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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61d45><colcolor=#fff> 남대문중학교 南大門中學校 Namdaemoon Middle School | |
개교 | 1934년 5월 20일 |
유형 | 일반계 중학교 |
성별 | 남자중학교[1] |
형태 | 사립 |
학교법인 | 광운학원 |
교장 | 송명석(15대) |
교감 | 차경순 |
교훈 | 부지런 하자, 아끼어 쓰자, 찾아서 하자[2] |
교화 | 수수꽃다리 |
교목 | 향나무 |
학생 수 | 463명[기준] |
교직원 수 | 41명[기준] |
관할 교육청 | 서울특별시성북강북교육지원청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한천로 660-30 (장위3동) |
홈페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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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3동 한천로 660-30에 위치한 일반계 사립 중학교다. 1934년 5월 20일에 개교한 사립남학교다. 자유학기제 연구 학교로 지정되어 자유학기제를 2014년부터 실시하였다.2. 역사
2.1. 학교 연혁
년 월 일 | 연혁 개요 |
1934년 05월 20일 | 설립자 조광운 박사가 조국의 중흥은 공업 진흥에 있음을 확신하고 전자 공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능인 양성을 위해 조선무선강습소 설립 |
1940년 05월 03일 | 조선무선공과학원으로 교명 개칭 |
1948년 01월 27일 | 재단 법인 조선무선중학교 인가. 조광운 선생 초대 교장 겸 이사장 취임 |
1952년 08월 25일 | 학제 변경으로 남대문중학교와 동국무선고등학교로 교명 개칭 |
1963년 04월 27일 | 2대 신기선 중ㆍ고등학교장 취임 |
1968년 12월 26일 | 3대 김병일 교장 취임 |
1969년 03월 03일 | 현 신축 교사로 이전 |
1971년 03월 01일 | 1학년 7학급에서 10학급으로 증설 |
1982년 11월 05일 | 조무성 박사가 이사장에 취임 |
1983년 03월 02일 | 4대 공승운 교장 취임 |
1988년 07월 15일 | 5층 도서실, 음악실 증축 |
1996년 03월 02일 | 10학급 440명 입학 |
1991년 03월 02일 | 5층 특별교실 5개 증축 |
1998년 03월 02일 | 10학급 366명 입학 |
1999년 03월 02일 | 5대 류경수 교장 취임 |
1999년 09월 01일 | 6대 주석환 교장 취임 |
1999년 12월 30일 | 환경 교육 최우수교 교육감 표창 |
2000년 12월 30일 | 과학 교육 최우수교 교육감 표창 |
2001년 12월 29일 | 7대 이우종 교장 취임 |
2001년 12월 29일 | 학교 경영 최우수교 교육장 표창 |
2002년 12월 28일 | 학교 경영 최우수교 교육장 표창 |
2003년 09월 01일 | 8대 정연수 교장 취임 |
2004년 12월 30일 | 학교 평가 우수교 교육장 표창 |
2006년 11월 29일 | 제 26회 대통령기 국민독서경진대회 서울특별시 대회 최우수상 |
2006년 12월 27일 | 교원 혁신 마일리지 우수교 선정 |
2007년 09월 01일 | 9대 한성룡 교장 취임 |
2008년 05월 08일 | 교육 과정 우수교 교육장 표창 |
2008년 11월 28일 | 제28회 대통령기 국민독서경진대회 서울특별시 대회 최우수상 |
2009년 12월 30일 | 학교 평가 및 생활 지도 우수교 교육장 표창 |
2011년 09월 01일 | 10대 반윤구[5] 교장 취임 |
2012년 05월 01일 | 11대 반윤구 교장 취임 |
2013년 12월 30일 | 진로 진학 교육 우수교 교육장 표창 |
2014년 02월 12일 | 제62회 졸업식 총 26,185명 배출 |
2015년 12월 30일 | 2015 서울형 자유학기제 운영 우수교 교육감 표창 |
2016년 02월 02일 | 제64회 졸업식 총 26,734명 배출 |
2017년 03월 01일 | 12대 황대영 교장 취임 |
2019년 02월 01일 | 제67회 졸업식 총 27,269명 배출 |
2021년 03월 01일 | 13대 정지만 교장 취임 |
2022년 03월 01일 | 14대 이음표 교장 취임 |
3. 교훈 및 상징
3.1. 교육목표 및 교훈
3.2. 학교 상징
3.2.1. 교표
안과 바깥의 원은 땅과 하늘을 상징하고 청색과 남색은 희망과 이상을, 노란색 건물은 전통을 상징한다.
