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4:31:12

행정구역 개편/부울경/부산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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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찬성론3. 반대론
3.1. 타협안

1. 개요

부산광역시특별시로 승격시키자는 개편안이다. 그 역사도 매우 유구해서 무려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49년부터 부산특별시 승격 논란이 있었다.

부산부 인구는 이미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대 초에 평양부를 따라잡아 한반도제2의 대도시가 되었으며, 서울이 수도 역할을 잃어버린 1950년부터 1955년까지 6.25 전쟁 기간 동안 임시수도기도 했다.[1]

이 시기에 경상남도 부산시의 인구는 서울특별시의 7할 가량[2]까지 따라잡았었다. 그래서 한국 전쟁 이전인 1946년경기도에서 분리되어 특별시(당시 명칭은 특별자유시)로 승격되었던 서울특별시처럼 1949년에 그 당시 경상남도에 속해 있었던 부산시를 서울처럼 경남에서 분리하여 별도의 특별시로 만들자는 부산특별시법이 국회에 발의되었다.[3]

당시에는 도에서 분리된 시는 대한민국에 서울밖에 없었고 직할시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도에서 분리=특별시 승격'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광역시 승격을 노리는 도시들이 승격해서 보다 독립적인 행정권을 확보하고, 다이렉트로 중앙정부에 건의하고, 조직상으로는 광역시의회도 만들고, 자치구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걸 보면 부산도 비슷한 의도로 특별시 승격을 원했을 것이다.

결국은 서울 지역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후 1951년, 1953년, 1954년, 1958년, 1960년, 1961년, 1962년에도 총 7번에 걸쳐 부산 지역 국회의원들의 요구로 부산특별시 승격안이 국회에 발의되거나 정부가 검토했지만 번번이 부결되었다. 하지만 결국 이는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에 의해서 1963년경상남도 부산시를 특별시보다는 하위 등급인 부산직할시[4]로 승격, 특별시 승격 논란은 30여 년간 일축되었다. 일각에서는 군사반란 후 정권을 잡은 초기에 위헌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탈취했다는 점 때문에 박정희 군부에서 서울과 거리가 멀어 영향력이 먼 부산 등에서 자신들 입장에서 불온한 움직임으로 느껴질 분위기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한 직접적 통제 강화와 우호적 여론 조성을 위한 정부 직할 체제 도입으로 보기도 한다.

1963년 경상남도 관할에서 정부 직할로 바뀐 후 경상남도지사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왜냐하면 관선제였던 당시 도의 지휘를 받는 타 시군의 시장, 군수가 임명되려면 도지사의 추천이 필요했지만 부산시장과 도지사는 도지사의 추천이 필요 없이 내무부 장관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당시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 중 의회의 의결을 요하는 사항은 도와 서울특별시에 있어서는 내무부 장관의, 시와 군에 있어서는 도지사의 승인을 얻어 시행한다는 내용이 있어 초창기에는 경상남도지사의 영향력이 남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1963년 당시에는 정부 직할이면서 도의 영향력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10여 년이 지난 이후, 1973년 3월 12일 다시 법이 개정되면서 부시장 자리도 생기고 조문도 지방자치법 중 의회의 의결을 요하는 사항은 도와 서울특별시 및 부산시에 있어서는 내무부 장관의, 시와 군에 있어서는 도지사의 승인을 얻어 시행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어 좀 더 경상남도지사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특별시를 제외하고 이러한 정부 직할의 시 체제는 사실상 부산의, 부산에 의한, 부산을 위한 행정구역으로서[5] 기능하였는데, 중앙정부로서는 부산이 가지는 인구나 위치적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서울과 같은 특별시를 줄 수는 없다는 판단으로 '일반시와 비교해서는 격이 높으나 특별시와 비교해서는 낮은' 지위를 안겨주었다고 할 수 있다.

