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04:11:41

권오준/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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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
2.1. 데뷔 초2.2. 군 복무2.3. 2003 시즌2.4. 2004 시즌2.5. 2005~2006 시즌, 전성기2.6. 2007 시즌2.7. 2008 시즌2.8. 2009 시즌2.9. 2010 시즌2.10. 2011 시즌2.11. 2012 시즌2.12. 2013 시즌2.13. 2014 시즌2.14. 2015 시즌2.15. 2016 시즌2.16. 2017 시즌
2.16.1. FA
2.17. 2018 시즌2.18. 2019 시즌2.19. 2020 시즌

1. 개요

권오준의 선수 경력.

2. 선수 경력

2.1. 데뷔 초

1999년에 2차 1라운드 6번으로 지명되어 큰 기대를 받고 입단했으나[1] 입단 직후부터 팔꿈치가 안 좋아서 커리어 초반에는 내내 재활만 했다.

2.2. 군 복무

결국 수술을 받고 난 후 2000년 말 일단 군대를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기로 한 곳이 해병대였다.[2]

2.3. 2003 시즌

2003년 시즌을 앞두고 전역하여 팀에 복귀, 김응용 감독의 눈에 들어 그 해 6월 3일 KIA전에서 처음으로 1군 무대를 밟으며 기회를 쌓았다.

2.4. 2004 시즌

2004년에는 선발 투수중간계투를 오가면서 11승을 거두며 신인왕 후보에도 올랐으나, 신인왕은 그해 현대 유니콘스의 고졸 신인 오재영이 차지했다.

2.5. 2005~2006 시즌,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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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리즈 시절.
2005년부터는 마무리 투수로 전향, 선동열의 연속이닝 무실점 기록에 근접하는 등 맹활약했다. 그러나 후반기 즈음해 구위가 저하되면서 신인 오승환과 보직을 바꿔 셋업으로 정착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선발이던 임창용이 중간계투로, 마무리이던 권오준이 선발로, 중간계투이던 오승환이 마무리로 가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권오준이 선발 등판 이후 이상을 보이자[3] 선동열 감독은 잠시 2군에 내렸다가 1군 콜업 후 셋업맨으로 기용하였다. 이후 오승환과 함께 이른바 KO 펀치라 불리며[4] 삼성의 2005년-2006년 한국시리즈 2연패의 1등 공신이 되었으며, 특히 2006년 32홀드를 기록하며 오승환의 세이브 아시아 신기록과 더불어 한국프로야구 홀드 신기록을 세우면서[5] 그야말로 역대 최고의 사기 조합 중 하나로 등극하게 된다. 오승환, 권혁, 권오준 등이 버틴 삼성의 2000년대 중반 불펜진은 역대 구원투수진 중 최강으로 평가된다.

권오준의 구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당시 별명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마구돌이, 저승사자, 오준테이커[6], 믿을맨 등으로 불렸다.

2.6. 2007 시즌

그러나 2007년에는 이때 무리한 여파인지 성적이 다소 하락했다.

2.7. 2008 시즌

그리고 200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어깨·허리부상 등 잔부상에 시달리다 결국 시즌 후 2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에 들어갔다. 그 사이에 삼성의 필승조 자리는 권혁, 정현욱이 꿰차기 시작한 상황.

2.8. 2009 시즌

이후 재활을 거쳐 2009년 9월에 복귀하긴 했지만 정규시즌이 끝나기 거의 직전이라 2경기밖에 등판하지 않았다.

2.9. 2010 시즌

2010년 본격적으로 1군에 복귀했다. 구속은 전성기보다 꽤 줄었지만 전반기 29.2이닝동안 ERA 2.12로 맡은 바 역할을 쏠쏠히 수행하였으나, 부상이 우려되어 2군으로 내려간 뒤 후반기엔 부진이 겹치면서 별로 기용되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32.2이닝에 ERA 3.58을 기록. 양호한 복귀 성적을 기록했다. 불펜이 강력한 삼성이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팀에서는 당장 필승조로 쓰일 성적이었다.

