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 |
1. 개요
영국의 자동차 제조사인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이 여러 산하 브랜드를 통해 1959년부터 2000년까지 생산한 경차.1950년대 후반 위기에 빠진 영국의 자동차 산업을 다시금 부흥시킨 주역이자 영국 국민차의 상징으로, 후신인 브리티시 레일랜드와 오스틴 로버 그룹을 거쳐 단일 세대로만 무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500만 대 이상이 생산되며 큰 인기를 누렸다.
2. 역사
2.1. 개발 배경
최초의 미니인 모리스 미니 마이너.[2] 오스틴에서도 오스틴 미니 세븐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둘의 차이는 배지 엔지니어링 수준. |
1956년에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그것을 얌전히 넘겨 줄 생각이 없었던 영국은 프랑스, 이스라엘과 손잡고 전격적으로 수에즈 운하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영국에서 기름값은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되게 폭등했다. 기름값이 비싸진 것은 둘째치고 기름 자체가 너무 귀해져서 주유소마다 휘발유가 동나는 경우가 빈번했으며, 심지어는 국가에서 휘발유를 배급해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이러한 틈을 타서 이소 이세타, 하인켈, 메서슈미트, 본드 미니카[3]등의 초소형차[4]들이 기존의 승용차 시장을 공략해가면서 이에 영국의 기성 자동차 업체들은 기름을 덜 먹는 차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오스틴, 모리스, 스탠더드, 영국 포드 등이 영국에서 소형차를 개발, 생산해서 판매했으나, 수에즈 운하가 봉쇄되면서 초소형차 시장의 틈새가 점점 커졌다. 특히 영국에서는 3륜차가 오토바이 세금을 냈기 때문에 3륜 마이크로카가 성장했다. 영국의 삼륜차 전문업체 릴라이언트가 동 시기의 기성 경~소형차 사이즈까지 갖춰 성공가도를 달린 배경도 이것. 하지만 이런 초소형차나 3륜차는 일반적인 4인 가족이 타고 다니기에는 너무 작았던 데다 성능도 빈약했고, 이런 약점을 파고든 끝에 나온 결과물이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British Motor Corporation, 오스틴 모터 컴퍼니과 모리스 모터스의 합병으로 만들어졌으며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전신이 됨, 이하 BMC)의 알렉 이시고니스 경이 설계한 미니(코드네임 ADO15), '오스틴 미니 세븐(Austin Mini Seven)'[5]과 '모리스 미니 마이너(Morris Mini Minor)'이다.
'모든 것을 작게 만든 가족용 승용차'를 모토로 했으며, 전장 3.05미터 정도 되는 작은 2박스 세단 구성의 차체지만 어른 4명이 너끈히 들어갈 정도로 내부공간이 크고 기름값에 대응해야 했으므로 여러 혁신적인 요소를 도입했다.
- 후술할 가로배치 4기통 직렬엔진+변속기 결합으로 보닛 공간 절약. 위의 미니 마이너는 라디에이터조차 옆에 냈다. 오스틴 미니는 앞에 있다. 여기에 가로배치 전륜구동을 채택하여 기존 승용차의 세로배치 후륜구동 레이아웃에 있었던 구동축 부담을 없애 활용 가능한 실내공간까지 확보했다.
- 자잘한 부품은 최대한 제거. 기본사양은 안손잡이 대신 줄을 달았다. 대시보드도 없애고 오직 속도계만 운전석과 조수석 중간에 달았다. 유리창은 앞은 반미닫이식(흔히 버스에서 쓰는 그것), 뒷좌석은 밖으로 여는 돌쩌귀식이다(기아 카니발의 쿼터글래스의 그것). 이전에도 차 창문은 전기식은 아닐지언정 소위 "닭다리식" 크랭크를 통해 위아래로 닫을 수 있었지만 거기에 드는 부품조차 아깝다고 없앤 것이다.
- 장식적인 요소는 최소한으로. 경제형 자동차에 멋 부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알렉 이시고니스의 철학에 따라 화려한 디자인적 기교는 최대한 배제시키는 방향으로 개발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전체적인 차량의 실루엣과 라디에이터 그릴, 헤드램프 등에 사용되는 곡선 요소들을 물 흐르듯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처리해 소박하지만 유행을 크게 타지 않는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였다. 양산차는 BMC 디자이너들의 터치가 살짝 가미되어 최종적으로 다듬어진 형태이긴 하지만, 미니의 디자인은 알렉 이시고니스의 디자인 철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 현가장치, 즉 서스펜션에 콘 모양 고무를 도입하여 크기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배터리와 예비타이어는 트렁크 밑에 놓았다. 창문 손잡이와 뒷좌석 밑 수납칸을 내서 수납용량을 극대화하였다. 시트도 보면 거의 90도에 가까운 고각에 두께도 엄청 얇은데 모두 공간확보와 비용절감을 위한 조치였다.
