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Southern Democrats미국 민주당 안에서 남부 출신의 세력들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1964년 민권법 제정과 공화당의 남부전략 이후로는 사용 빈도가 많이 줄어들었고 현재는 단순히 남부의 민주당 세력을 의미하지만 학술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남부 민주당원 기원은 옛날 노예제도를 시행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들로 계승되는 세력을 주로 의미한다.
2. 역사
남북전쟁 이전 남부의 노예 소유주들은 지방자치를 주장하는 민주당에 입당했고 이들 대부분이 돈이 많은 세력이다보니 당내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민주당의 보수화를 촉진시켰다. 남북전쟁 이전 민주당 소속 대통령들은 북부 출신이더라도 남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정책적으로 끌려다녀야 했다. 남부 민주당원들은 18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노예제 반대론자 에이브러햄 링컨에 맞서기에는 민주당 후보 스티븐 A. 더글러스의 스탠스가 충분히 강경하지 못하다고 불만을 가져 강경한 노예제 유지론자인 존 C. 브레킨리지를 남부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시켰다. 브레킨리지는 남부 선거인 대부분을 가져가며 선거인단 투표에서 2위를 기록했지만, 북부의 지지를 받은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민주당이 장악한 남부 주들이 연방 탈퇴를 선언하여 남북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전후 잠깐 민주당원들의 참정권이 박탈된 재건 시기가 있었지만, 18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대혼란 이후 1877년의 타협으로 남부 주들의 '자치'가 보장되었고 흑인 투표권이 실질적으로 완전히 박탈되어 침략자인 공화당이 발을 붙일 수는 없었으므로, 남부 주들은 사실상 민주당이 유일한 당인 1당제로 운영되었다. 크게 보면 2개의 계파가 있었는데, 지주 및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주류 계파(일명 '버번 민주당' 또는 '리디머')와 중도 개혁적인 소장파가 한지붕 두살림을 하였다. 아무래도 남부 민주당원들의 지지만으로는 대통령이 되기 힘들었기에, 남북전쟁-1차대전 시기에 가뭄에 콩 나듯 배출된 민주당 대통령들인 클리블랜드와 윌슨은 지역적으로는 북부 기반에[1] 어느 정도는 개혁적인 성향을 가졌다. 하지만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도 남부의 민주당 보수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남북전쟁 전후 장기집권을 하게 되면서 보수화되는 공화당에 맞서 진보화되는 민주당[2]과 불협화음을 유발하기 시작한다. 특히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뉴딜정책을 통해, 기존에는 공화당 골수지지성향이 강하던 흑인을 비롯한 소수인종들이 새로이 민주당 지지층으로 편입되면서 자연스레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것이었다. 이들은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에 반발해 공화당과 보수연합을 구축하기도 했으며, 1940년대부터 독자 출마를 감행하면서 서서히 삐걱대기 시작한다. 1948년 선거의 주권민주당, 1968년 선거의 미국독립당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외에도 1952년에는 공화당의 아이젠하워를 지지하기도 했고[3], 1960년에는 미시시피,앨라배마의 선거인단 일부가 케네디에게 배신을 때려버리는 돌발사태도 일부 있었다. 그나마 1930년대에는 경제재건,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2차 세계대전 및 6.25 전쟁 참전으로 뉴딜연합으로 어느정도 묶어내기라도 했지만 6.25 전쟁이 끝나고나니 인종차별주의자들과 흑인과의 불편한 동거를 묶어내는 끈이 사라지면서 흩어지게 된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단위의 민주당과 교류하는 남부 정치인들은 중도주의 성향을 띄는 일이 많았다. 1950년 이후 남부 민주당 출신 대통령인 지미 카터, 빌 클린턴 모두 중도주의 성향이었다. 이들은 남부의 보수적인 민주당원들과 어느 정도 충돌하면서도 남부 출신이라는 이점을 내세워 남부 선거인단 상당수를 가져갈 수 있었고, 반대로 북부 출신 민주당 후보들은 당선에 꼭 필요한 남부 주의 선거인단을 확보하지 못해 대선에서 패배하는 일이 잦았다. 애초에 카터나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택된 것 자체가 공화당으로 넘어가려 하는 남부 민주당원들을 어떻게든 어르고 달랠 목적이 강했다.