2010년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5:2로 지던 8회초에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이닝 13투구수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8회말에 4점을 뽑아 스코어 5:6으로 이겨서 권오준은 이날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권오준은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2⅔이닝 3피안타 1몸에 맞는 공 2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6.75, 1승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권오준은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1이닝 1피안타 1몸에 맞는 공 1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18.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권오준은 2010년 포스트시즌 9경기 중 5경기에 등판하여 3⅔이닝 4피안타 2몸에 맞는 공 3탈삼진 4실점 4자책점 평균자책점 9.82, 1승을 기록했다.

2.10. 2011 시즌

2011년에는 삼성 황금불펜진에서 사이드암 자리를 맡으며 팀의 페넌트 레이스 우승에 이바지했다. 다만 승계주자 실점률이 높은 편이라 필승조로 믿고 맡기기에는 약간 불안하다는 것이 삼성 팬들의 중평. 그래도 필승조로 돌아왔으며, 삼성 불펜투수 WAR도 오승환, 안지만, 정현욱 다음으로 4위를 기록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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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국시리즈 2차전 6회 1사 2, 3루를 삼진으로 막아낸 후

팀이 시리즈 전적 1승으로 이기던 10월 26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스코어 0:0인 6회초 1사 2, 3루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선발 장원삼에 이어 2번째 투수로 등판해 난세의 영웅, 짐승을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특히 김강민을 체인지업으로 삼진 처리하고 어퍼컷 세레모니를 하는 모습은 2005, 2006년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명장면이었다. 권오준은 이날 ⅔이닝 11투구수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6회말 공격에서 배영섭이 2타점 적시타로 2점을 뽑아 스코어 0:2로 이겨서 이날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날 경기가 권오준의 2011년 한국시리즈 처음이자 마지막 등판 경기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2.11. 2012 시즌

시즌 초반에는 4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정도로 부진했지만 7월 들어 다시 성적을 끌어올렸다. 특히 이 시기에 심창민이 관리 차원에서 2군으로 내려갔던지라 유일한 사이드암 계투인 권오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시기였다. 9월 11일 팔꿈치 인대 경직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 10월 4일 1군에 복귀했지만 이후 1군 등판을 하지 않았는데, 1군 등록 다음 날 이승엽과 같이 치료차 일본으로 갔기 때문. 팔꿈치 통증이 예상보다 지속되면서 결국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2.12. 2013 시즌

결국 2013년 1월 국내선수로는 처음으로 세 번째 토미 존 서저리받기로 결정하였다.[8] 예전에 받았던 두 번의 수술은 모두 미국의 조브 클리닉에서 받았으나, 이번에는 일본 군마 현의 이토 박사 집도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9] 예전 두 번의 수술로 양쪽 손목 인대를 다 써서 이번에는 오금 부위의 인대를 사용한다고 한다. 2013년 1월 27일 수술을 받았는데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한다. 남은 것은 또 한 번의 재활과 삼성 라이온즈 팬들의 기다림 뿐.

2.13. 2014 시즌

전지훈련 도중 권오준이 오른팔 골절 부상을 입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재활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도중에 일어난 사고라 더더욱 안타까움을 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미세 골절이긴 하지만 개막전 합류는 어렵다고 한다.

4월 6일 NC 다이노스와의 2군 경기에서 세번째 투수로 등판해 1이닝 1삼진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같은 날 두번째 투수로 등판한 임창용이 4월 11일에 1군에 올라올 예정이고, 선발로 등판한 J.D. 마틴은 4월 내에 1군에 올라올 예정이지만, 권오준은 아직 구위가 올라오지 않아[10] 1군 복귀 시점은 둘에 비하면 좀 더 늦을 것이라고.

4월 11일 이후로는 결장했는데 수술했던 팔꿈치 부위의 통증이 재발하면서 결국 올시즌 복귀는 어려워 보였지만, 부상 회복세가 좋았고 아시안 게임으로 일정이 밀린 영향도 있어서 10월 14일 NC 다이노스 전을 앞두고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다만, 류중일 감독도 포스트시즌 활용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보는 상황. 올 시즌은 예열로 그치게 될 공산이 크다.

팀의 정규시즌 1위가 확정되고,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10월 16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박근홍에 이어 세번째 투수로 등판해 1이닝 3피안타 2실점을 기록하고 권혁으로 교체됐다.

결국 2014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다.

