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5:53:24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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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vacuation from Afghanistan
Evacuation from Afghanistan (2021), 2021 Kabul airlift
تخلیه از افغانستان ۲۰۲۱
파일:2021년 8월 15일, 미국대사관과 철수하는 헬기.jpg 파일:카불대피.jpg
2021년 8월 15일, 철수과정 중 기밀문서와 컴퓨터를 파쇄·소각하는 주 아프가니스탄 미국대사관의 모습 아프간 탈출을 위해 카불 공항 탑승교에 몰린 아프간인들
파일:아프간 미국 대사관 깃발 철수.jpg 파일: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미국 대사관에서 철수하는 직원들.jpg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내려지는 성조기 '주 아프가니스탄 미국 대사관'에서 철수하는 미 육군 소속 CH-47

1. 개요2. 배경3. 전개
3.1. 미군 철수3.2. 아프간인들의 피난
4. 각국 철수 현황5. 평가
5.1. 옹호5.2. 비판
6. 사건사고7. 여담

1. 개요

자세히 보기

2021년 8월 15일 이래로 아프가니스탄탈레반 점령하에 들어감에 따라 일어난 대규모 철수이다.

미국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시작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초강대국미국이 20년 가까이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을 치러가면서 오랜 전쟁을 했음에도 탈레반을 없애는데 끝내 실패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에 빠져들었음이 명확해졌다.

이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이어가봤자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마지못해 인정하게 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더 이상 민주주의를 전파할 수 있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 미국 철수와 함께 멸망하리라는 것을 이미 예상하였으나 아프가니스탄을 포기하고 다른 지역에 더 집중하기 위해 2021년 마침내 미군 철수를 결정하였다.

결국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무시하고 혼자 탈레반과 평화 협상을 통해 미국이 철수한 뒤 탈레반이 미국에 적대하지 말 것. 테러집단을 지원하지 말 것. 세력권을 아프가니스탄 밖으로 넓히거나 타 지역의 파슈툰 세력을 지원하여 현지 국가를 위협하지 말 것 등을 조건으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은 알아서 처리하거나 말거나 하라는 식으로 넘겨버리고 일방적인 철군을 결정했다.[1] 그나마 남베트남의 선례를 따라 아프가니스탄군에 미국이 사용하던 무기를 어느 정도 넘겨줘 탈레반과 싸울 수 있게 하였으나, 이미 붕괴되어 가던 아프가니스탄군은 미군이 7월 바그람 기지를 내주고 나가자마자 시작한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에 모든 지역을 빠른 속도로 내주고 도망가기 시작. 8월 15일 마침내 아슈라프 가니가 항복 후 망명함으로써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가 완료되기도 전에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대형 참사였으며 그로 인해 미국은 어쩔 수 없이 탈레반에게 미국 시민, 영주권 소유자, 아프간 협조자 명단을 건네가면서 탈레반에게 철수 협조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

이렇게 되자 미국을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주재한 주요 대사관들이 철수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지난 8월 15일, 가장 먼저 대사관 철수를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통보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유럽 서방국가 역시 급하게 자국 교민들과 외교관들의 철수를 통보, 본격적인 철수를 시작하게 되었고, 8월 30일에 미군의 최종 철수로 마무리되었다.

2.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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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5월 1일부터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미군의 완전 철군이 완료되지도 않은 2021년 4월 탈레반은 외신 기자들을 모아놓고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이겼다"라고 선언했다. #[2] 이 기사를 쓴 기자는 BBC 소속인데, 예전 같으면 탈레반이 외국 기자들을 인질로 잡았겠지만, 현재는 집권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통치를 선전하고 있을 정도로 여유를 부리고 있다. 향후 본격적인 국가 건설을 위해 자신들이 테러단체가 아니라 책임감 있는 하나의 집권세력임을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다른 무장단체들과 다르게 협상을 중요시하며 선참수를 하지 않는다.

미국 철수가 시작되자 탈레반은 공세에 나섰고, 아프간 정부는 순식간에 수도를 제외한 주요도시들을 내주었으며 8월 15일 사실상 항복했다. 미국이 철수하고 아프간 정부가 항복하자 아프간 정부에 협조하던 인사들 및 탈레반에게 밉보인 사람들은 난민이 되어서라도 미군 철수 전에 도망가지 않으면 그 다음이 뻔하기 때문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출 루트를 찾는 중이다.

이렇게 해서 2001년 9.11 테러에 대한 복수로 바로 시작된 전쟁은 딱 20년 만에 미군 포함 다국적군 전사, 실종자만 3,600여 명. 부상자까지 합쳐 27,000여 명의 피해를 내고 베트남 전쟁과 같이 미국의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아프간 정부군의 전사자는 65,000여 명. 반군 측 전사자는 탈레반과 알카에다, IS 등 도합 75,000여 명으로 추정되며 전체 부상자와 민간인의 피해는 추산이 불가능하다.

미국이 이 전쟁으로 사용한 전비는 적어도 약 2조 달러로 추정된다. 2017년 테러와의 전쟁(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비를 2.7조 달러로 추산했는데, 이것조차 전쟁 끝나기 전이다. 이 또한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는데, 확실한 건 미국 재정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는 사실이다.[3] 그러한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패배하고 탈레반이 재집권해버린 것이다.

