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22:11:03

1812년 서곡

장엄 서곡 '1812년' 작품 49
러시아어: Торжественная увертюра «1812 год», соч. 49[1]
프랑스어: Ouverture solennelle 1812 op.49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Napoleons_retreat_from_moscow.jpg[2]
작곡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Пётр Ильи́ч Чайко́вский)
초연 1882년 8월 20일, 리폴리트 알타니 (Ippolit Al'tani) 지휘
장르 표제음악
음계 내림 마 장조
분당 박자수 ♩ = 60
발상기호 라르고 (Largo)[3]

1. 개요2. 곡의 형태3. 특수 효과4. 단점5. 표제음악으로서 정치적 의의
5.1. 러시아
5.1.1. 소련 시절5.1.2. 소련 붕괴 이후
5.2. 프랑스5.3. 미국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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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관현악 작품으로 전쟁 관련 표제음악으로서는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정작 작곡가는 본인이 스스로 "이 곡은 매우 요란하긴 하지만, 나는 아무런 애정도 없이 작곡했으며, 예술성도 별로 없을 것 같다"고 혹평한 아이러니한 걸작이다.

차이콥스키는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완공 기념식을 위해 이 곡을 작곡했다.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알렉산드르 1세가 1812년 모스크바에서 나폴레옹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만들기 시작한 성당으로 1881년에 완공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리고 당시 차르였던 알렉산드르 2세는 1881년으로 예정된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의 완공식에서 1812년 승전을 기념하는 장대한 행사를 열 예정이었고[4] 이 완공식을 기념할 음악을 차이콥스키에게 부탁했다. 차이콥스키는 꽤 빠듯한 일정의 부탁이었지만 의뢰를 받아들여 1880년 10월 중순~11월 초순에 걸쳐 약 6주 만에 곡을 완성했다.

하지만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은 예상과 달리 1881년에도 완성되지 못했고[5]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하는 바람에 모든 일정은 취소되었다. 그리고 1812년 서곡은 가까스로 러시아 원정 승리 70주년이 되던 1882년에 초연 기회를 잡게 되었는데 연도 상으로는 작품의 창작 의도에 가장 걸맞은 해였지만 예산 문제와 혼란한 사회상 등의 이유로 모스크바 산업예술 박람회의 특별 공연에서 비교적 평범하게 초연되었다.[6] 청중들의 반응도 뜨뜻미지근한 수준이었고 차이콥스키 자신도 이 곡을 '소음만 가득한 졸작'이라고 한없이 깎아내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런저런 공연에서 계속 연주되었고 1891년에는 차이콥스키가 미국 방문 일정 중 뉴욕카네기 홀 개장 축하 공연에서 직접 지휘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에리히 쿤젤이 지휘하는 신시내티 교향악단 연주[7]
일본 육상자위대군악대M101 105mm 곡사포를 이용하여 연주하는 영상[8]

한편 1881년에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해 독주곡(#) 및 연탄곡(신미정, 박상욱 연주) 두 버전을 내놓았다.

2. 곡의 형태

제목이 붙은 표제음악이고 실제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음악을 진행시키기 때문에 서사시 풍으로 진행된다. 기존의 소나타 형식이나 론도 형식 등 고전 양식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지만 음악에서 주가 되는 것은 러시아와 프랑스 양군의 전투와 러시아의 승리라는 도식이 되고 있다. 크게 3부로 나뉜다.

제 1 부
처음에는 Largo로 비올라 두 대와 첼로 네 대가 주가 되어 러시아 정교회의 성가인 '신이여, 백성들을 보호하소서(O Lord, Save Thy People/Спаси, Господи, люди Твоя)'를 인트로로 연주한다. 이는 러시아의 구원을 기원하는 기도이다.

이 서주의 테마가 끝나면 오보에의 독주로 제1주제가 하강선율로 시작되고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단호하고 무뚝뚝하게 응답한다. 이 주제는 정교회 성가에서 취재한 것으로서 나폴레옹 대군의 불법 침입을 알게된 러시아 국민의 신에 대한 기도와 분노를 묘사하고 있다. 주저하지 않고 저음으로 뚝 떨어지는 현악기와 바순이 동원령을 선언한다.

