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7:18:35

한용덕/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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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 시절2. 한화 이글스 감독대행 시절3. 감독대행직 이후4. 두산 베어스 시절5. 한화 이글스 감독 시절

1.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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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그 후 투수코치로 변신했는데, 자신의 불우했던 시절 경험에 바탕한 투수 조련에 일가견이 있어 이상군 투수코치의 별명인 '상군매직'(또는 SG매직)과는 반대의 의미로 용덕매직이라고도 불린다. 무능력자들이 넘쳐나는 한화의 코치진 중 제구실을 하는 몇 안되는 코치라는 평. 2009년에는 19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못미더운 공만 던지던 양훈을 준수한 불펜으로 개조하는 데 성공했다.[1] 재미있는 것은, 한용덕 코치는 투수 조련에 있어서 제구보다는 구위를 상대적으로 더 강조하는 타입이다. 과거 유원상김혁민에게도 구위 강화를 위해 팔 각도를 더 올릴 것을 주문한 바 있으며, 양훈의 경우에도 제구보다는 구속과 구위 위주로 개조했다.

한화 팬들이 원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상군 코치의 퇴출과 한용덕 코치의 1군 투수코치 복귀[2]였는데 2009년 6월 22일 1,2군 코치의 이동으로 이상군 코치와 자리를 맞바꿔 1군 투수코치로 승격되었다. 다만 자신에게 찍힌 사람은 잘 안쓰는 김인식 감독의 특성상[3] 프런트의 개입이라든가 차기 감독감으로 꼽히는 이상군의 화살 막아주기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다행히 이상군은 2010년에 스카우트로 자리를 옮겼다가 거기서도 삽을 펐다.[4]

2010년에는 이상군 코치가 짤렸고, 다른 투수코치도 정민철 코치여서 1군 코치로 자리잡을 거 같…았는데, 성준[5]이 영입되면서 2군 투수코치로 밀려났다. 2010 시즌까지, 1군에서 망가져 내려오는 한화 투수들 응급수리해서 올려 보내고, 또 다른 망가진 투수들 내려받아 고치는 '응급실 전문의' 신세였다.

결국 성준이 삼성으로 떠난 2011 시즌에서야 다시 한화의 1군 투수코치가 되었다. 초반에 류현진이 부실한 모습을 보여 불안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한화 투수진의 방어율은 정말 마법을 부린것 마냥 쭉 내려갔다.

그런데 중반 시점에 어째서인지 2군 투수코치로 내려가고, 정민철 투수코치 혼자서 투코를 보고 있는 상황. 아무래도 현재 1군에 있는 불펜들의 불질(유전어라든가, 윤불진이라든가...)때문인지 새로운 불펜진 수혈을 위한 보직이동이라는 카더라도 있는듯.

근데 아닌게 아니라 불펜진을 보면 정민혁, 신주영과 같은 필승 계투들이 하나둘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보직 이동이 단순히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얼마 못 가서 (타자들의 득점지원 기복도 요인이지만) 1군 투수들이 대거 몰락했다. 류현진은 어깨 부상이 우려되어 전력 이탈[6]했고, 이어서 양훈도 허리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김혁민, 장민재 등도 이전만 못한 부진을 보이고 있고, 그나마 안정적인 안승민도 역시 조금은 버거워하는 모습이다. 불펜이야 뭐어... 노장인 박정진이 2이닝이나 그 이상을 소화해야 하는 판국이고, 나머지는 이른바 '필승조'가 사실상 없다.

어쨌거나, 그가 살려내거나 키운 투수들의 면면을 보면 한화의 암흑기 마운드를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양훈의 성장이 대표적이지만, 이후 망가진 양훈다시 부활시켰고[7],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던 안승민은 2010년 8월에 1군 선발로 등판해 환골탈태에 가까운 변화를 보여주며 한화 마운드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송창식장민재 역시 한용덕 코치의 작품이다. 완전히 무너졌던 김혁민까지도 부활시켰다. 정말이지 경탄이 절로 나온다. 흘러흘러 NC 다이노스로 이적한 유원상의 슬라이더의 경우에도 한용덕 코치가 전수해준 슬라이더이다. 송창식이 2012년 이후에 한화 투수진에서 자리하는 위치와 장민재가 2016년에 스윙맨으로써 보여준 모습을 보면 한용덕이 없었다면 한화 투수진은 없었을 거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 7월 20일, 잠실 야구장에서 개최된 한-일 레전드 매치에서 중간계투로 나와 2이닝을 먹으면서 탈삼진도 빼앗아내는, 여전히 현역과도 같은 폼을 보였다.

