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11:17:07

신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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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로

1. 개요2. 역사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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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선로()는 한국의 요리 중 하나이자 궁중음식에 속하는 요리다. 원래 명칭은 열구자탕()이고 신선로는 열구자탕의 그릇을 칭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신선로가 이 요리 자체를 뜻하는 말로 굳어졌다. 별칭으로 '구자탕', '탕구자'라고도 한다.

둥근 그릇인 신선로[1]에 고기, 해산물, 채소 등을 잘라서 넣고 소고기 육수를 부어서 끓이는 음식으로 밑바닥에 쇠고기, 무, 생선전, 처녑[2], 우간(牛肝)전, 미나리 또는 파를 담고 해삼, 전복을 넣어서 맨 위에 황백, 버섯, 홍고추, 완자, 깐 호두, 볶은 은행 등을 색조를 맞춰서 아름답게 돌려담은 음식이다. 한복과 같이 색의 조화와 다채로운 색채, 그리고 신선한 재료의 맛이 각각 느껴져야 하고 육수를 먹을 때 재료의 맛이 살아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포인트인 요리다.

색이 화려하고, 특이하게 생긴 조리기구를 써서 이색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한국 홍보 책자나 안내서 등에 표지모델로 자주 등장한다.

2. 역사

특이하게 생긴 신선로 그릇의 유래에 대해서 "해동죽지"와 "조선요리학"이라는 책에서는 정희량[3]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 따르면 정희량은 무오사화가 일어나 사초(역사 기록) 문제에 연루되어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이후 유배지에서 풀려난 정희량은 가운데 구멍이 뚫린 대접 모양의 그릇을 만들어 가지고 다니며 은둔 생활을 했는데 이 그릇은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수화기제(水火旣濟), 즉 물과 불의 이치를 활용해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정희량은 하룻동안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구한 채소들을 물이 담긴 그릇 주변으로 놓고 그릇의 중앙에 뚫린 구멍에 숯불을 넣어 태워서 아침과 저녁 두 끼만 먹으며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 독특한 그릇은 정희량이 사망한 후에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그에게 신선의 기풍이 있다고 해서 이 그릇을 신선로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신선로 그릇과 거의 같은 그릇이 '화과자'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정희량이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것으로 분석한다. 건너온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700년대 ~ 1800년대 초에 쓰여진 소문사설,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동국세시기 등 여러 책에서 열구자탕(신선로)에 대한 글이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최소한 이 시기 이전으로 보인다.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사모바르(Samovar)를 비롯하여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많은 지역에서 비슷한 그릇이 발견된다. 이들은 모두 용기 중앙 격리된 공간에 연료를 넣고 가열하여 음식을 데우며 용기 아래에는 산소를 공급해줄 구멍이 존재하고 뚜껑이 존재해 수분이 많은 요리를 조리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4]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 문화권과 그에 영향을 받은 주변부에서 광범위하게 쓰고 있는 용기이며 중국의 훠궈나 한국의 열구자탕(신선로)도 여기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궁중 요리에서는 "진찬의궤"와 "진연의궤"에 궁중 연회에 차려졌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다. 최초의 등장은 1795년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 현융원에 행차한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이며 1902년까지 총 10회 등장한다. 이 "진찬의궤"와 "진연의궤"에는 열구자탕(신선로)에 사용된 식재료와 분량도 나와있다.

근대에도 신선로는 인기가 많은 요리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는 기존의 신선로가 얼토당토 않은 형태로 변하여 이를 개탄하는 기록들도 볼 수 있다. 1921년 4월 4일 동아일보에는 "조선 신선로 그릇에 얼토당토 아니한 일본 요리 재료가 오르는 것은 실로 아는 사람의 안목에는 도저히 그것을 순연한 조선 요리라고는 할 수 없는 가셕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소."라는 이 실렸으며 1926년 3월 3일에는 "벌써 7년전 과거가 되었다만은 나는 우리나라 요리집에를 갔다가 통탄할 현상을 구경한 일이 있다. 조선의 요리독립까지 잃어버리는 것을 구경했다. 유수한 고등요리집에서 내는 조선 요리라는 것이 말이다. 스키야키라는 괴물이 신선로를 구축하고 밥상 중 중간에 진을 쳤으며 복신지라는 들쩍지근한 물건이 우리나라 짠지를 정복했다."라는 이 실리기도 했다.

