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10 12:46:53

귀인 장씨(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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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인조의 후궁
귀인 장씨 | 貴人 張氏
파일:서삼릉후궁묘역.jpg
서삼릉 빈·귀인 묘역 전경
출생 1619년 4월 29일
사망 1671년 3월 4일 (향년 53세)
능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 후궁묘역
재위기간 조선 숙의
1635년 9월 26일 ~ 1639년 1월 24일
조선 소의
1639년 1월 24일 ~ 1640년 10월 12일
조선 귀인
1640년 10월 12일 ~ 1671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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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본관 덕수 장씨[1]
부모 부친 장류
모친 한산 이씨
배우자 인조
봉작 숙의(淑儀) → 소의(昭儀) → 귀인(貴人)
}}}}}}}}} ||

1. 개요2. 생애3. 여담4. 대중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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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인조의 간택 후궁. 인조의 며느리이자 효종의 왕비인 인선왕후 장씨와는 같은 덕수 장씨 집안으로써 먼 친척 관계이다.

2. 생애

1619년(광해군 11) 3월 16일 아버지 정9품 선공감(繕工監)[2] 부봉사(副奉事)를 지낸 장류(張留)[3]와 어머니 한산 이씨 이준(李畯)의 딸 사이의 2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장류의 증조할머니 신씨는 신사임당의 언니이자 율곡 이이의 이모이다.

1635년(인조 13) 8월 16일 숙의로 선발되어 이현궁에서 한 달 동안 교육을 받고 입궁하였다. 특히 이현궁은 인조의 모후인 인헌왕후가 머무르던 궁궐로, 후궁으로서는 상당한 수혜를 입은 것이다. 이 당시, 장씨의 간택과 가례 절차는 하나의 전례가 되어 훗날 숙종이 영빈 김씨를 맞이할 때에도 절차에 참고하게 된다.

1638년(인조 16) 인조가 장렬왕후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을 때, 관례상 장씨는 정2품 소의로 책봉되고, 1640년(인조 18)에는 종1품 귀인으로 책봉되었다.[4] 그러나 당시 가장 총애 받는 후궁은 귀인 조씨였으므로 장씨의 존재감은 매우 미미하였다.

3. 여담

  • 연려실기술》 인조조 고사본말에 따르면, 하루는 인조가 꿈에서 한 여자를 보았는데 스스로 장류의 딸이라 말하고, '태평(太平)'이란 글자를 써서 올렸다. 잠에서 깬 인조가 수소문하여 찾아보니, 진사 장류라는 사람에게 과연 딸이 있었다. 이에 후궁으로 뽑아 들이게 한 다음 시험 삼아 글씨를 써보게 하였더니,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이라는 다섯 자를 써 올렸다고 한다.

4. 대중 매체

  •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 - 이혜은
    인조의 간택후궁이지만 총애받지 못하고 나이 든 후궁. 인열왕후 생전에는 인열왕후에게 잡혀 꼼짝도 못하고 살다가 조 귀인(김현주 분)이 들어오자 조 귀인 눈치를 살피고, 어린 중전(고원희 분)과 세자빈(송선미 분)의 눈치까지 보는 그야말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신세. 이렇다보니 그때 그때 우세한 인물한테 빌붙어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등 기회주의적인 면모가 있다.

[1] 소감공파 15세. 아버지 장류의 사마방목에는 본관이 풍덕(豊德)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당시 존재했던 풍덕군(豊德郡)은 1442년(세종 24) 해풍군(海豊郡)과 덕수현(德水縣)이 합병되어 만들어진 행정구역이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계곡 장유의 문과방목에도 본관이 덕수(德水)가 아닌 풍덕(豊德)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덕수장씨족보(갑인보, 1974년 발행) 35쪽에도 등재되어 있다.[2] 건축물의 조성 및 왕실 및 중앙에 필요한 땔감 연료인 시탄(柴炭)을 조달하는 등의 일을 하는 부서.[3] 1624년(인조 2) 식년시 생원시에 1등 4위로 급제하였다.#[4] 보통 새로운 왕이 즉위하거나 왕비나 세자가 책봉되는 등 나라에 경사가 있으면 품계를 높여주는 일이 있었다. 예를 들면, 명빈 박씨영빈 김씨인원왕후가 새 왕비로 들어온 기념으로 정1품 빈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