인터뷰에 따르면, 은퇴 후 팔꿈치 수술을 받고 나서는 팔이 잘 안 올라가 예전처럼 던지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저 정도이니... 오죽하면 경기중 실시간 댓글에 (지금 계투 내리고) 용덕이 형 투입시키라는 말까지...

2012년 다시 1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고, 5월 12일 코칭스태프 개편 때 수석코치로 승격되어[8] 임무를 수행하였다. 8월 10일 부친상을 당했다.

2. 한화 이글스 감독대행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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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8월 27일, 한대화 감독이 전격 경질되면서 남은 2012 시즌 감독의 빈 자리를 대신하는 감독 대행을 맡았다. 8월 29일 넥센전에서 6:7로 감독 대행으로서의 첫 승리를 거두었으며, 9월 1일에는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 3:2로 승리를 하여 감독대행 이후 3연승을 거두었다. 한용덕이 감독대행을 맡은 이후 팀은 9월 21일까지 12승 6패를 거두며 이전에 비하면 엄청난 선전. 그리고 지난 9월 2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LG를 잡아 탈꼴지 욕심도 드러냈다.관련 기사 9월 21일까지 7위 LG와의 승차가 2.5게임차였으니 불가능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선수층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꼴찌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한용덕을 욕하는 사람들은 전혀 없었다.

꼴찌로 떨어진 팀을 묵묵히 수습하면서 이전같이 허무하게 지는 경기를 줄여나가는 모습으로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는 "용왕"[9]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시즌 막판 활약으로 감독 후보로 고려되기도 했으나, 결국 김응용 감독이 부임했고 2012년 10월 14일 사의 의사 표명을 했다. 관련기사 후임으로는 김성한이 수석코치로 임명.

참고로 2012년 한화 이글스의 승률은 53승 3무 77패, 승률 0.408였는데 이중 한용덕 감독대행 시절 성적은 14승 1무 13패, 승률 5할 1푼 9리로 상당히 선방한 편이다. 최근 5년간 한화 이글스 감독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감독인 셈.

3. 감독대행직 이후

시즌 후 거취를 바로 정하지 않아 몇몇 팀에서 러브콜이 들어와 많은 팬들이 불안해했다. 한편 구단에서는 해외 연수를 권유하였다.[10] 한화 마운드를 채울 용병 투수를 고르는 작업에 들어갔다. #

그러던 와중,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앞두고 류중일 감독에 의해 투수 파트를 전담하는 코치진으로 내정되었다. 타이중 참사 이후, 당시 불을 질러댔던 차우찬을 추천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나 야구팬들 대부분이 류중일 감독이나 양상문 코치에게 책임을 물어서 크게 추궁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WBC가 끝난 후 2013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마침 LA에 입단한 류현진에게도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

마이너리그 시절 손수 캐치볼을 던졌는데, 하루에 200개를 던져도 멀쩡했다고...

2013년 6월 12일 모친상으로 잠시 귀국했으며 9월 14일 코치 연수를 마치고 귀국, 이후 은퇴한 신경현과 함께 공익근무 복무 중인 선수들의 훈련을 돌보고 있다.

2014년 1월 시점에서도 한화 이글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아직 코치진에 그의 이름이 올라와 있지 않다. 결국 프런트로 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확하게는 노재덕 단장의 요청으로 단장 특별보좌역이 되어 현장과 프런트의 가교 역할을 할 예정.

단장 보좌역으로 간 뒤에도 신설된 2군 구장인 서산 야구장메이저리그식 카메라 장비 도입을 건의하여 실행시키거나 '다른 팀에서 제의가 와도 절대 이글스를 떠나지 않겠다' 라고 인터뷰에서 언급하는 등[11] 한화 팬덤 사이에서 한용덕의 지지도는 점점 치솟으며 갓용덕이 되고 있다.

2014 시즌 5월 15일, 갑작스럽게 김성한 수석코치가 사임했다. 김응용 감독은 수석코치 없이 시즌을 마무리한다고 언급했지만 낮을 많이 가리는 노감독의 성격상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의 가교를 맡아줄 수석코치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그 때문에 후임 수석코치로 기용설이 있다. 그러나 김종모 타격코치가 수석코치로 선임됐다.