2.14. 2015 시즌

시범경기 5게임에 등판하여 6이닝동안 1실점 1자책점 6탈삼진을 기록하며 권혁이 빠져나간 불펜의 힘이 되줄거라 팬들은 기대하고있다. 류중일 감독의 구상에 의하면 신용운과 함께 원포인트로 생각하고 있다.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됐으나, 3월 31일 kt전에서 0⅔이닝 1실점을 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4월 1일 kt전과 4월 9일 롯데전까지 3경기 연속 실점했다. 이후 등판이 뜸해지면서 4월 20일, 김현우심창민의 복귀를 앞두고 임현준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5월 17일 허리 통증이 있는 안지만을 대신해 1군에 복귀했다.

6월 25일 기준으로 ERA가 6.32나 된다.

마땅히 올릴 선수가 없어 신용운과 1군에 오르내리고는 있으나, 세 번의 토미존은 무리였는지 심각한 구위 하락을 보이고 있다. 137~138km/h의 최고 구속에 130km/h 초중반의 속구로 구속도 뚝 떨어졌거니와, 그나마도 회전력이나 제구력이 따라주질 못해 말 그대로 통타당하는 게 모두에게 보이고 있는 상황.

결국 7월 10일 KT와의 경기에서 점수가 벌어진 상황, 패전조로 등판해 1이닝 동안 48구를 던졌는데, 무려 13타자를 상대로 5피안타(홈런 1개) 1삼진 5사사구로 "7실점 7자책"을 기록하며 전성기에 비해 폼이 확실히 죽었음이 증명되었다. 7월 11일 1군 엔트리에서 빠졌고, 대신 이영욱이 1군에 올라왔다.

너무 심각하게 폭망해서 그런지 은퇴해야 하는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한때 삼성의 막강 계투진의 일원으로 팀을 위해 헌신한 활약상을 떠올리면 현재 권오준의 몰락은 너무나 처절할 정도로 안타깝다는 반응이 대다수.

8월 13일 백정현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이번 시즌에는 부진했으나 도박논란으로 마무리 투수인 임창용과 홀드왕 안지만이 이탈하면서 약화된 불펜진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당초 시즌 종료 후 FA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격 요건이 안 되었는지 11월 18일 공시된 FA 대상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2.15. 2016 시즌

2015년 말 도박 사건으로 인해 임창용이 방출되자 팀 내 투수진 중 최고참이 되었다. 또한 삼성에 입단한지 18년차가 되면서 삼성에서 활동한 선수 중 가장 오랜 기간 삼성에 몸을 담았던 선수가 되었다.[11] 2015년 부상의 재발을 우려해 투구폼이 소극적으로 바뀌었다면서 어차피 이대로 은퇴하나 다시 부상을 당해 은퇴하나 똑같다며 과거 와일드한 투구폼으로 바꿨다. 시범경기 동안 7경기에서 1승 3홀드 ERA 1.00을 기록하면서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됐다.

그러나 시즌 들어 6경기에서 방어율 15.19를 기록하며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다. 특히 피안타 9개 중 4개가 홈런으로, 은퇴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구위가 현저히 떨어졌다. 4월 23일 정인욱, 조현근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그래도 2015년에는 2군에서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2016년에는 2군에서도 통타당하고 있다.[12] 때문에 이대로 은퇴하지 않을까 했는데, 6월 10일 부진한 김현우를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권오준의 지난 3년간의 부진은 3번째 토미존 서저리 당시 오금 쪽 인대 사용에서 원인을 찾아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투구 시 팔만큼이나 중요한 무릎 쪽 인대를 쓴 탓에 (필요한 인대가 소실돼서) 중심 잡는데 애로사항이 있지 않겠냐는 것.

7월 9일, 10일 대전 한화전에서 각각 1이닝,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부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7월 21일 안지만이 계약해지되면서 메이저리그에 있는 오승환을 제외하면 한때 삼성의 최강불펜진 JOKKA 라인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7월 21일 잠실 두산전에서 팀이 6:3으로 3점 앞선 8회말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첫 홀드와 함께 2012년 9월 2일 이후 1419일만에 홀드를 기록했다.

7월 22일 책임 주자를 남겨놓고 백정현이 분식회계해서 패전 투수가 되었다. 장필준 블론, 권오준 패, 백정현 분식회계다.