해방~60년대 까지도 신선로는 한식의 대표적인 요리였다. 1959년 아세아재단 한국지부장인 제임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의 가정에 대한 언급을 해달라는 말에 "온돌 제도가 대단히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한국 요리 중 신선로는 누구나 좋아해서 모두 그 조리법과 그릇들을 미국으로들 사 보내는데 아마 앞으론 신선로가 국제적인 요리가 될 지도 모르겠어요."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정통 궁중 요리의 수요와 공급이 거의 끊겨버리며 신선로는 식당에서든, 가정에서든 보기 매우 어려운 요리가 되었다. 최고급 한식의 상징 같은 음식이지만 교과서와 관광 팸플릿에서나 보는 마이너한 요리가 된 것. 사실 신선로의 요리법 자체가 실전된 게 아니므로 작정하고 마음만 먹으면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원료 자체는 고품격 전골 요리 정도의 맛을 가지고 있어 의외로 명성 대비 폭발적인 맛을 가진 음식이 아니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잘 찾지도 않으며, 고급 한식당에서도 굳이 팔지 않으니 전통음식연구회 등 문화적 연출을 제외하면 보기 어려워진 요리가 된 것이다.

3. 기타

  • 궁궐에서는 은으로 만든 신선로를 많이 썼는데 독살을 방지하는 기능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1인용 신선로도 존재한다. 일반적인 신선로는 유기로 만들어지고 싼 것은 백동 등을 사용했다.
  • 독특한 모양과 화려한 색감으로 1980년대부터 한국 요리의 대표로서 여러 한국 요리 홍보 매체에 단골로 등장해 왔다. 특히 1988 서울 올림픽 때는 TV에 신선로 영상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정작 신선로는 한국인들 중에서도 직접 보고 먹어본 사람들이 적고 대중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요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기사[6] 같이 난감한 사례들이 있다. 일반 가정집에 신선로 그릇을 구비해 두고 신선로를 해먹는 경우도 없거니와 돈을 주고 사먹으려고 해도 신선로를 파는 식당이 거의 없다. 실제로 어지간한 고급 한정식집에서조차 신선로를 다루지는 않아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대표 한식이라는데 한국인들도 먹어본 적 없는 요리", "TV에는 나오는데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 못하는 요리"가 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구절판이 있지만 매우 번거롭기는 해도 집에서 요리할 수 있고 실제로 먹어 본 사람도 신선로보다는 많다.
  • 비슷한 형태로 '벙거짓골'이라는 요리법이 있다. 벙거지 모자처럼 생긴 그릇에 가운데에는 육수를 넣어 화로에 올리고 둘러앉아서 테 부분에 음식을 구워 먹는 일종의 회식이다. 고기를 테 부분에 구우면 육즙과 지방은 가운데의 육수로 흘러들어가고, 재료가 탈 것 같으면 국물에 덤벙 담갔다가 다시 올려 구웠다. 구울 재료가 다 떨어지면 육즙을 잔뜩 머금어 맛이 풍부해진 육수에 밥이나 면 등을 넣어서 싹싹 긁어 먹어치우는 아주 경제적인(?) 요리법이라고 한다.
  • 튀르키예에는 신선로와 모양과 구조는 같지만 목적이 정 반대인 도구가 있다. 에흘리 케이프(ehl-i keyf)라고 부르는데 동으로 만든 용기 가운데 부분에 라크 술잔을 넣고 가장자리를 얼음으로 채우면 술이 차가워지거나 차가운 상태로 유지되는 기능이 있다.구글 이미지 검색
  • 조미료 미원과 맛소금 등에 나온 로고도 신선로에서 본떠 왔다. 참고로 이 로고가 아지노모도 로고와 비슷하다고 법정공방까지 벌이다가 패소한 인도네시아에선 이 로고를 못 쓴다고 한다.[7]
  • 신선로의 가운데에 숯을 놓아 따뜻하게 유지했던 것을 착안해 반대로 드라이아이스를 넣어서 차가운 상태를 유지시킨 신선로에 빙수를 담은 곳도 있다.
  • 호텔 한식당에서도 신선로를 주문할 수 있는데 호텔에서는 숯불을 사용하기 어려우니 유럽식 탕불기 레쇼의 형태를 한 신선로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 이원일 셰프의 시그니처 요리가 신선로이다. 하지만 열구자탕을 고집하지는 않고, 매 계절마다 본인의 시그니처 전골 요리를 만든다. 여름에는 평양냉면 육수를 활용한 냉 신선로가 제공된다.