베이스볼긱과의 인터뷰 #1, #2, #3, #4, #5, #6, #7, #8, #9, #10, #11

2014년 시즌 후에는 한화 팬들 사이에서 차기 감독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다. 구단 프런트 쪽에서 이상학 기자를 내세워 내부 승격설을 언론에 퍼뜨렸는데 이 내부승격의 유력한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이후 한화 팬덤은 김성근 데려오고 칰무원 싸그리 방출vs한용덕 승격vs이정훈 승격의 세갈래로 나뉘어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감독대행 시절 성적만 놓고 봐도 무난하지만 썩 뛰어난 정도는 아니었으며 또한 검증이 가능할 정도로 장기 시즌을 뛰어본 게 아니기 때문에 미지수라는 것이 내부 승진을 비판하는 측의 의견. 그리고 25일 저녁에 김성근 감독의 영입이 공식화되면서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신동아 12월호에 실린 박동희의 기사에 따르면 한화 구단에서는 내부승진으로 한용덕을 밀었는데 그룹에서 김성근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이 시기를 즈음에 브룩스 레일리를 영입하려 했으나 한화 현장의 선택은 KBO 리그 경력이 있는 쉐인 유먼이었고 결국...

그런데 투수코치 자리에 '김성근 사단' 출신인 박상열, 계형철 코치가 영입된 데다가 정민태 전 롯데 투수코치마저 한화 이글스와 계약하게 되어 입지가 더 좁아졌다. 게다가 김성근 사단의 핵심인 계형철 코치와 선수 시절 견원지간이었다는 소문이 도는 데다가#1#2, 김승연 구단주가 그의 선수 보는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프런트에서 남은 생을 보낼 듯 싶다.

4. 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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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포츠조선)

그런데... 놀랍게도 두산 베어스로 옮긴다고 한다.[12] 보직은 2군 총괄 코치. 강석천, 조경택도 같이 두산 베어스로 갔다고 한다. # 팬들은 뒤의 둘은 제껴 놓고 후에라도 돌아오길 바라며 크게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후속 기사에 따르면, 이미 시즌 후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직후 사표를 제출했으나, 노 전 단장이 만류하는 바람에 수리가 늦어진 것으로, 특보라는 어정쩡한 자리[13]에 오래 앉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특히 현장에서 더 일하고 싶은 생각에 결국 사표를 제출했고, 사표가 수리된 직후 두산 김태형 감독이 투수력 보강을 목적으로 직접 제의했다고 한다. 한용덕은 두산에서 '화수분 야구'가 어떤 건지를 배우고 싶다는 취지를 밝혔다.

2015년 6월 권명철봉와직염으로 말소되자 1군 투수코치로 콜업되었다. 6월 11일 권명철이 1군에 복귀했지만 권명철은 불펜코치로 갔으며[14] 한용덕은 계속 메인 투수코치를 역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포스트시즌에서 두산의 부실한 투수진들을 가지고 능수능란한 투수교체 타이밍을 보여주며 두산을 캐리하며 한국시리즈에서 팀을 우승시키는 데 성공했다. 개인 통산 2번째 우승반지 획득한 때는 1999년 한화 선수 현역 시절 우승 이후 16년만에 코치로서 첫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한용덕을 내친 한화 이글스 프런트김성근 감독은 또 1패를 추가했다.

2016년부터는 수석코치와 투수코치를 병행한다. # 시즌 시작부터 두산의 투수진이 과거에 비해 대단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벌써 팬들 사이에서는 좋은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15]

한편 같은 시기 김성근 감독에 크게 실망한 한화팬들이 차기 감독으로 잊을만 하면 한용덕을 거론하고 있는데, 두산 팬들 역시 한용덕이 없으면 지금의 투수진을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절대로 내줄 수 없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언젠가는 돌아가야겠지만, 적어도 1~2년이라도 더 남아서 두산의 투수진 및 투수 코칭이 자리를 잡도록 해 줬으면 하고 바라는 팬들이 많다.

11월이 될 때까지 김성근 감독의 유임 여부가 밝혀지지 않자 2016 한국시리즈가 끝난 이후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고 한용덕 코치를 차기 한화 감독으로 모셔올 예정이기 때문에 한국시리즈가 끝나기 전까진 발표하지 않는다는 썰이 있었다. 그러나 한용덕 때문이 아니라 NC에서 단장을 맡던 박종훈 때문이었고 김성근 감독은 유임 확정이라는 게 밝혀지자 한화팬들은 단체로 실망하고 있다.

2016 시즌 후 두산의 투수 파트 코칭스태프로 이강철, 조웅천, 이용호가 추가로 영입되어 수석코치와 투수코치를 병행하던 한용덕이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수석코치로 계속 갈 듯.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수석코치임에도 투수코치를 같이 하는지라 야수 쪽에서 불만이 많았다고 했었는데 # 이젠 안 그래도 된다.

