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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국적 | 영국 | |||
결성 | 2009년 | |||
영국 잉글랜드 런던 | ||||
데뷔 | 2010년 11월 22일 | |||
데뷔 음반 | Bring the Light | |||
해체 | 2014년 | |||
멤버 | 리암 갤러거 겜 아처 앤디 벨 크리스 샤록 | |||
장르 | 브리티시 모던 록[1][2], 얼터너티브 록 | |||
레이블 | 소니 뮤직 레코드 | |||
링크 | 공식 홈페이지, | |||
공식 트위터, 공식 유튜브 페이지, 공식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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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록밴드로 2009년 8월 28일, 오아시스에서 노엘 갤러거가 탈퇴한 이후, 같은 해 9월 5일 리암 갤러거는 前 오아시스 멤버들과 밴드를 계속할 것을 발표하였다. 물론 밴드를 계속한다는 말은 오아시스를 계승한다는 말이 아닌, 그야말로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밴드를 시작한다는 의미. 그래서 노엘이 빠진 상태에서, 그들은 이름을 'Beady Eye(비디 아이)'로 바꾸고 정말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된다.
고정 구성 멤버는 리암 갤러거(프론트맨, 보컬), 앤디 벨(기타), 겜 아처(기타), 크리스 샤록(드럼)[3] 베이스 멤버는 공백이였는데 1집은 고릴라즈 세션 멤버이기도 했던 제프 우튼이 베이스 세션으로 참여했다. 이후 개인 활동을 위해 투어 멤버에서 하차했으나 2집 제작에는 참여하였다. 이후 2집 발매 이후 새로운 베이시스트 멤버로 카사비안의 기타리스트였던 제이 멜러가 합류했다.
인터뷰를 통해 비디 아이에는 리더가 없다고 밝힌 바 있는데, 전과 달리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앨범을 제작했음을 시사한다. 어찌보면 '밴드'의 진정한 의미에 더 가까워진듯. 게다가 리암 갤러거의 말에 따르면, "우리 밴드에 대장(Boss)은 필요 없다" 앤디 벨, 겜 아처 등 다른 멤버들의 인터뷰 참여비율도 확연히 늘어났다.
2. 음악
멤버들이 모두 오아시스 출신이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오아시스의 영향이 강할 수밖에 없지만, 의외로 지향하는 음악의 색깔은 조금 다르다. 전체적으로 복고풍을 지향하며 오아시스보다는 좀 더 거칠고 날 것에 가까운 로큰롤의 클래식을 추구한다는 평이 지배적.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밴드는 오아시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비디아이는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오아시스와 다른 밴드임을 누차 밝혔다. 관련 인터뷰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비디아이는 그들의 노래를 "우리의 발보다 가볍고. 오아시스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음악일 것이다"라고 묘사했다. "사이키델리아(psychedelia)는 정의내리기 힘든 단어이다" 겜 아처가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음악에는 사이키델릭 아트를 정의할만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안티-사이키델릭이며 우리의 음악은 매우 기본적이며 리틀 리차드, 제리 리 루이스에서 따온 많은 로큰롤 피아노 곡[4]과 더 후, 더 킹크스, 스톤 로지스와 비슷한 사운드를 느낄수 있을것이다." (2011년 1월 Q magazine)
하여간 전보다 더 대놓고 밴드 덕질을 한다. 아예 첫 공식 이미지부터 Rubber Soul 앨범커버를 연상케 하는 느낌으로 찍은데다가, 농담조긴 했지만 "(밴드 이름이 Beady Eye니까) 우리 앨범은 이제 Beatles 바로 옆에 진열될 것"이라며 좋아하기도 했다(...).
2.1. Discography
2.1.1. 앨범
-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2011. 2. 28)
- BE (2013. 6. 10)
2.1.2. 싱글
- The Roller (2011. 2)
- Millionaire (2011. 5. 2)
- The Beat Goes On (2011. 7. 11)
- Second Bite Of The Apple (2013. 4. 29)
- Shine A Light / The World's Not Set in Stone (2013. 8. 19)
- Iz Rite/Soul Love (2013. 11. 25)
3. 일대기
3.1. 1집 데뷔 이전의 활동
2010년 11월 22일 Bring The Light을 공개했으며, 공식 사이트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배포하였다. 영국 록 차트 및 인디 차트 1위. 공식 UK 싱글 차트는 61위를 기록. 그리고 차트 성적과는 별개로 Bring The Light라는 곡에 대해서 팬들의 첫 반응은 대체로 "돌아와요 노엘!"
곡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간주 이후부터는
그러나 이 곡에 대한 혹독한 평가도 잠시, Bring the Light 라이브 버전이 공개되자 국내에서는 참혹했던 첫 반응과는 달리 "Bring the Light이야말로 떼창용으로 최고다.", "필청해야 할 2011년의 선물이다.", "고전 록큰롤을 충실히 제현한 최고의 트리뷰트.''' 등등의 반응을 얻는다. 특히 척 베리나 엘비스 프레슬리 등의 50~60년대 고전 로큰롤을 듣는 리스너에게는 고전 록큰롤의 느낌을 훌륭하게 선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2011년 KEXP London England Live session Interview) 라이브 공연에서는 여성 코러스 대신 겜 아처와 앤디 벨이 코러스를 넣는다.
2011년 9월 3일 비디아이 내한공연에서도 모든 곡이 락앤롤했지만 그 중 Bring the Light 분위기가 화룡점정이었다고 꼽힌다. Bring the Light에서 모두 미쳐 날뛰는 바람에 제대로 된 직캠영상조차 드물정도(...)
앨범 커버는 롤링 스톤즈의 3집 앨범 Out of Our Heads의 아트워크를 오마주한 것이다.
