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00:30:47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
파일: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 1.jpg
장르 대체역사, 빙의
작가 앙금고라니
출판사 ARC
연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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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피아
네이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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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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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기간 2023. 06. 26. ~ 연재 중

1. 개요2. 줄거리3. 연재 현황4. 등장인물5. 개변된 역사
5.1. 작중 등장하는 무기체계
6. 평가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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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앙금고라니. 약칭은 쿠데타, ㅋㄷㅌ

2. 줄거리

제국주의에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선 내가 군부를 장악해야 한다.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23년 6월 26일부터 연재되기 시작했으며 2023년 8월 21일 유료 연재로 전환되었다.

이후 네이버 시리즈에서도 2023년 9월 12일부터 런칭되었으며 카카오페이지리디는 2023년 11월 20일에 런칭되었다.

2024년 2월 1일 기준 총 347화가 연재되었으며 작가의 오피셜로 1부는 러일전쟁, 2부는 1차 세계대전, 3부는 2차 세계대전을 다룰 것이라 밝혔다. 2024년 1월 28일부로 1부가 완결되었으며 1월 29일부터 1~2부 사이의 프리퀄을 다루는 외전이 2부 프롤로그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다가 2월 23일에 외전이 완결되었다. 이후 3월 4~5일에 오헝 제국과 김시혁을 다룬 외전이 올라왔고 3월 18일 부터 2부 본편 연재가 시작되었다.

4. 등장인물

4.1. 대한제국

4.1.1. 군부

김민재가 김시혁에 빙의한 1894년 시점에는 한성구락부로 뭉친 근왕파, 허진을 중심으로 한 대원군파, 안경수, 우범선, 이두황 등을 포진한 친일파로 나뉘어져 알력 싸움이 치열했다. 경복궁 습격 때는 내부 친일파가 군령을 위조해 평양 기영병들이 사수하던 영추문 방어력을 약화시켰을 정도. 노쇠한 대원군이 사망하면서 대원군파는 자연스럽게 와해되고 근왕파와 친일파로 양분 되었다 을미사변과 1차 친위 쿠데타를 거쳐 근왕파가 주도권을 쥔다.

내각의 친일파는 1903년 2차 쿠데타와 1905년 극동전쟁 승리를 거쳐 척결되나 군부내의 친일파는 1895년을 기점으로 고급 지휘관이 이병무만 남은, 일본에 가장 강경한 집단으로 거듭난다. 대원군 시절 군인 우대 정책과 2차례 쿠데타를 거쳐 자칫 군국주의로 흐를 위험성을 내포하게 되었으며 수장인 김시혁이 문민통제를 철저한 강조해 제어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게릴라전 경험만 있어 전쟁 무서운 줄 모르고 적극적 참전을 주장하는 남부 출신과 사람 목숨이 종잇장보다 가벼운 전면전을 겪어 보고 신중론을 주장하는 북부 출신 지휘관들로 이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4.1.1.1. 육군
  • 김시진
    김시혁의 동생. 김민재가 빙의하기 이전, 한량이였던 김시혁이 갑자기 사람답게 행동하는 것에 감격하는 것으로 첫 등장한 이후 형을 따라 군에 입대, 주인공이 서남해안에 해적을 토벌하고 왔을 때 편지 한 장 달랑 던지고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다. 의화단 진압 때 신설된 강습보병대대의 소대장으로써 파병되어 톈진성 성문을 돌파하는 공을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하며 순조롭게 진급, 대대장까지 승진하여 극동 전쟁에서도 대활약. 원산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고 문산에서 겨우 600명으로 2만이 넘는 일본군을 막아내는 대공을 세웠다. 성격이 매우 불같아서 중요한 일이 있으면 일단 저지르는 일이 많다. 소속 병과인 강습보병에 대한 애착이 굉장해서 형이 밀어주는 포병 병과에 경쟁심을 불태운다.
    1880년 생이며 최신화 기준 35세. 계급은 육군 정령.
  • 홍계훈
    작중 초기에 빙의한 주인공과 함께 경복궁에서 일본군과 싸우며 만났다. 무예는 쓸만하지만 뺀질거려서 못 미더운 장교였던 김시혁의 변화에 감탄하고 그의 조언에 따라 친위영 창설을 돕는다. 김시혁, 이규태, 원세록와 함께 한성구락부라는 이름의 군관 및 관료 모임을 발족시켰으나 고종이 김시혁의 조언을 무시한 탓에 을미사변때 원래 역사대로 전사한다. 함께한 시간은 짧지만 일개 장교였던 김시혁이 현재의 위치에 도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후원자.
  • 이규태
    홍계훈과 함께 김시혁이 처음 만난 후원자이자 전우. 경복궁 습격에서 김시혁의 활약을 눈여겨보고 먼저 다가와 친한 사이가 되었다.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함께 했으며 홍계훈 전사 이후 든든한 상급이자 한성구락부 창설 멤버로서 김시혁의 방식을 실현하는데 조력을 아끼지 않는다. 고종의 무리한 대청 선전포고와 남만주 진격때 평안도 방면군 사령관을 맡아 중앙에서 뭐라든 무리한 진격을 지양하고 신중하게 움직여 불필요한 희생을 막았다. 이때 고종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틀어져 2차 쿠데타 때 근위사단장으로서 적극 협력했으며 극동전쟁이 발발하자 근위사단장 겸 황해, 경기, 강원 병마를 통솔하는 삼도통어사를 겸임했다.[1] 이시기 주로 담당한 업무는 근위사단장으로 고종을 보필하며 그의 헛소리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극동전쟁 종결 후 육군 대장 겸 원수부 총관으로 영전.
  • 원세록
    전주에서 동학 토벌할 때 홍계훈을 보좌한 장위영 대관. 김시혁, 홍계훈, 이규태와 함깨 한성구락부 창설 멤버. 경복궁 습격 이후 신설된 친위영에선 1중대장을 역임했고 동학 2차 봉기 진압에도 함께한다. 을미사변에서 홍계훈이 전사한 이후 다른 구락부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은인자중하다 을미의병 토벌 명령을 받고 남부에 파견되었을 때 성하영, 남만리와 함께 부대 전체를 이끌고 의병에 합류해 버린다. 이규태도 나주에서 민종렬에 합세해 버려 전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친일 내각은 평양에 있던 김시혁을 불러들이는 자충수를 둘 수 밖에 없었다. 1차 쿠데타 성공 이후 병기와 탄약 조달을 책임진 포공국장에 임명되어 김시혁이 무기 개발이나 작전 계획시 우선적으로 찾는 사람이 된다. 시혁이 수류탄과 척탄통 개발할 예산을 부탁하러 갔을 땐 고종이 즉위 40주년 열병식에 쓸 공포탄을 제조하느라 예산을 다 끌어가 남는 돈이 없다는 맥빠지는 대답을 들려줬다. 극동전쟁 종전 3년 후에 병사.
  • 엄주익
    원세록의 후임 포공국장. 고종이 총애하는 엄귀비의 7촌 조카로 고종과 각을 세운 원수부 내 대부분 인사들에게 백안시 당하나 김시혁에게 무척 우호적이고 군수보급 측면에서 인식이 무척 깨어있어 김시혁은 믿고 중용한다. 극동전쟁 종전 후 일본군의 패전 원인은 보급 문제임을 지적하는 책을 써서 김시혁에게도 호평을 받았고, 군의 개혁을 위해선 교육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며 엄귀비를 설득해 학교를 세우는 등 이 시대 기준으로 무척 선진적인 안목의 소유자.

