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1 17:34:58

웨스트버지니아(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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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2. 개요3. 함생
3.1.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3.2. 전간기3.3. 진주만 공습3.4. 부활3.5. 대개장3.6. 복귀한 이후의 2차 세계대전3.7. 종전과 후일담
4. 평가5. 대중매체에서6. 관련 문서

1. 제원

함급 공통 제원
함종 전함
이전 함급 테네시급 전함
해당 함급 콜로라도급 전함
다음 함급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함명웨스트버지니아
영문명,함번USS West Virginia (BB-48)
착공1920년 4월 12일
진수1921년 11월 17일
취역1923년 12월 1일
퇴역1947년 1월 9일
최후1959년 8월 24일, 스크랩 매각

파일:pPXMN1W.jpg
구분 취역시(1923년) 최종사양(웨스트버지니아, 1944년)
만재배수량 34,130t 40,400t
전장 190.2m
전폭 29.7m 35m
흘수선 9.19m 9.4m
보일러 Bobcock and Wilcox 중유보일러 8기
추진기 Westinghouse 터보 일렉트릭 터빈 4조 4축
(콜로라도 - GE 터보 일렉트릭 터빈 4조 4축)
출력 28,900shp 29,000shp
연료 중유 4,570t
속도 21knot(39km/h) 20.5knot(38km/h)
항속거리 10knot(19km/h)에서 14,816km 15knot(27.78km/h)에서 22,409.2km
승무원 1,084명 1,407명
주포 16inch(406mm) 45구경장 Mark 1 2연장 주포탑 4기
(총 8문)
16inch(406mm) 45구경장 Mark 8 2연장 주포탑 4기
(총 8문)
부포 5inch(127mm) 51구경장
Mark 7 단장 부포곽 12기
(총 12문)
5inch(127mm) 38구경장
2연장 양용포탑 8기[br
](총 16문)
대공포 3inch(76.2mm) 50구경장
단장 대공포좌 8기
(총 8문)
보포스 40mm 56구경장
4연장 기관포좌 10기
(총 40문)
오리콘 20mm 76구경장
단장 기관포좌 50기
(총 50문)
어뢰 21inch(533mm) 단장 어뢰발사관 2기
(총 2문)
없음
장갑 측면주장갑 343mm, 측면수면하부 203mm
주갑판 89mm, 하갑판 38mm
2연장 주포탑 전면 457mm, 측면 254mm,
후면 229mm, 천장 127mm
주포탑 바벳 320mm
장갑함교 측면 406mm, 천장 203mm
주갑판 100mm로 강화
양용포탑 50mm
나머지는 현상유지
레이더 1940년 대공 색적용 CXAM-1
대공 색적용 SK, 전방마스트 SG, 후방마스트 SC

2. 개요

USS West Virginia, 'Wee-Vee' (BB-48)

USS 웨스트 버지니아 (BB-48)은 미합중국 해군의 전함 중에서 표준형 전함으로 분류되는 콜로라도급 전함(Colorado-class battleship)의 4번함이다. 건조 배경과 건조 당시의 스펙은 다른 콜로라도급 전함과 거의 같으나, 기함으로 활동하였다.

진주만 공습에서 피해를 입은 이후 대개장되어 표준형 전함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레이테 만 해전에 참전한 뒤 지상 포격 지원에 종사했다.

전후에 모스볼 처리되었다가 스크랩된다.

3. 함생

3.1.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은 1921년 11월 12일부터 시작해 1922년 2월 6일에 타결되었다.
함명함번착공진수취역
콜로라도BB-451919년 5월 29일1921년 3월 22일1923년 8월 30일
메릴랜드BB-461917년 4월 24일1920년 3월 20일1921년 7월 21일
워싱턴BB-471919년 6월 30일1921년 9월 1일
웨스트 버지니아BB-481920년 4월 12일1921년 11월 17일1923년 12월 1일

위의 표에서 보듯이 미국은 배째라 마인드로 군축 조약이 시작할 무렵에 모든 콜로라도급 전함을 진수시켜 버리고, 일본, 영국과 치킨게임을 시작한다. 진수 여부와 협상 타결일 기준으로 하면 영국은 16인치 주포를 장착한 전함을 1척도 얻지 못하고, 일본은 나가토급 전함 나가토와 무츠의 2척, 미국은 콜로라도급 전함 4척이 된다.

따라서 미국은 이 무리수를 통해 진수일이 아닌 취역일, 그리고 협상 시작일을 기준으로 할 수 있게 협상을 몰고 갈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영국은 잃을 것이 없으므로 미국과 원만한 대화가 가능했으나, 일본은 진수는 애저녁에 끝나고 취역을 코 앞에 둔 무츠를 날려먹게 되어서 길길이 뛰게 된다.

일본 본국에서는 반쯤 체념하고, 협상단에게 대미 7할 or 대미 6할+무츠를 달성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미국은 통신 감청과 암호 해독을 통해 그것을 알아내고는, 군축 조약 시작일 기준으로 미취역이던 무츠를 허락하는 대신, 미국도 미취역인 전함 2개를 더 받아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결국 취역일 기준으로 결정하면서, 16인치 전함 예외조항을 만든다. 일본은 거의 다 만든 무츠를 손에 넣었고, 미국은 콜로라도급 중에서 자유롭게 2개를 더 고르게 되었으며, 영국은 설계도도 없던 넬슨급 전함 2척을 인정받는다.