2010년 12월 26일 두번째로 프로모션용 싱글인 Four Letter Word를 공개했다. 악평이 무수히 쏟아졌던 Bring the Light에 비해 이 곡은 처음부터 평이 괜찮았던 편. 곡 제목과 가사의 느낌 때문에 팬들 사이에선 Four Letter Word가 NOEL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그 외에도 BLUR라느니 FXXK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지만 곡을 쓴 사람은 다름아닌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앤디 벨. 애초에 중의적으로 보이도록 노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멤버들은 인터뷰에서 그들의 곡에 대해 "비디 아이의 모든 곡들은 누군가를 겨냥해서 쓴 것이 아니고, 불특정 다수를 위한 노래[5]다"라고 말했다.
이 시기 즈음 있었던 재미있는 일로, Four Letter Word가 공개된 이후 이 앨범의 B 사이드 트랙인 World Outside My Room을 소재로 한 팬 비디오 애니메이션이 유튜브에 올라왔는데 제작자가 한국인이었다.
2011년 1월 7일 정식으로 첫 싱글 The Roller를 발표했으며, 7인치 LP로 발매되었다. 기타리스트 겜 아처가 작곡한 곡으로, UK 싱글 차트 31위. 참고로 오아시스의 첫 싱글인 Supersonic의 공식 차트 기록이 31위이니 재미있는 우연이 아닐 수 없다. 그 외에도 스코틀랜드 차트 17위, 일본 차트 8위를 기록했다. 원래 이 곡은 오아시스 5집 Heathen Chemistry에 실릴 뻔했던 곡이다. "겜이 오아시스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밴드를 위해 쓴 곡"이라고 노엘이 당시 인터뷰에서 잠깐 언급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 녹음 및 세션 문제로 5집에는 수록되지 못하고 그대로 묻혀있다가 결국은 비디 아이의 첫 정식 싱글이 되었다.
3.2. 1집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오아시스 때에 이어서 전체 앨범 캠페인을 Intro 스튜디오의 줄리언 하우스(Julian House)가 디자인하였다.
2011년 2월 28일 데뷔 앨범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을 발표했다. 한국 발매일은 3월 3일. 리암 갤러거, 앤디 벨, 겜 아처가 모두 공동으로 작곡했으며, U2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스티브 릴리화이트(Steve Lilywhite)가 프로듀싱 작업을 맡았다.[6][7]
'노엘도 없는 리암의 비디 아이는 곧 망할 것'이라는 처음의 예측과는 달리, DGSS는 앨범 발매 첫 주 UK 앨범 차트 3위를 기록한다. 아델 등 여성 아티스트가 압도적인 대세를 이루는 영국의 현재 음악판도를 고려하면 예상 외로 높은 성적. 실제로 당시 동일 UK차트 10위권 안에 있는 록 음반은 비디 아이 데뷔 앨범이 유일했다.
음악 전문매거진 모조(Mojo)가 8.0점, Q 매거진이 8.0점, BBC가 8.0점으로 오아시스 후기 앨범보다도 높은 평점을 받으며 비평가 평점으로서는 현지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으며, '앨범 완성도로만 놓고 보면' 오아시스 3집 Be Here Now 이래 최고의 앨범이라는 평가가 나왔다.[8](Rolling stones SPA. March) 차트 기록에 따르면 이 앨범은 UK차트 3위와 아일랜드 차트 3위, 일본 차트 5위, 캐나다 차트 20위, US 차트 31위를 기록했다.
트랙 리스트 (리암 갤러거/겜 아처/앤디 벨 공동 작곡)
- Four Letter Word
- Millionaire
- The Roller
- Beatles and Stones
- Wind Up Dream
- Bring the Light
- For Anyone
- Kill for a Dream
- Standing on the Edge of the Noise
- Wigwam
- Three Ring Circus
- The Beat Goes On
- The Morning Son
- Man of Misery (Millionaire 싱글 B사이드/iTunes 보너스 트랙)
- Sons Of The Stage (World Of Twist 커버곡: Bring The Light 싱글 B사이드/일본반 보너스 트랙)
- World Outside My Room (Four Letter Word 싱글 B사이드/일본반 보너스 트랙)
수록곡 중 이미 만들어두었던 곡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The Roller와 Kill For A Dream은 오아시스 5집 Heathen Chemistry 시기에 나왔던 곡이며, Millionaire는 6집 Don't Believe the Truth의 세션 녹음 전에 작곡되었다. 그리고 The Morning Son과 Standing On The Edge Of The Noise는 7집 Dig Out Your Soul 시절에 작곡되었다. 전자의 경우 7집 제작 당시 Soldier On에 밀려 앨범 수록이 기각된 적 있는 곡이며, 후자의 경우 2008년 방송된 오아시스 리허설 공연의 동명의 제목에서 곡명을 따왔다.
수록곡 중 12번 트랙 The Beat Goes On이 자체 평점만 9.0점으로 앨범 내 최고 평점을 독차지, 메가급 곡으로 부상하였다. 이 곡은 The Morning Son과 함께 베스트 트랙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The Beat Goes On을 작곡한 앤디는 리암이 작곡한 The Morning Son을 앨범 베스트로 꼽았는데, 이 곡은 DGSS의 Champagne Supernova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수작으로 리암의 작곡력이 일취월장했음을 증명한 곡이다.(Mojo, Rockin'on Magazine preview) The Morning Son의 경우 리암이 '그리스도의 부활[9]', '노엘', '노래를 마치고 생각에 잠기는 리암 자신' 등에서 영감을 받아 쓴 곡이라 밝힌 바 있다.