1도(都, 도쿄 도) 1도(道, 홋카이도) 2부(府) 43현을 사용하는 일본의 경우 관동의 중심도시이자 일본의 중심도시 도쿄에 유일한 '도'의 위치를 주는 한편, 관서의 중심도시이자 제2의 도시인 오사카, 그리고 일본의 역사적, 문화적 수도인 교토 양 도시에 유이한 '부'의 명칭을 인정하였다. 다만, 일본의 부를 한국의 광역시에 일대일 대응시켜 생각하면 곤란한 게 영어로는 현과 같은 Prefecture이고 기능상 현과 다를 게 없다.

허나 1981년 대구시인천시가 대구직할시, 인천직할시로 승격을 준비하면서 법적인 직할시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간 그냥 부산시였던 부산시도 같은 해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6]에 따라 1981년에 공식적으로 부산직할시로 불리게 된다. 1963년에 '부산직할시'가 되었다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방행정에 관한 임시조치법 부칙 조문에 나타난 것처럼 1981년 4월 4일이 되어서야 부산시장도 공식적으로 부산직할시장이 되었다. 그전까지는 그냥 부산시가 맞다. 1963년 1월 1일에 경상남도 산하에서 (일부 경상남도의 영향력이 남아있는 채로) 형식상 분리되어 정부 직할이 되었던 것이다. 다만 부산광역시에서는 1963~1981년의 이 과도기에도 '부산직할시'라는 명칭이 비공식적으로는 쓰였음을 근거로 이 명칭을 1963년부터로 소급 적용하고 있다.

이후 1986년 광주시, 1989년 대전시 등 차례대로 각 지방의 중심도시가 직할시로 승격했으며, 1995년 직할시의 명칭이 광역시로 바뀐 이후인 1997년 울산시의 광역시 승격 등 여러 광역시가 탄생하는데 이런 부산보다 작은 도시들[7]이 부산과 동격의 행정구역으로 승격하면서 상대적으로 희소성이 떨어져버렸다.[8] 때문에 부산에서 다른 어중간한 대도시보다 상대적으로 격이 높은 행정구역 지위를 과거처럼 되찾기 위한 특별취급을 바라는 특별시 떡밥은 다시금 부활하기 시작하였으며, 2000년대 이후에 나온 '부산해양특별시', '해운대특별시' 출범 논의도 사실은 부산특별시 승격 논의의 일종의 변형판이라고 볼 수도 있다.

2007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대선주자였던 손학규[9]해양특별시로 외치던 부산과 산업특별시를 외치던 울산을 통합해서 특별시를 만드는 걸 검토하자는 주장을 했다. 보통 이런 경우 통합 대상 중 인구 등의 규모가 더 적은 지역에서 주로 반발이 큰데 당시 울산광역시청에선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울산광역시장도 당시 같은 당 소속이었던 박맹우라 대놓고 까기에도 뭐하고 하니 크게 공론화는 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통합시 약 470만 여 명으로 이전까지 정치인들이 약간 과장으로 언급하던 400만 부산시민[10]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가 된다. 부산이 고령화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가까운 미래에는 이정도 인구면 인천에 인구로 추월당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나 더 먼 미래에는 인천 인구가 부산 인구를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통합이 된다면 이름이 겹치는 동, 서, 남, 북, 중구[11]의 명칭 문제부터 부산지방해양수산청과 울산지방해양수산청을 통합한 부산지방해양수산청, 부산항만공사울산항만공사를 통합한 부산항만공사, 부산도시공사와 울산광역시도시공사를 통합한 부산도시공사, 부산시설공단과 울산시설공단을 통합한 부산시설공단[12], 부산지방경찰청과 울산지방경찰청을 통합한 부산지방경찰청, 부산지방중소벤처기업청과 울산지방중소벤처기업청을 통합한 부산지방중소벤처기업청, 부산소방본부와 울산소방본부를 통합한 부산소방본부, 부산해양경찰서와 울산해양경찰서를 통합한 부산해양경찰서, 부산지방법원울산지방법원을 통합한 부산지방법원, 부산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와 울산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합한 부산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특별시가 안 된다면 부산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등 행정기관들의 통합 등까지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그 외에도 울산대학교울산과학기술원 등도 부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형식의 기관명칭 변경을 고려할 것이다. 한편, 부산교통공사가 관할하는 도시철도가 울산지역에 진출하는 데에는 행정적 장벽이 하나 사라져 더욱 유리해진다. 지역번호 통합에 관한 사항도 조정될 수 있다.