제 2 부
Andante
군대 북의 울림과 더불어 우군이 도착한다. 팀파니의 여린 트레몰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끔음(오르간 포인트), 거기에 스네어드럼의 리듬을 타고 오보에와 클라리넷과 호른이 러시아군을 상징하는 군악대풍의 제2주제를 연주한다. 이 주제는 사열을 정돈한 군대의 행진이다. 승리를 바라는 민중의 기도를 나타낸다.

Allegro giusto
이어서 템포는 빨라지고 e♭ 단조로 바뀐다. 제1바이올린의 선율이 흐르고 이후 클라리넷이 선율을 다시 연주한다. 그 이후 작게 종지가 되고 금관악기들의 선율에 나머지 악기들은 16분음표들로 빠르게 순차 상하행 가락이 여러 악기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나온다. 그 후 다시 플룻, 오보에, 제1, 2 바이올린이 앞서 나온 선율을 연주하다가 이 주제가 잠잠해질 즈음 제3주제로 프랑스군을 상징하는 주제가 금관악기들에 실려 나오는데 다름아닌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다. 다만 거의 호른만 연주한 러시아군 주제와 달리 이 프랑스군 주제는 모든 금관악기가 전부 가세해서 연주하기 때문에 전쟁 초기의 적군의 우세를 상징한다. 우군은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락은 일변하여 F♯ 장조로 바뀌고, 아름다운 민요조의 제4주제가 제1, 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로 조용히 노래된다. 이 주제는 노브고로드 지방의 민요(At the Gate, Gate/У ворот, ворот)에서 취재한 것이다.

조는 또 e♭ 단조로 바뀌고, 춤곡풍의 제5주제가 p로 들려온다. 이것은 프랑스군에 대항하는 모스크바 시민을 묘사한 것이라고도 한다.

가락은 다시 C장조로 바뀌고 마침내 대난전이 펼쳐진다. 눈보라가 몰아 쳐서 마침내 프랑스군을 곤경에 빠뜨린다. 프랑스의 <라 마르세예즈> 가락이 점차 사라지고 러시아 민요 선율이 두드러지며 승리를 예견한다.

제 3 부
프랑스군이 마지막 힘을 다해보지만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대포가 첫 포성을 터트리면서 프랑스군은 완전히 격퇴되고 빠른 음형의 현악기들이 묘사하는 '부란(러시아의 거센 눈보라)' 에 막혀 잘게 쪼개지면서 <라 마르세예즈> 가락은 완전히 사라진다.

눈보라가 가시고 나면 템포는 다시 Largo가 되고 첫머리에 소박하게 연주되었던 제1주제인 정교회 성가가 금관악기들의 주도로 장엄하게 재연되고, 승리를 축하하는 성당의 종소리도 같이 울려퍼진다.

이것이 장대하게 부풀어 오르면 템포는 Allegro vivace가 되고 러시아군 주제가 전합주로 더욱 각 파트에서는 ffff의 제2주제가 나타나고, 당시 러시아 국가였던 '신이여 차르를 보호하소서(Боже, Царя храни)'의 초반부 선율과 함께 모든 성당의 종이 일제히 울리며 장엄하게 마무리 된다.

악기 편성은 약간 변형된 2관편성인데, 다음과 같다.

피콜로/플루트 2/오보에 2/코랑글레/클라리넷 2/바순 2/호른 4/코넷 2/트럼펫 2/트롬본 3/튜바/팀파니/베이스드럼/스네어드럼/심벌즈/탬버린/트라이앵글/현 5부(바이올린 I&II-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그리고 후반부에는 위에 쓴 것처럼 대포와 종, 별도의 금관악기 연주자들이 더해진다.[9]