7월 29일 대구 넥센전에서 플란데에 이어 6이닝부터 등판해서 3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고, 그것이 결국 연장12회의 접전 끝에 팀이 역전승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구속이 점점 오르고 있다. 8월 9일 139km 빠른볼에 전성기 시절 테일링이 다시 걸린다.

9월 13일 한화전에서 연장전에 올라와 꿋꿋이 공을 뿌렸으나 송광민과 로사리오, 양성우에 적시타를 허용하며 2실점했고 신용운이 차일목에 희생 플라이를 허용하며 책임주자 3명이 홈을 밟아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한화 상대 무실점 기록도 깨졌다.

시즌 막판에는 구속이 141이 찍히는 등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다만 아주 느리게.

시즌 초만 해도 2군에서 두 자릿수대 평균자책점을 찍으며 은퇴 얘기까지 나왔었는데 어쨌든 중반부터 반등에 성공, 막판에 3점대 평균자책점까지 진입에 성공하며 시즌을 마무리, 마무리 심창민과 함께 팀 내에서 유이하게 믿을만한 불펜이 되었다.

이번에도 FA 자격요건에 충족하지 못했는지 11월 7일 공지된 FA 자격 명단에서 또다시 빠졌다. 이로서 FA대박은 점점 멀어지는 중...

2.16. 2017 시즌

2월 1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연습경기에서 7회 등판해 1이닝 2삼진을 기록했다. 삼성 투수진 중 가장 많은 삼진을 기록하며 아직 죽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2월 2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연습경기에서 불펜등판하여 1.2이닝 2피안타 2실점을 기록하였다.

3월 7일 SK 와이번스와의 연습경기에 1이닝 1피안타 1실점했다.

4월 18일 두산과의 1차전에서 12회 연장에 등판했다. 앞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준 심창민과 달리 4-5-6번 타자를 안정적으로 잡아내며 무승부를 만들어냈다.

4월 19일 두산전에서 1:0으로 뒤지던 7회, 김승현이 2루타와 볼넷을 내주며 무사 1,2루로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구원등판했다. 허경민의 희생번트에 이어 1사 2,3루의 위기에서 김재호를 투수 앞 땅볼, 대타 최주환을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이후 8회 공격에서 삼성이 동점을 만들며 기회를 엿보는가 했으나... 권오준은 8회에 이어 9회까지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고,[13] 결국 9회 말 선두타자 박세혁이 2루수 앞에서 불규칙 바운드로 튀어오르는 안타를 만들며 출루했고, 2아웃까지 잘 잡아냈으나 결국 김재호에게 끝내기 적시타를 맞고 패전투수의 멍에를 썼다.

4월 23일 NC전에 잘 던지던 좌완 백정현이 내려가고 뜬금없이 등판해 우완이라는 이유여서였는지 우타자 스크럭스를 상대하게 되었다. 결과는 솔로포로 블론세이브. 삼성은 이날 또 져서 아직도 3승째다.

5월 13일 김대우가 5회 1사 만루를 만들고 흔들리자 구원등판했으나 모든 주자들을 분식하며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5월 24일 등판하여 1,2루에서 만루를 만들고 홈런을 맞아 역전을 허용했고[14] 이어 백투백 홈런까지 맞았다. 결국 5월 25일 김대우와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6월 28일 백정현과 함께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7월 20일 롯데전에서 7회 말 장원삼의 화려한 삽질로 동점에 1사 만루가 되자 등판, 김상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앤디 번즈를 내야 파울플라이로 잡아내며 위기를 벗어났다. 이후 9회 말까지 39개를 던지면서 2.2이닝 3K 1사사구를 기록하며 무실점 호투했다.

시즌 종료 후 어렵게 첫 번째 FA 자격을 얻었다.

2.16.1. FA

2017년 시즌 종료 후 FA 신청을 했다는 기사가 떴다. 기사

11월 17일, 2년간 총액 6억 원(계약금 2억 원, 연봉 1억 5000만 원, 옵션 최대 1억 원)에 계약을 맺었다. 팬들 반응은 대체로 계약한 건 잘했지만 금액이 아쉽다는 반응들이다. 권오준이 비록 노쇠화로 인해 성적이 전성기 시절보다 훨씬 나빠진 건 사실이지만 그동안 삼성 불펜진의 맏형으로써 헌신하고 노력했으며 그로 인해 수술과 재활을 여러 번 반복했고 어렵게 다시 재기에 성공, 힘겹게 데뷔 19년 만에 FA 자격을 취득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2.17. 2018 시즌

권혁과 오승환과 함께 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권오준 선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고 있습니다.
- 7월 28일 KBSN 이호근 캐스터

생애 첫 FA 계약에 성공한 뒤 맞는 시즌이자, 어느덧 데뷔 20년차가 되었다. 팀의 불펜진이 리빌딩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맏형이자 불펜진에서 가장 경험많은 베테랑 투수로서의 임무에 충실히 할 전망이다.

