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1-25 15:43:43

엘튼 존/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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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ty Sky
1969.06.06
Elton John
197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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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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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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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
197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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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10.05
Caribou
1974.06.24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
197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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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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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10.22
A Single Man
1978.10.16
Victim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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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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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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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틀즈
1.1. 존 레논1.2. 폴 매카트니1.3. 조지 해리슨1.4. 링고 스타1.5. 조지 마틴
2. 로드 스튜어트3. 프레디 머큐리4. 다이애나 스펜서5. 빌리 조엘6. 에미넴7. 레이디 가가8. 메리 J. 블라이즈

1. 비틀즈

엘튼 존비틀즈의 멤버들과 친한 사이를 유지했다. 사실 비틀즈 해체 이후로 각 멤버들과 협업을 이룬 뮤지션들 중에서 엘튼 존은 항상 거론되고, 에릭 클랩튼과 더불어 모든 멤버들과 무대에서 협업을 가진 적이 있는 몇 안되는 뮤지션이다.

1.1. 존 레논

존 레논과의 우정이 깊었기에 엘튼 존은 공연에서 가끔씩 존 레논을 언급하곤 한다. 엘튼 존과 존 레논의 인연은 1969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엘튼 존이 DJM 음반사에서 일했을 때 녹음하던 데모를 존 레논이 딕 제임스 사무실로 보냈다고 한다. 이후 엘튼 존이 미국 진출 공연을 통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시기인 1970년 8월, 존 레논은 엘튼 존의 대표곡 Your Song을 우연히 듣게 되었고 큰 감명을 받았다. 1975년 롤링 스톤 인터뷰에서 밝히길, 비틀즈 시절 이후의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자 개선된 영국 가수의 보컬이라고 칭찬했다.[1]

엘튼 존은 1964~65년 경, 비틀즈 런던 공연에 간 적 있었는데 '신을 본 것' 같은 느낌이라고 회고했다. 처음에는 존 레논을 만나기 두려워했으나 1973년 10월 24일, Mind Games 광고 촬영 날에 존 레논과 첫 만남을 가졌을 때 마치 옛 고향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존 레논은 1970년대 인터뷰에서 엘튼 존에 대해 칭찬하면서도 그에게 비틀스러운 느낌을 받았다고 한 적도 있다.[2]

둘의 우정이 가장 돋보였던 해가 바로 1974년이다. 서로의 앨범 Caribou, Walls and Bridges에 참여하여 녹음을 도와주었다. 각각 1970년 1월, 1970년 7~8월 녹음. 존 레논은 엘튼 존의 "The Bitch Is Back"에서 탬버린을 연주했고 엘튼 존은 존 레논의 "Whatever Gets You Through The Night"에서 오르간과 백 보컬, "Surprise, Surprise (Sweet Bird of Paradox)"에서 키보드, 백 보컬을 맡았다. 그리고 존 레논의 One Day At a Time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커버해서 녹음한 버전을 1974년 11월에 싱글 A/B면에 수록해서 발매되었는데 이 곡은 1975년 1월 첫 주에 빌보드 차트 1위로 올라 큰 히트를 거두었다. 이후 두 곡은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의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었다.

존 레논이 엘튼 존 버전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했는데 정작 곡을 작곡한 당사자는 코드를 잊어먹어 엘튼 존 밴드의 기타리스트 데이비 존스턴이 레논에게 가르쳐야 했다.[3]

1974년 11월 28일, 역사적인 순간으로 꼽히는 뉴욕 공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영상. 이 영상은 공연 당시 관객 중 한 명이 몰래 슈퍼 8 카메라를 반입하여 촬영했고 영상은 일부만 남아있다. 해당 공연은 정식으로 촬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일한 영상이 되어버린 셈.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Funeral For A Friend가 입힌 영상으로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다가 2014년 11월 28일, 공연 40주년을 맞아서 엘튼 존의 공식 유튜브 계정을 통해 업로드되었다. 존 레논의 "Whatever Gets You Through The Night"이 빌보드 1위로 기록하면 존 레논이 1974년 11월 28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릴 예정이던 엘튼 존 공연에 참여할 것이라고 내기했고 이 곡이 정말로 1위로 기록되어 내기에 이기면서 존 레논이 엘튼 존 공연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4]
파일:external/static1.squarespace.com/JohnLennon_EltonJohn74.jpg
엘튼 존 레논. 1974년
엘튼 존은 존 레논에게 Imagine은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존 레논은 "한물간 가수처럼 대표곡이나 부르기 싫다"라고 하여 신나는 곡들을 불렀고 Whatever Gets You Through The Night,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I Saw Her Standing There 총 3곡을 엘튼 존과 같이 불렀다. 공연 중, 엘튼 존은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가 존 레논이 쓴 최고의 곡 중 하나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공연은 존 레논이 참여했다는 것으로만 해도 대단한 의의를 남겼고, 엘튼 존도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존 레논을 무대로 부르는 순간 사방에서 어마어마한 함성 소리가 길게 이어졌으며 감격스러워하며 눈물을 흘린 엘튼 존 밴드 멤버도 있었다.[5] 정작 존 레논은 1972년 뉴욕 공연 이후로 2년 만에 서는 공연이라서 상당히 긴장하는 바람에 백스테이지에서 양동이에다 구토를 했다.[6]

이 공연의 존 레논 실황은 1976년에 발매된 엘튼 존의 라이브 앨범 Here And There의 1995/96년 리마스터링 앨범의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었고 1981년 1월에 3곡으로 수록된 EP로 발매되었다. 공연 리허설 도중, I Saw Her Standing Here를 함께 부른 부틀렉도 남아있다.

풀버전 영상도 촬영되었다고 하지만 해당 영상은 한 티비 쇼에서 제작된 영상이고 실제 본인들이 아니다. 딱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이 오노 요코도 실제와 닮지 않은 데다 엘튼 존 밴드의 멤버들도 실제 모습과 다르다.

1975년부터 존 레논이 음악 활동을 중단하고 가정에 몰두하기 시작했을 때 자연스레 엘튼 존과 만남도 줄어졌다. 그럼에도 엘튼 존은 여전히 그를 생각했고 1980년 21 AT 33 투어에서는 존 레논을 헌정하는 의미로 Imagine을 레퍼토리로 수록하여 한동안 자주 불렀다. 그런데 불과 3개월 뒤에는 이게 추모하는 의미로 부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1980년 12월 8일, 존 레논이 사망했을 당시, 엘튼 존은 21 AT 33 투어의 마지막 일정인 호주로 떠난 상태였고 멜버른으로 가던 비행기에서 본인의 매니저 존 리드로부터 존 레논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7]

1980년 12월 8일, 멜버른 공항에서 인터뷰. 이 영상 시점으로 존 레논의 사망 소식을 들은 지 10분도 안 된 상태였다.

