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11:43:50

대종상/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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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수상자, 수상작 논란3. 운영상 문제4. 연도별 논란

1. 개요

'대종상영화제'의 문제점을 기술한 문서.

2. 수상자, 수상작 논란

대부분 시상식이 수상자, 수상작에 논란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특히, 대종상은 유난히 타 영화상에 비해 훨씬 정도가 지나쳐서 그 논란들로 인해 권위가 바닥인 상태다. 과거에는 유일무이한 시상식으로서 권위가 높았지만 그 와중에 비리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예 돈 봉투 건네 주고 상을 '구입'한다는 말도 많았었고 지금은 흐지부지되어 거론되지 않으나, 1960~70년대 영화계 인사들은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였다.

더불어 정부에서 주도하는 관제행사라서 높으신 분들의 눈치를 보는 어용 시상식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사회비판적 영화는 절대 금기였으며, 1970년대 후반까지는 정권의 입맛에 맞춰서 사회계도성을 매우 중요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작품상, 감독상 다음으로 (체제선전용) 반공영화상이 주요부문으로 여겨졌다. 1980년대 이후로는 반공영화상도 폐지되고 노골적인 체제홍보는 줄었지만, 사회비판 영화는 여전히 금기였다.[1]

더구나 당시에는 막대한 이권이 있었던 해외 영화 수입권을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과 우수 작품상 수상작을 내놓은 영화사에 수여했다. 같은 권리가 그 해 최고의 반공영화를 제작한 영화사에도 돌아갔다. 반공영화상이 주요부문이 되고 제작자들에 의해서 반공영화가 미친 듯이 찍혀 나온 이유가 있다. 이 외화수입권은 당시 돈 기준으로 억 단위로 거래되고 있었다. 때문에 이 상을 타는 것은 곧 수억을 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영화사들은 대종상 작품상을 타기 위한 영화를 찍었다. 당연히 그 영화들은 심사위원들의 입맛에 맞아야 했고, 무엇보다 정부의 입맛에 맞아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대종상만 노린 영화는 작품상을 타면 그 역할을 다한 것이었지만, 만일 못 타면 그대로 영화사 창고로 직행하는 사례도 흔했다. 이 외화 수입 자유화는 1984년에야 이뤄지는데, 반공영화상이 이 때 폐지되는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대종상은 본질적으로 최고의 시상식인 동시에 최악의 시상식일 수밖에 없었다.

작품성이 있으나 사회 부조리를 다룬다든지 높으신 분들을 까는 내용이 있다면 설령 그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더라도 일절 후보에도 못 오르던 것이 흔한 일이었다. 10월 유신 시대에는 아예 정부 주도로 수상을 통제했고, 친정부적이고 반공적인 영화에 '우수반공 영화상'을 따로 개설해서 시상할 정도였으니 사실상 어용 시상식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0년대까지만 해도 문제점을 찾아본다면 엄청나게 쏟아진다. 심지어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난 후인 1990년부터 나온 문제점들만 봐도 이렇다. 이러니 그 이전에는 얼마나 많을지...
  • 1981년
    • 신인여우상을 두고 논란이 있다. 당시 하늘나라 엄마별이명정옥이 수상했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소나기》의 소녀 역으로 잘 알려진 아역배우 출신 조윤숙(민순 역)이었다. 수상자인 명정옥의 배역은 이름조차 없이 '민순의 친구들'로 돼 있는 단역으로 출연 분량이 3분도 채 되지 않는다. 혹시 짧지만 강렬한(?) 연기를 선보여 강한 인상을 남길 수도 있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냥 별거 없는 평범한 단역이다. 당시 시나리오 각색과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김영한 감독의 회고에 따르면 조윤숙은 신인상을 기대하고 시상식에 참가, 하늘나라 엄마별이에서 열연한 주인공이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하여 벌떡 일어나는 순간 엉뚱하게 단역의 이름이 호명됐고, 이에 감독과 조감독이 놀라 주인공이 바뀌었다고 집행부에 항의했지만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 이미 불려진 이름을 바꿀 수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듣고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 그리고 이게 계기가 되어 조윤숙은 물론이고 수상자인 명정옥과 감독 이영우도 얼마 뒤 연예계를 떠나게 된다.
