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 이홍하 李洪河 | |
<colcolor=#fff> 출생 | 1938년 7월 20일 ([age(1938-07-20)]세) |
전라남도 고흥군 | |
본관 | 전주 이씨 |
학력 | 고흥동초등학교 (졸업) 고흥중학교 (졸업) 고흥농업고등학교 (졸업) 조선대학교 문리과대학 (농생물학[1] / 학사) |
직업 | 前 교사 前 목욕탕 사장 前 홍복학원 이사장 前 서남대학교 총장 |
전과 | 횡령, 세금계산서 허위 교부, 근로기준법 위반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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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횡령 범죄자. 박철웅, 김문기, 백인엽, 손종국 등과 함께 비리 사학인으로 아주 악명이 높은 사람 중 하나로 현재는 손종국과 본인만 생존 상태.원조 비리 사학인 중 하나인 박철웅의 학교 경영 방식에 영향을 받고 그걸 더 발전시켜 허술한 법망을 악용하면서 아래의 부실 학교들을 양산했다. 부실 사학으로 사익을 챙긴 후 이로 인한 피해는 학생들과 학교가 위치한 지역 사회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2. 생애
2.1. 초년기
1938년 7월 20일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선대학교 농생물학과(야간부)[2]를 졸업하고 공립고등학교 생물교사로 근무했다.[3] 생물교사로 재직할 당시 제자들 사이에서는 꽤나 재미있게 가르쳤던 교사로 기억된다고 한다. 아내인 서복영(徐福英) 역시 고등학교 가정교사 출신인데, 이들 부부는 교사 생활을 하면서 부업으로 광주 지산동에서 작은 목욕탕을 경영했다.[4][5]헌데, 교원은 현행법상 창작 활동을 제외한 일체의 영리 활동이 공무원법에 의거하여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것이 문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방과 후에 자기 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과외를 해서 시험 문제를 흘려주거나 촌지를 받아챙기며 돈 안 되는 제자들을 학대하는 교사도 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이런 행각 조차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여서,[6] 저런 짓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교장까지 승진하는 교사들도 흔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투잡을 하는 것 정도는 비판점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고 그 시절 이홍하의 모습을 기억하는 제자들은 수업이 끝나고 목욕탕으로 달려가는 이홍하를 보며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며, 이후의 타락한 모습을 보고는 안타까워하거나 씁쓸해했다고 한다.[7]
2.2. 사학계에 뛰어들다
목욕탕 장사가 잘 되자 돈이 어느 정도 모였고, 그 돈에다가 은행에 융자를 받아서 본인 이홍하와 본인의 아내 서복영의 이름의 가운데를 각각 따서 1977년 6월 20일에 학교법인 홍복학원을 창설했다. 그의 나이 40살 때의 일이다.이후 이씨 부부는 1978년 3월 4일에 전라남도 광주시(現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동에 광주시 최대 규모의 여자고등학교인 옥천여자상업고등학교(現 서진여자고등학교)[8]를 개교, 뒤이어 1984년 11월 27일에는 18학급 설립 인가를 받아 나주군 남평읍[9]에 광남고등학교를 이듬해인 1985년 3월 13일[10]에 개교하였으며, 1985년 12월 28일에는 옥천여자상업고등학교 옆에 대광여자고등학교가 15학급 설립 인가를 받아 이듬해인 1986년 3월 5일에 개교, 이렇게 총 3개의 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이사장에 취임했다.