이후 닉슨의 남부 전략으로 인해 남부 민주당원들이 조금씩 공화당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남부는 서서히 공화당 우세지역으로 전환되었다. 그나마 상하원 단위는 1992년 선거때까지 우세했으나 1994년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남부지역에서 남부지역의 민주당 의원들이 대거 낙선하고 공화당 의원들이 당선되면서 상하원조직에서도 공화당에게 우위를 넘겨주게 되었으며, 이러한 추세는 클린턴이 재선한 뒤로도 바뀌지 않았다. 또한 2000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이 남부 테네시 출신 앨 고어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음에도 홈스테이트 테네시를 포함해 남부 주를 단 하나도 가져오지 못하면서 석패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의외로 미국 남부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약해지고 공화당 지지세가 강해지는 변동이 두드러지게 일어난건 꽤 최근의 일로, 상당수 남부 주들에서는 2000년대-2010년대 초중반까지도 민주당이 주정계에서는 공화당 대비 우세를 점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연방 단위 선거에서 역시 2000년대-2010년대 초중반까지는 민주당이 공화당에 완전히 밀리지 않았다.[4]
또한 1950년대-70년대에 인종 통합이나 민권법 등에 반대했던 백인우월주의적인 민주당 소속 연방 상,하원 의원들 역시 정계를 은퇴할때까지 민주당 소속으로 8-90년대, 늦게는 00년대까지도 당선되어 당적 변경 없이 커리어를 마감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인종차별주의적 성향을 가졌던 민주당 소속 미시시피주 출신의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존 C. 스테니스(John C. Stennis), 제임스 이스트랜드(James Eastland), 심지어 KKK 소속이었던 웨스트버지니아주 출신 연방 상원의원 로버트 버드 (Robert Byrd)등의 남부 민주당원이 전형적인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5]
결국 남부 민주당원들이 공화당으로 제대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인종차별 철폐나 민권법 이슈는 이미 끝난지 오래된 90년대-00년대이며, 이 시기에 당적을 바꾼 남부 민주당원들도 인종 통합과 민권법등에 반대하면서도 끝까지 민주당에 남았던 대다수의 남부 민주당원들과 달리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민권법 등에 찬성하는 쪽이었다.
3. 현재
남부가 공화당 우세로 돌아선 이후에도 가뭄에 콩나듯이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는 남아 있으며, 그러다 보니 의외로 지방 차원의 민주당 정치에 영향력이 어느정도 있는 경우도 있다. 이들을 청견연합이라고 한다. 하지만 남부 및 썬벨트 지역에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민주당 지지층이 유입되면서 이들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청견연합은 2024년 시점에서 하원의원 10명에 불과한 소규모 코커스로 쪼그라들었고, 의원들의 지역구도 더 이상 남부로 한정되지 않으며 민주당 주류파와 정책적 차이도 크지 않은 편이다. 전통적인 남부 주들 중에서도 흑인 인구 비중이 상당하고 신산업 발달로 대도시권 고학력층 유입이 많은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 워싱턴 광역권에 속한 북부를 중심으로 아예 블루 스테이트화된 버지니아 등에서는 민주당 지지세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의 성향은 남부 민주당원들의 역사적 성향과는 완전히 다르고 전국적인 민주당 지지층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2020년대에 이르러 남부 주의 민주당은 민권운동으로 참정기회를 얻은 유색인종 + 잔류한 백인 민주당원들로 구성되며, 유색인종의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오히려 백인 민주당원의 탈당으로 남부의 민주당원 사이에서 흑인/히스패닉의 비중이 높아지다보니 전국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치인이 나오는 재밌는 현상이 나오기도 한다. 가령 버니 샌더스의 지지를 받은 2022년 켄터키 상원의원 후보 찰스 부커(Charles Booker)나 코리 부시 미주리 하원의원, 그렉 카사르 텍사스 하원의원 등을 예시로 들 수 있다.[6] 공화당 텃밭 주의 백인 남부 민주당원들의 경우 전반적으로 민주당원 평균에 비해서는 보수적인 편으로, 더그 존스 전 앨라배마 상원의원이나 앤디 배쉬어 켄터키 주지사, 존 벨 에드워즈 전 루이지애나 주지사 등은 공화당이 우세한 주의 정치 환경에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정책적으로 어느 정도 우클릭이 강요되었던 측면이 있다.