  • 1990년
    • 당시, 영화계도 예상을 했지만 정지영 감독이 연출한 남부군은 단 1개도 수상하지 못했다. 빨치산을 다뤘다고 논란이 거셌던 이 영화는 당시 흥행 대박과 같이 평도 상당히 좋아서 정작 조선일보가 주최한 청룡영화상[2]에선 감독상(정지영), 남우주연상(안성기), 남우조연상(최민수), 신인여우상(최진실)을 받았다. 이 때부터 청룡영화상은 대종상에게 빅엿을 선사하기 시작한다.
  • 1991년
    • 미군에 의하여 성폭행을 당한 여인이 되려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다가 결국 생계를 위해 양공주로 전락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가 미군을 깐다고 해서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논란이 컸었다. 겨우 대종상 의상상을 수상했을 뿐이었고, 이에 대하여 당시 영화지 로드쇼에서 취재하니 대종상 관계자들이 윗사람 눈치가 보이니 할 수 없다는 답변을 털어놓기도 했다. 영화가 서울관객 17만을 기록하면서 흥행도 대성공하고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각본상 및 여우주연상(이혜숙)을 받고 원작인 안정효가 쓴 소설이 미국에서도 번역되어 나와 미군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점에 대하여 작은 화제를 낳았던 거와 대조적이다.
  • 1994년
    • 대종상의 권위가 본격적으로 곤두박질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94년부터였다. 당시 흥행스코어에서 참패한 영화 '두 여자 이야기'가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을 차지한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도 영화 개봉하기 전(1994년 4월 23일)에 수상(1994년 4월 3일)하여 한동안 작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막상 개봉한 이후 좋은 영화였다는 평이 많아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밑에서 언급한 '애니깽'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작품 또한 봉건주의 제도 하에서 두 여인의 굴곡진 삶을 잘 그려낸 수작이다. 흥행성과 해외 영화제에서의 수상이 반드시 국내 영화 시상식 결과에 영향을 줄 필요도 없고, 그러한 전례나 후례는 많은 나라에서도 존재한다. 이 작품을 연출한 이정국 감독은 데뷔작 '부활의 노래'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을 세상에 알리지만 그 결과 한동안 영화연출 제의가 끊기기도 했었다고...한편, 함께 후보에 오른 영화는 안성기, 박중훈 콤비의 연기가 돋보였던 투캅스와 그 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한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 등등. 그러나 '화엄경'은 감독상을 받는데에 그쳤고,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빨갱이 영화'라고 까이기만 했다. 투캅스는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당시 서편제에 이어서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라는 엄청난 초대박을 거둬들이고[3] 화엄경은 베를린 영화제 알프레트 바우어상을 수상하고,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칸 영화제에 출품되고 서울관객 15만으로 그럭저럭 흥행도 하던 것과 달리 두 여자 이야기는 흥행도 서울관객 2만으로 참패하고 지금은 아주 듣보잡이 되었다. 그나마 감독인 이정국은 나중에 최진실 주연인 영화 편지로 서울관객 72만이라는 대박을 거두긴 했다. 하지만 2년 후, 역대급 병맛 시상식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 1996년
    • 최악의 대종상 시상식 1. 1996년 제 34회 시상은 지금까지 진행된 대한민국의 영화 시상식 중에서도 넘사벽급으로 손꼽히며, 2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많은 대중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는 시상식이다. 다른 말로는 영화 제목을 본떠서 애니깽 사태라고 부르기도 한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개봉은 커녕 아직 편집도 안끝난 미완성작을[4] 억지로 올려 최우수 작품상을 주었다. 자세한 것은 1996 대종상 시상식 논란 문서를 참조하자. 이 해 대종상 예심에서 탈락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본선에서 찬밥대접을 받은 '꽃잎'은 이후의 다른 영화상 시상식에서 주요부분을 수상했다.
