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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사업이 아니더라도 휴대전화 제조 이력 기준. (해체가 아닌 철수의 경우 가능한 당시 로고로 기입) |
TG삼보 TG SAMBO | |
정식명칭 | 삼보컴퓨터 주식회사 |
영문명칭 | Trigem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대표 | 이홍선[1] |
설립일 | 1980년 7월 2일 |
업종명 | 컴퓨터 제조업 |
본사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능안로 98-12 (신길동) |
직원 수 | 115명[2] |
홈페이지 |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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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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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PC 제조사이다. 1990년대에는 한국 IT의 아이콘 같은 기업이었으나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몰락했다.
예전엔 그냥 삼보컴퓨터였으나 2002년에는 상표로서 TG삼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단, 사명은 계속 삼보컴퓨터였다. TG는 초기부터 사용한 영문명칭 TriGem의 약자로, 삼보(三寶)를 영어로 옮긴 것이다.[3] 어쩐지 불교의 삼보(불·법·승)가 연상되지만(한자는 같다), 창업자 이용태 명예 회장의 종교는 유교[4]다. 회사명에서 말하는 세 가지 보물은 인재·기술·서비스.
1990년대에는 사업을 확장하면서 매출액이 4조원에 달하는 등 상당한 규모를 이뤘다. 정부 규제 대상 대기업 집단에 지정되고 창업자 이용태 회장이 전경련 부회장으로 활동했던 게 이 시기이다. 그러나 PC 제조업이 진부화되고 신사업으로 노렸던 통신업에서 큰 손실을 보면서 2003년에는 자본 잠식에 빠졌다. 급기야 회사 정리 절차가 개시되면서 상장 폐지되고 말았다.
2012년에는 창업주의 차남 이홍선이 이끄는 나래텔레콤에 역인수되었고, 나래 텔레콤은 이름을 'TG 나래'로 바꾸었다. 거기다 정부 입찰 참여를 위해 반대로 중소기업 지정을 받았다. 이 때 PC 사업을 따로 분리했는데(신 삼보컴퓨터), 기존 삼보컴퓨터 법인은 에스컴으로 간판을 바꿔 달며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실제로 완전히 정리된 시기는 2016년이며, 이 과정에서 구 삼보컴퓨터의 주식도 함께 정리했다. 구 삼보컴퓨터가 상장폐지당할 당시 물린 투자자라면 신 삼보컴퓨터 주식을 조금 갖고 있을 것이다.
2017년 현재는 공공 부문에 주력하면서 실질적으로 소비자 시장에서는 발을 뺀 상태이다.
본사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능안로 98-12 (신길동 1125-1번지) 소재. 서울사무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구기동 127-1번지에 있다.
역오각형 안에 T자 형태로 된 초창기 로고는 한컴오피스 한글에 특수 문자로 실리기도 했다. HNC 코드 0x37E3으로, 유니코드에는 번들된 폰트에 한해 사용자 정의 영역인 U+F03ED에 들어있다.
2. 초창기
1980년에 사무실 등 업무용 컴퓨터를 생산하였던 것으로 시작한다."청계천에 있는 한 창고에서 다섯명이 모여서 만든 회사."라는 말도 있었는데, 사실은 이용태 박사 포함 7명이 자본금 1000만원으로 '삼보전자엔지니어링'을 설립했고 회사 이름 '삼보'는 세 개의 보석(三寶)이라는 뜻이다. 초기에는 영문 명칭 트라이젬(TriGem)을 사용했으나[5][6], 2002년 TG로 바꿨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 출범과 동시에 경제수석 자리에 오른 김재익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반도체, 전자, 컴퓨터 산업에 대한 조언을 계기로 1981년 '전자산업육성방안'이 국가 시책으로 발표되었고 이후 관련 사업들이 정책적 지원을 받아 빠르게 성장하게 되었는데 삼보트라이젬도 그에 따라 가파른 성장을 하게 된다.