2011년 4월 3일, 도호쿠 대지진 사태 이후 영국에서 열린 Japan Disaster Benefit 공연에서 비틀즈의 Across The Universe를 커버했는데, 다음 날 이 곡을 디지털 싱글로 발표해 일시적으로 판매하였다. 공식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해당 곡의 판매 수익은 영국 적십자 일본 쓰나미 구호성금(British Red Cross Japan Tsunami Appeal)에 쓰인다고 한다. 이에 대해 4월 5일에 오노 요코가 트위터를 통해 리암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곡은 후에 2011년 9월 일본 투어 한정으로 오프닝 곡인 Yellow Tail에 이어서 라이브로 연주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영국 축구 구단 맨체스터 시티의 응원가 Blue Moon 커버를 뮤직비디오와 함께 공개하기도 했다.#
데뷔 이후 두번째 싱글로 Millionaire가 2011년 5월 2일 발매되었으며 곧이어 세번째 싱글인 The Beat Goes On이 2011년 7월 11일 발매되었다. B-side 곡은 각각 Man Of Misery와 In The Bubble With A Bullet. The Roller 싱글의 비사이드 Two Of A Kind와 함께 이 비사이드 곡들은 2011년의 DGSS 투어가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셋리스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3.2.1. 판매량 그리고 노엘 갤러거와의 비교
2011년 가장 많이 팔린 바이닐 싱글 톱 10 중 The Roller가 1위, Millionaire가 2위, The Beat Goes On이 4위, Four Letter Word가 8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모든 비디 아이의 싱글은 LP 혹은 디지털 음원으로만 판매되었다. 관련 NME 보도2011년 가장 많이 팔린 바이닐 앨범 순위 톱 10 중 3위에 랭크되었다. 1위는 라디오헤드의 The King Of Limbs, 2위는 아델의 21. 참고로 이 기록은 10월 21일 기준으로 이후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가 데뷔하면서 아델을 밀어내고 2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DGSS의 판매 기록은 7위로 랭크되었다.
2011년 9월 텔레그래프 지와의 인터뷰에서 리암은 당시 비디 아이의 데뷔 앨범이 데뷔 당시 첫 주 3위로 올라서고 이후 15만 7000장 이상 판매된 것에 비해, 당시 갓 데뷔한 노엘 갤러거의 솔로 앨범이 첫 주 23만 장을 찍으며 1위로 올라선 것에 대해서 떨떠름해 하지만 어느 정도 인정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노엘의 곡에는 '애티튜드'가 없다며 비난을 하기도 하였다. 관련 인터뷰.
마찬가지 이유로 노엘 갤러거 역시 솔로 데뷔 이후 끊임없이 비디 아이에 대한 코멘트를 인터뷰에서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며, 인터뷰에서 "그들은 로큰롤 밴드고, 나는 솔로 아티스트이다"는 식의 답변을 하곤 하였다. 그러나 작곡에 대한 부분이 부족했다는 코멘트도 잊지 않았다. 언급된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의 자세한 정보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을 참고할 것.
비디 아이와 노엘 갤러거의 두 앨범이 판매량과 음악적 특징, 인기도 등으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꾸준히 비교되고 있는 이유는 역시 그들이 형제이자, 음악적 커리어를 공유한 같은 밴드 출신의 뮤지션으로서, 서로를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관계임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발매 시기도 다르며[10] 서로 공유하는 스타일조차도 조금씩 다른 '솔로 싱어송라이터'와 '밴드'의 단순 음반 판매량 비교가 여기서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2013년 6월, Q매거진과의 비디아이 2집 발매 인터뷰에서 리암은 1집을 너무 성급히 발매하면서 판매량과 비평적인 측면에서 실패한 것을 인정했다. 무엇보다 비디아이의 투어가 2011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이미 막을 내렸는데 노엘의 솔로 1집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면서 투어 기간도 1년을 추가한 것에 실망한 모습이다.인터뷰 전문 참조
여하튼 정보를 위해 정리하자면, 노엘이 네 배 더 팔았으며 평도 더 높고 공연도 훨씬 많이 하고 있다.
3.3. 휴식기 활동 관련
The Irish Times와 MTV 등과의 인터뷰에서 리암 갤러거는 새로운 곡들을 이미 쓰고 있으며, 2011년이 끝날 즈음 1집 투어를 마무리하고 두 번째 앨범을 준비할 예정(MTV 인터뷰)이라고 밝혔다. 당시에는 시기를 끌면서 지지부진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면서 앨범 완성 시기는 2012년 여름 정도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DGSS 투어가 끝나갈 무렵 인터뷰에서 리암은 "2012년에는 공연을 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다. 이 시기에는 휴식기 겸 앨범 작업에 전념하고 싶다고. 그런데 스톤 로지즈 재결합 이후 2012년 2월 29일에 후지 록 페스티벌 공연 확정 소식이 발표되었다. 뒤이어 6월 말에 있을 스톤 로지즈 단독 공연 서포트 소식과, 7월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공연 확정 소식이 발표되었다.
2012년 3월 14일 Xfm과의 인터뷰에서 리암은 현재 몇 몇 곡들은 데모 버전이 나온 상태이며, 2집 앨범의 발표 시기는 내년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있었던 2집 발매와 관련된 많은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멤버들은 1집과 달리 현악과 트럼펫을 쓰는 등 좀 더 크고 규모 있는 사운드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구체적으로 필 스펙터를 예로 들면서, 조지 해리슨의 솔로 앨범 All Things Must Pass와 같은 느낌의 앨범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5월 WARRINGTON FALL HALL 공연에서 신곡 World Not Set In Stone이 공개되었다. 이 곡은 2012년 스톤 로지즈 서포트 투어에서도 오아시스 곡들과 함께 연주되었다.
2012년 11월 12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정식으로 2집 레코딩이 발표되었다. 그런데 프로듀서로 Yeah Yeah Yeahs, Foals 등의 앨범을 프로듀스해온 뉴욕의 인디 프로듀서이자, 인디 록 밴드 TV on the Radio의 멤버이기도 한 '데이브 시텍(Dave Sitek)'이 함께하기로 발표되어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매니지먼트사의 인터뷰에 따르면 데이브 시텍은 데모를 받자마자 곧장 작업에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같은 인터뷰에서 매니저는 이 2집을 두고 "지금까지의 리암의 커리어 중 가장 최고의 앨범인 것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1집 시기에 베이스 세션으로 함께했던 제프 우튼은 개인 프로젝트를 위해 투어 멤버로서는 하차하지만, 대신 2집 녹음에 세션으로서 참여했다. 이후 카사비안의 기타리스트 제이 맬러가 카사비안을 탈퇴하고 새로운 베이시스트로 합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3년 4월 6일 뜬금없이 미국 라디오를 통해 신곡 Flick of the Finger가 공개되었다. 나중에 BBC Radio 1을 통해 이 곡은 싱글이 아닌 앨범 수록곡이라는 사실이 전해졌다. 마지막에 삽입된 음성은 장폴 마라의 유명한 말[11]을 인용한 것이다. 음성은 배우 케이번 노백이 아이폰의 폰재커 앱으로 녹음했다.