미국은 입장상 일본에게 취역일 기준을 강요해 빅엿을 먹인 것을 적당히 둘러대야했으므로, 조약문에 새로 만들 전함 2개는 메릴랜드와 같은 타입의 전함이 아닌 새로운 웨스트 버지니아급으로 명시한다. 그리고는 조약 시작 이전에 진수한 워싱턴을 표적함으로 날려버린뒤, 진수일이 협상 시작일보다 늦으므로 협상 시점에서는 신조함이 되는(...) 웨스트 버지니아를 남기고, 콜로라도는 취역한 스펙 기준으로 웨스트 버지니아랑 똑같이 생겼으니 웨스트버지니아급이라고 우긴다.[1][2] 그리고 그렇게 콜로라도급 3척을 확보한다.

워싱턴을 제외한 배들은 그렇게 과격한 퍼포먼스로 처리하지 않았다. 건조중이던 렉싱턴급 순양전함 4척과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6척은 도크 위에서 철거되었다. 2척의 렉싱턴급 순양전함은 렉싱턴급 항공모함 렉싱턴과 새러토가로 태어난다.
파일:wvchrist1.jpg
1921년 11월 19일, 웨스트 버지니아에게 세례를 주는 광경

그렇게, 전함 웨스트 버지니아는 자매를 대신 유산시키고 세상에 태어난다.

3.2. 전간기

군축 협상이 타결되자, 콜로라도급 전함 3척과 테네시급 전함 2척은 오랫동안 미국 함대의 최강 함선으로 남게 될 것이 자명했다. 미 해군에서는 이 엘리트 함선들을 빅 파이브라고 부르며 한 함대에 몰아서 배치한다. 일본의 1항이나 제2수뢰전대, 영국 본토함대(Home Fleet)의 제 1순양전함전대와 비슷하다 생각하면 된다.

5척의 전함 중에서도 웨스트 버지니아는 특별했는데, 늦게 진수된 덕분에 설계 변경으로 인한 공기 지연이나 재공사없이 한번에 완성된 배였다. 다른 말로 하자면, 취역한 순간에 기함이 될 운명인 배였다.

웨스트 버지니아는 대서양에 면한 버지니아 주 뉴포트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3][4]

시작은 순탄하지 않아서, 건조되어 개장을 위한 첫 항해를 하자마자 키에 문제가 있었다. 그걸 고치고 나서 취역 준비를 위한 개장을 마치고 출항했는데, 기관실과 연락하는 수단이 고장나서, 기관부를 조작하는데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처녀항해에서 뻘밭에 좌초되는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수리되자 1924년 10월 30일부로, 전술했듯이 미 해군의 총기함이 된다.
당시 미국 해군은 Battle Fleet, 전투함대라는 하나의 함대로만 존재했고, 1941년에 이 함대가 3개로 쪼개져서 미 해군 태평양 함대, 미 해군 대서양 함대, 아시아 함대로 재편된다. 전투함대 아래에는 5개의 전함전대가 수상함들과 구성되어 있었고, 항공모함전대, 잠수함 전대, 그리고 2개의 구축함 전대[5]가 구성되어 있었다. 웨스트 버지니아는 함대 총 사령관이 이끄는 Commander Battleship Divisions의 기함으로 착임한다.
파일:external/img2.ruliweb.daum.net/20765099170.jpg
1930년대 당시 웨스트버지니아

배에는 미 해군의 엘리트들이 모여들었고, 웨스트 버지니아는 전간기의 훈련에서 여러 상을 받는다. 미 해군 전함들끼리 참여하는 사격 대회에서 우승해 American Defense Cup을 따고, 태평양 함대 버전의 전투장비지휘검열과 교육성적평가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배에게 주어지는 Spokane Trophy를 수여받는다. 1925, 1927, 1932, 1935년에는 전함들끼리 전투 준비 태세를 점검하고 포격 훈련으로 성적을 겨루는 Battle Efficiency Pennants에서 우승하는 기록을 남겼다. 또한 미 함대는 Fleet Problem이라고 해서, 파나마 운하나 진주만, 태평양, 카리브 해 등 미 해군이 예상하는 전장에서의 다양한 공방전 상황을 가정하고 가상 전투 훈련을 했는데, 웨스트 버지니아는 이 훈련에 반드시 따라붙는 사격 훈련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함대 과제 훈련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소개글.

덧붙이자면, 함대 과제 훈련의 공방전에서는 항공 모함 혹은 항공 모함으로 꾸민 구형 전함이 상상 이상의 성과를 내서, 미 해군이 빠르게 인식을 전환해 항공모함으로 주력함을 바꾸는데도 영향을 주었다. 가령 1923년의 1번째 훈련에서는 전함 오클라호마가 항공모함 노릇을 하며 자신의 수상기를 함재기처럼 띄웠는데, 파나마 운하의 수위를 유지하는 Gatun Dam[6]의 파괴에 성공했고, 1927년의 7번째 훈련에서는 구식이라 여겼던 랭글리가 파나마 운하의 공습에 성공해서 충격을 안겼으며, 1929년의 10번째 훈련에서는 렉싱턴이 한번의 공습으로 새러토가와 랭글리를 동시에 격침판정을 내면서 또 한번 충격을 주었다. 덧붙이자면 기록상으로 볼때, 훈련 내내 새러토가는 렉싱턴에게 거의 털리는게 일상이었다. 9번째 훈련에서는 렉싱턴이 방어하는 파나마 운하를 공습하려다가 새러토가가 3번이나 격침된 기록이 나온다... 이 9번째 훈련은 항공모함을 공격적으로 투사하면 털릴 수 있다는 교훈을 미 해군에게 주었고, 새러토가의 승조원들에게는 피격시 복구 훈련을 벌칙으로 혹독하게 받게 해주었다. 웃픈 일이었지만, 미래의 시선에서 보면, 전쟁에서 새러토가와 승조원들 자신을 구원하게 될 귀중한 경험이었다.

