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13:06:32

나카무라 다케야/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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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 이전
1.1. 고등학교 시절
2. 프로 경력
2.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2.1.1. 2002 시즌2.1.2. 2003 시즌2.1.3. 2004 시즌2.1.4. 2005 시즌2.1.5. 2006 시즌2.1.6. 2007 시즌2.1.7. 2008 시즌2.1.8. 2009 시즌2.1.9. 2010 시즌2.1.10. 2011 시즌2.1.11. 2012 시즌2.1.12. 2013 시즌2.1.13. 2014 시즌2.1.14. 2015 시즌2.1.15. 2016 시즌2.1.16. 2017 시즌2.1.17. 2018 시즌2.1.18. 2019 시즌2.1.19. 2020 시즌2.1.20. 2021 시즌2.1.21. 2022 시즌2.1.22. 2023 시즌2.1.23. 2024 시즌
3. 국가대표 경력4. 연도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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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모기업 파일:서일본 철도 로고.svg 서일본 철도
일본시리즈 우승
★★★★★★★★★★★★★
1956 · 1957 · 1958 · 1982 · 1983 · 1986 · 1987 · 1988 · 1990 · 1991 · 1992 · 2004 · 2008
리그 우승
(23회)
1954 · 1956 · 1957 · 1958 · 1963 · 1982 · 1983 · 1985 · 1986 · 1987 · 1988 · 1990 · 1991 · 1992 · 1993
1994 · 1997 · 1998 · 2002 · 2004 · 2008 · 2018 · 2019
퍼시픽리그
전·후기 우승
(1회)
1982전기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8 · 2010 · 2011 · 2012 · 2013 · 2017 · 2018 · 2019 · 2022
시즌 문서 2013-2021 · 2022 · 2023 · 2024월별문서
현역 선수 경력 쿠리야마 타쿠미/선수 경력 · 겐다 소스케/선수 경력 · 이마이 타츠야/선수 경력 · 나카무라 다케야/선수 경력
타이라 카이마/선수 경력
경기장 1군 베루나 돔 · 2군 CAR3219 필드 · 지방 홈구장 사이타마현영 오미야공원 야구장 · 조모 신문 시키시마 구장
과거 헤이와다이 야구장
홈 중계 채널 파일:후지테레비2 로고.jpg 후지 테레비 2
주요 인물 구단주 고토 타카시 · 단장 와타나베 히사노부 · 감독 마츠이 카즈오 · 선수회장 토노사키 슈타 · 주장 겐다 소스케
구단 상세 정보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10.19(야구)
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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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 미스터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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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 이전

1.1. 고등학교 시절

집에서 가까운(도보 5분 거리) 오사카 토인고교[1]에 진학하여 4번 타자로 활약하며 고교 3년간 통산 83홈런을 기록했다.[2] 또한 프로에서 도루왕 경력이 있는 1년 후배 니시오카 츠요시가 고교 시절 자신보다 나카무라가 더 빨랐다고 증언할 만큼 주력도 뛰어난, 정말로 대단한 재능을 지닌 선수였다.[3] 이러한 성적에 힘입어 2001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2순위로 지명되어 모두의 기대를 한껏 받으며 프로에 입문했다. 고3 시절 경기모습[4]

2. 프로 경력

2.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2.1.1. 2002 시즌

순조롭게 1군에 적응해 갈 것이라던 예측과 달리 나카무라의 프로 초년병 시절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장타력은 뛰어났지만 정교함이 떨어지는데다가 삼진이 너무 많았다.

2.1.2. 2003 시즌

2003년 1군 데뷔전을 치르긴 했지만 큰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2.1.3. 2004 시즌

2.1.4. 2005 시즌

2005년 중반에 이르러서야 이토 쓰토무 감독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기회를 얻기 시작했다. 이토 감독은 당시 3루수를 보고 있던 용병 호세 페르난데스를 지명타자로 돌리고 나카무라를 붙박이 3루수로 기용하였다. 나카무라는 80경기에서 22홈런을 폭발시키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특히 센트럴리그와의 교류전 기간 동안에는 12홈런을 기록하며 교류전 우수선수상을 받았다.