3. 전개

카불 국제공항에서 아프간 탈출을 시도하는 아프간인들영국인과 아프간인의 탈출을 돕는 영국 군인들

3.1. 미군 철수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은 미군 철군 이후, 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2021년 7월 2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북쪽으로 45㎞ 지점에 위치한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미군이 완전히 철수했다. # 바그람 기지는 C-17이나 An-225와 같은 대형 수송편이 도착하는 곳으로, 미군의 모든 보급이 도착하는 매우 상징적인 곳이었는데, 미군 측은 전혀 발표나 공고문도 없이 "야반도주"(left at night without notice)를 했다고 한다. # 다만 미군의 입장은 9.11까지 철수를 마친다는 보도와는 달리 이미 7월 2일~3일 철수작전으로 철수이행률 90%를 달성했고 바그람 기지에 남은 잔존병력도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상호 협의하에 진행한 철수라 한다. #

미 국방부 관리에 의하면 아프간군에 철수작전은 통보했지만 구체적인 시각 정보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 결국 미군은 차량을 비롯한 수많은 물자를 기지에 남겨두고 떠났고, 이를 수거해 파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 본래대로라면 아프간 정부군이 인수해서 사용해야 했을 물자였겠지만...[4]

바그람 기지 철수로 미국의 현지 작전은 사실상 종료되었고, 아프간 정부군 훈련을 담당하는 자문하는 병력도 철수했다. 일단 미군은 5일, 미군 철수 후에도 대사관 경비를 위한 일부 병력을 남겨두고 아프간 안보와 자금을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남은 아프간군, 민병대가 탈레반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는 미지수. 미국 측의 평가로도 미군 철수 후 6개월 버티면 잘 버틴 것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아프간 정부와 아프간군은 남베트남 정부가 재평가될 정도로 온갖 추태만 보이다가 미군 철수가 완료되지도 않은 8월 15일에 항복하였고, 결국 미군은 탈레반 정부가 다시 세워진 아프간에서 철수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직까지 미국인 철수작전에서 탈레반과 미군의 충돌은 발생하지 않은 상황이며, 미국은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과 철수하는 미국인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탈레반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주 아프간 미국 대사관은 8월 21일 성명을 내고 "당국의 개별 지침을 받은 게 아니라면 (카불) 공항으로의 이동을 피하고 공항 출입구를 피할 것을 미국 시민들에게 권고한다"고 밝혔다. #

8월 26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국 정부가 카불 공항으로 이동하는 미국 시민과 아프간 협력자들의 명단을 탈레반에 넘겼다."고 보도했다. # 미국인과 협력자들이 탈레반의 검문소를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하겠다는 명분으로 명단을 넘긴 것이었지만, 탈레반이 이를 반대로 이용하여 협력자들을 체포 및 처형할 수도 있는 만큼 이는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

이에 대해 비판이 나오자, 바이든 대통령은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반면 민주당 소속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은 "더 자세한 사항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분명한 것은 미국인의 안전과 관련해 우리는 탈레반을 결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일:마지막 미군.jpg
8월 30일 미군 중 마지막으로 수송기에 오르는 제82공수사단사단장 크리스 도나휴 소장[5]
8월 30일, 아프간 내 미군의 마지막 비행기인 C-17 수송기가 오후 11시 59분 카불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떠나며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사실상 종료되었다.[6] 마지막으로 철수한 부대는 미 82공수사단이며 사단장 크리스토퍼 도너휴 소장이 철수대상자 전원의 탑승을 확인한 뒤 30일 밤 수송기에 탔다. 이 시점을 미국에서는 공식적인 아프간 전쟁 미군 철수 시점으로 보고 있다. 물론 수송기가 아프가니스탄의 영공을 빠져나간 것은 31일 새벽이지만 애초에 31일까지 철수하기로 했으므으로 당일 철수한 셈이다.

물론 정식으로 완전히 발을 빼는 시점은 9월 11일이므로 미국과 탈레반은 기술적으로 여전히 전쟁중이었고, 미군이 재개입하더라도 9월 11일 이전까지는 국제법상 문제도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완전히 발 빼는 시점이라고 공식발표하고 탈레반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형태로 추인한 날이므로 서류상의 지속기간일 뿐이다. 실제로도 9월 11일 미국은 탈레반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았고 탈레반 또한 자체 승전기념식을 이 날 열면서 9.11 테러 당일부터 미국의 보복으로 시작된 전쟁은 만 20년 만에 미국의 아프간 철수로 완전히 끝났다.[7] 매켄지 사령관은 미국 국방부 브리핑에서 "아프간 철수의 완료와 미국 시민, 제3국인, 아프간 현지인의 대피 임무 종료를 선언하기 위해 섰다"고 말했다. 대피작전이 본격화한 8월 14일 이후 12만3000명이 아프간을 탈출했다고 전했다. 여담으로, 미국의 마지막 비행기가 출발했다는 탈레반 경비대원의 발언을 전하면서 카불에 폭죽이 울렸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