당시 12월 22일 퍼스까지 호주 공연들로 예약된 상태였기 때문에 당장 뉴욕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존 레논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엘튼 존은 큰 슬픔에 빠졌으며 본인의 사무실에서 문을 잠그고 오열했다. 당시 호주 공연에서는 21 AT 33 투어의 레퍼토리였던 Imagine을 존 레논을 추모하는 의미로 불렀다. 투어의 첫 공연부터 레퍼토리였던 커버 곡을 결국 추모의 의미로 부르게 된 것. 12월 호주 공연에서는 "Song For Guy"를 연주했는데 이는 존 레논을 추모하기 위해 연주되었다는 설이 있다. 12월 초-중쯤, 멜버른의 한 교회에서 추도식을 열기도 했다.[8]

엘튼 존은 1980년 9월, 미국의 음반사 게펀(Geffen)과 계약했을 때 존 레논도 여기서 Double Fantasy를 발매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존 레논과 같은 발매사에 있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기뻐했다고 한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극을 들었던 것. 당시 신문들은 죄다 존 레논의 죽음 소식으로 도배되었기 때문에 엘튼 존은 한동안 신문을 보지 않았다.[9]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1981년 9~10월, 16집 Jump Up!을 작업하러 프랑스 파리의 Pathe Marconi 스튜디오로 갔을 때 존 레논 추모곡 Empty Garden (Hey Hey Johnny)를 작곡했다. 버니 토핀은 "Empty Garden"의 가사를 비극적인 소식을 들은 바로 다음 날인 1980년 12월 9일에 썼고 엘튼 존이 약 1년 뒤에 작곡한 것이다. 앞서 엘튼 존은 존 레논이 세상을 떠난 직후인 1980년 12월에 The Man Who Never Died라는 추모 연주곡을 작곡한 바 있다.[10][11] 1982년 3월에 싱글로 발매된 "Empty Garden"과 달리 "The Man Who Never Died"는 5년 뒤, 1985년 1월에 19집 Ice On Fire를 작업하면서 녹음되었고 "Nikita" 싱글 B면과 《Ice On Fire》의 1995년 리마스터링 판의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었다. "Empty Garden"은 애절한 선율의 비장한 발라드이고 "The Man Who Never Died"도 비장한 선율을 가진 연주곡이다.

존 레논의 아들 션 레논의 대부가 바로 엘튼 존이다. 션 레논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존과 요코는 엘튼 존에게 션의 대부가 되어주라고 요청했다.[12] 이후 엘튼 존은 1982년 8월 4~7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진행된 공연에서 오노 요코와 션 레논을 무대로 불렀고 션 레논을 부둥켜 안았다.

1988년 10월 9일, 매사추세츠 공연에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존 레논의 48번째 생일 기념으로 불렀다. 엘튼 존은 존 레논과의 추억 때문에 이 곡을 부르면 울적해지는 이유로 인해서 1998년 The Big Picture 투어에서 부른 이후로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2000년 10월 20~21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진행된 One Night Only 공연에서 Come Together를 불렀고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의 콜로세움에서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된 〈The Million Dollar Piano〉 투어에서 "Empty Garden"을 레퍼토리로 수록해서 자주 부르는 등 존 레논에 대한 헌정을 여러 차례 남겼다. 2006년 "Blues Never Fade Away"의 가사에는 "존 레논의 웃음이 그립다"라는 구절이 들어있다.

존 레논과의 친분은 2015년 2월 22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는데, 이 프로에 나온 존 레논이 엘튼 존에게 무릎을 꿇고 엘튼 존이 '일어나십시오'라고 했다는 일화는 한국에서만 떠도는 전혀 사실무근의 소설이다. 엘튼 존이 미국 진출을 위해 1970년 8월,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으로 도착했을 때[13] 엘튼 존의 첫 히트곡 Your Song을 듣고 큰 감명을 받은 존 레논이 일종의 보답하는 의미로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신인 엘튼 존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서프라이즈에서 재현됐지만, 존 레논은 실제로 이런 행동을 한 적도 없고 그저 1975년 롤링 스톤 잡지 인터뷰로 통해 엘튼 존의 음악에 대해서 칭찬한 적 있었을 뿐이다. 이 황당한 이야기는 해외에선 공식 자료는 물론이고 카더라 소문으로조차도 없는 얘기인데 이상하게 한국에서만 창작/유포되어온 스토리다. 이것 외에도 비틀즈는 유독 한국에서만 잘못 알려져 있는 헛소문들이 많다. 그리고 이런 헛소문들을 널리 유포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해온 주범이 바로 위에 나온 프로인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이다. 기존의 잘못된 카더라를 널리 유포시킬 뿐 아니라 아예 전혀 없던 이야기를 창작해서 지어내기도 잘 한다.

1.2. 폴 매카트니

파일:external/beatlephotoblog.com/142.jpg42.jpg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2321302-19B291B3000005DC-287_634x440.jpg
1975년 길거리에서. 왼쪽부터 해리 닐슨, 링고 스타,
엘튼 존, 폴 매카트니, 린다 매카트니
2012년 6월 4일, 여왕 60주년 즉위 공연
멤버들 중에서 폴 매카트니와 별다른 협업이 없다. 사실 엘튼 존과 관련된 뮤지션들 중에서 협업이 적게 띄는 편이다. 이는 1970년대 전성기 시절 당시 음반 성적 상,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던 뮤지션 중 한 명이 폴 매카트니였고[14] 다른 멤버들과 달리 나름대로 비즈니스 관계로 유지하는 걸로 보인다.

존 레논의 1974년 Walls and Bridges, 링고 스타의 1975년 Goodnight Vienna, 조지 해리슨의 1987년 Cloud Nine에 참여한 것과 달리 폴 매카트니 솔로 앨범에 참여한 적 없다. 이 둘은 공연에서만 협업을 보였는데 주로 단체 자선 공연에서만 모습을 보였다. 1997년 9월 15일 몬트세랫 구조 기금 공연에서 Hey Jude를 서로 피아노를 마주 보면서 노래를 부른 적 있다.

엘튼 존이 가장 처음으로 만난 비틀즈의 멤버이기도 하다. 1968년 8~9월 경,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세션 뮤지션으로 일하던 날에 폴 매카트니가 평범한 친구들이 뭘 하고 있나 궁금해서 스튜디오에 방문했을 때 우연히 만났다.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은 크게 놀라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폴 매카트니는 피아노에 앉아 '최근에 밴드가 녹음을 마친 곡'이라면서 Hey Jude를 불렀다.[15]

1976년 6월 23일, 엘튼 존은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 해리 닐슨 등의 여러 동료들과 같이 하루를 보내었고 그날 밤에 셰어와 같이 윙스의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 관객으로 참여하여 공연을 봤다.[16] Hi Hi Hi 16초쯤에 셰어와 엘튼 존이 보인다.