    포공국장에 오른 뒤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업은 소총 개량. 한국군 주력 소총인 아식보총이 한국인 체형에 맞지 않고 산이 많은 지형에서 불필요하게 길고, 무겁다는 문제 의식을 품고 개량 개발을 적극 주장했다. 극동전쟁의 전투 양상을 철저히 분석해 소총수간 교전 거리가 평균 50~150m 사이이며 길어도 200m을 넘지 않음을 자료로 제시하고, 현장에서 실전을 겪은 지휘관, 참모들의 공감을 끌어냈으며 직접 사비로 견본까지 제작해 강력하게 밀어붙인 결과 M91/10이라 명명된 단축형 모신나강이 한국군 제식 화기로 빠르기 자리잡는다. 총이 가벼워지면서 야지에서 피로도가 감소하고, 탄도 더 많이 휴대할 수 있어 산악전, 기동전 위주인 한국군의 전력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
  • 조동윤
    원래 역사에서는 친일파였으나, 역사가 바뀌어 매우 노련한 군 정보기구의 수장이 된다. 원수부 예하 기록국에 신설된 조사실의 수장으로 의화단 진압 이전부터 첩보, 방첩, 국내 정보 수집 등에 주력한다. 본래 김시혁과는 데면데면한 사이였으나 고종이 기록조사실을 견제할 황제 직속 정보기구로 익문사를 창설하자 위기감을 느끼고 먼저 손을 내밀어 연대를 청한다. 첩보, 방첩, 정보수집 임무에선 김시혁 이상으로 유능한 인물로 김시혁의 반도전쟁론에 따라 일본에 점령된 남부 지역에서 제2 전선을 형성시키고 일본군 주요 정보들을 빈틈 없이 수집하여 아군의 전투를 수월하게 돕는다. 극동전쟁 기간에도 2부 시점에서도 원수부 내에서 김시혁 다음과는 존재감과 위상을 지닌 2인자로 호랑이 김시혁과 대비되는 원수부의 여우로 불린다.
    대한제국 전국에 전보국과 유선 전화망을 설치한 것도 조동윤의 공. 참고로 조동윤이 정보전의 미래를 바라보고 전보 및 전화 시설 확충에 예산을 요구했을 때, 주인공은 전형적인 한국군 스타일로 '그 돈이면 대포를 몇 문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라고 하여 독자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계급은 육군 대장.
  • 김석중
    원역사에서 동학농민혁명 당시 유격장으로서 활약하고 을미의병 진압 때 전사하는 인물로 역시나 동학농민혁명에서 김시혁과 처음 만난다. 압도적인 숫자를 앞세운 동학군을 상대하기 위해 김시혁이 급조한 임시 기병대 지휘관으로 활약. 이 인연으로 의화단 진압과 극동전쟁때까지 쭉 기병대장으로 활약한다. 의화단 진압 때 김시혁이 배속시킨 개틀링들을 기병과 훌륭하게 조합해 운영하는 등 제병합동이나 최신 전술에 무지한 사람은 아니지만 기병대를 적진에 들이받아 와해시키는 전근대적 로망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 해 예하 지휘관 중에서도 김시혁이 특히 통제에 신경을 많이 쓰는 인물이다.
  • 박승환
    왕성한 공격 정신으로 주목받은 지휘관으로 의화단 진압부터 극동전쟁까지 쭉 참전한다. 원래 역사에서 일본의 군대 해산에 항거해 자결한 인물답게 패전 후 자결하는 청군 지휘관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동질감을 느끼는 장면이 있다. 극동전쟁 당시에는 참장 겸 근위사단 제1여단장으로 고종을 보위해 함흥에 먼저 들어갔다 함흥 사창리 전투에 참전. 2여단장 이기표와 함께 후방 차단을 담당해 6여단의 맹공에 무질서하게 퇴각하는 일본 2사단을 와해시키고 사단장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2부 도입부에선 5사단장을 역임 중.
  • 이기표
    의화단 진압 당시 참령 계급으로 시위보병대를 인솔해 참전했고 귀국 후 근위사단 제2여단장으로 보직된다. 사창리 전투에서 박승환과 함께 후방 차단 역할을 맡아 도주하는 일본군 2사단 패잔병 2천명을 포로로 잡는다.
  • 민영기
    경기도 방위를 책임진 진위대 3여단장. 머릿수만 겨우 채웠을 뿐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하고, 무장도 부실한 3여단이 방어에 부적합하니 퇴각하라는 원수부 지시를 거부하고 주안산에서 일본군을 저지하는 길을 택한다. 원수부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3일간은 일본군을 저지하라는 지시를 하달받은 뒤 전화에 달라 붙어 예하 제대 하나하나 전술 지시하는 신들린 솜씨로 버텨냈으나 수적으로 월등한 일본군 상대로 한계가 또렷했고 전투 3일째. 지휘소까지 난입한 일본군과의 육박전끝에 전사한다. 비록 그는 전사했으나 포병대의 지원에 힘입어 함락 위기에서 벗어난 3여단은 원수부에서 지정한 3일보다 이틀을 더 버텨내고 잔존 병력을 수습해 퇴각하는 데 성공한다.
  • 성하영
    김시혁이 친위영 2중대장으로 발령받았을때 3중대장으로 함께한 인물. 4중대장 남만리와 함께 창설 멤버인 김시혁, 홍계훈, 이규태, 원세록에 바로 뒤이어 들어온 한성구락부 초창기 멤버이기도 하다. 김시혁, 이규태, 남만리와 함께 동학농민군 진압에 활약했으며 극동전쟁 때는 진위대 4여단장을 역임했다. 그가 이끈 4여단은 6여단과 함께 가장 먼저 창설되었고 평양 방어의 핵심으로 진위대 중에서도 손꼽히는 부대였으나 예비대로 분류되어 평양 방어전 때는 참전하지 않았다. 2부 시점에서는 원수부 인사국장이다.
  • 이강년
    극동전쟁 시점 진위대 5여단장. 평양의 외항이자 평양에 들어가는 물자들이 직접되는 요충지 남포 방위를 담당. 일본군 근위사단 병력과 시가전 끝에 남포를 사수해낸다.
  • 신태휴
    극동전쟁 시점 진위대 7여단장. 평안도 방어전에 주축을 담당. 흑교에서 일본군 근위사단 절반, 황주에서 일본군 2사단과 12사단, 한국주차군 소속 후비대까지 총동원한 대군을 여단 병력으로 저지하는 임무를 맡는다. 수적으로 압도적인 일본군을 악착같이 틀어막아 남포 방면으로 접근하는 일본군을 섬멸하고 재편성할 시간을 벌어준다. 기존 여단 병력에 투입된 예비대까지 모두 소모전 끝에 녹아버리는 처참한 피해를 입고 본인도 부상을 입은 상태로 최후의 항전을 준비해야 할 상황에 몰렸다가 원수부에서 급히 지원한 강습보병대대와 독립기병대와 협력해 간신히 일본군을 밀어낸다. 사실상 전투력을 상실한 7여단은 종전 때까지 재편성에 주력했다.
  • 현흥택
    한성구락부 멤버로 처음 등장했으며, 극동전쟁 시점 진위대 8여단장
  • 노백린
    무관학교 1기생. 의화단 운동 당시 6여단 1대대 1중대장으로 국경을 침범한 비적들을 상대하며 등장한다. 의화단 진압을 위해 편성된 임시연대에 배속되어 중국 본토에서 전투를 치뤘고 극동전쟁 때는 6여단 3대대장으로 진급해 사창리 전투에서 일본군 2사단 병력을 유인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의화단 진압 당시 이탈리아군 베르살리에리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귀국후 자신이 지휘하는 6여단 3대대 병사들을 한국판 베르살리에리로 탈바꿈 시킨다. 그의 3대대는 군모에 수탉깃을 꽂아 장식하고 기병대 뒤지지 않는 기동성을 자랑하는 보병으로 유명해진다. 극동전쟁이 종결되고 1914년 장작림 토벌 시점에는 7여단장으로 승진.
  • 어담
    무관학교 1기생. 노백린의 동기로 병과는 포병. 서남해 해적 토벌에 임관을 앞둔 생도들도 뒤따르게 하면서 첫 실전을 겪는다. 김시혁 앞에서 구닥다리 극노백포의 단점과 이 단점이 불러오는 전술적 제약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상당한 인상을 주었고 동기와 마찬가지로 순조롭게 진급해 극동전쟁 시점에선 원수부 포병 참모로 원수부의 화력 계획 전반을 입안하는 중책을 실수 없이 수행한다.
  • 이갑
    일본육사 유학생 출신으로 원수부 주요 보직을 역임하는 이채로운 인물. 그의 일본 유학은 을미사변과 1차 쿠데타 이후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상실한 일본이 펼친 유화책의 일환으로 장차 일본에 충성하는 장교를 육성하려는 포석이었지만 이갑을 비롯한 유학생 전원 조국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며 함흥으로 따라가서 닭 쫓던 개신세가 되었다. 괄괄한 성격으로 일본물 먹었다는 곱지 않은 시선에 아랑곳 않고 할 말 다 하고 사는 인물. 첫등장때도 김시혁의 의견에도 대담하게 이의를 제기한다. 관북전선의 일본군 주력이 아직 여유가 있다고 판단한 김시혁과 달리 적의 공세 패턴이 전과 전혀 다름을 지적, 일본의 공세 역량이 한계에 달했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갑의 이의 제기가 없었다면 한국군 주력의 진군이 늦어져 원산을 탈환한 강습보병대와 원수부 직할수색대가 퇴각하는 일본군 본대에게 전멸하는 결말 밖에 없었으니 굉장히 시기적절한 조언이었다.