3.2. 아프간인들의 피난

사이공 어게인이 임박하자 미군에 협력해왔던 1만 8천명의 아프간인들이 미군과 함께 자국을 떠나기 위해 미국 비자를 신청했다고 한다. # 미국 정치인들도 탈레반이 집권하면 전 아프간 대통령 모하마드 나지불라 꼴이 확실한 이들에게 빨리 비자를 주도록 정부에게 촉구하고 있다. #[8]

미국측이 아프간인 수만명을 제3국으로 이송한다고 밝혔다. 탈레반이 지금도 찾아내서 열심히 죽이고 있는 미국과 동맹국에 협력한 아프간인과 그 가족들이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 한국도 파병부대에 고용된 아프간 통역사 등 협력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아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나마 해당 인물은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일단 탈레반 보복이 확실한 긴급한 아프간인들을 대상으로 3국 이송후 비자심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이 모두 비자를 받는다는 보장이 없고 현재 절차도 늦어져서 앞날은 기약할 수 없다.

사이공의 경우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보트피플로 탈출이라도 할 수 있었으나 카불은 내륙수도여서 탈레반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특수부대 아니고는 육로로 통해 탈출이 불가능하며 뚫고 가도 인접국들이 전부 긴장하고 있어서 받아 준다는 보장이 없다. 이러한 지리적인 제약 때문에 많은 난민들이 카불 국제공항으로 대피했다. 공항으로 대피한 사람들의 모습(4번째부터) 카불 국제공항에서 최소 17명이 부상했다. #

8월 16일에는 카불 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한 난민들이 이륙하는 미 공군의 C-17 수송기를 따라가 바퀴나 날개, 외부 프레임 등에 매달려 탈출을 기도했고 이륙 이후 몇몇 난민들이 고공에서 비행기를 놓쳐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비행기에 매달리는 난민들의 모습 이후 해당 수송기의 바퀴 쪽에 매달렸다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난민의 시체 3구가 카불의 카히르카하나 구역의 민가에서 발견되었다. 이때 민가로 추락한 시신들의 상태가 너무 충격적이라 이를 목격한 사람이 기절하기도 했다. 이후 랜딩기어에서 시신 2구가 추가로 발견되기도 했다. #[9]

8월 16일 밤에 카불 국제공항이 민항기를 상대로 영업을 재개하였으며, 공항 관제 업무도 미국이 맡고 있다. #

미국 군사전문매체 디펜스원은 15일.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640명아프가니스탄인들을 태우고 카타르 알우데이드 공군기지까지 운항한 미 공군 C-17 내부를 촬영한 사진을 입수해 보도했다. #[10] 그러다가 5일이 지난 20일에 트윗으로 탑승한 피난민이 640명도 아니고 183명이 더 많은 823명이라고 발표했다. #

8월 19일에는 3일 전인 16일 이륙 중이던 수송기에서 추락한 난민들의 시신 회수 및 신원 조회가 이루어졌는데, 사망자 중에는 아프가니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활동했던 선수인 자키 안와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 또한 SNS에서 화제가 된 영상의 비행기에서 추락하는 두 사람은 미성년자 형제였으며 카불의 시장에서 과일을 팔아 홀어머니를 부양해 왔다고 한다. 둘은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하자 도망치기 위해 함께 수송기 밖에 매달렸다가 추락해서 사망했고 시신은 다음 날 어머니에게 인계됐다.

한편 비행기에서 추락한 난민들을 “카불 스카이 다이빙 클럽”이라 조롱하는 내용이 담긴 티셔츠가 판매되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11]

어린 자녀들을 둔 아프가니스탄의 부모들이 아이 만이라도 해외로 탈출시키기 위해 아이를 철조망 위로 넘기거나 철조망 너머로 던지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미군과 다른 국가의 군인들에 의해 받아진 아이들도 있지만 철조망을 넘다가 크게 다치거나 죽는 아이들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

일부는 미국 국회나 지방의 상·하원 의원들의 지원을 통해 탈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 민간 구호그룹 등에서 아프가니스탄 내 미국인과 아프간인 대피를 위해 전세기를 마련했지만 미국 국무부의 벽에 가로막혀 실패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 선수와 관계자 등 약 100명을 탈출하도록 도왔다. #

아프가니스탄 성소수자들도 탈출을 했다. #[12]

4. 각국 철수 현황

4.1. 대한민국

주아프가니스탄 대한민국 대사관은 6월 10일, 아프간 주둔 NATO 및 미군 철수가 진행됨에 따라, 치안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을 감안하여, 6월 20일까지 재외국민은 모두 출국을 완료하기를 요청하였다. 이 때를 기점으로 교민 등 체류 한국인들의 철수가 본격화되었다.