2.1.5. 2006 시즌

2006 시즌에는 당시 개인 최다인 100경기에 출전하였으나 홈런은 9개로 급감하였으며, 득점권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며(시즌타율 .276, 득점권 .205) 부진했다. 또한 좌상바의 모습도 보이며 상대선발이 좌완일 경우 선발에서 제외되기 일쑤였다.

2.1.6. 2007 시즌

2007 시즌 역시 부진하며 5월에는 2군을 가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결국 시즌 98경기 출장에 타율 .230, 홈런 7개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2.1.7. 2008 시즌

그러던 중 2008년에 세이부에 와타나베 히사노부가 신 감독으로, 오쿠보 히로모토가 타격 코치로 들어오면서 나카무라의 커리어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오쿠보 코치는 정교함이 떨어지는 나카무라가 자신의 단점을 고치기 위한 훈련을 반복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단점을 고치기보다는 장점을 살리자' 라며 그의 스윙 스타일을 변화시켰다. 동계훈련 기간동안 보다 당겨치는 타구가 많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 히팅포인트를 앞 무릎 앞쪽에 형성시키는 훈련을 한 나카무라는 2008년 드디어 홈런타자로 각성하여 46홈런으로 리그 홈런왕에 등극한다. 반면에 삼진 또한 162개를 기록하며 삼진 1위에도 동시에 등극한다(...) 그러나 리그 최다인 22개의 실책, .231의 낮은 득점권 타율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2.1.8. 2009 시즌

이듬해인 2009 시즌에도 48홈런을 몰아치며 홈런왕 자리를 유지하였으며 122타점으로 생애 최초 타점왕도 달성한다. 타율 또한 .285로 전년도(.244)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다. 다만 실책(15)과 삼진(154)에서도 여전한 모습을 보여주며 2년 연속 해당부문 리그 1위를 지켰다.

2.1.9. 2010 시즌

2010년에는 시즌 전 자신이 친 타구에 얼굴을 맞아서 골절상을 입는 등 시즌 내내 부상으로 고생하며 85경기 출전, 25홈런에 그친다. 부상만 없었다면 홈런왕은 따놓은 당상이던 페이스였지만 이로 인해 홈런 타이틀은 T-오카다가 가져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111개의 아름다운 삼진 개수를 기록하였으며 득타율은 .170을 기록하며(!!!) 공갈포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2.1.10. 2011 시즌

반발력이 낮은 통일구가 도입되어 일본프로야구 전체의 장타력이 급감한 2011 시즌에도 홀로 대포를 양산해내며 48홈런으로 개인 최다 타이를 이룸과 동시에 3번째 홈런왕을 차지한다. 해당 시즌 퍼시픽리그 홈런 2위인 마쓰다 노부히로의 홈런 갯수는 25개였으며[5], 퍼시픽리그 전체 홈런이 454개, 치바 롯데 마린즈의 경우 팀 홈런이 46개였을 정도로 역대급 투신타병 시즌이었다. 나카무라는 리그 전체 홈런의 10.57%를 혼자 양산해내며 양 리그 출범 이후 최초로 리그 홈런의 10% 이상을 홀로 치는 위엄을 보여줬다. 116타점으로 당연히 타점왕도 그의 몫. 리그 전체의 투고타저 경향에 홀로 역행한, 나카무라 타케야의 실질적인 커리어하이 시즌이다.

2011 시즌 후 팀과 3년 10억엔의 계약을 맺었다.