의외일 수도 있는데, 이 중 대광여고는 광주광역시에서 최고의 명문 여고로 손꼽히는 학교였었다. 광주광역시 여고 중 명문대 합격률이 가장 높은 여고 중 하나였다. 엄청난 스파르타식 교육을 하기 때문에 애들이 딴짓할 틈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11] 이홍하가 오직 이 학교만은 전력투구해서 명문으로 만들었던 건 다 이유가 있다. 이 학교마저 똥통학교일 경우 학교법인 홍복학원이 문을 닫게 될 위기에 몰리기 때문이다. 이홍하는 그걸 막으려고 오로지 이 학교만은 명문고등학교로 만들었던 것이다. 국어ㆍ수학ㆍ영어 학교 향상도 상위 100대 고교 그러나 관선이사가 파견된 이후 현재는 높아진 수시 비율에 전혀 대비하지 않고 오로지 정시 하나만 지나치게 믿고 밀어붙인 결과 입시 성적이 나락으로 떨어져서 모든 것들은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게다가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12], 동아여자고등학교, 설월여자고등학교, 살레시오여자고등학교, 전남여자고등학교, 조선대학교여자고등학교 등 이제는 주변의 여자고등학교들과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특히 대광여고의 경우는 내부 시설만 봐도 이홍하 계열 대학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인데, 교실 벽은 우드그레인으로 마감되어 있고 창문에는 고급 롤스크린이 걸려 있으며, 천장에는 고급 매립식 형광등, 간접 조명, 샹들리에(!)[13]가 있으며, 고급 책걸상에다가 교실마다 빔 프로젝터와 냉장고가 있고, 복도 벽까지 인조 대리석(!)으로 마감했을 정도로 호화로운 인테리어와 내부 설비를 자랑해서 화제가 되었을 정도였다. 천장에 텍스마감도 없이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고 70~80년대 옛날 학교 건물에서나 볼법한 구형 갓형 형광등이 달려 있어 보는 순간 여기만 시간이 멈춰버린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데다 다 낡아빠진 책걸상에 제대로 된 비품도 갖춰지지 않은 이홍하 계열 대학들과는 확실히 비교되는 수준.
사실 대광여고의 호화로운 인테리어는 외고 전환을 신청하기 위해서 호화롭게 리모델링한 것이었지만, 보기 좋게 탈락. 하지만 교실 내부만 호화로울 뿐 급식실과 운동장, 강당 등 학교 주요 시설이 아예 없는데다 건물 안정성 평가도 낮을 뿐더러 서쪽을 향한 일자형의 건물이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아주 불편하고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는, 좋지 않은 환경이다. 게다가 대광여고 앞에 이홍하가 세운 서남대학교의 의과대학 유치를 위해 병원을 짓다가 날려버린 폐건물까지 자리잡고 있어 그야말로 등교하는 데는 최악이다.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
이후 이홍하는 광주광역시에는 외국어고등학교가 하나도 없다는 점에 착안해 2010년에 대광여자고등학교를 외국어고등학교로 전환하려 했으나[14], 국정감사에서 비리 사학이 외국어고등학교를 경영하려 한다고 제대로 몰매를 맞았고, 당연히 장휘국 광주광역시 교육감이 대광여고의 외국어고등학교 전환을 막아서 최종적으로 무산되었다. 게다가 이홍하까지 구속되었으니 이제 대광여고가 외국어고등학교로 전환할 일은 앞으로도 절대로 없을 것이다.
서진여자고등학교 역시 이홍하가 세운 모든 대학교들과 비슷한 운명에 처했다. 안 그래도 갈수록 광주광역시의 여고생 입학 인원 수도 줄어드는 판국에 남녀공학이나 특성화고로는 전환도 안 되고 있는 데다가 이 학교는 대광여자고등학교와는 달리 이홍하가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고등학교이다. 현재 이홍하 표 학교들 중 관선이사가 파견되지 않은 학교는 광남고등학교 단 1곳 뿐이다. 여고 2개에도 관선이사가 파견된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2016년 6월 이후부터 계속 대광여고와 서진여고 모두 전교생과 전 교직원(교사, 경비원, 시설물 관리자, 행정직원, 영양사 등등 모두 포함.) 전체가 학교 재단의 공립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대법원 판례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교육부, 홍복학원 학교체제 개편 "불가"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고생 1800명 통행금지" … 유일한 통학로 막는 황당 소송[15] 2022년에는 교장공모까지 파행에 이르렀다. 광주교육단체 "대광여고 교장공모 파행" 주장
서남대 사례로 본 비리 사학 '흑역사'
2.3. 대학 장사