8월 15일, 공식적으로는 대사관에서 유관국과 협조하에 교민들과 함께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 외교부는 이날 밤 공지를 통해 대사관을 잠정 폐쇄키로 결정하고 공관원 대부분을 중동 지역 제3국으로 철수시켰다고 밝혔다. # 당국자는 "아프간에 체류 중인 재외국민(현재 1명)의 안전한 철수 등을 지원하기 위해 현지 대사를 포함한 약간 명의 공관원이 현재 안전한 장소에서 본부와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8월 16일부로 최태호 주아프간 한국 대사 및 핵심 직원 2명을 제외한 한국 교민 및 한국 대사관 직원 전원이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프가니스탄 탈출 과정은 매우 긴박했는데, 정의용 장관 주재로 외교부 본부와 아프간 한국 대사관 사이의 긴급 화상회의가 진행되는 도중에 우방국으로부터 "지금 당장 탈출해야 한다. 상황이 급박하니 지금 당장 카불 공항으로 가라."라는 메시지를 수신하였고, 정의용 장관은 즉시 아프간 철수 작전을 실시할 것을 긴급 지시했다.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대사관에 도착한 미군 헬기[13]에 올라타 공중으로 카불 국제공항까지 이동하였으나, 공항에서 공습 경보로 2시간 정도 대기 후 제3국행 비행기에 올라타 출국을 하는데 성공하였다.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던 교민 1명은 이보다 조금 뒤늦게 출국하였다. #1 #2

8월 17일 오전, 남아있던 교민 1명 및 대사관 인원 3명이 전원 출국했다. # 해당 시간부로 주아프가니스탄 대사관이 담당하던 모든 업무는 주카타르 대사관이 대신한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교민 1명은 개인 사업 때문에 남아있었는데, 자신 때문에 대사관 직원들까지 남아 있자 미안한 마음에 미라클 작전을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4.1.1. 미라클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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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영국

영국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주둔 기간 협력했던 현지인들의 신속한 영국 이주를 돕기로 결정했다. # 이것이 "피팅 작전(Operation Pitting)"이였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가 자국군이 파병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거의 철수했다고 밝혔다. #

카불 주재 영국 대사관이 주변의 예상보다 빨리 철수하였다. #

영국인과 아프간 난민들을 태운 영국 왕립 공군 비행기가 8월 18일 새벽 런던 북서쪽 왕립 공군 기지인 브리즈 노튼에 도착했다. 또한 영국도 추가 병력을 파견해 공항 안전 확보에 나섰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한 위험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수도 카불로 여행을 떠났던 무모한 영국 대학생의 행동에 논란이 불거졌다. 이 대학생은 영국군에서 급파한 수송기를 타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셀카를 찍어 올리는 등 철없는 행동을 보였다. #

8월 29일자로 영국군 전원이 아프간에서 철수했다. #

4.3. 프랑스

프랑스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자국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카불 주재 자국 대사관을 카르자이 공항으로 이전했다. 프랑스는 미군NATO 병력 등의 철수 개시 이후 탈레반이 점령지역을 확대하자 지난 5월부터 자국민 대피에 나섰으나, 탈레반이 카불로 진입하자 자국민 대피에 속도를 내고 있다.

카불 주재 프랑스 대사관에 따르면 특수부대를 태운 프랑스 군용기가 17일 화요일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 착륙했다. 대사관은 에어버스 A400M 군용 수송기가 프랑스 국민을 태운 후송편으로 이륙했다고 전했다.

직원들의 철수를 돕던 탈레반 1명이 협력자로 오인받아 그대로 같이 수송기에 탑승하였고, 중간기착지인 UAE에서 하기를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파리까지 오게 된 해프닝이 일어났다.

4.4. 독일

독일이탈리아와 함께 아프간 주둔 군대를 철수시켰고, 대사관 또한 폐쇄한다고 밝혔다. #, #

8월 18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수도 카불 공항의 극심한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독일의 첫 아프간 철수기에 겨우 7명만 탑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

8월 18일(현지시간) 기준, 독일 외교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독일연방군 수송기로 카불을 탈출한 이들은 아프간인 202명, 독일인 189명, 유럽연합(EU) 시민 59명과 다른 국적 51명 등 501명이다. #

주 아프가니스탄 독일 대사관은 이날 이메일로 탈레반의 통제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며 자국민에게 카불 공항으로 가지 말 것을 권고했다. #

독일 내무부가 자국 협력자, 인권 운동가 및 그들의 가족 등 아프가니스탄인 약 2,600명에게 체류 허가증을 발급했다. #

4.5. 인도

인도아프가니스탄과 접경국이라 아프간 내에 인도 교민도 많이 거주하고 있고 탈레반의 유입도 쉬워서 비상이 걸렸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북부 최대 도시인 마자르이샤리프에 대규모 공세를 벌일 것으로 예상되자 인도 정부는 특별기를 투입해 현지 자국민을 긴급 대피시키기로 했으며 현지 영사관도 잠정 폐쇄한다고 밝혔다. #

인도도 공군기와 민항기를 동원해 탈출을 지원하고 있다. 8월 22일 오전, 인도 공군기가 인도인 등 168명을 태운 후 카불을 출발, 몇 시간 후 수도 뉴델리 인근 힌돈 공군기지에 도착하는 등 이날만 약 400명에 대한 자국 내 이송을 마쳤다. 그렇지만 아프간 내 여러 곳에는 아직 400∼1천 명의 인도인이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

4.6. 일본

일본은 주 아프간 일본 대사관을 철수했다. # 이후, 터키 이스탄불에 임시 사무소를 설치했다.