2.1.11. 2012 시즌

2012 시즌을 앞두고 본인의 등번호와 같은 60홈런을 칠 것을 선언한다. 시즌 초반 잠시 부진을 겪으나 교류전을 계기로 괴물같이 부활하며 홈런 1위에 등극한다. 하지만 6월 등부상이 악화되어 부상자 명단에 오른다. 그 사이 이대호에게 홈런과 타점 1위 자리를 빼겼지만 이내 역전하면서 27홈런으로 2년 연속 퍼시픽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2.1.12. 2013 시즌

2013년 시즌에는 전년도 무릎 수술로 인해 시즌 대부분을 날려먹으면서(어깨 부상으로 인해 복귀 지연) 26경기 출전, 4홈런에 그쳤다. 4번타자 자리는 .317 27홈런 110타점으로 타점왕 타이틀을 획득하며 각성한 고교 후배 아사무라 히데토가 메웠다. 그리고 옆 동네의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기어코 60홈런을 쳐낸다 시즌후 기존 3년계약중 1년계약을 파기하고 4년 20억엔의 대형계약을 맺었다.

2.1.13. 2014 시즌

2014 시즌에는 완전히 각성. 타율은 여전히 2할 중반대에서 머물렀지만, 출루율이 확연히 높아진 모습을 보였다. 완벽히 타석 접근법을 자신에게 맞는 형태로 찾아낸 모양. .257 .384 .579 34홈런[6] 90타점의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2.1.14. 2015 시즌

2015 시즌에는 7월 24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서 4회말에 선발투수 오타니 쇼헤이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면서 300홈런(일본프로야구에서 41번째)과 1,000호 안타(일본프로야구에서 281번째)를 동시에 달성하였다. 300호 홈런은 1,158경기만이며 이는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8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아울러, 같은 날 경기에서 역시 투수 오타니를 상대로 158km의 강속구를 밀어쳐서 만루홈런을 뽑아냈는데, 개인 통산 15번째 만루홈런이며,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만루 홈런(15개)를 친 타자로 오 사다하루와 타이를 이뤘다. 8월 9일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열린 오릭스 버팔로즈전에서 시즌 31호이자 일본프로야구 신기록이 되는 통산 16번째 만루 홈런을 날렸다. 2015 시즌의 70%정도가 지난 8월 16일에(전날 스리런으로 생일을 자축하였다) 리그 타점 106점으로 2위인 이대호와의 차이가 27점이다. 홈런도 이대호보다 7개 앞선 33개. 진짜 독주란게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결국 37홈런, 124타점으로 2관왕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비공식 타이틀 삼진왕(172개)은 덤

2.1.15. 2016 시즌

2016년 시즌 초반 사구에 부상을 당해 주춤했으나, 다시 홈런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파리그 홈런 경쟁 레이스에서 닛폰햄의 브랜든 레어드, 팀 동료 에르네스트 메히아의 뒤를 쫓고 있다. 물론 삼진 숫자는 당당히 1위를 마크하고 있다. 일본의 자존심 5월 13일부터 3루수로 출전했고, 6월 15일게임 수비 도중 협살 플레이 처리 과정에서 왼쪽 무릎을 다친 뒤 6월 28일까지 1군 경기 출장 기록이 없다. 7월 1일부터 경기에서 다시 출전하고 있으나, 홈런을 날리지 못하고 있다. 타율과 출루율도 하향세.

극도의 타격부진이 계속되자, 타나베 노리오 감독은 오카와리 군의 2군행을 결정했다. '16년 7월에는 19경기에 출전하여 타율은 0.194, 홈런은 2개에 그쳤다. 나카무라는 스스로 몸상태는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16시즌은 108경기에서 타율 0.238, 21홈런, 61타점, 출루율 0.313, 장타율 0.447, 125개의 삼진 등 지난해에 비해 크게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2.1.16. 2017 시즌

2017년 시즌을 앞두고 많은 준비를 했다. 체중 4킬로를 감량하여 무릎의 부담을 줄였고, 신예 거포 츠츠고 요시토모의 타격폼을 참고해 폼을 개선했다. 개막전 안타 이후 4월 23일까지 17경기 연속안타를 기록했다.[7] 오른쪽 발목 염증으로 25일 경기를 결장하고 26일에 출전했으나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해 기록 갱신에 실패했다. 2017년 6월 14일 한신 타이거즈와의 교류전 원정경기에서는 홈런을 날리며 12구단 본거지에서 홈런을 모두 기록하게 되었다. 고시엔 구장에서 77타석만의 첫 홈런.

