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환단고기
1. 개요
이들의 주장은 자문화 중심주의를 목표로 하는데, 일반적으로 확장주의 → 기원주의 → 특수주의 → 신비주의 → 퇴보주의로 이어지며, 국수주의와 음모론이 이러한 과정을 전개시키는 동력이 된다. 확장주의에서 나오는 질문은 기원주의로, 기원주의에서 나오는 질문은 특수주의로, 특수주의에서 나오는 질문은 신비주의로, 신비주의에서 나오는 질문은 퇴보주의로 잡는다. 마침내 그러한 사고의 귀착이 퇴보주의에 닿으면, 이것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면서 만성적 인지부조화가 발생한다. 끝내 그 사람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맞이한다.그런데 이러한 경향성은 국수주의와는 조금 다를 수 있는데, 국수주의가 자문화의 특수성과 독창성을 폐쇄적으로 강조한다면 환빠의 자문화 중심주의는 타문화의 긍정적 특성을 자신에게서 유래한 것이라고 가져다 붙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문화의 부정적 특성은 모두 타문화(특히 중국과 일본)에서 유입된 것으로 본다. 비교역사학이나 내셔널리즘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딱 그림이 그려지겠지만 파시스트적 역사관의 기본적인 필수요소들이다. 나치가 아리안 민족의 순수성을 지킨답시고 벌인 만행[1]부터가 바로 이러한 구스타프 코시나(Gustaf Kossinna)의 게르만 중심주의적 주장에 기초하고 있었다.
네이버 지식iN에서 환단고기가 위서인 이유에 대한 질문의 답변글인 3013년 환단고기라는 글은 이상과 같은 환빠 주장의 요점과 논리 체계를 비교적 잘 간취하여 풍자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60번 항목까지 있는 꽤 긴 글이다. 실제 세부적인 주장들은 유사역사학 필수요소를 참조.[2]
1.1. 확장주의
2008년경 역사 갤러리에서 환빠를 비꼬기 위해 만든 짤방.[3] (크게 보기) |
고구려가 북극해에서 하이난 섬까지 지배했다는 내용의 지도. |
그래도 전쟁이 잘 일어나지 않다 보니 실크로드의 한 갈래인 초원길이나 초피로(담비의 길) 등도 쓰여졌지만 척박하고 황량한 곳인만큼 교통이 잘 발전되지 못했고,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만 한정해서 무역로가 만들어졌었다. 시베리아 뿐 아니라 모든 아시아 북부를 점령한 근대시기의 루스 차르국, 제정 러시아조차 교통과 통신이 발전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드넓은 시베리아 지역을 통치하는데 힘들어했고, 러시아는 개척이 오래 걸렸던건 물론 땅이 너무 넓어 황량한 지형, 극도의 추위, 교통과 통신이 좋지 않다는 단점을 이용해 유배지로 쓰거나, 정치범과 죄수들을 시베리아 개척에 보내 강제노동을 시켰으며, 소련 때는 수많은 굴라크들이 세워졌다. 시베리아는 아니지만 인근의 우랄과 러시아 극동 지역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러시아 극동지역도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살 수 있는 곳은 오호츠크 해 등 해안가가 있는 지역이었다. 더욱 북아시아는 고대 문명시대에는 지금보다 더 추웠고, 해당 지역의 추위에 적응되어 사는 소수의 원주민들이 아닌 이상 어느 문명을 가진 정착민들도 이곳을 점령해 지배할 수 없었다. 러시아의 경우는 교통과 통신이 나름 많이 발전된 근대시대인데다가(게다가 본격적인 개척을 넓히는 것은 더 늦게 일어났다) 옛날부터 추위에 적응되기도 해서 추위에 강했기에 가능했다.
하물며 조선시대에서도 만주에 대한 땅의 가치를 낮게 판단했었다. 숙종이 남긴 생각 중에 만주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고구려보다 조선을 높게 평가했던 게 그들의 인식이었다. 숙종때 청나라와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워 서위압록 동위토문이라는 경계선을 확립했고 토문강의 위치가 어디인지 170년 뒤에 문제되는 국경선 논란이 생긴다. 역으로 보면 170년 동안 변방 땅인 만주지역을 조선이나 청나라나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다.