1.3. 조지 해리슨

엘튼 존은 조지 해리슨을 비틀즈의 철학자라고 평했고 존 레논 다음으로 가장 친한 사이를 유지했던 멤버였다.
파일:external/4.bp.blogspot.com/elton%2Bringo%2Band%2Bgeorge.jpg
1987년 6월 5일 런던에서. 링고 스타, 엘튼 존, 조지 해리슨
1970년 엘튼 존의 2집 Elton John이 미국 빌보드에 올라가던 시기에 조지 해리슨이 엘튼 존에게 미국 진출을 축하하다는 전보를 보냈다. 엘튼 존은 이 전보로 매우 깊은 고마움을 느꼈고 이 전보를 아직도 소중히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엘튼 존은 조지 해리슨의 All Things Must Pass를 비틀즈 멤버들의 솔로 앨범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했고 어느 날 택시에서 My Sweet Lord를 듣고서 엄청난 전율을 느낀 적 있었고 그런 느낌은 롤링 스톤스의 "Brown Sugar"와 더불어 유일했다고 밝혔다.[17] 그 후로 조지 해리슨과 대화를 나누던 사이로 발전했고 1987년 봄, 조지 해리슨의 Cloud Nine에 참여하여 피아노 연주를 맡았던 시기를 행복한 기억으로 2002년에 회상했다.

아침 8시까지 Cloud Nine을 녹음하던 세션 때 엘튼 존은 조지 해리슨에게 Here Comes The Sun을 연주할 수 있냐고 요청하자 조지 해리슨은 흔쾌히 연주해서 불렀다.[18]

1987년 6월 5일, 런던에서 진행된 록 갈라 공연에서 링고 스타와 같이 무대에 섰고 엘튼 존이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가 무대로 올라올 때 소개를 맡았다. 엘튼 존은 조지 해리슨의 1987년 "When We Was Fab" 뮤직비디오에 잠시 출연하기도 했다. 뮤직비디오의 3분 32초 부근에서 칙칙한 옷을 입고 동전을 넣고 지나가는 남성이 엘튼 존.

1998년 린다 매카트니 장례식 이후로 한동안 만나지 않았고, 2001년 조지 해리슨의 스위스 저택에 방문해 그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2001년 11월 맨체스터에서 진행된 엘튼 존의 공연에서 조지 해리슨을 위해 Your Song을 불렀고 2002년 조지 해리슨을 추모하는 뮤지션들의 인터뷰에서 엘튼 존도 참여하여 조지 해리슨과의 기억을 회상했다.

2002년 4월 13일, 카네기 홀에서 진행된 단체 자선 공연이자 조지 해리슨 추모 공연에서 Something을, 제임스 테일러, 스팅과 함께 Give Me Love를 불렀다.

1.4. 링고 스타

파일:external/beatlephotoblog.com/186.jpg
1975년 6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링고 스타와 여러 차례 협업을 가졌었다. 1972년 마크 볼란의 Children Of The Revolution에서 함께 작업한 이후로 1974년 8월, 링고 스타의 4집 Goodnight Vienna를 작업하던 시기에 링고 스타는 엘튼 존과 버니 토핀에게 자신에 대한 간단하면서도 히트를 거둘만 할 곡을 써주라고 요청했다.[19]

그렇게 작곡된 Snookeroo는 1975년 1월에 "No No Song"과 더블 A면 싱글로 미국에서 발매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 3위로 기록되었고 링고 스타의 최대 히트곡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곡은 Eb로 구성된 경쾌한 팝 록 넘버이며 링고 스타에 대해서 묘사한 가사를 담았다.[20] 영국에서는 A면에 "Snookeroo", B면에 "Oo-Wee"로 수록된 싱글로 1975년 2월에 발매되었지만 차트 진입에 실패했다.

1975년 6월 1일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새로 결성된 투어 밴드와 함께 3주 간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 투어를 진행했는데 엘튼 존 일행과 잠시 동행하던 키스 문, 링고 스타에게 무대로 올라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링고 스타는 거절했다.[21] 네덜란드에 있을 때 나흘 동안 코카인 파티를 열었는데 당시 엘튼 존 밴드의 기타리스트였던 케일럽 퀘이는 링고 스타에게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술에 워낙 취했던 링고 스타는 "그런 앨범 모른다"라고 답변했다.[22]

1987년 6월 6일, 록 갈라 공연에서 엘튼 존, 조지 해리슨과 무대에서도 함께했다. 그 후로 공식적인 협업은 거의 없지만 1992년 The One 투어 당시 우연히 백스테이지에서 서로 반갑게 인사하거나, 엘튼 존이 2013년에 브릿 아이콘상을 받았을 때 링고 스타는 오노 요코와 함께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1.5. 조지 마틴

파일:external/www.billboard.com/Elton-John-with-Sir-George-Martin-2009-billboard-1250.jpg
엘튼 존, 쥬디 마틴[23], 조지 마틴. 2009년 10월 8일
조지 마틴과도 약간의 협업이 있었다. 1970년 2집 Elton John의 세션을 모으고 있던 1969년 11월, 조지 마틴이 프로듀싱을 맡을 것으로 제안했지만 거장과 작업한다는 부담감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거절했다고 한다.[24]

1994년 3월 30일, 25집 Made In England을 작업하던 북런던 햄프셔의 AIR 스튜디오, 당시 엘튼 존과 프로듀서 그레그 페니는 엘튼 존이 30분 안에 작곡한 푸근한 발라드 Latitude의 현악을 Help!의 수록곡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처럼 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당시 AIR 스튜디오를 소유했던 조지 마틴에게 이 곡에서 편곡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는데 조지 마틴은 흔쾌히 승낙하여 이 곡에서 현악과 호른을 편곡했다.[25] 1997년 9월에는 다이애나비를 추모하는 싱글 Candle In The Wind 1997의 프로듀싱을 맡았다.

1997년 9월 27일, 영국의 프로그램 An Audience With..의 엘튼 존 에피소드에서 조지 마틴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바보 같은 곡을 만든 적 있냐"라는 질문을 꺼내자 엘튼 존은 횡설수설 가사에 프랑스 억양으로 부른 1974년 "Solar Prestige A Gammon"을 언급하면서 자세히 설명했다.[26]

2016년 3월 9일, 플로리다 공연에서 조지 마틴을 추모하는 의미로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를 불렀다.

2. 로드 스튜어트

로드 스튜어트와 엘튼 존은 1970년대부터 라이벌 기믹으로 오랜 세월 동안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친하게 지내온 절친이다. 이러한 기믹과 달리 실제로는 심각한 불화가 생긴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팝 음악의 저변이 얕은 한국에서는 엘튼 존의 라이벌로 빌리 조엘을 이야기해 왔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엘튼 존은 빌리 조엘과 접점이 거의 없었고 로드 스튜어트와는 오래 전부터 사적이나 음악적으로 함께하는 관계다. 방송에서도 둘이 익살스럽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각각 별명을 만들었는데, 로드 스튜어트는 엘튼 존을 '샤론'이라고 부르고 엘튼 존은 로드 스튜어트에게 '필리스'라고 부른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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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이 둘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진.
엘튼 존이 영국의 블루스 밴드 "블루솔로지"(1962~68)에서 키보디스트로 6년간 활동했을 때 카바레 투어를 하면서 도왔던 영국의 블루스 음악가이자 여러 록 스타들을 직접 발굴할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던 "롱 존 볼드리"가 어느 날 기차에서 무명의 로드 스튜어트를 만나게 되어 그를 키우기 시작했고, 블루솔로지가 공연한 곳에서 로드 스튜어트가 롱 존 볼드리와 같이 공연을 했다. 당시 엘튼 존은 롱 존 볼드리와도 친했기 때문에 그로 통해서 로드 스튜어트는 엘튼 존과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면서 곧 절친 관계까지 발전한 것이다.[28]

