일으키는 바람에[11] 도밍고가 대타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대타가 오히려 비주얼과 연기에선 보니졸리보다 더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먼저 음반이 녹음된 후 공연이 이루어졌다. 음반 녹음은 1977년 9월 베를린에서 녹음되었으며, 빈 공연은 이듬해인 1978년이었다. 먼저 녹음하고 녹음 이후에 공연하는 방식은 카라얀이 즐겨 썼던 방식이다. 리허설을 겸해서 녹음을 하며 시간을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여러 성악가들의 증언에 의하면 카라얀은 악보대로만 고집하지 않고 성악가들이 자의로 고쳐서 부르는 것을 어느 정도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 생각보다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일례로 카라얀은 1974년 나비부인을 두 번 녹음했는데, 파바로티와 먼저 음반 녹음을 한 후 테너를 제외한 동일 성악진으로 영상물을 위해 재녹음을 했다. 이 두 음원에서 파바로티와 도밍고는 다르게 부른다. 1막 마지막에서 파바로티는 올려서 부르지만 도밍고는 내려 부른다. 도밍고에 따르면 이 녹음은 사전 리허설 없이 곧장 녹음 세션에 들어간 것이며 단 한번에 카라얀이 OK하고 녹음을 마쳐서 카라얀과의 첫 녹음이라 단단히 준비하고 간 도밍고가 많이 놀랐다고 한다. 애초에 리허설도 안했기에 1막 끝에 올려부를지 내려부를지 같은 것은 카라얀과의 상의도 없이 그냥 녹음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카라얀이 성악에 무심한 것은 아니다. 카라얀 만큼 성악가의 세심한 표현에 많은 주의를 기울린 지휘자도 드물다. 카라얀과 많이 작업했던 존 비커스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카라얀에게 수시로 연락해서 물어봤고 새벽에 전화했는데 카라얀이 침대에서 일어나 한참동안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피에로 카푸칠리의 루나 백작은 그를 소개하는 해당항목에서도 얘기했지만, 역대 바리톤들 중에서 가장 미성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성악적으로 가장 안정되어 있고 연기에서도 확실한 발군으로 꼽히고 있다.[12] 절제해야할 부분은 확실하게 절제하고, 감정을 표현해야할 부분을 제대로 처리해주니 과연 성악도들의 모범이 될 만한 노래를 들려준다. 루나 백작의 카바티나 "그녀의 빛나는 미소(Il balen del suo sorriso)"를 들어보면 카푸칠리의 진가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데다, 간지와 스토킹의 제왕 포스가 절절히 솟아오를 정도로 소름이 쫘악 돋는다.[13]
[1] 그나마, 루나 백작의 경우 한양대 성악과 교수 고성현이 자주 맡는 편이다.[2] 바리톤 배역의 루나 백작과 메조 소프라노 배역의 아주체나는 일 트로바토레 최고의 인기 캐릭터로 꼽힌다. 그에 비해 만리코와 레오노라는 인기가 앞의 둘에 비해 확실히 떨어지고, 특히 만리코는 "전혀 주인공 답지 않은 주인공"이라는 평가까지 있다.[3] 옛날 바리톤들이 맡은 루나 백작은 비주얼이 너무 아저씨같아 보였다고 한다. 그나마 에토레 바스티아니니가 외적으로 루나 백작의 매력을 살렸다는 평가가 많은 편. 때문에 루나 백작이 단순한 악역이나 개그 캐릭터(...)로 본 관객들도 많았다고 한다.[4] 이 시기엔 마침 인터넷의 엄청난 발달로 전세계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스티아니니가 아무리 멋졌다 해도 당시의 기술환경에서는 이만한 센세이션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5] 이 장면에 해당하는 1막의 3중창은 연출 정말 잘 하지 않으면 비주얼 개그가 될 위험이 몹시 큰 대목. 배나온 중년 아저씨들이 칼 쥐고 어정거리며 서로 장판교 장비마냥 소리만 지르는(...) 무대가 실제로 많다. 음악이 속도감 있고 불꽃튀는 명장면인만큼 그 모습은 더욱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6] 캐스팅도 초호화 성악진으로 구성했었다. 자세한 설명은 명반과 영상물 참조.[7] 2011년 9월 5일 근처에 일이 생겨 스쿠터 타고 나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8] 2000년대 모 제약회사의 약 광고에도 이 합창곡이 쓰였다.[9] 여기서 루나(Luna)라는 뜻은 이탈리아어로 달을 의미한다. 한글해석대로 부르게되면 달빛의 백작님이 된다.[10] 이러한 캐스팅이 가능했던 이유는 60년대부터 70년대 후반까지 성악가 선택에 있어 반칙왕이라 불렸던 카라얀의 위세라는 추측이 대세. 참고로 이 프로덕션은 카라얀이 77년 빈에 귀환하면서 올렸던 프로덕션인데 그 때는 테너가 파바로티였다.[11] 원인은 만리코의 "Di quella pira". 만리코역 베테랑이었던 보니졸리는 이 카발레타의 맨끝에 나오는 하이C음(높은 '도'음)을 길게 끌고 싶어했고[14], 카라얀은 성악가가 카덴짜를 남발하며 고음을 과시하는 것이 싫었다. 이것 때문에 싸우다 빡친 보니졸리는 리허설 도중에 하이C를 내는 대신 칼을 던지고 하차했고, 대역으로 도밍고가 불려온것. 공연은 본래 라이브로 방송 예정이었는데 하루 미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EMI에서 일 트로바토레 전곡반을 녹음하려고 했을때는 보니졸리를 다시 기용했다. 보니졸리만큼 만리코를 잘 부르는 사람이 없다는 주변의 의견에서 그리 되었다고.[12] 물론, 너무 미성이라서 "레오노라를 전혀 스토킹하지 않을 거 같다."라는 감상까지 있다. 이는 미국과 일본쪽 얘기.[13] 루나 백작이 카발레타 부르기 전에 "레오노라, 그대는 나만의 것! 오로지 내 것이 되어야만 해!(Ah no, non fia D'altri Leonora!...Leonora e mia!)"라고 외치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서 카푸칠리의 노래와 연기는 편집증적인 성향까지 느껴진다고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