1984년 개봉된 신성일 주연의 영화 "장남"의 초반 부분에 삼보컴퓨터 조립라인과 회사 내부가 나오는데, 이미 이때 즈음부터 국내 기준으로 어지간히 큰 컴퓨터 기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회사 설립 6개월 만인 1981년 1월 한국 최초의[7] 컴퓨터인 SE-8001을 만들었으며, 당시 컴퓨터는 한글을 전혀 구현할 수 없었기에 이를 대신해서 한글 카드를 통하여 한글을 구현하였다. 이후 1982년 애플2 컴퓨터의 호환기종인 트라이젬20을 선보였는데 이는 국내에 개인용 컴퓨터라는 최초의 PC로서 자리잡게 되었고, 당시 애플2의 세계적인 판매 흐름에 맞추어 많은 수가 팔리게 된다. 이에 PC 시장의 가능성을 알아챈 금성사, 삼성전자, 대우전자 등의 국내 대기업들이 속속 PC 시장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1985년 10월에는 국내 제조사 최초로 IBM PC AT 호환기종인 트라이젬 286을 출시했는데 당시 가격으로 500만 원에 달하면서 자동차 포니 2보다도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꿈의 PC였으나 디자인까지도 IBM PC AT를 고스란히 베낀 흑역사스러운 면도 있었다.[8]
3. 전성기
한국의 컴퓨터 산업이 정보화, 특히 정부의 컴퓨터 교육 강화에 힘입어 커지면서 삼보컴퓨터도 급성장 가도를 달렸다. 특히 1990년대 초기 삼보는 전문 컴퓨터 기업의 첨단 이미지를 내세워 오히려 삼성전자나 대우그룹 계열[9]에 비해 고급 기종에서 고마진을 챙기는 쪽이었다. 대우전자가 MSX, 삼성전자와 대우통신이 XT급에서 아귀다툼을 벌인 데 비해[10] 삼보는 일찌감치[11] 286 이상급에서 고가정책을 폈다. 이는 1993~1994년경 486 급에서 삼성이 매직스테이션 브랜드로 1위 자리를 굳히기까지 지속되었다. 우리가 지금 기억하는 저가 삼보는 그 이후의 이야기.PC 이외에 주변기기, 특히 세이코 엡손제 프린터를 한국에 도입 판매하였다.[12] 워드프로세서인 "보석글"도 이 회사의 제품. 다만 보석글은 엡손 프린터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으며[13], 정부 행정망은 금성소프트웨어의 하나 워드다 보니 삼보 PC 번들 소프트웨어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1992년쯤에 나래 이동통신(삼보 컴퓨터 계열)이 세워졌고, 1996년쯤에 두루넷(삼보 컴퓨터 계열)도 세워졌다. 1997년 후반에 나래 텔레 서비스(고객 상담)(나래 이동통신 계열)가 세워졌고 1998년 즈음에 나래 텔레콤과 나래 통신 기술(엔지니어링)(나래 이동통신 계열)이 세워졌다. 나래 텔레콤은 1998년 초순에 국제 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나래 이동통신은 1993년부터 2000년까지 무선 호출기 '015 나래텔'을 사용했다. 업종별 전화번호부 '나래 옐로우 페이지'도 있었다. 2000년쯤에 접어들어 이름을 '나래앤컴퍼니'[14]로 바꾸었으나 2003년 하순에 부도났다.
1997년에는 매출 1조를 달성했으며 1998년에는 현재 인텔 CPU와 기가바이트의 유통사 중 하나인 피씨디렉트를 설립했으며 , 피씨디렉트와 AS 제휴와 CPU 및 SD램 공급계약도 체결한다.[15] 1999년에는 미국 법인 e-Machines를 통한 저가 PC 미국 수출로 급성장을 달성하였다. 사업 다각화를 위하여 나래이동통신(수도권 무선호출), 두루넷[16][17](고속인터넷), 한빛방송(케이블 TV)[18] 등에 출자한 것도 이 시기이다. 2000년에는 매출액이 4조를 넘겨 신흥 IT재벌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3.1. 삼보컴퓨터 체인지업의 대히트
자세한 내용은 삼보컴퓨터 체인지업 문서 참고하십시오.4. 2000년대 이후
이렇게 커진 삼보컴퓨터는 단 10년도 가지 못하고 무너졌다.삼보는 PC 판매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사업 다각화를 감행했는데(다 컴퓨터와 정보통신 관련이긴 하다) 무선호출기, 시티폰, 초고속 인터넷, 케이블 방송, 증권업, 벤처 투자, 소프트웨어 개발 등등 50여개의 업체를 설립했으나 전부 망하면서 삼보에겐 부채만 남겨주었다.[19]
또한 1990년대 말부터 급격하게 확장된 수출 사업이 오히려 짐이 되고 말았다. 삼보의 수출은 크게 계열사 e-Machines와 SOTEC을 통한 준 자체수출과, HP 등을 고객으로 둔 OEM 사업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전자는 저가 판매로 인해 손실이 컸고(수출 손실이 내수 이익을 압도하는 구조) 후자는 미국 시장 진출로 인한 마찰로 위축되었다. 게다가 대만과 중국의 OEM이 성장하면서 한국에서 생산하는 삼보가 밀렸다.[20] 결국 2001년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 철수했으며, 나중에는 99만원 노트북인 에버라텍 5500을 출시하여 시장을 뒤흔들기는 했으나 경쟁사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은데다가 부채도 너무 많았고 때는 이미 늦었다. 결국 2005년 부도처리가 되었다.