2. 찬성론

비수도권 지역의 지방균형발전 차원에서 부산의 특별시 승격이 필요하다. 서울특별시 출범 이후 이 '특별시'라는 타이틀의 네임벨류, 임팩트가 너무 강한 나머지 특별시가 아닌 여러 지자체들이 행복특별시'[13], '관광특별시'[14][15], '복지특별시'[16][17], '문화특별시'[18][19][20], '산업특별시'[21][22][23]과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쓸 정도가 되었다.[24] 그 외에도 예술특별시를 노리는 창원도 있고, 통일경제특별시[25]라는 말이 나오는 파주에, 정치권 영향인지 대구 쪽에 창조경제특별시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과학 관련 출판물에는 과학특별시에 가입해 과학특별시민이 되라는 말까지 등장한다. 우주까지 진출하는 특별시 '우주특별시' 대전..

이미 특별시인 서울도 경제민주화특별시도시농업특별시, 안전특별시[26]에 이어 교육특별시[27]까지 노리고 있다.

서울 공화국으로 상징되는 수도권 집중문제로 위축된 비수도권 주민들의 자긍심을 세우고, 지역균형발전을 더욱 더 촉진하는 차원에서 부산의 특별시 승격이 필요하다. 부산특별시라는 타이틀은 현재 위축되고 있는 시세를 고려하자면 '부산특별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특별시 승격 후 부산특별시장에게 국무회의 참석 권한을 부여하여 서울과 지방이 상하관계가 아니라 대등하다는 신호를 줄 필요도 있다. 수도권 집중을 벗어난 국가균형발전 추구는 문재인 정부의 정신적 뿌리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정책이었고, 국민의힘 등 타 정당들 역시 방법은 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큰 틀에서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외국에서 찾아보면 '수도만의' 우월적인 행정구역을 설치한 사례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례가 더 많다. 절대다수는 수도지역이 다른 주들(한국으로 치면 타 광역시, 도(행정구역)들)와 동격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도시 간 격의 차이가 있다 해도 중국, 대만, 베트남, 러시아, 말레이시아 등 수도와 제2도시(혹은 제3, 제4의 도시까지)의 행정구역의 격이 같은 경우도 상당히 많다.

사실 특별시가 법률적으로 꼭 수도 서울만 되어야 한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지 않고, 부산의 특별시 승격논의를 잠재우기 위해 등장한 제도가 광역시(옛 직할시) 제도다.

3. 반대론

도쿄만이 '도'(都)인 일본도 그렇고 현재 수도이거나, 오랫동안 수도 노릇을 해온 도시에만 특수한 지위를 줄 뿐, 다른 지방도시의 규모가 수도권과 맞설 만한 수준이라고 해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은 건 아니다. 일례로, 미국에서도 수도인 워싱턴 D.C.만 연방 정부 직할의 특별시로 취급될 뿐이고, 영국그레이터 런던만이 특별 취급을 받으며 인도도 독립 연방구역으로 둔 도시는 델리 연방 수도구역과 행정적 요인[28]으로 승격시킨 소도시[29] 찬디가르 뿐, 제2의 도시라고 뭄바이를 떼어내자는 주장은 없다.[30] 심심하면 특별시도(都) 승격 떡밥이 도는 부산광역시오사카부가 특이한 것이다.