    극동전쟁 종준 후 작전국 제1과 과장으로 임명. 군 예산 편성 방향을 두고 세방과 해방으로 주장이 나뉘자 세방을 지지하며 해군 4성장군 장기렴과도 언쟁을 벌인다.
  • 김인수
    군내에서 러시아어에 가장 능통한 인물로 러시아식 이름은 빅토르 김. 러시아에서 파견된 군사고문단을 맞이하며 등장한다. 극동전쟁이 발발하자 이범윤이 간도에서 창설한 후비기병대 지휘권을 넘겨 받고 미쉔코 준장의 제1시베리아 군단과 함께 행동했다. 미쉔코 준장이 만주 전선으로 재배치된 다음에는 아니시모프 소장이 지휘하는 러시아군 2만과 호흡을 맞춰 함남과 강원을 돌파, 일본 해군 주요 육상시설이 있는 죽변까지 동해안 축선 전체를 밀어내는 전공을 세웠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러시아에 관전무관단으로 파견. 러시아군의 지리멸멸한 실태를 보고한다.
  • 이범윤
    훈춘 방면에서 온갖 무리수로 지역 민심을 악화시키고 병력 피해를 가중시킨 이근택을 해임하며 등장. 북간도 간리사로 재직하며 간도 지역을 대한 영토로 굳히는 데 힘쓴다. 간도 방위에 차출될 수 있는 정규군 전력이 함경도에서 막 창설 중인 진위대 2개 여단 뿐이어서 별도로 충의대란 민병대를 창설하는데 민병대임에도 숙련도가 높아 극동 전쟁 때 일선으로 차출되어 활약했다. 극동전쟁 승전 후 10년이 지난 2부 시점에도 평북관찰사 겸 간도관리사로 간도를 책임지고 있다. 서제 이범진과 함께 조정내에서 중국에 가장 강경한 인사이기도 하다.
  • 민영찬
    극동전쟁 때 관서사령관이었으며, 2부 시점에서는 원수부 군수국장을 맡고 있다.
  • 홍범도
    을미의병에 참여했다 해산한 뒤 포수로 돌아갔으나 벌이가 여의치 않던 차에 신식 군대 창설 공고를 보고 모집에 응하는 것으로 첫 등장한다. 극동전쟁 당시 진위대 제3여단 수색중대장(정위)으로 경인가도 전투에 참전. 3여단이 압도적 열세에서 5일간 버티는 데 공헌했다. 경인가도 전투가 끝난 뒤 게릴라전을 수행하다 원수부에 합류. 울릉도의 일본군 전신 시설을 폭파해 동해에서 일본 해군 활동을 제약시키는 작전을 성공시켰고, 원산 상륙 작전때는 배를 타고 움직인 강습보병대와 별개로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며 일본이 설치한 해안 감시초소들을 타격했다. 이후 원산을 탈환한 김시진의 강습보병대와 합류. 문산에서 함께 처절한 방어전을 벌이고 생존한다. 이때 전면에서 방어하는 강습보병대의 측면을 사수하며 일본의 지장 우메자와 소장을 전사시켰다.
  • 김정우
    군기창장. 고종이 러시아에 무리한 제안을 한 것을 알자 빌어먹을 인간이라고 욕한다.
  • 신팔균
    막 원수부 군무국장에 임명되었을때 부터 극동전쟁까지 김시혁을 보좌한 전속 부관. 주로 김시혁에게 서류 지옥을 안겨주는 역할. 2부에선 정령으로 진급, 원수부 제2과 과장으로 1과 과장 이갑과 함께 원수부 참모진을 이끄는 중핵이 된다. 가혹할 정도로 현실적인 이갑과 달리 융통성이 있으나 그때문에 너무 이상적이라는 평도 받는다.
  • 김창수
    기록조사실 직원. 안경수를 심문해 박영효가 대한측 암호전신 해독문을 일본에게 헐값에 넘긴 사실을 알아낸다.
  • 지청천
    2부 프롤로그에서 장작림 군을 상대하던 강습보병대 소속 부위로 등장한다. 무관학교 성적도 좋았고 집이 서울이라 가까운데서 출퇴근하려고 근위여단을 지망했지만 강습보병여단장 김시진이 자질을 높이 사 점찍어둔 탓에 강습보병여단에 전입됐다. 강제로 진로가 확정되었지만 강습보병대에 금방 녹아들었고 능력도 빼어나서 동기 중 진급 속도가 가장 빠르다.
  • 이응준
    유학중인 의친왕을 수행하는 무관으로 등장. 고향 선배 노백린의 추천으로 친왕을 보좌하는 무관단으로 선발되었다. 파락호로 유명한 친왕을 모시고 호화로운 유럽 생활을 꿈꿨으나 의친왕이 유흥은 질렸다며 전쟁터로 향하는 바람에 전전긍긍하는 처지가 된다.
  • 김좌진
    장작림의 침공 때 무관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하고 부임한 부위로 등장. 이때까진 행정업무만 맡으며 실전 지휘 경험은 없었으나 전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유일하게 남는 장교였던 그가 투입된다. 첫 실전에도 훌륭한 지휘력으로 위기를 진화하는데 성공했으며 이후에도 대대장에게 과감한 작전을 제시해 본인이 직접 나서서 활약한다. 장교로서 자부심이 강해 거추장스러운 군도를 늘 옆에 차고 다닌다.
  • 김석원
    무관학교 갓 졸업한 포병 참위로 등장. 트레이드 마크인 카이젤 수염을 젊은 시절부터 기르고 있어 시혁이 바로 알아봤다. 기존 작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 강습보병여단에 맞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묻는 시혁의 질문에 훌륭하게 대답해 칭찬을 듣는다. 원 역사에선 자질은 뛰어났으나 전간기 군대인 일본군에서 복무한 탓에 구시대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여기선 당대 가장 선진적인 육군인 한국군에서 복무하며 훨씬 뛰어난 지휘관이 될 싹을 보여줬다.
  • 지석영
    초반에 동학농민군을 토벌했다고 언급되었으며, 2부에서는 의무국장 겸 육군의무학교장을 맡고있다.
4.1.1.2. 해군
수장인 장기렴이 고종의 무리한 대청 선전포고에 부화뇌동해 사상자만 3천을 낸 이근택에게 직언하다 보직 해임된 인물인데다 뜸만 들이던 고종이 해군 창설을 적극 지원하게 된 계기가 의화단 진압 과정에서 노획한 마제은 백만냥 꿀꺽하려다 들켜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한 것이다 보니 태생부터 고종과 척을 졌다.