반대로 남쪽도 마찬가지로, 중국 남부는 지금의 동남아시아처럼 습하고 더위가 심했기에 고구려든 백제든 신라든 가야든 한반도 및 인근의 국가들은 절대로 정글같은 열대 무더위와 습도를 못 이겨냈다. 그리고 양쯔강 이남의 개척도 당장 빨리 이뤄진 게 아닌 오랫동안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중국 남부라던가 동남아시아, 더 심하게는 오세아니아까지 점령했을 거라는 유사역사학지들의 주장은 당연히 거짓이다.
고대 한민족의 강역을 터무니없이 크게 잡는다. 이는 일제가 주입하였던 만선사관을 기반으로 하여, 신채호가 고대 중국 동해안에 존재하였던 이족 국가들을 죄다 한민족이 식민된 것으로 보거나, 최남선이 '붉·밝'의 음소 공유를 바탕으로 동북아 전체를 불함문화권으로 묶었던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런 주장들은 제국주의 그 자체를 극복한 것이 아닌 한민족 스스로를 제국시하여 그 범위를 확장시키는 논리에 지나지 않았고, 당연히 일제가 내선일체, 중일전쟁, 대동아공영권의 역사적 근거로 잘 이용해 먹었다.
급기야 이들은 신채호의 말처럼 "도깨비도 떠 옮기지 못한다는 땅을 떠 옮기는 재주를 부려"[5]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를 모두 중국 대륙에 가져다놓는 대륙설과 같은 만행도 버젓이 저지르고, 이보다는 스케일이 작지만 고대의 요동은 사실 오늘날의 요서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고조선을 평양이 아닌 요동에[6], 한사군도 요서에다가 가져다 놓음으로써 사실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고 고로 한반도는 신성불가침의 한민족 영토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선비족이나 거란족, 몽골족, 일본족이나 심지어 중국의 전설적인 삼황오제들까지 한민족으로부터 나온 지파들이라고 함으로써 한민족의 판도 안에 넣기도 하는데, 이는 아래의 기원주의로 연결된다.
1.1.1. "알타이 제어 민족들은 우리의 형제"
실제로 동북아시아, 북아시아인들은 파미르 고원을 기점으로 알타이 산맥을 거쳐 바이칼호에서 분화돼 형성됐으며,[7] 분자생물학 관점에선 이들을 하플로 그룹 N, O으로 분류되는 유전자 풀로 분류하는 등 아예 신빙성이 없는 소리는 아니다.이들 중 N타입에 속한 몇몇 인류가 시베리아 북서부 -> 동유럽 및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이동 했는데 이 때문에 환빠들의 범투란주의가 발생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위 경우 정도만는 유전학적, 고고학적 근거가 있다는 것이고, 여기서 발전한 주장인 튀르키예 등 튀르크계 민족까지 끌어들이는 식의 논리는 전혀 근거가 없다.
중앙아시아 및 인근 지역 등 그 외 투르크계 국가들 사람들이 촬영한 동영상에서도(특히 유튜브) 환빠들이 과거에 투르크 제민족들과 한국인들이 원래부터 같은 민족이었다느니 혈연성 운운하며 환국은 진짜 있었을 거라고 맹신하는 댓글들을 다는 사람들까지 나올 정도이다.[8]
완전환빠는 아니고 준환빠들이 더러 친핀 성향이 되기도 한다.
위 문단에서도 부분적으로 언급했지만 만주족을 비롯한 퉁구스계 원주민들, 몽골족, 그리고 몽골족과 가까운 옛 거란족은 우리의 형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9]
물론 정작 몽골족과 원시 튀르크족들은 서로를 형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몽골계 제족 중 일부인 다우르족, 그들의 옛 조상인 선비족, 거란족 등 내몽골 동부 지역 사람들은 만주족처럼 그나마 혈통상으로는 비슷했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도 있으나 이것도 만주족처럼 그나마 일부 정도만 혈통상으로 그런 것에 불과하다.
모용선비의 일부 후손인 투족도 칭하이와 간쑤 등으로 이주하면서 강족과 혼혈되어 정체성만 유지되었으며, 의상이나 혈통은 티베트계 강족에 더 가깝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고구려-발해-금-청 계보설도 있고 소손녕이 한 말을 따라서고구려-요-원 계보설도 있다. 몽골에서 골이 고구려와같다는것도 있다.또한 고조선-선비족 계보설(또는 부여&고구려-선비족 계보설)까지 나왔다.