그래도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16], 대학을 차리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본격적으로 돈 맛이 들린 이홍하는 남원시에 1991년, 서남대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문민정부가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하여 기준을 대폭 완화하기 전에는 대학 설립은 규제가 까다로워서 진행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노태우 대통령이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남원 지역에 대학을 설립해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홍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994년에는 강원대, 건양대, 관동대와 함께 지역 의료 공백을 명분으로 내세워 의과대학 정원까지 받아내는 수완을 발휘하였다.[17] 게다가 학군사관 정원까지 받아냈다. 그게 바로 지금은 해체된 부대인 제182학군단이다. 사실 여기서 끝이 났다면 또 모르겠는데, 이게 문어발 확장의 시작이었다.그 후 1993년에 광주예술대학교를, 1995년에 한려산업대학교 등을 세운다. 물론 이 대학들도 당연히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세워진 작품들이 절대로 아니다. 학교 하나를 세우고 학생들이 등록금 내고 들어오면, 교실 한 칸에 연봉 2천만 원짜리 교수 한 명에, 시간강사 몇 명 붙여줘서 칠판 하나에 백묵만 구매해 주면 그걸로 끝. #1[18] #2 나머지 돈들은 또다른 대학을 만들 종잣돈으로 사용했다. 대학만 만들면 등록금 들고 입학하려고 줄을 서니 이보다 좋은 장사는 없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게다가 아예 건설사까지도 별도로 하나 차려서 100억 짜리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 자기 소유 건설사와 200억에 계약하고, 나머지 100억은 떼어 먹는 짓거리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다른 대학들을 설립할 때도 학교 재단도 각각 별도의 재단을 만들어 재단 이사들도 자신의 수하들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대학 신설 신청을 하게 했다. 소위 대학재단이사라는 자들이 주로 본인 소속 고등학교 교사들이다. 그래서 교육부에서는 이홍하 멀티 대학인 줄도 모르고 그냥 냅다 허가해 줬다. 나중에 진실을 안 교육부 공무원들은 혀를 내둘렀다고... 그래서 한 대학이 문제가 생기거나 부실이 발각되어도 '그 법인 하나만' 징계를 받으면 그만이니 다른 학교들은 아무 상관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2013년 8월 29일, 그가 세운 '모든' 대학들이 경영부실대학에 선정되는 위업(?)을 달성했다. 경영부실대학에 선정된 학교 9개 중 무려 4개가 이홍하 멀티 대학이다.
2016년에 그가 세운 모든 대학들에 관선이사가 파견되었다. 하지만 관선이사는 권한이 워낙 제한적이라 이홍하가 횡령한 자산만 토해내면 언제든지 복귀할 수가 있어서 이홍하는 별다른 탈이 없다. 여기서 이홍하는 잔머리를 쓰기 시작해서 적당한 대학(한려대학교) 하나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폐교하고, 그 자산을 팔아 적당한 대학(서남대학교)을 되찾겠다는 전략을 구사한다. 교육부는 이 행위에 어떻게 대처할지 갈팡질팡하고 있고, 관선이사진과 대학 측은 당연히 적극 반발하고 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나중에 학교가 폐교될 때를 대비하여, 한 학교가 폐교될 경우 그 재산이 본인 계통의 다른 학교로 귀속되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앞의 세 학교가 폐교되면 땅, 건물 등 그 모든 재산이 나머지 하나의 대학교인 신경대학교의 재단에 자연히 귀속된다는 것. 이것이 알려지자 신경대 측에서는 재산을 한 푼도 안 받겠다고 선언하였으나, 어차피 이미 약관에 있는 것이라 법적으로 받게 되어 있기에 말뿐인 다짐에 불과했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따르면, 이홍하는 교육부 내부에 인맥이 굉장히 넓다고 한다. 심지어 교육부 내부에서는 이홍하를 2012년 서남대 사태 이전까지는 상당한 능력자로 평가했었다고... 그 덕분에 이홍하는 사학비리로 잡혀 들어가도 쉽게 풀려나서 다시 똑같은 짓거리를 계속 반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신경대학교와 한려대학교를 통합하는 방안이 나왔다. 둘을 통합해서 부실대 이미지도 털어내고 재산도 지키자는 묘수인 것이다. 현재 신경대 총장 대행은 이홍하의 딸이며, 합법적인 상속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2018년에 서남대학교가 폐교되자 그 쪽 예산을 신경대에 다 넘겼는데, 이것 때문에 교육부와 자유한국당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 교육부의 논지: 공과 사는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공적인 대학 예산을 사적인 용도로 횡령하는 이홍하와 그 일당들에게 폐교된 서남대 예산 및 남은 신경대와 한려대를 넘겨줄 수 없다.
- 자유한국당의 논지: 국가가 국민의 재산에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 비록 이홍하가 죄인이긴 하나, 이홍하의 재산을 함부로 몰수해서는 안 된다.
2018년 11월, 신경대는 대학기본역량진단 전체 최악의 등급이자 폐교 대상인 '한계대학'에 올라간 유일한 일반대학이다. 전문대도 광양보건대학교가 한계대학인 관계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2개교 이상의 대학을 한계대학에 올린 이사장이 되었다.
