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ris C8 Field Artillery Tractor(FAT) |
1. 개요
영국의 차량 제조사 모리스-커머셜사가 만든 4x4 포병 트랙터.2. 제원
Morris C8 모리스 C8 |
무게 : 3.3t 전장 : 4.489m 전폭 : 2.21m 전고 : 2.26m 탑승원 : 6명(조종수 + 승객 5명) 엔진 : 모리스 EH 4기통 3.5L 가솔린 엔진 (70마력) 최고속도 : 80km/h 항속거리 : 257km |
3. 역사
1937년 영국 전쟁성은 당시 영국군이 사용 중이던 Light Dragon과 모리스 CDSW를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포병 트랙터의 필요성을 확인했고, 짧은 차대에 윈치가 장착된 4륜 구동 차량으로 요구 사양이 발표되었다.당시 신형 포병 트랙터 개발에 참여한 Guy Motors는 기존 차량들의 구성 요소를 사용하여 매우 빠르게 설계했으며 모리스가 그 뒤를 따랐다. 모리스 사의 설계는 새로우면서도 기술적으로 기존의 모리스 CS8 15-cwt GS 트럭에서 발전했다.
모리스의 트럭에는 차대에 직접 장착되는 대신에 서브프레임에 달린 새로운 4기통 엔진이 포함되었다. 캐빈은 Guy 사와 마찬가지로 "딱정벌레 등" 모양의 매우 특징적인 경사면을 가졌다. 딱정벌레형 캐빈은 모두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며, 화학 무기 오염 제거를 용이하게 하고 후면 지붕 부분에 야포의 횡단 플랫폼을 운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탑승원 6명 외에도 차량과 포의 분리용 장비와 함께 25파운더용 탄약이 포함된 완전한 탄약 상자 24개와 최소 8개의 대전차 포탄 상자를 운반할 수 있었다.
첫 번째 Morris C8 Quad는 1939년 10월에 인도되었으며 그 후 1945년까지 생산되었다. 생산 중에 차량의 기계적 측면에 두 가지 주요 변경 사항이 있었고 차체에 두 가지 독립적인 변경 사항이 있었다. 엔진/섀시 디자인은 C8 Morris 15 cwt 트럭 과 같은 다른 Morris 유형에 사용되었다. 또한 롱 휠베이스 차대가 C9B 보포스 자주대공포 트랙터를 생산하는데 사용되었다.
2차 대전기에 영국군 야전 포병 연대에서 운용되었고 각 연대에는 36개의 쿼드가 있었다. 24대가 견인용 림버와 견인포를 견인했고, 12대가 2개의 림버를 견인했다.
1939년 후반에 처음으로 배치되어 1940년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투입되면서 18 파운더, 18/25파운더 및 4.5인치 곡사포를 견인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영국 원정군 (BEF)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많은 손실이 발생했으며 그 과정에서 일부는 독일 국방군이 노획하여 운용했다.
1940년 6월부터는 미국이 제공한 75mm 포를 견인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는데, 림버 부품의 유무에 관계없이 견인되었다. 이후 아이슬란드에서 말라야까지 야전 포병 연대가 가는 곳마다 당시 새로 나온 완전체 25파운더 포 견인용 트랙터로 사용되었다. 또한 25파운더를 사용한 대부분의 영연방 및 연합군 부대에서도 사용되었다.
운반한 모든 장비에 비해 작지만 인기있는 차량이었지만 70마력 엔진으로는 출력이 부족해서 견인 및 적재시에 기동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70마력 엔진으로 9톤 가량의 짐을 감당하는 것은 이상적이지 않았고 오르막 속도도 영 좋지 않았다. 그리고 언덕이나 진흙에서는 상당히 주의해서 사용해야만 했다.
전쟁 후반에는 대전차 연대에도 배치되어 6파운더와 17파운더 대전차포 견인용 트랙터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이 총은 림버없이 견인되었지만 일부 17파운드는 림버를 통해 견인되었다. 탄약이 림버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림버 브레이크의 도움과 더 부드러운 견인을 위한 조치로 보인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같은 포병 트랙터 역할로 영국군에 남아있었고, 영국군이 투입된 한국 전쟁과 말라야 위기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많은 영연방군과 연합군이 쿼드를 본국으로 가져갔고 완전히 재장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영국군 쿼드를 제공받았다. 이후 네덜란드 왕립군은 동인도 에서 이들 군을 광범위하게 활용했다 .
1950년대 초에 많은 쿼드를 리스토어하여 마지막 쿼드가 매각된 1959년까지 수명을 연장했다. 이후 베드포드 RL과 Fordson Thames E4에서 파생된 3톤 트랙터로 대체되었다.
4. 특징
5. 형식
5.1. Mk I
1939년과 1940년 초에 200대만 생산되었다. 앞 차축에는 차동 잠금 장치가 있었고 차축 자체는 스프링 위에 장착되었다. 차량에는 상시 4WD과 10.50 × 20인치 타이어가 장착되었다. 가속 페달은 가장 오른쪽 페달과 같은 기존 위치가 아닌 중앙에 장착되었다.5.2. Mk II
1940년과 1941년 초에 약 4000대가 생산되었다. Mk I과 거의 동일했지만 전륜 차축 설계가 변경되어 잠금 차동 장치가 제거되었다.5.3. Mk III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약 6000대가 생산되었다. 앞 차축이 스프링 아래로 장착 위치가 변경되었으며 4WD 시스템도 개선되어 필요에 따라 4륜 구동을 켜거나 끌 수 있게 되었다. 타이어 크기는 10.50×16인치이며, 가속 페달이 우측으로 옮겨졌다.5.4. 캐빈 유형
총 1만대가 생산되는 동안 세 가지 유형의 차체 캡이 사용되었다.모든 Mk I과 처음 생산된 3,000대의 Mk II에는 "딱정벌레 등" 형식 캐빈이 사용되었다. 여기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는데 오른쪽에 두 개의 작은 창문과 왼쪽에 하나가 있었고, 두 개의 회전 통풍구가 있는 전체 금속 지붕이 있었다. 후기 Mk II와 처음 약 4,000대의 Mk III에는 왼쪽 전면에 추가 작은 창문이 있고 양쪽 문에 창문이 있는 후기 유형의 "딱정벌레 등" 캐빈이 사용되었다. 캔버스 지붕은 승무원실 위의 십자형 강철 프레임에 장착되었으며 캔버스 섹션 뒤의 지붕에는 두 개의 정사각형 통풍구가 있었다. 그리고 이 형식에는 더 큰 연료 탱크와 주입구가 적용되었다.
마지막 2000대의 Mk III에는 2개의 원형 해치가 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완전한 캔버스 상단, 창문이 있는 4개의 문이 있는 새로운 디자인의 "5번 차체"가 적용되었다.
영국군에서 18 파운더와 18/25파운더가 사용을 중단된 후에는 포의 횡단 플랫폼을 지붕에 운반할 필요가 없어져서 이른 위한 브라켓이 제거되었으며 일반적으로 키트 보관을 위한 추가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프레임워크로 대체되었다.
6. 실전
6.1. 제2차 세계 대전
6.1.1. 프랑스 침공
6.2. 6.25 전쟁
6.3. 말라야 비상사태
7. 운용국
7.1. 영국
원조 사용국.7.2. 독일
7.3. 네덜란드
8.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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