물론 찾아보면 수도와 제2도시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31]만 연방특별시 지위를 받은 러시아나 우연이다만[32] 수도와 제2도시인 베를린함부르크가 도시주인 독일의 경우가 있기는 하다. 다만 두 예시의 경우 모두 제2의 도시라는 이유만으로 독립시의 지위를 얻은 것이 아니며[33] 여전히 부산과 오사카가 흔치 않은 경우인 것은 변함이 없다.

게다가 부산이 특별시가 된다고 해도 부산시민들이야 자긍심이 생길 지도 모르지만 비수도권의 타 지방민들이 자긍심이 생길 지는 회의적이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다른 타 지방민에 대한 우월의식을 나타낼 수도 있다. 현재도 일부에서 2도시임을 내세워 자긍심이 지나친 형태로 발전한 사람들이 없지 않고, 광역시로 승격한 다른 지역주민들에게서도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광역시가 계속 만들어지던 것처럼 다른 광역시들이 저마다 나도 특별시 승격해달라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특별시나 광역시는 아니지만, 10만 전후인 연기군 일대가 특별자치시라는 광역자치단체로 승격된 사례까지 나왔는데, 특별자치시 승격 당시 인구를 보면 인구 좀 많은 군 정도만 되어도 넘볼만한 규모일 정도로 적은 인구로 승격된 케이스다.

형평성 문제도 있는데, 수도권-비수도권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기엔 부산을 포함한 부울경도 받아먹은 게 많다. 부울경은 1949년 이후 2010년대까지 인구가 무려 500만 여명이나 늘어났고, 이 정도 인구 증가는 수도권에 이어 두 번째일 정도로 수도권 다음으로 각종 개발 수혜를 누린 지역이다[34]. 향후 인구가 줄어든다 해도 그동안 인구 증가를 명분으로 타먹은 인프라는 남게 되는 셈인데 균형발전 명목의 주장은 전라도, 강원도, 제주도 등 경부축이 아닌 곳에서 주장하는 것이 더 명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수도권 비대화가 문제가 되면서 부울경마저 수도권에 비해 뒤쳐지자, 지역균형개발이란 명목으로 부산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일종의 내로남불인 것이다. 세부적으로 볼 때 비수도권(지방)의 인구를 싹 합쳐야 수도권 인구에 겨우 맞대응할 정도로 수도권 집중이 심하다고 말할 거라면 비수도권 중 경상도 인구는 나머지 비수도권 인구를 싸그리 합쳐야 겨우 맞대응할까 말까 한 정도인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35]. 즉, 이 문제는 2번째로 정부 주도 뷸균형개발의 수혜를 입은 부울경이 수도권과 비교질하면서 지역주의를 발산시키는 형태다.

그렇다고 순수하게 도시 자체의 규모와 위상만으로 특별시 타이틀을 요구하기에는 부산광역시가 서울특별시(수도권)에 필적하는 경제력이나 도시규모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제아무리 제 2의 도시라고 해도 서울에 비해서는 시세가 훨씬 미약하다. 순수한 행정구역 안의 인구를 따지면 서울의 1/3이며 부산의 도시권을 매우 넉넉하게 쳐줘도 도시권 전체를 따져도 수도권의 1/4이다.

하다못해 부산특별시 승격 논의가 활발했던 정부 수립~1960년대 초반 당시에는 인구규모로나 경제적으로나 두 도시가 지금만큼 격차가 크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당시에 비해서도 오히려 시세가 극감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경제규모는 인규 규모상 제 3의 도시로 취급되는 인천이 GRDP 기준으로 2017년에 이미 추월하여 이미 인천이 부산의 경제력을 추월했다가 2018년 이후로 2021년 현재까지 부산이 인천보다 계속 앞서고 있다.