2018년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학교법인의 임원 또는 사립학교 경영자 등이 이 법 또는 교육관계 법령을 위반하여 해당 학교법인이 관할청으로부터 회수 등 재정적 보전을 필요로 하는 시정 요구를 받았으나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고 해산되는 경우, 정관에서 학교 법인 잔여 재산의 귀속자로 지정한 자가 특정한 조건에 해당할 때에는 그 지정이 없는 것으로 보는 법안이다.
2021년 5월 20일, 교육부가 발표한 재정지원제한대학 18개 학교에 신경대학교, 한려대학교, 광양보건대학교가 포함되었다. 특히 재정지원제한대학 중에서도 100% 학자금 대출 제한 대상에 선정되었다. 학령인구 미달로 교육부가 부실대학 폐교에 나선 상황에서 사실상 시한부 선고를 받아버린 것.
결국 2022년에 한려대 또한 법인이 파산선고를 받아서 동년 2월에 폐교되었으며, 동년 8월에 신경대는 다른 재단으로 넘어가버렸다. [단독]법원, 서호학원 파산 선고… 최초 '폐교 전 파산', 한려대 특별편입 논의, 신경대학교, 김진영 제6대 총장 취임식 개최 광양보건대 역시 모집률 7%를 기록한 것은 물론, 그나마 지방전문대의 마지막 희망이라 불리던 간호학과 폐과까지 이어지면서 사실상 산소호흡기를 떼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사실상 이홍하의 수많은 대학들은 전부 끝장나버렸다.
2.4. 구속 및 재판
결국 2012년 12월 26일 전격 구속되었다.
#1 #2 #3#4
그가 세운 학교들은 이제 아시아대학교나 명신대학교 같은 부실대학들이 겪었던 퇴출 절차(횡령금 회수 경고 후 학교 폐쇄)를 밟아나갈 것으로 보인다. #
그것이 알고싶다 2013년 3월 30일 방영분(887회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홍하를 파헤치는 르포를 방영했다. 그런데 이 자에 대해서 방송한 것은 이번이 2번째였다. 이미 2000년 5월 20일("재단비리 이홍하편")에도 1998년에 409억원의 교비를 횡령한 것으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방영된 바가 있었다. 이때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이씨에 대항하던 총학생회 회장을 500만원으로 매수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고, 그리고 13년이 지난 2013년에 1004억이 들통나 또 방영되는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교수를 부려먹은 게 상상 이상이라는 것인데, 건설 노동까지 시켰던 것이다. 물론 그 건설 막노동도 건물을 제대로 지을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건설 인부를 쓸 때는 쓰긴 썼는데, 그럴 땐 그 인부에게 일당 3,000만원씩 준 것처럼 서류를 꾸며 그 돈을 자기 주머니로 챙긴 거다. 대학교 시간강사들이 경제적으로 쪼들린다는 것을 악용한 것이다.
방영분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이홍하는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병보석으로 풀려나서[19] 병원 VIP 객실에 은둔 중이라는데, 알려진 바와 달리 의료쪽 업계 전문가의 교차검증에 따르면 실제 병세도 심각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즉 정황적으로는 윤길자나 원주 사랑의 집 사건 장본인인 장 모씨의 꾀병쇼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가짜 링거 의혹까지 제기했다.
그리고 방영된 시점에서 이씨를 병보석으로 풀어준 게 정당하냐는 법적 공방이 오가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이번에야말로 이런 사이비 종교 교주 수준의 비리 사학인은 뿌리 뽑아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검찰은 즉각 병보석 결정에 대해 항소를 제기했고, 3월 20일 2심 재판부에서 병보석을 취소하였다.
2013년 6월 20일, 이홍하에게 징역 9년이 선고되었다. 이에 이홍하는 징역 9년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지만 이 항소가 진행되고 있던 도중 또 다른 횡령 혐의까지 발견되어 징역 3년이 별도로 선고되었다. #
2015년 8월 19일, 동료 재소자에게 폭행당하여 간이 파열되고 두개골과 뇌 사이에 피가 고이는 등의 중상을 입었다.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다른 교도소로 이감될 재소자가 가해 재소자에게 양말, 속옷 등을 나눠주는 걸 보고 '빼앗는다'며 비아냥대다 화를 참지 못한 가해 재소자가 결국 이홍하를 구타한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업자득이란 반응이고, 또한 구타 및 폭행한 사람을 옹호한다고 한다.
2015년 10월 29일, 항소심에서 징역 9년 벌금 90억원의 원심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관련 기사.