[1] 그릇 중앙에는 숯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여기에 불피운 숯을 넣어 음식을 따뜻하게 유지한다.[2] 의 위 부위로 만든 전.[3] 정희량(1469~?)은 조선 전기 김종직의 문인으로 무오사화로 인해 삭탈관직되고 유배형을 받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후 모친상을 당해 시묘살이하던 중 단옷날 바닷가에 신 두짝만 남기고 사라졌다고 기록돼있다. 이 보고를 들은 연산군은 그딴 나쁜 놈 찾아 뭐하겠느냐는 투로 그냥 넘겼다. 평소 정희량은 점복에 능해 앞날을 잘 보았다. 은둔 생활 중 곧 다가올 큰 화(갑자사화)를 인지하고 일부러 자살로 위장하고 미친 중으로 여생을 보냈다는 설이 조선시대 내내 퍼졌다. 이런 행보 덕에 벽초 홍명희임꺽정 등 소설에서는 전우치처럼 도술에 능한 기인으로 나온다.[4] 물론 차이점도 있다. 중앙아시아러시아사모바르는 수직으로 긴 편이고 수도꼭지가 달린 경우가 많은데 사모바르는 주전자 용도로 쓰는 경향이 강하지만 중앙아시아에서는 범용적인 조리기구로 쓰기에 큰 것이 많이 보인다. 반면 동북아와 동남아에선 탕을 끓여먹는 냄비에 가까우며 수평으로 넓다.[5] 이름은 ‘앨리스 루즈벨트’로 명성황후의 묘소 앞에 있는 말 석상에 올라타 사진을 찍는 만행을 보여 한국인들과 한국 주재 외국인들을 경악하게 했다. 고종은 앨리스가 대한제국을 구할 희망 비슷하게 여기며 대접했으나 이미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맺고 앨리스는 한국에 그저 관광차 들른 것이었다. 이 사람은 독설가로도 유명했는데 무능하기로 악명높은 워렌 하딩 대통령을 두고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얼간이였어."라며 디스한 적도 있었다.[6] '대장금' 드라마가 한류를 만들어내는 시대이다. 외국인들이 한식 문화관에 와서 큐레이터에게 묻는다고 했다. "이렇게 예쁜 화전과 신선로는 어디가면 먹을 수 있어요?" 난감해 하는 큐레이터마저도 먹어 본 적이 없단다. 평범한 한국인이 먹어 본 적도 없는 음식이 '한식'이라고 한다. 한류바람을 타고 온 외국인들은 대장금 에서나 나올듯한 음식을 찾지만 그건 조선시대 왕의 밥상일 뿐이다. - 푸드&메드 기획 "초보 푸드라이터", 2017년 5월 10일[7] 다만 아지노모토 로고는 국그릇 위에 다른 국그릇을 얹어놓은 모양으로 신선로와는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