3.2.2. 교화
탐스럽고 우아한 모습을 지닌 수수꽃다리는 믿음과 사랑을 상징한다.
3.2.3. 교목
깨끗하고 은은한 향기로 사철 푸른 향나무는 정의와 진리를 상징한다.
3.2.4. 교가
4. 학교 특징
남대문중학교라는 이름과는 달리 성북구 장위동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노원구 월계동이다. 장위동으로 학교가 이전하면서[6] 학교 교명 변경 논의가 있었으나, 학생들을 국보 1호로 키우자는 의견에 따라 교명을 변경하지 않았다. 이전 당시 장위중학교는 개교하지 않았으므로, 만약 교명을 변경하였다면 장위중학교가 되었을 수도 있고, 월계중학교가 되었을 수도 있다.[7]중앙계단의 폭이 좁고 매우 가파른 관계로 발을 헛디디면 응급실행을 각오해야 한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계단이 더 미끄러워서 학생들 전부 손잡이를 잡고 계단을 올라야할 정도로 심각하다. 따라서 선생님들이 가급적이면 뛰지말라고 주의를 주지만 다치는 학생이 꼭 한 둘씩 생긴다.
운동장이 매우 아름답게 작기 때문에 체육장(또는 체육능력측정)을 같은 재단 소속 학교인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했다.(2020년 현재에는 바이러스로 인해 체육능력측정을 하지 않았다.) 운동장이 얼마나 좁은지 축구공을 뻥차면 바로 상대편 골대에 들어간다. 여담이지만 학교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설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엄청 좁아서..라는 소문이 있다.[8]
본래 장위동, 석관동의 남학생들이 배정되었으나,[9][10] 날이 가면 갈수록 장위동 인수가 줄어들면서 학교 존립에 위기가 생겼고 최근 장위동 재개발이 전면적으로 진행중인 탓에 장위동 학생들이 대폭 감소함에 따라 번동에서도 학생들이 배정되고 있다.(...)
2009년부터 시행된 고교선택제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문계열 고교 진학 희망자들은 석관고, 경동고[11] , 용문고(2000년대 이전에 입학한 학생들은 용문고는 갈 수 없었다) 등으로진학했으며, 간혹 경신고, 동성고, 홍대부고 진학자들도 있었다. 특성화고(실업계열 고교) 진학 희망자들은 같은 재단 소속인 광운전자공업고로 많이 진학하였으며, 휘경공업고교, 노원구 소재의 특성화고교들(서울아이티고, 미래산업과학고 등)로도 진학하였다.
로드뷰를 보면 과거 건물로 막혀있던 학교 입구가 장위뉴타운 재개발로 인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학교 시설
5.1. 본관
건물이 매우 긴 편이지만, 화장실은 왼쪽 끝에만 있으며, 교실에서 급식을 먹던 시절에는 잔반과 식판을 건물 양쪽 끝에서만 회수하였기 때문에 복도 중앙 교실에 배정받은 학생의 고생이 매우 심하다. 사실상 중앙현관, 화장실이 매우 가까운 앞반이 학교다니기엔 가장 편했다.[12]5층[13]엔 미술실과 음악실, 과학 1, 2실과 도서실, 컴퓨터실이 위치하고 있으며, 예술제를 할 때 미술실과 과학 1, 2실, 도서실을 이용한다.
1학년 8학급, 2학년 8학급, 3학년 9학급으로 이루어져 있다.[14]
1층엔 학급 1개와 교무실, 공작실[15], 유도장, 다목적실 등이 존재한다. 예술제를 할 때 다목적실을 이용한다. 엘리베이터는 급식 외에는 탈 수 있는 존재가 없다.
학교에 매점이 없는데 없는 이유는 매점을 지을 자리가 없다고 한다.[16] 학교가 워낙 좁고 시설도 안좋은데다 교장선생님의 반대로 매점 설치는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남학생 특성상 기존의 쓰레기도 아무곳에다 버리고 다니고, 외부에서 들여온 음식물 포장 쓰레기들이 넘쳐나는데 매점이 생겼을 때 쓰레기 처리는 안봐도 뻔하다.
