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17 19:14:36

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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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팀을 상징하는 대사. 그리고 그 주역들.
1. 설명
1.1. 연재 당시 라인업

1. 설명

만화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가상의 고등학교. 오사카 소재. 재단 이사장이 운영하는 걸로 봐선 사립 고등학교인듯하다. 작중 시점의 농구부 감독은 김영중, 33세. 풍전고교라고 로컬라이즈 됐지만 일본 원판의 한자로는 '풍옥고교(豊玉高校)'이다. 원문대로 하면 토요타마고교. 원판에서도 豊玉이라고 수십번도 넘게 언급되는데다 작중 스크린보드에 큼지막하게 豊玉이라고 쓴 장면이 수두룩하게 나와서 번역가가 잘못봤을리는 없고, 어감상 바꾼듯 하다.

전국대회 편에서 상북의 첫 상대로 등장한 전 대회 8강팀. 작중 회상에 따르면 전 대회 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전국대회 16강 정도는 항상 올라오던 단골손님인 듯 하니 상당한 전국구급 강호라 할 수 있다. 대회 시작 전 농구 잡지에서도 전력이 A링크로 분류되었을 정도.

런 앤 건(Run and gun)을 주무기로 하는 극단적 공격성향의 팀이다. 전 감독인 노선생님의 철학에 따라 공격 8 : 수비 2의 농구를 지향해 왔고, 지구 결승전에서 털린 대영고교와의 경기를 제외하면 항상 빠른 템포의 경기로 이끌고 가서 다득점으로 승리하곤 했다. 상양도 풍옥에게 졌었다는 언급으로 그 강함을 어필.[1]

또한 지역예선의 개인득점 1 ,2, 3위를, 그것도 평균 25점 이상으로 모두 풍옥의 선수들이 차지했다는 점에서 팀원들의 개인 능력, 특히 득점력이 일품인 듯 하다.

작중 묘사되기로는 학생들의 분위기가 살벌하다. 응원단이 대부분 남자인 걸로 봐서 남학교인듯한데, 하나같이 살벌한 인상들인데다 응원 구호도 "죽여버려!"라는 고함이 아무렇지 않게 나올 정도. 상북에서는 나름 불량학생이라는 영걸도 응원석을 잘못 잡았다가 쫄아서 도망칠 정도였다. 아무리 감독이 맘에 안 든다고 해도 그렇지, 선수들이 감독을 왕따시키고 심지어 목울대를 움켜잡는 등 선수들 역시 응원단 못지 않게 막 나가는 편. 그래도 전국 8강의 농구부를 가진 학교답게 관중 숫자나 응원열기는 대단한 수준이다. 다만 이에 비해 후임 지도자인 김영중 감독의 지도력이 전임 노선생님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팀의 가장 큰 문제.[2]

작중 대진 상으로는 상북은 2라운드에 산왕공고, 3라운드에서 지학을 만나는 극악의 대진에 놓였다. 인터하이는 시드배정 기준이 다른건지 상당한 죽음의 조 편성. 2회전에서 (지학을 꺾은) 시드교 명정공업을 만난 전년도 8강의 상성고의 경우를 볼때는 그냥 전년도 8강은 시드가 랜덤인 것을 알 수 있다.물론 풍옥은 지역 1위도 아니기 때문에 전년도 8강에게 시드가 주어진다 해도 못받았겠지만.

그러나 본편 시점에서는 감독이었던 노선생님이 8강 이상은 못 올라간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경질이 되었고[3], 그 뒤에 온 후임 감독 김영중은 당연히 노선생님을 존경하던 학생들이 싫어했기에 그냥 대놓고 씹는 수준이었다. 선수들은 런앤건을 버려야 한다는 김 감독의 말을 무시하고 런앤건으로 전국을 제패해 노선생님이 옳았다는걸 증명할 생각뿐이었다.

상북과의 경기에서는 초반 1분에 9점을 앞서다가 이달재의 투입으로 페이스를 뺏겨 쫓기게 된다. 그러나 남훈의 팔꿈치 공격으로 서태웅을 보내고 경기를 리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후반전에 돌아온 서태웅의 활약, 그와 동시에 멘붕해 버린 남훈의 무득점 행진으로 후반 5분 남기고 81:81 동점을 허용한다. 이후 남훈이 부상으로 물러난 사이 10점차까지 뒤졌으나, 흑화가 풀린 남훈이 돌아온 뒤 3점슛 2개를 성공시키며 87:91까지 추격한다. 그러나 시간은 채 1분도 남지 않았고, 채치수가 백호에게 사랑의 매를 시전하면서 수비강화 버프를 건 결과, 4점차 패배를 감수해야만 했다.