전력 확충 과정에서 밀덕후 고종이 열심히 구상하던 함명을 가뿐히 까버리고 해군이 알아서 지으며 각을 세우다 고종이 어뢰정 6척 구매 계약을 엎어 버리고 다 낡아 빠진 이름만 순양함이고 실제로는 폐품인 양무호[2]를 강제로 떠안게 만든 것을 계기로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다. 밀덕후라서 해군뽕을 포기할 수 없었던 고종은 이 모든 게 왕 목 잘라 본 프랑스 교관들에게 배워서라고 생각해 신실한 신민들의 나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과 제휴를 추진하고 이것이 또 다른 나비 효과를 부른다.
  • 장기렴
    대한제국의 해군 수장. 김시혁과는 충청도 일대 해안의 해적을 토벌하면서 처음 만났으며 의화단 진압 당시 진위대 6여단 참모장으로 고종의 대청 선전포고와 간도 공격에 부화뇌동해 무수한 피해[3]를 발생시킨 이근택을 제지하다 보직 해임 당한다. 해임 된 뒤 중앙에 이근택의 악행을 보고. 간도관리사 이범윤, 부령 계급장과 함께 이근택에게 돌아가 그를 해임시킨다.

    의화단 진압 후 신설된 해군의 총사령관직으로 영전되어 시대를 뛰어넘는 언사와 과감한 작전으로 배수량 3백톤짜리 구축함 6척이 전부인 해군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주인공을 놀라게 한다. 전쟁 이후 해군대장으로 진급해 현 해군에 유일한 제독이 된다.
  • 이동휘
    장기렴에 이은 해군 2인자. 고종의 몽니로 떠안게 된 양무호의 인수 요원으로 파견되었다. 척 봐도 절대 인수하면 안 될 양무의 상태를 보고 재고를 극력 주장했으나 고종의 총신 이근택에게 거부당한다. 이때 고종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상해서 김시혁 앞에선 고종을 제 정신 아닌 사람이라고 대놓고 비난한다.
  • 신순성
    원역사에서 대한제국 해군에서 순양함 2척의 함장을 맡았던 한국 해군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상선사관으로 일하다 대한제국 해군에 합류한다. 젊은 나이에도 조함 기술이 굉장히 뛰어나서 백두산함 함장으로서 맹활약한다. 남해로 들어온 일본 수송선단 습격의 선봉에 섰고 300톤에 불과한 구축함으로 한 겨울 동해바다 악기상을 뚫고 울릉도 전신 시설 파괴 작전을 성사시킨다. 마지막엔 쓰시마 해전을 막기 위한 정보전의 실행 요원이 되어 발트함대의 항로를 정확히 예측하고 무사히 접선, 전쟁을 완벽한 승리로 매조지지었다. 이후 함대 건설 프로젝트장이 되었다가 갑작스런 보로디노급 전함 매입으로 프로젝트가 꼬이자 사표를 냈다가 반려당했다고 언급된다.

