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1:57:35

노스웨스트 더비

파일:긱스제라드.jpg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레전드 라이언 긱스
리버풀 FC의 레전드 스티븐 제라드
파일:리버풀 FC 로고.svg 파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리버풀 FC
Liverpool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Manchester United F.C.
노스웨스트 더비 (North West Derby)
종합 전적
(2024년 4월 7일 기준)
리버풀 FC
Liverpool FC
무승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Manchester United FC
71 60 83
최근 5경기 전적
일시 장소 결과 대회
2022년 8월 22일 올드 트래포드 맨유 2 - 1 리버풀 프리미어 리그
2023년 3월 5일 안필드 리버풀 7 - 0 맨유 프리미어 리그
2023년 12월 17일 안필드 리버풀 0 - 0 맨유 프리미어 리그
2024년 3월 18일 올드 트래포드 맨유 4 - 3 리버풀 FA컵
2024년 4월 7일 올드 트래포드 맨유 2 - 2 리버풀 프리미어 리그

1. 개요2. 배경3. 역사
3.1. 트로피 경쟁
4. 역대 전적5. 역대 시즌
5.1. 풋볼 리그 초창기 ~ 1959-60 시즌5.2. 1960-61 시즌 ~ 1989-90 시즌5.3. 1990-91 시즌 ~ 2009-10 시즌5.4. 2010-11 시즌 이후
6. 기록
6.1. 최다 점수 차 경기6.2. 최다 득점 경기6.3. 최다 연승6.4. 최다 연속 무패6.5. 최다 연속 경기 득점6.6. 출장 순위6.7. 득점 순위
7. 사건 사고8. 여담
8.1. 양 팀에서 모두 뛰었던 선수
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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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 나라에는 두 클럽밖에 없습니다. 두 클럽만이 종교처럼 받아들여지죠. 이건 무언가를 의미합니다. 무언가 더 큰 의미가 있어요.
이 둘은 50년 동안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말하기 싫지만, 우리가 공통점으로 갖고 있는 것입니다. 비전을 가진 위대한 스코틀랜드 출신 감독들, 유스들, 지역 출신 선수들, 커뮤니티, 의미, 이상한 승리를 하는 것, 이길 수 없는 경기를 이기는 것...
제게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것들은 분명히 무언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심장으로 느끼는 그 무언가예요.
두 클럽은 종교입니다. 그런 건 이 두 클럽밖에 없어요.
The biggest game in English football? Liverpool vs Manchester United 中
영국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프로축구 양대 명문 클럽이자, 세계적인 위상의 두 팀인 리버풀 FC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간의 라이벌 더비 매치이다.

두 클럽 모두 잉글랜드 북서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노스웨스트 더비[1] 혹은 리버풀 FC-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라이벌리라고 불리며, 두 팀의 연고지인 리버풀맨체스터는 강을 끼고 있어 무역의 중심이 된 강변 도시이자 동시에 공업 도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올드 펌, 아르헨티나의 엘 수페르클라시코, 스페인의 엘 클라시코, 이탈리아의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등과 함께 세계 축구사에서도 손꼽히는 최대 라이벌리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잉글랜드 프로 축구에서 가장 거대하고 유명한 더비 매치로 꼽힌다.

2. 배경

파일:liverpool_manchester_city.png
잉글랜드 북서부에 위치한 리버풀맨체스터의 도시 경관

양 팀의 연고지인 리버풀맨체스터는 고작 35마일 떨어진 곳에 서로 위치한 잉글랜드 북서부의 도시들로,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다녀 올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리버풀과 맨체스터에 가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명소들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리버풀의 알버트 독과 맨체스터의 산업 박물관. 알버트 독은 리버풀이 대영제국을 먹여 살린 항구 도시로서의 기초를 닦은 곳이며 산업 박물관은 수로 사업을 기반으로 한 맨체스터의 눈부신 성장의 역사를 담아낸 곳이다. 이러한 양 도시의 관광 명소들이 보여주듯이, 리버풀과 맨체스터는 모두 18세기 산업 혁명 당시에 급속도로 발전한 지역들이다.

본래 18세기까지 맨체스터는 리버풀에 비해 훨씬 더 인구가 많은 도시였고 잉글랜드 북쪽을 대표하는 도시로 여겨지던 지역이었다. 맨체스터는 산업 혁명의 중심지로 시대를 앞선 기술을 통해 수많은 공산품을 생산하던 대표적인 영국의 공업 도시였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리버풀이 잉글랜드 북부 지역에 위치한 면화 공장들과 함께 중요한 항구 도시로서 함께 성장하기 시작했다. 19세기에 걸쳐 영국의 수출 규모가 크게 확장되자 리버풀은 맨체스터의 산업을 일부 대체하면서 점차 발전을 거듭했고,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는 대영제국의 수출 전진기지가 된 리버풀이 아예 영국 제2의 도시로 여겨지는 등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2] 두 도시는 당시 영국의 산업과 수출의 큰 축을 담당하며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냄과 동시에, 리버풀의 항구에서 내륙으로 원자재를 수송하기 위한 도시 간 리버풀-맨체스터 철도[3]의 건설로 상호 활발하게 교류하며 협력 관계를 공고히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두 도시 사이의 경쟁 관계가 감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대영제국 시절 전세계 무역의 절반 이상이 리버풀을 거쳤을만큼, 리버풀은 당시 영국 최대 규모의 무역항이었는데[4] 1894년, 맨체스터는 항구의 물류비용이 비싸지자 공산품을 직접 수출하는 방법으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맨체스터에서 곧바로 아일랜드 해로 연결되는 당시 서양에서 가장 큰 운하[5]를 건설하는 계획을 세운다. 이 맨체스터 운하의 등장은 리버풀에게 크나큰 타격으로 다가올 것이 뻔했고, 맨체스터 상인들의 자금 지원을 받은 맨체스터 운하 건설은 리버풀 정치인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엔 맨체스터 운하가 건설되면서 리버풀 지역의 노동자들과 맨체스터의 지역의 노동자들 사이엔 갈등이 불타올랐고 이로서 양 도시 사이의 적대감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해당 시기인 1894년, 리버풀을 연고로 하는 리버풀 FC와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6]가 풋볼 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처음으로 맞대결을 펼치며 양 지역 노동자들의 분위기는 더 뜨거워졌다. 이는 초창기 잉글랜드 축구 클럽들이 대부분 지역 노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낳은 양 도시 간의 라이벌리는 현대의 노스웨스트 더비까지 이어져 오며 이 더비 매치의 열기를 뒷받침하는 근본적인 배경이 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전 세계가 경제 위기에 시달렸는데, 이는 승전국이었던 영국도 예외가 아니었던 터라 외국인 노동자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항만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리버풀은 직격탄을 한번 더 맞게되었다. 당시의 현지 부두 노동자들은 해고되기 일쑤였고 리버풀의 도시 경제는 크게 휘청거렸다. 반면 맨체스터의 경우에는 제조업이 도시의 기반이었기 때문에 리버풀과 비교하자면 그래도 타격이 적었다. 이후 마거릿 대처 당시의 대대적인 산업 구조조정으로 두 도시는 동시에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도 있었으나[7], 현대로 넘어오면서 맨체스터는 리버풀에 비해 계속해서 비교적 더 나은 경제 사정을 가지게 되었고, 이에 의해 두 도시는 강한 지역 감정을 이어오게 되었다. 더군다나 영국 정부가 1974년에 기존에 랭커셔주에 속해있던 두 도시들을 머지사이드주와 그레이터 맨체스터주로 각각 분리시키면서 양 도시는 행정적인 유대감마저 잃게 되었다.

그러나 재밌는 것은 두 도시 사이의 깊은 불신에서 비롯된 이 라이벌리에 있어서, 두 도시는 수 많은 차이점을 가졌지만 동시에 수 많은 공통점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리버풀맨체스터산업 혁명 당시에 함께 성장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잉글랜드 북서부의 대표적인 광역권 도시일 뿐 아니라, 정치[8], 패션[9], 음악[10], 축구 등에서 세계적으로도 굵직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즉, 두 도시는 끝나지 않는 라이벌 관계와 더불어 잉글랜드 북서부의 정서적, 문화적 주춧돌이자 원동력으로서 작용해온 공통적인 역사와 의미 또한 가지고 있는 것. 실제로 양 도시 사람들 간에는 몇몇 차이를 제외하면 딱히 서로 다를 것도 없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도시와 문화가 상호 닮은 점이 많은데, 앙숙 관계이면서도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이러한 특이점이 노스웨스트 더비를 구성하는 양 팀의 역사에서도 잘 느껴지는 편이다.