그 외에도 더 심하면 선비족과 관련 있다는 이유로 수나라, 당나라, 그리고 선비족과 혼혈 및 문화 등 부분적으로 선비족화되었다는 이유로 당샹족(탕구트족)의 서하까지 끌어들이는 경우도 드물게 존재한다. 이와 엮여서 고구려 건국 공신 협보와 탐라국 건국과의 연관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알타이제어설을 중심으로 한 환빠들 중에는 일뽕환빠와 혐일환빠들도 있는데, 일뽕환빠들은 중국을 혐오하고 일본을 호감으로 보다 보니 내선일체를 믿는가 하면, 혐일이 심한 부류는 일본인은 무조건 적이라고 주장하며, 이들 중에는 류큐인까지만 동족으로 취급하는 환빠들도 있다. 아예 인도유럽어족 유목민까지 끌어들이기도 한다.
1.2. 기원주의
인류의 모든 독창적 사상과 발전의 기원이 한민족이었다고 주장한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메르 문명. 환빠들은 수메르인들이 검은 머리를 가졌다거나, 그 말이 한국어와 비슷하다는 얼토당토않은 근거로 고대 한민족의 지파 가운데 하나인 수밀이가 수메르 문명의 기원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기독교의 기원은 아브라함이고, 아브라함의 근본은 수메르고, 수메르의 기원은 한민족이니 기독교의 기원은 한민족.
이외에도 한자는 창힐이 만든 글자고, 창힐의 근본은 동이족이고, 동이족은 한민족이므로 한자의 기원은 한민족.
유교의 기원은 공자고, 공자의 근본은 송나라고, 송나라의 기원은 은나라고, 은나라의 기원은 동이족이고, 동이족은 한민족이므로 유교의 기원은 한민족.[10][11] 하지만 실제로는 유교가 처음에 등장한 곳은 중국이며 한국의 경우, 성리학의 교조화로 인한 정치 및 사회적 폐해를 겪은데다 1990년대 이후 세대들 사이에서 변질된 유교적 전통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유교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철기를 제작한 것은 치우고, 치우는 한민족이므로 철기문명의 원조는 한민족이라거나, 중국에 있는 엄연히 주인 있는 황제들의 거대 능묘를 가지고 이런 엄청난 건 고대 고조선이 아니고서는 세울 수 없으므로 고조선 문명이 세운 것이며 이를 중국이 은폐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도 하고, 인류의 기원이 바이칼호이고 그 자리에서 발전해 온 정통은 한민족, 나머지 인종들은 다 지파라는 식의 현대 진화론을 씹어먹는 주장도 나온다. 이 정도까지 오면 일본 천황이 한민족이고, 백제인이 건너가서 천황이 되었다느니 고구려인이 건너가서 천황이 되었다느니 하는 주장은 차라리 애교로 보일 지경이다. 이는 다음의 특수주의로 이어진다.
1.3. 예외주의와 특수주의
이와 더불어, 하나라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엄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를 하나의 역사적 실체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하가 일개 성읍 국가의 명칭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당시 중원에는 하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격의 성읍 국가들이 수없이 공존하고 있었고, 하는 그 수많은 성읍 국가들로 구성된 국제사회에서 중심된 역할을 수행하는 일개 성읍 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의 사마천 등 후대의 중국인 역사가들은 자기 시대의 왕조상을 수천 년 전의 하대에 투사하여 하를 마치 방대한 규모의 영토를 가진 국가인양 묘사했던 것이다. 하를 이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하를 이었다는 상, 주 등 중원의 '왕조'들도 진, 한 등과 같은 후대의 왕조와는 달리 수많은 성읍 국가군으로 구성된 중원 국제 사회의 대표적 성읍 국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김한규, 《천하국가》, 57쪽. 인용 본문은 중국 고대사의 하나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같은 이치를 고조선에 적용할 수 있다.