2017년 최종 성적은 115경기 타율 .217 출루율 0.319 장타율 0.446 27홈런 79타점으로 퍼시픽리그 홈런 6위과 타점 7위를 기록했다. 1루수로는 야마카와 호타카, 3루수로는 토노사키 슈타라는 젊은 자원들이 대두하면서 메히아-오카와리의 우타 거포 듀오에게는 위기가 찾아온 한 해가 되었다.

2.1.17. 2018 시즌

2018년에는 본인의 부상도 있고 그 와중에 야마카와와 토노사키가 1군에서 불을 뿜고 있는지라 2군에서 개막을 맞았다. 1군에서 2018. 6. 26 기준 24시합 81타수 9안타(1홈런) 4타점 30삼진 타율 0.111 / 출루율 .198 / 장타율 0.160을 기록하고 있으며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다. 시즌 첫 홈런을 6월 9일에야 신고했다. 7월 21일 라쿠텐과의 홈경기에서 시즌 8호(솔로)홈런을 기록하며 에토 아키라를 제치고 일본프로야구 통산 홈런 순위 단독 26위에 올랐다. 7월 31일 소프트뱅크와의 홈경기에서 시즌 11호(솔로)홈런을 날렸고 통산 368호 홈런으로 에토 신이치(前 롯데)를 제치고 통산 홈런 순위 단독 25위에 올랐다. 8월 7일 오릭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앤드류 앨버스를 상대로 시즌15호홈런(2점)을 날리며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45번째로 1,000타점 고지에 올랐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17경기에서 10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부진 탈출의 계기는 동갑내기 선수인 라쿠텐의 이마에 토시아키가 사용하는 배트와 동일한 모델을 사용해서라고 한다. 평소에 쓰던 950그램보다 50그램 가벼운 900그램의 배트다. 8월 9일 오릭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시즌 17호 홈런(2점)을 날리며 본인 최초 5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8월 10일 라쿠텐 원정에서 시즌 18호 홈런을 쳐내며 퍼시픽 리그 타이기록인 6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8] 다음날인 11일, 일본프로야구 타이기록[9]인 7경기 연속 홈런에 도전했으나 5타수 1안타에 홈런없이 물러나며 퍼시픽리그 타이기록으로 만족했다. 8월 17일 닛폰햄과의 홈경기에서 20호 홈런을 쏘아올렸다. 5년 연속, 11번째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 되었다.

2018년 최종 성적은 97시합 출전, 타/출/장 0.265 0.329 0.546, 28홈런(리그6위) 74타점(리그공동10위) 112삼진이다. 시즌 종료 후 해외 FA 권리을 행사하고 "평생 세이부 라이온스"를 선언하며 팀에 잔류한다고 발표했다. FA권을 재취득하는 것은 만39세가 되는 2022년이다. 극도의 부진으로 은퇴까지 고민했으나 여름에 부활을 이뤄냈으며 내년 세이부의 일본시리즈 제패를 맹세하였다.[10]

다만 2018 시즌부터 퍼시픽리그를 대표하는 홈런왕의 이미지는 팀 후배인 야마카와 호타카가 가져가버렸다.

2.1.18. 2019 시즌

아사무라 히데토의 FA이적으로 인해 내야진을 개편함에 따라 3루와 외야를 병행하던 토노사키 슈타가 2루로 이동함으로서 3루수를 보게 되었다. 시즌 초반까진 2할 초중반대의 저타율에 허덕이며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교류전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살아나고 있다. 5월 11일 닛폰햄과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17번째 만루홈런을 치며 2015년 이후 처음으로 만루홈런을 기록했다. 다만 팀은 7:5로 패배했다.