3. 특수 효과

윗 항목의 악기 편성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 곡은 일반적인 악기들 외에 대포소리와 종소리가 정식으로 포함된 곡으로도 유명하다.[10] 야외 연주를 염두에 둔 것이라 이러한 발상이 가능했는데, 정작 초연 때는 실내에서 얌전히 공연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공연에서는 이 효과를 생략하거나 축소해서 연주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아무리 공포탄을 쓴다고 해도 콘서트홀 안에 대포를 방열하고 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종소리도 교회 등지에서 연주하지 않는 이상 재현하기 어렵기 때문. 그래서 실내 연주 때 대포 소리는 베이스드럼을 단단한 북채로 힘껏 두드리는 것과 해머를 이용하는 것으로, 종소리는 튜블러 벨을 난타하는 것으로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녹음 기술의 발달 덕에 콘서트홀은 아니더라도 음반에서 이 효과를 구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헝가리 출신의 지휘자 언털 도라티가 1958년에 미국 음반사인 '머큐리'에서 취입한 녹음이 최초로 기록되었다. 우선 미니애폴리스 교향악단의 관현악 연주 만으로 녹음을 마친 뒤 거기에 남북 전쟁 당시 쓰였던 대포의 격발음과 교회 종소리를 별도 녹음한 것과 더빙해 레코드로 완성시켰다.

이렇게 나온 음반은 녹음 기술의 발전을 상징하는 아이콘처럼 여겨졌고 소위 '오디오파일' 에 속하는 매니아들에게 더없이 좋은 수집품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물론 이후에도 이 녹음보다 훨씬 생생한 대포소리와 종소리를 담은 음반들이 계속 나왔고 몇몇 음반들에는 '스피커 파손 주의'라는 경고문까지 적혀 있을 정도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에리히 쿤젤이 신시내티 교향악단을 지휘해 텔락에 취입한 음반인데 버지니아 연대가 보유한 18세기 청동대포와 100m 높이에 달린 커티스 메모리얼 홀의 종을 디지털로 녹음했다. 커버에는 "경고! 디지털 대포 소리. 스피커 파손 주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실제로 웬만한 LP 플레이어로는 대포소리가 재생되지 못하고 트래킹에 실패해 바늘이 튀기 십상이었다. 어찌 재생했더라도 스피커에서 스파크가 튀며 폭발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의 한 음악잡지에서는 이 음반을 소개하면서 다이내믹 레인지를 기록한 표도 수록했는데 거의 흑백에 가까운 극단적인 그래프와 엄청난 저음부 음량을 볼 수 있었다. 이 음반의 인기에 힘입어 이 곡을 재녹음했는데 더 좋은 음질과 더 충격적인 대포 소리, 키로프 합창단을 동원해 합창단 노래도 같이 수록했다.

좀 특이한 컨셉의 후속 음반들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유진 오르먼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안토니오 파파노,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가 지휘한 것들인데 첫머리의 성가 시작 부분을 기악 연주가 아닌 합창단의 노래로 대체했다[11]. 특히 카라얀의 경우 러시아 내전 때 서방으로 망명한 코사크 기병 출신 남성들로 구성된 돈 코사크 합창단을 기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르먼디의 녹음에는 첫 부분에 오르간도 같이 편성되어 있다.

테너 가수로 유명한 플라시도 도밍고도 차이콥스키 사망 100주년 기념으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해 EMI에 취입한 음반에서 영국 왕실 근위대의 포병대 협조로 별도 녹음한 포성을 더빙했고 종의 경우 런던의 종 공장에서 주조한 진짜 교회 종을 빌려와 관현악단 뒷편에 설치하고 같이 쳤다. 거기에 후반부 성가 재연 때는 관현악의 금관 스펙 그대로 브라스를 증편한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굵직한 저음을 얻기 위해 콘트라베이스 주자 10명을 추가 기용하고 녹음 장소인 올 세인츠 교회의 파이프오르간까지 동원하는 빠방한 물량 공세로 화제가 되었다.

러시아에서도 1993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사망 100주년 기념 콘서트의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었는데 이때도 종과 대포가 원래 편성 그대로 연주(?)되었다.[12] 미국의 애틀랜타 교향악단은 실내에서 이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미리 녹음한 대포 소리를 대형 스피커로 보내주면서 무대 앞에 폭죽까지 설치해 펑펑 터뜨리며 연주했는데 폭죽의 화염 때문에 콘서트홀 내부의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오히려 개그콘서트급 연주가 되고 말았다.