전임 감독인 노선생님과 3학년 선수들의 슬픈 인연 때문에 상양 못지않게 아쉬움이 남는 팀이다. 노선생님이 계속 학교에 남았다면 자동문 수비는 어쩔수 없었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선수들이 따로국밥으로 플레이하지 않았을 것이고, 상대팀의 흐름에 말려서 자기들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멸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니 잘만 하면 4강을 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작중에서는 어째 쉽게 막힌 모양새가 됐지만, 사실 멤버 전원이 우사인 볼트급 스피드와 득점력을 지닌 이런 공격적인 런 앤 건 팀은 상대하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예전의 한국 농구대표팀이 상대적으로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2인자를 고수했던 것처럼.

단순 점수차이로 보면 상북이 상당히 고전한 것 같지만, 내용을 보면 상북에게 있어서 그다지 어려운 상대라고 보기 힘든 부분이 있다. 풍옥이 노선생님의 부재와 후반부 남훈의 부진으로 핸디캡을 안은 부분이 있지만, 상북의 핸디캡 역시 만만치 않은게, 우선 상북은 풍옥의 더티플레이에 제대로 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다. 채치수는 평정심을 잃어서 자신보다 명백히 아래인 한성호를 상대로 고전했고, 서태웅은 아예 남훈의 파울 때문에 부상까지 당해 전반을 절반 이상 공쳤다. 당시 상북은 풍옥을 무섭게 몰아붙이고 있었는데, 이 파울 때문에 경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면 풍옥은 진작에 무너질 판이었다. 후반에 남훈이 이걸로 흔들린 걸 생각하더라도 풍옥에게는 이익이 더 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가령 노선생님이 있었다면 당연히 이러한 플레이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풍옥은 풀컨디션의 채치수, 송태섭, 서태웅을 상대해야 되는데다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정대만까지 의식해야 했다. 또한 상북은 이 경기 후반부를 방심한 상태에서 상당히 가벼운 기분으로 뛰었는 데도 외곽 공격으로는 세계관 최강인 팀이 1분 동안 한 점도 못 넣고 졌다. 똑같이 4점차로 패배한 능남은 에이스 윤대협이 방심할 틈도 주지 않고 무섭게 추격전을 벌여서 역전당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준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 끝으로 이번 경기는 강백호가 상당히 활약하지 못한 경기이기도 하다. 참고로 강백호는 수비가 좋은 능남을 상대로 9점을 따냈고, 레이업과 덩크 외에는 할 줄 몰랐던 해남전에서도 6점을 따냈다. 그런데 골밑슛, 중거리슛을 차례로 마스터한 강백호가 해남보다 한 수 아래인 풍옥을 상대로는 겨우 6점밖에 따내지 못했다. 덤으로 상북의 다른 한 중요한 승부처인 정대만은 도내 강팀들을 상대할 때처럼 과부하가 걸려서 탈진하지도 않았으니 상당히 가볍게 뛰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상북이 주인공 보정 없이도 이겼다는 얘기.설령 양측의 핸디캡을 정확하게 비교할 수 없더라도 양측 각 포지션을 보면 명백한데, 센터의 위치에서 채치수는 한성호보다 명백한 우위에 있고, 스몰포워드인 서태웅과 남훈의 득점능력은 동급이지만 수비력은 서태웅이 좀 더 좋으며 포인트가드인 나대룡과 송태섭은 동급이지만[4] 슈팅가드인 김평일은 아예 돋보이는 점도 없는 엑스트라 그 자체. 그나마 강동준이 초보자인 강백호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겠지만 인사이드에서만큼은 강백호에게 밀리는지라[5] 도무지 다른 셋의 열세를 혼자서 커버할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풍옥은 해남보다는 못하다고 평가되는 팀이며 지난해에 상양을 상대로도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파울까지 써서 겨우 이겼는데, 상북은 기량이 완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해남을 2점차로 몰아붙였고 상양을 이겼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상북에 비해 밀리는것은 아니다. 강동준 역시 득점력은 황태산급의 제2의 에이스이며 나대룡과 송태섭의 미스매치를 철저히 이용하면 충분히 비벼볼만하다. 실제로 남훈이 사실상 없느니만 못한 수준으로 전락할때도 정황상 강동준과 나대룡의 득점력으로 80점대까지는 그럭저럭 상북과의 점수쟁탈전에서 밀리진 않았다. 이 경우 맨투맨 수비하는 상북의 컬러상 나대룡을 정대만이 막으면 되긴하나 김평일이 묘사되는 부분이 없다보니 송태섭과의 매치업에서 어떨지는 불명