- 내부공간 극대화. 이전 승용차에도 물건 놓을 공간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온갖 부위에다 물건을 넣을 수 있게 설계된 케이스는 미니가 최초였다. 차문에다 물건을 넣도록 한다든가, 뒷좌석 밑에다가 칸을 만들어 그 안에다가도 물건을 넣을 수 있게 하는 등 수납공간을 최대화했다. 위의 변속기, 엔진, 콘 모두가 실내공간을 아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내부공간이 큰 건 허풍이 아니어서 호주 오클랜드에서는 대학생 30여 명(!)이 작은 미니 한 대에 들어간 기록이 있다고 한다. 현대에 '차는 내부 공간이 넓어야지'라는 생각이 보편화된 건 미니의 역할이 크다.
당시 다른 차량과 달리 엔진까지 가로로 배치한 전륜구동으로 설계되었다. 당시로서는 놀라운 일이였는데, BMC가 모리스 마이너, 오스틴 A35 및 A40같은 기존의 앞 엔진 후륜구동 소형차 라인에서 사용하던 BMC A-시리즈 엔진을 가로배치함으로서 3기통 이상 엔진으로는 세계 최초의 가로배치 전륜구동으로 기록되었다. 변속기도 엔진 밑에 들어가 있는 구조였다. 덕분에 실제 차량의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기름값도 안정화되고 미니 자체가 인기를 끌면서 편의장비도 그럭저럭 갖춰지게 된다.
다만 엔진 아래에 변속기가 적용된 설계구조는 변속기를 조작하기 힘들고 정비성, 정숙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 미니의 A-시리즈 엔진이 쓰인 차들은 비슷한 문제를 계속 껴안아야 했다. 또한 1980년대로 가면은 당대 소형차에 퍼지기 시작한 5단 수동변속기를 채용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어서 미니의 가로배치 전륜구동 시스템은 BMC 내부에서만 쓰다시피했다. 한편 미니와 ADO16을 벤치마킹한 피아트에서는 변속기를 엔진 안에 집어넣는 대신 엔진 뒤에 배치하는 가로배치 전륜구동을 제시했고, 정비성과 정숙성이 항상되는 건 물론 클러치를 작게 만들어 4기통 엔진과 4단 변속기가 한 줄로 이어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며 고배기량 및 높은 단수의 변속기도 채용할 수 있게 되어 미니의 전륜구동 방식보다 널리 보급된 전륜구동 시스템이 되었다. 이때 나온 첫 차들이 아우토비앙키 프리뮬라와 피아트 128이다.
서스펜션도 압축고무로 만들어진 옥수수 모양의 러버콘(Rubber Cone)이라 부피가 작으며 접지력과 핸들링이 좋은 대신 승차감이 불편했다. 1964년부터는 엔지니어 알렉스 몰튼이 제안한 유압식 현가장치인 하이드로래스틱(Hydrolastic)[6]이 대신 쓰이기도 했지만 단가가 높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도로 러버콘으로 돌아갔다. 이 알렉스 몰튼은 자전거계에서 고가의 영국제 수제작 미니밸로로 유명한 그 상표 맞다. 핸들과 연결된 스티어링 칼럼의 각도도 꼿꼿하게 선 편이라 마치 버스 같은 느낌을 준다는 평가도 들었다. 핸들의 각도가 40~45도 가량의 각을 이루고 있으며, 일반 승용차에 비하면 각도가 가파른 편이다.(1997년식/1959년식)
2.2. 판매 및 생산
미니는 이와 같이 경제적인 자동차였으나 클래식하면서도 군더더기 없고 세련된 디자인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특히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이 1950년대 후반부터 배지 엔지니어링 전술을 적극 구사함에 따라 초기형이자 본가인 오스틴 미니/모리스 미니 마이너 이외에도 당시 BMC 그룹 산하의 라일리, 울즐리 등의 상표에서도 미니를 베이스로 한 3박스 2도어 세단 구성의 파생 모델인 라일리 엘프(Riley Elf), 울즐리 호넷(Wolseley Hornet)이 있었다. 나아가 오스틴 미니/모리스 미니 마이너의 파생모델로 기반으로 한 왜건 컨트리맨/트래블러, 이에 기반한 밴과 픽업, 지프형 미니 모크도 출시되었다.또한 1960년대에는 존 쿠퍼라는 레이서 겸 쿠퍼 포뮬러 1팀의 창립자가 랠리에 미니를 개조한 모델을 몰고 나가서 좋은 성적을 내어 성능으로도 인정을 받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고 존 쿠퍼의 이름은 John Cooper Works라는 새 이름으로 붙여져서 미니의 고성능 모델 라인업에 붙게 되었고, 1968년대에 브리티시 레일랜드가 결성되고 1971년에 미니 1275GT가 쿠퍼의 대안으로 등장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973년까지 쿠퍼 명칭을 사용했다. 일설에 의하면, 브리티시 레일랜드 창립 시 상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존 쿠퍼와의 라이선스 연장을 하지 않으면서 단종되었다.