야외 연주에서는 이런 제약이 좀 덜한 편인데 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발트뷔네 콘서트에서 연주한 영상을 보면 종소리는 튜블러 벨로 내고 있지만 대포소리는 무대 앞에 설치된 폭죽과 공포탄을 발사해 소리를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외에 일본에서도 가끔 이 곡의 연주 때 대포와 종소리를 그대로 살려서 공연하는데 실내 공연은 아니고 육상자위대의 화력전 훈련장 등지에서 대규모 취주악단용으로 편곡한 버전이 공포탄 사격과 함께 연주되는 진풍경을 연출한다고 한다.처음 공포탄을 발사할 때 "꺅!" 하는 소리는 덤 몇몇 촬영본은 어린애들 우는 소리에 후반부의 장엄한 분위기가 깨진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음악과 전포대장의 사인이 안맞아 어긋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니...[13]자식들 빠져갖고 이 동영상 참고.[14]

한국에서도 국방부 예포대의 협조를 받아 105mm 견인곡사포의 공포탄 사격과 함께 한 번 연주된 적이 있지만 국방부의 협조를 받기 어려운지 이후에는 실제 화포 사격이 곁들여진 연주 기회는 없는 듯 하다.

4. 단점

차이콥스키 자신이 지적한 대로 여타 관현악 작품들에 비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효과에만 치중한 탓에 음악적인 한계도 명백히 드러난다.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15]에 비견되는 졸작으로 취급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 그리고 대포소리와 종소리의 재현이나 대체가 어렵다는 이유로 공연이 반려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곡은 1812년 당시의 고증에 안 맞는 면이 있다. 인용된 라 마르세예즈는 나폴레옹이 집권 후에 프랑스 공화국이 프랑스 제국으로 개편되면서 공식국가 지위를 내려놓았고 프랑스 제국의 공식 국가는 출발의 노래였다.[16] 그리고 인용된 러시아 제국의 국가인 "신이여 차르를 구하소서"는 1833년에 공모에서 도입된 것으로 1812년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몇 주만에 급조된 곡이라 작곡가 스스로가 밝혔듯이 사실 독창적 멜로디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주요 멜로디는 기존에 있던 곡들을 인용한 것이며 이를 표제음악으로 이어 놓은 것은 차이콥스키의 대단한 재능이긴 하지만 스스로는 불만족스러웠을 것이다.

5. 표제음악으로서 정치적 의의

5.1. 러시아

5.1.1. 소련 시절

소련 시절에는 금지곡이 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제정이 몰락하고 공산정부가 들어서자 도입부와 결말부에 정교회 성가 "주님, 당신의 백성을 구하소서(Спаси, Господи, люди Твоя)"이 인용되어 있고[17] 특히 결말부에는 이 성가와 이어지며 인민의 적이었던 차르를 숭배하는 러시아 제국의 국가인 "신이여, 차르를 구하소서(Боже, Царя храни!)"도 인용된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이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차르에게 빵을 구걸했다가 수백명이 차르의 군대에 학살당한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 사건 이후 차르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나빠진 것도 한 몫했다.

하지만 1945년 소련이 히틀러와의 대결인 대조국전쟁에서 승리하자 러시아가 나폴레옹과 대결해서 승리했던 1812년 전쟁이 재평가되었는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이 웅장한 곡을 사장시키는 것은 너무 아까웠기 때문에 연주할 궁리를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문제가 된 차르 찬가 대신 다른 선율로 땜빵하는 방법이었다. 비사리온 셰발린[18]이라는 작곡가가 소련 정부의 지시로 이 작업을 떠맡았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애국심을 상징하던 미하일 글린카오페라 '이반 수사닌(Ivan Susanin/Иван Сусанин)'에 나오는 합창 '영광(Славься)'의 멜로디를 "신이여 차르를 구하소서" 대신 넣었다. 또 도입부와 말미의 정교회 성가 "주님, 당신의 백성을 구하소서"는 원래 합창이 붙어 있지만 곡만 연주하게 되었다.


1974년에 녹음된 소련 버전의 결말부. 하느님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성가의 코러스는 사라지고 연주만 되며 2:45부터 러시아 제국의 국가인 "신이여 차르를 구하소서"가 글린카의 "영광"으로 대체되었다.