4.1.2. 황실

  • 고종
    본작 메인 빌런이자 사실상 제2 주인공. 대체역사물 통틀어 가장 실제에 가까운 고종.
    노련한 일본 공사가 '약함을 이용할 줄 안다'며 치를 떨고 내각 구성원들 모두 경계할 정도로 음흉하고 위험한, 역사속 고종을 그대로 구현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약하면 그대로 잡아 먹히는 제국주의 시대에 나라를 운영할 능력은 전무하나 권력을 쥐고, 유지하는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괴.
1차 친위 쿠데타로 왕권도 강화했고 황제 즉위까지 했으며 의화단 운동 개입으로 세종 이후 가장 많은 영토를 확보한 군주라는 업적도 챙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원역사를 능가하는 발암 행보를 벌여 독자들도 고종 언제 퇴장하냐며 난리를 쳤고 극동전쟁 개전 직저 일어난 2차 쿠데타로 실권을 사실상 전부 빼앗긴다. 그럼에도 황위는 지킨 덕에 언젠가 주인공을 또 엿 먹이려는 거 아니냐는 우려는 남아있었고 예상대로 되었다.
전제군주정이 당연했던 20세기 초반, 500년 전제군주국의 왕이 민중의 의사, 언론을 능수능란하게 움직여 막후에서 좌지우지 한다는 전위적 발상을 실현에 옮겼고 이를 위해 역신이라며 치를 떨던 서재필과 그가 운영하는 독립신문을 참된 언론이라며 후원하는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극동전쟁 종전 이후 거의 10년 간 뒤에서 조장한 민의를 바탕으로 군부와 내각도 손댈 수 없는 거대한 정치적 압력을 자아냈는 데 성공했고 이를 활용해 중추원을 황국협회 일변도로 채우고, 황실경위원과 제국익문사, 국가헌병대를 기반으로 내각, 군부를 견제한다. 극동전쟁 승리를 이끌어낸 성과는 있으나 본질적으로 고종의 신하라는 데서 정당성을 얻는 내각과 군부는 간접적인 견제 이상은 하지 못하는 상태[4]. 국가의 외교도 내각과 황실이 따로 전개하는 상황으로 동부전선에서 고전하던 러시아에게 다롄, 뤼순, 하얼빈을 다 내놓으라는 딜을 걸고[5], 동맹국을 종속국 이상으로 보지 않는 러시아는 역으로 뤼순을 일본에 넘겨버리고 남만주를 유지하고 싶다면 파병하라는 사실상 대한에 대한 사형 선고를 내린다.
군사적 안목은 전무하며 밀덕후라서 삐까번쩍한 장비나 전함, 열병식이라면 사족을 못쓴다.
빙의 대상이 아니면 조기 리타이어가 보통인 고종을 원래 역사에서 보여준 모습을 바탕으로 재구성해 민의를 바탕으로 독재하고 싶은 전제군주라는 골 때리는 조합으로 기존 대역에 없는, 그리고 엄청나게 빡치는 새로운 고종상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 의친왕
    1차 세계대전을 다룬 2부 본편 1화에서 관전무관단의 일원으로 등장. 유럽에서 유흥을 즐기다 갈리치아에 있던 관전무관단에 합류해 보좌하는 이응준 정위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일본에서 벌어진 추대 사건은 김시혁의 개입과 상관 없는지라 여기서도 아버지에 찍혀서 귀국길 막힌 처지. 파락호 성향은 그대로지만 밀덕후 아버지나 금치산자 형과 달리 군사적 안목은 제대로라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의 전투방식이 한국의 것을 벤치마킹 했음을 즉시 알아보고 김인수 부장과 전황에 대해 막힘없는 대화를 나눈다. 바로 옆에서 포탄이 떨어져도 개의치 않는 대범함을 갖춰서 세간에선 고종보다 더 대원군을 닮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더 싫어하는 건지 고종은 의친왕의 거듭된 귀국 요청을 칼같이 차단한다.

4.1.3. 관료

의화단 진압과 남만주 점유를 거치며 지주가 주축이 된 남부와 실업가 중심의 북부로 파벌이 갈린다.
  • 한규설
    원역사에서 을사조약 반대와 한일합방 이후 일본이 수여한 귀족 작위를 거부하는 등 적극적인 반일 행보를 보인 대한제국의 충신. 소설상에서도 일본 측이 강경파로 보는 등 반일 행보는 여전하다. 외교무대에서 활동하며 극동전쟁 때는 총리대신으로 전시내각을 이끌었다. 고종을 무척 불신하고 김시혁을 더 신뢰하는 모습을 보였다.
  • 조병식
    방곡령으로 유명한 인물. 작품속에선 미스터 방곡령이라 불리며 방곡령의 화신 취급을 받는다. 고증대로 부패한 면은 존재하지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노회하고 유능한 관료이기도 하며 일본으로부터의 뇌물만은 절대 받지 않는 반일주의자라 대일본 외교에서 활약한다. 일단 조병식이 나서면 일본은 짜증부터 내며 독자들은 잠가라 쌀독 드립을 친다. 이용익, 어윤중과 함께 일본이 가장 경계한 조선 관료 3명으로 개중에서도 특히 으뜸이었다. 극동전쟁 직전 출범한 전시내각에서 농상공부대신직을 역임하다 종전 직전 노환으로 사망하며 "일본에는 쌀 한 톨, 콩 한 조각 팔지 말라"는 그 다운 유언을 남겼다.
  • 김가진
    경복궁 습격 때 끝까지 저항하는 김시혁을 설득하는 역할로 파견된다. 항복을 거부하는 김시혁을 무모하게 여기면서도 일본측 상황을 슬며시 알려주는 배려를 보인다. 의화단 운동 때 북경에 외교관으로 파견되어 있다가 죽을 뻔했으나 경호차 파견된 원수부 요원들의 노력으로 버텨내고 생환한다. 본래 친일 성향이 있었으나 일신의 영달을 위해 친일하는 부류가 아니었기에 일본의 야욕이 점점 노골화되자 노선을 전환. 조병식 후임으로 농상공부대신이 되어 극동전쟁 종전 후 쌀 수출 물량 증감을 두고 일본과 협상을 벌였고 이때 일본측 제안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설립된다.

    2부 도입부 시점에선 내각 총리대신. 관료로서 역량이나 청렴함은 흠잡을 구석이 없었으나 아직 제대로 된 기반도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의회정치에 지나친 믿음을 드러내 역대 어느 총리보다 많은 중추원에 많은 권한을 넘겼고, 이를 파고든 고종은 중추원을 친황파 황국협회로 채워넣어 원수부와 내각을 압박하는 데 써먹는다. 1차 세계대전 참전이 확정되고 일본의 관동주 매각 등 외교참사의 책임을 묻는 불신임 투표가 부쳐지게 되자 투표 전에 자진 사임한다.
  • 어윤중
    조세개혁이 가장 큰 소망인 탁지부 대신. 설사 임금이라도 주먹구구식 예산 집행은 용납하지 않는 강직한 성격으로 고종이 이미 러시아제 소총 도입이 확정된 상태에서 즉위 40주년 기념식에 쓰려고 30년식 소총 15만어치, 대포와 속사포 20만원치, 도합 35만원치 무기 구매를 덜컥 약속하는 사고를 쳤을 때 국고는 단 한 푼도 각출할 수 없으니 내탕금에서 지출하라 일갈한다. 군제 개혁도, 병기 개발도 모두 돈싸움인 만큼 내각에서 김시혁과 직접적으로 얽히는 일이 가장 많은 인물이며 김시혁도 최대한 탁지부 권한을 존중하려 애쓴다.
  • 민영환
    젊은 시절부터 노련한 모습을 보이는 관료로 민씨 척중 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 2차 쿠데타 직전 신설된 헌병대 사령관을 부암했다. 고종이 그를 헌병사령관에 부임시킨 건 군부를 견제하려는 의도였으나 정작 그는 이용익의 설득을 받아들여 이완용의 협조 요청을 거부하고 쿠데타를 묵인하는 것으로 답한다. 전쟁이 발발하자 주인공과 함께 평양으로 북상, 도주한 관서사령관을 대신한 자신의 동생과 함께 헌병사령관 직위를 이용해 치안을 유지하고 포로들을 관리하는데 주력한다. 황주 방면 7여단을 지원할 때는 또 다시 소모전을 벌이려는 김시혁을 제지하고 양동 공격을 제안했다. 이 양동 공격이 성공하면서 7여단은 간신히 살아남고 한국군은 함흥으로 후퇴할 여유를 얻는다.