로드 스튜어트는 자신의 1970년 1집 《Gasoline Alley》에서 엘튼 존의 Country Comfort를 커버했고 엘튼 존은 1972년 6월, 6집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 세션 때 작곡한[29] 경쾌한 로큰롤 넘버 Let Me Be Your Car를 2년 뒤 1974년에 주었고, 로드 스튜어트는 이 곡을 녹음해 자신의 6집 《Smiler》에 수록했다. 엘튼 존은 백 보컬, 피아노 피처링을 맡았다.[30] 1974년 5월 5일, 엘튼 존의 왓포드 공연에서 로드 스튜어트가 참여하여 "Country Comfort"를 불렀는데 엘튼 존 원곡 버전이 아니라 로드 스튜어트 버전으로 연주되었다.[31]

로드 스튜어트는 축구선수로 잠시 활동한 적 있었기 때문에 축구로도 함께 모습을 보인 적도 있다. 로드 스튜어트는 셀틱 FC의 팬이고 엘튼 존은 왓포드 FC의 팬이다.[32]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평범한 친구 관계였지만, 서로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경쟁심 또한 높아져 라이벌로 의식하게 되었다.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1975년 록 오페라 영화 Tommy의 "Pinball Wizard" 역할이었다. 토미의 감독 켄 러셀은 엘튼 존을 주인공(로저 달트리)의 삼촌인 어니 역(키스 문)을 제안했고 핀볼 챔피언 역은 원래 로드 스튜어트에게 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핀볼 챔피언 역을 원했던 엘튼 존은 로드 스튜어트 대신 자신이 핀볼 역을 맡으려고 로드 스튜어트에게 꼼수를 가장한 조언을 하면서 그를 속였다. 결국 완벽히 속은 로드 스튜어트는 감독에게 그 역을 맡지 않는다고 제안을 거절하면서 엘튼 존이 핀볼 챔피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결국 로드 스튜어트는 영화에서 멋지게 나온 엘튼 존을 보고 자신이 속았다는 걸 느껴 크게 분노했다.[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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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샤론과 필리스.
핀볼 챔피언 사건 이후로 로드 스튜어트는 엘튼 존에게 배신감을 느껴 큰 실망을 가졌지만, 이를 바탕으로 오히려 라이벌 기믹으로 서로 티격태격하는 경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로 토크쇼나 인터뷰에서 장난스럽게 서로를 디스 하는 내용으로 재미를 끄는 일이 많다.

노래를 거절한 일도 있었다. 1980년 봄-여름, 엘튼 존이 15집 The Fox 세션 때 작곡한 "Just Like Belgium"을 로드 스튜어트에게 줄 예정이었지만 로드 스튜어트는 곡의 선율과 가사가 따로 논다는 게 맘에 들지 않아서 이를 거절했고 결국 엘튼 존은 "Just Like Belgium"를 《The Fox》에 수록했다. 1981년 4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The Fox 홍보 마케팅 및 화상회의에서 이를 설명하면서 로드 스튜어트를 비웃었다.[35]

1982년 5월, Jump Up! 투어를 진행하러 프랑스 파리로 도착했을 때 로드 스튜어트도 같이 동행했고 1983년 10월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의 선 시티에서 진행된 Jump Up! 투어에서도 참여했다.[36][37]

1984년 2월 14일, 엘튼 존은 자신의 팬이자 음향 기술자 레나테 블라우엘과 결혼했을 때 로드 스튜어트는 축하 전보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너는 여전히 서 있는지[38] 모르겠지만 우리는 모두 다 바닥이야!"(You may still be standing, but we're all on the Fucking floor!)이다.[39]

1986년 6월 20일, 프린스 트러스트 록 갈라 공연에서 로드 스튜어트가 "Sailing"을 부를 때 엘튼 존은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40]

1991년 4월 1일, 웸블리 아레나에서 진행된 로드 스튜어트 공연에서 엘튼 존이 여장한 상태로 무대에 올라 로드 스튜어트를 깜짝 놀라게 만든 일도 있었다. 당시 로드 스튜어트의 아내였던 모델 레이첼 헌터가 나올 예정이었는데 공연 날이 만우절이기도 해서 로드 스튜어트 몰래 시도한 장난이었다. 엘튼 존은 백스테이지에서 레이첼 헌터처럼 분장하고 무대로 올랐으며 로드 스튜어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누군지 못 알아보다가 2분 정도 지나서 엘튼 존이 여장한 것이라고 알아채면서 대폭소했다. 당시 로드 스튜어트와 듀엣으로 "You're In My Heart"를 불렀다.[41]

1991년 Two Rooms에 참여하여 Your Song을 커버했다. 로드 스튜어트 버전은 1992년에 싱글로 발매되었고 싱글 차트 50위 안에 진입했다. 2002년 9월 28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한 엘튼 존의 공연에서 로드 스튜어트와 같이 "Your Song"을 부르기도 했다.[42]

1995년 1월 10일, 엘튼 존은 로드 스튜어트의 50세 생일 선물로 바퀴 달린 보행 보조기를 선물해주었다. 1997년 3월 25일, 로드 스튜어트는 엘튼 존의 50세 생일 선물로 낡은 헤어드라이어를 보냈는데 거기에 이런 메시지도 같이 넣었다. "깜빡하고 머리카락을 못 샀네."[43]

2005년 10월 발매된 로드 스튜어트의 스탠더드 앨범 《Thanks for the Memory: The Great American Songbook, Volume IV》의 5번 트랙이자 1920년대 재즈 넘버 "Makin' Whoopee"를 엘튼 존과 듀엣으로 불렀다.[44] 같은 해, 오지 오스본/샤론 오스본 주최의 남아시아 대지진 피해자들을 돕는 자선 행사에 참여하여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을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불렀다.[45]

엘튼 존은 2013년 신설된 브릿상의 특별상, 브릿 아이콘상을 수상했고 2013년 시상식이 끝나고 7개월 뒤 2013년 9월 2일, 아이콘상 시상식이 따로 개최되면서 이 상을 수상했다. 당시 로드 스튜어트가 무대로 올라 소개를 맡았고 함께 "Sad Songs (Say So Much)"를 불렀다. 영상의 1분 26초에서 로드 스튜어트가 엘튼 존에게 상을 곧바로 주지 않고 장난치는 모습을 여기서도 보였다.[46]

2015년 10월, 로드 스튜어트는 엘튼 존과 함께 합동 투어를 진행하고 싶다고 했다.[47]