“Don't be deceived when our revolution has been finally stamped out and they pat you paternally on the shoulder and say that there's no inequality worth speaking of and no more reason for fighting, because if you believe them, they will be completely in charge in their marble homes and granite banks from which they rob the people of the world under the pretense of bringing them culture... Watch out, for as soon as it pleases them, they'll send you out to protect their gold in wars, who's weapons rapidly developed by servile scientists will become more and more deadly, until they can, with the flick of the finger, tear a million of you into pieces.” |
3.4. 2집 BE
이번 앨범의 아트워크[12]로 포토그래퍼 해리 페치노티(Harry Peccinotti)가 NOVA 매거진을 위해 촬영했던 사진 작품이 쓰였다. 사진의 여인은 그의 아내라고 알려져 있다. 앨범 아트 디렉터로는 그래픽 디자이너 트레버 잭슨(Trevor Jackson)이 참여했는데, 원래는 정중히 의뢰를 거절할 생각이었으나 앨범 수록곡을 들은 이후 생각을 바꿔 참여를 결정했다고 한다.[13]
2013년 4월 10일에는 2집 앨범의 이름과 발매일이 공개되었으며 6월 10일에 전세계 발매되었다. 4월 당시 리암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2집에 실릴 곡 이름으로 추정되는 트윗을 몇 차례 날렸었는데 이후 공식 계정 및 홈페이지를 통해 정식 트랙 리스트임이 확인되었다. 이 앨범은 뉴욕의 인디 프로듀서이자 밴드 TV on the Radio의 멤버인 데이브 시텍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이 앨범은 올뮤직과 클래시 매거진에서 8.0, NME에서는 7/10을 받았다. 발매 첫 주 UK 차트 2위, 스코틀랜드 차트 1위, 아일랜드 차트 4위, 일본 차트 10위를 기록했다. 발매 당시 영국 인디펜던트 레코드 스토어 차트에서 판매량 1위를 달성했다.
트랙 리스트 (리암 갤러거/겜 아처/앤디 벨 공동 작사/작곡)
- Flick of The Finger
- Soul Love
- Face The Crowd
- Second Bite Of The Apple
- Soon Come Tomorrow
- Iz Rite
- I'm Just Saying
- Don't Brother Me
- Shine A Light
- Ballroom Figured
- Start Anew
- Dreaming of Some Space (Second Bite Of The Apple 싱글 B사이드/디럭스반, 일본반 보너스 트랙)
- The World’s Not Set in Stone (디럭스반, 일본반 보너스 트랙)
- Back After The Break (디럭스반, 일본반 보너스 트랙)
- Off at The Next Exit (디럭스반, 일본반 보너스 트랙)
- Girls In Uniform (일본반 보너스 트랙)
- Evil Eye (일본반 보너스 트랙)
앞서 있었던 2집 관련 인터뷰와 달리 멤버들 모두, 특히 리암이 이번 앨범에 대해서 굉장히 실험적(experimental)인 앨범이며, 사이키델릭하다는 코멘트를 남겼으며, 앤디 벨의 특이한 사운드 콜라주(Q. 2013.02)나, 첼리스타, 바이올린 현으로 연주하는 심벌즈(Mojo, 2013.02) 같은 특이한 악기들이 언급되기도 하였다. 앞서 언급된 잡지 인터뷰들에 따르면 새로운 프로듀서의 영향이 무척 강한 앨범이 될 것으로도 보인다. 덧붙여 12년 여름에 공개되었던 신곡인 World Not Set In Stone도 신보에 수록될 가능성이 무척 높지만, 라이브 버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녹음될 것(NME, 2013.02)으로 전해졌다.
[14]
2013년 4월 29일 첫번째 싱글 Second Bite of The Apple이 발매되었다. B사이드는 Dreaming of Some Space. 나중에 Start Anew가 공개되면서 이 곡은 Start Anew의 백워드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Start Anew는 CBS TV 시리즈 엘리멘트리 시즌 1의 피날레 에피소드에 삽입되기도 하였다. 링크
2013년 5월 28일 앨범 프리미어에 참석한 누군가가 트랙별로 음반을 핸드폰에 녹음한 것이 인터넷을 통해 전부 유출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Xfm 라디오에서 Soul Love가 첫 라디오 방송을 탔다. Soul Love는 BE의 티저 영상 배경음악으로도 쓰였으며 Don't Brother Me의 일부도 밴드의 Q 매거진 커버 촬영 비하인드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
2013년 8월 19일 두번째이자 밴드 최초의 더블 A사이드 싱글인 Shine A Light/The World's Not Set in Stone이 발매되었다. 여기서 Shine A Light의 뮤직 비디오는 Q 어워드 2013 베스트 비디오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15]
그리고 2013년 11월 25일 세번째 싱글이자 두번째 더블 A사이드 싱글인 Iz Rite/Soul Love가 발매되었다. 여기서 앨범 홍보를 위해 진행한 11월 28일자 Xfm Ford SYNC Session에서 디럭스반에만 수록되어 있었던 Back After The Break와 Off at The Next Exit가 최초로 라디오를 통해 라이브로 공연되었다. 해당 공연의 일부
3.5. 해체
2014년 10월 25일부로 리암 갤러거의 트위터피셜로 해체가 확인되었다. 당연히 오아시스 재결합 떡밥이 나돌았고 형제 사이의 관계도 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노엘이 빠르게 그럴 일은 없다고 못박음으로서 즉시 식었다. 해체이후의 멤버들의 행보가 주목되는데, 라이드의 재결합과 리암의 솔로전향 떡밥 등이 팬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겜과 크리스는 2017년부터 노엘 갤러거의 세션 멤버로 합류.4. 공연 경향
4.1. 2011 투어 관련 여담
발매 첫 주 비디아이 데뷔 앨범이 전세계 앨범 누적판매 순위 4위에 오르자 바로 월드 투어가 결정됐다. 원래는 영국을 포함 몇몇 국가만 돌 예정이었으나 전세계적인 투어 요청이 쏟아져 들어오자 결국 투어 일정이 오아시스 시절처럼 전세계 규모로 확장됐다. 대신 이번 비디아이 투어의 테마는 '소공연'. 여기에는 거대 공연보다는 관객들과 가까이 호흡할 수 있는 소규모 공연을 더 좋아한다는 리암의 취향이 반영됐을거라는 추측이 이어진다.2011년 3월 3일 Glasgow Barrowlands 공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라이브 투어에 돌입, 1996년~2000년의 전성기를 방불케하는 라이브로 관객들을 압도하고 있다. 사실 2011년 2월 28일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의 라이브 덕분에 리암 목소리 상태가 최상임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다만 리암은 오아시스 6집, 7집 초반에도 훌륭한 목소리를 들려줬었기에 이번에도 투어 초기의 '반짝 상태좋음'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오아시스 5집 이후부터 리암의 보컬은, 휴식기를 거친 투어 초기에는 훌륭했다가 투어 말기로 갈수록 악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길고 빡센 오아시스 월드 투어 일정이 리암의 성대이상에 한 몫 했지만, 주 원인은 사실 다른 부분에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쪽으로.