대피시키기 위해 수송기 파견을 검토한다는 얘기가 처음 나온 시점은 22일이었다. 스가 총리는 그날 아키바 다케오 국가안보국장 등과 대책을 논의한 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 자국민과 현지 대사관 직원 500여 명의 대피를 위해 자위대 수송기 3대를 파견한다. 항공자위대 소속 C-2 수송기 1대가 8월 23일 저녁 아프간으로 출발했고, 24일에는 C-130 수송기 2대가 현지로 향한다. #

8월 24일, 일본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주재 일본대사관과 일본국제협력기구 등에서 근무한 현지 직원과 그 가족에 대해 난민 지위를 부여할지를 놓고 검토에 들어갔다. #

8월 25일, 추가 파견하려던 전용기(보잉 777-300ER로 추정)가 아이치현에서 출발하려다 출발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홋카이도 치토세 공항으로 되돌아 갔다. # 단, 추가 파견될 전용기는 인원 대피가 아닌 물자전달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에 남은 일본 등 국외 대피를 위한 수송기가 현지 시간으로 25일 밤 카불 공항으로 향했지만, 대피를 희망하는 인원들이 공항에 도착하지 않았고, 25일에는 수송되지 않았다고 한다.

8월 26일에 보도된 내용(한국어)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 남은 일본 등 국외 대피를 위한 수송기가 현지 시간으로 25일 밤 카불 공항으로 향했지만, 대피를 희망하는 인원들이 공항에 도착하지 않았고 25일에는 수송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소위 평화헌법의 존재로 무장제한을 두는 자위대법 84조를 들어서 대피 작업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항까지 자력으로 이동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14] 자위대는 26일에 C-130 수송기 2대로 카불로 진입해서, 대피를 희망하는 인원을 이슬라마바드에 보낼 예정이다.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탈레반 측이 자신들은 일본과 좋은 관계를 가지기를 원하며 일본인들을 보호할테니 자위대를 철수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고 한다. #

이에 일본은 계획을 바꿔 한국 사례를 모델로 버스로 집결지를 지정해서 인원을 한 번에 수송하는 방법을 추진했으나, 탈레반의 내국인 출국 금지 선언으로 계획이 꼬이다가 설상가상으로 IS카불 공항에 테러를 저지르면서 일본인들의 탈출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으며 파견된 자위대원들도 철수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15]

결국 정세 판단 실패로 작전 실패 뿐만 아니라 자위대원들의 신변도 위험하게 되었다. 뒤늦게 한국의 방식을 모방해 버스를 대절해 수백 명을 이송하고 있었으나, 이송 중 폭탄테러가 발생해 공항 진입이 불가능해져서 모두가 발이 묶인 상황이며 27일까지 이송을 완료한단 계획도 실패했다. 심지어 탈레반과의 의사소통도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철수 시한인 31일까지도 철수가 성공할지, 심지어 파견한 자위대원이 무사히 돌아올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 만약 이 상황에서 파병한 자위대원마저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경우 스가 행정부는 생각보다 큰 타격을 받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방위성과 자위대에서는 내각의 오판으로 자위관들이 위협에 처했다며 불만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8월 27일, 잔류하던 일본인 1명(교도통신 통신원의 야스이 히로미(安井浩美))와 14명의 아프가니스탄인이 자위대 수송기 C-130으로 파키스탄으로 대피했으며,#[16] 실질적으로 일본의 구출작전이 종료되어 버렸다. # 이 14명의 아프간인조차도 자위대의 구출 대상이 아니라 미국의 요청에 의해 아프가니스탄 현지 공무원을 탈출시켜준 것이다. #[17]

외무성은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자국민들도 내팽개친 채 대사관 직원들이 먼저 대피하는 바람에 더 큰 비판을 받고 있으며, 스가 총리의 지지율 확보 목적이었는지 대피 작전과 수송기 파견을 엠바고 없이 모두 언론에 공개한 점 역시 지적받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국민을 일시적으로 안심시켰을지는 몰라도 작전 수행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언론 보도를 보고 구조작전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위대 역시 창설 이래 최초의 외국인 구출 실적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프간에 남아있는 일본인과 수백 명의 아프간 협력자들에 대한 구출이 실패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그동안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해외 자국민 탈출 훈련이 사실상 속 빈 강정에 불과했다는 점이 드러나 여러 모로 체면을 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일본 정부가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이 너무 늦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8월 초부터 이미 물밑에서 대피작전을 준비하면서 연락망과 집결지 등을 준비해뒀고, 8월 22일에는 대사관 공관원들이 아프간으로 재입국해 미국과의 협조로 탈레반 측 검문소 통과, 버스 대절 등을 숨쉴틈 없이 진행했는데, 일본은 바로 이 8월 22일에서야 수송기 파견이 검토되었고 다음날인 23일이 되어서야 자국민과 협력자 피난 활동을 개시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관원들이 현지에서 직접 상황을 컨트롤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철수한 공관원들이 재입국하지도 않은 채 본국에서 파견된 외무성 직원들이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작전을 진행해야 했다. 구출작전은 단순히 수송기만 파견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한 대가는 너무 컸다.