한국프로농구 출범 원년부터 강원도 원주시 연고의 프로농구단을 보유했으나 모기업 삼보컴퓨터가 경영난을 겪으면서 2005년 동부화재에 매각했다. (원주 나래 블루버드 → 원주 나래 해커스 → 원주 삼보 엑써스[21]→원주 DB 프로미)
2007년에는 IPTV 단말기 제조사 셀런[22]에 인수되었다.(이후 2010년 셀런의 도산으로 다시 워크아웃) 2008년에는 무한도전의 출연진(유재석, 박명수, 하하, 노홍철)들을 CF 모델로 내세웠다. 해당 영상
2012년에는 이전 부회장직에 있던 이홍선 대표(이용태 창업자의 아들)가 사업을 재인수했다. 대기업 취급받는 삼보가 정부 입찰에 들어갈 수 없는 문제로 PC 사업을 따로 분할하여 신규 법인(티지삼보로 설립한 이후 삼보컴퓨터로 사명 변경)에 이관하는 형식을 취했다.
현재 완제품 PC 사업에서는 공공부문에 주력하고 있으며,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는 다이소와 제휴를 맺고 키보드나 마우스, 헤드폰, 이어폰 등의 주변기기 등을 판매 중이다. 뿐만 아니라 HDMI 단자나 어댑터, 랜선까지 5000원 이하에서 폭넓게 판매하므로 당장 컴퓨터 주변기기가 급하게 필요한 사람은 다이소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딱 가격대만큼은 해주는 편.
5. 평가
전반적인 평은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성능의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 또한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대기업에 비해 가격이 좀 더 싸다는 메리트도 가질 수가 있다. A/S망도 비교적 건실하다.메인보드 백패널이나 프런트 패널(전원스위치, LED 등)을 변형된 독자규격을 고수하는 삼성전자 매직스테이션과 달리 삼보는 비교적 표준을 준수하려 해서 삼성전자 매직스테이션에 비하면 메인보드 교체라던가 업그레이드가 수월한 편이고, 프런트 패널 커넥터가 통짜로 되어있다고 해도 일반적인 리테일용 메인보드와 핀배열이 똑같다보니 그냥 꼽으면 완벽하게 호환된다. 이걸 이용한 마케팅이 삼보컴퓨터 체인지업이다.
그래서인지 한때 삼보컴퓨터에서 자체 생산한 메인보드들이 시중에 조립PC용 리테일 제품으로 공급되기도 했으나[23], 2000년대 이후부터는 메인보드 자체 생산을 중단하고, ECS OEM으로 때우는 중이지만, 이쪽도 삼성처럼 아예 독자적으로 커스텀된 제품이 아니고 그냥 시중에 판매되는 조립PC용 리테일 제품에서 포스팅 화면에 삼보컴퓨터 로고가 추가되고, 바이오스에 윈도우 정품 인증용 SLIC 코드가 들어간 수준이다.
그 덕분인지 케이스 우려먹기가 종종 있는 편인데, 2003년에 출시된 펜티엄4 노스우드 기종의 ATX 케이스를 6년 후인 2009년에 출시된 i7 920 블룸필드 기종에 우려먹은 전적도 있고, 2000년에 출시된 펜티엄3 기종의 M-ATX 케이스를 2007년에 출시된 코어2듀오, 애슬론64 x2를 사용한 기종에까지 7년간 우려먹은 적도 있다. 심지어 2007년에 나온 코어2듀오 콘로 기종의 케이스를 2015년까지 우려먹는 패기를 보이기도 한다. PC 케이스는 대부분 자체 디자인이지만, 2000년대초 망하기 직전에 쿨러마스터의 웨이브 마스터 케이스를 OEM으로 떼와 고성능 게이밍 PC를 기획했던 적도 있었다고...