미니의 랠리를 이야기하자면, 정작 미니를 설계한 알렉 이시고니스는 미니로 경기에 나가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존 쿠퍼는 미니를 산 뒤 랠리용으로 개조해서 개인으로서 경기에 나갔다. 가격이 저렴한데다 미니보다 가격이 몇 배가 넘는 스포츠카들과 경쟁해서도 이기는 덕에 인기가 있을 수 밖에. 그로 인해 존 쿠퍼를 기념하기 위해 기존의 미니의 성능을 약간 개조한 모델인 미니 쿠퍼도 나왔고, 이후에도 미니를 개조해 보다 나은 성능을 끌어내고자 하는 모델(쿠퍼 S, 1275GT, 80년대 말의 ERA 터보 등)이 많이 나왔다.
BMC와 이시고니스는 미니의 성공에 고무되었다. 단, 수익성은 굉장히 낮았다. 차종이 차종인데다가 알렉 이시고니스도 수익성보다는 혁신성에 집중하는 타입이었고, BMC에서도 박리다매 가격정책에 집착하느라 한 대당 30파운드 내지 45달러의 손해를 보면서 팔았다는 후문이 있었을 정도. 어쨌거나 당시로서는 전륜구동 설계가 혁신적이었고 판매량에서 성공했던 것은 맞았던 터라, 미니의 FF 패키징을 살짝 뻥튀기해 더욱 큰 크기의 소형차인 BMC ADO16을 만들었다. 이쪽도 영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반면 이시고니스가 ADO16 이후에 같은 철학 하에 설계한 중형차였던 BMC ADO17은 체급이 너무 큰 데다가 이질적인 디자인이 중형차 시장에서 어필하지 못하며 실패했고, 오스틴 맥시 해치백도 그리 대박은 치지 못했다.
또한 해외생산도 활발했다. 칠레에서는 유리섬유 차체 버전이 현지에서 생산됐고 경주용 차로도 적잖은 인기를 얻었다. 스페인에서는 Authi 상표로서 현지에서 생산됐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인노첸티(Innocenti)가 BMC로부터 미니와 ADO16 시리즈 등의 라이선스를 따와 이탈리아 현지에서 생산했다. 인노첸티 버전은 원판 오스틴 차량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장비도 조금씩 더 들어갔기 때문에 일부 시장에서는 원판보다 더 잘 팔린 적도 있었으며, 특히 인노첸티 미니의 경우는 1960년대부터 생산되는 건 물론 1974년부터는 그루포 베르토네가 디자인한 쐐기형 2박스 해치백 디자인을 얹고 1993년까지 생산했다.
BMC와 레일랜드의 합병으로 설립된 브리티시 레일랜드(British Leyland. 이하 BL) 산하에서는 오스틴과 모리스, 울즐리, 라일리 상표로 나오던 미니를 “미니“라는 단독 상표로 통합했다. 울즐리/라일리 버전은 오리지널 클럽맨으로, 트래블러/컨트리맨은 클럽맨 에스테이트로, 쿠퍼와 쿠퍼 S는 1275GT로 통합했다. 기존의 오리지널 미니는 배기량별로 850과 1000으로 트림을 나누어 판매했다. 또한 밴과 픽업 버전이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부터는 판매량이 거의 매년 감소치를 보이게 되었고, 알렉 이시고니스조차 1971년을 기점으로 은퇴하면서 BL에서는 후속차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미니에다가 현대다운 앞 모습을 가미한 클래식 클럽맨이 등장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이시고니스가 자신이 설계했던 미니 9X의 양산화를 계속 제안하거나 BL 내에서 새로운 소형차 프로젝트인 ADO74가 진행되고 심지어 베르토네식 디자인의 이노센티 미니를 들여오려고 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들은 회사 내 내분과 석유파동 등에 의한 BL의 파산, 그리고 이로 인한 국유화를 거치며 물거품이 되었다.