반면 이를 기회로 자위대법의 개정을 촉구하는 언플도 진행되고 있는데, # 자위대법상 대상 국가 정부의 승인 없이는 자위대가 활동할 수 없어 문제가 발생했다는 논리다. 물론 상술했듯이 공관원들이 직접 재입국해 구출작전을 진행한 한국에서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발을 넘어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이는 근본적으로 일본의 해외 대피작전이 철저히 자위대 위주로 짜여져 있기 때문. 안 그래도 군사 문제를 잘 모르는 강경파들의 군에 대한 환상이 심각한 일본인데, # 여기에 2013년 알제리 인질 사망사건을 거치면서 일본 외무성의 분쟁지역 개입이 위축되고 자위대법을 개정하면서 그 업무분장을 방위성과 자위대에 거의 떠넘겨버렸다. 2014년 이후 실시된 일본의 재외국민 대피훈련을 보면 하나같이 자위대가 해당지역 시가지에 진입해 국민 및 대상요원 구출까지 담당하는 형식이며, 외무성의 역할은 인원들의 출국수속을 지원하거나 잘하면 정부 전세기를 제공하는 수준이다. 한국과 달리 대사관 직원들의 재입국, 현장지원이 전무했던 것도 대사관을 철저히 보호대상으로 한정하고 역할을 부여하지 않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심지어 종종 언론에 흘러나오는 한반도 전면전 시 대피작전을 봐도 주로 주한미군의 협조로 일본인들을 집결, 수송한다는 것이지 외무성이나 주한일본대사관의 역할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

아프간인 대피 지원을 위해 파견한 자위대를 이르면 9월 1일 철수하였다. #

구출하지 못한 아프가니스탄인 가운데 4명이 자력으로 탈출한 뒤 일본에 입국했다. #

9월 30일, JICA의 현지 직원과 그 가족 등 16명이 육로로 인근 국가로 출국해서 일본에 입국했다. #

10월 8일, 일본대사관 현지직원 등 53명이 민간 항공기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카타르로 출국하여 일본에 도착했다. # 다행히도 국제 문제를 우려한 탈레반이 일본인들에게 손을 대지 않은 덕이다.

4.7. 이탈리아

이탈리아도 독일과 함께 아프간 주둔군대를 철수시켰다. #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탈리아 대사관이 자국 수도 로마에 있는 외무부 청사에 임시 공관을 마련했다. #

이탈리아군 수송기 편으로 아프간 빠져나온 이탈리아인들

아프간 난민 100여명을 태우고 카불을 탈출하던 이탈리아 공군기를 향해 탈레반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총기를 난사하였다. 다행히도 항공기에 피격된 총탄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IS의 카불 테러 계획이 미 정보당국에 입수되고, 카불 공항 주위에서 IS 호라산지부가 자행한 폭탄테러가 발생하여 1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탈레반과 추종세력들, IS의 공격으로 난민과 외국인 철수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탈리아 공군기 피격 위기, 폭탄테러 관련 기사

8월 28일, 마지막 철수 작전으로 종료되었다. #

4.8. 기타 국가

위의 나라들 외에도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호주 등의 나라들이 군인이나 교민, 아프간인 아프간 탈출을 위해 수송기를 보내고 있다. 아프간 탈출한 네덜란드 사람들 / 아프간 철수 작전 준비하는 스페인 공군기 / 호주군 철수 군수송기 탄 호주인들과 아프간인 협력자들

네덜란드는 지금까지 아프간 카불 공항으로 총 여섯 대의 수송기를 보냈다. 네덜란드 국방부는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이후 수도 카불에서 항공기를 이용해 자국민, 아프간인 등 총 800여명을 대피시켰다고 밝혔다. 6차례의 수송기 투입 중 아프간에 접근도 못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벨기에의 한 공군기지에도 카불에서 빠져나온 226명을 태운 항공기 2대가 도착했다. 벨기에 또한 여러 차례 수송기를 보냈는데, 1명도 수송 못하고 실패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정부 고위직, 외교관, 기업인 등을 보호하는 사설 경호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네팔 구르카들도 철수했다. #

러시아도 IL-76 수송기 3대와 IL-62 1대를 이용해 파견하여, 러시아인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국 국민, 우크라이나인 등 500명 이상을 대피시켰다. #

8월 27일부로 모든 터키군이 철수하였다. # 아제르바이잔군도 같이 철수하였다. #

인도네시아도 자국 외교관들과 교민들을 항공편으로 철수시켰고, 카불 주재 대사관을 폐쇄했다. #

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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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마지막 수송기가 카불 공항을 떠난 뒤 철군을 축하하는 탈레반 대원들의 총소리와 섬광이 카불의 밤하늘을 갈랐다. 이는 누가 승리자인지 카불과 아프가니스탄 전역, 그리고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탈레반에게 패배했음을 알렸다. 철군 과정에서 미국은 과거엔 인정하지 않았던 탈레반에게 협조를 받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하는 자국 시민과 아프간 현지 협력자들의 명단을 탈레반에 넘기기까지 해야 했다. # #

철수가 워낙 급박하게 이루어져서 대피 의사가 있지만 아프간에 남은 미국 시민권자 100~200명이 발생했으며, 협조자들도 떠날 의사가 있었지만 발이 묶여 남겨져야 했다. 여기에는 미국 영주권자들도 있었다.