  • 2001년
    • 흥행 최고를 기록한 친구가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하나도 수상하지 못했던 반면에[5], 관객에게 외면을 당하고 평가도 좋지 않았던 영화 "하루"에 감독상 여우주연상 포함 4개를 줬다. 특히, 고소영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역대 최악의 수상으로 남아있을 정도다. 그나마 공동경비구역 JSA에 작품상을 줘서 다행이다라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 2003년
    • 오! 해피데이》로 영화에 막 데뷔한 장나라가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 후보에 모두 올라 논란이 되었다. 영화의 작품성이나 장나라의 연기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들 정도로 좋았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 그 자리에 《질투는 나의 힘》의 배종옥이 들어갔어야 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살인의 추억김상경, 지구를 지켜라!신하균, 클래식조승우 등이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도 많은 이들이 의아해 했던게 사실이다. 기사
  • 2004년
    • 영화·연극·방송을 포함해 1년 이내 경력자'가 후보자격이 되는 신인 배우상을 출연작이 무려 19편이나 되는 공형진과 6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한 김래원 등이 올라 논란을 일으켰으며 김래원의 수상으로 더욱 논란이 되었다. 이로써 김래원은 2000년에 청룡영화상에서 《청춘》으로 신인남우상을 수상한 이후로 무려 4년의 텀을 두고 대한민국 3대 영화 시상식에서 이례적으로 또 신인상을 수상하게 됐다.
  • 2007년
    • 《태풍태양》으로 이미 전년도에 신인여우상 후보에 오른 바 있는 조이진이 《국경의 남쪽》으로 또 한 번 신인여우상 후보에 올랐고 결국 수상에 성공했다. 결국 신인상도 재수가 되나?라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생애 한 번뿐인 신인상 타기 쉬운 대종상 다만 조이진의 연기가 안 좋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단지 신인상 자격이 논란이 되었을 뿐... 오히려 영화 자체는 조이진의 커리어 하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현재까지 치열교정을 했다는 단신뉴스 외에 소식이 없다
  • 2009년
    • 내 사랑 내 곁에하지원이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는데, 개봉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하늘과 바다>의 장나라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논란이 되었다. 기사에서는 미개봉작이라고 하고 있지만 하늘과 바다가 대종상 시작하기 전에 개봉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출품된 것이 맞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대종상 1주일전에 개봉하였으며 제한적 개봉이라서 미개봉작이라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하지만, 더 빨리 개봉했다하더라도 작품성 때문에 역시 논란은 피하기는 어려웠다. 반면, 같은 해에 시작된 청룡영화상이를 지켜보고 있기라도 했던 것 마냥 하지원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기며 대종상에게 빅엿을 선사했다. 작품상에서도 논란이 있었는데 신기전이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를 누르고 수상했다. 마더야 작품성에서 호평을 받았고 해운대는 작품성에 비판이 있을 망정 천만관객을 넘긴 영화임에도 그 둘을 모두 제치고 수상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 2011년
    • 써니심은경이 사정상 불참의사를 전하자 여우주연상 후보에서 제외시키면서 논란이 됐다.[6] 그 대신 영화 로맨틱 헤븐으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린 후 상을 줬는데 심은경은 '상을 받아도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담담하다.'라는 글을 올렸다. 거기다가 심은경을 대신해서 여우조연상을 받고 수상소감까지 말해야 했던 사람은 써니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천우희. 다시 말해, 경쟁자 배우가 대리수상을 한 것이었으며, 정작 천우희는 수상작인 《로맨틱 헤븐》에 출연한 것도 아니었기에 《써니》 인연만으로 어거지로 말도 안되게 대신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받은 셈이다.
