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오 부트라게뇨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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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A. 카마초 (1984~1988) | ▶ |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1988~1992) | ▶ | 호세 마리 바케로 (1992~1993) |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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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1986 FIFA 월드컵 실버슈 [1] | |
1986 Ballond'or | ||
수상 이고리 벨라노프 | 2위 게리 리네커 | 3위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
1987 Ballond'or | ||
수상 루드 굴리트 | 2위 파울로 푸트레 | 3위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
Player of the Year 1986 | ||
수상 디에고 마라도나 | 2위 알레산드로 알토벨리 | 3위 게리 리네커 호르헤 부루차가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이언 러시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2007년 스페인의 방송국 안테나3가 스페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스페인인 100명'을 선정 | ||||||||
TOP 10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후안 카를로스 1세 | 미겔 데 세르반테스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 | 아돌포 수아레스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 펠리페 6세 | 파블로 피카소 | 예수의 테레사 | 펠리페 곤살레스 | |||||
11위~100위 |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이사벨 1세 | 세베로 오초아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 호세 사파테로 |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 |||||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살바도르 달리 | 안토니오 가우디 | 엘 시드 | 알폰소 10세 | 페르난도 알론소 | |||||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프란시스코 데 고야 | 프란시스코 프랑코 | 안토니오 마차도 | 미겔 인두리안 | 미카엘 세르베투스 | |||||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로라 플로레스 | 펠리페 2세 | 카를로스 1세 | 로시오 주라도 | 그레고리오 마라뇬 | |||||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디에고 벨라스케스 | 이사벨 판토하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미겔 데 우나무노 |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 |||||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비센테 페레르 | 카밀로 호세 셀라 | 페드로 두케 | 다니 페드로사 | 파우 가솔 | |||||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다비드 비스발 | 라파엘 나달 | 카마롱 데 라 이슬라 | 아스투리아스의 펠라기우스 | 후안 라몬 히메네스 | |||||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산티아고 카리요 | 안토니오 반데라스 | 이냐시오 데 로욜라 | 페드로 알모도바르 | 후안 세바스티안 데 엘카노 | |||||
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 미겔 에르난데스 | 후안 마누엘 세라 | 로페 데 베가 | 엘 그레코 | |||||
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아구스티나 데 아라곤 | 호아킨 사비나 |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 | 앙헬 니에토 | 마누엘 아사냐 | |||||
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조르디 푸졸 |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 | 알레한드로 산스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에르난 코르테스 | |||||
66위 | 67위 | 68위 | 69위 | 70위 | |||||
카를로스 사인츠 | 파퀴리 | 텔모 사라 | 몽세라 카바예 | 마누엘 데 파야 | |||||
71위 | 72위 | 73위 | 74위 | 75위 | |||||
이삭 페랄 | 플라시도 도밍고 | 미겔 길라 | 루이스 부뉴엘 | 엘 코르도베스 | |||||
76위 | 77위 | 78위 | 79위 | 80위 | |||||
프란시스코 피사로 | 마리아노 바울바시드 | 라울 곤살레스 |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 프란시스코 페르난데스 오초아 | |||||
81위 | 82위 | 83위 | 84위 | 85위 | |||||
아만시오 오르테가 | 마놀레테 | 에두아르도 칠리다 | 페란 아드리아 |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 | |||||
86위 | 87위 | 88위 | 89위 | 90위 | |||||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 호아킨 로드리고 | 에밀리오 보틴 |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 프란시스코 헨토 | |||||
91위 | 92위 | 93위 | 94위 | 95위 | |||||
세바 바예스테레스 | 이삭 알베니스 | 페데리코 바하몬테스 |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 카르멘 아마야 | |||||
96위 | 97위 | 98위 | 99위 | 100위 | |||||
빈센트 블라스코 이바네스 | 마누엘 산타나 | 알리시아 코플로비츠 | 안토니오 루이스 솔러 | 자코네로 | |||||
※ 출처 | |||||||||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레알 마드리드 CF 홍보 단장 | ||
Real Madrid Club de Fútbol | ||
이름 |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Emilio Butragueño | |
본명 |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산토스 Emilio Butragueño Santos | |
출생 | 1963년 7월 22일 ([age(1963-07-22)]세) | |
스페인국 마드리드 | ||
국적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0cm[2], 체중 72kg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수[3]/ 은퇴) 축구 경영인 | |
소속 | 선수 | 레알 마드리드 CF (1981~1982 / 유스)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1982~1984) 레알 마드리드 CF (1984~1995) 클루브 셀라야 (1995~1998) |
기타 | 레알 마드리드 CF (2004~2006 / 부회장) 레알 마드리드 CF (2013~ / 홍보 단장) | |
국가대표 | 69경기 26골[4] (스페인 / 1984~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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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 국적의 전 축구 선수로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 CF의 홍보 단장을 맡고 있다.마드리드 태생으로, 레알 마드리드 유스부터 성인 팀까지 직행한 순혈 선수이다. 또한 라울 곤살레스와 페르난도 토레스의 우상으로, 우고 산체스와 함께 1980년대 레알 마드리드를 이끈 팀의 에이스였다. 또한 라울 곤살레스 이전의 7번으로서 레알 마드리드의 7번 계보에 한 획을 그었다. 별명은 '독수리'였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81년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에서 후보 선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84년 성인 팀으로 승격, 2월 5일 카디스 CF전에서 후반에 투입되어 성인 팀 데뷔를 가졌다. 당시 레알은 0-2로 지고 있었는데, 부트라게뇨가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역전승을 이끌었다. 이 활약 이후 부트라게뇨는 단번에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마놀로 산치스, 마르틴 바스케스, 미첼, 미겔 파르데사라는 선수들과 함께 'La Quinta del Buitre', 일명 '독수리 오 형제'라 불린 유스 출신 5인방을 결성했다.또한 우고 산체스라는 걸출한 파트너 공격수까지 1985년 합류하면서 함께 1980년대 레알 마드리드의 부흥을 이끌었고 팀의 간판 스타로 군림했다. 이 시기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유망주에게 주어지는 브라보 상을 2년 연속으로 수상했으며, 이후 우고 산체스 등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5년 연속 라리가 우승, UEFA컵 2년 연속 우승에 기여했다.