3. 역사

파일:liverpoolmanunitedrivary.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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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트로피 경쟁

국내 대회 우승 기록
대회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횟수 연도 횟수 연도
프리미어 리그 (1부) 19회 1900-01, 1905-06, 1921-22, 1922-23, 1946-47, 1963-64, 1965-66, 1972-73, 1975-76, 1976-77, 1978-79, 1979-80, 1981-82, 1982-83, 1983-84, 1985-86, 1987-88, 1989-90, 2019-20 20회[11] 1907-08, 1910-11, 1951-52, 1955-56, 1956-57, 1964-65, 1966-67, 1992-93, 1993-94, 1995-96, 1996-97, 1998-99, 1999-00, 2000-01, 2002-03, 2006-07, 2007-08, 2008-09, 2010-11, 2012-13
FA컵 8회 1964-65, 1973-74, 1985-86, 1988-89, 1991-92, 2000-01, 2005-06, 2021-22 12회 1908-09, 1947-48, 1962-63, 1976-77, 1982-83, 1984-85, 1989-90, 1993-94, 1995-96, 1998-99, 2003-04, 2015-16
EFL컵 10회[12] 1980-81, 1981-82, 1982-83, 1983-84, 1994-95, 2000-01, 2002-03, 2011-12, 2021-22, 2023-24 6회 1991-92, 2005-06, 2008-09, 2009-10, 2016-17, 2022-23
FA 커뮤니티 실드
(* 표시 : 공동 우승)
16회 1964* , 1965* , 1966, 1974, 1976, 1977* , 1979, 1980, 1982, 1986* , 1988, 1989, 1990* , 2001, 2006, 2022 21회[13] 1908, 1911, 1952, 1956, 1957, 1965* , 1967* , 1977* , 1983, 1990* , 1993, 1994, 1996, 1997, 2003, 2007, 2008, 2010, 2011, 2013, 2016
국내 대회 합계 53회 59회
국외 대회 우승 기록
UEFA 챔피언스 리그 6회[14] 1976-77, 1977-78, 1980-81, 1983-84, 2004-05, 2018-19 3회 1967-68, 1998-99, 2007-08
UEFA 유로파 리그 3회[15] 1972-73, 1975-76, 2000-01 1회 2016-17
UEFA 슈퍼컵 4회[16] 1977, 2001, 2005, 2019 1회 1991
FIFA 클럽 월드컵 1회 2019 1회 2008
국외 대회 합계 14회 6회
총합
총합 67회 65회

두 구단의 더비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우승 트로피 경쟁.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구단들 간의 라이벌리답게 두 구단은 오래된 잉글랜드 축구 역사 속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우승 횟수들을 자랑한다. 잉글랜드 구단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모든 대회에서[17] FA컵[18]을 제외한 모든 대회 최다 우승 팀[19]리버풀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둘 중 하나일 정도. 실제로 잉글랜드 내 모든 대회의 우승 횟수와 잉글랜드 구단의 국외 대회 우승 횟수를 종합했을 때, 두 팀은 어떠한 우승 횟수 순위에서도 3위권 밖으로는 위치하지 않는다.[20] 잉글랜드의 축구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클럽들의 모든 대회 우승 횟수를 다 따져봐도 두 팀은 압도적인 TOP 2를 유지하는 중인데, 2023-24 시즌을 기준으로 최상위 리그 대회와 현존 공식 토너먼트 대회 우승은 리버풀이 67회로 1위, 맨유가 65회로 2위, 여타 폐지된 대회들[21]까지 종합한다면 양 팀 모두 68회로 공동 1위이다.[22] 잉글랜드에서 세 번째로 트로피를 많이 들어올린 아스날조차도 두 팀의 우승 횟수에 비하면 20개 정도의 트로피 격차가 있을 정도. 이러한 압도적인 우승 횟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양 팀의 더비 라이벌리는 끝 없는 우승 경쟁을 통해서 누가 잉글랜드 최고의 클럽인가를 놓고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다. 우승 기록을 뜯어 보면, 맨유는 프리미어 리그FA컵FA 커뮤니티 실드 우승 횟수에서 리버풀에 비해 우위를 보였던 반면, 리버풀은 EFL컵UEFA 챔피언스 리그를 포함한 모든 유럽 대항전 우승 횟수에서 맨유를 상회하는 성과를 냈다. 양 팀의 우승 트로피 경쟁에서 가장 백중세인 것은 결국 리그 우승인데, 2022-23 시즌을 기준으로 양 팀의 리그 우승 횟수는 단 1회 차이이다. 1972-73 시즌을 시작으로 붉은 제국이라 불린 전성기를 달리며 맨유와의 리그 타이틀 격차를 11회까지 벌렸던 리버풀이었으나[23], 알렉스 퍼거슨 감독 부임 이후 맨유가 황금기를 구사하며 리그 우승 횟수를 역전하기에 이르렀다.[24] 하지만 위르겐 클롭 아래에서 리버풀이 30년만에 리그 우승을 추가하면서 양 팀의 리그 우승 횟수 경쟁은 다시 초접전 양상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4. 역대 전적

대회 경기 승리 무승부 득점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그[25] 182 61 69 52 247 244
FA컵 19 4 11 4 22 32
EFL컵 5 3 2 0 7 6
커뮤니티 실드 5 1 1 3 5 6
플레이오프 1 1 0 0 2 0
UEFA 유로파 리그 2 1 0 1 3 1
합계 214 71 83 60 286 289

5. 역대 시즌

5.1. 풋볼 리그 초창기 ~ 1959-60 시즌

  • 1893-1894 시즌 종료 후, 이우드 파크에서 열린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두 팀 간의 역사적인 첫 경기가 이루어졌다. 1983-1984 시즌에 세컨드 디비전 챔피언을 차지한 리버풀과 퍼스트 디비전 최하위에 머무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6]는 첫 맞대결부터 승강이 걸린 외나무 다리 경기를 펼쳐야했다. 후에 잉글랜드 축구를 대표하며 유럽 축구사에 굵직한 이름을 남기게 되는 두 명문 클럽의 첫 만남은 리버풀의 2-0 승리로 끝이 났고, 이 경기로 리버풀은 퍼스트 디비전에 진출한 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세컨드 디비전 강등의 쓴맛을 보게되었다.
  • 1895-1896 시즌은 양 팀이 처음으로 같은 리그[27]에서 리그 매치를 치른 시즌이었다. 1895년 10월 12일에 안필드에서 열린 양 팀의 첫 리그 맞대결은 리버풀의 7-1 승리로 끝났다. 이 경기의 스코어차는 이후 무려 127년간 노스웨스트 더비의 최다 스코어차 경기 기록으로 남아있었다.[28] 두번째 리그 맞대결은 1895년 11월 2일 뱅크 스트리트[29]에서 열렸는데 이 경기에선 맨유[30]가 5-2로 승리했다.
  • 1897-1898 시즌에는 노스웨스트 더비 역사상 첫 토너먼트 맞대결이자 첫 FA컵 맞대결이 있었다. 이 시즌 FA컵 2라운드에서 만난 두 팀은 뱅크 스트리트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2라운드 재경기에서는 리버풀이 안필드에서 2-1 승리를 챙기며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 1902-1903 시즌 FA컵 1라운드에서 양 팀의 두 번째 국내 컵 맞대결이 있었다. 뱅크 스트리트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는 맨유가 2-1로 리버풀을 이기며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 1906-1907 시즌은 양 팀의 첫 1부 리그 맞대결이 성사된 시즌이었다. 양 팀의 첫 1부 리그 경기는 190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열린 뱅크 스트리트에서의 맨유 홈 경기였는데, 0-0으로 무승부가 기록되었다. 2차전은 1907년 4월 1일 안필드에서 열렸는데 이 경기는 맨유의 0-1 승리로 끝났다. 이 경기는 맨유의 노스웨스트 더비 첫 원정승이었다.
  • 1909-1910 시즌은 노스웨스트 더비 역사상 첫 리그 더블이 발생했다. 이 시즌 리버풀은 안필드에서의 3-2 승리에 이어서, 1910년 2월 19일 올드 트래퍼드의 개장 첫 경기로 치러진 노스웨스트 더비에서 3-4로 또 다시 승리를 챙겼다. 더비 역사상 첫 리그 더블을 당함과 동시에 맨유는 새 홈구장의 역사적인 첫 경기에서 숙적에게 패배를 당하는 영원한 상처를 입었다.
  • 1919-1920 시즌의 양 팀 간 2차례 리그 경기는 모두 0-0 스코어로 경기가 끝났다. 이는 노스웨스트 더비 리그 경기에서 양 팀 합쳐 득점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으면서 2무를 기록한 역사상 유일한 시즌이다.
  • 1920-1921 시즌에는 오랜만에 양 팀이 FA컵에서 만났다. FA컵 1라운드에서 두 팀은 1-1을 기록하여 재경기까지 치르게 되었는데, 맨유의 홈에서 치러진 재경기에서 리버풀은 1-2로 승리를 거뒀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해당 시즌 리그 경기에서도 리버풀은 1승 1무로 우위를 지켰다. 리버풀은 맨유를 홈으로 불러들여 2-0으로 승리했고 맨체스터 원정길에서는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 1947-1948 시즌에는 FA컵 4라운드에서 맨유가 리버풀을 3-0으로 크게 이겼다. 해당 시즌 리그 경기에서도 맨유의 더비전 상승세가 이어졌다. 맨유는 홈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뒀고 리버풀 원정길에서는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 1959-1960 시즌에도 다시 한 번 FA컵 4라운드에서 두 팀이 격돌했다. 맨유는 12년 전의 경기에 이어서 1-3 승리를 거두면서 FA컵에서의 더비전 연승을 이어갔다.