나이 많은 선생님, 그리고 지역예선 득점 1,2,3위를 앞세운 팀 컬러로 볼 때, 이 팀의 롤모델은 90년대 초반 팀 하더웨이, 미치 리치먼드, 크리스 멀린 - 일명 RUN TMC[6]를 앞세워 초 막강한 업템포 농구로 약팀에서 플레이오프 진출팀으로 떠오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라는 설이 있다. 이런 이유로, 노선생님의 모티브는 당시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감독이자 넬리볼로 대표되는 자율농구, 공격농구의 신봉자였던 돈 넬슨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풍옥팀의 모티브는 NBA가 아니라, 과거 허재강동희가 있었던 시절의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라고 작가가 나중에 밝혔다는 이야기가 있다.[7]
"풍옥고교는 허재강동희가 활약하던 대한민국 대표팀이 영감을 주었고, 한국의 빠른 농구를 어느 정도 참고하였다. 상북풍옥의 시합은 상북의 등장을 알리는 성격이 강하다. 상북이 주목을 받게 되는 계기가 필요했고... 그것에 걸맞는 강호팀과의 경기가 토너먼트 초반에 필요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

당시 아시아에서는 가장 빠른 속공 농구인 런앤건을 구사했던 것이 대한민국 팀이며, 또한 전통적으로 외곽슛이 좋은 스타일도 상당히 비슷하다. 게다가, 유니폼이 파란색이라는 것도 같다. 일본 농덕인 이노우에의 눈에는 터프한 스타일에 공격적이고 슛이 좋은 한국 대표팀의 이미지가 이랬던 모양. 경기 응원 분위기도 풍옥고교전과 한일전, 둘 다 시합이 거칠다는 점을 모티브로 한 듯하다. 그러나 빠르고 파울 호각 내에서 거친 플레이를 한다는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것이지 팀이 콩가루라는 점, 선수들/관중들 매너가 안 좋은 점은 순전히 작중 설정이다. 허재와 강동희를 모델로 했다는 것도 빠르고 공격적이며 모션이 빠른 장거리 슛을 터뜨리는 플레이 스타일적인 면이지 기량 적인 면은 아닐 것이다. [8]

1회전 패배도 서러운데, 이노우에의 후일담에서 네임드 농구부 중 유일하게 생략을 당하는 굴욕(?)을 당했다.[9] 위에서 언급하듯 실제로 이노우에에게는 상북을 위해 깨알같이 집어넣은 전투력 측정기였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풍옥고와의 경기 끝도 좀 허무하다. 채치수와 강백호는 시합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같은 편에게조차 리바운드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투다 시간이 종료, 그대로 상북의 승리로 끝이 난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공을 다투던 자세 그대로 멍한 표정을 짓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압권이다.

여담으로 이 풍옥전은 91:87이라는 스코어에 걸맞지 않게 작중에서 슛 묘사가 거의 되지 않은 경기이다. 그리고 지역예선 상양전부터 계속되었던 강백호의 덩크슛이 없었던 유일한 경기였다.[10] 특히 서태웅은 중간에 한 번씩 분위기를 전환시키던 3점슛도 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덩크슛만 놓고 보면 상양전부터 산왕전까지 한 명씩 덩크를 넣는 선수가 최소 한 명 이상은 있었는데 풍옥은 그런 선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매우 안습이라 할 수 있다.[11] 거기다가 정대만을 능가하는 3점 슈터로 설정된 남훈은 서태웅이 코트에 복귀한 뒤 멘붕, 9연속 야투에 실패하고 온갖 추한 모습만 보이다가 경기 막판에 회광반조의 3점 슛을 성공시킨 것을 끝으로 리타이어.

1.1. 연재 당시 라인업

번호성명학년포지션(키)
4.남훈3학년(주장)SF(184cm)
5.강동준3학년PF(188cm)
6.나대룡2학년PG(183cm)
7.김평일3학년SG(180cm)
8.한성호3학년C(190cm)
12.???
15.천귀남1학년?(181cm)
12번은 대영고와의 경기에서 실점하는 순간 딱 한컷 등장하는데 추가바람.