여담으로 2018년 삼성의 신인인 양창섭1999년생인데, 어느덧 본인이 프로 구단에 지명받은 해인 1999년에 태어난 후배들과 뛰게 되었다.

5월 26일 잠실 두산전에서 개인 통산 500경기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7월 28일 대구 KIA전에서 1⅓이닝을 4K로 마무리지으면서 팀의 승리를 이끌고 2010년 이후 8년만에 세이브를 올렸다. 오래간만에 권오준의 포효와 어퍼컷 세레모니도 볼 수 있어서 예전의 권오준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상당히 짠한 날이 되었다.

7월 31일 대구 NC전 12회말 등판해 1이닝을 깔끔하게 무실점했다.

8월 10일 잠실 LG전 노쇠화가 온 모습을 보이며 2실점이나 했다. 2018년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인 것과는 조금 달리 컨디션이 안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0월 3일 대구 KIA전 19:2(...)로 이기고 있던 6회 말 등판하여 무사만루를 허용하면서 위기(?)에 몰렸으나 1실점으로 잘 막아냈고 정인욱에게 마운드를 넘겨주었다. 이날 경기는 20:5로 삼성의 대승으로 끝났다.

2.18. 2019 시즌

임창용, 박정진의 은퇴로 KBO 리그 최고령 투수가 되었다.[15]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최고령이다.

시즌 1군 개막 엔트리에 합류했다. 그리고 3월 24일 NC전 3:3으로 동점인 상황에 7회 말에 올라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그날 승리투수가 되었다.

박한이가 은퇴하면서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 최고참이 되었다.

8월 23일 두산전에서 1이닝 4피안타 1볼넷 3실점을 기록하면서 다음날인 24일 1군에서 제외됐다.

9월 8일 1군에 복귀했다.

2.19. 2020 시즌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5월 12일 이학주, 김윤수와 함께 2군에서 콜업되었다.

지난 kt전을 제외하고는 무난히 이닝을 잘 막고 있다는 평이 많다.

그러나 6월 28일 경기에서 추격상황에 올라와 경기를 말아먹고 강판되었다. 윤성환과 함께 삼성왕조를 몸소 경험한 선수 두 명이 사이좋게 노쇠화가 왔다. 팬들은 둘 다 나이도 40줄에 접어들었고 하니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둘 다 은퇴하지 않겠느냐 하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결국 다음날인 6월 29일 임현준과 함께 말소되었다.

7월 31일엔 이닝이 끝날 수도 있었던 타구를 김지찬이 알까기를 하며 억울하게 3점을 내주고 그후 홈런까지 맞으며 5점을 내줬다.

8월 23일 롯데전에서 1⅓이닝 5실점(2자책점)을 기록하고 다음날 엔트리에서 말소됐는데, 특이하게도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이후에도 2군 경기에 등판하지 않고 여전히 1군 선수단과 동행하고 있다. 이를 미뤄봐서는 사실상 잔여 시즌 동안 플레잉코치 역할을 하는 중이며 시즌 후 은퇴할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다.

10월 29일,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바로 하루 뒤인 10월 30일 홈 최종전에서 은퇴 경기 겸 은퇴식을 진행한다고 한다. 코로나-19 속에서도 팬들이 제한적으로나마 있는 야구장에서 마지막을 하게 되어 다행. 여담으로 권오준의 은퇴식은 삼성 구단 8번째 은퇴식이다.[16]

10월 30일, NC와의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1군에 등록되었고, 은퇴식 겸 은퇴 경기가 열렸다. 두 아들이 본인 은퇴식에 참여했는데, 두 아들이 시구와 시타를 하고 권오준은 시포를 하여 아들의 공을 받으면서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후 9회초 팀이 4-3으로 앞선 가운데 등판하여 모창민을 3루수 땅볼 아웃으로 잡아내고 홀드를 수확함과 동시에 마운드를 오승환에게 넘겨주면서 커리어 마지막 등판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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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드를 내려가는 권오준에게 인사를 하는 오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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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7]

하지만 믿었던 오승환이 천적 알테어에게 솔로홈런을 맞으며 블론세이브를 저지르면서[18] 팀은 12회 접전 끝에 무승부를 기록했다.