하지만 2017년 4월 18일 코칭스태프 개편으로 다시 투수코치 직을 겸하게 됐다. 권명철 코치는 잔류군으로 사실상 강등.

2017년 8월 20일 김태형 감독이 게실염으로 입원함에 따라 20일 수원kt전부터 23일 인천 SK전까지 감독대행을 맡게 되었다.

20일, 두산 1 : 2 kt
22일, 두산 10 : 6 SK
23일, 두산 4 : 1 SK

대행 성적은 3전 2승 1패.

특히 22일 문학 SK전에선 1번 타자 자리만 7번을 바꾸다가 야수가 모두 소진되어 지명타자인 에반스가 3루수로 가고 투수인 김강률이 1번 타자로 가게되는 촌극이 벌어졌는데 그 김강률이 적시타를 때려냈다. 내일이 없는 야구가 아니라 다음 이닝이 없는 야구를 경험한 두산 팬들은 신기해 하면서도 새삼 튼동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나 뭐라나.....

2017년 한국시리즈 전부터 한화 이글스의 감독 오퍼를 받았으나, 팀이 흔들리는 와중에 기름을 부을까봐 한국시리즈가 끝나기 전까지 이적에 대한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17시즌 모든 일정이 끝나고 팀을 떠날 때에도 좋게 떠난 듯.

5. 한화 이글스 감독 시절

파일:야왕을 이은 용왕.jpg
파일:한용덕 미디어데이.jpg
18시즌 한화 감독 하마평에 강인권 두산 베어스 1군 배터리 코치, 이상군 현 한화 이글스 감독 대행, 정민철 MBC SPORTS+ 해설위원 등과 함께 올라와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 중 이상군 대행은 구단이 해외 연수와 육성군 총괄 보직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는 소식이 들려 빠졌고, 한화의 포수 또는 투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하는 것을 보아 매우 유력하나 두산의 포스트시즌이 끝나지 않아 발표를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정민철을 감독으로 내정했다면 굳이 발표를 미룰 이유가 없기 때문.

10월 30일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2018년부터 시즌을 이끌어갈 수장으로 결정되었다. 감독 대행직 이후 한화 1군 스태프로는 5년만에 복귀한다. 한화 새 사령탑, 한용덕 감독 선임 완료

10월 31일 총 3년 계약금 3억원 연봉 3억원 총 12억에 사인했으며 11월 3일에 취임식을 한다는 소식을 한화 구단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감독 선임 공식 발표 이후 한 인터뷰에서 박종훈 단장에게 먼저 구단의 방향성에 대해 물어봤고 '육성'을 강조하였지만 육성만 내세우면 팬에게 대하는 예의가 아니며 자신이 추구하는 바와 조금 다르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구단 프런트에게 한용덕 코치가 롯데의 장종훈 코치, 해설가 송진우를 요구하여서 곧바로 장종훈 코치를 수석코치, 송진우 코치를 투수코치로 데려왔다. 그 외에도 두산에서 한솥밥 먹던 사이이자 이글스 출신인 배터리 코치 강인권, 3루 코치 전형도도 함께 왔다. 17시즌이 끝나고 11명 코치진을 무더기로 해임한 한화이기 때문에 더 많은 코치진들이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16]

감독 선임후 인터뷰에서 한용덕 감독은 "구단이 내부육성이라는 장기적 비전으로 갈 길을 정해둔 상태이니 외부FA는 현재로선 어려울 것이 맞는 말이다" 라고 말하며 박종훈 단장과 함께 올 스토브리그에서 큰손 노릇을 하지 않겠다며 공개천명하였고 구단이 3년이라는 시기를 줬다는 것은 장기적인 비전을 가져다 달라는 의미이며 리빌딩에 집중 내부 육성을 통해 정상을 노릴 것이라며 말했다.#

오자마자 칸동님[17], 용왕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웨이트를 통한 장타력 향상에 신경을 쓰겠다고 언급하면서 훈련 시 적당한 영양 공급과 휴식도 보장하고 있는데, 전임자의 스몰볼, 오버트레이닝에 부정적이었던 한화 팬들은 대체로 공감하는 편.