6월 14일 야쿠르트와의 홈경기에서 개인통산 18번째 만루홈런을 날리며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통산 최다 만루홈런 기록을 또다시 경신했다. 6월 18일의 주니치와의 원정경기에서는 상대 선발 오노 유다이에게 투런홈런을 날리며 홈런을 기록한 투수의 수를 229명으로 늘리고 교류전 통산 200타점도 기록했다. 6월 22일 한신 원정경기에서는 오사카 토인 동기 이와타 미노루를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작렬하며 홈런을 기록한 투수의 수가 230명이 되었다. 이는 요미우리의 아베 신노스케와 더불어서 일본야구 타이 기록.

교류전이 종료된 이후인 7월 19일. 개인통산 400호 홈런을 끝내기 홈런으로 달성했다!! 거기다 타격감도 점점 더 좋아지며 30대 중반에 타율 커리어 하이를 찍을 기세다. 8월 29일 기준 타/출/장 .290 .369 .535에 25홈런 99타점을 기록중이다. 2015년 이후로 4년만에 세 자릿수 안타를 달성하는가 하면 타점도 야마카와 호타카의 뒤를 이어 리그 2위에 올라있다. 과거처럼 30~40개의 홈런을 치던 파괴력을 가진 거포에서 적재적소에 타점을 올려주는 클러치 히터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9월 3~5일 오릭스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19번째 만루홈런을 기록하며 10타점(2타점, 5타점, 3타점), 9월 6일 라쿠텐과의 경기에서도 또다시 만루홈런을 쳐내 4타점을 쓸어담으며 야마카와 호타카(11개)를 제치고 타점 선두(117개)를 달리고 있다. 9월 6일 홈런으로 2015시즌 이후 또다시 한 시즌 만루홈런 4개를 기록했고, 통산 만루홈런 기록도 20개로 늘리며 독보적 1위가 되었다.

2019년 종료 성적은 타율(.286), 장타율(.528), 출루율(.359), 135경기, 홈런 30개(리그 공동 5위), 타점 123개다. .286의 타율은 개인 커리어 하이이며 2위 야마카와 호타카를 3개차로 제치고 타점왕을 차지했다.[11] 베스트나인에도 선정됐다.

2.1.19. 2020 시즌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단축시즌으로 진행됐고 79시합 출전, 297타석에서 타율 .213, 9홈런, 31타점, 삼진 75개를 기록하였다.

2.1.20. 2021 시즌

프로에서의 20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오카와리군의 체중은 102kg로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한 내야수 와타나베 켄토(요코하마 토인대학교 졸)는 117kg(176cm), 103kg의 야마카와 호타카와 더불어 삼중사(三重士)라는 별명이 붙었다. 와타나베를 포함한 신인 합동 트레이닝 장소에서 나카무라도 훈련중이며 와타나베의 스윙을 보고 ''타격을 보면 타구가 멀리 날아갈 거라고 생각했다"고 칭찬했으며[12] 체중감량 중인 와타나베에게 "나도 한 달만에 92,93kg까지 감량한 적있지만 곧 리바운드 될 것"이라고 하며 억지 감량은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만루홈런의 사나이답게 8월 22일 오릭스와의 교세라 돔 원정경기에서 통산 22번째 그랜드 슬램을 쏘아올렸다.

시즌 최종 122경기에 출전하여 타/출/장 0.284(리그 7위)/0.343/0.440 18홈런(리그 공동 9위) 74타점(리그 7위)을 기록중이다. 부진했던 지난해에 비하면 타율을 다시 크게 끌어올린 덕에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장타율이 크게 떨어졌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장타력의 감소는 앞으로 더 가속화 될 것으로 보여진다.

2.1.21. 2022 시즌

개막부터 타율 1할 대에 머무는 등 극악의 부진을 보이고 있다. 이미 만 39세라 노쇠화가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긴 하지만..

한편으로 5월 13일 대 라쿠텐 홈경기에서 타키나카 료타를 상대로 시즌 3호 홈런을 기록, 나가시마 시게오(444홈런)을 제치고 통산 홈런 14위에 등극했다.