5.2. 1960-61 시즌 ~ 1989-90 시즌

  • 1963-1964 시즌에는 빌 샹클리맷 버스비라는 양 팀 역사에 있어 대부격에 있는 전설적인 감독들의 지휘 아래, 두 팀이 처음으로 본격적인 리그 타이틀 경쟁을 치르게 되었다. 60년대는 양 팀이 축구사에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되는 명문 클럽으로서의 태동기와 같은 시기였는데, 리버풀의 로저 헌트, 이안 캘러한, 맨유의 데니스 로, 조지 베스트, 보비 찰튼과 같은 위대한 선수들이 활약하던 때이기도 했다. 해당 시즌에는 리버풀이 올드 트래퍼드에서 0-1로 승리를 거둔데 이어 안필드에서 3-0 대승을 거두며 리그 경기 더블로 맨유의 기선을 제압했고, 승점 4점차로 2위 맨유를 따돌리며 6번째 리그 우승이자 17년만의 감격적인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 다음 시즌이던 1964-1965 시즌에는 맨유가 리그 우승을 빼앗아 오는데 성공했으나 바로 그 다음 1965-1966 시즌에는 리버풀이 다시 우승을 찾아오는 등, 해당 시즌은 양 팀의 리그 타이틀 경쟁이 불 붙기 시작하는 시즌이 되었다.
  • 1965-1966 시즌이 시작되기 전, 양 팀은 역사상 처음으로 채리티 실드에서 맞붙었다.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양 팀은 2-2 아쉬운 무승부를 기록하며 공동 우승을 가져갔다. 이후 이어진 시즌 리그 경기에서 두 팀은 서로에게 1승 1패를 기록했다. 안필드에서는 2-1 리버풀의 승리, 올드 트래퍼드에서는 2-0으로 맨유가 승리했다.
  • 1976-1977 시즌 두 팀은 FA컵 우승을 놓고 처음으로 컵 결승전에서의 맞대결을 치르게 되었다. 당시는 빌 샹클리의 후임이던 밥 페이즐리의 지휘 하 리버풀이 본격적인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한 때로, 해당 시즌 리버풀은 10번째 리그 우승을 일찍이 확정지은 후, 유로피언 컵 결승에도 진출한 상태였고 잉글랜드 클럽 역사상 첫 트레블을 꿈꾸고 있었다. 반면, 맨유는 맷 버스비 감독 사임 이후 세컨드 디비전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는 등, 좋지 못한 70년대를 보내고 있었다. 엇갈린 당대의 성적 하 두 팀은 1977년 5월 21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FA컵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었는데, 이 경기에서 맨유는 예상을 뒤집고 스튜어트 피어슨과 지미 그린호프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며 리버풀의 트레블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이 시즌 FA컵은 맨유의 유일한 70년대 메이저 트로피였으며 리그에서 리버풀에게 이기지 못하며 3위로 밀려났던 직전 시즌인 1975-1976 시즌을 설욕하며 자존심을 챙기는 우승이 되었다. 더불어 이후 이어진 양 팀의 트로피 및 타이틀 경쟁을 생각해 볼 때, 이 결승 매치는 기념비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 1977-1978 시즌 전의 채리티 실드에서는 양 팀이 12년만에 맞붙었다.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양 팀의 경기는 0-0으로 끝나 또 다시 두 팀은 공동 우승을 기록했다. 이후 이어진 시즌 리그 경기에서 두 팀은 서로에게 1승 1패를 기록했다. 안필드에서는 3-1 리버풀의 승리, 올드 트래퍼드에서는 2-0으로 맨유가 승리했다. 12년 전 시즌과 상당히 유사한 결과였다.
  • 1978-1979 시즌 두 팀은 FA컵 준결승에서 다시 만났다. 2년 전의 역사를 재현하고자한 맨유와 2년 전의 치욕을 갚고자했던 리버풀의 맞대결은 2-2 치열한 무승부로 끝났다. 하지만 이어진 준결승 재경기에서 리버풀은 지미 그린호프에게 또 다시 결승골을 허용해 0-1로 패배하며 다시금 패배의 씁쓸함을 맛봤다. 리버풀에게는 그나마 리그에서 맨유를 상대로 더블을 기록했다는 것이 위안거리였다. 리버풀은 이 시즌 리그에서 맨유를 상대로 홈에서 2-0 승리, 원정에서도 0-3으로 승리했다.
  • 1979-1980 시즌엔 60년대 중반 이후 가장 치열한 양 팀간의 리그 우승 경쟁이 이뤄졌다. 당시 리버풀은 밥 페이즐리 감독 아래 케니 달글리시그레이엄 수네스를 필두로 지난 4시즌간 2번의 유로피언 컵 우승과 3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명실상부 잉글랜드 최강의 클럽이었던 반면, 맨유는 60년대의 영광을 찾아오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중위권에 머물러 있던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브 섹스턴이 지휘하던 해당 시즌의 맨유는 전반기에 리그 선두를 달리며 상당한 선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리버풀 또한 박싱데이를 기점으로 맨유를 따라잡았고 양 팀은 1980년 5월까지 거의 승점 동률 상태를 지속하며 끈질긴 승부를 이어나갔다. 맨유는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리버풀과의 맞대결에서 신승을 거두며 전반기 원정 패배를 설욕한데 이어 후반기 연승가도를 달리며 1위 자리를 가져와 희망을 살리는가 했으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라이벌 리즈 유나이티드에 2-0으로 패배하며 리버풀에게 2점 차 역전 우승을 허용했다. 이 시즌의 우승으로 리버풀은 지난 5시즌간 4번의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압도적인 리그 왕조의 시작을 알렸다.
  • 1982-1983 시즌엔 6년 전의 FA컵에 이어 또 다시 두 팀의 결승 리매치가 EFL컵 결승전에서 성사되었다. 1983년 3월 26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양 팀간의 역사상 두 번째 결승전에서, 이번에는 리버풀이 경기 종료 15분 전에 터진 앨런 케네디의 동점골과 연장전 로니 윌런의 역전골에 힘입어 맨유를 2-1로 제압하며 6년 전 패배를 설욕했다. 해당 경기 승리로 리버풀은 리그컵 쓰리핏을 달성함과 동시에 2년 연속으로 리그 타이틀과 리그컵 타이틀 더블에 성공했다. 또한 해당 우승은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 밥 페이즐리의 은퇴 시즌을 장식하는 마지막 컵 대회 트로피로 기억되게 되었다.
  • 1983-1984 시즌 전의 채리티 실드에서는 맨유가 2-0으로 승리했다. 맨유는 처음으로 리버풀을 상대로 채리티 실드에서 승리를 챙기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어진 시즌 리그에서도 맨유는 1승 1무로 우위를 지켰다. 맨유는 리버풀 원정길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홈 경기에서는 1-0 승리를 가져갔다.
  • 1984-1985 시즌에는 맨유가 홈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이후 안필드 원정에서 0-1 승리를 가져왔다. 하지만 더 기억에 남을만한 승리는 FA컵에서 있었다. 6년 전에 이어서 또 다시 FA컵 준결승에서 만난 두 팀의 경기는 다시 2-2 무승부를 기록했는데, 이어진 준결승 재경기에서는 6년 전과 같이 맨유가 승리를 거뒀다. 스코어는 2-1로 리버풀에게는 FA컵에서의 뼈아픈 패배가 또 반복된 시즌이었다.
  • 1985-1986 시즌 EFL컵 4라운드에서 다시 두 팀이 만났다. 이 경기에서는 리버풀이 2-1로 승리하면서 직전 시즌의 복수를 성공시켰다. FA컵에서는 힘을 못쓰고 있지만 EFL컵에서는 3년 전 결승전에서의 승리에 이어 줄곧 리버풀의 상승세가 이어졌다. 해당 시즌 리그에서는 양 팀이 두 경기 모두 1-1 로 비겼다.
  • 1987-1988 시즌, 리버풀은 지난 12시즌 간 8번이나 우승하는 등, 70년대에 이어 80년대 후반에 접어드는 시점까지도 리그에서 압도적인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맨유는 리그 내 3~4위권으로 다시 치고 올라오는데에는 성공했으나 20년째 리그 우승은 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해당 시즌에는 8년 전에 이어 맨유가 2위로 리버풀을 추격하며 양 팀간의 거리가 좁아지는 듯 했으나, 4월까지 리버풀은 2위 맨유에 11점 앞서는 등 여유로운 시즌을 보냈다. 그렇게 리그 종료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리그 우승을 거의 확실시한 상태로 리버풀은 안필드에서 펼쳐진 시즌 마지막 맨유와의 맞대결에 돌입했다. 리버풀은 피터 비어슬리, 게리 길레스피, 스티브 맥마흔의 골을 앞세워 예상대로 여유있게 맨유를 제압하는가 했으나, 맨유가 브라이언 롭슨과 고든 스트라찬의 끈질긴 추격으로 동점까지 기록하며 경기는 3-3 기억에 남을만한 무승부로 마무리 되었다. 이 시즌 결국 맨유는 리버풀이 17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2위 자리에서 또 다시 지켜보며 60년대 후반부터 리버풀을 리그 순위에서 한 차례도 넘지 못하는 결과를 이어갔으나, 안필드 원정에서의 끈질긴 추격은 맨유팬들에게 의미있는 기억을 남겼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즌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부임하여 풀 타임으로 리그를 치른 첫 시즌이었다.