한편, 서울-부산이 결정적으로 차이가 벌어지고, TK출신 박정희 군사정권기에 호황을 누리다가 부산이 타 시도들에게 따라잡힌 계기는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대 전두환이 부산의 향토기업동명목재국제그룹을 해체시키면서부터였다는 말이 있다. 즉, 국가정책적으로 부산을 어느 정도 억제했다는 것이다. 그보단 김영삼을 견제할 의도가 있었겠지만... 아이러니한 건 전두환의 출생지가 경상남도 합천군[36]으로 PK 출신이란 점인데 중화학공업 1·2차 투자조정 조치나 언론통폐합, 자동차공업 통합조치, 해운업 합리화조치, 명성그룹 사건 등과 국제그룹보다 먼저 해체된 삼호의 케이스를 봐도 연고가 PK든지 아니든지 여러 산업분야를 넘나들며 본인 마음에 거슬리는 온갖 기업들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PK기업만 의도적으로 죽였다는 설에 의문도 제기된다. 1986년 재계순위를 보면 창업자가 PK 출신인 럭키금성그룹(4위)과 효성그룹(9위) 등이 있었으며, 해체당한 국제그룹조차 1984년 서울에 본사 건물을 마련할 정도였고 그룹 해체 이후에는 국제상사가 PK 출신 김중원이 설립한 한일그룹에 넘어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에 특별시 타이틀을 달아주면 부산과 인구가 얼마 차이나지 않는 지자체들도 특별시 타이틀을 달아주거나 부산과 동급의 권한을 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수도권 출신자가 또래 세대의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1980년 이후 출생자가 기득권 세대가 되는 미래에[37] 부산의 특별시 승격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다면 부산특별시 승격 논의 자체가 2000년대 중반의 행정수도(세종특별자치시) 이전문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경상도 이외 세력, 특히 수도권 세력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있다.

일례로, 행정수도를 이전하자는 논의가 벌어졌을 때, 헌법재판소에서 '관습헌법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것을 근거로 행정수도 이전의 논의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지금의 세종시 자리로 수도를 옮긴다는 말에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의 주민들이 대노한 일이 있었던 만큼, 부산특별시 승격 논의가 수면으로 떠오르면 수도권 주민들이 이를 결사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이면, 차라리 모든 광역시들을 도로 산하의 특정시로 격하시키자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을 더 걱정해야 할 것이다. 비록, 부산특별시 승격 주장에 대한 맞불 작전으로 제기될 주장일지라도, 노기가 충천한 수도권 주민들에 의해 엄청난 호응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3.1. 타협안

부산광역시 인구는 약 333만으로, 이를 뒤따르는 5개 광역시의 인구는 순서대로 어림잡아 300만, 237만, 144만, 141만, 110만인 데데가 부산의 인구가 340만을 찍은 것은 20여년도 전인 1990년대 일로 그 당시 부산의 위상은 지금보다도 높았다 볼 수 있다.

지금은 인구가 줄고 있지만 수도권을 키우는 서울처럼 부산은 도시 자체의 시세 확장보다 주변 권역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져 가는 도시다. 부산 인구를 그나마 가까이 따라왔다 할 수 있는 인천조차 도시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는 광역권까지 모두 따졌을 때는 차이가 난다 볼 수 있다. 가령 인천권에 김포나 부천, 시흥, 대부도 인구를 포함시킨다 해도 양산, 김해, 거제, 창원, 울산, 밀양 등을 포함해 크게 보면 700만에 달하는 시세를 자랑하는 부산을 따라잡기는 요원해 보이기 때문에 부산의 위상이나 결코 떨어지지 않으며 부산의 요구가 영 불합리하다고만 볼 수도 없다. 설령 근 미래에 인천시가 부산시의 인구를 따라잡는다 해도 이 관계는 역전되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일본의 경우 역시 오사카시의 인구가 요코하마시보다 적지만, 오사카부의 영향은 가나가와현의 영향보다 압도적이다.