─ 김한규, 《천하국가》, 57쪽. 인용 본문은 중국 고대사의 하나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같은 이치를 고조선에 적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고대에 진귀한 책을 태워버린 때(이조 태종의 분서[12] 같은)는 있었으나 위서를 조작한 일은 별로 없었으므로, 근래에 와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등이 처음 출현했으나 누구의 변박(辨駁)도 없이 고서로 인정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13] 그러므로 우리나라 책은 각 씨족의 족보 가운데 그 조상의 일을 혹 위조한 것이 있는 이외에는 그다지 진위의 변별에 애쓸 필요가 없다.
- 신채호, 《조선상고사》, 제1편 제4장 '사료의 수집과 선택'[14]
- 신채호, 《조선상고사》, 제1편 제4장 '사료의 수집과 선택'[14]
전 인류의 보편적인 역사 발전 양상에서, 삼국시대 이전의 한민족은 예외가 된다. 대표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인류 사회는 국지적이고 자그마한 공동체로부터 시작되어 그것이 통합되고 강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영역국가를 이루고 그 규모가 확장되는 것이 일반적[15]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처럼 이성에 기반한 상상적 이해를 씹어먹고 고대 한민족은 처음부터 영역국가, 아니 영역국가를 초월한 세계적 지배국가로부터 시작해 점차 각지의 민족들이 분화해 나가면서 영토가 갈라지고 판도가 쪼그라들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한편으로는 초기에 이처럼 초월적 지배국가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게 각지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한민족을 섬긴 것이라고 하는데 당연히 인류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주장이다.
심지어 단기고사와 같은 책에는 한민족이 이미 단군조선 시대에 오파츠들을 양산했다는 말도 나오고, 성읍국가도 채 완비되지 않은 시기에 군현제가 실시되었다거나 식민지를 두었다거나 하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이 수두룩하다. 하다못해 바다를 건너다니는 것이나 산맥을 넘어다니는 것 자체도 당시로서는 수월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고려조차 되지 않는 것. 더불어 단군시대에 이루어지는 왕위계승을 보면 세습과 더불어 선대 단군과 혈연으로 맺어져있지 않은 일개 관료가 여타 관료들의 추대를 통해 다음 단군으로 즉위하는 등 공화정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이상적 사회구조를 보여준다. 이는 다음의 신비주의로 연결된다.
1.4. 신비주의
대한검도회 이종림 전무(7단)는 『丹을 읽고서』란 책자를 내고 "비홍검술(飛鴻劍術)이라고 해 공중에 솟구쳐 검술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땅에 끌어내린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 통박했다. 그는 "신라검법과 조선세법이 전해지고 있지만 날아다니는 것하고는 거리가 멀고 찌르고 베는 기본동작의 끝없는 반복을 요체로 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 또 태권도 9단 홍종수 국기원부원장은 "무도란 기본기에 의한 정진인데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생각을 망각한다면 혼란이 온다"고 지적했다. ……
작가 김정빈 씨는 "『丹』이 무도 세계만을 언급한 책은 아니며 조상들의 드높은 기상과 분명히 있었을 것으로 믿어지는 조상들의 초능력을 일부나마 젊은 세대들에게 분명히 알림으로써 우리 것에 눈몰리게 하는 게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해명했다.
- 이재호, 「소설 《丹》의 세계 어디까지 진실인가...」, <동아일보> 1985년 7월 26일 #
작가 김정빈 씨는 "『丹』이 무도 세계만을 언급한 책은 아니며 조상들의 드높은 기상과 분명히 있었을 것으로 믿어지는 조상들의 초능력을 일부나마 젊은 세대들에게 분명히 알림으로써 우리 것에 눈몰리게 하는 게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해명했다.