어쨌든, 웨스트 버지니아는 정비를 마치면 훈련에 나가서 사격을 반복하며 표창을 받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함대는 분할되고,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 취역했지만, 여전히 태평양 함대 전함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엘리트 부대였다.

3.3. 진주만 공습

파일:800px-Attack_on_Pearl_Harbor_Japanese_planes_view.jpg
진주만 공습의 상징적인 사진 중 하나인, 어뢰에 맞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모습[7]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 당시 웨스트 버지니아는 좌현에 7발의 어뢰를 맞는다. 일본 해군의 공습이 시작될때 처음으로 뇌격당한 전함이고, 일본 해군 항공대는 바로 그 순간을 노려서 위의 사진까지 찍었다. 어뢰 7발 중 하나는 불발이었고, 1~2발은 이미 어뢰로 뚫린 구멍에 또 들어가서 터졌다. 결과적으로 큰 구멍이 2개가 나서 침수가 시작되었으며, 화재가 발생했다. 설계자들이 가능성이 매우 낮을 것이라 여긴, 팬곳 또 패기라는 보기 드문 기록을 남긴 그 어뢰는 콜로라도급의 어뢰 방어 체계를 아작내면서 함의 조타실을 완벽하게 박살내버렸다. 함체는 급하게 왼쪽으로 28도까지 기울어졌고, 함내의 동력, 조명, 통신 및 좌현의 대공화기들도 모두 먹통으로 만들었다.

더불어 16인치 포탄을 개조한 항공폭탄 2발도 얻어맞았는데, 한발은 전방 마스트에 떨어진 후 갑판을 관통해서 내부장갑까지 도달했으나 다행히 불발이었고, 다른 하나는 함체에 계류된 수상기를 으깨버리고 부포곽을 박살냈으나 이 역시 불발이었다. 하지만 박살난 수상기의 엔진에서 가솔린이 흘러나와 화재가 발생했고 거기에 더해 격침된 애리조나에서 흘러나온 기름과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흘러나온 기름에 불이 옪겨붙으며 두 척에서 새어나온 기름으로 인해 30시간 동안에나 화재가 났다. 수많은 승조원들이 이 화재로 크고작은 부상을 입었으며, 포탑과 상부구조물은 고열에 손상되었다.

배가 기울었지만, 당직 사관이 공습 초기에 수밀문을 모두 닫고 구획에 물을 채우는 조치를 해서 15도로 복귀하며 전복 위기는 넘겼다. 하지만 함장은 그 사실을 모른채로 반대편을 침수시켜서 전복을 막으라고 지시한다. 지시받은 초급 장교는 이미 어느 정도 침수된 것을 발견했지만, 함을 완전히 침수시킬 것을 지시한다. 사실 웨스트 버지니아에는 최신식 전화 설비인 무선지식 전화기(sound-powered telephone)의 프로토타입이 시험삼아 설치되어 있어, 정전이 되어도 의사소통이 가능했으나 장교들은 CPO에게 그 사실을 아직 전달받지 못한 상태여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결과 웨스트 버지니아는 선체 하부에 고립된 승조원들을 남긴채 착저한다.
파일:748px-USS_West_Virginia2.jpg
진주만 공습을 상징하는 또 다른 사진, 불타는 웨스트 버지니아

초급 장교가 다시 함교로 돌아왔으나, 테네시의 포탑 천장에 맞고 폭발한 포탄의 파편을 맞아 치명상을 입은 함장을 발견한다.[8] 2번째 선임자는 흘러나온 기름에 의한 화재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 보고, 퇴함 명령을 내리고는 본인도 배에서 뛰어내렸다. 초급 장교는 이제 웨스트버지니아의 지휘관이었다. 함장이 된 장교, 하퍼는 소화 작업을 지시한다. 이를 돕기 위해 전함 테네시에서 온 소방 호스가 웨스트버지니아로 건내지나, 불은 너무나도 거셌고, 결국 하퍼는 배를 버리라 지시한다.
파일:uss-west-virginia_battleship-graveyard_1-24.jpg
격침된 채 방치된 웨스트 버지니아

공습 결과, 미 해군은 웨스트 버지니아에게 Sunk, 격침 판정을 내렸다. Naval List에서 호적이 파이지만 않았을 뿐이었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승조원들은 전부 뿔뿔히 흩어져서 다른 함종으로 옮겨탄다. 미 해군이 20년 가까이 공들여가며 만들어놓은 최정예 조직 하나가 한 순간에 증발하는 순간이었다.

덧붙이자면, 당대의 지위가 상당한 함선이었기 때문에, 진주만 공습 관련 사진 자료에서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진주만 공습에서 격침당한 다른 전함인 애리조나오클라호마, 캘리포니아도 각각의 배를 기준으로 정리해보면 당대의 일본, 미국 측 사진 자료는 웨스트 버지니아보다 많다고 보기 힘들 정도다. 소설가 이광수의 친일 문학에서도 '앵글로색슨'의 전함을 격침한 사건을 다루면서 덴노를 찬양하는데, 미 태평양 함대에서는 웨스트버지니아와 오클라호마를,[9] 말레이 해전에서는 프린스 오브 웨일즈의 이름을 꼽았을 정도니,[10] 웨스트 버니지아의 격침 소식을 들은 당대 사람들 사이에 퍼진 파장이 어떤 느낌이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3.4. 부활