보통 민주당이 우세한 히스패닉이 플로리다와 텍사스를 중심으로 유입되고 있지만 두 주를 제외한 나머지 남부 주의 히스패닉 인구는 많아 봐야 1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히스패닉들은 정치 성향을 일반화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그 중에는 보수 성향인 경우 역시 많기 때문에[7] 남부의 민주당 지지세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 남부로 유입되는 히스패닉은 인종 정체성보다는 세대별로 지지 정당이 갈리는 경우가 더 많다는 분석도 있다.[8]
현재 미국 상원의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들 중 미시시피, 앨라배마 등 남부 주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몆명은 실제로 민주당 소속으로 정계 입문을 한 남부 민주당원이었으나, 90년대-00년대(늦게는 2010년대 초반)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겨 당선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앨라배마 주지사 케이 아이비가 이런 사례이다.
이들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긴 시기인 90년대-10년대는 본격적으로 미국 남부에서 민주당세가 서서히 약해지고 공화당세가 강해지던 시기로, 미국 남부 지역의 정치적 환경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4. 주요 남부민주당원
4.1. 남북 전쟁 이전
4.2. 20세기 이후
보수주의 민주당원- J. 윌리엄 풀브라이트 - 아칸소 연방상원의원, 남부 보수 민주당원이었지만 외교적으로는 평화주의적인 성향이었다.
- 레스터 매독스
- 로버트 버드
- 로스 바넷
- 로이드 벤슨 - 텍사스 상원의원,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부통령 후보
- 리처드 러셀 주니어 - 조지아 주지사, 상원의원
- 샘 넌 - 조지아 상원의원
- 시어도어 G. 빌보 - 미시시피 주지사, 상원의원
- 앨런 시버스 - 텍사스 주지사
- 오벌 포버스
- 윌버 밀스 - 아칸소 하원의원
- 유진 탈매지
- 제임스 이스트랜드 - 미시시피 상원의원 및 상원 임시의장[10]
- 젤 밀러 - 조지아 주지사, 상원의원 정계 입문~1980년대까지는 (조지아주 기준) 개혁파였으나 민주당의 진보화로 인해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조지 부시를 공개 지지했고, 이후 선거에서도 몇몇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민주당을 탈당하지는 않았다.
- 조지 월리스
- 존 C. 스테니스 - 미시시피 상원의원
- 존 W. 데이비스
- 존 브로 - 루이지애나 상원의원
- 존 스파크먼 - 앨라배마 상원의원, 195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부통령 후보
- 코크 R. 스티븐슨 - 텍사스 주지사
- 해리 F. 버드
- 해피 챈들러
- 허먼 탈매지
중도,진보성향 남부 민주당원/신남부 민주당원
- 데이비드 프라이어 - 아칸소 연방상원의원 (1979~1997).
- 데일 범퍼스 - 아칸소 연방상원의원 (1975~1999).
- 랄프 야버러 - 텍사스 연방상원의원 (1957~1971). 자유주의자였으나 그 때문에 1970년에 로이드 벤슨에게 민주당 경선에서 밀려 낙선한다.