    2부 도입부에선 육군대신으로 직을 옮겨 등장. 고종에게 무작정 충성하지 않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던 그가 떠난 뒤 국가헌병대는 급격히 고종의 친위기관이 된다. 1차 세계대전 참전이 결정되고 총리대신 김가진이 사임하자 유능함을 인정받아 왔고 러시아를 잘 아는 그가 원수부와 내각, 중추원 모두의 지지를 받아 총리대신직에 오른다. 총리가 되자마자 러시아 극동총독을 설득, 한국군의 참전을 1916년으로 미루어 필요한 시간을 버는 수완을 발휘한다.
  • 김홍륙
    원역사에서 고종과 순종을 독커피로 독살하려 한 김홍륙 독차 사건의 주범. 다만 여기서는 주인공 덕에 계속 중용되면서 독차사건 없이 한성부 판윤으로서 잘 나가고 있다. 고종의 의사를 반영한 한성부 재정비를 주도했으며 극동 전쟁을 맞아 정부 시설을 함흥으로 옮길 때 누군가는 남아서 한성의 백성들을 지켜야한다며 한성에 남아 무저항 도시를 선언했다. 이후 괴뢰 정부에 협력하는 척하고 있다가 한성 탈환 타이밍에 맞춰 내부에서 호응해준다.
  • 안중근
    외부 관료를 역임하다 아시아주의자인게 문제가 되어 퇴직. 의병활동을 하다 김시혁에게 합류를 청하며 등장한다. 김시혁은 그를 김흥륙에게 보내 함께 움직이게 한다. 아시아주의자라 불이익을 받았고, 친일파 박영효와도 교분이 있어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한양내 저항 세력 구축의 중심이 된다. 문산 전투 이후 벌어진 한성 탈환 때 김흥륙과 함께 내부에서 호응했으며 살려달라 애걸하는 박영효에게 죄값을 치르란 말을 남긴다. 10년 뒤에도 외부참판으로 봉직하다 기존 프랑스 대사 홍종우가 외부대신서리가 되면서 프랑스 대사로 전임된다.
  • 이용익
    고종의 총신으로 작중에 겸직하는 역할이 가장 많은 인물. 고종에 대한 충성은 변치 않으나 고종이 하는 일이 나라 가져다 일본에 바치자는 거라 김시혁의 쿠데타에 협력, 헌병대와 경무국을 설득해 쿠데타 성공에 크게 기여한다. 극동 전쟁 발발 이후에는 함흥에서 후방 보급을 책임지다시피 했으며 종전 후엔 일본과의 외교전에서도 상당히 활약한다.
  • 민종묵
    학부대신. 원래 역사에선 을사조약 시기까지 반일을 고수하다 한일병합쯤 회유되어 친일파로 남으나 바뀐 역사의 수혜를 입어 존경받는 유림 관료로 남게 되었다. 자신은 상투를 고수할 정도로 옛 법도에 충실하나 앞으로는 신식 교육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는 열린 소신을 지닌 온건 보수로 김시혁도 늘 깍듯이 예의를 지킨다. 교육보국 백년대계 구호를 내새우며 학교 설립에 주력, 재임기간 동안 전국에 4000개의 크고 작은 학교를 세우는 괄목할 성과를 냈다. 남만주의 중국인들을 신뢰할 수 없으니 추방해야 한다는 이범진의 주장에 단호히 반대하며 교육을 통해 서로 다른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으며 그것이 유자의 짐이라 강변한다.
  • 박제순
    김시혁이 가장 먼저 만난 을사오적. 김시혁이 동학 토벌을 명받고 남쪽에 파견되었을때 충청감사로 무능한 주제에 김시혁 하는 일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악연을 쌓는다. 충청감영에 집결한 병력까지 모아 동학군 집결지를 들이쳐야 한다는 타당한 요청을 뭉개버리는 바람에 김시혁이 포함된 친위영 병력은 압도적인 수적 열세 속에 싸워야 했다. 친일파지만 극동전쟁 때는 고향에 내려가 칩거하고 있었기에 전후 벌어진 숙청에서 무사했고 친위세력이 필요한 고종은 그를 기어이 재등용해 종전 협상단까지 끼워넣는다. 친일내각에 협력하진 않았으나 자세한 행적이 밝혀진 것도 아니어서 의혹의 눈길이 늘 따라다녔고 종전 3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뜬금없이 한청일 삼국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다 뭇매를 맞고 낙향해 한동안 칩거해야 했다. 의지할게 임금의 신임 밖에 없는 그를 손발로 써먹기로 한 고종은 그를 늘 옆에 두었고 1915년에는 궁내부 대신으로 승승장구하며 고종의 총애를 바탕으로 총리대신을 노리나 고종을 지지하는 중추원 황국협회 의원들조차 박제순은 불신했기에 불발된다.

4.1.4. 친일파

1, 2차 쿠데타와 극동전쟁을 거치며 박제순을 제외하면 거의 다 제거되거나 친일 노선을 버렸다. 일본이 현지 협력자 포섭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아시아주의는 사실상 매국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 이완용
    원역사 을사오적의 일원이자 오늘날까지도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대명사로 남은 인물. 시기상 친러파로 활동할 시기지만 여기서는 좀 이르게 친일파로 전향했다. 극동전쟁시기에 친일파로서 괴뢰 정부의 수장격 존재가 되지만 일본군이 밀리면서 괴뢰 정부가 무너지고 나선 언급이 없으나 2부 프롤로그에서 친일파들을 죄다 처리했다는 김가진의 언급을 감안하면 처리된 것으로 보인다.
  • 박영효
    송병준과 함께 이 소설에 나온 친일파들 중에서도 악질로 묘사되는데 특히 주요 군사 정보들을 뇌물 받고 팔아먹었다는데서 더더욱 쉴드를 쳐줄 요소가 없다. 그 결과 극동전쟁 중 세워진 괴뢰정부에도 합류하지만 한성이 탈환되자 분노한 한성 주민들에게 잡혀 얻어 터지게 되고 김홍륙과 안중근에게 구원을 청하지만 싸늘하게 거절 당한 뒤 다시 끌려 가는 것으로 출연 종료. 이후 군중들에게 맞아 죽었거나 운좋게 살았어도 이후 관련자들이 싹 다 처형되었다는 김가진의 언급을 보면 사형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 송병준
    원역사 정미칠적 중 하나이자 이 소설상 박영효와 함께 친일파 중 최악의 악질. 그래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박영효와 달리 이쪽은 아예 노다 헤이지로라고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쓰고 일본어를 주로 쓰는 등 철저히 일본인답게 행동한다. 한성이 수복되고 용케 제물포까지 탈출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거기서 잡혀버리는 것으로 출연 종료.
  • 권중현
    원역사 을사오적 중 하나로 역시나 친일파답게 괴뢰정부에 합류했다. 이후 일본이 밀려나면서 한양 방위책임을 떠넘기다시피 받게 되고 당연하겠지만 이미 시세를 눈치채고 있던 그는 오히려 한양 문을 대한제국군에게 열어주며 다시금 편을 바꾼다. 이후에는 언급이 없지만 골수 친일파이자 괴뢰정부의 중핵이었던 만큼 처리되었을 것이다.
  • 이진호
    원역사 춘생문 사건을 어윤중에게 고발해 실패로 돌아가게 한 친일파. 소설 속에서도 김시혁의 첫번째 친위 쿠데타를 방해하다가 사로잡히고 처형된다.
  • 우범선, 이두황
    이들을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김시혁의 조언을 고종이 거부하면서 원역사처럼 을미사변에 가담했고, 주인공에 첫번째 친위 쿠데타로 인해 일본에 망명했다. 이후 일제가 친일 내각을 세우기 위해 다시 귀국하지만, 주인공에 두번째 친위 쿠데타 이후, 잡혀 처형된다.
  • 이근택
    반일 인사였다가 일본과 대한의 차이가 압도적이라는 사실에 경도되어 친일로 전향한 인물. 1차 쿠데타로 우범선, 안경수, 이두황 등이 모두 해외도피한 상태에서 얼마 안되는 친일 군맥으로 군부를 견제하기 위해 고종이 의도적으로 키운 인물. 청의 선전포고에 똑같이 선전포고로 대응하고 남만주 점령을 명한 고종이 함경도 방면군 사령관으로 전격 발탁, 2만의 병력을 이끌고 훈춘 방면으로 진격한다. 평안도 방면에서 진격한 이규태가 고종의 재촉을 최대한 뭉개며 불필요한 손실을 줄인 것과 달리 무리한 진격으로 현지 민병대와 충돌하고 콜레라까지 발병해 3천의 사상자를 낸다. 끝까지 제지하던 참모장 장기렴을 해임하고 무리한 진격을 이어가느라 함경도 일대에서 무리한 징발을 자행. 북청 일대에서 소요 사태가 발생하기에 이른다.