다음 해인 1942년 5월 17일, 산호해 해전이 끝난 직후에 미 해군은 웨스트 버지니아를 건져낸다.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물론이거니와 사우스다코타급 전함도 4척중 3척이 이미 취역한 상황인데도, 미 해군은 아득바득 이것을 되살려냈다. 어뢰를 맞아 구멍이 난 두 곳에 물속에서도 굳는 시멘트를 들이부은 다음, 콘크리트질 해서 메꿨고, 그제서야 배가 펌프를 통해 배수를 마치고 떴다. 하지만 어뢰에 여러 발 맞고 방뢰구획을 포함한 선체가 크게 손상된 탓에 부력이 너무 부족해서, 무게를 줄이기 위해 선내 탄약고로부터 물에 젖은 모든 탄약을 빼내는 삽질을 하고 나서야 물 밖에 띄워내 건선거에 들어갈 준비가 된다. 허나 태평양 전쟁의 아수라장 속에서 진주만의 건선거는 절대 한가할리가 없었고, 6월 9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파일:wva14.gif
건선거로 이동하는 웨스트 버지니아. 좌현에서 배수 펌프가 돌아가는게 보인다.
From the Robert F. Walden Collection - Hawaii War Records Depository - University of Hawaii Archives

미 해군은 웨스트 버지니아가 오클라호마처럼 실려가다 가라앉는 운명이 되길 원하진 않았기에,[11] 진주만의 건선거에서 웨스트 버지니아를 수리했다.

함 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실종된 승조원 63명의 시신도 발견되었다. 대부분은 침몰과 함께 익사했지만, 예외도 있었다. 며칠간 선체를 계속 두드리는 소리가 났기 때문에 배가 가라앉은 후에도 생존자가 있었음은 알려져 있었으나 구조할 방법은 없었고, 곧 소리도 멈췄다. 펌프실에 갇혀서 펌프의 물과 약간의 비상식량으로 버텼던 이 생존자 3명은[12] 달력에 12월 23일까지 16일 동안 표시를 남겼다.[13] 미 해군은 가족들의 충격을 우려해 이 사실을 숨기고 단순 전사로 알렸다.[14]

3.5. 대개장

웨스트 버지니아를 건져내는건 가성비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훨씬 좋은 사우스다코타급이 취역중이었고, 개장을 마칠 즈음에는 아이오와급 전함이 일선에 나올 것이었다. 뭐가 되었든 다 고친다 치더라도, 느려터진 엔진을 바꿔 고속 전함으로 바꾸는 것은, 설계상으로도 그렇고 엔진을 제작하는 일정상으로도 그렇고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웨스트 버지니아를 부활시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 내지는 감정적인 이유가 더 컸다. 진주만 공습에 대한 반발 심리도 있거니와, 콜로라도급 전함은 전술적, 전략적 가치로나, 군 장병과 국민들의 감정 면에서나 일본에서 나가토급 전함을 생각하던 것과 비견될만큼 사랑받던 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 년동안 물속에서 녹슨 배를 아득바득 건져낸 것이다.

그런데, 배를 건지고 나니 또 문제가 터졌다. 전술했다시피 희생자들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진주만 공습의 트라우마를 다시 자극한 이 사건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고, 이제는 그냥 복구하는 것으로는 끝날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퓨젯 사운드 해군 공창은 태평양 전쟁으로 눈코 뜰새없이 바쁜 곳이었지만, 웨스트 버지니아를 개장하기 위해 건선거 하나의 일정을 비워둔다. 사실, 손상이 상대적으로 덜해 먼저 띄워낸 테네시랑 캘리포니아가 한창 개장중이어서 웨스트 버지니아의 개장 일정이 뒤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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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토화된 상부 구조물을 철거하는 웨스트 버지니아
From the Robert F. Walden Collection - Hawaii War Records Depository - University of Hawaii Archives

진주만의 건선거에서는 엉망이 된 함내를 수습하고, 파공을 막기 위해 부어넣은 콘크리트를 긁어내며, 좌현의 파공을 보수하면서 벌지를 수리해서 다시 달았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선체의 개조를 시작한다.
- 상부 구조물을 전부 철거하고, 고속 전함의 설계를 응용한 새 설계로 다시 만든다.[15]
- 갑판 장갑과 어뢰 방어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파나맥스를 포기하고[16] 35미터 너비로 늘린다.
- 부포곽을 전부 제거한다.

어뢰와 화재로 함내가 쑥대밭이 된 배를 미국 본토에 항해가 가능한 수준까지만 복구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박살난 상부 구조물을 전부 철거하고, 새로이 지어 올린다.

웨스트 버지니아는 1943년 5월 7일이 되어서야 미국 본토 서해안의 워싱턴주[17] 브레머튼의 퓨젯 사운드 해군 공창으로 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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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젯 사운드 해군 공창으로 향하는 웨스트 버지니아
상부구조물이 바뀌었지만, 5인치 양용포가 없는 것이 보인다.

공창의 건선거에 들어간 웨스트 버지니아는 최신 설비로 배의 장비를 교체하기 시작한다.
- 상부 구조물의 공사를 마무리한다.
- 미국의 다른 고속 전함들과 동일하게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를 장착했다.
- 보포스 기관포와 오리콘 기관포가 대거 설치된다.
- 노스 캐롤라이나 급과 사우스 다코타급에 설치된 최신 전자 장비를 설치한다.[18]
- 전용 주포인 16인치 45구경장 Mk.8을 장비한다.