2009년 6월 한글과컴퓨터를 인수한 적이 있으나, 2010년에 모회사 셀런이 도산하면서 한컴과는 다시 떨어졌다.
대우루컴즈와 더불어 가격이 싼 덕분에 관공서나 학교, 군부대 등에 자주 납품되는 업체. 하지만 유독 납품용만 불량률이 높은데다가 뭔가 구린 느낌이 있다 카더라. 특히 케이스의 경우는 구형 모델의 케이스를 너무 오래 우려먹어서 상당히 투박한 느낌을 주는 경우도 많다. 2010년대 들어 학교와 군부대를 포함한 공공기관 납품용 PC가 중소기업 보호 산업으로 지정되면서 이 시장은 TG삼보 - 대우루컴즈 - ATEC 3강, 주연테크의 1중, 나머지 기타 업체들의 구도였는데, 2017년에 삼보를 필두로 하는 3강의 공공기관 점유율이 75%가 넘어가서 조달청으로부터 납품중지 크리를 먹었다.
6. 제품군
6.1. 데스크탑
루온 시리즈를 내놓음으로서 나름대로 기술력을 과시했다. 모듈형 PC라든지 일체형 PC라든지... 다만 노트북용 부품을 이용한 탓에 업그레이드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점이 문제.메인보드는 저가형 ECS 보드에[24] 저전력으로 설계한다던가 DSP 윈도우 삽입 등의 OEM 커스텀을 넣어 사용한다. 요즘에는 ASRock 메인보드도 사용하는 듯하다.
2010년 10월부터는 지포스 9500GT를 필두로 그래픽카드 소매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자체 제작은 아니고 대만이나 중국의 저가 제조사에게서 OEM 형식으로 받아오는 듯. GTX 460 이후로 중단한 듯 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2005년 그룹이 해체되기 전까지 데스크탑을 HP에 OEM으로 공급한 적도 있다. HP 제품이라고 적혀있는데 막상 분해해보면 영락없는 삼보 컴퓨터(...). 당장 삼보컴퓨터 그룹이 해체된 이유가 자체 브랜드인 e-machins가 미국 장 점유율 3위까지 성장하자 HP가 위기감을 느껴 OEM을 끊어버렸고 이것이 급격한 유동성 위기를 불러와 그룹이 해체되는 결말을 낳은 것. 삼보컴퓨터가 엄청난 물량을 HP에 공급한 덕분에 한때 국내 수출제품 탑5에 컴퓨터가 포함되기도 했었다.
6.2. 노트북
TG삼보의 노트북은 대부분이 Hasee라는 중국 노트북 회사 제품을 ODM으로 떼오는 형식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르는 부분. 특히 TG삼보 노트북 중에서 2005년에 100만원대 미만의 가격에 출시되어 가장 히트를 쳤던 에버라텍 5500의 경우는, 거의 동일한 원조격 기종이 Hasee 자체 브랜드로 국내에 제갈량 S263C라는 이름으로 에버라텍 5500보다 더 낮은 가격에 발매 되어 팀킬을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보통 삼보 컴퓨터는 '가격대비 성능이 뛰어난 중저가형 중심'이라고 여겨지지만, 2010년에 출시된 에버라텍 7을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i7를 장착했으며, 공식 홈페이지에는 220만원대를 자랑한다.
아주 오래전에는 486, 펜티엄급 기종을 Clevo[25]에서 ODM으로 공급받아서 판매한 적도 있었고,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는 ASUS나 일본 소텍의 제품을 ODM으로 공급받아서 판매하기도 했는데, 소텍에서 ODM으로 공급받은 드림북 X 시리즈는 가벼운 무게와 마그네슘 바디로 나름대로 호평이었다.
6.3. 모니터
모니터는 AOC의 제품을 ODM으로 받아온다. 하지만 원 제조사들이 워낙 모니터 시장에서 품질과 서비스로 인정받은 기업이라 ODM으로 떼온 삼보 모니터를 굳이 살 이유는...2013년 70인치 모니터(M70KA)가 타사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300만원 미만)으로 나와 다나와 등 컴퓨터 계열 인터넷 커뮤니티에 충격을 주었다. 루리웹에서는 엑박이나 ps4 등을 물려서 사용하는 사람도 제법 되는 듯.