그 과정에서 부트라게뇨 본인도 두 자릿수 득점을 계속 기록했으며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86년, 1987년에는 발롱도르 3위에 올랐고 1991년에는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 트로페오 피치치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부트라게뇨는 노쇠했고, 1995년 6월 8경기 1골이라는 부진한 성적과 17살 신예 라울 곤살레스의 데뷔로 입지를 잃은 부트라게뇨는 멕시코의 클루브 셀라야로 이적하였고, 1998년 4월에 그곳에서 은퇴했다. 클럽 통산 497경기 189골을 기록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했는데, 부트라게뇨는 UEFA 유로 1984에서 스페인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스페인 대표팀에 승선해, 16강전에서 덴마크를 상대로 혼자서 4골을 넣으며 스페인의 5-1 대승을 이끌었다. 이 승리 이후 스페인은 호기롭게 8강에서 벨기에와 붙었으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고 말았다.[5] 그러나 부트라게뇨는 16강전을 비롯한 활약으로 총 5골을 기록하며 득점 2위[6], 실버슈를 수상했고 최고 선수의 모습을 보였다.UEFA 유로 1988에서는 덴마크를 상대로 골을 넣어 3-2 승리를 이끌었으나 이탈리아와 서독에게 패해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고 스페인은 16강에서 연장 끝에 유고슬라비아에게 패배해 탈락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침투 후 마무리에서 말 그대로 최고였던 선수로 기술적으로 뛰어나진 않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득점'을 누구보다도 잘 했던 선수였다.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이 패스 축구를 통해 본격적인 강팀의 길에 들어서기 이전, 스페인 최고의 스타는 부트라게뇨일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자랑했다.
부트라게뇨는 독수리라는 별명처럼 빠른 침투 스피드를 자랑하는 공격수였지만, 그 무엇보다도 득점 상황에서 놓치지 않는 발군의 골 결정력이 유명했다. 바로 부트라게뇨의 이 득점에 대한 천부적 재능 때문에 그의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플레이가 가능했다.파이널 서드에서의 득점 능력도 탁월했지만, 레알 마드리드 커리어 통산 120골에서 대부분의 득점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이루어진 것일만큼 박스에서 마무리하는 능력이 최상급이었다. 키는 작았지만 공중볼 위치선정이 뛰어나 헤더도 제법 했다. 전체적으로 빠른 속력과 천부적인 본인의 득점감각을 제대로 융합하여 활용할 줄 알았던 선수로, 한순간 침투에 이어 마무리 패스나 슛으로 결정을 짓는 능력이 발군이었다. 후배인 페르난도 토레스와 여러모로 유사한 타입.
다만 포쳐로서 뛰어났던 선수인 만큼 기술적으로 완벽한 선수는 아니었고, 작은 신장 때문에 몸싸움에 강점을 보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뛰어난 일관성과 위치선정, 전술 이해도로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20세기 말 레알 마드리드와 세계 축구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 레알 마드리드 CF (1984~1995)
- 라리가: 1985-86, 1986-87, 1987-88, 1988-89, 1989-90, 1994-95
- 코파 델 레이: 1988-89, 1992-93
- 코파 데 라 리가: 1985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88, 1989, 1990, 1993
- UEFA컵: 1984-85, 1985-86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유로 준우승: 1984
4.2. 개인 수상
- 발롱도르 3위: 1986, 1987
- FIFA 월드컵 실버슈: 1986
- 라리가 득점왕: 1990-91
- 브라보 상: 1985, 1986
- FIFA 100: 2004
- 레알 마드리드 명예의 전당: 1998
5. 기타
- 선수 시절 사진을 보면 엄청난 꽃미남이다.
- 당시 FIFA 월드컵에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성적이 신통치 않아서 그런지 한국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2000년대 들어 게임 FIFA 시리즈의 영향으로 게임을 즐기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 2013년 6월 17일에는 레알 마드리드 축구 학교 홍보 차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한국은 경기에서 특유의 혼을 발휘하는 것 같다."라며 경쟁력 있는 팀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 선수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레드 카드를 받은 적이 없다.
세이부 컵 축구 외수판에만 등장하는 스페인 대표팀의 주장이자 모델이다.
- 딸인 나탈리아는 매우 우수한 발레리나이다.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1980년대 공격수들 중 4위에 이름을 올렸다.
[1] 디에고 마라도나, 카레카와 공동 수상.[2] 피파 온라인 시리즈로 부트라게뇨를 알게 된 사람들의 경우, 피파 온라인 2에서 부트라게뇨의 키가 178cm로 표기되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는 EA의 실수로 후속작인 피파 온라인 3부터 정상적으로 환원되었다.[3] 세컨드 스트라이커[4] 대표팀 역대 득점 8위[5] 멕시코 사람들은 이를 '몬테수마의 복수’라 일컬으며 통쾌해 했다. 몬테수마의 복수란 멕시코 여행에서 겪는 설사, 물갈이를 일컫는 관용어로, 스페인 제국에 정복당한 아즈텍 제국의 틀라토아니 몬테수마 2세가 멕시코 방문자들에게 저주를 내린다는 의미이다.[6] 득점왕은 게리 리네커가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