2016년 5월 24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최종적으로 징역 9년, 벌금 90억이 확정 판결되었다. 대법원 2016. 5. 24. 선고 2015도17597 판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관한법률위반, 뇌물공여, 업무상횡령,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허위세금계산서교부등), 조세범처벌법위반, 근로기준법위반,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위반, 사립학교법위반, 강요 2012년 11월에 구속이 되었으니 판결 확정되는 데만 장장 3년 6개월이나 걸린 셈. 그럼에도 아내 서복영을 통해 배후에서 재단이사를 지시하는 행위를 시도하고 있으며, 관선이사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서복영을 통해 학교를 통제하려 하고 있다. 대광여고 재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이홍하가 구속된 이후부터 학교에 매일같이 서복영이 찾아와서 교직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한다고 한다.
감사 결과에 대해서 행정소송도 제기했으며 학교법인 서호학원의 행정소송 결과는 서울행정법원 2015. 1. 8. 선고 2013구합54830 판결 [감사결과통보처분취소], 서울고등법원 2015. 11. 24. 선고 2015누32997 판결 [감사결과통보처분취소], 대법원 2017. 6. 19. 선고 2015두59808 판결 [감사결과통보처분취소] [공2017하,1571], 학교법인 서남학원의 행정소송 결과는 서울행정법원 2014. 6. 26. 선고 2013구합7766, 서울고등법원 2015. 1. 28. 선고 2014누56804 감사결과통보처분취소, 대법원 2017. 6. 15. 선고 2015두39156 감사결과통보처분취소 참조.
2.5. 수감 이후
수감 생활 중인 2018년에는 대광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의혹이 제기되었다. 재산이야 이미 비리로 축적한 것이 많으니[20] 사식이야 충분히 먹겠다만, 여생을 깜빵에서 비참하게 보낼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교육부며 사법계에 인맥이 넓다고 한들 지금도 푸짐하게 형이 나온 마당에 미투까지 드러났으니 이 인맥들도 어차피 이 작자는 나이도 너무 많고 여생을 감옥에서 쭉 보낼 가능성이 높으니 슬슬 손절할 듯 하다. 현재 그의 나이는 팔순이 훨씬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팔순치고는 건강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설사 형기를 다 마치고 나온다 해도 그가 설립한 대학들은 이미 전부 폐교되었다. 하지만 그의 자녀들은 여전히 건재한 데다가[21], 사위들도 법조인들일 정도로 끝발 날리고 인맥도 막강하기 때문에 그 인맥은 자연히 그의 자녀들이나 사위들이 물려받게 될 것이며, 결국은 그의 자녀들이나 사위들이 남은 고등학교들마저 다 물려받으려 할 것이다.2019년 2월 24일 국민일보 단독 보도 결과 이홍하가 교도소에서 대리인을 통해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서남학원에 550여억원의 채권을 신고한 사실이 밝혀져 공분을 샀다. 쉽게 말하면 1000억원 이상을 횡령한 혐의로 감옥에 간 주제에 자기가 망하게 한 학교에다가 550억원이 자기 돈이라며 채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심지어 이홍하의 주변인들도 너도나도 채권을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적으로 이홍하의 부인은 학교법인에 대한 재판 관련 변호사 수임료를 법인 대신 납부했다며 4억원을 청구했다고 한다. [단독] 서남대 폐교 주범의 적반하장 "내돈 550억원 달라"
2019년 3월 31일에 보낸 옥중 서신을 보면 아직도 그는 일말의 반성조차도 전혀 하고 있지 않는 걸로 보인다. #
본래 출소 예정이었던 2021년 9월 이후 정이사 선임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신경대학교로 복귀할 확률이 높았으나, 서울행정법원 2019.5.2. 선고 2018구합53313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9.12.6. 선고 2019누44318 판결, 대법원 2020.4.29. 선고 2020두30603 판결, 관련 기사 허위 세금계산서와 근로기준법 위반 건으로 징역 3년을 더 받는 바람에 정식 출소 예정 해는 2024년으로 3년 더 늦춰진 상태이다. 또한 그 사이에 한려대학교마저 폐교된 것은 물론 그가 그렇게나 끈질기게 사수하려던 신경대학교는 다른 재단으로 넘어가 화성의과학대학교로 바뀌어버렸다. 하지만 재단이 바뀌고 학교 이름이 바뀐다 한들 태생이 이홍하인지라 마찬가지로 2024학년도 학자금대출제한대학에 또 걸리고 말았다.