80인치 모니터M80KA가 TG앤컴퍼니에서 제작 가격은 400~500만원 물론 TV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분류에서 모니터로 분류된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IPTV로 갈아탄 상황을 고려해, TV임에도 동축 입력단자를 아예 제거하고 HDMI 단자만 달아놓았기 때문이다.
7. A/S 담당 브랜드 및 유통사
- TG삼보 - 제조하는 데스크탑, 노트북
- 한국레노버유한회사 - 레노버 데스크톱, 모니터, 노트북, 모토로라, 스마트폰 제품군[26]
- 로지텍코리아 - 로지텍 주변기기[27]
- 한국화웨이유한공사 - 화웨이 스마트폰, 태블릿PC
- 이마트 - 일렉트로마트 노트북, 노브랜드 TV
- 한국엡손 - 엡손 프린터, 스캐너
- 한국후지제록스 - 제록스 프린터, 소형복합기
- 두고테크 - 에이서 노트북
8. 관련 문서
- TG삼보 MSL : 2003년에 개최된 2차 MSL.
- 원주 DB 프로미 : 상술되어있듯 KBL 원년 당시부터 삼보컴퓨터에서 운영하던 프로농구단. 2005년에 동부화재(現 DB손해보험)에 매각하였다.[28]
- 아프리카TV : 운영사인 나우콤이 원래 삼보그룹 소속이었다.
[1] 李洪善. 1971년생. 창업주 이용태의 차남이다.[2] 2022년 기준.[3] TG라는 영문 약칭을 앞에 붙인 이유는 옛 조흥은행이 CHB조흥은행으로 바꾼 것을 선두로, 사실상 동어 반복이지만 사명 앞에 영어 이니셜을 붙이는 것이 유행하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4] 유교가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한국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과 별개로 현대 한국인이 유교를 자신의 '종교'라고 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애초에 유교는 한국인들에게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이나 사상으로 인식되기 때문. 종교 인구 조사에서도 2015년 기준 유교 신자 숫자는 0.2%에 불과하다. 이용태 명예 회장은 도산서원 원장을 역임했고, 중국 공자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요즈음에는 유교식 인성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5] 원래 1981년 한국 최초의 양산형 PC인 SE-8001을 출시할 당시에만 해도 삼보컴퓨터의 영문 표기는 SAMBO였다. 그러나 '삼보'(Sambo)라는 말이 스페인어나 영어로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혼혈을 비하하는 속어로 쓰인다는 문제가 지적되면서 이듬해 영문 표기를 사명의 영어 의역인 TriGem으로 변경하였다.[6] 노무현입니다의 인트로에서 광고가 짤막하게 등장한다.
[7] 물론 한국 최초의 컴퓨터는 아니고 정식 회사에서 상용화된 PC중의 얘기다. 단체나 개인적, 실험적 형태로 만들어진 개인용 컴퓨터나 부품 조립형 형태의 PC는 이미 전자상가 위주로 유통되고 있었다.[8] 이후에 나온 286급 후속 기종들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디자인의 외형으로 바뀌었다.[9] 대우전자와 대우통신이 각각 PC 사업을 전개했다. 대우전자는 MSX에 올인한 탓에 IBM 호환기로는 전개가 늦었다.[10] 금성과 현대는 당시 듣보잡이었다.[11] 라곤 해도 어디까지나 한국 PC 시장이 세계적으로 두어 세대 뒤졌기 때문이다. 컴팩이 386급에서 IBM을 오히려 앞지른 게 이미 1986년이다. 