    결국 함경도 지방관들의 직소와 장기렴의 증언을 수렴한 북간도 관리사 이범윤에 의해 해임 조치된다. 해임된 뒤에도 고종의 총애를 받아 황실경위원장에 임명되어 김시혁이 올리는 일본의 침공 징후에 대한 정보를 모두 차단하고 있었다. 2차 쿠데타 당시 수감되었다가 일본군의 한성 점령 이후 괴뢰정부의 일원이 되고, 한국군의 승전으로 처형된다.
  • 이병무
    1903년 2차 쿠데타 직전 군내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던 친일파 고급지휘관. 군부를 견제하고 갈라치기 위해 고종이 의도적으로 중용한 인물로 2차 쿠데타 직전까지 포병사령관을 역임중이었다. 군인으로서 실력은 전무하며 일찌감치 퇴근해 자신이 꽂아 넣은 친일 장교, 친한 일본군 장교들과 요정에서 주색잡기로 놀아는 것이 일상. 2차 쿠데타 당일에도 퇴근 시간보다 앞서 기생집을 찾았다 기록국 요원들에게 습격받자 속옷만 입고 창문으로 달아나는 추태를 보이다 체포된다.
  • 안경수
    주인공의 첫번째 친위 쿠데타 이후 일본으로 망명했으나, 망명생활에 심한 염증을 드러내다 기록조사국의 공작에 걸려든다. 당근과 채찍을 교묘하게 활용한 조사국 요원들의 심문에 박영효가 한국군 암호를 팔아넘긴 것 등 각종 기밀 사항들을 실토. 다른 친일파들과는 달리 목숨을 보전했다.

4.1.5. 독립 협회

  • 서재필
    원역사와 마찬가지로 독립협회의 수장. 조선에서의 의회 도입을 위해 준비중이며 주인공과도 견제는 하면서도 협력도 하는 입체적인 관계. 원래 역사에서도 만주 점령을 주장했던 사람이라 한국군의 남만주 점유와 장작림 토벌을 아주 열성적으로 지지했으며 한국군이 영구를 이미 점령해다는 오보를 고의적으로 내기도 했다. 민의와 그 민의를 불러일으키는 언론의 잠재력에 주목한 고종은 갑신년의 역적이라며 혐오하던 서재필이 이끄는 독립신문을 참된 언론이라는 공치사까지 붙여 전폭 후원해준다.
  • 이승만
    원역사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여기서는 주인공의 제안으로 원역사보다 이른 미국 유학을 가게 된다. 둘 간의 대화는 꽤나 대담한 편인데, 누가 들으면 역적이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의 내용이었다. 러일전쟁이 벌어지고 나서는 미국 내에서 여론전을 주도하고 있다. 언변이 좋아서 주미 일본 공사관 직원들도 그를 주요 경계 대상으로 보는 중. 그러거나 말거나 이승만은 미국 의회에서 연설을 가지고, 국무장관과의 회담까지 가지면서 여론전에서의 승기와 미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전쟁 채권을 판매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4.1.6. 민간인

  • 최씨 어르신
    평양에서 활동하는 유상 중 하나로 성이 최씨라는것만 밝혀지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아 어르신이라 칭해진다. 젊은 시절 신미양요에 참전했다가 죽을 뻔한걸 주인공의 아버지 덕에 살아남았고 그걸 마음의 빚으로 여겨 상인이 되고 나서 주인공 집안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고. 청일전쟁의 여파로 장사가 잘 되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으나 주인공의 도움으로 군납의 길이 열려 재기에 성공하고 다시금 번영을 누리며 이에 따라 주인공을 계속 돕고 있다. 자신의 딸인 로하와도 맺어주려 하는데 둘의 나이차가 상당한 탓에 주인공이 거절했으나 이후 둘이 결혼하면서 장인어른이 되었다. 이후로도 김시혁이 자금문제로 곤란할때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인물이지만, 확실한 명분과 이익이 든다 생각되지 않으면 퇴짜를 놓는다고 한다.
  • 최로하
    위에 나온 어르신의 딸. 무척 당돌한 성격으로 상업에 종사하며 일찍부터 개화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전통적 조선 여인상이 아닌 19세기 신여성상으로 묘사된다. 김시혁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품고 있었고 김시혁도 마찬가지였으나 나이차 때문에 애써 외면하다 극동전쟁 종전 후 외전에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주인공과 맺어지는 데 성공했다. 직업은 영어와 불어를 가르치는 교사. 극동전쟁 때는 잠깐이나마 여군지원병으로 복무하며 한성에서 열린 승전기념 열병식에도 참여했다. 순 저질 발음인 김시혁과 달리 원어민에 가까운 불어를 구사한다.
  • 김민정
    김시혁과 최로하의 고명딸. 2부 프롤로그에서 어린 시절 모습으로 첫 등장. 아버지를 무척 좋아하며 군복입은 아빠 그림을 그리며 자기도 군인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밝힌다. 어린 아이가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 시혁은 별 생각없이 그래하고 마는데 바로 뒤에 시혁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라는 언급이 나와 정말 군인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6]
  • 임병찬
    극동전쟁 도중 의병을 일으켜 친일파 군수를 처형하고, 게릴라전을 벌인다.
  • 허위
    극동전쟁 중 창의군을 이끌고 김시혁을 도와 한성을 탈환하는데 일조한다.
  • 여운형
    극동전쟁 시점에 어린 아이로 첫 등장한다. 한국군을 취재하려는 매켄지의 현지 가이드로 안내는 물론 이런저런 보좌까지 해내고 있었다. 경인가도 전투를 마치고 게릴라전을 벌이던 홍범도와 메켄지가 접촉할 수 있게 거들었고 고종과 김시혁의 인터뷰를 따려는 매켄지를 따라 함흥까지 수행한다. 어린 나이에도 영어에 능통하고 대범해서 대화를 나눈 홍범도가 깊은 인상을 받는다.

