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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선수 경력/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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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복귀 과정3. 정규시즌 등판 성적
3.1. 4월3.2. 5월3.3. 6월3.4. 7월3.5. 8월3.6. 9월3.7. 10월
4. 시즌 후5. 기타

1. 개요

박찬호2012 시즌을 정리한 문서. 그가 국내로 복귀해서 맞는 첫 시즌이자, 한국 야구 팬들이 박찬호의 한국 등판을 볼 수 있었던 마지막 시즌이었다. 그리고 박찬호에게도 현역 선수로서 마지막 시즌이 되어버렸다.

2012 시즌에도 부진을 면치 못한 한화 이글스에서 류현진, 김태균과 함께 무너진 팀의 버팀목으로 활약하였으며 한화 이글스에서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분투를 보였다.

2. 복귀 과정

2011시즌 새롭게 구성된 한화 프런트 측에서 11월에 열릴 KBO의 회의에서 특별법을 건의하고 한화로 올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하는데 2011년 11월 2일에 열린 박찬호 특별법에 대한 실행위원회가 특별법에 합의했다. 허용여부는 8일 사장단 이사회에 최종결정 될 사항이었으나 12월에 있을 KBO 정식 이사회로 사안이 넘어갔다.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라는 것이라 내년에 한화에서 박찬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한화가 아닌 다른 구단에서 박찬호에게 입단 제의를 했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오보로 밝혀졌고, 결국 공식 해명기사가 나왔다.

12월 13일 KBO 제7회 이사회에서 원칙적으로는 1년을 쉬고 국내리그에 복귀할 수 있지만 박찬호 특별법이 통과되어 내년부터 바로 박찬호를 한화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더 대단한 것은 모두가 최소 하위 드래프트권을 소진하고 박찬호를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반대급부 없이 데려왔다는 것. 대신 지역야구와 아마야구 발전에 힘쓰겠다는 말로 봐서 발전기금을 내기로 한 듯.

사실 한화는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에서 유일하게 선수를 뽑지 못한 과거가 있다. 당시 메이저리그에 안착하는데 실패한 해외파 7명[1] 이 드래프트에 참여해서, 유예기간 없이 바로 KBO리그에서 뛰는 특혜를 받았는데, 한화가 6순위[2]로 밀리면서 선수를 뽑지 못한 것이다. 이때문에 당시 한화 구단에선 우리만 피해를 봤다고 억울해 했고, 이런 과거를 알고 있는 KBO리그의 다른 구단들이 박찬호 특별지명에 흔쾌히 동의해준 것이다.[3] 거기에 전국민이 다 아는 박찬호의 상징성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야구 인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모든 야구인들이 판단한 것도 크게 작용하였다.

구단 차원에서는 박찬호는 돈으로 계산하기 힘들다고 하면서도 최대한 현실적으로 연봉을 주되 플러스 옵션은 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박찬호에게 진정성을 느꼈다고 하니 금방 협상이 될 듯 싶다.

연봉 책정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갔으나 12월 19일 박찬호 본인이 구단에 연봉 백지위임 의사를 밝혔고, 한화도 이에 화답하듯 입단 협상을 끌지 않고 20일에 입단식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고향 연고지 팀에서 마지막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게 돼 영광이며, 한화 팬들은 물론 국내 야구팬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20일 KBO 최저 연봉인 2,400만 원에 계약하는 대신 한화가 유소년을 위한 야구발전기금 6억원을 쾌척하는 조건으로 최종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사실상 한화가 박찬호의 연봉으로 6억원을 줬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박찬호에게 섭섭하지 않을만한 대우를 한 것이다. 박찬호도 자신의 연봉(2,400만원)을 같이 기부했다. # 사실상 이 돈은 그저 형식적일 뿐이라고 보면 된다. 우선 박찬호는 0원 계약을 요구하였으나 규칙 및 법률 상 0원 계약은 불가능하다고 하여, 일단 최저 연봉을 받고 그 돈까지 기부해버리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박찬호가 지금까지 번 돈을 생각하면 사실 연봉은 명예의 문제이지 경제적인 의미는 없다. 박찬호가 메이저 전성기 시절 받던 연봉으로 한화 이글스 전체 팀을 굴리고도 남는 수준으로 많이 벌었기 때문이다. 2,400만원이 경제적인 의미가 별로 없는 이유는,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벌었던 돈이 1이닝당 4,800만원으로 연봉의 정확히 2배였기 때문이다.[4]