골목길에는 정문이, 큰길에는 후문[17][18] 이 있다. 학생들은 정문으로 등교하며, 후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존재는 급식과 전세버스 뿐이다.
최근 컴퓨터실 컴퓨터를 교체했다. (2018년 10월 즈음에는 모니터도 교체했다.)i5 6500이라는 학교 컴퓨터엔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스펙을 가졌지만, 내장 그래픽이다. 또한, 2018년 12월6일 현재 1학년 학생들에게 코딩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좁은 운동장에 체육관을 지으면서 더욱 좁아졌다.[19] 따라서 2개반 이상이 운동장에서 체육수업을 하면 운동장이 다 찰 정도다.
또한 급식실이 없어서 각 반 교실 내에서 급식을 먹는다. 하지만 2020년 1월에 체육관, 급식실이 공사 완료되어서 이제 이것도 옛말이 되었다...
2018년 여름에 농구대를 교체하였다.[20]
5.2. 체육관
2019년 착공하여 2020년 초 완성된 건물로[21][22], 급식실과 체육관이 위치한다.여담으로 2019년 내내 공사를 하면서 가뜩이나 좁기로 유명한 운동장이 더 좁아져서 학생들이 체육활동을 하기에 힘든 환경이 되어[23] 특히 체육관을 완공해도 몇번 사용하지 못할 3학년들의 불만이 가장 강했다. 그래도 3학년들의 마지막은 새로 만든 체육관에서 보내주려 하였지만 2020년 희대의 전염병이 터져버리며 그들은 평소처럼 교실에서 졸업했다.
6. 학교 생활
6.1. 교복
영상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웃긴 골판지 교복을 학생들에게 착용시킨 학교이다. 교복 브랜드 업체의 담합으로 인하여 교복 가격이 비싸짐에 따라 교복을 강제적으로 양복 자켓에 청바지로 통일해버렸다.
하의는 청바지.였다. 1990년대 교복 재도입이 유행이던 시대에 이 학교에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아 교복값을 절감시킬려고 저렇게 디자인했던것으로. 복장자율화 시대에서 교복재도입이 대세가 된 시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당시 청소년들의 최신 유행을 고려하면서도 가격도 절감하려는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던것이었다. (MBC 시사메거진 2580 1996년 3월 3일 방영분 참조) 하지만 교복시대와 자율화시대를 뒤섞은듯한 괴리감 넘치는 디자인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당시 교복은 장위시장, 학교 앞 문구점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체육복도 정상은 아니었는데 명찰 색(파란색, 녹색, 빨간색) 단색의 맨투맨이었다. 2016년 새로운 교복과 체육복 세대의 신입생이 선배들 체육복 꼬라지 보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24]
그래도 2016년 신입생부터 굉장히 깔끔하고 평범한 새 교복을 착용하게 되어 남대문중 교복의 악명은 이제 옛 역사가 되었다.
6.2. 주요 행사
6.2.1. 남대문 예술제
1년에 한 번, 10월 말에 예술제를 개최한다.예술제에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문학작품, 미술작품, 과학발명품 등이 다목적실, 과학실, 도서실, 미술실에 전시되며, 학생들의 지원에 의한 공연이 개최된다.
6.2.2. E-스포츠 대회
2021년에 전교 부회장이 당선공약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다. 종목은 리그 오브 레전드 뿐이고, 경기를 인터넷 방송을 사용해 실시간 중계한다는 것이 특징. 여담으로 많은 상금까지 걸려 있을 정도로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노력한 것이 보이며, 이후 다른 회장 후보들의 공약으로 보아 다른 게임도 대회 종목으로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6.3. 운동부
6.3.1. 축구부
1980년대 중반, 코미디언 서영춘의 아들인 서동균이 남대문중학교로 전학과 함께 축구부에 들어왔다. 당시 서영춘이 축구볼을 많이 기증했다는 후문이 있다.2017년 초까지는 축구부가 존재했으나 성적이 좋지 않았는지 해제되면서 축구부였던 학생들이 모조리 축구부를 보유하고 있는 다른 중학교로 전출되었다. 비록 해체되었지만, 축구감독 최강희(축구인), 슈퍼맨이 돌아왔다 건우 나은이 진우 아빠로 유명한 축구선수 박주호가 남대문중학교 축구부 출신으로 남아있다.