경기종료 후 진행된 은퇴식에서 여러 인사들의 축하 영상이 올라왔는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최형우의 영상이 나왔다. 관중석의 반응은 당연히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물론 오랫동안 삼성에서 같이 뛰었던 선후배 사이이기 때문에 인터뷰를 한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삼성 팬들 사이에서 최형우는 완전히 금기어로 자리잡아 버린지라...


[1] 당시 삼성의 1차지명 정성열이 8000만원,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2차 3라운드 장영균이 7000만원이었는데, 권오준의 계약금은 그 둘의 계약금을 합친 것보다도 9000만원이나 많은 2억 4000만원이었다. 지금이야 고졸 신인이 2억 넘는 계약금을 받는 경우가 꽤 있지만 이때는 1999년이라 지금 물가랑 비교하면 상당히 큰 액수고, 무엇보다도 연고지 출신 1차 지명자도 아닌 고졸 투수에게 계약금으로만 2억 4000만원을 줬다는 건 그만큼 삼성 구단이 권오준에 대한 기대가 컸다는 셈이다.[2] 비록 상근예비역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2004년에 병역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그의 군 복무 이력이 화제가 되었다. 해병대 시절 모습. 당시 집주소가 해병대 부대 근처라서 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3] 혈행장애라는 루머도 있었으나, 구단 정밀검사 결과 별다른 이상은 없으며 단순한 투구폼의 문제로 밝혀졌다.[4] 이후 안지만, 정현욱, 권혁과 이 별명이 묶이면서 안정권KO, 또는 JOKKA라는 별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후에 이 KO펀치는 그의 은퇴식때 마지막 합을 맞춘다.[5] 2005년 이재우의 28홀드를 1년만에 갱신한 기록. 2012년 박희수가 34홀드를 기록하고 2015년 안지만이 37홀드를 기록,또 2019년 김상수(투수)가 40홀드를 기록하고 서진용이 33홀드를 기록하며 역대 5위로 밀려났다.[6] 마무리로 등판할 때 등장음악이 언더테이커 장의사 기믹 테마였다.[7] 5위는 권혁[8] LG 트윈스이동현이 팔꿈치 수술을 세 번 받은 경험이 있지만 토미 존 서저리는 두번이었다. 이후 2016년 롯데 자이언츠조정훈이 국내선수로는 두번째로 토미 존 서저리 3회 수술 기록을 세웠다.[9] 2012년 임창용도 권오준과 같은 병원에서 2번째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 바 있다.[10] 이날 속구 최고구속이 135km/h에 불과했다.[11] 종전 기록은 정현욱진갑용의 17년. 다만 정현욱과 권오준은 군복무 시절도 포함한 것이라서 군복무 시절을 제외하면 진갑용이 제일 길다.[12] 퓨처스리그 방어율이 무려 12점대였다.[13] 나이도 많은 노장인데다, 알다시피 권오준은 토미존 서저리를 3차례나 받은 투수이다. 비록 노련하다 하나 길게 끄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14] 패전은 주자를 남겨둔 채 강판된 장필준이 떠안았다.[15] 같은 1999년 졸업인 송승준은 6월생, 김승회는 빠른 1981년생이다.[16] 기존 삼성 구단의 은퇴 행사로만 봐도 류중일(2000년), 김현욱(2005년), 김한수(2008년), 전병호(2009년), 김재걸(2010년), 양준혁(2010년), 이승엽(2017년)에 이은 8번째 은퇴 행사다. 이 중 은퇴 경기로만 한정하면 양준혁, 이승엽, 권오준 세 명 뿐이다.[17] 갑분싸가 되어 버린 덕아웃이 포인트.[18] 다만 이걸 오승환 탓으로 돌릴 수 없는게, 실투도 아니었고 오승환이 제대로 던진 포심을 알테어가 잘 받아쳐서 홈런을 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