좀 아이러니한 것은 글린카의 해당 오페라는 17세기 대동란 당시의 전설적 인물인 이반 수사닌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라는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당시 폴란드군이 로마노프 왕조 초대 차르로 즉위하려는 미하일을 찾아 죽이려고 하자 수사닌은 길안내를 해 주겠다고 자청해 폴란드군을 이끌고 숲속 깊은 곳으로 가 길을 잃게 하여 같이 동사했고 그 틈에 미하일은 살아남아 로마노프 왕조를 개창했다. 수사닌은 이렇게 로마노프 왕조의 대표적인 충신으로 대대로 기려졌으며 이 오페라는 이런 전설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사실 이 글린카의 "영광"은 이 오페라의 종막인 결말 부분에 나오는 합창곡으로, 수사닌의 희생을 통해 살아남은 미하일이 차르로 등극하는 대관식을 할 때 울려퍼진다. 가사만 보면 "신이여 차르를 구하소서"나 대동소이한 내용이었다. 이 오페라의 부제가 '차르에게 바친 목숨(A Life for the Tsar/Жизнь за царя)'이었을 만큼 목숨을 바쳐 제정에 충성을 바치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곡이 워낙 좋은 데다 신이나 하느님 같은 종교색이 가사에 전혀 없었기 때문에 스탈린 시절에 가사만 살짝 개사되어[19] 군가로 쓰였다. 그리하여 차르를 찬양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 내용이 가사에 있는 "신이여 차르를 구하소서"보다는 거부감이 훨씬 덜했다.

여담으로 소련은 이 곡뿐 아니라 슬라브 행진곡, 대관식 축전 행진곡과 같은 차이콥스키의 여타 차르 찬가 인용 작품들도 글린카의 노래 선율로 땜빵하거나 아예 그 부분을 삭제했고 수정된 곡들은 소련 정부에서 공인한 '신 차이콥스키 대전집'의 악보로 묶여 출판되었다.

제1세계에서는 이런 개정을 원곡 훼손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소련의 입장에서도 차르는 명백한 구체제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차르 찬양에 관련된 음악을 가만히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음악에서 차이코프스키 작품을 금지곡으로 지정하여 배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명백한 차르 찬양 곡조만 개정해 살려두는 것이 그나마 차이코프스키를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소련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였던 것이다.

사실 정치적 이유로 인한 금지곡 지정 문제는 소련만의 문제는 아니고 국제적으로도 혁명이나 전쟁에 관련되었다는 등의 사유로 인해 자주 일어난다. 이스라엘에서는 리하르트 바그너반유대주의적 성향 때문에 바그너의 모든 곡의 공개연주가 금지되어 있다. 유럽에서도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나치 관련 곡들은 영화 같은 특수한 사정 아니면 모두 연주가 금지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며 1990년대까지 여러 곡들이 금지곡이었다가 민주화 이후 풀린 바 있다. 이와는 반대로 1980년대까지 널리 불렸던 선구자라는 가곡은 금지곡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가사의 친일 논란 때문에 1990년대 이후 부르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5.1.2. 소련 붕괴 이후

소련 붕괴 이후에는 국가 무신론이 폐지되고 러시아 정교회가 다시 국교의 지위를 회복했으며 차르의 제정이 저지른 폭정의 기억도 희미해졌기 때문에 다시 원래의 차이코프스키 버전으로 회복되어 연주되고 있다. 가끔은 소련 버전도 연주된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1995년 승리의 날 50주년 기념 열병식. 1812년 서곡의 소련 버젼은 44분 6초에 시작된다.[A][21]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1996년 승리의 날 51주년 기념 열병식. 1812년 서곡의 소련 버젼은 58분 6초에 시작한다.[A][23]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1997년 승리의 날 52주년 기념 열병식. 1812년 서곡의 소련 버젼은 1시간 0분 50초에 시작한다.[A][25]

그렇다고 아예 연주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1995년 승리의 날 5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분열 후 군악대 공연에서 1812년 서곡의 소련 버젼이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연주된 부분은 1812년 서곡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4분 정도다.[26][수정부분] 1996년, 1997년에도 1995년과 동일하게 승리의 날 기념 열병식 군악대 공연에 1812년 서곡의 소련 버전이 연주되었다. 하지만 1997년을 마지막으로 이듬해부터 군악대 공연이 군악대 분열[28]로 교체되었다. 이렇게 공식 행사에서 1812년 서곡의 소련 버전의 연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로마노프 왕조에 대한 반감이 수그러들고 러시아 정교회가 다시 국교의 지위에 오른 러시아 연방에서는 다시 차이코프스키의 원래 버전이 연주되고 있다.