6.3.2. 농구부
학교가 축구는 못하는데 농구는 잘한다고 한다. 가끔 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아온다. 따라서 농구부는 계속 존치되고 있다.7.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7.1. 버스 노선
정류소 명칭 | 노선 번호 |
남대문중학교 | 성북14-2 |
남대문중학교[25] | 145, 1111, 1218 |
광운초등학교 | 145, 1111, 1218, 103, 172 |
장위3동 우리농축산마트 앞 | 성북12, 성북13 |
국민은행 장위1동 지점 | 1017, 1137, 261, 103, 172 |
7.2. 철도
광운대역 | 수도권 전철 1호선, 수도권 전철 경춘선[26] |
석계역 | 수도권 전철 1호선, 서울 지하철 6호선 |
돌곶이역 | 서울 지하철 6호선 |
8. 사건·사고
8.1. 교감 비리 및 감사 협박 사건
2017년 11월 1일, 성북구의 한 사립학교에서 일어난 비리와 그 태도에 대한 뉴스가 떴다. 링크 기사에 따르면, 감사관에게 "목을 치겠다" 라고 협박하고 성희롱까지 했다고 한다.이것을 본 남대문중학교 학생들은 어느 학교며 어느 교사인지 바로 알게 되었고, 졸업생의 댓글로 실명이 공개되어 학교 전체에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당사자의 평소 행실 또한 성희롱으로 충분히 고발이 가능[27]한지라 학생들 사이에선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또한 뉴스를 탄 이후에도 "뉴스 나온 사람은 자랑스럽게 살아야 한다."며 현실직시를 못하고 망언을 내뱉기도 하였다.
9. 출신 인물
10. 관련 문서
[1] 남대문중학교 인근 주택단지의 재개발이 완료된 곳에서는 여학생들의 원거리 통학을 우려해 남대문중학교의 남녀공학을 원하는 것 같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관련 글들이 등장하고 있기도 하고. 그러나, 2000년대 초 대부분의 공립중학교와 일부 사립학교가 남녀공학화 되었을 때 같은 재단소속의 광운중학교는 끝까지 남자중학교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애초에 여자화장실이나 탈의실 지어줄 공간이 하나도 없어서 여학생 받을 형편이 전혀 못 된다. 여학생 보고 싶다고 아무리 찡찡대도 조금만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이는 같은 재단인 광운중학교도 비슷한 상황이다.[2] 학교법인 광운재단에 소속된 거의 모든 학교가 사용 중인 교훈이다.[기준] 2024년 3월 1일[기준] [5] 현 재학생들의 아버지 세대부터 30년 이상 남대문중에서만 교사생활을 했던 인물이다. 4대천왕 버금가는 빠따질로도 유명해서 남대문중 출신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 교사 재직시 담당 과목은 체육.[6] 실제로 남대문중학교는 원래 서울특별시 중구 봉래동1가 124에 위치하였는데, 좌측으로는 서울역, 우측으로는 남대문이 위치하였다. 1960년대에 장위동으로 이전하지 않았더라도, 도심 인구의 감소와 도심지 재개발로 인해 학교 위치의 이전은 언젠가는 이루어졌을 것이다.[7] 역시 이전 당시 월계중학교는 개교 이전이었고, 같은 재단 소속 초등학교인 광운초등학교의 교명 변경 전 명칭이 '월계국민학교'였기 때문에 월계중학교로 변경되었을수도..[8] 운동장이 좁은 것은 사실이나, 인근 월곡중학교 운동장보다는 확실히 크다.[9] 사실 길건너편에 같은 재단인 광운중학교에서 월계동 남자를 싹싹 긁어가기 때문에 남대문중학교는 최대한 장위동과 석관동에서 남자를 긁어모을 필요가 있었다.[10] 이로 인해 인근 장위중학교, 월곡중학교, 석관중학교는 남학생 수에 비해 여학생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여초학교였다. 최근에 조금 완화되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상술된 3학교는 여학생 비율이 더 높다.[11] 근처에 위치한 석관고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많이 진학하는 학교였다. 상당히 먼 곳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반에서 남대문중학교 동창들을 제법 많이 만났다.[12] 하지만 교무실과는 매우 가까워서 조용히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그리고 체육관과는 멀다.[13] 본래는 이곳이 옥상층이였는데 추후에 증축했기 때문에 컨테이너 건물이며 외관공사를 거치며 타일을 붙였다. 그래서 여름엔 매우 덥고 겨울엔 매우 춥다.[14]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학년당 10학급씩 있었으나, 남대문중학교 배정지역인 장위동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자 학급 수가 감소했다. 