3. 정규시즌 등판 성적

3.1. 4월

일자 상대 결과 이닝 탈삼진 실점 자책점 승패 비고
4월12일 두산 2:8 6⅓ 5 2 2 QS
4월18일 LG 6:1 6⅓ 6 3 3 QS
4월24일 KIA 16:8 4 3 4 1 ND
4월29일 넥센 3:6 5 3 1 1 ND
  • 4월 성적 - 4경기 선발 등판, 21⅔이닝 17탈삼진, 11사사구, 17피안타 1피홈런, 10실점 7자책점, 평균자책점 2.91.


4월 12일 청주구장에서 열린 두산전에서 국내에서 첫 선발등판하여 6⅓이닝 92투구수 4피안타 2사사구 5탈삼진 2실점 2자책점[5]으로 호투하였고 팀이 2:8로 승리하여 박찬호는 국내에서 첫 승을 챙겼고 팀도 시즌 첫 승을 기록했다. 1회에는 제구가 되지 않고 볼넷도 주면서 공 개수가 많아졌으나, 2회부터는 안정감을 찾더니 3회초를 3구로 이닝을 종료[6]하는 등 난타당하던 시범경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4회초 두산 공격 상황에서 김동주가 4구째 친 공이 투수 정면으로 가자 가볍게 잡고 시크하게 1루로 송구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어 뛰어봐 XX아 드립이 돌기도 했다.[7] 이후 6회까지 잘 막았으나 7회초 2안타를 맞으면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를 하는데 국내 첫 승 승리구를 못 찾아서 안절부절하다가 바티스타가 준 공을 받고 표정이 무지 밝아졌다. 국내 데뷔 첫 승 기념으로 친필 사인공 2개를 관중석에 던졌다. 어느 리그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박찬호가 뛰었던 MLB에서는 투수의 첫 승 기념구는 해당 선수에게 챙겨주는 게 전통이다. R.A. 디키도 메이저리그 첫 등판 후 기념구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경기 후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그걸 그냥 관중석에 던져버려서 상심했다는 일화를 자서전에 써 둘 정도로 투수에겐 의미가 깊은 물건이었다. 한편, 이날 경기 중에는 한화 두산전을 중계하던 XTM에서는 마해영 위원이 대놓고 한화 편파중계를 해서 두산팬들의 원성을 샀고 경기가 끝나고 각 포털 스포츠 기사들은 박찬호로 도배되는 등 박찬호 파워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XTM 게시판은 마해영 위원을 까는 글로 도배가 되었다. 박찬호는 이날 승리로 한미일 3국에서 모두 승리를 따낸 최초의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8] 또한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운, KBO 리그 역대 최고령 데뷔 첫 승이기도 하다.

4월 18일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에 선발 등판, 6회까지 무사사구 무실점 호투를 펼쳤으나, 7회초에 이진영에게 2루타를 맞고 정성훈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하여 스코어를 2:1로 만들고 말았다. 이후 이병규를 땅볼 처리한 후에 오지환에게 볼넷을 내주고 강판, 구원투수인 마일영분식회계로 자책점은 3점으로 늘어났다. 이날 기록은 6⅓이닝 93투구수 5피안타 1사사구 6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두 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팀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팀이 6:1로 패하는 바람에 아쉽게 패전투수가 되었다.

4월 24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 선발 등판했다. 팀 타선이 모처럼 힘을 내면서 5회초까지 5점을 뽑아냈고, 박찬호 역시 4회까지 2실점 1자책점으로 잘 막고 있었다. 하지만 5회말, 선두 타자 최희섭에게 중전 안타를 허용하고, 다음 타자 나지완에게 볼넷을 허용하면서 아쉽게 승리투수 요건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되었다. 컨트롤에 다소 난조를 겪으면서 6개의 볼넷을 허용하는 가운데 투구수 관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 박찬호의 구원 투수로 나온 송신영이 박찬호가 남긴 주자 2명을 모두 홈으로 불러들이면서 박찬호의 실점은 4점으로 늘어났지만, 2사 후 실책이 끼어 있었기 때문에 박찬호의 자책점은 1점으로 유지되었다. 박찬호는 이날 4이닝 96투구수 5피안타 6볼넷 3탈삼진 4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이런 경기를 만들면서 스코어 16:8로 승리했다.