그러나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Barrowlands부터 맨체스터, 런던, 파리로 연일 이어지는 라이브 투어가 진행될수록 안정적인 보컬을 선사하면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프론트맨[16]다운 모습으로 돌아오자 우려의 목소리는 환호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참고로 비디아이 라이브에서는 더 이상 리암의 탬버린 연주를 볼 수 없다. 그동안 탬버린을 들지 않고 노래하는 리암을 둘러싸고 각종 추측이 나돌았는데, 2011년 3월 14일 독일 공연에서 리암은 "No more tambourines, mate. Moved on."이라는 말로 탬버린 은퇴를 선언한다. 대신 90년대 초에 보여줬던 후드 퍼포먼스가 부활했다. 주로 The Morning Son이 끝나면 후드모자를 쓰고 스틸리즘 자세를 보여준다. 최근에는 탬버린을 대신하는 물건으로 타월을 선택한 듯 하다. 주로 공연 내내 땀 닦고 어깨에 걸치고 손에 들고 다니고 하다 팬들에게 던져주는 식이다. 그리고 확실히 무대가 작아진 덕분인지 오아시스 때와 비교하자면 무대 아래로 내려와 팬서비스를 하는 일이 늘어났다.
2011년 3월 9일 비디아이 런던 공연은 벌써 능력자팬
4.2. 2012 투어 관련 여담: 오아시스 곡 공연
2011년 7월 11일 BBC Radio 1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리암은 그의 새 밴드 비디 아이가 그가 기대했던 만큼 성공하지는 않았다고 말하면서("내가 생각했던 만큼 그렇게 훅 하고 뜨진 않았지만 일이 그렇게 된 거니까." "당신도 사람들에게 자기를 좋아해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잖아.") '미래에는 오아시스 곡을 공연하는 것도 고려해 볼 것'이라고 말했었다."아니, 이미 우리가 결정을 내린건 아냐. 한발 물러서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오아시스 곡을 연주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다고 여기게 되면 결정을 할거야." ... "아마도 어떤 시점이 되고 나면 우리가 (오아시스 곡을) 연주할 수는 있겠지. 물론 오늘 밤이나 다음 주나 내년에는 하지 않을 거지만. 앨범을 두 개 정도 낸 다음에는 난 우리가 썼던 곡을 크게 연주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 지금은 아니지만 친구. 그건 우리의 곡이 아니고 노엘의 것이니까."
2012년 3월 14일 Xfm과의 인터뷰에서 리암은 올 여름 라이브 공연에서는 오아시스 곡도 공연할 것이라는 입장을 최종적으로 밝혔다. 해당 기사 이에 대해 노엘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곡을 부르는 것에 대해서)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는 입장을 먼저 밝힌 바 있다.
2012년 5월 16일, 2012년도 투어를 위한 깜짝 공연이 발표되었다. 티켓은 모두 추첨식으로 판매, 완매되었다. 이로서 2012년의 비디 아이 투어는 페스티벌을 포함해 단 4개 공연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공연에서 신곡 World Not Set In Stone이 공개되었으며, 오아시스 곡은 Rock 'N' Roll Star, Morning Glory를 연주하였다. 셋리스트 보기 이후 밴드는 스톤 로지즈의 2012 투어 중 후지 록 페스티벌과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공연에 서포트 개념으로 함께했다.
4.2.1. 2012 런던 올림픽 폐막식 공연 관련
2012년 7월 25일 더 선에서 리암 갤러거가 비디 아이와 함께 폐막식 무대에서 오아시스의 Wonderwall을 공연할 것이라는 뉴스를 보도했다. 이 기사는 발표 당시 NME 등 무수한 음악 잡지의 인용 보도가 나오는 등 많은 관심을 끌었으나 소스가 문제의 더 선이라는 이유로 팬들 사이에서 불신당하고 있었는데, 2012년 비디 아이의 내한 당시 출국날 공항에서 한 팬이 겜 아처에게 올림픽 공연에 관해 묻자 긍정적인 답변이 있었다고 전해진다.그리고 NME에서 그 전에 보도했던 올림픽 폐막식 관련 프로그램 떡밥 중 하나로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혹은 리암 갤러거의 공연 가능성이 점쳐졌는데,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다가오는 2012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공연을 위해(?) 폐막식 공연을 사양했다고. 따라서 매닉스 이후의 선택지였던 리암 갤러거에게 제안이 들어온 것으로 추정.