지금도 음악사회학 등 관련 학문에서 자주 떡밥으로 인용되고 있는 사례.[29]

5.2. 프랑스

프랑스가 딱히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나라가 아니지만 이 곡은 너무나 명백하게도 프랑스의 패배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공연과 녹음을 대단히 꺼린다는 카더라가 있다. 음악이 아무리 만국공통어라지만 이렇게 역사적인 사실의 묘사에 치중하고 특정국가를 처참하게 발라버린 음악은 결국 수용에 한계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은 프랑스 입장에서는 흘러간 이야기고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1제국의 역사적 공과에 대한 평가[30]는 이미 끝났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패배를 그리는 이 곡은 현대 프랑스 공화국 입장에서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프랑스는 권위주의적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프랑스 역사에 등장한 여러 인물들의 평가가 자유롭고 이런 분위기에서 프랑스군을 악역으로 묘사한 이 곡도 자유롭게 연주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곡 자체도 나폴레옹 3세의 퇴위로 보나파르트 왕가가 몰락한 후인 프랑스 제3공화국 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대에도 금지곡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이 곡은 프랑스에서도 종종 연주된다.[31]

2009년 에펠탑 건설 120주년을 맞아 연주된 적도 있고# 2014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성대하게 연주되기도 했다.#한국어 댓글이 유독 신경쓰인다

그래서 이 곡과 관련된 유튜브[32] 동영상을 보면 검색하면 이 곡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프랑스어 댓글들이 종종 있는데 프랑스인이 썼는지 벨기에, 스위스, 캐나다, 아프리카 등 프랑스가 아닌 프랑스어권 국가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자국 역사와 관련 있는 작품이니 관심을 가질 법도 하다.

비슷한 사례로 라데츠키 행진곡이 역사적인 이유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연주되지 못했던 적이 있다.# 헌데 라데츠키 행진곡은 이탈리아가 피해자인 데 반해 1812년 서곡은 프랑스가 침략자라는 게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5.3. 미국

미국에서도 꽤 유명한 곡이었다. 발표 당시 작가의 고향인 러시아에서는 미지근한 반응을 얻은 반면 차이코프스키는 미국에서 이 곡을 직접 지휘해서 공연한 바 있는데 미국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마침 이 곡의 제목인 1812년 서곡이 과거 미국이 종주국인 영국과 대등하게 싸운 미영전쟁[33] 또는 미국 독립 전쟁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지금도 이 곡을 독립기념일 같은 국경일에 공연하고 있다.

"올바른 신앙을 가진 백성들이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서 세계 최강의 침략자를 격퇴했다는" 이 곡의 주제는 막강한 영국군에 대항해 봉기한 식민지군의 이미지와도 잘 맞기에 미국인들은 이 곡을 과거 종주국이었던 영국을 물리친 기념곡으로 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아예 러시아어로 된 성가 부분을 영어로 번안해서 연주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1974년 이래 매년 워싱턴 D.C에서 독립기념일에 연주하기도 했다.



2014년 워싱턴 DC 내셔널 심포니 공연 및 불꽃놀이 공연

하지만 러시아 국수주의가 담겼다는 이 곡의 정치성 때문에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미국에서는 준금지곡이 되었다. 샌디에이고 심포니를 비롯한 여러 미국의 교향악단은 이 곡의 공연을 잠정 중단할 것을 선언했다.[34]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27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음악성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워낙 유명하고 알아듣기 쉬운 곡이므로 대중매체에서도 적잖이 활용되고 있다. 유명한 사례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국의 국회의사당이 폭파될 때 수많은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군중들이 그것을 지켜보는 장면에 삽입된 음악. 전제왕정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작곡된 곡이 민주주의 혁명의 상징으로 전용되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폭파 씬의 효과음과 싱크로율이 기가 막혔다. 이 연출의 백미는 연주 중 실제 대포를 쏴야 하는 장면에 폭발음으로 씽크로를 맞춘 것도 있지만 이보다 더한 건 음악의 클라이막스에 승전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와야 하는 부분이다. 영상에서 빅벤이 파괴되면서 그 안의 종이 흔들리면서 종소리를 내고 있다. 원곡의 의도와 비교했을 때 굉장히 역설적으로 편곡되었다. 라 마르세예즈에서 따 온 멜로디는 원곡에서는 프랑스군을 상징해서 점점 잦아드는데 영화에서는 오히려 점점 고조된다. 게다가 원곡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한다는 의미로 삽입되는 대포소리를 기점으로 빅벤이 박살난다.[35]