다만, 이미 인천의 1인당 GRDP가 부산의 1인당 GRDP보다 높은 만큼 인천이 부산을 '경제력으로 추월'하는 것은 아주 가까운 미래일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는 일본과 차이가 크다. 일본에서 요코하마는 5대 도시 안에도 쳐주지 않는 경향이 강하지만 한국에서 인천은 3대 도시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또한 부산 주변의 도시들이 수도권, 케이한신권과는 달리 인접한 울산, 창원조차도 부산에 직접적으로 종속되지 않은 도시들인 만큼 부산의 주변 도시들에 대한 영향력도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 부산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편인, 부산의 위성도시로 볼 만한 도시는 김해와 양산 정도이다. 울산과 창원 등의 도시는 부산의 '주변 도시'이지 위성도시가 아니다.

더군다나 부산은 전국 광역도시 가운데 고령화 진행속도가 가장 빨라 의료 발전을 감안해도 일정 시점을 넘어서면 자연사하는 노인들이 급증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2017년 11월 동남지방통계청이 발표한 고령화 통계에서 이미 2021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는 자료가 나왔다.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고령 가구 통계를 보면 2017년 기준 부산지역 고령 가구는 32만3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23.9%를 차지해 전국 평균(20.5%)보다 3.4%포인트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2022년에 30%대, 2044년에는 두 가구 중 한 가구가 고령 가구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광역시 중 가장 젊은 도시가 인천이라 뚜렷한 변화가 없다면 부산과 인천 간 인구 역전이 현실화될 것인데 특별시 승격이나 타협안이라도 현실성이 있을 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서울보다는 격이 낮더라도 타 도시보다는 격 높은 어떤 지위를 부여하는 타협안이나마 시도를 해 볼지도 모른다.

일본의 경우에도 1도 2 43현 1도로, 부산만큼이나 타 도시권에 비해 압도적인 간사이의 오사카와 역사성으로 볼 때 도쿄보다 더욱 정통성이 있는 교토가 타 도시에 비해 높은 격을 갖고 '부'를 받았지만 도쿄 도의 명칭을 얻진 못하였다. 이를 참고한다면 광역시보단 격이 높지만 특별시보단 격이 낮은 새로운 행정명칭을 신설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행정구역의 격 역시 격상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가령 현재 광역단체들 중에서 의결권은 없으나 국무회의 참관권한을 가진 것은 오로지 서울특별시장 뿐인데, 새로 지정될 (가칭)특례시의 광역자치단체장, 즉 부산광역시장과 평양시장 역시 국무회의 참관권한이나 장관급의 의전서열을 부여하는 것이다. 다만 이러면 대전광역시장이나 광주광역시장같은 타 지자체의 시도지사도 당연히 참관권한이나 장관급의 의전서열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통일이 될 경우 평양특별시 지정 문제에 대하여, 대한민국 제 2의 도시인 부산에 준하여 대우한다는 의미의 행정구역을 지정할 수도 있다.

한편, 부산의 특별시 승격 주장이 오사카의 도(都) 승격 개편 논의나 경기도 분도 떡밥처럼 선거철의 흔한 공약이라는 반응도 있다.