2.6. 출소 이후
2023년 10월 25일 새벽 5시 광주교도소에서 만기출소했다.[단독]옥중서도 '편지 엄포'…사학비리 황제 이홍하 출소에 긴장 [영상] 취재진의 질문에는 침묵하며 가족들이 준비한 차량을 타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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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순서대로 분류. 신경대학교는 매각 후 화성의과학대학교로 교명 변경. |
[1] 야간부[2] 교직과정을 이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홍하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교사 구인난이 심해서 학과만 졸업하고도 교사 자격증을 주던 시절인지라 또 모른다.[3] 광주제일고등학교, 광주고등학교, 순천고등학교 등에서 근무했었다.[4] 참고로, 과거 목욕탕은 거리제한규정이 있어서 돈벌이가 쏠쏠한 직종이었다. 목욕탕 문서 참조.[5] 지산동 말고 양림동에도 이홍하 소유의 목욕탕이 하나 더 있었는데, 자기가 세운 학교의 교수들을 불러다가 목욕탕 잡일까지 시켰다고 하니 홍복학원 이사장 시절에도 목욕탕 운영을 병행한 것으로 보인다.[6] 촌지받고 자교 학생 대상으로 과외를 하거나 시험문제를 흘려주는 것보다, 부업을 하는 것이 깨끗해 보일정도.[7] 당시에도 교사는 공무원이기에 평생직장이라는 장점이 있었지만, IMF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대기업이나 은행들도 정말 어지간히 큰 사고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평생 직장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눈에 띄는 장점은 아니었다.[8] 원래는 상업고등학교였다가 2001년 9월 21일에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하면서 서진여고로 이름도 개명했다. 충청북도 옥천군, 강원도 춘천시 및 강릉시의 옥천동, 옥천면과는 무관하다. 여담으로, 남원시에도 서진여고가 존재하는데, 이 남원시의 서진여고는 원래부터 인문계였고, 이홍하와는 일절 아무런 관계도 없는 학교이다. 공교롭게도 두 학교 모두 사립학교다.[9] 1995년 도농통합으로 현재는 나주시 남평읍.[10] 2000년에 폐교된 광주예술대학교가 이 학교 뒤에 방치되어 있다. 현재 광남고등학교의 학교법인은 하남학원이라는 재단에서 1996년부터 경영 중이다.[11] 일요일 자율학습은 기본이고, 고3은 23시가 넘은 후 하교시켰을 정도. 시내버스는 이미 막차가 끝난 시간이라 버스를 따로 대절해서 귀가시켰다.[12] 원래는 광주의 명문학교였지만, 생기부 조작 사태 이후 명성이 추락했다.[13] 2019년에 안전을 이유로 철거됐다.[14] 실제로 아직까지 광주광역시에는 외국어고등학교가 전혀 없다. 과학고등학교는 있었으나, 광주과학고등학교는 북구로 옮기면서 영재학교로 학교를 전환했다.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는 송원고등학교를 마지막으로 일반고로 전환되었다.[15] 기사에 나온 건물 철거 소송은 종합건설의 승소로 마무리되었다. '38년 흉물 방치' 광주 서진병원 건물 철거되나 폐건물/목록/광주광역시 참고.[16] 물론 상술했지만 이홍하가 설립한 고등학교들도 현재는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졌다. 시설이 부실하고 비리가 만연한 건 고등학교들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대학들보다는 나아서 폐교될 지경까지는 가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 발전할 기회가 조금이나마 남아 있다.[17] 94년의 의과대학 인가 성공은 서남대 폐교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만일 의대가 없었다면 그저 그런 부실대학 취급을 받고 퇴출로 진작에 끝나버렸을 일이 의대 보유로 인해 여러 인수 희망 대학과 병원이 등장하고 복마전의 양상으로 흐르게 된 것이었다. 자세한 상황은 서남대학교 문서 참조.[18] 이 기사에 등장하는 기자는 MBC 사장 출신의 前 강원도지사 최문순이다.[19] 그는 인맥이 넓다. 사위 하나는 판사이고, 다른 하나는 변호사다. 그때문인지 온갖 소송이란 소송은 다 해보면서 저항할 수 있었다.[20] 정황상 빼돌린 수백억대의 재산은 다 차명으로 전환했고, 이홍하가 사망하면 막대한 벌금과 추징금은 어차피 공소권도 없기 때문에 회수도 불가능하다.[21] 이홍하가 설립한 대학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폐교 가능성이 낮았던 신경대학교는 그가 딸에게 물려주기 위해 후계 구도가 진행중이었으나, 다른 재단으로 넘어가면서 좌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