2018년 3월 22일자 미국의 토크쇼 <와치 위드 해픈스 라이브 위드 앤디 코언>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로드 스튜어트는 엘튼 존이 2018년 1월 24일 발표한 투어 은퇴 선언에 대해, "공연 티켓을 팔기 위해 하는 수작"이라며 농담했다. 로드 스튜어트는 엘튼 존에게 이메일을 보냈다고 했는데, 여기서 엘튼 존을 '그녀(Her)'로 지칭하거나 투어 은퇴 선언에 대한 반응으로 '뭐야, 또야?'라고 하면서 웃음을 주었다.[48]

3. 프레디 머큐리

엘튼 존은 프레디 머큐리의 임종 직전 병문안이 허락된 몇 안되는 인물이다.[49] 음악 자체에 집중했던 스타일에서 공감대가 있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성지향성이라는 문제를 공유할 수도 있는 사이였을 것이다. 사적인 자리에서 자주 만나던 친구 사이였지만 음악적 교류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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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튼 존과 프레디 머큐리. 1977년
엘튼 존은 공연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프레디 머큐리는 1982년 11월 19일,[50] 영국 맨체스터의 아폴로 극장에서 진행된 엘튼 존의 Jump Up! 투어 공연에서 참여한 적 있다. 당시 자주 부르던 제리 리 루이스Whole Lotta Shakin' Goin' On에서 참여했던 것이다. 당시 프레디 머큐리가 엘튼 존 공연에 참여한 자세한 정보도, 부틀렉 음원도 없고 오직 저 사진만 남아있다.

프레디 머큐리는 퀸 공연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엘튼 존의 곡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을 1977년부터 1986년까지 9년간 불렀다.[51] 1977년 We Will Rock You 뮤직비디오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착용한 별 모양 선글라스는 엘튼 존이 준 것이다.

엘튼 존은 프레디 머큐리보다 퀸의 다른 멤버들과 교류가 더욱 많았다. 로저 테일러존 디콘은 1985년 1월, 엘튼 존의 19집 Ice On Fire에 참여하여 "Too Young"[52]과 "Angeline"[53]에서 베이스와 드럼을 연주했고 브라이언 메이는 1992년 6월 28일, 엘튼 존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의 마지막 곡이었던 "The Bitch Is Back"에서 기타를 연주했다.[54]

1991년 11월 27일, 프레디 머큐리의 장례식에서 퀸 멤버들과 함께 참석했고 1992년 4월 20일,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에서도 참여하여 엘튼 존은 Bohemian RhapsodyThe Show Must Go On을 불렀다. Bohemian Rhapsody에서는 엘튼 존이 혼자서 부르다가 후반부에는 액슬 로즈가 참여했다. The Show Must Go On에서는 엘튼 존 혼자서 불렀다. 당시 엘튼 존은 목 상태가 썩 좋지 않았음에도 퀸의 나머지 멤버들이 엘튼 존에게 이 두 곡을 맡긴 것은 프레디 머큐리뿐 아니라 퀸 멤버 전체와 엘튼 존의 인간적, 음악적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후 "The Show Must Go On"은 엘튼 존의 1992~93년 The One 투어에서 자주 불렀다.[55]

1997년 1월 17일, 프랑스 파리의 샤이요 국립극장(Theatre National de Chaillot)에서 베자르 발레단(Bejart Ballet)의 퍼포먼스에 맞춰 퀸의 멤버들과 함께 프레디 머큐리와 조르주 돈을 기하는 공연을 진행했고 엘튼 존은 The Show Must Go On을 불렀다.

1980년 8월 런던의 한 파티에서 같이 잡담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2016년 5월에 공개되었는데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하는 장면을 담은 유일한 영상으로 보인다. 해당 장면은 2016년 초에 방영된 BBC 다큐멘터리에 수록되었다.

4. 다이애나 스펜서

엘튼 존은 다이애나비와 상당한 절친이었다. 다이애나 스펜서가 생전 가장 좋아했던 밴드와 뮤지션은 듀란 듀란과 엘튼 존이었고 특히 엘튼 존과 각별한 우정을 가졌던 절친 사이였다.[56] 엘튼 존과 다이애나 둘 다 결혼에 실패한 적 있고, 폭식증도 앓았고, 에이즈 재단 활동에 대한 관심 등 공통점이 많았던 등 파란만장했던 삶으로 통해 서로 느끼는 공감대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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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비와 엘튼 존. 1985년 7월 13일
서로의 친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엘튼 존은 왕실 결혼식이 올리기 몇 개월 전인 1981년 2월, 영국 왕실에서 앤드루 왕자의 21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 공연을 연 적 있는데 이때 기점으로 친분이 생기기 시작되었다.[57][58][59]

왕가 결혼식이 한창 화제였을 때 엘튼 존 다이애나 스펜서에 크게 매료했고 게리 오스번(엘튼 존의 작사가, 1977~1982)은 1982년 16집 Jump Up!를 작업하던 시기인 1981년 9~10월 경,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스펜서에게 부를 법한 가벼운 사랑 노래 "Princess"를 작사했다.[60][61] 이 곡은 1982년 9월 영국에서만 싱글로 발매되었지만 차트 진입에 실패했다.

1985년 7월 13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AID 공연 당시 다이애나 스펜서가 방문하여 엘튼 존을 포함한 공연에 참여한 뮤지션들과 짧은 담화를 나누었다. 1986년 6월 20일과 1987년 6월 6일 록 갈라(Prince's Trust Rock Gala) 공연에서도 다시 만났다.

본격적으로 친분이 생긴 건 1990년대 초반으로, 그렇게 몇 년간 절친으로 지냈으며 자선 활동으로 통해 사이가 더욱 가까워진 것도 있다. 엘튼 존이 지아니 베르사체와 다이애나 스펜서를 점심 식사에 초대하거나 개인적으로도 만나던 경우가 잦았다.

엘튼 존은 다른 절친 동료들과도 끊임없이 싸우며 화해하는 과정을 반복했는데 다이애나 스펜서와도 마찬가지였다. 1996년 자선구호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의견 차이로 싸웠고 사이가 잠시 악화된 적도 있었다.[62] 1년 동안 대화하지 않았다가 1997년 7월에 화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아니 베르사체'의 죽음이 두 사람이 관계를 회복하는데 계기가 되었고 비극적인 소식을 들은 그날에 1년 만에 다시 연락했다.[63]

지아니 베르사체는 7월 15일. 자택에서 동성애자 연쇄 살인범 '앤드루 커내넌'의 총격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엘튼 존은 절친의 사망으로 큰 슬픔에 빠졌다. 그의 사망 일주일 뒤에 진행된 장례식에서 같이 참석한 배우자 데이비드 퍼니시와 다이애나 스펜서가 엘튼 존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다.

1개월 뒤인 8월 31일, 다이애나 스펜서는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여름에 절친 2명을 모두 잃은 엘튼 존은 커다란 슬픔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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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997년 9월 2일, 엘튼 존은 영국의 기업인이자 버진 그룹의 회장 "리처드 브랜슨"의 전화를 받았는데 다이애나 스펜서의 누이 "레이디 사라"가 엘튼 존에게 다이애나 스펜서의 장례식에서 노래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64] 그리하여 엘튼 존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Candle In The Wind이라는 점, 다이애나 스펜서 생전 이 곡에 대한 애착을 잊어먹을 순 없다는 점을 감안해서 다이애나 스펜서의 유족과 왕실에서 허락을 받고 기존의 곡을 개사하기로 하면서 장례식에서 노래를 부르려고 했고 버니 토핀은 마릴린 먼로를 추모한 원곡의 가사를 다이애나 스펜서를 추모하는 Candle In The Wind 1997로 새로 썼다.