[1] 한국전쟁 당시 수원이 첫 임시수도가 되었고, 이후 대전, 대구에 이어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다. 경부선을 중심으로 국군이 후퇴하던 루트의 도시들이 하나씩 임시수도가 되었다. 심지어 대전은 이영진 충청남도지사의 건의로 천도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국회에서 천안 출신 김용화 의원 외 58명이 제출한 ‘대전 임시천도에 관한 대정부 건의안’이 재석 116명 중 찬성 60, 반대 32표로 가결되었으나, 정부의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임시수도가 아닌 천도까지 명시적으로 국회에서 가결된 곳은 대전이 유일하다.[2] 기존 자료에서 블로그의 예시를 들면서 80%까지 따라잡았다고 되어 있었으나 해당 블로그의 게시글이 사라진 상황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KOSIS 인구조사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1955년 통계자료가 있다. 이 당시 서울 인구는 1,574,868명, 부산 인구는 1,049,363명이었다.퍼샌트로 따지면 약 67%다.[3] 사실 국가안보 측면에서 보자면 수도를 서울에 두는 것보다는 후방 지역에 두는 것이 더 나았다. 현재 대한민국이 핵무기 외에는 모든 전력에서 북한을 압도함에도 안보 위협을 느끼는 것은 서울이 휴전선에서 너무 가까워 포격 사거리 안에 들어가고 기동방어가 불가능하다는 지리적인 불리함 탓이다. 그래서 판문점 선언 후 남북군사회담에서 북한 측이 양측 병력을 뒤로 물리자는 제의를 했을 때 대한민국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임시수도 부산을 그대로 정식 수도로 삼거나 세종특별자치시와 같은 후방 지역으로 수도가 이전되었다면 설령 북한군이 남침하여 한강 이북을 북한군에게 일시 빼앗겼다 해도 기동방어를 통해 오히려 북한군을 끌어들여 섬멸할 공간의 여유가 충분했을 것이므로 훨씬 더 여유를 갖고 대북 군사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4] 그 당시에는 정식 명칭은 아니고 통칭이다.[5] 특별시 항목의 취소선과 비슷한 맥락.[6] 한편,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1963년 6월 18일 개정조문) 제9조의2 (읍장, 면장, 동장 및 리장) ①읍장과 면장은 군수가 임명하되 각령의 정하는 바에 따라 일반직 지방공무원으로써 보한다. 읍, 면에 출장소장을 두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라는 조문이 있어 대한민국헌법(1960년 6월 15일 개정 및 시행) 제97조 ②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방법은 법률로써 정하되 적어도 시, 읍, 면의 장은 그 주민이 직접 이를 선거한다. 라는 규정이 있어 헌법에 규정된 지방자치상의 직접 선거 조항을 하위 법령인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으로 무력화시킨 상황이라 임시조치법이 헌법보다 우선인 초헌법적인 상황이었다. 즉, 시장, 읍장, 면장을 직접선거로 뽑아야 하는데, 선거 없이 임명한 것이다. 이는 박정희 군부에서 1963년 12월 17일 뒤늦게 개정한 헌법 조문으로 제110조 ②지방의회의 조직·권한·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방법 기타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라고 고침으로서 정당화하려 했다.위헌이어도 총칼 앞에서는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7] 도시의 규모 면에서 서울과 부산의 인구 차이는 거의 600만이 넘는데, 부산과 타 광역시 중 인구가 가장 적은 수원에도 밀린 울산의 차이는 300만도 안 된다. 다만 비율로 따지면 부산은 특별시 서울의 약 35.1%이지만 울산은 같은 광역시인 부산의 33.7% 정도에 미친다.[8] 비슷한 사례로 특별자치도 역시 본래는 제주도만의 고유 지위였으나, 2023~2024년 들어서 강원도전라북도에도 적용되어 다소 빛이 바랬다. 다만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한 제주도와는 달리 아직 기초자치단체가 남아있다는 점은 다르다.[9] 당명이 자꾸 바뀌는 한국 정당들의 특성과 손학규의 탈당행적 등으로 인해 거쳐간 정당은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등 어메이징하다.