5.3. 1990-91 시즌 ~ 2009-10 시즌

  • 1990-1991 시즌 시작 전에 열린 채리티 실드에서는 다시 한 번 두 팀이 1-1로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공동 우승을 나눠 가졌다. 이어진 시즌 리그에서는 리버풀이 홈에서 맨유를 4-0으로 크게 이긴 뒤 원정길에서도 1-1로 비기며 우위를 가져갔지만, EFL컵 3라운드 경기에서는 맨유가 3-1로 승리를 챙겼다.
  • 1993-1994 시즌 1월 4일에 열린 안필드에서의 두 팀의 맞대결에서 맨유는 스티브 브루스, 라이언 긱스, 데니스 어윈이 연달아 골을 터트리며 원정에서 크게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버풀의 나이젤 클로프의 멀티골이 터진데 이어 닐 러독이 간신히 동점골까지 성공시키며 6시즌 전과 비슷한 경기 양상이 만들어졌다. 결국 경기는 또 다시 기억에 남을만한 3-3 스코어로 끝났다. 이 경기는 당시 부진을 면치 못하던 그레이엄 수네스 감독의 리버풀 커리어 마지막 경기 중 하나로 남게 되었으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리버풀은 암흑기를 보내게 된 반면,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프리미어 리그에서 금자탑을 쌓기 시작하며 맨유는 황금기를 이어게 된다.
  • 1995-1996 시즌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양 팀의 시즌 첫 맞대결은 맨유의 에릭 칸토나가 쿵푸킥 사건으로 8개월의 출전 정지를 받고 복귀한 첫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맨유는 니키 버트의 골로 앞서가는가 했으나 리버풀의 90년대를 이끌었던 로비 파울러가 멀티골을 집어 넣어 역전패의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71분 맨유가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복귀전이었던 칸토나가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2-2 무승부를 기록한다. 더 유명한 이 시즌의 양 팀 더비전은 시즌 말에 치러진 FA컵 결승전이었다.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85분경까지 팽팽하게 진행된 오랜만의 양 팀의 결승 더비 매치는 에릭 칸토나가 결승 골을 집어 넣음으로서 맨유의 1-0 승리로 끝났다.
  • 1998-1999 시즌에는 맨유가 FA컵 4라운드에서 리버풀에게 또 다시 2-1로 승리를 가져가면서 FA컵 리버풀 상대 연승가도를 이어갔다. 해당 시즌 리그에서도 맨유는 리버풀을 상대로 홈 2-0 승리를 거두며 1승 1무를 기록하는 우위를 보여줬다.
  • 2001-2002 시즌 시작 전에 열린 채리티 실드에서는 리버풀이 처음으로 맨유에게 2-1로 승리를 가져가면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로서 양 팀의 채리티 실드 전적은 1승 3무 1패 동률로 맞춰지게 되었다. 이어진 시즌 리그에서도 리버풀은 맨유를 상대로 홈 3-1승, 원정 0-1 승리를 기록하며 노스웨스트 더비 무패 시즌을 완성했다. 2000-2001 시즌에도 리그에서 리버풀에게 더블을 허용한 맨유로서는 아픈 패배의 연속이었다.
  • 2002-2003 시즌, 7년만에 양 팀의 컵 결승 더비 매치가 EFL 컵 결승전에서 치러졌다.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해당 경기에서는 전반 39분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가 골을 작렬시킨데에 이어, 후반 86분 마이클 오언의 추가골이 터지면서 리버풀이 2-0 승리를 챙겼다. 경기 내내 리버풀의 골키퍼인 예지 두덱이 맨유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내며 수훈을 남겼다. 이 대회 우승으로 리버풀은 7번째 리그 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리그 컵 최다 우승 클럽의 자리를 공고히 지켰으며, 7년 전의 더비 결승전을 설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양 팀의 프리미어 리그 두 번째 맞대결에서 맨유가 4-0 홈경기 대승으로 리그 더블에 성공하며 맨유가 더비전의 꺾였던 기세를 잡았다.
  • 2005-2006 시즌 FA컵 5라운드에서 펼쳐진 노스웨스트 더비에서는 리버풀이 1-0으로 승리하면서 실로 오랜만에 맨유를 상대로 FA컵 승리를 기록했다. 이어진 시즌 리그 경기에서는 맨유가 홈에서 1-0으로 승리하고 원정에서는 0-0으로 비김으로서 우위를 기록했다. 이는 승점 1점차로 최종순위 2위와 3위가 갈리는데 결정적이었다.[31]
  • 2008-2009 시즌에는 리버풀이 오랜만에 우승권의 전력을 갖추며 리그에서 좋은 기세를 이어나갔고 이에 80년대 후반 이후 실로 오랜만에 두 팀의 리그 우승 경쟁을 볼 수 있었다. 리버풀은 안필드에서의 리그 첫 맞대결에서 라이언 바벨의 역전골과 네마냐 비디치의 경고 누적 퇴장에 힘입어 맨유에 2-1로 승리하면서 맨유 상대 안필드 최근 리그 6경기 무승의 오욕을 씻었다. 이어진 후반기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두 번째 맞대결에선 리버풀이 리그 선두 맨유에게 무려 1-4 홈 참패를 선사하면서 맨유의 자존심을 구겨주었다. 맨유는 전반 23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페널티킥으로 앞서나갔지만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5분만에 동점골을 허용한데 이어, 스티븐 제라드가 페널티킥을 득점하며 리드를 빼앗겼고, 또 다시 네마냐 비디치가 퇴장당하며 경기 내내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파비오 아우렐리오안드레아 도세나의 추가골이 터지며 맨유는 홈에서 17년만에 가장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리그 더블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은 리그 레이스 막판 기세를 살리지 못하며 맨유에게 선두를 내줘 리그 트로피는 맨유의 몫이 되었다. 이로서 빌 샹클리맷 버스비 시대 이후 양 팀이 우승과 준우승을 나눠가진 시즌들에 있어서 맨유는 처음으로 리버풀을 준우승으로 누르며 우승을 달성했으며, 리버풀이 자랑하던 18번의 리그 최다 우승과 타이를 이뤄 리버풀에게 치욕을 안겼다.