라쳇 & 클랭크 시리즈 중 하나인 시간의 틈새에서는 작중 최강 무기인 라이노 V의 발사음으로 활용되었다.(…)

타이니 툰에서 플러키 덕이 극중 모루 행진곡 덕에 라이브 연주로 모루를 신나게 맞고 이게 끝나자 마음놓지만 다음 연주곡이 바로 이 곡이라 진짜 대포를 쏴대는 통에 마지막에는 대포에 맞고 하늘의 별이 되어 버린다.

대중매체는 아니지만 NWC 2.0 이상 버전의 샘플곡 중 하나다.

히어로스톰 17화에서도 사용되었다.

게임 톰 클랜시의 디비전에서 러시아 영사관의 도서실에서 나오는 음악이다.

게임 Guts & Blackpowder에서 프랑스 파리가 좀비들한테 함락당하기 직전에 나온다.[36]

삼성 라이온즈 소속 내야수 강한울의 응원가로도 사용된다.

존 윅: 리로드의 예고편을 1편에서 존 윅이 총을 쏘는 장면만 모아 슈퍼컷으로 만들어 곡의 엔딩장면과 결합해 <Sympony of Violance>란 이름으로 공개했다. 곡의 박자에 맞춰 총소리가 나도록 편집한 장면이 일품이다.



노다메 칸타빌레 극장판에서 치아키 신이치의 지휘하는 루 말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특히 3부의 그 대포 장면은 사무직원인 테오가 직접 대포를 터트린다.

아담스 패밀리 2에서 퍽슬리 아담스가 그랜드 캐니언을 무대로 대규모 폭파신을 보여줄 때 3부의 바로 그 대포 파트가 흘러나온다.

UCC에도 사용되기도 한다. 위의 프랑스 문단에서 각주 참조.

