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5:58:06

해밀턴 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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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해밀턴 피시
Hamilton Fish
파일:Hamilton_Fish_Brady_Edited.jpg
출생 1808년 8월 3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사망 1893년 9월 7일 (향년 85세)
미국 뉴욕주 개리슨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NNNcm, NNkg, 혈액형
가족 해밀턴 피시 주니어 (아들)
해밀턴 피시 3세 (손자)
학력 초등학교 (졸업·중퇴)
중학교 (졸업·중퇴)
고등학교 (졸업·중퇴)
대학교 단과대학 (학과1·학과2[복수전공] / 재학·학사·중퇴)
종교 종교
직업 정치인
소속

서명
파일:Hamilton_Fish_Signature.svg

1. 개요2. 생애3. 활동4.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정치인. 유능하고 청렴한 국무장관으로서 율리시스 S. 그랜트 행정부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

한국과는 신미양요로 악연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뉴욕시에 뿌리내린 명문가였던 피시 가문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좋은 교육을 받아 컬럼비아 대학교를 다니고 변호사가 되었다. 뉴욕주의 연방하원의원, 뉴욕주지사, 뉴욕주 연방상원의원 등 뉴욕주의 정계 요직을 대부분 맡았다. 내전 시대의 남북갈등에서 노예제 확대와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을 반대하고 북부 휘그당-공화당의 입장에 섰다.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을 지지하였고 남북 전쟁 기간동안 연방군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였다.

1868년 율리시스 S. 그랜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당시 피시는 60세로서 거의 은퇴한 인사로 여겨졌지만 국무장관으로 발탁되었다. 당시 미국 외교의 가장 큰 현안은 남북전쟁 당시 영국 조선소에서 건조된 남부연합 사략선(CSS 앨라배마 등)이 연방측 상선에 입힌 피해 배상에 대한 것이었다. 피시는 협상을 통해 영국이 1,55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하고 두 나라가 우호를 다지는 워싱턴 조약을 이끌어냈다. 이는 국제법의 중요한 선례가 되었고, 19세기 중반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미영관계 개선의 한 이정표가 되었다.

1873년 쿠바 반란을 진압하던 스페인이 쿠바인들을 지원하던 미국인 소유의 배 버지니우스 호를 파괴하고 수십 명의 미국인, 영국인 선원들을 처형하는 사건이 터졌다.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당장 스페인과 전쟁을 선언하라는 여론이 많았지만 피시는 스페인과의 협상을 통해 버지니우스 호와 미국인 생존자들을 반환받고 배상금을 지불받으며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조선과의 통상을 위해 해군 원정대를 파견했고, 그랜트 대통령의 산토도밍고(현 도미니카 공화국) 병합 계획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도미니카를 미국의 주로 받아들이고 사마나 만을 조차하는 실무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조선에서는 신미양요 발발로, 도미니카의 경우에는 찰스 섬너 상원의원 등 정치권 대부분의 반대로 인해 둘 다 실패로 돌아갔다. 1875년에는 하와이 왕국과 조약을 맺어 하와이 병합의 기반을 닦았고, 1876년에는 해군 함선을 보내 라이베리아를 안정시키는 것을 돕기도 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운하 건설에 관심을 가져 콜롬비아, 니카라과 등 주변국들과 여러 차례 협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1876년 대통령 선거 공화당 경선에서 제임스 G. 블레인로스코 콩클링의 파벌이 다툼을 벌이자 그랜트 대통령은 피시에게 알리지 않고 공화당 전당대회에 피시를 대통령 후보로 추천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편지는 전당대회에서 읽혀지지 않았고, 피시는 68세의 고령이었고 은퇴할 준비가 되어 있어서 어차피 대통령이 될 생각은 별로 없었다.

3. 활동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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