  • 2012년
    • 일명 광해영화제. 2012년엔 광해, 왕이 된 남자 한 작품에 무려 15개나 상을 몰아주는 바람에, 수상하는 사람들이 미안해 하는 시상식[7]을 벌이며,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에 빛나는 피에타의 감독 김기덕이 빡쳐서 시상식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면서 안 그래도 박살난 권위가 가루가 됐다. 그리고, 청룡영화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피에타에 최우수작품상을 수여했다.
  • 2014년
    • 국내외 다수의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극찬을 받던 ‘한공주’의 천우희, 아역시절부터 쌓아온 연기력으로 흥행까지 성공한 ‘수상한 그녀’의 ‘심은경’이 여우주연상 유력 수상자로 지목되었으나 결과는 후보[8] 중 가장 낮은 가능성을 보였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손예진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후보 중 가장 흥행한 영화에 출연하여 과거 대종상에서 흥행빨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욕을 먹었던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과 비교되며 ‘대종상다운 시상’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두 배우는 원톱으로 극을 이끌어가기라도 했다. ‘해적’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여럿인 영화인데다가 극 중 손예진의 어색한 사극, 액션, 코미디 연기가 방해가 되었다는 평이 많았다.
    • 독립영화를 비롯한 저예산 영화를 아예 빈 손으로 내보내면서 비난을 받았다. 청룡영화상은 이때다 싶어 한공주에는 신인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도희야에게는 신인여우상을 안겨줬다.
  • 2016년
    • 수상결과는 예전에 비해 많이 공정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비상식적인 수상결과를 발표해서 대충상이란 비아냥을 받던 것을 의식했던 것인지, 최초로 내부 심사위원보다 영입 심사위원 수를 늘리고 심사제도를 개선해서인지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던 '밀정'의 엄태구와 '곡성'의 김환희, '4등'의 정가람의 수상에 축하를 보냈다. 다만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 동주아가씨가 후보작에서 빠진 것으로 인한 결과라는 반론도 있다.
  • 2017년
    • 신인상 부문의 후보선정 기준을 두고 꾸준한 논란이 있는데 시상 전 단 한번의 기회라고 의미를 부여하던 MC들의 멘트와 달리 바로 전년도에 후보에 올랐던 배우들이 또 후보에 오르고, 2015년 후보 중 한명인 박서준이 수상까지 했다. 생애 한번뿐인 신인상 타기 쉬운 대종상 2

3. 운영상 문제

  • 1998년 - 스폰서 부재로 인한 일시폐지
    1962년 출범된 대종상은 그동안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인총연합회, 영화진흥공사, 映協 등으로 주관단체가 바뀌어 오다가 1992년부터 정부 지원이 중단되었다. 이후 삼성문화재단의 협찬으로 운영이 되어 왔는데 상기에 서술한 1996년 애니깽 사태로 인하여 삼성문화재단이 협찬을 취소해 버리게 되었다. 우여곡절끝에 쌍방울이 후원에 나서면서 1997년 제35회 시상식은 쌍방울 계열사인 무주리조트에서 열렸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로 쌍방울이 부도가 나면서 대종상은 다시 후원사를 잃었고, 결국 다른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1998년 시상식은 무산되었다.[9]
  • 2002년
    당해에는 TV로 생중계되지 못하고,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었다. 2002년 5월 26일에 개최되었는데, 이날 지상파 3사 모두 2002 월드컵 한국-프랑스 평가전을 생중계했기 때문. MC는 MBC 출발비디오여행의 진행자 아나운서 홍은철이 진행했는데 진행은 훌륭했으나 영화인협회가 단독 주최한 이번 대종상 시상식에선 불참자가 많아 시상식 대부분이 대리수상으로 진행됐다.[10]
  • 2013년 - 야구에 밀린 50주년 기념 대종상
    50주년 대종상 시상식은 2013년 한국시리즈 7차전 중계 때문에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으로 방영되었고 그 영향으로 1부가 7.0%, 2부가 6.2% 평균 시청률은 6.6%을 기록하여 49회 시상식 평균 시청률 7.3% 보다 0.6%p 감소했다. 관련기사 KBO 리그 포스트시즌은 KBS2, MBC, SBS 등 지상파에서 한 경기씩을 번갈아 가며 중계하는데,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갈 시 7차전을 KBS 2TV에서 중계하는 것으로 확정이 된 상황이라 그 중계를 취소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KBS 측에서는 대종상 주최측에 "행사일 변경이 가능하다"는 사전 고지를 했는데 대종상 측에서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갈 줄 몰랐다"고 변명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외에도 베를린이 촬영상, 편집상, 조명상, 의상상, 미술상 5개 중에서 조명상과 촬영상 2개 부문을 수상했지만 수상자가 참석하지 않았고 작품상과 기획상 후보 명단이 미발표되었다.[11]권위가 없음을 인정하는 비공개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 2015년