[1] 다만 이건 김수겸이 경기 중에 남훈에게 팔꿈치로 얻어맞고 부상 아웃된 것이 컸다. 당시는 성현준을 비롯한 지금 시점의 3학년 멤버들조차 스타팅 멤버가 아니어서 벤치나 관중석에서 경기를 응원하는 처지였지만 김수겸만은 2학년이면서도 팀의 독보적인 에이스였으므로. 참고로 김수겸이 부상 아웃되기 전 스코어가 39:36이었는데 김수겸이 2점을 추가로 넣으면서 20점째를 넣었다는 묘사가 있다. 여담으로 저 39:36이란 스코어는 전반전을 9분 11초 남긴 상황의 스코어이다. 그러니까 40분경기에서 경기 시작후 10분여 동안 저렇게 넣어댔다는 소리. 여담이지만 김수겸은 작중에 다른 빅맨들을 살리는 게임리딩력이 주로 강조되는데, 전국에서도 돋보일만한 공격력의 팀을 상대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고득점을 하며 오히려 리드하고 있단 걸 생각하면 그 역시 전국구 득점원임을 알 수 있다. 전반 10분에 저 정도 득점이면 풀 경기 기준으로 4~50점을 넣어도 이상하지 않다.[2] 풍옥을 발라버린 대영의 경우, 에이스인 이현수는 4번 등번호의 3학년생으로 보이므로 올해에 갑툭튀해서 풍옥을 발라버린 게 아니다. 따라서 풍옥이 내부 불화로 약해져서 대영에 의해 공략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풍옥 득점왕 3인방에서 대영전에 출전한 건 강동준 한사람이었다. 남훈과 나대룡은 어쩌면 감독과의 불화로 출장 금지 중이었을지도 모른다.[3] 학교 재단에서 농구부에 상당한 투자를 했는데도 전국 8강 이상을 못 올라가자, 노선생의 지도력을 문제삼아 경질시킨 것. 그것도 남훈, 강동준이 입학한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4] 평정심을 찾든 말든 송태섭은 나대룡을 막지 못했다. 포스트 업이나 골밑 돌파 3점 슛 등 다채로운 플레이를 구사하는데다 피지컬도 신장도 압도적인 나대룡은 송태섭 입장에선 이명헌 못지않게 힘들다. 나대룡 역시 송태섭을 못 막는건 똑같지만..[5] 정확히는 리바운드 한정[6] 유명한 힙합그룹 Run DMC패러디. TMC는 각 선수들의 이니셜을 따왔다.[7] 실제로 당시 워리어즈를 모티브로 추정하는 것도, 골든스테이트가 당시 NBA에서 가장 극단적인 공격위주 팀이었기에 굳이 NBA에서 모티브를 찾다가 골든스테이트를 언급하는 것 뿐이지, 공격력이 강하다는 것만 빼면 공통점이 많지 않다. 넬슨은 인격자인 노선생님과 백만광년쯤 떨어져있는, 칼 말론에게 배를 들이밀며 시비를 걸었던 유명한 다혈질이며, 당시 골스에도 거칠고 터프한 스타일의 선수들은 없었다. (물론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 또한 파워포워드 강동준이란 실력있는 빅맨이 있는 풍옥과 달리, 당시 골든스테이트는 1-2-3번 외곽 트리오였으며 실력있는 빅맨은 없었다. 반면 한국에는 강동희-허재와 더불어 김유택이란 훌륭한 빅맨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워리어즈의 Run TMC 트리오는 슬램덩크가 반의 반도 연재되지 않았던 91년, 즉, 아직 도대회 결승 토너먼트도 시작하기 전에 미치 리치몬드가 새크라멘토로 이적하면서 벌써 해체되었었다.[8] 사실 슬램덩크 연재 당시 한국 농구는 세계 농구를 기준으로 할 때 매우 얌전한(?) 축에 속하는 편 이였다. KBL 출범 이후 외국 선수들이 한국 농구의 파올 호각 범위에 적응 못해 애먹었던 기간이 꽤나 길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아직 아마 농구였던 일본이 너무 얌전한 플레이를 했던 것 뿐.[9] 그런데 있었어도 김영중의 경질이나 강동준 등의 징계같은 암울한 얘기밖에 안나왔을 것이다.[10] 물론 강백호가 넣었던 상양전의 덩크슛은 오펜스 파울이었지만 경기장내의 분위기를 반전시켰을 만큼 매우 임팩트가 있었다.[11] 상양은 성현준, 해남은 전호장, 고민구, 김동식[12], 능남은 윤대협, 변덕규, 황태산, 산왕은 신현철, 정우성이 덩크슛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