- 이재호, 「소설 《丹》의 세계 어디까지 진실인가...」, <동아일보> 1985년 7월 26일 #
한민족 고유의 종교사상을 설정하고, 여기에 세상의 참된 진리가 담겨 있다고 신앙한다. 이는 애당초 이들의 한국고대사 인식이 단군신앙(대종교 계열)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종교 신앙은 다시 신채호가 한민족 고유의 우수한 정신인 국수(國粹)로서 단군이 창시한 선교(仙敎)=풍류도(風流道)=낭가정신(郎家精神)을 꼽고 그 세부적인 내용으로 환인·환웅·단군이라는 삼신(三神)의 교리를 제창한 데에서 비롯되었는데, 나철까지만 해도 이는 항일독립운동을 위한 정신무장으로서 기능하는 면이 컸지만[16], 1916년 나철이 죽고 김교헌이 교주가 되면서부터는 급격히 그 교리가 신비주의 경향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광복 이후에는 국내의 친일 단군신앙인 단군교가 신앙하던 주술 천부경이 대종교 교리에 은근슬쩍 끼워팔기 식으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사이비 종교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데 특히 이러한 경향은 1970년대에 유행하여 신선도, 단전호흡, 천부경은 1970~80년대를 풍미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세상에 나온 것이 김정빈의 소설 단과 이승헌이 창시한 단학선원. 여기에 때마침 초능력자라고 알려진 유리 겔러가 TV에서 수저를 휘는 신통력을 보이자 인간에 내재된 무한한 능력을 믿는 이들이 많아졌고, 이들이 소설 단을 통해 자연스럽게 환빠가 되고 이는 다시 아래의 퇴보주의로 연결된다.
1.5. 퇴보주의
[17] [18]갈수록 줄어드는 위대한 배달민족의 강역이다. 게다가 조선이 고려보다 작다.[19] 환빠들은 이것을 보면서 '보라능 우리는 이렇게 과거에 위대했었다능'이라고 망상하지만 오히려 그림의 변화만으로 따지자면 "과거에는 미약했던 한(漢)족이 주인공 보정으로 점차적으로 세를 불려나가, 오천 년 동안 발전 없이 삽질만 하고 있는 한민족을 누르고 동북아시아의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다"고까지 이해 가능하다. 즉,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자폭.
상고시대에 초월적이었던 인류의 문명이 시간이 흐르면서 퇴보했다고 본다. 예컨대 이것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덮는 드넓은 환국의 강역과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역대 환인, 환웅들의 수명. 환국의 환인들은 평균 9026년 혹은 평균 472년, 배달국의 환웅들은 평균 87년, 단군조선의 단군들은 평균 45년, 기자조선의 단군들은 평균 26년, 마한의 부단군들은 평균 60년, 번한의 부단군들은 평균 27년, 북부여의 왕들은 평균 38년, 동부여의 왕들은 평균 36년, 졸본부여의 왕들은 평균 26년, 고구려의 왕들은 평균 25년을 재위했다. 수명이 점점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인다. 이것을 커버하려다 보니 나오는 게 신선도를 익히면 수백 년은 거뜬히 살 수 있다는 신비주의, 환인은 영적으로 도통한 신인(神人)이라는 초고대문명적 신비주의다.
이는 강역적인 측면에서도 별반 다를 게 없는지라, 처음에는 사방 수만 리에 달하는 영토를 다스리던 한민족이 다음 배달국 때에는 동북아시아 일대로 급 쪼그라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뒤이은 단군조선에서도 초반에는 티베트까지 원정을 가서 중앙아시아를 평정하던 국력이 나중에는 산서성의 항산(恒山)까지도 못 가서 허덕허덕거리는 꼴이 심히 보기 안쓰럽다. 즉, 중국이나 다른 민족들이 좌충우돌하면서도 꾸준히 발전해오는 사이 오히려 한민족은 쇠퇴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이 고토수복 운운하는 말로 넘어가는 순간 대단히 위험하니 문제다.[20]
또한 이러한 강역의 퇴보주의적 성향도 있다보니 오히려 쇠퇴했다는 걸 주장하는게 아니냐며 비웃음을 사는 경우도 있다. 재밌게도 이러한 퇴보적인 후반 결말로 인해 몇몇 환빠 중에서 혐한적 및 국까적 성향의 환빠가 되는 경우도 있다. 진눈머의 몇몇 환빠적 성향의 회원도 그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원인들 중 하나는 식민사관에 있는데, 신라와 조선을 말 그대로 얘기하기조차도 싫은 한국인들을 노리고 저런 설을 펼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1] 잘 알려진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집시, 동성애자, 정신병자, 공산주의자, 이주민들까지 아우슈비츠에서 죽어나갔다.