- 러셀 B. 롱 - 루이지애나 연방상원의원 (1948~1987). 성향은 아버지인 휴이 롱에 비해 다수 보수적이었지만 다른 남부 민주당원들에 비해선 진보적이었으며, 정계 활동 초창기엔 민권법에 개인적으론 찬성, 당 차원에선 반대하다가[11] 적극 찬성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 루빈 애스큐 - 플로리다 주지사 (1971~1979)
- 린든 B. 존슨 - 미국 대통령 (1963~1969).[12]
- 빌 클린턴 - 미국 대통령 (1993~2001). 민주당 내 중도 코커스인 신민주연합에 속해있었다.
- 샘 넌 - 조지아 연방상원의원 (1972~1997).
- 샘 레이번 - 미국 하원의장(1940~1947,1949~1953,1955~1961)
- 시드 맥매스 - 아칸소 주지사 (1949~1953).
- 앨버트 고어 시니어 - 테네시 연방상원의원 (1953~1971). 바로 아래에 위치한 앨버트 고어 주니어의 아버지로 더 유명하다.
- 앨번 W. 바클리 - 미국 부통령 (1949~1953). 뉴딜 정책을 강력히 지지했고 트루먼 행정부에서 민권법을 중심으로 작성된 스퀘어 딜 플랜에도 적극 기여했다.
- 얼 롱 - 루이지애나 주지사 (1956~1960).
- 에드윈 에드워즈 - 루이지애나 주지사 (1972~1980, 1984~1988, 1992~1996), 부패, 포퓰리즘과 데이비드 듀크를 이긴 것으로 유명하다.
- 에스테스 키포버 - 테네시 연방상원의원. 민주당 진보파 내에서도 급진적 포퓰리스트로 분류되었으며, 195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부통령 후보를 지냈다
- 제임스 F. 번즈 - 사우스캐롤라이나 연방상원의원 (1931~1941).[13]
- 조시 스타인 -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 (2025~).
- 조지프 T. 로빈슨 - 미국 상원 다수당 원내대표 (1933~1937).
- 존 낸스 가너 - 미국 부통령 (1933~1941).[14]
- 지미 카터 - 미국 대통령 (1977~1981).[15]
- 코델 헐 - 미국 국무장관 (1933~1944).
- 테리 샌포드 - 노스캐롤라이나 연방상원의원 (1986~1993).
- 프레드 R. 해리스 - 오클라호마 연방상원의원 (1964~1973).
- 휴이 롱 - 루이지애나 연방상원의원 (1932~1935). 경제적으로는 급진적, 인종적으로는 중도적 성향을 띠었다.
공화당으로 이적
무소속으로 활동
- 해리 F. 버드 주니어 - 1970년 탈당
4.3. 21세기
- 댄 보렌 - 오클라호마 하원의원
- 더그 존스
- 라파엘 워녹 - 조지아 연방상원의원 (2021~).
- 로이 쿠퍼 -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 (2017~2025).
- 마크 워너
- 앨버트 고어 주니어 - 미국 부통령 (1993~2001).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며, 민주당 내 중도 코커스인 신민주연합에 속해있었다.
- 메리 랜드류 - 루이지애나 상원의원
- 블랑쉬 링컨 - 아칸소 상원의원
- 빌 넬슨 - 플로리다 연방상원의원 (2001~2019), NASA 국장 (2021~). 신민주연합 소속으로 NASA 국장 선임 당시 정치인 시절에 보여준 효율적 예산 운용이 고평가되어 초당적 지지를 받았다.
- 스티브 배쉬어 - 켄터키 주지사, 앤디 배쉬어의 부친.
- 앤디 배쉬어 - 켄터키 주지사 (2019~).
- 조 맨친
- 존 스프랫 - 사우스캐롤라이나 제5구 연방하원의원 (1982~2010)
- 존 벨 에드워즈
- 존 에드워즈
- 존 오소프 - 조지아 연방상원의원 (2021~).
- 존 위트마이어 - 휴스턴 시장, 전 텍사스 상원의원.
- 짐 웹 - 버지니아 연방상원의원 (2007~2013). 특이하게도 탈당 경력이 있는 다른 남부 민주당원들과 정반대로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 짐 클라이번 - 사우스캐롤라이나 연방하원의원 (1993~).