특히 전자 장비와 주포가 주목할만한데, 이 개장을 통해 웨스트 버지니아의 사격 통제 시스템은 고속 전함의 그것과 완전히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

16인치 45구경장 Mk.8 주포는 Mk.5 주포에 크롬 도금을 추가해서 포신 수명을 320발에서 Mk.6와 동일한 395발로 늘렸고, 사격 통제 시스템과 자동으로 연동되는 물건이다. 다만 웨스트 버지니아의 주포탑을 더 넓은 것으로 째로 갈아끼우는건 일정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Mk.8은 Mk.6에 있던 초중량탄(SHS) 운용 사양이 삭제되었다. 자동화의 댓가로, 주포 포신 1개당 탄약고의 포탄 개수도 100개에서 90개로 줄어들었다.

개장을 통해 잃은 것도 있으나, 웨스트버지니아는 2연장 포탑이어서 사격 시 포신과 포탑에 전해지는 충격이 적어져 3연장보다 정확도 면에서 유리하다는 점, 현폭이 더 넓어져서 안정성이 높아졌다는 점, 개장 시점에서 최신의 사통장비를 장비했다는 점, 16인치 45구경장 포신의 최종 버전을 장비한 이점을 얻어, 50구경장보다 45구경장의 사거리와 정확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함대에서 포격이 가장 정확한 전함이 되었다. SHS를 운용할 수는 없었지만 사용하는 고폭탄은 동일했으므로, 지상 포격 임무에서는 가장 뛰어난 전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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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을 마친 웨스트버지니아
굴뚝의 형태가 바뀐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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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이후의 테네시급 전함 캘리포니아사우스다코타급 전함 앨러배마
3연장 주포가 보이지 않는 각도로 찍으면, 웨스트 버지니아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실루엣이 유사하다.

그리고 개장 이후, 콜로라도급 3척은 서로간의 공통점이 주포의 배치 방식 말고는 없다시피하게 된다. 개장 이후의 웨스트 버지니아는, 포탑을 제외하면 자신과 마찬가지로 진주만 이후 완전 개장을 받은 테네시급 전함 테네시와 캘리포니아[19], 사우스다코타급 전함과 더 유사한 전함이 되어 있었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승조원들은 전부 다른 함선들로 뿔뿔이 흩어졌기에, 공창에서는 새로운 멤버들로 배를 채웠다.

개장을 마치고 새 승조원을 태운 웨스트버지니아는 1944년 9월 23일에 진주만에 입항한다.

3.6. 복귀한 이후의 2차 세계대전

웨스트 버지니아는 직후 필리핀으로 향한다. 그리고 메릴랜드로부터 표준형 전함들이 모인 4 전함 전대의 기함 자리를 넘겨받는다.
이후 제시 올덴도르프 제독이 지휘하는 77.2 임무 부대에 배속된다.

우스꽝스럽게도, 웨스트 버지니아는 다시 태어나자마자 레이테 만에서 또 좌초를 해버렸다. 이번에는 자력으로 탈출했지만, 스크류에 손상을 입고 함속이 18노트로 떨어진다. 그 상태로 레이테 만 해전에 참전을 했고, 해전이 끝난 10월 29일에 울리히로 가서 수리를 받아야 했다. 승조원들이 경험이 적은 이들이라 생긴 해프닝이었다.

반면 풋풋한 승조원들을 받아들이면서 생긴 좋은 일도 하나 있었는데, 진주만 공습 이전까지의 엄근진한 FM 주력 전함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애칭을 받게 되었다. 승조원들은 웨스트 버지니아를 위비(Wee-Vee)라고 부르게 된다.
파일:USS_West_Virginia_(BB-48)_firing_during_the_Battle_of_Surigao_Strait_in_October_1944.jpg
수리가오 해협에서 니시무라 함대에 포격 중인 웨스트 버지니아

레이테에서, 웨스트 버지니아는 수리가오 해협 해전을 겪었고, 야마시로를 SG 레이더로 포착한 뒤 Mk.8 Mod.2 화기관제 레이더로 조준 후 일제 사격을 해, 초탄부터 명중탄을 냈다. 16번의 일제 사격을 해서, 대부분의 협차와 3회 명중을 기록, 총 93발을 쐈다.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 올덴도르프 휘하로 전함 전대를 지휘한 Theodore Ruddock 제독은 아래와 같이 평가했다.
From observation made on the flagship, the West Virginia, the CIC functioned very well. The position of own and enemy forces was known at all times and there was no doubt as to where to shoot. Continuous sweeps of the surface search radar presented the full picture to the Division Commander. Tracks of own and enemy forces accurate enough to determine who was who were maintained by reading bearing and range from the remote P.P.I. Fire Control Radars were coached on to the target and accurate tracking was done by using them.

기함으로 활동하면서, 웨스트 버지니아의 전투 정보실은 매우 잘 돌아갔다. 적과 아군의 위치를 잘 알수 있었고, 공격할때도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SG 레이더의 지속적인 색적 덕분에, 함대 지휘관은 큰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적과 아군을 추적하는 것도 충분히 정확했고, PPI를 읽는 것만으로도 가능했다. 사격 지휘 레이더는 목표를 잘 지시해주었고, 적을 정확히 추적할 수 있었다.
1. Radar of both surface search and fire control types proved its worth on the night of 24-25 October 1944. The procedure used by the West Virginia for operating the surface search radars is recommended for all ships.
2. The great value of maintaining a continuous sweep with the surface search radar was proven again in this engagement. The remote PPI enabled anyone watching it to keep track of our forces and the enemy. Tracking can be done from the remote PPI well enough to keep a summary plot. Solving for enemy course and speed accurately enough for gun or torpedo fire is a fire control radar's job.