6월 5일 3번타자 겸 3루수로 야쿠르트와 게임에 출전했으나 3삼진으로 부진했고 경기 도중 오른 손 엄지손가락 통증으로 교체됐다. 세이부 OB가 말하길 "2012년에 수술한 왼쪽 무릎이 문제고 100kg 이상의 체중과 노화가 무릎에 영향을 주고 있다. 코칭스태프가 왜 나카무라를 주전 3루수로 계속 기용하는 지 알 수 없다. 나카무라를 계속 3루수로 고집하면 다른 선수들의 성장이 늦어진다"고 우려했다.

7월 6일 대 오릭스 원정경기에서 쿠로키 유타에게 통산 1956번째 삼진을 당하며 팀 대선배 키요하라 카즈히로를 제치고 통산 삼진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8월 12일 대 라쿠텐 원정경기에서 옛 동료 키시 타카유키를 상대로 통산 100패를 떠안기는 역대 14번째 통산 450호 홈런을 쏘아올렸다.

역대 최다인 통산 22개의 만루홈런, 그리고 역대 14번째 450홈런 기록 등 홈런 생산력은 나카무라 타케야의 무기지만 2022년 8월 만 39세가 되는 나카무라의 활용법을 놓고 팀에서는 고심하고 있다.

결국 총합 9홈런을 기록했던 5, 8월을 제외하면 시즌 내내 저하된 타격 페이스가 지속된 채 작년의 반등세를 이어가지 못하며 최종적으로 88시합 출전, 타/출/장 .196/.241/.355, 54안타, 12홈런, 31타점, 76삼진의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이 시점에서의 누적 성적은 1698안타 454홈런 1302타점 1990삼진.

2.1.22. 2023 시즌

2년 계약의 마지막 해로, 특별한 반등이 없는 이상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이 시즌에 기록할 가능성이 높은 역대 최초 2000삼진도 주목되는 상황.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쿠리야마 타쿠미와 다르게 개막 이후로 회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상황에서 안타는 물론 홈런과 타점을 내고 있어 부상으로 빠진 야마카와 호타카의 빈자리를 제대로 매꿔주고 있다. 5월 12일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8호 홈런을 기록한 뒤 5월 27일 오른쪽 외복사근 부상으로 인해 1군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88시합 출전, 타율 .258(283타수 73안타), 출루율 .339, 장타율 .481, OPS .819, 17홈런(리그 7위), 40타점(리그 24위)을 기록했다.

2.1.23. 2024 시즌

은퇴 없이 2024 시즌을 맞이했다. 개막 후 6경기 23타석에서 볼넷은 1개도 없이 삼진만 7개를 적립하며 타율은 .130(23타수 3안타)를 마크했다.

3. 국가대표 경력

3.1. 2015 WBSC 프리미어 12

2015 WBSC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팀으로 선발되었다. 부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도쿄 대첩 때 일본 대표팀 마지막 타석에서 대타로 나왔으나 범타를 기록하며 대한민국에 패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씁쓸~