[2] 오늘의유머의 환빠가 31세기까지 살아남으면 나올 주장은 해당 원본글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다. 오늘의유머에서의 작성 시기와 정치성향 상 후반부에 언급되는 문재인 금괴 200톤 보유 음모론은 덤.[3] 이 짤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역갤이 일뽕들의 서식지가 아니었다. 환단고기 비판으로 유명한 초록불도 역갤에서 환빠들에게 시달린 일이 많았다.[4] 옛날에 세계사를 배운 사람은 알겠지만, '칸국'을 예전에는 '한국(汗國)'으로 표기했었다. 그래서 중증 환빠들은 '한국'이라는 한글 표기만 보고 '와 우리 위대한 한민족이 중앙아시아 벌판까지 진출했구나~'라는 망상을 품기 딱 좋았다.[5] 신채호, 『조선상고사』, 제1편 제2장.[6] 다만 고조선 요동설은 환빠와는 별개로 실제로 근거가 있는 학설이다. 고조선 항목 참조. 기원전 4세기 이후에 중심지를 요동에서 평양으로 옮겨갔다는 것이 주류설이다.[7] 동남아시아 및 중국 대부분은 제외다.[8] 이 때문에 튀르크어족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끼치고 있다. 심지어 반대로 튀르키예판 환빠들 또한 동아시아 북방계 민족들을 자신들의 형제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이들은 몽골어족, 퉁구스어족 등 동아시아 북방민족 언어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9] 만주족의 경우 혈통상으로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볼 수 있으며 만주어 또한 고구려어 차용어가 많을 거라는 얘기가 있지만 몽골족은 오히려 카자흐족, 키르기스족 등 원시 튀르크족과 혈통상 가깝다.[10] 참고로 공자는 논어에서 엄연히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다(吾從周)"고 했다.[11] 여담으로 한민족과 한국어는 어디서 기원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한 측면이 많다. 특히 알타이 제어의 가설이 부정된 오늘날에 한국어는 (언어계통학에서의) 고립어 중에서 가장많은 구사자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환빠의 모든 인류와 언어, 문화는 한민족에서 기원됐다는 주장과는 완전히 상반된다.[12] 태종실록 17년 6월 1일, 6월 6일, 11월 5일, 12월 15일의 기사에 보인다. 여기에서 태종이 태운 책은 역사서가 아니라 참서·음양술서 종류. 신채호가 이를 탄식했던 것은 그것에 한민족 고유의 선교(仙敎) 사상이 일말이라도 남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에서였지 역사의 소실을 안타까워 한것은 아니었다.[13] 뉘앙스가 모호해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신채호의 이 말은 '우리나라는 역사책이 사라진 적은 있어도 발굴된 적은 없다. 그러니 최근에 발굴되었다는 (위조)고사서들을 진짜라고 믿는 병신이 누가 있음?'이라는 비꼬는 의미다.[14] 원문 링크[15] 역전이 일어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다만, 대전란이나 대기근 등, 인구의 다수가 사망하는 '재앙' 수준의 사건이 동반되는 경우가 대부분. 반면 환빠에 의하면 환국이 쇠퇴한 이유는 자비롭게 주변 국가들에게 땅을 퍼줘서 이다.[16] 애초에 나철은 항일운동을 위한 수단으로서 대종교를 만든 측면이 크다.[17] 사실 중화뿐 아니라 아시아 또는 유라시아 전역, 더 심하게는 전 세계까지 표기한 더 막장스러운 지도도 존재한다.[18] 참고로 위의 오른쪽 그림은 윤승운 화백의 작품인데,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이 작가는 환빠가 아니다. 그저 1980년대에 점철되었던 환국주의 때문에 당시 정서에 맞게 그렸을 뿐. 자세한 것은 본 항목의 역사관 항목 참조.[19] 공민왕이 요동성 등을 잠시 점령한 적이 있기는 하나 말 그대로 잠시 점령한 것으로 점령 지역도 그 때 지나간 일직선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임진왜란을 근거로 일본이 한반도 절반을 자기 영역으로 색칠해도 할 말이 없다. 다만 아예 원래부터 고려가 요동을차지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20] 고토수복 드립을 치는 순간 약 70년 전까지 한반도를 확실히 지배했던 옆 섬나라도 한반도 지배의 당위성이 부여된다. 최근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러시아의 고토수복이 전쟁 사유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