4월 29일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5이닝 86투구수 3피안타 2볼넷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했다. 게다가 타선에서 2점을 뽑아준 덕분에 승리 투수 요건을 채웠으나 6회초에 올라온 안승민강정호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맞는 바람에 승을 챙기지 못했다. 이날 팀은 3:6으로 재역전승했다.

3.2. 5월

일자 상대 결과 이닝 탈삼진 실점 자책점 승패 비고
5월5일 삼성 0:5 6 3 3 3 QS
5월11일 롯데 9:15 4 1 6 5 ND
5월17일 두산 5:1 7 5 1 1 QS+
5월23일 KIA 1:4 6 3 4 2 QS
5월29일 삼성 10:2 3⅔ 1 5 5
  • 5월 성적 - 5경기 선발 등판, 26⅔이닝 13탈삼진, 14사사구, 35피안타 1피홈런, 19실점 16자책점, 평균자책점 5.40.

5월 5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했다. 6이닝 101투구수 8피안타 3사사구 3탈삼진 3실점 3자책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으나, 팀이 0:5로 패하면서 패전투수가 되었다. 화제를 모았던 이승엽과의 맞대결에서는 3번 맞붙어 모두 범타로 잡아내며 승리를 거뒀다.

5월 11일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 선발 등판했는데, 4회까지 3실점(2자책점)으로 어떻게든 버텨냈지만, 5회 볼넷과 안타를 허용하며 무사 1, 2루의 위기를 맞았고 홍성흔에게 싹쓸이 2루타를 허용하며 강판되었다. 구원 투수인 마일영강민호에게 투런 홈런을 맞으면서 박찬호의 자책점은 5점으로 늘어났다. 이날 성적은 4이닝 86투구수 7피안타 1피홈런 3사사구 1탈삼진 6실점 5자책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날 팀은 타선이 폭발하며 9:15로 역전승하여 박찬호는 간신히 패전은 면했다.

5월 17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서 7이닝 94투구수 6피안타 1사사구 5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하며 시즌 들어 최고의 호투를 하였고, 팀이 스코어 5:1로 승리하여 박찬호는 승리 투수가 되었다.

박찬호의 티켓파워는 5월까지 엄청난 기세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박찬호가 등판한 7경기 모두 매진을 이뤄냈다. 대부분이 관중석 규모가 적은 청주구장에서 등판한 경기이기 때문에 조금 아쉬울 수 있지만 윤석민과의 대결로 화제가 된 광주구장 경기도 매진시켰고, 두산 베어스와 두 번째 대결을 펼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경기에서도 평일에 2만 7천 석을 매진시켰다는 점에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5월 23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 선발 등판, 6이닝 106투구수 7피안타 3사사구 3탈삼진 4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다. 야수들의 수비 도움을 받지 못한 와중에도 두 경기 연속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지만 팀이 스코어 1:4로 패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5월 29일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3⅔이닝 87투구수 7피안타 4사사구 1탈삼진 5실점 5자책점으로 시즌 들어 최악의 투구를 기록했다. 한 이닝에 몸에 맞는 볼만 3개를 내줄 정도로 제구가 좋지 않았으며, 팀이 스코어 10:2로 완패하며 두 경기 연속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3.3. 6월

일자 상대 결과 이닝 탈삼진 실점 자책점 승패 비고
6월10일 넥센 1:8 5⅓ 1 1 1
6월16일 SK 1:3 6⅓ 3 3 3 QS
6월22일 두산 4:5 5 3 4 4 ND
6월28일 롯데 2:5 5 2 2 2 ND
  • 6월 성적 - 4경기 선발 등판, 21⅔이닝 9탈삼진, 17사사구, 17피안타 0피홈런, 10실점 10자책점, 평균자책점 4.15.