2012년 8월 12일 올림픽 폐막식에서 비디 아이는 스파이스 걸스 다음으로 등장해 오아시스의 Wonderwall을 커버했다.
4.3. 2013 투어 관련 여담
4.3.1. 글라스톤베리 비밀 공연 외 기타
2013년 라이브 일정에서 비디 아이는 BE 발매 전 소규모 어쿠스틱 공연을 세 차례나 진행하기도 하고, 애비 로드 라이브를 어쿠스틱 세션으로 공연하는 데다가, 오디션 프로그램 The Voice UK의 준결승전에서 축하공연을 하는 등 전과 같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의외의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이 날은 또 앤디 벨의 트위터를 통해 술 취한 Songbird 커버가 올라오기도 했다.그 중 가장 의외의 공연이었던 것은 바로 2013 글라스톤베리 깜짝 공연이다. 페스티벌 시작 전부터 금요일 Other Stage의 아침 11시 스케줄이 비공개로 되어 있어 그 동안 여러 아티스트의 이름이 루머로 물망에 올랐으나, 더 선이 자체 정보 소스를 근거로 비디 아이의 공연을 예고했다.
리암은 2009년 인터뷰를 통해 "글라스톤베리에 다시 서지 않겠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고 그 때문에 글라스톤베리에는 다시는 등장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만큼 이번 '비밀' 공연은 더욱 의외였다고 할 수 있다.[18] 이번 공연 이후 인터뷰에서 리암은 "굉장히 좋았고 편안한 기분이었다, 마치 방으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관련 보도 이 공연에서도 비디 아이는 BE 페스티벌 셋리스트와 함께 Rock N Roll Star와 Morning Glory를 공연했다. 페스티벌 레퍼토리인 듯.
투어 도중 기타리스트 겜 아처가 자택에서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 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일본 SUMMER SONIC과 벨기에 및 영국 V 페스티벌 출연을 포함한 8월간의 모든 여름 투어 일정이 취소되었으며, 밴드는 공식적으로 "겜 아처 없이는 투어를 계속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12 이후 3달여에 걸친 회복기 동안 또 다시 다리를 다치는 중상을 입기도 해 2013년 투어 자체가 불투명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샀지만3, 2013년 재개한 11월 UK 투어에서 겜 아처는 무성하게 턱수염을 기를 정도로 다시 건강해진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이 투어에서 오아시스 곡은 Live Forever(어쿠스틱)와 Cigarette & Alcohol만을 커버하며 앵콜곡으로는 롤링 스톤즈의 Gimme Shelter 커버가 추가되었다.
4.3.2. 본헤드와의 공연 및 교류
밴드 샬라탄즈의 드러머였던 존 브룩스(Jon Brookes)가 뇌종양으로 사망한 이후, 샬라탄즈의 리드 보컬인 팀 버제스(Tim Burgess)는 그를 추모하는 자선공연인 '존 브룩스를 위한 밤: 샬라탄과 그 친구들(A Night For Jon Brookes: The Charlatans and friends)'라는 공연을 기획하게 된다. 이 공연에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 뉴 오더와 백신스의 멤버, 그리고 케미컬 브라더스의 멤버 등이 참여했다. 여기서 리암 갤러거와 비디 아이(앤디 벨, 제이 멜러와 크리스 섀록) 그리고 본헤드가 같이 출연하여 오아시스의 Columbia와 Live Forever[19], 그리고 앵콜에서는 샬라탄즈와 함께 조지 해리슨의 My Sweet Lord를 커버 공연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 자선 공연 이후 비디 아이, 특히 리암 갤러거와 본헤드의 교류가 더 깊어졌다. 여기서 비디 아이의 11월 UK 투어 중 맨체스터 공연에서는 본헤드가 특별히 무대에 올라 밴드와 함께 Live Forever를 공연하기도 했으며, 그 외 개인적으로 다양한 활동에서 본헤드와 함께하기도 했다. 본헤드는 가끔식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리암 혹은 비디 아이와의 모습을 인증하기도 한다.
4.4. 2014 투어 관련 여담
2014년 재개한 투어 중 1월 호주 Big Day Out 페스티벌*과 2월 유럽 투어*에서는 기존 BE 앨범 수록곡과 타이틀곡[20] 그리고 오아시스 곡 중 호주에서는 Rock N Roll Star와 Morning Glory, 유럽에서는 Wonderwall과 Cigarette & Alcohol이 셋리스트로 선정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투어마다 커버하는 오아시스 곡의 수는 절대로 2곡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3월에는 일본 요코하마와 오사카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고 DJ로는 앨런 맥기가 설 예정이다.4월 중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에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밴드의 손을 떠난"* 알 수 없는 이유로 공연이 취소되었다. 그 이전 쾰른 공연에서 리암이 "It's not about the rock n roll anymore, its about the fucking money" 운운하는 말을 공연장에서 한 이후*, 소속사 혹은 매니저와 마찰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지만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취소 소식 이후 당시 밴드의 매니저였던 스콧 로저[21]는 해고되었다.
4.5. 내한
4.5.1. 2011년 9월 3일 단독 공연
[clearfix] 2011년 5월 15일 일요일 AX KOREA에서 첫 내한 공연이 이루어질 예정이었지만 도호쿠 대지진의 여파로 인해 9월로 연기가 되었다. 그리고 6월 20일 다시 공개된 공연 날짜는 일본 투어 바로 전인 2011년 9월 3일 토요일. 이 공연은 사실 추진되지 않을 뻔 했으나, 리암이 "한국 팬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먼저 기획사인 나인엔터에 연락을 넣으면서 계약이 성사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참고로 이 공연이 바로 연기되기 전의 공연, 그러니까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로 취소된 5월 공연이다.서포트 밴드는 나인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제안한 국내 인디 밴드들 중 비디 아이가 직접 고른 밴드로, 국카스텐이었다. 이 날 국카스텐의 공연 역시 최고였으며, 관객들은 체력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열광적으로 화답해주었다.