철수에 대해 토비아스 엘우드 영국 하원 국방위원장은 트위터에 “(영국과 미국은) AK-47 소총, 로켓추진수류탄, 지뢰로 무장한 반군에게 패배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첨단 동맹”이라며 “어떻게 ‘미국이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로리 스튜어트 전 영국 국제개발부 장관도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철군 결정에 대해 “부끄럽고 불필요한 배신”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대통령직에 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젊은 사람을 집에 데려가 ‘삶을 바꿔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갑자기 그를 내쫓고 문을 잠그는 것과 같은 행위”라며 “민주주의와 자유의 수호자로서 미국의 역할이 다시 위험에 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WP는 “영국은 스스로를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 간주하는 국가인데, 이례적으로 철군에 대해 가장 노골적인 비판을 표명했다”며 “영국은 미국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고 분석했다.

5.1. 옹호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정권을 무력으로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정권을 세웠으며, 경제나 군사적으로 엄청난 지원을 했으나 민주 정권은 전혀 자립하지 못했고, 언제까지나 도와줄 순 없을 따름이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미군이 빠지자마자 탈레반이 무력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재점령한 것이다. 탈레반의 점령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가 그동안 돈도 대주고 훈련도 시켜준 아프간 군대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아프간 정권의 자립 실패를 꼬집기도 했다.

그 반례로 2022년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우크라이나는 온 국민이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데에다가 미국의 도움을 받으며 군사강국인 러시아를 상대로 상당히 선전하고 러시아를 고전으로 몰고 가기까지 했다.[18] 그래서 이때 "미국이 아프간에게 바란 모습은 이런 거였을 것이다"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쓴 군비의 1%도 안 되는 지원으로 탈레반보다 몇백배는 강력한 러시아를 저지하는 우크라이나의 모습은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일으킨다.

바이든 대통령은 2009년 부통령으로서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을 당시, 아프간 측에서 아이들이 학교를 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미국이 나서야 한다고 요청하자 욕설까지 하며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아프가니스탄 증원은 실책으로 평가받으며, 트럼프 대통령 역시 아프간 철수를 공약하고 약속하는 등 여러 모로 바이든 대통령 이전부터 아프간 전쟁은 이제는 끝내는 것이 중론이긴 했다.

종합적으로 옹호 측의 의견을 정리하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 테러를 종용하는 기존 정권을 몰아내고 민주주의 친미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수립까지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금전과 군사 훈련까지 지원했으나 아프간 정권은 자립에 실패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성장으로 동아시아에 전력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돈과 병력을 아프간에 무제한적으로 쏟아붓는 것은 국제 전략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판단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5.2. 비판

상술한 이유들로 인해 비판 측에서도 아프간 철군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9.11 테러테러와의 전쟁이 오래되었고, 이제 미국의 적은 중동에서 중국으로 이동한 만큼 아프간에서도 철군을 하는 것 자체는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트럼프가 약속한 것이더라도 바이든 대통령의 권한으로 철군을 연기할 수 있었다. 철군이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약속이 되어있다는 이유로 성급하게 철군을 하는 바람에 미국이나 아프간이나 여러 모로 피해가 속출했다.

바이든은 후임자에게 짐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철군을 서둘렀다고 해명하기도 했지만, 서두르지 않았어도 임기 안에 철군은 가능했을 것이다.

6. 사건사고

6.1. 카불 공항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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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 이 사건을 베트남 전쟁 당시 사이공 함락 때 미국을 비롯한 외교공관들이 철수한 프리퀀트 윈드 작전에 비교하는 여론이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을 '21세기판 사이공 사건' 또는 '21세기판 프리퀀트 윈드 작전'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영화 모가디슈를 떠올리거나 아프가니스탄 국적 조력자 철수 작전에 대해서는 언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흥남 철수작전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았다.
  • 철수 이후 서방국가들은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소멸을 인정하여 대사관을 철수하고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해외거주중이며 탈레반 치하 아프간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아프간인들은 난민으로 대우하여 일단 정착을 허가했다.[19] 탈레반이 새 정부가 되려고 하고 있지만 UN에서 승인하지 않고 있다.