4. 연도별 기록

파일:NPB 로고.svg 나카무라 다케야의 역대 NP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03 세이부 4 14 2 1 0 0 0 2 1 2 6 .167 .286 .250 .536 -0.1
2004 28 37 9 1 0 2 8 5 0 2 10 .273 .351 .485 .836 0.1
2005 80 259 62 13 1 22 40 57 0 16 62 .262 .320 .603 .924 1.9
2006 100 323 78 16 0 9 47 29 4 29 78 .276 .359 .428 .787 2.2
2007 98 267 52 16 0 7 29 32 2 22 71 .230 .316 .394 .710 0.6
2008 143 590 128 24 4 46 90 101 2 53 162 .244 .320 .569 .889 4.0
2009 128 562 143 37 1 48 91 122 3 52 154 .285 .359 .651 1.010 5.9
2010 85 354 71 14 2 25 50 57 1 44 111 .234 .333 .539 .873 1.6
2011 144 622 141 30 0 48 97 116 4 79 134 .269 .373 .600 .973 8.0
2012 123 498 100 16 1 27 54 79 2 56 125 .231 .331 .461 .792 3.5
2013 26 114 20 2 0 4 8 15 0 16 38 .208 .316 .354 .670 -0.2
2014 111 466 98 19 1 34 68 90 0 79 124 .257 .384 .579 .963 4.2
2015 139 599 145 35 0 37 82 124 1 68 172 .278 .367 .559 .926 5.6
2016 108 432 92 14 2 21 45 61 2 40 125 .238 .313 .447 .760 1.2
2017 115 486 90 14 0 27 69 79 1 61 118 .217 .319 .446 .765 2.5
2018 97 392 94 14 1 28 53 74 1 33 112 .265 .329 .546 .876 2.0
2019 135 557 142 30 0 30 69 123 2 54 123 .286 .359 .528 .887 4.2
2020 79 297 55 14 0 9 32 31 0 34 75 .213 .310 .372 .682 0.3
2021 123 475 122 13 0 18 50 74 0 39 114 .284 .343 .440 .783 2.4
2022 88 294 54 8 0 12 24 31 0 14 76 .196 .241 .355 .696 -0.7
2023 88 322 73 12 0 17 34 40 1 31 76 .258 .339 .481 .819 1.6
NPB 통산
(21시즌)
2042 7960 1771 343 13 471 1040 1342 27 824 2066 .254 .339 .509 .849 50.9


[1] 재학 당시 이와타 미노루가 동기, 니시오카 츠요시가 1년 후배였다. 토인 고교는 전국 대회 우승후보들이 즐비한 초 격전구 오사카에서도 항상 본선 진출 후보 1순위로 평가받는 야구 명문고이다. 라이벌 격인 PL학원고등학교가 야구부에 대한 방침을 바꾸며 예전과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오사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강호로 자리매김했으며, 특히 2014년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는 오사카에서 30년만에 3년 연속 본선 진출, 그대로 전국 제패까지 달성했다. 나카타 쇼, 아사무라 히데토, 후지나미 신타로, 모리 토모야등이 나카무라의 후배이다.[2] 당시 역대 2위의 기록.[3] 단순히 달리기 속도만 니시오카보다 더 빠른게 아니라 도루 개수도 더 많았다고 한다.[4] 배번호 3번이며 프로 때와 달리 군살이 없는 체구다.[5] 참고로 퍼시픽리그 3위인 아롬 발디리스나카타 쇼는 18개였고, 센트럴리그 홈런 1위인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31개, 센트럴리그 홈런 2위 하타케야마 카즈히로와 알렉스 라미레스가 23개를 쳤다. 당시 홈런타자들 중 유일하게 탱탱볼 시절과 똑같은 홈런 페이스를 보여주었다.[6] 같은 팀이었던 에르네스트 메히아와 함께 리그 공동 1위. 다만 메히아는 겨우 106경기 만에 34홈런을 때려냈다.[7] 개막부터 연속 안타 경기 기록 관련, 퍼시픽리그의 기록은 1954년 래리 레인즈(한큐)가 세운 20안타, 센트럴리그의 기록은 1997년 와다 유타카(한신)가 세운 24경기다.[8] 퍼시픽리그에서는 2004년 마쓰나카 노부히코(前 소프트뱅크) 이후 최초, 세이부에서는 2003년 알렉스 카브레라 이후 첫 기록.#[9] 1972년 오 사다하루(前 거인), 1986년 랜디 바스(前 한신)가 기록[10] FA 신청한 이유가 참 특이하다. 신청한 이유는 ‘FA취득권을 가지기 귀찮다’고 했다.[11] 역시 팀 동료들인 타점 3위는 모리 토모야(105개), 타점 6위는 토노사키 슈타(90개)다.[12] 와타나베도 팀 선배 오카와리군, 야마카와를 동경하지만 '제3의 ooo'라는 타이틀보다는 본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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