1.수리가오 해협 전투 동안, SG 레이더와 Mk.8 레이더는 그 가치를 입증했다. 웨스트 버지니아에 장착한 SG 레이더는 모든 수상함에 장착해야 한다.
2.이번 교전을 통해 SG 레이더가 지속적으로 수상 색적을 해주는 것이 대단히 유용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PI를 보고만 있어도 적과 아군을 추적할 수 있었다. 추적이 용이하여, 거점에 머무르는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사격 지휘 레이더는 함포 사격과 뇌격을 더 정확히 할 수 있도록 적의 침로와 항속을 파악해주었다.
Performance of the ordnance installations of the West Virginia left nothing to be desired except some improvements in her ammunition carrying capacity. At the end of the action - a little over nine minutes - half of the ammunition suitable for heavy targets was expended. This immediately proved a matter of concern as other heavy enemy ships were reported to the eastward.

웨스트버지니아에 장착된 주포의 성능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탄약의 양을 늘리는 것 말고는 더 개선해야할 점을 찾을 수 없다. 작전은 대략 9분 동안 진행되었는데, 중장갑 표적을 공격하기 위한 탄약의 절반이 소진되었다. 이는 동쪽에서 구리다 함대가 접근할때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함장은 아래와 같이 평가했다.
IT WILL BE NOTED THAT THE WEST VIRGINIA FIRED 16 SALVOS, 93 ROUNDS. THE SHIP'S REPORT STATES THAT OF THE 13 FULL SALVOS FIRED, EVERY SALVO WAS A STRADDLE. THIS PERFORMANCE IS ESPECIALLY OUTSTANDING WHEN CONSIDERATION IS GIVEN TO THE FOLLOWING FACTS:

- THE WEST VIRGINIA LEFT THE COAST WITH NEW EQUIPMENT, NEW OFFICERS AND NEW CREW -- THE GREATER PERCENTAGE OF OFFICERS AND MEN HAD NEVER BEEN TO SEA BEFORE. ONLY TWELVE ENLISTED MEN HAD EVER HAD PREVIOUS TURRET EXPERIENCE. TWO OF THE TURRET OFFICERS HAD NEVER BEEN TO SEA BEFORE, THE THIRD CAME FROM SUBMARINE DUTY AND THE FOURTH FROM SMALL CRAFT. THREE MONTHS SHAKEDOWN AND SHE WAS A FIGHTING UNIT.
- ALTHOUGH SHE HAD UP-TO-DATE RADAR EQUIPMENT, SHE HAD TRAINED HER MEN TO USE IT TO ITS FULL VALUE.
- THE WEST VIRGINIA OPENED FIRE UNDER FULL RADAR CONTROL AND CONTINUED TO USE IT FOR EVERY SALVO.
- THE TARGET WAS PICKED UP AT 41,000 YARDS AND TRACKED DOWN TO 22,400 YARDS BEFORE OPENING FIRE.

알다시피 웨스트 버지니아는 총 16번의 일제 사격 동안 93발을 쐈다.[20] 사격 결과, 13번의 일제 사격은 모두 협차를 냈다. 이 결과는 아래와 같은 점을 고려할때, 매우 우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 웨스트 버지니아는 출항하면서 새 장비, 새로 부임한 장교, 처음 승함한 수병들로만 구성되었다. 대부분의 장교와 수병은 바다에 나가본 적도 없다. 수병 중에서는 겨우 12명 만이 포탑에서 근무해본 경험이 있었다. (4개의) 포탑을 각각 담당하는 장교 중에서는, 2 명은 바다에 나가본적이 없었고, 3번 포탑은 잠수함 출신이고, 4번 포탑은 소형선박[21] 출신이다. 그리고 우리 배는 전투함인데, 승조원들 전체가 처음으로 탄 배에 적응하는 훈련을 3달간 한게 전부다.
- 웨스트버지니아가 최신 레이더 장비를 갖추고 있긴 하나, 제대로 다룰려면 훈련을 해야 한다.
- 웨스트버지니아는 모든 일제 사격을 레이더 관제 사격으로 수행했고, 끝까지 지속했다.
- 41000야드에서 적을 포착해서, 적에게 포문을 열었던 22400야드까지 적을 추적했다.

그러나, 레이테 만 해전 이후로는 일본 해군은 이렇다할 공세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웨스트 버지니아는 필리핀 탈환전, 이오지마 전투, 오키나와 전투에서 카미카제에 의해 격침되거나 손상되는 동료함들을 바라보며, 묵묵히 지상군에 화력 지원을 제공한다.

마지막 전투였던 오키나와 전투는 나쁜 일이 많았다.

4월 1일, 19시 3분에 다른 배들처럼 카미카제 공격에 당한다. 카미카제는 좌현의 상부구조물에 직격했고, 부포 사격 제원을 계산하는 설비 근처에서 터진다. 4명이 휘말려 죽었고. 근처의 오리콘 대공포 진지에서도 부상자가 발생했다. 다행히 카미카제 항공기의 폭탄은 유폭되지 않았다. 웨스트 버지니아는 자체적으로 수리 후 작전을 지속하기로 하고, 사망자들을 수장한다.

4월 20일에는 울리히로 와서 보급과 수리를 하려 했으나, 자매함 콜로라도에서 포탑 내부에서 장약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그 자리를 대신해주기 위해 일찍 복귀해야 했다.

6월 16일에는 정찰기가 추락했는데, 구출하지 못했다. 결국 테네시의 것을 빌려와야 했다.

반면 4월 14일처럼 칭찬을 듣는 좋은 일도 있었다.
one spotter reported happily on April 14: "You're shooting perfectly, you could shoot no better, no change, no change," and, "Your shooting is strictly marvelous. I cannot express just how good it is." She delivered sterling support fire for the 6th Marines upon that occasion; later, she continued in that fine tradition for the 10th Army and the XXIVth Army Corps.