공연 이틀 전 리암이 직접 트위터를 통해 서울을 언급했으며, 9월 3일 내한 공연이 끝나고나서 바로 몇 시간 뒤에 다시 트위터로 직접 감상을 써서 올렸다. 그 전에 트위터에서 직접 감상을 언급한 단독 공연은 러시아[22] 공연이 전부로 이번 경우 역시 확실히 이례적이다.
한국 공연에서 리암의 목소리 컨디션은 최상이었으며, 밴드의 연주도 열정적이었다. 멤버들 모두가 관객들의 반응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고, 드럼인 크리스 섀록은 공연 초반 곡인 Millionaire를 연주하는 도중 드럼 스틱을 공중으로 던지고 이후에도 계속 드럼 스틱을 돌리는 등 드럼 퍼포먼스를 여러번 선보이기도. 공연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Bring The Light 때는 그야말로 밴드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어 서로 가사를 주고받으며 교감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상적인 공연 관련 일화들은 다음과 같다.
- 이번 내한 공연을 위해 팬카페에서 앨범 제목을 패러디한 Different Year, Still Seouling이라는 슬로건의 수건을 제작했는데, 이 수건은 공항으로 마중나간 팬이 리암에게 직접 한 장을 선물해 주었으며, 한 팬은 공연 전날 호텔에 갔다가 우연히 밴드의 드러머인 크리스 섀록을 만나서 수건을 전달했다고 한다. 크리스는 수건을 받고 굉장히 기뻐했다고한다. 심지어 공구 수건을 들어서 인증샷까지 찍어보이는 태도를 보였다고...팬이 "Don't forget this"라며 계속 강조하자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계속 수건을 만지작 거렸고, 룸에 올라갈때도 "Thanks for this..."라며 손에 꼭 쥐고 방실방실 웃으며 올라갔다고 한다. 공연 중에도 스탠딩 펜스 쪽에 있던 관객들이 수건을 무대로 던져주기도 했다. 그런데 앵콜 공연이 마무리될 무렵 리암이 무대 쪽으로 던져진 수건을 들고 관객들에게 보여줘 관객석이 난리났었다는 후문. 관련 동영상 (수건 퍼포먼스는 1:28부터)
- 리암은 첫 곡을 끝내고 나서는 '안녕하세요', 중간에는 '고맙습니다'라고 한국어로 직접 인사했다고 한다. 또 곡이 끝날 때마다 Thank You 연발에 평소보다 말이 많았으며, 그동안 스틸리즘으로 대표되는 무뚝뚝한 공연 태도에 걸맞지 않게 즐거운 듯 무대 위에서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어슬렁거리며 팬들을 지켜보곤 했다.
- 수록곡인 Standing On The Edge Of The Noise의 가사 중 Get me, I got you하고 소리치는 후렴이 있는데, 리암은 이 부분에서 관객들을 가리키면서 노래를 불렀다. 또 Beatles and stones라는 곡의 가사 중 I just wanna rock and roll을 I just wanna rock and seoul!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게다가 본 공연 마지막 곡인 The Morning Son에서는 '이 곡을 아름다운 서울 사람들을 위해 부르겠다'고 말하며 코러스 부분을 모두 관객들을 위해 넘겨주기도 했다.
- The Morning Son 도중 한 여성 관객이 스탠딩석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실신해 관객들이 이 여성팬을 들어서(?) 강한 친구들에게 넘겨줬는데, 후에 이 관객이 직접 쓴 후기에 의하면 그 이후로 펜스에서 휴식을 취하며 앉아서 리암을 쳐다보고 있다가, 리암이 자신을 본 것을 느끼고 리암에게 계속해서 사인을 보냈는데 그러자 리암이 무대에서 걸어 내려와 안아주며 "Are you okay?" 등의 말을 하며 다독여줬다고 함. 그 외에도 너 대단하다는 식으로 얘기했다는데 당시에 정신이 너무 없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는 후기. 신기하게도 야상에서 땀냄새가 전혀 안났었다고...
또한 리암의 까칠한 수염을 양껏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 앵콜 곡인 Wigwam의 중간 중간 평상시 공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주다가, 나중에는 관객을 위해 직접 경례를 하기도. 관련 동영상 (경례 퍼포먼스는 4:18부터)
이 공연은 일본 대지진 여파로 공연 일정이 한번 취소된 뒤, 다시 공연 날짜가 잡혔을 때는 록페스티벌 시즌 이후인 9월이었기 때문에 개강크리 등으로 표가 무진장 남았다고 한다. 안 팔린 분은 초대표를 뿌렸다는 듯. 다행히 현장 판매로 만회를 했다고. 그렇지만 이 당시엔 기획사 측에서 지산, 펜타포트가 끝난 비수기 시즌에 린킨 파크 같은 대형 밴드까지 오는 상황에서 미카, 아울 시티 등의 내한공연 일정을 배치한 무리수가 원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예정되었던 5월 공연의 예매율은 지진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매진 직전까지 갈 정도로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4.5.2. 2012년 7월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공연
[clearfix] 2012년 3월 30일,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2차 라인업 공개를 통해 비디 아이의 두번째 내한 소식이 알려졌다. 공연 날짜는 29일 일요일로 헤드라이너 스톤 로지즈의 바로 전 서브헤드 공연이다.같은 날짜에 있었던 일본의 후지 록 페스티벌 공연과 함께, 2012년의 비디 아이 페스티벌 공연 투어는 사실 헤드라이너인 밴드 스톤 로지스의 서포트 개념으로 이루어진 투어에 가깝다. 이번 지산에서 이루어진 내한공연 역시 몇 가지 일화들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들을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 이례적으로 축구팀 맨체스터 시티의 챔피언 레플리카 티셔츠를 입고 공연했다. 공연 처음부터 중간 중간 사진과 같이 티셔츠 백넘버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이 끝날 무렵에는 펜스 아래로 내려와 앞자리 관객들과 악수를 하는 등 팬서비스도 전에 비해 무척 늘어났다. 밴드를 처음 보는 지산 관객들도 호응이 무척 좋았다고 전해진다.