5.4. 2010-11 시즌 이후

  • 2011-2012 시즌 양 팀의 더비 매치는 리버풀의 루이스 수아레즈와 맨유의 파트리스 에브라 사이의 갈등으로 얼룩졌다. 2011년 10월 15일에 열린 안필드에서의 양 팀 간 경기에서 양 팀은 1-1로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수아레즈는 에브라에게 인종차별적인 단어를 내뱉었고 이에 양 팀은 FA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이후 1월에는 양 팀이 FA컵 4라운드에서 만났고 리버풀이 다니엘 아게르디르크 카윗의 골로 2-1 신승을 거두었다. 후반기 리그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2012년 2월 11일자 경기에서는 수아레즈가 경기 전 에브라와의 악수를 거부하는 사태가 이어졌는데 이후 맨유가 웨인 루니의 골로 2-1 승리를 챙겼고, 경기가 종료된 후엔 에브라가 수아레즈 바로 앞에서 도발적인 경기 승리 세레머니를 펼치기에 이르렀다. 이에 여러모로 양 팀과 선수들 간의 분위기가 좋지 못한 기류에 휩싸였다.
  • 2013-2014 시즌에는 리버풀이 리그에서 더블을 기록했다. 리버풀은 리그 초반 안필드에서 맨유를 상대로 1-0 귀중한 승리를 거둔데 이어, 후반기 올드 트래퍼드에서 0-3 원정 대승까지 기록했다. 이 시즌 리버풀은 리그 노스웨스트 더비 더블에 힘입어 1991-1992 시즌 이후 22시즌만에 맨유보다 앞선 리그 순위로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EFL 컵 3라운드에서는 맨유가 1-0으로 승리를 거뒀다.
  • 2015-2016 시즌, 양 팀은 더비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 대항전 무대에서 맞붙었다.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클럽들로서 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크게 떨친 양 팀의 첫 유럽 대항전 맞대결이 이제야 성사되었다는 점도 주목할만한 부분이었는데, 심지어 해당 무대는 UEFA 유로파 리그 16강전이었다. 잉글랜드 내 빅이어 갯수가 각각 5개와 3개로 잉글랜드 내에서 가장 트로피가 많은 클럼들임을 감안한다면 진풍경이라면 진풍경. 경기는 2016년 3월 10일 안필드 1차전에서 리버풀이 2-0으로 승리하며 기선을 제압한데 이어, 3월 17일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2차전에서는 1-1로 무승부를 기록하며 리버풀이 8강에 진출했다. 리그에서는 맨유가 전반기 홈에서 3-1 승리를 거둔데 이어, 안필드 원정에서도 0-1 신승을 거두며 더블을 기록했다.
  • 2018-2019 시즌 17R, 이 경기 전까지 13승 3무로 압도적인 선두 경쟁을 구가하고 있던 리버풀이 맨유를 홈으로 불러들여 3-1 승리를 거두었다. 이 경기는 2년 9개월만에 리버풀이 노스웨스트 더비에서 승리한 경기[32]였으며, 리그로만 따지면 무려 4년 9개월만의 승리[33]였다. 해당 경기는 슈팅 숫자 36:6으로 상당히 원사이드하게 전개되었으며, 위르겐 클롭 부임 이후 이상하게 맨유전에만 힘을 못 쓰고 있던 리버풀에겐 기쁜 승리였다. 하지만 후반기 맨유 홈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지지부진한 경기가 이어지며 0-0 무승부로 경기가 끝났다.
  • 2019-2020 시즌에는 맨유가 전반기 리그 홈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리그 17연승을 달리고 있던 리버풀에 제동을 걸었다. 이 경기는 리버풀이 해당 시즌 전반기에 승점 3점을 따내지 못한 유일한 리그 경기로 기록되었다. 후반기 안필드에서는 리버풀이 경기 내내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2-0 승리를 따내었다. 알리송 베케르모하메드 살라의 후반 막판 추가골을 어시스트하며 경기의 방점을 찍었다. 시즌 내내 리그 선두를 질주하고있던 리버풀은 이 경기에서 처음으로 우리가 리그를 우승할 거야라는 노래를 부르며 30년 만의 리그 우승을 확신하게 되었다. 결국 리버풀은 이 시즌 꿈에 그리던 리그 트로피를 다시 들어올리면서 맨유가 추월했던 리그 우승 횟수를 다시 바짝 추격하게 되었고, 맨유는 힘을 쓰지 못하고 최대 라이벌의 부활을 바라보게 되었다.
  • 2020-2021 시즌 PL 19R, 두 팀이 선두권을 놓고 오랜만에 경기를 펼쳤으나 안필드에서의 리그 첫 맞대결은 0-0 무승부로 끝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1주일 후 FA컵 32강에서는 맨유가 3-2 승리로 16강에 진출했다. 2020-21 시즌 PL 34R, 맨유 현지 팬들이 글레이저 가문슈퍼리그 참가에 반대하여 홈구장 내부까지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해 리그 두 번째 맞대결은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다. 원래는 현지 시간 5월 2일에 노스웨스트 더비가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결국 5월 13일로 연기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두 번째 리그 맞대결에서는 리버풀이 선제 실점하였으나 디오고 조타의 추격골과 호베르투 피르미누의 멀티골로 스코어를 멀찍이 벌렸고, 맨유는 1점 더 따라가긴 했으나 모하메드 살라가 경기의 방점을 찍었다. 결국 리버풀이 2-4로 승리하며 복수에 성공하였다. 이는 2014년 3월 이후 7년만의 리버풀의 노스웨스트 더비 원정 승리였다.
  • 2021-2022 시즌 PL 9R, 모하메드 살라가 PL 역사상 최초로 올드 트래포드 원정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리버풀이 맨유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며 1925년 이후 무려 96년만에[34] 노스웨스트 더비에서 5골 차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노스웨스트 더비 역사상 맨유의 홈 최다 실점 타이[35] 경기이자 최다 점수 차 패배 경기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날 맨유는 경기 결과 뿐만 아니라 옐로 카드 6장, 레드 카드 1장을 받으며 스포츠맨십에서도 완패를 하고 말았다.[36] 한편 홈 올드 트래퍼드에서 참사에 가까운 결과를 맞이한 분노에 찬 맨유 팬들이 조기에 퇴장하는 광경도 볼 수 있었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중계 카메라가 따로 비춰줬을 정도.[37] 맨유가 랄프 랑닉 임시감독 체제로 바뀐 PL 30R에서도 리버풀은 맨유를 홈으로 불러들여 너무나도 손쉬운 4:0 대승을 만들어내면서 리버풀이 8년만에 리그에서 노스웨스트 더비 더블에 성공했다.[38]
  • 2022-2023 시즌 PL 3R에서는 맨유가 2017-18 시즌 이후 약 4년만에 리버풀을 상대로 리그에서 2-1 승리를 거두면서 리버풀의 노스웨스트 더비 4연승을 저지했다. 그러나 같은 시즌 펼쳐진 PL 26R 안필드에서는 리버풀이 노스웨스트 더비 역사에 길이길이 남겨질 7-0 대참사를 맨유에게 안겨주었다. 노스웨스트 더비 129년 역사상 7골 차 경기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으며, 맨유는 클럽 역사상 가장 큰 점수차 패배[39]를 92년만에 재현당했고, 클럽 역사상 1부 리그에서의 최다 점수차 패배 기록을 경신하고 말았다. 양 팀간 종전 리그 최다 득점 차 경기는 무려 1895년 리버풀이 뉴튼 히스 시절이던 맨유를 7:1로 물리치며 6골 차를 낸 경기였는데 이 기록도 깨지고 말았다. 반면, 리버풀은 코디 학포, 다윈 누녜스, 모하메드 살라의 멀티골과 호베르투 피르미누의 골에 힘입어 기념비적인 더비 대승을 기록하였으며, 특히 모하메드 살라는 2골 2도움을 기록하며 리버풀 소속으로 프리미어 리그 129골을 넣어 로비 파울러를 제치고 리버풀 내 프리미어리그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올라서는 진기록을 달성하여 겹경사를 누렸다. 리버풀은 이 경기로 후반기 반등의 축포를 터트릴 수 있게 되었으나 맨유는 최근 좋은 흐름세에도 불구하고 전 시즌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5-0, 안필드에서의 4-0 패배에 이은 또 다른 치욕의 역사를 쓰게 되었다.[40] 더 자세한 내용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2022-23 시즌/리그 26R VS 리버풀 문서를 참조.
  • 2023-24 시즌 양 팀의 첫 맞대결은 PL 17R 안필드에서 펼쳐졌다. 맨유의 경기력과 분위기가 상당히 좋지 못한 반면, 리버풀은 리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다가 작년의 7-0 대승을 비롯하여 홈에서 최근 맨유를 상대로 초강세를 보이고 있기에 리버풀의 우세가 점쳐졌다. 그러나 대놓고 수비라인을 쌓으며 비기기 전략을 들고나온 맨유를 상대로 리버풀이 슈팅 34개를 기록하고도 득점을 기록하지 못해 0-0으로 경기가 끝났다. 이후 두 팀은 FA컵 8강에서 격돌했다. 올드 트래퍼드에서 펼쳐진 이 경기에서는 맨유가 선제골을 득점한 뒤 리버풀이 2골을 연달아 넣으며 경기가 리버풀쪽으로 기우는듯 했으나, 맨유가 후반 막판에 동점골을 집어넣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가는 집요한 승부가 연출되었다. 이후 리버풀이 연장에 다시 득점하여 또 앞서갔으나 맨유는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해 연장 후반에 재차 동점을 만들었고 결국 121분에 극적인 역전골까지 터트리며 명승부 끝에 4-3 승리를 가져갔다. 시즌을 끝으로 사임을 발표한 위르겐 클롭 감독의 마지막 노스웨스트 더비가 된 PL 32R 경기는 올드 트래퍼드에서 펼쳐졌다. 전반에는 리버풀이 예상대로 시종일관 경기를 주도하여 맨유를 슈팅 숫자 0개로 묶으며 0-1로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후반전 맨유가 리버풀의 수비 실수를 놓치지 않고 동점을 만들었고, 이후 역습 상황에서 코비 마이누의 짜릿한 슈팅이 터지며 역전에 성공해 경기는 예상치못한 국면으로 흘러갔다. 결국 후반 막판 모하메드 살라가 PK를 성공시켜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으나, 리버풀은 이 경기에서의 승점 드랍으로 2위로 떨어져 우승 경쟁에 적신호가 켜졌고, 맨유는 전반기 맞대결과 FA컵 승리에 이어 라이벌 역할을 톡톡히 하며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렸다.

6. 기록

6.1. 최다 점수 차 경기

순위 결과 일시 대회
1 리버풀 7: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23년 3월 5일 프리미어 리그
2 리버풀 7: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895년 10월 12일 세컨드 디비전
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6:1 리버풀 1928년 5월 5일 퍼스트 디비전
4 리버풀 5: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25년 9월 19일 퍼스트 디비전
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5:0 리버풀 1946년 9월 11일 퍼스트 디비전
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0:5 리버풀 2021년 10월 24일 프리미어 리그
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5:1 리버풀 1953년 12월 19일 퍼스트 디비전
8 리버풀 4: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05년 4월 22일 세컨드 디비전
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0 리버풀 1907년 9월 7일 퍼스트 디비전
1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0 리버풀 1952년 4월 12일 퍼스트 디비전
11 리버풀 4: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0년 9월 16일 퍼스트 디비전
1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0 리버풀 2003년 4월 5일 프리미어 리그
13 리버풀 4: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22년 4월 19일 프리미어 리그

6.2. 최다 득점 경기

순위 결과 일시 대회
1 리버풀 7: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08년 3월 25일 퍼스트 디비전
2 리버풀 7: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895년 10월 12일 세컨드 디비전
3 리버풀 4: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53년 8월 22일 퍼스트 디비전
4 리버풀 7: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23년 3월 5일 프리미어 리그
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6:1 리버풀 1928년 5월 5일 퍼스트 디비전
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5:2 리버풀 1895년 11월 2일 세컨드 디비전
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5 리버풀 1936년 11월 21일 퍼스트 디비전
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4 리버풀 1910년 2월 19일 퍼스트 디비전
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3 리버풀 2024년 3월 18일 FA컵
1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5:1 리버풀 1953년 12월 19일 퍼스트 디비전
11 리버풀 4: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26년 8월 28일 퍼스트 디비전
1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4 리버풀 2021년 5월 13일 프리미어 리그
1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3 리버풀 1926년 3월 10일 퍼스트 디비전
1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3 리버풀 1962년 11월 10일 퍼스트 디비전
15 리버풀 3: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88년 4월 4일 퍼스트 디비전
16 리버풀 3: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4년 1월 4일 프리미어 리그

6.3. 최다 연승

경기 수 기간
5 리버풀 2000년 12월 17일 ~ 2002년 1월 22일
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12년 11월 23일 ~ 1914년 4월 1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6년 5월 11일 ~ 1997년 12월 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6년 10월 22일 ~ 2008년 3월 23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4년 12월 17일 ~ 2016년 1월 17일

6.4. 최다 연속 무패

경기 수 기간
13 리버풀 1919년 12월 26일 ~ 1927년 12월 24일
1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12년 3월 23일 ~ 1921년 2월 5일
1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6년 5월 11일 ~ 2000년 3월 4일
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50년 8월 30일 ~ 1962년 11월 10일

6.5. 최다 연속 경기 득점

경기 수 기간
1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07년 4월 1일 ~ 1915년 4월 2일
16 1983년 2월 26일 ~ 1988년 4월 4일
15 리버풀 1925년 9월 19일 ~ 1938년 9월 7일
11 1999년 1월 24일 ~ 2003년 3월 2일
1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6년 5월 11일 ~ 2000년 3월 4일

6.6. 출장 순위

순위 국적 이름 클럽 출장 수
1 웨일스 라이언 긱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8
2 잉글랜드 스티븐 제라드 리버풀 35
3 웨일스 이안 러쉬 리버풀 33
잉글랜드 제이미 캐러거 리버풀 33
잉글랜드 폴 스콜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3