4월 14일에 한 관측 장교가 기분 좋게 회신하기를 "완벽하게 포격하고 있습니다. 더 잘 쏘는게 불가능할 정도에요. 제원 수정 없이 계속 쏘세요. 쏴요."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는 "포격이 진짜 놀랍네요. 얼마나 멋진지 표현할 수 없을 정도에요."라고 덧붙였다. 웨스트 버지니아는 6해병사단을 위해 기관총을 쏘듯이 포탄을 날렸다. 이후에는 육군 제10군과 육군 24군단을 위해서도 정확한 포격을 했다.

나중에는 평판이 좋아져서, 좀 더 정확하게 쏴야하는 임무에 종사하게 된다. 6월 1일부터 2일까지는 일본군의 콘크리트 요새를 직격으로 파괴하는 임무를 진행했는데 1일은 전부 빗나가는 망신을 당했으나[22], 2일째는 11발중 4발을 명중시켰다. 그 외에 동굴을 붕괴시키거나, 도로를 파괴하기도 했다.

3.7. 종전과 후일담

일본은 8월 10일에 항복 의사를 밝혔다. 웨스트 버지니아는 8월 12일에 뇌격당한 전함 펜실베니아를 돕고, 8월 24일 도쿄만에 도착한다.
그리고 9월 2일의 항복 조인식을 준비하는 미주리에 5명의 군악대원을 파견했다.

전쟁이 끝난 9월 14일,웨스트 버지니아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270명의 군인들을 태우고 10월 4일에 미 서해안으로 복귀한다. 샌디에이고에 도착하여 병사들을 내린 10월 22일, 기함 임무에서 해제된다.

1946년 1월~ 2월 동안 함의 내부를 깨끗히 정리했고, 자매함 콜로라도 곁에 자리를 잡았다. 1947년 1월 7일에 퇴역하여 모스볼 처리되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나자, 전함이 장차의 전쟁에서 유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졌다.
진주만 공습의 기념함으로 이미 애리조나가 존재했고, 태평양 전쟁의 상징은 엔터프라이즈미주리가 차지하고 있었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웨스트 버지니아는 1959년 3월 1일 군적에서 말소되었고, 8월 24일 스크랩되기 위해 팔렸다.

웨스트 버지니아는 버지니아 주가 있는 대서양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운명으로 보였으나[23], 스크랩하기 위해 구입한 고철상들은 버지니아주 바로 옆의 뉴욕에 있는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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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버지니아주 주립대에 전시된 마스트마스트 옆에 전시된 벨

웨스트 버지니아는 긴 여정 끝에 고향 근처의 바다로 돌아와 생을 마감하고, 마스트와 벨 등의 일부 기념품을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 남긴다.

4. 평가

실용성으로 따지자면 사실 별 쓸모가 없는 배였다. 취역했을때부터 이미 땜빵으로 만들어진 함급으로, 실전에 투입할 때가 되자 자신보다 성능이 좋은 전함들이 찍혀나오고 있었다. 거기다 시대는 더이상 전함끼리 치고박는 함대전에서 항공모함을 중심으로한 항공전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배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 그 자체로도, 그리고 부활한 이후의 함생에서도 의미가 많은 배였기에 전손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음에도 재기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후드를 대신해 만들어진 뱅가드급 전함과도 비슷하다.

그렇게 부활한 탓에 성능 자체는 동시대 전함들보다 뒤떨어지게된다. 하지만, 지상 포격에서는 가장 뛰어난 전함이었다. 그래서 이후 미 해병대가 전함에 집착하는 계기를 만든 장본인이 된다.[24] 그리고 성능과는 별도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워싱턴과 함께 함대함 포격전을 제대로 겪은 전함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때문에 매니아들의 관점에서도 나름대로 흥미로운 배이다.

수훈을 많이 세우지는 못했으나, 그 행적만으로도 후대에 회자되는 파란만장한 함생을 보냈다는 점에서는 포틀랜드급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있는 스펙 그 자체만 논하자면 구형포탑을 사용하여 부양각 부족으로 SHS를 운용할 수 없고, 탄약 적재량도 더 적으며, 20노트에 불과한 함속 때문에 고속전함들보다 확연히 뒤떨어진다. 하지만 고폭탄을 운용하는 지상 포격에서는 정확도가 더 뛰어난 배였다. 그리고 아이오와급 전함이 퇴역할 때까지 기밀로 분류되어 있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과 아이오와급 전함의 방뢰 체계의 결함을 겪지 않았다.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그런게 없었기 때문에, 웨스트 버지니아가 앞서는 면이 없다는 기묘한 면도 있다.

그리고 비교 대상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표준형 전함들 중에서는 독보적으로 강력한 정점에 선 배이며, 2차 대전기에 활동한 다른 일본 영국의 1차 대전기 전함들인 공고급 순양전함, 나가토급 전함, 리나운급 순양전함,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을 통틀어도 순항 속도를 제외하면 비교를 불허하는 압도적인 전투 성능을 가지고 있다.

결국 성능적으로 종합해 보자면 2차 대전의 기술력으로 1차 대전기의 전함을 대개장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의 결과물 그 자체[25]이며, 1차세계대전과 전간기사이의 가파른 기술 발전을 상징하는 배이기도 하다.