5월 29일 삼성전 등판 이후 체력 관리 차원에서 한 차례 로테이션을 건너뛰었고, 6월 10일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전에 12일만에 선발 등판했다. 1회초 유한준에게 적시 2루타를 허용하며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특유의 위기관리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5⅓이닝 91투구수 4피안타 3사사구 1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했고, 타선도 모처럼 대량 득점하며 박찬호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이날 한화는 스코어 1:8로 승리, 박찬호는 시즌 3승을 달성했다.

6월 16일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전에 선발 등판, 6⅓이닝 95투구수 6피안타 4사사구 3탈삼진 3실점 3자책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으나, 한화 타선이 SK의 외인 투수 데이브 부시에게 완전히 묶이면서 결국 1:3으로 패배, 패전투수가 되었다.

6월 22일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 선발 등판했는데, 5이닝 84투구수 4피안타 4사사구 3탈삼진 4실점 4자책점으로 부진했다. 하지만 팀이 4:5로 역전승하며 간신히 패전은 면했다.

6월 28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 선발 등판, 5이닝 104투구수 3피안타 6사사구 2탈삼진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하고 승패없이 물러났다. 볼넷을 6개나 내줄 정도로 제구가 좋지 않았지만, 위기상황에서 안타를 내주지 않으며 실점을 억제했다. 팀은 2:5로 패배.

3.4. 7월

일자 상대 결과 이닝 탈삼진 실점 자책점 승패 비고
7월7일 SK 2:4 6 4 2 2 QS
7월13일 롯데 1:1 5 4 1 1 ND 완투
7월19일 삼성 6:5 5 5 0 0 ND
  • 7월 성적 - 3경기 선발 등판, 16이닝 13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1.68.

7월 7일 한밭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96투구수 5피안타 2사사구 4탈삼진 2실점 2자책점으로 호투했고, 팀 타선도 집중력을 발휘하며 한화는 스코어 2:4로 승리하여, 박찬호는 승리 투수가 되었다. 팀의 8연패를 끊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의미있는 승리였다.

7월 13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선발 등판해 5이닝 80투구수 5피안타 4탈삼진 1볼넷 1실점으로 호투했다. 5회말이 끝난뒤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5회 강우 콜드게임이 선언되었다. 경기 결과는 1:1 무승부. 박찬호는 승패 기록은 없지만, 대신 완투 (5이닝 완투다.) 기록을 챙겼다.[9]

7월 19일 한밭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전반기 마지막 경기인 삼성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에 5이닝 103투구 3피안타 5볼넷 무실점을 기록하여 다소 볼넷을 좀 내주면서 고전했으나 날카로운 삼성 타선의 예봉을 꺾은 호투를 펼쳤다. 하지만 7회부터 한화 火펜진들이 불을 서서히 지르기 시작하면서 9회에 끝내 동점을 내주고, 10회에는 기어이 역전까지 허용하면서 팀은 5:6 대역전패. 그리고 박찬호도 또다시 노디시전을 기록하고 말았다.

3.5. 8월

일자 상대 결과 이닝 탈삼진 실점 자책점 승패 비고
8월1일 LG 5:2 6 2 1 1 QS
8월7일 두산 10:5 4 1 8 8
8월14일 삼성 3:6 6 5 4 4
8월19일 LG 4:5 6 2 4 4 ND
  • 8월 성적 - 4경기 선발 등판, 22이닝 10탈삼진, 6사사구, 32피안타 4피홈런, 17실점 17자책점, 평균자책점 6.95.

8월 1일 LG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였지만, 체력과 팔꿈치 문제 때문인지 이후 선발로 나올 때마다 털리는 모습을 보였다.

3.6. 9월

일자 상대 결과 이닝 탈삼진 실점 자책점 승패 비고
9월2일 KIA 13:2 3 1 7 7

결국 부진 때문인지 9월 10일 사직 롯데전을 앞두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일단 2군으로 가지는 않고, 선수단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위해 1군에서 계속 머물기로 했다. #

와중에 한 기자가 박찬호가 NC 다이노스로 갈 수도 있다며 설레발을 떨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박찬호 NC행을 가장한 소설

3.7. 10월

일자 상대 결과 이닝 탈삼진 실점 자책점 승패 비고
10월3일 KIA 5:4 5.2 4 5 3

약 한달만에 다시 등판한 시즌 마지막 경기. 애초엔 50구-3이닝 정도 계획이 되어 있었지만, 팬들을 위해 최대한 던져달라는 벤치의 주문으로 6회 2사에서 5점째 적시타를 맞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한화 선수들도, 관객들도 어쩌면 마지막 경기가 될지 모르는 박찬호에 기립박수를 쳤다.