6.7. 득점 순위

순위 국적 이름 클럽 득점
1 이집트 모하메드 살라 리버풀 13
2 잉글랜드 스티븐 제라드 리버풀 9
잉글랜드 조지 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9
스코틀랜드 샌디 턴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9
5 잉글랜드 스탠 피어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8

7. 사건 사고

  • 2006년 1월 22일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양 팀 간의 2005-2006 시즌 리그 경기에서 맨유의 주장 게리 네빌이 팀의 골이 터지자 리버풀 원정 서포터즈석으로 역주행하여 도발적인 세레머니를 펼친 사건이 있었다. 이 행동으로 네빌은 5천 파운드의 벌금과 2경기 출장 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네빌은 이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여러차례 하기도 했다.
  • 2006년 양 팀 간의 FA컵 5라운드 안필드 경기에서 리버풀 서포터들이 맨유 서포터들에게 인분 등의 이물질을 투척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 2011년 3월, 안필드에서 열린 양 팀 간의 FA 유스컵 경기에서 맨유 서포터들이 힐스보로 참사헤이젤 참사를 조롱하는 노래와 구호들을 부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 리버풀 공격수 존 올드리지는 이 사건을 두고 "역겨운 수준의 조롱"이라고 말했다.
  • 2011년 10월 15일 안필드에서 열린 양 팀 간의 2011-2012 시즌 리그 경기에서 리버풀의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가 맨유 수비수인 파트리스 에브라에게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코너킥 수비를 위해 에브라가 수아레스에 접촉을 가하자 수아레스가 "날 만지지마. 난 흑인(negro[41])과는 말 안해."라는 발언을 한 것. 경기 이후 FA는 조사에 착수했고 결국 수아레즈는 8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4만 파운드(약 7200만 원)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2012년 2월 11일에 열린 양 팀 간 리그 두 번째 맞대결에서 수아레스가 에브라와의 경기 전 악수를 거부한데에 이어 리버풀이 해당 사건에서 수아레스를 지지하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단체로 착용하는 등의 행동으로 더욱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2012년 2월 13일 리버풀과 수아레스는 공식적으로 해당 사건에 대한 사과를 표명했으며, 맨유측 또한 이 사과를 받아주며 사건은 종결되었다. 이후 2019년, 리버풀의 부주장이었던 제이미 캐러거가 당시에 구단이 수아레스를 지지했던 일을 다시 한 번 에브라에게 개인적으로 만나 사과했고[42] 2020년엔 리버풀의 CEO인 피터 무어가 에브라에게 당시의 사건에 대한 사과를 표하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이에 에브라가 감사와 용서의 뜻을 전하며 에브라와 리버풀 구단 간의 감정은 누그러질 수 있었다. 이후 에브라는 수아레스도 용서했고 두 선수는 2015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직전 터널에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고.
  • 2012년 9월 23일 안필드에서 열린 양 팀 간의 2012-2013 시즌 리그 경기에서 힐스보로 참사 추모 행사가 경기 전에 열렸고 맨유의 레전드 보비 찰튼 경이 96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96송이의 장미를 리버풀에 전달하는 등 의미있는 장면이 이어졌다. 하지만 경기 이후 일부 리버풀 팬들이 뮌헨 비행기 참사를 조롱하는 행위를 했고 일부 맨유 팬들은 힐스보로 참사헤이젤 참사를 조롱하며 이 날 양 구단이 노력한 추모행사가 얼룩졌다.
  • 2013년 8월 30일 리버풀 공식 트위터가 맨유의 뮌헨 비행기 참사를 조롱해 파문이 일었다. 리버풀 공식 트위터가 맨유와의 주말 경기에서 틀 노래를 추천받는 도중, 뮌헨 참사를 조롱하는 챈트로 개사되어서 불려지는 노래들을 추천한 어떤 리버풀 팬에게 "혹시 우리 라커룸에 있는 아이팟을 훔쳐본거냐?"라는 충격적인 답변을 한 것. 이에 리버풀 공식 트위터를 향해 맨유 팬들은 물론이고 타 팀 팬들과 리버풀 팬들마저 분노에 찬 비난들을 쏟아냈다. 결국 리버풀 구단이 공식 성명을 통해 사과를 표했다.
  • 2016 3월 안필드에서의 UEFA 유로파 리그 16강 1차전을 앞두고 맨유 원정 서포터들 2,300여명이 M62 고속도로[43]를 통해 이동 중이었는데, 이 도로에 리버풀 서포터들이 'MANC[44] Bastards'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현수막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 의해 압수되었다.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2차전 경기를 앞두고는 같은 M62 고속도로에 '살인자들'이라는 문구와 함께 힐스버러 참사 날짜가 적힌 현수막이 맨유 서포터들에 의해 걸렸다. 또한 2차전 경기에서 맨유 서포터들은 힐스버러 참사를 조롱하는 챈트를 부른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경기에서 리버풀 팬들이 맨유 서포터즈 구역에 리버풀의 현수막을 몰래 넣어놓아 맨유 서포터들이 격분한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다. 리버풀 서포터들 또한 해당 경기에서 좌석을 파손하며 맨유 서포터들과 싸운 사실이 드러났다. 리버풀은 관중석에서 조명탄과 홍염을 터트린 것에 대해 43,577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았고, 맨유 또한 '불법적인 구호'를 외친 것에 대해 44,342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양 팀의 벌금 중 15,180 파운드는 2년간 유예되었다.
  • 2019년 9월 29일, 리버풀 우먼스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우먼스 간의 우먼스 슈퍼리그 경기에서 맨유 서포터들이 힐스보로 참사를 조롱하고 리버풀 지역 주민들을 비하하는 챈트를 부른 것에 대해 FA가 조사에 들어갔다.
  • 2022년 8월, 양 팀의 리그 경기를 앞두고 일부 맨유 서포터들이 올드 트래퍼드로 향하는 대형 버스를 리버풀 버스로 생각하고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하지만 테러를 당한 해당 버스는 실제로 맨유를 응원하는 아이들을 태웠던 버스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 2021년 5월 3일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양 팀 간의 2020-2021시즌 리그 34라운드가 맨유 서포터들의 경기장 점거 시위[45]로 인해 5월 14일로 연기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로 리버풀은 졸지에 5월 14일 맨유전, 17일 웨스트 브로미치전, 20일 번리전까지 6일 동안 3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결국 리버풀이 집중력을 발휘하며 세 경기를 다 잡아내긴 했으나, 치열한 4위 경쟁 중이었던 리버풀에겐 일정상의 불이익이었다. 2022-2023 시즌 초반 또 다시 맨유 서포터들이 시위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가 승점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이 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며 몰수패를 주장했다.
  • 2021년 5월 14일 양 팀 간의 순연된 2020-2021시즌 리그 34라운드에서 과격해진 맨유 서포터들을 피해서 맨유 선수들은 경기 6시간 전 부터 올드 트래퍼드에 도착해 대기했고, 리버풀 또한 팀 버스에 대한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민무늬의 가짜 팀 버스를 이용해 경기장에 도착하는 등의 소란이 벌어졌다.
  • 2022년 4월 19일 안필드에서 열린 2021-2022 시즌 양 팀 간의 경기에서 리버풀 서포터들이 출산 과정에서 아들을 잃은 맨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등번호 7번에 맞춰 전반 7분 다 함께 박수를 보내는 훈훈한 사건이 있었다. 이 날 안필드에서는 라이벌 의식을 잊고 리버풀 서포터들이 호날두를 위한 YNWA까지 경기 중에 불러주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이 날 맨유 서포터들 중 일부는 4-0으로 팀이 대패하자 또 다시 힐스보로 참사 조롱 구호를 외친 것으로 드러나 세간의 빈축을 샀다.
  • 2023년 3월 4일, 양 팀 간의 리그 경기를 앞 두고 양 구단의 감독인 위르겐 클롭에릭 텐 하흐가 '비극을 주제로 한 응원가'의 종식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양 팀의 일부 극성 서포터들은 매 노스트웨스트 더비마다 서로의 참사를 조롱하는 챈트와 구호들을 외쳐왔는데, 이에 대하여 양 팀의 감독들이 진심어린 애원과 더불어 건전한 라이벌리에 동참 해 주기를 호소한 것. 두 감독은 세계 축구에서 가장 위대한 라이벌 구도 중 하나인 이 경기를 옳은 방향의 열정으로 넘치게 해 달라고 팬들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해당 경기 맨유 원정 서포터즈석에서는 또 다시 힐스보로 참사 조롱 챈트가 나오며 양 구단과 양 감독의 노력을 무색케했다.
  • 2023년 3월 5일 안필드에서 열린 2022-2023 시즌 양 팀 간의 경기에서, 일부 리버풀 서포터들이 경기장 상공에 경비행기로 'FSG OUT'이라는 문구를 띄우며 리버풀의 구단주인 펜웨이 스포츠 그룹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8. 여담