[10] 통계데이터를 확인해보면 부산인구가 최대 정점은 390만 명이었다.[11] 하는 김에 부산과 울산의 자치구들 중 과소인구인 자치구 간 통합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12] 부산시설공단과 울산시설공단은 광역자치단체 관할 시설만 관리하고 기초자치단체인 구청과 군청들도 자체 시설들을 관리하기 위해 산하 시설공단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울산도 시단위 공기업인 울산시설공단 외에 남구청ㆍ중구청ㆍ울주군청도 산하에 도시관리공단을 설립하였고, 북구ㆍ동구도 설립을 추진 중이다.[13] 행복특별시를 노리는 의정부시.[14] 염태영 수원시장이 수원관광특별시를 선포하겠다고 한다.[15] 대표적 관광지인 해운대도 빠질 수 없었는지 해운대관광특별시를 노리고 있다. 김해도 빠질 수 없다.[16] 광명 쪽에서 복지특별시가 언급된 바 있다.[17] 육아복지특별시를 노리는 세종특별자치시.넌 이미 '특별'이 들어가있잖아[18] 만화 쪽이 유명한 부천에서 노리는 느낌이다.[19] 전주도 언급된다.[20] 경주에서는 역사문화특별시가 언급되고 있다.[21] 울산에서는 울산산업특별시를 노린다.[22] 대구에서는 신산업특별시를 노리는 듯 하다.[23] 게임특별시를 노리는 판교.[24] 안산시청 대부해양관광본부 관광과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까지 안산특별시를 대놓고 쓴다. 상상 그 이상을 꿈꾸는 도시 사람 중심 안산특별시[25] 정읍에도 경제특별시를 노린다.[26] 안전특별시를 노리는 대전[27] 과천도 교육특별시가 되겠단다.[28] 두 주 펀자브하리아나의 공동주도로 세운 계획도시이다.[29] 인구는 백만 이상이다만 인도 기준으로는 중소도시에 속한다.[30] 소수의견이나마 그나마 나온 뭄바이 승격에 대한 의견 또한 민족구성의 변화[38]나 다른 마하라슈트라 주와 다른 역사적 배경[39]으로 인한 문화적 괴리감이다.[31] 크림 반도 합병으로 취득한 세바스토폴은 제외.[32] 독일 함부르크는 제2도시이기에 독립 도시주인 것이 아니라 한자 동맹에 관한 역사적인 이유로 브레멘과 함께 독립 도시주인 것이다[33]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경우 300년간 러시아 제국의 수도로 기능하였다는 점이, 그리고 함부르크의 경우 전술한듯 한자 동맹의 유산이 원인[34] 삼남 지역의 인구를 숫자로 비교해 보자면, 1949년 경상남도의 인구는 약 315만명이었고 다른 지역의 인구는 경북 320만, 전남 305만, 전북 205만, 충남 206만, 충북 115만 선이었다. 이에 비해 2010년의 인구를 보면 부산+울산+경남의 범경남권 인구는 대략 760만, 대구+경북은 500만, 광주+전남 320만, 전북 177만, 충남+대전 350만, 충북 150만 정도가 된다. 호남권과 충청권에 비해 영남권의 인구 증가가 두드러지고, 그중에서도 대경권에 비해 부울경권의 인구 증가가 특히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구 증가를 통해 고도성장기동안 해당 지역이 (수도권 다음으로) 많은 개발 수혜를 누렸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상징적인 것은, 같은 기간 한국의 전체 인구가 약 2.4배 성장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교 대상인 6개 지역 중 총 인구의 증가율에 필적하는 인구 증가를 보인 유일한 지역, 즉 유출로 인한 인구 비율 감소를 겪지 않은 (또는 유출된 인구에 상응하는 비율의 인구가 유입된) 유일한 지역이 바로 범 경남권이라는 점이다.[35] 앞 주석에서도 지적되었듯, 49년의 인구를 기준으로 보면 영남권:호남권:충청권의 인구비는 대략 6:5:3 정도였던 것이 2010년에 와서는 부울경권과 대경권을 따로 분리해도 15:10:10:10 이 나와버린다. 만약 영남권을 합치면 25:10:10으로, 정말 전국 인구에서 수도권이 절반. 나머지 절반의 비 수도권 인구에서 영남권이 절반이라는 구도가 나오게 된 것.[36] 다만, 합천이 부산보다 대구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라는 특수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도 전두환은 대구에서 성장기를 지냈다.[37] 2022년 현재 기득권 세대의 경우 아직 비수도권 출신자가 수도권 출신자보다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