1997년 9월 6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진행된 다이애나 스펜서 장례식에서 엘튼 존은 데이비드 퍼니시, 조지 마이클과 함께 참석했다. 장례식에서 노래를 부를 차례를 앞두고 있던 엘튼 존은 "절대로 망치지 말자. 틀리게 부르지 말고, 너의 감정을 대놓고 보여주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매우 긴장했다고 회고했다.[65]

30년 넘게 같은 가사로 꾸준히 불렀던 곡을 며칠 전에 개사한 가사로 실수 없이 왕실 장례식에서 부른다는 점, 전 세계 생중계로 방영했다는 점에서 그만큼 깊은 슬픔과 동시에 엄청난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개사된 버전의 곡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던 순간이었고 장례식을 생중계로 지켜보던 20억 명 이상의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Candle In The Wind 1997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 신작이었던 26집 The Big Picture의 6번 트랙 "Something About The Way You Look Tonight"을 수록한 더블 A면 싱글로 발매했다. 이 싱글은 발매되자마자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대성공을 거두었고 전 세계적으로 33,000,000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에 이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이 되었다.

원판은 마릴린 먼로를 추모하는 내용을 담은 곡이라서 당시 영국의 각종 언론사에서는 가사만 바꿔서 죽음을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이 있었고 롤링 스톤스의 멤버 키스 리처드도 이를 비난했다.[66] 엘튼 존은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이 절대 아니라며, 서로 오래 전부터 각별했던 사이였음을 인터뷰 등에서 해명했다.

1997년 말, 엘튼 존은 이 싱글로 얻은 천문학적인 수익금을 다이애나 측에 전액 기부했다. 이를 계기로 1998년 신년 서훈 명단에 기사작위(Knight Bachelor) 대상자로 올라, 1998년 2월 24일 '경(Sir)'이 되었다.[67] 그 수익금 전액 기부가 기사 작위 서임의 이유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관보에는 "음악"과 자선활동 공헌에 따른 것(For services to Music and for charitable services)이라 기재되어 있다.
다이애나비 생전 가장 좋아하던 엘튼 존의 곡 중 하나가 Your Song이었고 엘튼 존은 2절의 'Yours are the sweetest eyes I've ever seen'(당신의 눈은 내가 지금껏 본 가장 아름다운 눈이란 거예요)라는 구절을 부를 때마다 다이애나가 생각난다고 했다.[68] "Your Song"은 장례식 추모곡으로 먼저 고려되었지만 첫 구절 'it's a little bit funny'가 당시 상황과 맞지 않다고 여겨 Candle In The Wind로 바꾸게 된 것이다.[69]

이후 엘튼 존은 인터뷰에서 다이애나 스펜서와의 각별했던 사이에 대해서 종종 회고했고 2007년 7월 1일, 다이애나의 생일날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다이애나를 기하는 단체 자선 공연 Concert For Diana에 참여했다.

장례식에서 부른 "Candle In The Wind 1997"는 처음이자 마지막 라이브이다. 절친을 잃은 감정을 다시 떠오르고 싶지 않다는 이유, 다이애나 스펜서의 두 아들 윌리엄 왕자해리 왕자를 위해서 다시는 이 곡을 부르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기 때문에 부를 일이 없다.[70]

엘튼 존은 다이애나 스펜서의 가장 매력적인 신체 자산이 이라고 밝혔다. 슬퍼하면서 웃고 있는 눈이 참 아름답다고 했다.[71]

만약 엘튼 존이 커밍아웃하지 않았더라면 영국 타블로이드 언론들이 보나 마나 다이애나 스펜서와 사귄다고 난리 법석을 떨었을 것이라는 소리가 많았다.

엘튼 존과 다이애나비와의 사이, Candle In The Wind의 비화에 대해서는 2015년 2월 23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2017년 8월 31일, HBOITV에서 방영 예정인 다이애나비 20주기를 맞이해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Diana, Our Mother: Her Life and Legacy〉에서 윌리엄 왕자, 해리 왕자를 포함하여 다이애나비의 측근들의 인터뷰를 담았고 엘튼 존의 인터뷰도 담겼다.[72]

2018년 5월 19일 오전 11시(한국 시간으로 오후 7시),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거행된 해리 왕자메건 마클 결혼식에서 데이비드 퍼니시와 함께 참석했다. 엘튼 존이 결혼식에서 직접 축가를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정확히 결혼 피로연에서 4곡 Your Song, Tiny Dancer, "I'm Still Standing", Circle of Life를 부르며 작은 공연을 열었다고 한다.[73][74]

5. 빌리 조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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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미국 〈Face To Face〉 투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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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Face To Face〉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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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Face To Face〉 투어
빌리 조엘은 엘튼 존과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으로 거론되거나 서로 엮이는 경우가 많다. 유년 시절의 음악 관심, 부모님의 이혼, 긴 무명, 피아노를 바탕하여 음악을 하는 등 공통점들이 많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서로 음악적인 만남이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는 엘튼 존의 라이벌이 빌리 조엘이라고 언급되는 경향이 큰데, 엘튼 존의 라이벌로 볼 수 있는 뮤지션은 로드 스튜어트가 더욱 가깝고 경력 상으로 솔로로 활동한 폴 매카트니스티비 원더, 밴드로 보자면 레드 제플린 정도가 1970년대 당시 엘튼 존과 용쟁호투를 벌인 대상이다. 거기다 빌리 조엘은 1967년 데뷔 이후로 10년 가까이 무명을 보냈기 때문에 전성기를 보내던 시점이 달랐다.

빌리 조엘은 1977년 5집 《The Stranger》로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해 198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보내었는데, 이 시기는 엘튼 존에게 침체기였다. 엘튼 존은 1983년 17집 Too Low For Zero의 상업적 성공 이후로 히트 음반을 꾸준히 발매해 빌리 조엘과 사실상 활동 기간이 같아졌지만 1980년대에도 접점이 없었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로커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라이벌 운운은 비약이다.