4. 시즌 후

은퇴 여부를 묻는 질문에 심사숙고하겠다고 밝혔다.

2012년 10월 새로 부임한 김응룡 감독은 박찬호를 마무리 투수로 기용하겠다고 했다. 이 때 당시 박찬호 본인도 10월 11일 측근을 통해 1년 더 뛰겠다는 의사를 표하였다.# 일단은 한화에서 박찬호를 보류선수 명단에 포함시켰다.[10] 참고로 박찬호는 2006 WBC 당시 출전한 4경기 중 3경기를 마무리 투수로 출전해 5이닝 무실점 3세이브를 기록한 적이 있다.[11]

11월 11일 류현진LA 다저스로부터 입찰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류현진의 멘토이자 넘어야 할 산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런데 11월 29일 갑작스럽게 박찬호가 은퇴를 선언하였다. 많은 고민 끝에 결국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결정, 구단에서도 수용하였으나 박찬호를 전력에 포함하여 구상하려던 한화 코치진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5. 기타

박찬호는 대한민국 야구사의 한 획을 그은 영웅이자 대선배였기 때문에, 그를 상대한 타자들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이나 후에 헬멧을 벗고 인사하는 예의를 갖추기도 했다.#

[1] 다만 약간 가려 들어야 한다. 최희섭, 서재응은 물론 드래프트 당시에는 밀려 있긴 했지만 전성기에는 마이너리그 유망주에도 상위 레벨이었으며 이들의 메이저리거 시절 자주 뉴스에 오르내릴 정도로 그럭저럭 괜찮은 활약을 했던 선수들이었고 김병현은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두 개나 갖고 있던 메이저리그에서도 수준급의 마무리였으며, 또 당시 명단에 있었던 추신수는 이미 메이저리그에 안착한 시점이었다. 추후에 이 선수들이 나이를 먹거나 부상 등 기량 저하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2년간의 공백 없이 한국으로 복귀할 명분을 만든 드래프트라고 볼 수 있다.[2] 우선지명권을 행사한 2개 구단(롯데, 기아)이 있었으므로 사실상 8순위[3] 또한 한국으로 복귀하게 된다면 한화 이글스(고향팀)에 꼭 입단해서 뛰고 싶다는 박찬호의 소망도 한 몫 했다. 게다가 나이도 입단 당시 우리 나이로 40살이었으니, 선수로 오래 뛰지는 못 할 것이라 큰 손해도 없는 게 사실이고.[4] 상황은 좀 다르지만, 비슷한 예로 블리자드 & 그레텍이 스타크래프트 저작권료를 가지고 1달러에 계약한 사례가 있다. 계약금보다 계약자체가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말자. 계약에 앞서 계약금은 그저 형식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5] 2실점은 1사, 1, 2루에서 올라온 중간계투송신영분식회계.[6] KBO 역대 36번째에 해당하는 기록[7] 예를 들면 이런 거다. #[8] 한미일 3국에서 모두 출전한 한국인 투수는 박찬호, 구대성, 이상훈, 김병현, 임창용, 오승환 이렇게 6명인데, 구대성과 이상훈 임창용은 미국에서의 승리가 없고, 김병현은 일본에서의 승리가 없었다. 약 4년간 박찬호만이 갖고있었던 기록이었으나 2016년 4월 11일 오승환이 구원승을 따내면서 유일한 기록은 아니게 되었다. 선발승만 따지면 여전히 유일한 기록은 맞다. 세계로 따져보면 꽤 된다. 예를 들어 두산 전 용병 왈론드는 한미일 포함 총 8개국에서 승리투수가 되었다고 한다.[9] 롯데 투수였던 셰인 유먼도 5이닝 1실점, 승패 없이 완투 라는 동일한 성적을 기록했다.[10] 그런데 마무리 투수로 기용하겠다는 건 김응용이 박찬호와 상의없이 독단적으로 입에 올린 것이다.[11] 나머지 한경기는 본선 2라운드 일본전에 선발투수로 출전해 5이닝 무실점 승리투수를 거둔 경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