- 팀 케인 - 버지니아 연방상원의원 (2013~).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러닝메이트로 출마했다.
- 필 브레드슨
공화당으로 이적
5. 여담
6. 같이 보기
[1] 윌슨은 출신은 남부 버지니아지만 뉴저지 주지사를 역임한 뒤 대선에 나와 홈스테이트는 뉴저지로 취급되었다.[2] 민주당의 진보화는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그 시초였지만, 집권하지 못하고 그나마도 상당수의 정책을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대신 도입하면서 빛이 바랜면이 있고, 우드로 윌슨도 개혁파이기는 했지만 윌슨 역시 인종차별 해소와는 거리가 있던데 반해,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을 통해 흑인들에게 호감을 얻었고, 그 이전까지 공화당 골수지지파였던 흑인들의 정치성향을 민주당쪽으로 다수 돌려놓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수십년 넘게 박힌돌이었던 인종차별적인 당원들도 여전히 민주당에 남아있기에 갈등이 있는게 당연했다.[3] 이들은 아이젠하워가 민권 발전을 지지하자 1956년에는 지지를 철회한다.[4] 마찬가지로 이때까지만해도 북동부에서도 공화당이 연방 단위의 선거에서도 당선자를 꽤 배출하기도 했다.의외로 미국 정치에서 지금과 같은 지역구도가 뚜렷해진것도 생각만큼 오래된건 아니라는 소리.[5] 이 중 2010년 사망시까지 정계에서 계속 활동해왔던 로버트 버드의 경우 2000년대 이후로는 과거 본인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는 발언과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를 지지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기도 하였다[6] 다만 라파엘 워녹이나 발 데밍스 같이 흑인이면서 중도적인 사람도 많다.[7] 주로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쿠바나 베네수엘라 등에 대한 반감 때문.[8] 노년층 히스패닉이 청년층 백인에 비해 더 공화당을 많이 지지한다. 노령화가 심하기로 유명한 주인 플로리다에서 히스패닉이 보수성을 띄는 이유 중 하나이다.[9] 남북전쟁 직전 남부 민주당원들 중 드문 연방지지파였다.[10] President pro tempore[11] 인종통합 자체는 좋게 보았지만 이를 급진적으로 실시했다간 남부에 대규모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12] 단, 린든 B. 존슨은 다른 남부 민주당원과 달리 인종 문제, 경제 문제에 있어 진보 성향을 띄었다. 허나 알려진 것과 달리 남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민권법 제정에 종종 어깃장을 놓으며 방해했다는 분석도 있다.[13] 개인적으론 민권 문제에 대해 중도적이었고 짐 크로우 법이 '시대에 맞지 않아' 도태될 것이라 여겼으며, 민심 유지와 인종분리 폐지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주내 인종분리 정책을 점진적으로 온건화하면서 유색인종 교육을 지원했다.[14] 국내에선 높은 성의 사나이를 비롯한 각종 대체역사물의 영향으로 수구적 성향을 가졌다는 통념이 널리 퍼져있지만 실제로는 후버 행정부에서 적극적 재정확장을 통한 경제회복을 주장했으며 루스벨트 행정부 1기 당시 민주당 진보파 출신의 체신부장관인 제임스 팔리와 함께 일하면서 초기 뉴딜 정책의 견인을 책임졌다. 다만 루스벨트 행정부 2기부턴 뉴딜 정책이 지나치게 재정을 낭비한다 주장하면서 균형재정을 요구했고 민권 문제에 대해선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중도 내지 중도보수로 분류된다.[15] 인권 대통령으로 알려져있지만 재정적으로 매우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북부 민주당원과 갈등을 빚었다. 역사가 아서 슐레진저 2세는 그를 클리블랜드 이후 가장 보수적인 민주당 대통령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16] 작중에서도 공화당이나 할법한 정책을 밀어부쳐 진보 성향 의원과 투닥거리는게 거의 메인 플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