시즌 시작도 전부터 인스타로 사고치는 외야수 덕에 밤잠도 몇날을 못자고 고생했다고 한다. 자식 키우는 아버지인 입장에선 안타깝지만 냉정하게 판단해 구단과의 협의하에 방출을 결정했다고. 이어 구단 내 내야수를 둘러싼 성 의혹까지 터져 타 구단 팬들은 벌써부터 까고 있다. 사회복무 중인 주현상마저 부상은 안 당했지만 뺑소니를 당했다는 소식마저 들려오자 "액땜 한 번 제대로 한다." 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다만 해당 내야수는 불기소처분을 받았고, 주현상도 큰 부상은 아니었다.

지역 사회를 위해 1억원이라는 거금을 기부했다. 감독 계약 당시 구단과 만난 자리에서 기부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스토브리그 결과 정말로 외부 FA 영입이 없었으나 “사실 누구나 감독이 되면 외부 FA 영입이 욕심이 날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내가 구단에 요청해 FA 영입이 이뤄지면, 또다시 한화가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그래서 욕심을 버렸다”며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5.1.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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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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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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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나긴 연패를 책임지고 자진사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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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2009년 양훈김인식노예가 되어 골수까지 빨아먹혔다. 처음에야 "이제야 밥값한다" 정도였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지...[2] 실제로, 한용덕이 1군 코치로 있던 2007 시즌의 한화 이글스는 '선발 투수 방어율'이 전 구단 1위(아는 사람은 아는, 류현진-정민철--비-비, 류현진-정민철-세드릭-비-비)였으나, 이상군 코치가 1군으로 맡은 2008년에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 2007년 부활투를 선보였던 정민철이상군이 올라왔던 2007 시즌 후반 이후에는 포스트 시즌 부상으로 조기 강판과 이듬해 부진 등으로 추락.[3] 2007 시즌 중 류현진의 투구수 문제로 대립 후 찍혀서 재활군으로 떨어진 적이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단, 김인식 항목의 윤규진 관련 루머와 같이 김인식 감독에 대한 반감으로 인한 루머임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참고로 류현진은 19살 고졸신인 역대최초 2년연속 200이닝을 돌파하는등. 역대최고의 천재적 재능이었지만 역대최악급의 혹사를 당했다. PS,국가대표까지 포함하면 +50이닝은 더 던졋으니 2시즌연속 250이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4] 이상군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구단주 김승연 아버지의 관을 들 정도로 구단 최측군과 깊은 관계인 그가 한화에서 퇴출될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다만 감독대행으로서는 그간 무리하던 필승조들을 어느 정도 덜 쓰고 팀을 재정비하며 재평가의 여지를 남겼다.[5] 롯데 투수코치 시절 박동수페르난도 아로요에 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다.[6] 그 동안의 혹사로 인한 후유증을 많이 거론하지만, 반대로 한대화 감독의 투수 컨디션을 도외시한 등판간격 늘어뜨리기식 조정도 역시 문제를 키운 측면이 있다.[7] 이후 양훈은 김성근에 의한 무리한 감량으로 몸이 망가지다가 2015년 넥센 히어로즈 이적 후 이지풍 1군 트레이닝 코치와 손혁 1군 투수코치의 매직으로 다시 정상화되었다.[8] 사실 이건 계속해서 한화가 하위권에서 놀자 프런트가 한대화 감독에게 성적에 대해 경고 차원으로 진행한 인사이동이다. 북일고 출신인 한용덕을 수석코치로 승진시키고 한대화가 삼성에서 함께 넘어온 본래 수석코치 이종두는 잔류군으로 강등시켰다.[9]덕 + 야[10] 2012 시즌 종료 후, 광주 지역신문을 통해 KIA 타이거즈가 오퍼를 넣은 사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11] 실제 한용덕은 '검증된 투수코치'라고 볼수 있기에 감독 대행을 마친 후 복수의 구단에서 제의가 왔다고 한다. 본인 또한 한화에서 감독 대행을 하다가 다시 코치를 하는건 부자연스럽다고 느껴 고민이 많았는데, 구단에서 코치직 대신 미국 연수를 제의하여 가게 된 것이라고.[12] 이 때문에 계형철과의 악연도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13] 감독이 된 후 인터뷰에서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사무실에서 영웅담같은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14] 가득염 코치가 대신 2군으로 내려갔다.[15] 타팀 출신 두산 코치들은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나, 오히려 돡무원으로 분류되는 전형도권명철은 2016년에도 까인다.[16] 이 때문에 일부 두산팬들은 섭섭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마침 한국시리즈 우승이 좌절되어 분위기도 별로인 탓도 있었고.[17] 유래는 한용덕-용덕 한-덕한-더칸+감동님으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