그런데 이것은 당시 한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이 낮아서기도 했다. 4천달러를 넘어선 게 1980년대 중반인데 286컴퓨터를 먼저 사겠나 자동차를 먼저 사겠나. 500만원이면 지방거점도시에선 집값에 비견될 정도였었다. 교육용으로 AT, XT의 1할값인 애플 클론이 팔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12] 초기에는 수입선다변화 제도의 회피 목적으로 조립판매하였다.[13] 지금이야 OS가 모든 주변기기와의 연결을 대신하지만 DOS 시절에는 각각의 애플리케이션이 주변기기를 제어해야 했다. 말이 워드프로세서지 실질적으로 엡손 프린터 코드 기능밖에 없던 보석글이야 말할 나위도 없으며, 설상가상으로 타 전자회사에서 나온 제품은 MS-DOS 애플리케이션 주제에 자사 PC에서만 작동하는 것까지 있었다. 국산 워드프로세서 중 그나마 MS-DOS 체제에서 대부분의 프린터에 중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게 바로 아래아 한글이다.[14] 전자 상거래 및 컴퓨터 '나래 해커스'[15] 피씨디렉트의 설립자인 서대식 사장은 삼보컴퓨터에서 13년간 재직하면서 구매본부장을 지냈고, 재직 중 삼보 경영진에게 PC핵심부품 유통사업을 제안했다. 이에 삼보에서 삼보 지주사인 MSD를 통해서 서대식 사장에게 자금을 지원해줬고 그가 피씨디렉트를 설립한 것.이후 2005년 그룹 해체 과정에서 피씨디렉트는 삼보컴퓨터와 계열분리되었다.[16] 나우누리의 운영사인 나우콤의 모회사였다. 삼보가 두루넷을 통해 나우콤에 영향력을 행사했다.[17] 현 SK브로드밴드[18] 현 SK브로드밴드 한빛방송[19] 나래이동통신의 삐삐 사업은 처음에는 잘 되었는데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내 최초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였던 두루넷이 망한 것이 결정타였는데, 경영에 특별한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정부의 정책 변경이 주 원인이었다. 두루넷은 한전이 투자해서 한전의 네트워크를 사용했는데 한전이 두루넷 투자를 중단하고 자회사 파워콤을 만드는 바람에 망했고 파워콤은 LG그룹에 인수되었다.[20] 한때 세계 최대의 PC OEM 업체였다. 그런데 자체 브랜드 eMachines와 Averatec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해서 커가면서 주요 거래처인 HP와 마찰이 생겨 거래가 끊기는 바람에 큰 타격을 입었다.[21] 산업은행 농구팀을 인수하여 출범했으며, 농구단 창단 초기에는 삐삐 사업이 워낙 잘 나간 점을 고려해 사업 홍보를 위해 계열사 이름인 나래이동통신을 팀명으로 내걸었으나 PCS 대중화 과정에서 무선호출기 사업이 시장에서 밀려나면서 모기업 삼보로 팀명을 바꾸어 단 것. 중간에도 원주 삼보 엑써스 → 원주 TG 엑써스 → 원주 TG삼보 엑써스로 바뀌었다. 재미있는 건 처음 삼보 이름을 달때 영문 SAMBO라고 쓴 것.[22] 셋톱박스나 내비게이션 등을 만든 회사다.[23] 주로 리치몬드 430TX, 디트로이트 440BX가 삼보컴퓨터 그룹 지주사 노릇을 하던 MSD라는 유통사를 통해 리테일로 판매되었다.[24] 드물게 Acer 메인보드를 탑재한 제품도 있었다. 하지만 이 Acer 메인보드도 실제 제조사는 ECS로 ECS에서 Acer에 OEM으로 공급하고 그게 또 TG삼보에 OEM으로 공급된 것.[25] 지금은 한성컴퓨터와 주연테크가 이 회사의 제품을 수입하고 있다.[26] 유통사는 웨이코스, 반석전자 등 여러 곳이다.[27] 키보드, 마우스, 게이밍기어, 이어폰 등[28] 당시 삼보컴퓨터와 동부화재는 B2B거래를 유지하는 우호적 관계였다. 동부화재의 사내 전산망 관리 및 업무용 데스크탑, 노트북 등의 공급을 삼보컴퓨터에서 하고 있었다.