- 공연 내내 카메라맨이 따라다니면서 밴드의 공연 장면을 촬영하고 관객들을 촬영해갔다. 입국 공항에서 같은 카메라를 발견했다는 목격담도 전해지지만 아무튼 목격자에 의하면 그 당시 리암이 카메라에 대고 외치기를 "(관객들을 가리키며) MY POWER!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MY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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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투어에서 비디 아이는 스톤 로지스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백스테이지에서 그들의 공연을 구경했는데, 후지에서는 음향 콘솔 안에서 관람하는 것에 그쳤던 리암이 지산에서는 스탠딩 관객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다 그만 참지 못하고(...) 펜스를 넘어가 스탠딩 구역으로 난입해 관객들과 같이 슬램을 벌이고 기차놀이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그 자리에 있던 어떤 여성관객은 리암이 직접 펜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같이 춤을 추다가 다시 스탠딩 구역으로 직접 들어서 넘겨주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그 자리에서 관객들과 같이 인증샷을 찍지를 않나 뽀뽀를 해주질 않나...
- 공연 후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 술을 좀 넣어달라는 요구에 나인엔터 측에서 차 안 컵홀더에 맥주 한병씩을 넣어줬더니, 그냥 분장실 아이스박스를 통째로 가지고 떠났다고 한다(...). 관련 링크
- 페스티벌 이후 밴드가 출국하는 날 인천 공항에서 팬들이 선물해준 오아시스 응원 수건과 비디 아이 응원 수건을 양쪽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리암이 목격되기도. 이미지 링크
5. 관련 항목
[1] 가끔 브릿팝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더 이상 브릿팝 밴드라고 보기는 힘들다.[2] 오아시스와 블러와 같은 대표적인 브릿팝 밴드들은 1997년 이후 토니 블레어로 대표하는 노동당의 쇠퇴기에 자신들의 음악 장르를 브릿팝으로 내세우길 꺼린다. 실제로도, 이들을 포함해 이 시기 이후로 발매된 영국 밴드의 음악은 브릿팝이라고 정의하기 어렵다.[3] 오아시스 시절에는 7집 라이브 투어 드럼 세션 멤버였으나 비디 아이에서는 정규 멤버가 되었다[4] Bring The Light는 이 성향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곡이다.[5] 그러나 모든 곡이 그렇지만은 않다. For Anyone은 리암이 팬들을 향한 메시지를 담아 작사 작곡한 곡이라고 하며, The Morning Son의 가사 일부의 경우 노엘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리암이 직접 밝히기도 했다.[6] 2013년 쇼트리스트(Shortlist) 인터뷰에서 리암은 "프로듀서가 중간에 그만 두었고, 겜이 믹싱을 끝내야 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는 스티브 릴리화이트의 반발을 샀고 결국 스티브는 트위터에서 DGSS를 깠다...우연찮게도 이 당시는 릴리화이트의 자서전이 출간될 시기였다.[7] 앤디 벨과 스티브 사이에 잠깐의 트위터 말다툼이 이어진 이후 특별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날 이후 인터뷰에서도 1집을 반추하는 대목에서 멤버들의 입을 통해 계속 릴리화이트가 중간에 작업을 그만두었다는 식의 언급이 나온다.[8] 이 평가도 호평으로 볼 수는 있지만, 사실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3집 이후의 오아시스 앨범들을 전부 물 먹이는 평가나 다름없다.[9] 리암은 종교인이 아니지만, 평소에도 종교와 신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표해왔다. 오아시스 전기를 읽어보면 데뷔 전에도 리암이 "우리가 죽고 나면 어디로 간다고 생각해?" 등 사후세계에 대해 자문자답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곡에서 바로 그런 의외의 일면이 반영된 듯.[10] DGSS는 2011년 2월 말, NGHFB는 같은 해 10월 중순에 발매됨.[11] 정확히 말해서 마라가 직접 한 말은 아니고, 연극 <마라/사드>의 작가 페터 바이스가 마라 역을 위해 쓴 대사를 후에 혁명가 타리크 알리가 60년대 당시의 이야기를 쓴 자서전 <Street Fighting Years>에 인용한 것을 재인용한 것.[12] 아이튠즈에서는 특정 신체부위가 검열되어 얼굴 부분만 확대한 아트워크가 쓰이며 문제가 되는 국가에서는 특정 신체부위를 스티커로 가린 형태로 발매된다. 이 아트워크에 대해 리암은 "집에 가서 어머니한테도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한국 기레기들의 먹잇감이 되었다[13] 다큐멘터리 <Start Anew>에 수록된 인터뷰를 참조하였음. 01:26부터[14] The La's의 앨범 커버를 연상하게 만든다는 의견.[15] 모드의 상징인 Northern Soul/Keep The Faith 로고를 연상시키는 아트워크이다. 실제로 BE 티셔츠 로고 중 하나에서는 정말 대놓고 똑같이 오마주를 해놓았다.[16] 2010년 Q magazine은 독자 투표에 의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론트맨' 순위를 발표했고, 리암 갤러거가 1위를 차지했다. 그의 우상 존 레넌은 10위. 2위는 U2의 보노.[17] 참고로 오아시스 객원 드러머였던 잭 스타키(링고 스타의 아들)가 마지막 무대인 더 후의 정규 드러머로 등장해 연주하며 노엘 갤러거를 제외한 오아시스 마지막 앨범의 멤버들이 모두 모였다!!![18] 그러나 일주일 전부터 이미 매체를 통해 떡밥이 뿌려질 대로 뿌려져서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19] 두 곡 모두 해체 이후 거의 최초의 커버로, 본헤드와의 공연과 더불어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20] World's Not Set In Stone은 더블 A사이드로 친다.[21] 스콧 로저는 프로듀서 데이브 시텍과의 만남과 밴드의 오아시스 곡 커버를 권유했던 사람이기도 하다.[22] 오아시스 시절에 단 한번도 공연을 오지 않았었다.[23] 오아시스 팬 카페(포럼)지만, 비디 아이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