  • 맨유의 첫 번째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명장 맷 버스비가 재밌게도 리버풀 선수 출신이다. 버스비는 주장까지 역임했을 정도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에 리버풀에서 핵심적인 선수였고 또 팬들의 사랑을 받던 선수였다. 전후에 버스비는 리버풀의 감독직을 맡고 싶어했으나 리버풀은 그에게 수석코치직만을 제안했고, 그 사이 맨유가 감독직을 제안해 버스비는 맨체스터에서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버스비가 맨유를 맡은 1960년대 리버풀과 맨유는 리그에서 상위권 경쟁을 하며 우승을 나눠 먹기도 했던 경쟁팀이었으나, 버스비는 선수 시절 리버풀 팬들의 사랑을 받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양 팀의 사이는 상당히 우호적인 편이었다.
  • 리버풀의 최전성기 붉은 제국을 이끌었던 밥 페이즐리맷 버스비와 리버풀에서 선수시절 함께 플레이했었다. 선수시절 페이즐리의 롤 모델이 버스비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버스비는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라 꼽히는 빌 샹클리와도 상당히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참고로 두 감독 모두 스코틀랜드 출신이며, 둘 다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 동료로 함께 뛰기도 했었다.[46]
  • 리버풀 역대 최고의 감독이라 불리는 빌 샹클리는 맨유의 레전드 중 한명인 데니스 로와 사제지간이다. 샹클리가 허더즈필드 타운의 감독으로 부임하던 시절, 로는 16세의 나이로 1군 데뷔를 앞둔 허더즈필드의 최대 유망주였는데 샹클리가 로를 1군 무대에 투입시키며 데뷔시켰다. 로의 데뷔 직전에 샹클리는 허더즈필드의 유스 팀 감독이기도 했으니 직접적으로 로를 발굴한 셈. 하지만 로는 후에 리버풀과 경쟁을 펼치는 맨유로 이적했고, 샹클리는 로를 볼 때마다 "넌 올드 트래퍼드가 아닌, 안필드로 왔어야 했다"고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 1964년 필 치스날의 맨유에서 리버풀로의 이적 이후 현재까지 두 구단 사이에서 직접적인 이적은 단 한건도 없었다. 2007년 가브리엘 에인세가 공식적으로 리버풀로의 이적을 요청했으나, 팬들의 격렬한 반대로 인해 무산되고 결국 에인세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폴 인스마이클 오언처럼 다른 팀을 거쳐서 양 구단 사이를 모두 오간 선수는 존재했다. 그리고 당연히 해당 선수들은 원 소속의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 리버풀의 전 주장 스티븐 제라드는 2011년 10월 15일, 맨유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프리킥 골을 터트린 뒤 엠블럼에 입을 맞추곤 손가락 다섯개를 펼쳐서 보이는 세레모니를 선보였다. 이 세레모니는 리버풀의 챔스 우승 횟수인 5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리버풀 선수 혹은 리버풀 출신 선수들이 맨유와의 경기에서 득점했을 때, 리버풀의 빅이어 갯수로 도발하기 위해 종종 사용하는 것이다.[47] 이에 질세라 맨유 선수들도 노스웨스트 더비에서 득점하면 클럽 엠블럼을 가리키는 세레머니를 자주 선보였다. 가장 유명한 것이 2006년 게리 네빌의 도발적인 세레머니. 리버풀 서포터즈석으로 달려가며 했던 해당 세레머니로 네빌은 2경기 출장 징계를 받기도 했다.
  • 루니와는 다르게 제임스 밀너같은 경우는 선수생활 동안 안티 맨유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선 프로 선수로서의 첫 경력을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가졌기 때문에 로즈 라이벌리를 경험해 봤고, 리즈 유나이티드 이후 뉴캐슬과 아스톤 빌라를 거친 뒤 맨체스터 시티로 가 맨체스터 더비 또한 펼쳤다. 이후 맨시티에서 리버풀로 이적하며 노스웨스트 더비까지 치르게 되어 맨유의 라이벌 클럽에서 모두 뛴 경험을 갖게 되었다.
  • 대한민국 한정으로 과거 잉글랜드 리그에 무지했던 스포츠 기자들이 멀쩡한 더비명을 놔두고 레즈 더비라고 불렀다. 최근에는 조금씩 본래의 더비 이름인 노스웨스트 더비로 정정되는 추세이다. 과거 해외리그에 무지했던 박문성[48] 같은 언론인들이 양팀의 홈 저지 색깔이 빨간색인 데서 착안해 종종 쓰다가 정착된 표현으로 추정, 그러니까 콩글리시다. 시간이 지나면서 리버풀–맨유 간의 경기를 북서부 더비라고 불러달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는지 맨유–아스날 간의 경기를 레즈 더비로 밀고 있다.[49][50]
  • 은퇴한 스티븐 제라드의 말로는 현역 시절 맨유와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 맨유의 선수들과 입장 터널 안에 함께 서있으면, 혐오의 감정마저 끓어올랐다고 한다. 함께 잉글랜드 대표로 호흡을 맞췄던 데이비드 베컴, 개리 네빌, 리오 퍼디난드, 웨인 루니와는 대표팀으로 모였을 때에 한해서 그냥 서로 아무 문제 없이 지내는 척을 했을 뿐이라고... 그래서 성적이... 퍼디난드 역시 은퇴 이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쪽은 대표팀으로 소집되는게 싫을 정도였다는 모양.[51][52] 결국 양팀의 레전드인 제라드와 퍼디난드, 네빌은 은퇴한 이후에야 교우관계를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53]
  • 2020-21 시즌 PL 4R에서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더비 명문임을 자부하는 양 팀이 같은 날에 대패하는 굴욕을 맛봤다. 맨유는 토트넘 홋스퍼 FC에 1:6[54], 리버풀은 아스톤 빌라 FC에 2:7로 패했다.[55]
  • 양 팀의 원클럽맨이자 전 주장단 출신인 제이미 캐러거게리 네빌이 영국의 스카이 스포츠 방송사 프리미어리그 중계 패널로 함께 활약하고 있다. 치열한 라이벌리를 보여온 두 팀의 레전드들 답게 종종 투닥거리면서도 현역 시절 보여줬던 경기장 내에서의 사나운 모습보다는 친근하게 서로를 놀리는 케미를 보여주면서[56] 캐진아네대관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중.
  • 양 팀의 구단주들이 현재 모두 미국 국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두 구단주 모두 팀에 투자를 안하기로 유명하다.[57] 이에 팀의 고혈을 빨아먹기로 유명한 맨유의 글레이저 가문은 물론이고, 턱없는 자금 지원으로 비난받는 리버풀의 펜웨이 스포츠 그룹도 양 팀 서포터들의 원성을 사는 편. 재밌게도 두 미국 구단주들 모두 2022-2023 시즌에 팀 매각 의사를 나란히 밝히기도 했다.
  • 양 팀은 2021년 축구계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슈퍼 리그 창설을 주도하며 가장 적극적으로 슈퍼 리그의 도입을 찬성한 팀들이기도 했다. 이는 양 팀의 구단주격인 조엘 글레이저존 헨리에 의한 것으로, 두 구단주들은 나란히 슈퍼 리그 초대 부회장직에 앉기도 하여 논란을 부추겼다. 새로운 리그 도입의 불발로 이어진 이 사건은 양 팀 서포터즈들의 격렬한 반발을 일으켰고 결국 리버풀의 존 헨리는 서포터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 공교롭게도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최고 원로인 케니 달글리시와 맨유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자 최고 원로인 알렉스 퍼거슨 모두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8.1. 양 팀에서 모두 뛰었던 선수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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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 밖에서 통용되는 단어이다. 실제로 잉글랜드의 스포츠 기자인 벤 메이블리는 자신이 영국에 있을 때는 노스웨스트 더비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고, 간혹 뉴스 등에서 이 명칭이 언급되는걸 보면 주로 영국보다는 영국 외의 언론에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영국 현지에서는 무슨 더비라기 보단 그냥 리버풀 vs 맨유 혹은 맨유 vs 리버풀라고 인식한다. 실제로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리버풀과 맨유의 경쟁관계를 설명하는 기사에 ‘노스웨스트 더비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로만 이 단어가 언급되는 정도.[2] 리버풀이 런던을 먹여살린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3] 1830년에 건설된 영국 최초의 도시간 철도 노선. 이 노선은 세계 최초로 전 구간에 기관차를 이용한 여객 및 화물 운송을 수행, 근대적인 철도 운송 시스템의 시발점이 되었다.[4] 그 유명한 타이타닉호도 리버풀(리버풀은 모항)에서 출항했다.[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엠블럼에 범선은 이 맨체스터 운하를 의미한다.[6] 당시 이름은 뉴턴 히스[7] 리버풀 팬들이 대처를 극도로 증오하는건 축구팬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한 사실이고 맨유도 대처 시대에 크게 고통받은 전력이 있다. 맨체스터가 산업혁명때 엄청 성장했다가 전후 탈산업화, 대처리즘으로 크게 망한 북잉글랜드 산업 도시이기 때문. 대처, 남부 잉글랜드 상류층 혐오 성향은 리버풀, 맨체스터 뿐만 아니라 셰필드, 리즈, 요크, 더럼, 브래드포드, 뉴캐슬, 잉글랜드 북부 지역은 보편적으로 공유한다고 봐도된다.[8] 두 도시 모두 상당한 좌파 성향을 가지고 있기로 유명하다.[9] 70년대와 80년대 영국의 많은 서브 컬쳐들이 두 도시를 기점으로 발전하기도 했다.[10] 대중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위대한 밴드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리버풀의 비틀즈와 맨체스터의 오아시스(밴드) 여기는 맨시티다[11] 최다 우승[12] 최다 우승[13] 최다 우승[14] 잉글랜드 클럽 중 최다 우승[15] 잉글랜드 클럽 중 최다 우승[16] 잉글랜드 클럽 중 최다 우승[17] 최상위 리그 대회 및 현존 모든 최상위 토너먼트 대회.