CM송으로도 쓰이기도 하였다. 주로 최후반부가 많이 쓰였다.
태광산업 에로이카 1980년대 초반
해태제과 러브러브 1984년 추정


[1] Torzhestvennaya uvertyura «1812 god», soch. 49[2] 1812년 서곡의 배경이 된 나폴레옹러시아 원정[3] 느리고 장중하게 연주되는 음악 작품.[4] 참고로 명분은 승리 기념식이었지만 자신의 즉위 25주년을 자축하는 행사로 기획되었다.[5] 참고로 최종 완공은 1883년에야 이루어졌다. 그나마 1931년에 스탈린의 심복 카가노비치가 러시아 정교회 탄압의 일환으로 다이너마이트로 송두리째 날려 버렸고 소련 붕괴 후 재건축이 시작되어 2000년에 완공되었다.[6] 왜 평범한지는 '특수 효과' 항목 참조.[7] 진짜 대포 소리를 디지털로 녹음해 오디오파일들에게 악명이 높은 음반이었다. 영상의 12:35 정도부터, 그리고 14:40 정도부터 대포 소리가 나온다.[8] 해당 영상의 07:55와 10:03 구간에 곡사포를 쏘는 장면이 나온다.[9] 추가되는 금관악기는 총보에 'Banda'라는 이름의 피아노 축약본 형태로 기보되어 있으며 악기의 종류 및 인원은 지정되어 있지 않다. 이 부분은 실제 정규편성의 금관악기 악보를 모아 2단의 보표로 축약한 것이다. 악보에 구체적인 지시가 없는 만큼 실제 연주에서는 다양한 편성으로 연주된다. 파이프 오르간을 사용하거나 합창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10] 다만 이 곡이 처음은 아니다. 헨델이 영국에서 작곡하고 초연한 '왕궁의 불꽃놀이'라는 곡의 야외 연주 버전에서 대포를 동원한 것이 최초이다. 덕분에 초연 도중 화재사고가 발생했다.[11] 스토코프스키와 파파노, 페도세예프는 이 성가가 재현되는 후반부에서도 합창단이 같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12] 대포는 콘서트홀에서 다소 떨어진 거리에 예포대 1개 포대를 배치해 공포탄을 쏴서 소리를 섞었다. 포는 음량 균형을 위해 2차 대전 당시의 견인포를 썼지만 음악과 정확히 맞추기 위해 사격지휘소(FDC) 시스템은 현대화된 그대로 운용했다.[13] 들어보면 발포 타이밍이 원래에 비해 거의 반박자 가량 느리다.[14] 육상자위대 동부방면대 본대·1사단·12여단 음악대 2007년 연주. 2010년에는 조금 나아지긴 했다.[15] 이 곡도 초연 때 여러 대의 베이스 드럼과 스네어 드럼을 동원해서 총소리와 대포소리를 모방했다. 지금 녹음할 때는 물론 실제 소리를 따로 녹음해 더빙하는 경우가 대부분.[16] 둘 다 프랑스 혁명군의 군가이긴 한데 출발의 노래가 좀 더 가사가 온건하고 좀 더 무거운 느낌을 준다.[17] 이 부분의 가사는 "당신의 십자가로 우리를 구하소서"라며 예수에게 적을 쳐부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내용이다. 당연히 무신론을 내세운 소련에서는 합창곡으로 부르기 거북한 내용이다.[18] 1902-1963. 서방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소련 최고의 작곡가 중 한 명이었다.[19] 가사 중 "우리 러시아 차르님"(наш русский Царь)을 "너, 나의 러시아여"(ты Русь моя)로 바꾸어서 차르 찬양을 국가 찬양으로 바꾸었다.[A] 영상 게시자가 HTML 사용을 금지하는 바람에 시간을 지정할 수 없다.[21] 출처는 https://youtu.be/uZqx9VXsMQU?t=44m6s이다.[A] [23] 출처는 https://youtu.be/Bs2WUzTTb8A?t=58m6s이다.[A] [25] 출처는 https://youtu.be/xvD7WcuQnE0?t=1h50s이다.[26]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소련 버젼에서 오페라 '이반 수사닌'에 나오는 '영광'의 멜로디가 나오는 부분을 아주쥐꼬리만하게조금 수정해서 연주한다.[수정부분] 수정된 부분은 '영광' 멜로디의 두번째 작은 악절이다. 멜로디 3마디가 바뀌고 종소리가 4~6초간 지속된 후 연주한다.[28] 이때 쓰이는 곡이 승리의 날이다.[29] 소련 정부의 개찬 신전집과 이전 악보의 차이는 다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mp3 파일로 들어가며 구별할 수 있으니 해당 링크 참고.[30] 프랑스 내에서는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가 영웅/독재자로 나뉘지 어느 한 쪽으로 맹목적으로 치우쳐 있지는 않기 때문.[31] 프랑스에서 현재 금기시되는 것은 나치 찬양이나 알제리 전쟁을 다시 거론하는 것이다. 나치 찬양은 전 유럽 공통으로 금기시되며 1950년대의 알제리 전쟁은 자유, 평등, 박애를 앞세운 현대 프랑스 공화국의 이념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독립을 요구하는 수많은 알제리인들을 학살한 흑역사라서 프랑스 정부도 덮어두고 싶어한다.[32] 오디오 보관함에도 수록 되어 있어, 이 곡을 영상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33] 미영전쟁을 미국에서는 war of 1812라고 부른다.[34] 참고로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도 모든 러시아 음악가의 연주가 금지되었다. 차이콥스키도 물론 금지되었다. 정작 차이콥스키는 부계가 우크라이나계다...[35] 원곡의 진행과는 다르게 영화 장면에 맞추어 편곡이 이루어졌다. 원곡과 비교해 보자면 우선 영화에 나온 부분부터 47마디가 잘리고 Largo 끝에서 5마디 전으로 간다. 종소리는 Largo에서가 아닌 빅벤이 터질 때 한 번 들리지만 악보상으로는 해당 시점에서 종이 연주되지 않는다. 폭발음이 싱크로와 맞은 부분도 물론 있지만 피날레에서 11번만 나오는 대포음과 다르게 폭발음이 더 많이 들린다. 또한 원곡이 마지막에서 18번째 마디를 4번 반복하는 데 반해 영화에서는 6번 반복하고 마지막에서 9마디 전부터는 빼고 다시 마지막에서 27마디 전부터 다시 반복한다.[36] 시대도 나폴레옹 전쟁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