    돈으로 인한 최악의 대종상 시상식 2. 애니깽 사태 이후 역대 최악의 대종상. 자세한 내용은 2015 대종상 시상식 논란 문서를 참조하자. 참고로 남녀주연상 후보 전원이 불참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2015년에는 아예 인기상 투표에서 투표권을 유료로 팔기까지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창조경제 투표법 인기투표에는 투표 한 표당 200포인트가 차감되는데 포인트를 얻으려면 강제로 각종 어플을 깔던지, 돈으로 포인트를 사야 한다.
  • 2016년
    기존 중계 방송사이던 KBS[12]가 생중계를 포기함으로써 대종상 시상식은 중단될 것으로 보였으나, 종합편성채널 채널A에서 생중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이 기사가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채널A 측에서 "(중계가) 확정된 건 없지만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며 또다시 난항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 결국 우여곡절 끝에 2016년 12월 27일 iHQ 계열의 케이블채널(!) K STAR코미디TV에서 동시 생중계되었다.[13]

    시상식을 2주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우여곡절 끝에 개최를 선언했는데, 시작전부터 여러모로 삐걱댔다. 장소대관도 여의치 않아 결국 세종대 컨벤션센터에서 열리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추락한 대종상의 권위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 했다. 시상식의 진행은 김병찬, 공서영, 이태임이 맡았다. 강행한 생중계도 혼란의 연속이었다. 현장을 찾은 팬들의 개인적인 대화가 방송에 계속 노출되는가 하면, 카메라는 잡을 곳을 못찾아 우왕좌왕하다 풀샷으로 넘어가기 일쑤였고, 행사장 내부 역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 작년에 문제가 되었던 후보자 참석 문제도 고스란히 답습되었다. 당연히 2주도 남지 않은 일정에 제대로 참석할 수 있는 영화배우도 없는 듯. # 시상식 하루전에는 아직 결정 하지 않은 이병헌손예진을 제외한 나머지 주연 후보자들이 불참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당일에 손예진도 불참하기로 결정하면서 최종적으로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곡성'의 김환희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내부자들'의 이병헌을 제외한 신인남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모든 수상자가 불참하게 되었다. 그밖의 대부분의 기술상 수상자들도 불참하여 시상식은 대리수상자들의 향연이었다. 거의 유일하게 참석한 스타급 배우인 이병헌도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뼈 있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대종상을 처음 받았던 게 아마도 20년 전 신인상이 아니었나 싶다.[14] 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꼭 그 무대 위에 서고 싶을 정도로 명예로운 시상식이었기 때문에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으로 참여했었다. 오늘 시상식에 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상을 받는다는 기쁜 마음보다 무거운 심정이었다. 대종상은 그동안 말도 많고 문제도 많았다. 여전히 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은 느낌이 있는 건 나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53년이란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이전처럼 명예를 되찾는 건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을 거라 본다. 하지만 53년이란 긴 시간 명맥을 유지하고 명예로웠던 시상식이 불명예스럽게 이대로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어떤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 방법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변화라는 건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 된다기보다는 모두가 한마음이 돼서 조금씩 고민하고 노력하는 순간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언젠가 후배들이 내가 20년 전 이 시상식에 오면서 설레고 영광스러웠던 마음과 똑같은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나도 그땐 태어나지 않아서 모르지만 50~60년 전 대선배들이 큰 뜻을 갖고 대종상영화제를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후배들이 더 고민하고 노력해서 지켜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 2017년
    TV조선 유튜브 온라인 생중계 중 참석자인 최희서와 이준익을 비하하는 발언과 선미의 축하 공연 중 스태프로 추정되는 사람이 ‘커트’를 외치는 목소리가 동시에 방송됐다. 신인여우상 수상자인 최희서의 소감이 길어지자 "그만 좀 해라, 돌겠다."라는 발언이, 이준익 감독을 비춘 장면에선 "저 빡빡이 아니냐?"라는 발언이 나왔다. 중계 방송사인 TV조선에서는 유튜브의 대종상 시상식 영상을 삭제한 상태라서 검증이 힘든 상황이었으나 해당부분만 편집된 영상이 일반 유저에 의해 업로드되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직접 확인해보자. 이에 대해 TV조선 측은 "해당 목소리가 관객인지 스태프인지 알 수 없다" "방송사고는 아니고 유튜브 클립영상은 수정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오디오 채널이 달라 TV 생중계에서는 해당 음성이 전파를 타지는 않았다.