[18] FA컵은 아스날이 14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 팀이다.[19] 국외 대회에선 잉글랜드 구단 중 최다 우승팀[20] FA컵, 커뮤니티 실드 우승 순위에서 리버풀이 3위인 것과, EFL컵 및 잉글랜드 구단 중 유로파 리그UEFA 슈퍼컵 우승 순위에서 맨유가 3위인 것을 제외하면 모든 대회의 우승 횟수 1위, 2위를 양 구단이 독식 중이다.[21] 인터컨티넨탈 컵, UEFA 컵위너스컵, 풋볼 리그 슈퍼컵 등[22] 공동우승이 존재했던 커뮤니티 실드를 제외한 메이저 트로피들만 계산한다면 리버풀이 51회로 1위 맨유가 45회로 2위이다.[23] 빌 샹클리에서 케니 달글리시까지 이어지는 기간을 붉은 제국이라 부르는데, 이 29시즌 동안 리그만 14회 우승했다.[24]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27년 동안 13회의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25] 프리미어 리그, 퍼스트 디비전, 세컨드 디비전[26] 당시의 클럽 명은 뉴턴 히스[27] 세컨 디비전[28] 2023년 3월 5일 2022-2023 시즌 리그 홈 경기에서 리버풀이 맨유를 7-0으로 이기면서 46,530일만에 이 기록이 갱신되었다.[29] 올드 트래퍼드가 지어지기 이전에 쓰던 맨유의 홈 구장[30] 당시 이름은 뉴턴 히스[31] 당시 2위는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직행하나 3위는 3차예선을 치러야해서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32] 종전 승리는 2016년 3월 유로파 리그 16강 1차전 경기.[33] 종전 승리는 2013-2014 시즌 후반기 맨유 원정 0-3 경기.[34] 1925년 9월 19일 리버풀이 5-0으로 이겼던 안필드에서의 리그 경기.[35] 1936년 11월 21일 리그 경기 2-5 패배.[36] 심지어 저 경고 6장 중 2장은 심판 재량에 따라선 바로 퇴장 조치도 가능할만큼 심각한 반칙이었다. 특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커티스 존스를 상대로 무려 3번이나 배에 붙은 공을 발길질 해대던 장면은 현지에서조차 "호날두라는 이유만으로 경고로 끝났지, 명백히 퇴장감이었다."라며 슈퍼스타콜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37] 경기 도중 완전히 썩은 표정의 알렉스 퍼거슨 경과 엄청나게 기뻐하는 케니 달글리시 경의 모습이 번갈아 비춰지기도 했다.[38] 2경기 합계 점수 9:0으로, 맨유가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팀에게 2경기 합계 9점차로 패배한 것은 1892-93 시즌 선덜랜드 전 이후로 129년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단일시즌 노스웨스트 더비 기준으로는 역대 최다 점수차인 것은 당연하며, 현지 맨유 팬덤 사이에서는 30라운드 안필드 원정에서 최대 숙적인 리버풀을 상대로 승리하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는 맨유 선수들의 모습에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게 왜 문제냐면, 퍼거슨의 말년에 맨유가 여전히 우승권을 논하고, 리버풀이 7위를 전전하고 온갖 조롱을 받던 시기에도 노스웨스트 더비 만큼은 맨유에게 항상 쉬운 경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티븐 제라드라는 위대한 주장의 지휘 아래 전력에서 몇 수는 아래인 선수들이 "맨유에게 질 수는 없다!"라는 의지를 보였던 것을 봤던 맨유 팬들이, 10년이 지나 두 팀의 처지가 바뀐 상황에서는 맨유 선수단이 그러한 의지, 에너지 레벨이 없다시피 하다는 것에 대해서 팬덤은 충격과 분노를 참기 쉽지 않을 것이다.[39] 1931년 2부 리그 당시 울버햄튼 원정 0-7 패배.[40] 경기 도중 완전히 썩은 표정의 알렉스 퍼거슨 경과 엄청나게 기뻐하는 케니 달글리시 경의 모습이 또 다시 비춰진 것은 덤.[41] 남미에서는 종종 흑인 선수들에게 해당 단어가 모욕적이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영국에서는 명백한 인종 비하 발언으로 통한다. 수아레스도 사건 조사 당시 차별적인 의도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긴 했다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42] 방송사 스카이스포츠의 펀딧으로 나가서 서로 만났다.[43] 리버풀맨체스터 사이에 위치한 고속도로로, 양 팀의 원정팬들이 서로의 경기장에 원정길을 가는 주요 도로다.[44] 맨체스터 출신을 일컫는 말[45] 슈퍼리그 창설 주도 등 구단주 규탄 시위였다.[46] 여담으로 샹클리가 허더즈필드 타운 감독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리버풀의 회장인 T.V. 윌리엄스한테 "이 나라 최고 명문 감독에 관심 없습니까?"라는 영입 제의를 받았을 당시, "뭐요? 혹시 버스비가 짐 싸고 있소?"라고 되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47] 로비 파울러가 사용한 뒤로 유명해졌으며, 제라드를 비롯하여 페르난도 토레스, 해리 윌슨 등도 사용한 바 있다.[48] 심지어 붉은 장미 전쟁 더비(...)라는 정체불명의 더비명을 창안하기까지 했다.[49] 앞서 언급했듯 대한민국 한정으로 불리며 현지에서는 리버풀 FC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간의 경기를 북서부 더비(North-West Derby) 또는 고전 더비(The Classic)라 부른다. 스페인의 엘 클라시코, 독일의 데어 클라시커, 프랑스의 르 클라시크 등등과 의미가 일맥상통한다.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아스날 FC 간의 경기는 그냥 아스날–맨유 라이벌리(Arsenal F.C.–Manchester United F.C. rivalry)라 부른다.[5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아스날 FC 사이에는 흔히 더비로 불리는 라이벌리의 명칭 자체가 없는데, 한국 팬들의 인식과는 다르게 두 팀을 따로 명칭을 붙이면서까지 라이벌로 묶지 않으며, 묶는다 하더라도 근래에 들어서야 만들어진 관계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두 팀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보통 두 팀이 리그 투톱 체제로 있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이나 빅 4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2000년대 중반을 시작점으로 본다.[51] 이는 제이미 캐러거도 마찬가지. 다만 은퇴 이후에는 맨유의 레전드 게리 네빌과 절친이 되었다.[52] '대표팀에 가면 리버풀, 첼시, 아스널의 녀석들이 있었으니까.'라고 한다. 넌 콥이었다며 리오야[53] 이래서인지 이들의 현역 시절 잉글랜드 국대는 네임밸류와 반대로 팀워크가 나쁜 것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뿌리깊히 박힌 라이벌 의식 때문에 퍼디난드나 제라드의 사례가 발생했다. 오히려 이들이 은퇴한 후인 2010년대 후반 들어 프리미어리그 강팀들이 외국인 선수를 많이 기용하느라 잉글랜드 선수의 풀이 여러 팀으로 분산된 덕에 프리미어리그 중위권 이상의 모든 구단(!)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가 배출될 정도가 되자 특정 소속팀 기반의 파벌 내지 끼리끼리 문화가 희석된 덕에 국가대표팀의 조직력이 강해져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선 4강까지 올라갔고 유로 2020에서는 준우승까지 했다. 항간에는 잉글랜드 선수들이 유럽 타국에 진출하지 않는 것을 두고 우물안 개구리 신세라고 조소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 점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2010년대 후반부터의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이나 유럽 클럽대항전에서의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실적을 보면 우물안 개구리 논란보다는 결국 조직력 문제가 컸던 것.[54] 식스 앤 더 시티가 재현된 경기.[55] 하마타면 이 경기처럼 될 뻔 했다.[56] 서로의 팀이 지거나 하면 어김없이 놀려댄다.#[57] 축구 클럽의 재무 자료를 분석하는 스위스 램블지에 의하면, 2017년~2021년 사이 PL 클럽들의 구단주 자본 투입 규모 순위에서 리버풀과 맨유가 나란히 19위, 20위를 차지한 바 있다. #[58] 두 팀 사이에서 직접 이적한 첫 번째 선수. 1912년 8월에 리버풀에서 맨유로 이적했다.[59] 1915년 영국 축구 승부조작 사건의 주동자. 맨유에서의 선수생활로 양 팀 모두에 인맥이 있었으며, 이에 양 팀 선수들간의 승부조작을 주도했다.[60] 1915년 영국 축구 승부조작 사건의 범인 중 하나.[61] 두 팀 사이에서 직접 이적한 마지막 선수이다. 1964년에 맨유에서 리버풀로 2만 5천 파운드의 이적료로 이적했다.[62] 맨유에서는 단 한 경기만을 소화했으나, 이후 밴쿠버 화이트캡스 FC뉴캐슬 유나이티드를 거친 뒤 리버풀에서 4시즌을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엔 곧 바로 리버풀의 지역 라이벌인 에버튼 FC로 이적한 매우 특이한 커리어를 보유했다.[63] 맨유에서 4시즌 가량을 핵심 선수로 활약했으나 인터 밀란을 거친 뒤 리버풀로 이적했다. 맨유와 리버풀의 라이벌리가 생긴 이후 이적하였으므로 당연히 충격적인 이적이었으며 맨유 팬들에게 배신자 취급을 받는다.[64] 리버풀 로컬 유스 출신으로 2000년대 초반 리버풀을 상징하는 선수였으나 이후 레알 마드리드뉴캐슬 유나이티드를 거친 뒤 맨유로 충격적인 이적을 감행했다. 이에 리버풀 팬들에게는 유다라고 불릴 정도로 최악의 선수 취급을 받는다. 현재까지는 리버풀과 맨유에서 모두 선수생활을 했던 마지막 선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