음악적인 만남은 거의 없었지만 데뷔 초기부터 서로의 음악을 접하면서 알게 된 사이였다. 1970년 8월 25일, 엘튼 존이 미국 진출 공연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시기부터 엘튼 존 음악을 접했고 당시 빌리 조엘은 엘튼 존을 1950년대 로큰롤 시절 이후로 오래간만에 나온 파격적인 록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듣게 된 곡은 Border Song이라고 했다. 엘튼 존은 빌리 조엘을 그의 첫 히트곡 1973년 "Piano Man"으로 통해서 알게 되었다. 다양한 음악을 수시로 듣고 지내는 엘튼 존 특성상, 무명이던 빌리 조엘을 모를 리 없었다.[75]

1976년 1월에 4집 《Turnstiles》를 작업하기 시작했을 때, 빌리 조엘의 음반사였던 콜롬비아가 시카고의 프로듀서였던 제임스 가르시오를 영입해 프로듀싱을 맡게 했고 제임스 가르시오는 엘튼 존 밴드에서 해고된[76] 디 머리와 나이절 올슨을 세션으로 영입해 엘튼 존이 1974년 8집 Caribou, 1975년 9집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 1975년 10집 Rock Of The Westies를 작업했던 콜로라도의 Caribou Ranch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진행하면서 앨범을 작업했다. 그러나 빌리 조엘은 제임스 가르시오의 프로듀싱을 맘에 들지 않아 하여 콜로라도에서 녹음한 걸 폐기했고 다시 뉴욕으로 가서 편곡자 켄 애셔와 함께 프로듀싱을 맡으면서 기존의 빌리 조엘 밴드 멤버들과 함께 앨범을 작업했다.[77]

나이절 올슨은 빌리 조엘의 4집 《Turnstiles》의 1번 트랙 Say Goodbye To Hollywood를 커버해 1978년에 싱글로 발매한 적도 있다.

1976년 음악 잡지 <쥬크>에 실린 빌리 조엘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은 엘튼 존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엘튼 존은 피아노가 중심을 이루는 록 음악을 다시금 인기를 끌게 만든 뮤지션이라고 여겼고 엘튼 존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서로 비교 대상으로 두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78]

두 사람은 1976~78년 사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로열 소네스타 호텔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당시 엘튼 존은 1976년 12월 홀란드 방송에 출연해서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를 불렀고 빌리 조엘은 1978년 3월 5일, 홀란드에서 《The Stranger》 투어 공연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엘튼 존의 말로는 눈이 왔다고 하니 1976년 12월로 보인다.[79] 첫 만남에서 서로의 음악에 대해서 얘기했다고 한다.

1988년 10월,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에서 빌리 조엘이 무대로 올라와 비틀즈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같이 즉흥 연주를 했다.[80]

1980년대로 추정되는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뉴욕 5번가에서 우연히 지나가던 만나면서 안부 인사를 하고 몇 분간 얘기를 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라서 바빴고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혼잡해지지 않으려고 이 만남도 짧게 이어졌다.[81]

1990년 6월 6일, 제2회 록 어워드에서 엘튼 존이 코미디언 샘 키니슨에 대해 비판하는 연설을 했을 때 빌리 조엘이 당시 사회를 맡았는데, 1994년 합동 공연 이전의 모습을 담은 유일한 영상이다.

첫 만남 이후로 20년 가까이 단순한 만남으로만 이어졌고 접점도 거의 없던 사이였지만 1994년 7월부터 엘튼 존과 함께 〈Face To Face〉 투어를 진행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를 부각시켰다. 합동 투어는 빌리 조엘의 아이디어였고 엘튼 존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 곧바로 계획에 실행한 것이다.[82]

1994년 7월 8일 필라델피아에서 첫 공연을 연 이후로 1994~95년, 1998년, 2001~03년, 2009~10년까지 16년 간 진행하면서 북미와 유럽, 오세아니아, 일본을 방문했고 총 200차례의 공연들을 진행했다.[83] 모든 공연은 스타디움에서만 열렸고 엘튼 존 밴드와 빌리 조엘 밴드가 참여하는 구성이었다. 모든 공연들의 무대 테두리는 피아노 건반들로 장식되었다. 공연의 첫 번째 곡들로 Your Song, "Honesty",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를 듀엣으로 불렀고 이어서 엘튼 존의 15곡, 빌리 조엘의 15곡 정도의 곡들로 각각 부르고 나서 마지막에 다시 듀엣으로 자신의 곡들과 커버 곡을 포함하여 7곡 정도 불렀던 형식. 종합하자면 30곡 이상의 셋리스트에 3시간이 넘는 대형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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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5일
제12회 엘튼 존 에이즈 재단 주최로 진행된 파티에서.
비틀즈Birthday, Here Comes The Sun, Back In The U.S.S.R., A Hard Day's Night이나 리틀 리처드의 "Lucille", 제리 리 루이스의 "Great Balls Of Fire" 같은 곡들도 자주 불렀고 서로의 곡을 바꿔서 부르기도 했다. 엘튼 존은 빌리 조엘의 "New York State Of Mind", "Uptown Girl"을 불렀고 빌리 조엘은 엘튼 존의 Candle In The Wind, Goodbye Yellow Brick Road를 불렀다.

엘튼 존/빌리 조엘 듀엣으로 부른 곡들은 "Your Song", "Piano Man", "Honesty",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My Life", "Just The Way You Are", "You May Be Right", "Uptown Girl", "Goodbye Yellow Brick Road", "Bennie And The Jets", "The Bitch Is Back", "Candle In The Wind"가 있다. 각자 스타일로 각자의 곡을 부른 모습이 인상적이다.

1998년 6월, 빌리 조엘은 질병 문제로 인해 공연에서 잠시 하차했고 6월 6일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부터 6월 30일까지 스위스 취리히 공연까지 엘튼 존 혼자서 투어를 진행했는데[84] 사실상 엘튼 존 단독 투어이다. 엘튼 존 솔로의 "Piano Man"는 이 시기에만 부른 귀한 라이브 버전.

〈Face To Face〉 말고 다른 공연에서도 함께 모습을 보인 적도 있는데, 빌리 조엘은 엘튼 존의 2000년 10월 20~21일 One Night Only 공연에 참여해서 Goodbye Yellow Brick Road를 같이 불렀고 2001년 10월 20일 뉴욕 위문 공연에서 빌리 조엘과 함께 9.11 테러 당시 희생된 소방관들을 추모하기 위해 Your Song을 불렀다.

2003년 2월 6일 카네기 홀에서 진행된 열대우림 보호 단체 자선 공연에서는 마이클 J. 폭스Johnny B. Goode을 부르는 사이에 엘튼 존과 함께 키보드를 연주했다.

2004년 케네디 센터 공로상에 헌액된 엘튼 존을 축하하는 공연에서 빌리 조엘은 Bennie And The Jets/The Bitch Is Back을 메들리로 불렀다.