[7] 물론 한국 최초의 컴퓨터는 아니고 정식 회사에서 상용화된 PC중의 얘기다. 단체나 개인적, 실험적 형태로 만들어진 개인용 컴퓨터나 부품 조립형 형태의 PC는 이미 전자상가 위주로 유통되고 있었다.[8] 이후에 나온 286급 후속 기종들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디자인의 외형으로 바뀌었다.[9] 대우전자와 대우통신이 각각 PC 사업을 전개했다. 대우전자는 MSX에 올인한 탓에 IBM 호환기로는 전개가 늦었다.[10] 금성과 현대는 당시 듣보잡이었다.[11] 라곤 해도 어디까지나 한국 PC 시장이 세계적으로 두어 세대 뒤졌기 때문이다. 컴팩이 386급에서 IBM을 오히려 앞지른 게 이미 1986년이다. 그런데 이것은 당시 한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이 낮아서기도 했다. 4천달러를 넘어선 게 1980년대 중반인데 286컴퓨터를 먼저 사겠나 자동차를 먼저 사겠나. 500만원이면 지방거점도시에선 집값에 비견될 정도였었다. 교육용으로 AT, XT의 1할값인 애플 클론이 팔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12] 초기에는 수입선다변화 제도의 회피 목적으로 조립판매하였다.[13] 지금이야 OS가 모든 주변기기와의 연결을 대신하지만 DOS 시절에는 각각의 애플리케이션이 주변기기를 제어해야 했다. 말이 워드프로세서지 실질적으로 엡손 프린터 코드 기능밖에 없던 보석글이야 말할 나위도 없으며, 설상가상으로 타 전자회사에서 나온 제품은 MS-DOS 애플리케이션 주제에 자사 PC에서만 작동하는 것까지 있었다. 국산 워드프로세서 중 그나마 MS-DOS 체제에서 대부분의 프린터에 중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게 바로 아래아 한글이다.[14] 전자 상거래 및 컴퓨터 '나래 해커스'[15] 피씨디렉트의 설립자인 서대식 사장은 삼보컴퓨터에서 13년간 재직하면서 구매본부장을 지냈고, 재직 중 삼보 경영진에게 PC핵심부품 유통사업을 제안했다. 이에 삼보에서 삼보 지주사인 MSD를 통해서 서대식 사장에게 자금을 지원해줬고 그가 피씨디렉트를 설립한 것.이후 2005년 그룹 해체 과정에서 피씨디렉트는 삼보컴퓨터와 계열분리되었다.[16] 나우누리의 운영사인 나우콤의 모회사였다. 삼보가 두루넷을 통해 나우콤에 영향력을 행사했다.[17] 현 SK브로드밴드[18] 현 SK브로드밴드 한빛방송[19] 나래이동통신의 삐삐 사업은 처음에는 잘 되었는데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내 최초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였던 두루넷이 망한 것이 결정타였는데, 경영에 특별한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정부의 정책 변경이 주 원인이었다. 두루넷은 한전이 투자해서 한전의 네트워크를 사용했는데 한전이 두루넷 투자를 중단하고 자회사 파워콤을 만드는 바람에 망했고 파워콤은 LG그룹에 인수되었다.[20] 한때 세계 최대의 PC OEM 업체였다. 그런데 자체 브랜드 eMachines와 Averatec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해서 커가면서 주요 거래처인 HP와 마찰이 생겨 거래가 끊기는 바람에 큰 타격을 입었다.[21] 산업은행 농구팀을 인수하여 출범했으며, 농구단 창단 초기에는 삐삐 사업이 워낙 잘 나간 점을 고려해 사업 홍보를 위해 계열사 이름인 나래이동통신을 팀명으로 내걸었으나 PCS 대중화 과정에서 무선호출기 사업이 시장에서 밀려나면서 모기업 삼보로 팀명을 바꾸어 단 것. 중간에도 원주 삼보 엑써스 → 원주 TG 엑써스 → 원주 TG삼보 엑써스로 바뀌었다. 재미있는 건 처음 삼보 이름을 달때 영문 SAMBO라고 쓴 것.[22] 셋톱박스나 내비게이션 등을 만든 회사다.[23] 주로 리치몬드 430TX, 디트로이트 440BX가 삼보컴퓨터 그룹 지주사 노릇을 하던 MSD라는 유통사를 통해 리테일로 판매되었다.[24] 드물게 Acer 메인보드를 탑재한 제품도 있었다. 하지만 이 Acer 메인보드도 실제 제조사는 ECS로 ECS에서 Acer에 OEM으로 공급하고 그게 또 TG삼보에 OEM으로 공급된 것.[25] 지금은 한성컴퓨터와 주연테크가 이 회사의 제품을 수입하고 있다.[26] 유통사는 웨이코스, 반석전자 등 여러 곳이다.[27] 키보드, 마우스, 게이밍기어, 이어폰 등[28] 당시 삼보컴퓨터와 동부화재는 B2B거래를 유지하는 우호적 관계였다. 동부화재의 사내 전산망 관리 및 업무용 데스크탑, 노트북 등의 공급을 삼보컴퓨터에서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