입학생 수만 보자면 학급 수를 더 줄여도 문제 없으나, 학급 수를 쉽게 줄일 수 없는 사립학교의 특성과 추후 장위동 재개발이 완료되었을시의 학생 수 증가를 대비하기 위해 학급 수 감축을 최소화한 것으로 보임.[15] 1990년대 후반에는 이 곳에서 기술가정 수업을 실시했다. 상당히 음침한 분위기였고, 담당 선생님이 당시 4대천왕 중 한 분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알아서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공작실이라는 이름답게 각종 공구들도 많이 비치되어 있었다[16] 이 글을 작성하는 사람은 1990년대 후반부에 남대문중학교에 다녔었는데, 이 당시에도 매점은 없었다.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학교 정문을 기준으로 좌측(광운초등학교쪽) 농구대 뒷편의 1층 창고가 매점이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 매점이 폐쇄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매점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 앞 담벼락에서 쉬는시간마다 학교 앞에서 분식, 군것질거리를 판매하시던 아주머니가 담벼락에서 군것질거리를 판매하시기도 했다. 재개발로 인해 학교 앞 주택단지가 큰 도로와 아파트로 바뀌었기 때문에 아련한 옛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17] 과거에는 이 후문이 정문이었고, 현재의 정문은 없었다.[18] 1990년대 후반부에는 이 후문 옆이 우유급식판을 수령하고 반납하는 공간이었다. 후문과 가장 가까운 학교 1층 출입구로 들어가면 보건실이있었고, 1학년 10반, 2학년 10반, 3학년 10반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우유를 더 먹고 싶었던 2, 3학년 선배들은 간혹 1학년 교실로 와서 우유를 가져가곤 했다. 물론 4대천왕 선생님들에게 이 사실이 전파되어 그런 행동을 한 선배들이 숙청된 이후로는 다시는 이런 일이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4대천왕 선생님들은 정말 파워가 막강했다.[19] 1960년대에 남대문중학교가 장위동으로 이전했을 때만 하더라도 남대문중학교의 부지는 남대문중학교 부지 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위치한 광운초등학교 부지까지 포함된 매우 넓은 부지였다. 따라서 축구뿐만 아니라 야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운동장 규모였다. 본관 앞 구령대 아래에는 체육 기자재들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야구헬멧, 배트 등이 정리과정에서 나올 정도였다. 단, 광운초등학교가 광운대학교 교내에서 개교하고 이후 남대문중학교 부지의 절반을 가지고 이전해옴에 따라서 남대문중학교의 부지는 확 좁아지게 되었다.[20] 학교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농구대를 교체한 이유가 바로 봉고차가 농구대를 들이받아서(...)이다. 또한, 지금은 학교 내에 있는 모든 농구대를 전부 교체했다.[21] 체육관이 지어진 부지에는 농구코트와 냄새가 정말 심하게 날 것 같은 1층짜리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이 화장실은 본관 4층 화장실이 신설되고 난 후, 개조공사를 거쳐 창고로 활용되기도 했다[22] 19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남대문중학교 본관에는 홛장실이 1층, 2층, 3층에만 존재했다. 4층의 교실 1개의 크기를 줄여서 줄인 공간만큼의 크기를 복도로 만들고, 3층 화장실 위에 4층 화장실을 만들어서 4층 화장실을 갈 수 있는 통로로 활용했다.[23] 인근 월곡중학교의 운동장이 더 좁은 것이 사실이다. 월곡중학교의 경우 기존 운동장 부지에 체육관을 짓게 될 경우, 운동장 전체가 없어질 수 있을 정도로 소규모운동장을 보유하고 있다.[24] 사진에 나온 건물이 남대문중학교의 본관이다. 가운데에 대각선방향으로 비스듬하게 있는 부분이 앞서 서술된 공포의 중앙계단이다.[25] 장위 포레아파트 앞에 새로 신설된 정류소이다[26] 평일 출·퇴근 시간대 한정 일 2회 왕복[27] 칠판에 성기와 유사한 형체를 그리거나 검열 같은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는다. 남학교라고는 해도 그런 말을 좋아하는 학생만 있는 건 아니다.[28] 학교폭력으로 인해 신도봉중학교로 강제 전학 조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