2009년 11월 20일, 솔트레이크 시티에 진행될 예정이던 공연은 빌리 조엘의 질병으로 인해 취소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날 엘튼 존은 리언 러셀과 30집 The Union을 작업하기 시작한 날이다.[85]

2011년부터 한동안 사이가 갈라졌다. 빌리 조엘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서 2009~10년 투어 공연이 취소되는 일이 종종 있었기에 이에 불만을 품은 엘튼 존이 빌리 조엘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다가 감정싸움으로 번졌다.[86] 2012년에 화해했고 2013년 2월, 엘튼 존 에이즈 재단 주최로 진행된 아카데미 시상식 후속 파티에 빌리 조엘이 참석해 같이 사진을 촬영했다. 그러나 이전처럼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지 못했고 빌리 조엘은 2012년 인터뷰에서 앞으로 〈Face To Face〉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빌리 조엘은 2010년 투어 이후로 3년 동안 투어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몇 차례의 공연만 간간이 진행하다가 2013년 10월 16일 뉴욕 공연을 시작하여 그해 10~12월 영국, 아일랜드 투어를 진행하고 나서 2014년부터 미국 동부 주 위주로 투어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2013년 이후로 가끔씩 서로에 대해서 언급하거나 곡을 부르는 편이다. 빌리 조엘은 2014년부터 자신의 공연에서 "Your Song"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1절의 'I don't have much money' 구절 다음으로 Bullshit이라고 하면서 곡을 끝낸다. 그러고 "우린 그저 친구예요!!"라고 하면서 웃고 넘어간다. 이런 식의 장난도 이제는 정규 레퍼토리다. 2015년 7월 1일, 자신의 65번째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을 기념하여 Goodbye Yellow Brick Road를 불렀다.

레코딩 스튜디오에서의 만남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 없다. 빌리 조엘은 1993년 12집 《River Of Dreams》로 음반 작업에서 은퇴를 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엘튼 존과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가능성은 없다. 1994년 2-4월, 25집 Made In England 작업 중에 작곡된 "Red Rock Roll"과 1995년 "Red, White And Blues"라는 곡에서 듀엣으로 불렀다고 하지만 미공개로 남겨졌으며 정확한 정보도 없다.[87] 엘튼 존의 2006년 29집 The Captain & The Kid의 3번 트랙 "Wouldn't Have You Any Other Way (NYC)"에 보컬을 맡으면서 피처링으로 참여할 예정이었다가 무산되었다는 얘기도 있다.[88]

빌리 조엘은 "Your Song"과 "Goodbye Yellow Brick Road" 말고도 가끔씩 엘튼 존의 다른 곡을 짧게 연주하거나 부른 적도 있다. 2014년 1월 17일 뉴욕 탬파 공연에서 Tiny Dancer의 인트로를 잠깐 연주했고 2016년 11월 30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는 Honky Cat을 살짝 불렀다.

2017년 1월, 스티븐 콜베어 토크쇼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방영분에서 밝히기를, 엘튼 존은 항상 자신에게 앨범을 더 내야 한다고 했는데 빌리 조엘은 반대로 엘튼 존에게 "앨범을 내야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하면서 웃음을 주었다. 빌리 조엘의 정규 앨범은 13장이고 엘튼 존은 32장이다.

6. 에미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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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월 21일 제43회 그래미에서
특이하게도 에미넴과도 친분이 있다. 제43회 그래미에서의 Stan 협연은 아직도 회자되는 두 가수의 명장면이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큰데 당시 에미넴의 랩에는 호모포비아적 요소가 가득했기 때문. 이는 지금도 그렇다. 그의 가사에 자주 사용되는 'faggot'이라는 단어 자체가 게이를 비하하는 욕이다. 그러나 엘튼 존은 "그의 그런 가사는 그의 또 다른 자아의 표출일 뿐"이라며 함께 공연을 하였다. 결과물은 대성공. 서로를 제대로 알아 본 둘은 친한 친구가 되었다. 2005년 12월, 에미넴은 엘튼 존/데이비드 퍼니시의 시민결합 기념 선물로 특별한 것을 주었는데 바로 벨벳 쿠션에 싸인 다이아몬드 음경 링이다. 엘튼 존은 데이비드 퍼니시와 함께 대폭소했다.[89]

2009년, 에미넴이 마약 중독 치료를 마치고 밝힌 바로는 엘튼 존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하여 본인의 상태에 대해 물어봤다. 2010년 《Recovery》로 에미넴이 화려하게 컴백하자 엘튼 존은 롤링 스톤 인터뷰에서 에미넴을 사랑한다며, 자주 보진 못하지만 대화는 자주 나누고, 잡지에서 본 술을 끊은 뒤 에미넴의 모습이 17살 소년 같아졌다며 뿌듯해하기도 칭찬했다. 보기와 다르게 각별한 사이. 서로의 애칭은 보지.[90]

7. 레이디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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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31일, 제52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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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엘튼 존/레이디 가가 합작의 의류 브랜드 <Love Bravery> 때 촬영된 사진.
가장 친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후배 뮤지션이 바로 레이디 가가. 파격적인 의상과 무대 등의 공통점들로 서로 통하는 게 많고 무려 39살의 나이 차임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초월한 사이. 2010년 1월 31일, 제52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Poker Face/Speechless/Your Song 메들리를 불러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인 걸로 시작하여 친분을 가지기 시작했다. 엘튼 존은 2010년에 일어난 최고의 일들 중 하나가 바로 레이디 가가를 만난 것이라고 했다.[91]

2010년에는 듀엣으로 《Gnomeo & Juliet》의 OST Hello, Hello를 불렀다. 레이디 가가와 듀엣 버전은 앨범에 수록되지 않았고 엘튼 존 솔로 버전으로 대신 수록되었다. 두 사람은 무대에서도 협업을 자주 보였는데 2013년 11월 더 머펫 쇼에 출연하여 Bennie And The Jets/Artpop를 불렀고 2016년 2월 27일 엘튼 존의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는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를 듀엣으로 불렀다.

2011년 "Hello, Hello" 이후로 한동안 스튜디오 협업이 없었고 엘튼 존이 레이디 가가의 새 앨범에 참여한다는 말이 2~3년간 계속 이어지다가 2015년 가을, 레이디 가가의 정규 5집 Joanne에 참여하여 함께 "Room In My Heart"이라는 곡을 녹음했다.[92] 그러나 이 곡은 앨범에서 제외되어 미발매 곡으로 남겨졌고 인터넷상에서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레이디 가가는 엘튼 존의 아들 재커리와 일라이저의 대모(godmother)이기도 하다.[93] 데이비드 퍼니시하고도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8. 메리 J. 블라이즈

https://youtu.be/Mrk4uJHW-Ec
https://youtu.be/i4MOICndFOY

메리 J. 블라이즈는 미국에서는 데뷔 직후 1990년부터 "Queen of Hip Hop R&B Soul" 이라 불리우며 포스트 아레사 프랭클린으로 대우받았을 정도의 위상에 있다. 한국에선 왕뚜껑 광고 음악이었던 Family Affair로 알려지긴 했지만 그 위상에 비해 인지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엘튼 존은 메리 J. 블라이즈의 4집 앨범 Mary 수록곡 "Deep Inside"의 작곡과 피처링에 참여했다. 피아노 연주도 맡았고, 뮤직비디오에는 직접 출연도 했다.

엘튼 존과 메리 J. 블라이즈는 서로의 콘서트 무대에 게스트로 올랐다. 또한 컴필레이션 앨범 Mary J. Blige & Friends에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를 엘튼 존과 함께 불러 취입했고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열정과 애정 사운드트랙으로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를 커버하기도 했으며(이 곡은 후에 엘튼 존의 트리뷰트 앨범인 Revamp에도 수록된다)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https://youtu.be/IAMSxnT9u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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