5. 대중매체에서

  • 진주만(영화) - 실존 인물인 흑인 취사병[26] 도리스 밀러(Doris Miller)가 비중있게 나온다. 도리스 밀러는 작중에서처럼 불타는 배 위에서 2번째 공습에 대항해 대공포를 사격하여 일본군 전투기에 맞섰다 그후 해군 십자장을 받았다. 그 뒤 도리스 밀러는 웨스트 버지니아 부대가 해체될때 인디애나폴리스로 발령받았다가, 새로 건조된 호위항공모함 USS 리스컴 베이로 발령난다. 이 호위항모는 1943년 11월 24일에 이-175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고[27], 도리스 밀러도 여기서 전사한다.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명예 훈장을 추서하는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기각된다. 2020년에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 4번함의 함명으로 도리스 밀러의 이름이 붙는 상당한 영예를 받았다. 여담으로 제럴드 R.포드급의 3번함의 함명은 태평양 전쟁의 전설 엔터프라이즈다.
    이밖에 실제와는 조금 다르지만, 명예 훈장 수훈자 마빈 배넌 함장[28]이 전사하는 장면도 있으며, 수병들이 침몰한 선저에 갇혀서 사망하는 묘사도 나온다.
  • [29]
    월드 오브 워쉽 - 6티어 미국 프리미엄 전함으로 등장한다. 2018년 9월 17일에 개발자 블로그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본래는 웨스트 버지니아는 하나만 계획했으나, 1944년 대개장 사양을 바라는 이가 많아서 기존에 발표한 것을 1941년 사양으로 변경하고 1944년 사양을 따로 출시하겠다고 한다. 월드 오브 워쉽 블리츠에 대개장을 받은 1944년형 버전이 있는데, 고증대로 강화된 대공성능과 더 강력해진 방뢰성능을 보유하고 있다.

6. 관련 문서



[1] 논리상 말이 안되는게 아닌게, 가령 순양전함으로 만들다가 항공모함이 되면 그건 항공모함이지 않은가. 콜로라도도 메릴랜드와 같은 함급으로 시작했지만, 취역시에 웨스트 버지니아급의 사양이 되었다고 한 것.[2] 그리고 취역 기준으로 메릴랜드는 다른 자매함들보다 대공포 개수(...)가 적었다.[3] 메릴랜드도 이곳에서 건조된다.[4] 콜로라도는 뉴저지주 캄텐의 뉴욕 조선소에서 건조된다.[5] 그러나 지휘관은 두 구축함 전대가 같은 사람이었다.[6] 이것만으로는 불안정해서 1935년에 Madden Dam를 더 짓는다.[7] 어뢰가 명중하며 솟아오른 물기둥 우측에 일본군 항공기를 볼 수 있다.[8] 함장 Mervyn S. Bennion은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함의 복구를 지휘하다가 사망하고, 사후에 명예 훈장을 받는다.[9] 애리조나가 오클라호마보다 더 최신형 전함이었는데 오클라호마를 인용한 점이 특이하긴 하지만, 네바다급 전함과 펜실베이니아급 전함의 취역 시기는 불과 반년밖에 차이가 안나긴 한다.[10] 이 찬양(?)은 이광수 항목에도 전문이 인용되어 있다.[11] 다만 오클라호마가 예인도중 침몰한 것은 1947년의 일이고, 오클라호마는 웨스트버지니아와 달리 띄워낸 후에도 몇 년간 방치되었기에 이미 선체가 녹슬어 있었다.[12] 로널드 앤디콧, 루이스 오스틴, 클리프트 올즈[13] 실제로 사인은 이산화탄소 중독이라서 표시보다 더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14] 루이스 오스틴은 유품으로 어머니 에피 오스틴이 선물해준 손목시계가 수습되어 어머니에게 전달되었으며, 에피 오스틴은 아들의 손목시계를 수리해서 1985년 향년 92세로 사망할 때 까지 평생동안 해당 손목시계를 차고 다녔다고 한다.[15] 그 결과 사우스다코타 급과 실루엣이 거의 같아졌으며, 새장형 마스트는 사라진다.[16] 대서양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일본 해군의 격멸에만 집중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17] 시애틀 시가 있는 주.[18] 대수상용 SG, 대공용 SK, SC 레이다, 화력관제용 Mk. 8 레이다, 사격지휘시스템 Mk.34[19] 단, 테네시급 전함의 주포는 14인치 50구경장 3연장포 4개이다.[20] 원래대로라면 주포신이 8개이므로 128발이어야 하나 사격 도중 일부 포탑이 양탄기 고장을 일으켜 6회차부터 사격하지 못한 포대가 있었다.[21] 바지선.[22] 익숙한 레이더 조준을 못하고 정찰기를 띄워서 관측 사격을 한 탓이다.[23] 미 해군도 그걸 감수하고 파나맥스를 포기했다.[24] 하지만 아이오와급 전함은 그 기대에 부응할 정도로 정확하게 포격하진 못했다.[25] 사실 타국들도 1차대전에 완공된 배들을 전부 대개장할 예정이었지만 대공황과 경제불황을 겪으며 2차대전까지 제대로 개장받은 함급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26] 당시에 유색인종은 90년대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취사병, 운전병 등의 비전투 보직을 주로 맡으며, 전투병이라 해도 유색인종끼리 묶여서 전투에 참여해야 했다. 나중에 그 제한은 풀리지만, 반대로 취사병 병과는 유색인종만 받는 역차별이 지적되어, 결국 현대 미 해군에서는 모든 병과에서 인종 제한이 사라진다.[27] 1.4킬로미터 떨어진 전함 뉴멕시코에게까지 파편이 날라올 정도였다고 한다.[28] Mervyn S. Bannion (1887.5.5 ~ 1941.12.7). 항공폭탄 파편에 중상을 입은 와중에도 지휘관이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과다출혈로 사망했다.[29] 공식 티저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