  • 2018년
    올해도 역시 대리수상의 향연이 벌어졌다. 영화사 또는 동료 배우의 대리수상이 아닌 조직위 측이 임의적으로 지정한 제3자가 대리수상하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특히 논란이 됐던 부분은 음악상이다. 남한산성사카모토 류이치가 수상하게 되었는데, 사카모토 류이치의 불참으로 남한산성 스탭 중의 한명이 대리수상을 위해 나오던 찰나 가수 한사랑씨가 먼저 무대에 올라 당황하며 돌아서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대종상 조직위원회 측은 한사랑씨가 공식 대리수상자였다고 해명했다. 한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상은 돌려줬다고 하며 "대종상을 주최한 한국영화인총연합회의 한 간부가 어느날 전화가 오더니 ‘대종상 시상식이 있는데, 대리수상을 해줄 수 있느냐’고 하길래, 갑작스러웠지만 ‘알겠다’고 말씀드렸다."며 대리 수상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영화 관계자 측에 대리수상자 관련 내용을 확실히 전달하지 못하여 대리 수상자 두 명이 무대에 올라오도록 한 운영 상의 미흡은 덮을 길이 없으며, 또한 공식 대리수상자 선정 면에서도 영화와 상관없는 제3자가 상을 받도록 했다는 점 역시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조명상을 수상한 남한산성의 조규영 감독 역시 한 남성이 대리수상을 했는데 시상식 이후 트로피가 사라져 행방을 찾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뒤 조명상을 대리 수상한 사람은 정성면 조명협회 수석 부이사장임이 뒤늦게 드러났다. 정 부이사장은 "사라진 게 아니라 조명협회에 보관 중이며 대리 수상을 영화인연합회에서 요청이 와서 했다. 트로피는 조명협회에 갖다 놨으니 본인이 찾아가면 된다"고 제작사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라졌다는 기사가 나와서 황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 2022년
    개막 전부터 대종상 주최 측과 위탁업체간의 갈등으로 개막 여부가 불투명했었으나 주최 측이 승소하면서 개최는 했다. 그러나 투표방식이 공개되면서 엄청난 논란을 빚었는데, 바로 대종상 수상자 투표권을 NFT로 판매, 쉽게 말하자면 돈을 많이 주면 수상자를 결정할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신설된 피플스 어워드 여우상을 수상한 오나라는 수상소감 첫 마디부터 대종상 너무 재밌다며 비꼬듯 얘기했으며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와 있어서 그것만 생각했는데 듣도 보도 못한 상을 수상해서 놀랍다(...)"는 수상소감을 남겨 대종상의 권위가 진짜 바닥을 뚫고 나락으로 추락했음을 증명했다. 심지어 당시 클로징된 임지연박소담은 공감하듯 크게 웃었고 한지민염정아는 당황하면서도 웃는 모습을 보였다. 참석배우 마저도 시상식 권위에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였다. 거기에 틱톡커들을 시상자로 부르고 셀럽이라고 초대한 것도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시아지우와 원정맨의 시상은 유튜브에 박제되어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 시상식 진행도 엉망진창. 틱톡커 논란에 덮였지만 MC도 가관이였다. 강나연 허프포스트 편집장은 준비가 안된 미숙한 모습이였고 시청자들 입장에선 웬 듣도보도 못한 사람이 사회를 보냐며 의문을 가졌다. 청룡이 청룡의 여신이라 불리는 김혜수의 완벽한 준비와 진행으로 호평을 받는 것과는 완벽히 정반대의 모습이다. 결국 대종상을 생중계하던 ENA에서도 마무리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중계방송을 끊어버렸다.