[1]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안전보장조약 등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만들지 않고 오직 지원만 했는데, 이럴 때 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러시아를 경제제재하고 우크라이나에는 무기대여법까지 통과시키며 지원은 하고 있지만, 정작 그 지원을 뒷받침하는 동맹조약이나 기타 안전보장 체제에는 참여시키지 않음으로써 최악의 경우 버릴 수 있도록 해놨다. 그나마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일방적으로 밀어버리지 못하고 있으므로 지원은 계속하는 중이다.[2] 그 와중에 링크된 영상의 첫 화면에서 첫번째로 서 있는 탈레반 병사는 병장 계급장과 명찰이 그대로 붙어 있는 구형 한국군 야전상의를 입고 있다.[3] 미국이 군사적, 경제적으로 엄청난 강대국이라고 해도 테러와의 전쟁은 예상보다 미국에 매우 큰 타격을 주었다. 소련과의 군비 경쟁에서도 공산권이 붕괴되기 직전에 미국 역시 무너질 듯한 위기에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소련이 무너졌기 때문에 벗어난 것이며 실제로 소련 붕괴 이후 국방비를 엄청 감축하고 세금도 대폭 올려야 했는데,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대통령 재선 실패의 원인 중 하나였다. 테러와의 전쟁은 무기는 갖출 게 별로 없는데 10만이 넘는 최첨단 군대를 수천km 외국에 박아놓고 상시 전투태세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나마 대게릴라전 위주로 전투를 해서 물자 소모량이 그나마 크지 않아 정도로 지출이 끝난 것이지 전면전이었으면 미국 경제가 진짜로 파탄났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때 실수를 교훈삼아 중국 상대로는 일찌감치 소련급의 국력과 군대를 갖추기 전에 미국에 반기를 드는 순간 무너뜨릴 생각으로 두 손 들고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의 일원이 될지, 아니면 그냥 소련처럼 몰락할지 선택하라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4] 워낙 유통망이 좋지 않아 에비앙 500ml 생수병 묶음까지 헬기로 아프간 경내에 보급하는 것이 아프간 전쟁 퀄리티다. 파키스탄과 파슈툰족, 그리고 각종 범죄단체와 약탈자들 때문. 어지간하면 버리는 것이 수지타산에 맞는 극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5]제18공수군단군단장. 참고로 델타 포스 출신이다. 미 국방부 트윗[6] 미국 정부 인사들은 모두 빠져나갔으나 미군은 카불공항 한정으로 자국민 외 외국인 철수를 지원하기 위해 30일 밤까지는 남아 있었다. 이외 아프간 코만도들 중에 철수를 지원한 소수가 미군과 함께 빠져나가는 것을 허락받았다. 단, 이들은 전쟁 종료와 함께 군인의 신분을 잃었으므로 난민신분으로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다.[7] 탈레반은 9월 11일 이후 본격적으로 NRF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므로 이때까지는 미국의 눈치를 조금이나마 봤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협상이 결렬된 것도 있었다.[8] 심지어 월남전 당시 북베트남은 이념과 진영이 달랐을 뿐 정상적인 국가였기에 승전 이후에도 일부의 사례를 제외하면 적대국 국민이나 과거 남베트남 국민들에 대한 학살 행위를 자제했지만, 탈레반은 정상적인 국가를 지향하지도 않을 뿐더러 불신자는 처형의 대상이 되므로 훨씬 더 급박한 상황이다. 애초에 탈레반 자체가 북한이 나아보일 정도인 조직인지라...[9] 발견된 사망자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수송기의 다양한 부위에 매달려 탑승을 시도했는데, 수송기 특성상 높은 고도로 장시간 비행하기 때문에 매달려 있다고 해도 산소결핍이나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으며, 아음속으로 비행하는 제트수송기에 안전 장치도 없이 결코 오래 매달려 있을 수 없기에 확인되지 않은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10] 원래 C-17은 134명 정도의 완전무장 공수대원들이 탑승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아프간 난민들이 화물을 거의 챙기지 못한 채 피난길에 오른 것을 감안해도 일단 단순하게 인원수로만 계산하면 기준으로 이날 해당사진의 C-17은 설계의 5배에 달하는 인원들을 과적해서 수송한 것이다.[11] 전형적인 노이즈 마케팅이다. 욕하면서도 일단 관심을 가지면 어찌됐건 티셔츠 자체가 아니라도 제조사에 관심을 가지니까 나중에 매출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12] 자기들에게 반대한 자들도 항복유무와 관계없이 재판도 하지 않고 끌어다 죽이는 탈레반인데 이슬람권에서 거의 페도필리아와 동급 취급받는 동성애자들이라면 그냥 적발현장에서 대놓고 사형에 처해도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13] 아프가니스탄 정세가 워낙 불안정하다 보니, 외교부는 애초부터 철수계획 메뉴얼을 만들었고, 유사시 아프가니스탄 탈출을 미군이 도와주기로 미국과 MOU를 맺은 상태였다고 한다.[14] 하지만 한국의 경우 비무장 공관원들이 직접 카불 시내로 들어가 아프간인들을 인솔하고 국방부 특임대는 공항 안에서의 경호를 담당했으며, 일본 역시 뒤늦게 버스 집결로 노선을 변경한 것을 보면 그냥 일본 측이 상황을 오판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15] 탈레반의 검문소는 미군의 승인이 있어야 통과할 수 있었다. 그걸 미리 안 한국은 카불 함락 2주전에 미국이 탈레반과 협의할 때 한국 협력자 아프간인들을 무사히 대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미군과의 협조로 버스를 통해 무사히 검문소를 통과했다. 반면 일본은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한 뒤에야 부랴부랴 긴급소집 후 자위대를 파견했는데, 탈레반이 이미 검문소를 설치한 상태였고 게다가 미군 승인없이 직접 진행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또한 군사작전에 대해 언론에 홍보한 것이 독이 되었다.[16] 그녀의 남편은 아프가니스탄 현지인으로, 8월 26일 버스대피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 8월 27일 카타르대사관에서 제공한 차량에 아내 야스이 히로미와 동승하려 했으나 탈레반의 제지로 히로미만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17] 몇몇 유튜브 채널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한국 정부의 엠바고 때문에 '일본은 한국보다 비행기를 더 먼저 보내고도 구출에 실패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먼저 수송기를 파견한 건 한국이지만 엠바고 때문에 일본이 수송기를 파견하고 하루 뒤에야 그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18]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징집 회피자 비율이 점점 늘고 있다.[19] 다만 대만과 같은 사례는 아니다. 국가 자체의 존재는 인정하며 단지 무정부상태로 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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