1980년대를 앞두고 미니의 설계가 노후해지자, BL에서는 1974년부터 미니를 대체하고자 당시 기준으로 현대적인 설계의 소형차인 오스틴 메트로(ADO88/LC8)를 개발하나,[7] 1980년에 출시된 이 차도 미니를 대체하지는 못하고 1997년까지 별도의 모델로서 판매되었다. 또한 이 둘을 동시에 대체하는 오스틴 AR6 프로젝트까지 비싼 개발비용과 오스틴 상표의 폐기, BL의 새로운 모회사였던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의 투자 거부를 이유로 취소되어 1988년에 계획된 단종도 무산되었다. 이 시기에는 미니 클럽맨도, 픽업 및 밴도 존재하지 않고 예전처럼 단순히 경제형 차로 판매되었다.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 1990년대 초반에는 로버 K 엔진을 얹고 인테리어와 차체 구조를 개선한 "밍키(MinKi)"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현대화를 시도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2000년식 로버 미니 파이널 에디션. 가장 마지막으로 생산된 미니이다. |
이 두 모델을 시작으로 BL은 미니를 신경 쓰기 시작했고 기존 저가차 시장은 메트로에게 맡겼다.[8] 동시에 일본이나 프랑스같은 일부 수출 시장에서는 미니 대신 로버 브랜드로 시판되는가하면 BMW 산하로 인수된 후에는 클래식 미니도 복고적인 색상 선택권과 액세서리를 추가하는 등 나름대로 고급화해서인지 1990년대 말에 생산된 최후기형 미니는 연식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아서 유지하기 쉬운 클래식풍 자동차로서 인기가 높다. 단종 때까지 사용하던 BMC A-시리즈 엔진 역시 1997년부터는 세팅이 까다로운 카뷰레이터 대신 전자식 연료분사 시스템으로 바뀌어 정비 편의성이 나아졌고 옵션으로 에어컨을 장착할 수 있었다.[9] 또한 에어백과 같은 최신 안전장비도 나름대로 갖춰져 있었다. 30년에서 40년 된 설계에도 잘 팔렸고 지금도 클래식 시장에서 인기 있는 것은 인상 깊은 디자인의 공이 컸다. 특히 일본에서는 1990년대에 분 레트로 붐에 큰 영향을 주었다.
[1] 사진상의 차량은 2000년식 로버 미니 쿠퍼 40주년 파이널 에디션.[2] 사진상의 차량은 1959년식 모리스 미니 마이너. 500만 대가 넘게 생산된 클래식 미니 중에서 첫 번째로 생산된 차량이다.[3] 이후 릴라이언트 휘하에서 본드 버그를 만든 본드 카즈가 만든 삼륜차 시리즈.[4] 당시에는 '버블카'라고 불렸다. 유래는 워낙 차체가 작아서 운전석이 거품처럼 커보여서.[5] '세븐'이란 이름은 1962년에 폐기되었다.[6] 이후 하이드로래스틱 유닛 상단에 질소 챔버를 추가한 유기압 현가장치인 하이드라가스(Hydragas)로 발전, 2000년대 초까지 브리티시 레일랜드와 그 후신들의 일부 신차에 쓰였다.[7] 이때 일시적으로 클래식 미니의 브랜드도 미니에서 오스틴으로 환원된다.[8] 로버 그룹의 제품개발 과정에서 수익성, 그리고 고객만족도가 새로운 포커스로 집중되면서 가능한 전환이었다. 크리스마스 테마의 새 TV 광고를 송출한 1986년부터 미니를 단순 염가차에서 시대를 타지 않는 아이콘으로 다시 재활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졌으며 각종 특별판들이 라인업에 꾸준히 도입되었다. 당시 로버 그룹에 따르면 1980년대 중후반 미니의 고객들은 시내에 거주하는 20~39세 여성으로서 자차를 애완동물같이 취급하며 정을 주는 고객층이 주류였다고 한다.[9] 공조기를 틀면 선풍기 소리가 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