  • 2023년
    서울회생법원 회생17부(양민호 부장판사)는 2023년 12월 12일 한국영화인총연합회에 대한 파산을 선고한다고 홈페이지에 공고했다. 향후 파산관재인이 연합회 자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대종상 개최권이 매각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
  • 2024년
    10월 31일 영화인총연합회는 입장문을 내고 지난 24일 파산 선고 취소 항고심이 기각됐음을 알렸는데“지난해 12월 파산 선고에 이어 약 9개월간 회생을 위해 노력했으나 주 채권자의 부동의로 결국 파산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앞서 법원은 지난해 12월 영협에 대해 파산을 선고했고, 영협의 회생 신청으로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채권자 집회에서 회생안이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했고, 결국 영협은 회생 절차를 철회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의 파산 선고는 영협의 부채가 자산을 초과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영협은 채무가 8억원을 넘는다며 “회원의 회비와 기부금 등으로 유지되는 비영리법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법원의 기각 판결은 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영협의 파산으로 대종상시상식 개최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4. 연도별 논란


[1] 당시 민주화 운동가들은 한국 영화를 독재정권의 3S정책의 도구라고 비판하였다.[2] 1973년까지 시행되다가 1974년에 영화계의 질적 하락을 이유로 잠정 폐지된 후 이때 부활했다.[3] 다만 투캅스의 경우는 해당 항목에도 있지만 표절 시비가 꽤 강하게 일었었다는 것은 고려하자.[4] 영화 애니깽은 대종상 시상이 끝나고 8개월 뒤에나 개봉했고 이때도 편집이 날림식으로 허술했다고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5] 조선일보는 이 때 문화면 1면 톱으로 JSA가 대종상을 수상했다는 얘기 대신 "친구, 대종상 전 부문 탈락"이라고 유일하게 카피를 뽑았다. 조선일보를 정치성향상 싫어하건 좋아하건 간에 조선일보의 헤드 선점능력 얘기할 때 꼭 나오는 이야기다.[6] 당시 심은경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학업에 전념하려고 불참했다.[7] 당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던 배우 류승룡은 "광해로 상을 받았지만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수상 소감을 말하겠다."라면서 연출가 민규동 감독을 비롯해서 함께 출연한 배우 임수정과 이선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원래 해당 작품으로 수상소감을 말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얼마나 미안하게 생각했으면 이런 관례를 깨고 수상소감을 말했을까?#[8] 심은경, 천우희, 전도연, 엄지원, 손예진[9] 그래서 이듬해 열린 1999년 시상식은 1998년작도 범위에 포함되었다.[10] 전년도 파동의 여파도 있고, TV로 생중계도 안 되는 상황이니 굳이 참석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11] 후보가 미발표되었다는것은 본선 진출작이 전부 후보인 셈이다.[12] 90년대까지만 해도 MBC와 SBS에서도 생중계를 해줬다.[13] 청룡영화상은 SBS에서, 백상예술대상은 JTBC에서 생중계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대종상의 위상 추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실.[14] 실제로 이병헌은 1996년 제34회 대종상 남자신인상을 수상했다. 당시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 중, 닥터봉한석규와 함께 수상이 유력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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