4.2. 러시아 제국

모든 군사 교리는 해당 국가의 사회, 문화, 역사 전반이 아우러진 총체라는 설명과 함께 질을 뛰어넘어 양의 위엄을 선보이지만 동시에 동맹국을 파트너가 아니라 종속국 취급하는 러시아 외교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 알렉세이 쿠로팟킨
    한국의 소총 판매 요청건을 씹으려던 전쟁성 장관이 해임되고 그 뒤를 이어 전쟁성 장관이 된다. 이후 러일전쟁 시기에 원역사대로 본인이 직접 만주로 가서 전쟁 지휘를 하게 된다. 원역사와 달리 대한제국이 확실히 러시아 편에 붙어 일본 1군을 붙들어준 덕분에 뤼순이 원역사보다도 더 길게 버티는 등 수월하게 방어전을 진행했고 이어지는 봉천 전투에서도 원역사와 달리 승리를 거머쥔다. 1차 대전 이전에 퇴역하고 무능한 수호믈리노프가 황후 인맥으로 전쟁대신이 되면서 러시아군은 극동전쟁의 전훈을 교리로 체계화하는데 실패한다. 그러나 탄넨베르크 패전의 충격으로 수호믈리노프가 해임되자 이전 극동전쟁에서의 전훈을 다시 살리고자 하는 군부 개혁의 일환으로 5군 사령관으로 다시 복귀한다.
  • 드미트리 푸차타
    원역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에 파견된 러시아 군사고문단의 수장. 프랑스 군사고문단과 자기 휘하 장교들과 함께 대한제국군의 근대화에 공을 세우며 그 공을 인정받아 러일전쟁 시기에 준장으로 승진하며 전쟁 중에도 한국에 남아 군사작전 수행을 돕고 있다.
  • 파벨 미쉔코
    제1시베리아 군단을 지휘하는 러시아 육군 소장. 자신의 상급자인 자술리치 중장보다 유능하다고 평가받는다. 만주군 총사령관 쿠로팟킨이 동부지대를 지휘하는 자술리치가 졸전을 거듭하자 해임시키고 파벨 미쉔코에게 전선을 맡길 정도. 개전 초기 가장 먼저 평양 방면 전투에 투입되어 전선을 잘 막았으며, 이후 뤼순 공방전에서 제2군의 후방을 들이치며 원래의 역사에서 보여준 것 이상의 활약을 펼친다. 마지막 전투인 봉천 전투에서도 그리펜베르크가 지휘하는 제2만주군의 예하에 소속되어 노기 마레스키가 지휘하는 제3군의 후방을 들이친다.
    일본군은 파벨 미쉔코와 제1시베리아 군단을 굉장히 껄끄러워하는데, 대부분의 편성이 기병이라 기동성이 좋은 편인데다가 대한제국군과 함께 어깨를 맞대고 싸운 덕에 그들의 전투 방식을 어느 정도 도입했기 때문이다.
  • 로만 콘트란체코
    러시아 공병의 희망으로 꼽히는 명장. 1902년 대한으로 파견되어 평양 남부에 콘크리트 요새 지대를 축조하고 뤼순으로 돌아갔다. 너무 이른 개전으로 완성에 한참 못미친 뤼순의 방어망을 지휘해 일본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강요했으나 끝내 전사한다.
  •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베조브라조프
  • 오스카르 그리펜베르크
    결정적인 한 방을 위해 차르인 니콜라이 2세가 극동 방면으로 급파한 러시아 육군 대장. 예하에는 오데사 방면에 주둔하던 제8군단을 비롯해 10만 여 명의 러시아 정규부대가 소속되어 있다. 러시아군 장성 중에서 대한제국군의 방식에 주목하고 그것을 벤치마킹하여 1개 군단을 재편성했다. 이후 '차르의 망치' 라는 별명에 걸맞게 봉천 전투에서 노기 마레스케가 이끄는 제3군을 포위했으며 원래 역사와는 달리 승전을 거둔다. 극동전쟁 이후에 퇴역하고 1차 대전 이전 세상을 떠났다. 그와 쿠로파트킨이 군을 떠나고 무능한 이들이 군부 중추에 자리잡으면서 러시아가 극동 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교리로 계승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듯 했으나 탄넨베르크의 충격으로 인해 러시아 군부가 개혁을 결심하며 다시 살아날 여지가 생겼다.
  •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그리펜베르크와 마찬가지로 니콜라이 2세가 결정적 한 방을 위해 급파한 발트 함대의 지휘관. 원역사와 다르게 봉천 전투의 승리와 대한제국군의 분투로 일본 육군이 쪼그라들어 서두를 필요가 없어 보였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독촉으로 원 역사와 비슷하게 대한해협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려 했으나 대한제국이 필사적으로 정보를 알려온 덕분에 대한해협 루트를 포기하고 츠가루해협 루트를 고르며 쓰시마 해전을 치루지 않게 되었다.

4.3. 일본 제국

4.3.1. 군부

4.3.1.1. 육군
  • 오야마 이와오
    원역사대로 육군 총사령관으로서 만주에서 러시아 군과 싸운다. 그러나 원역사에 없던 대한제국군의 항쟁으로 1군의 발이 묶이며 뤼순이 원역사보다 2달 더 버틴 것으로 일이 꼬이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뤼순을 먹었으니 봉천을 밀면 된다고 봉천 전투를 벌이지만 한국식 보병전술을 도입한 그리펜베르크에게 밀려 패하고 멘탈이 작살난 채로 뤼순으로 퇴각한다.
  • 도조 히데노리
    1군 산하의 중장으로 이 소설상에선 1군의 유일한 정상인 포지션. 유격대 대처 건이나 한국의 달라진 모습에 대해 상식적인 대처를 요구하는 등 정상적인 요구를 하지만 한국을 무시하던 윗선들에게 다 씹히고 그리고 큰 코 다친 윗선을 항상 비웃는 것이 대표 레퍼토리다. 독자들은 이 양반의 아들을 떠올리며 어떻게 부자가 이리 다를까 생각하는 중.[7]
  • 데라우치 마사타케
    극동전쟁시기 육군 대신이자 원역사의 초대 조선 총독. 대한 제국을 은연중에 깔보고 있었지만 극동전쟁에서 일본군이 대한제국군에게 거하게 털리자 할 말을 잃게 된다. 종전 이후 이뤄진 고위 지휘관 할복 러쉬를 용케 피했는지 야마가타가 사이온지에게 차기 총리로 데라우치를 밀어달라는 요청으로 언급되어 원역사보다 이른 시기에 총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 구로키 다메모토
    러일전쟁 당시 1군 사령관. 원역사와 달리 대한제국이 일본에 선전포고 하면서 한반도 전선으로 파견된다. 그러나 상대가 미래인인 김시혁인 만큼 대한제국의 준비도 철저해 고전을 면치 못했고 거기다 삼남지방에서 의병들과 지방 진위대가 유격전을 벌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삼광 작전을 펼쳐 자신이 직접 지휘하나 완전한 토벌엔 실패했고 한성이 수복당한 최신화 시점에선 조선 주차 일본군 대부분이 흩어진 상황에 놓여 본인 역시 포위된 상태에 놓인다. 종전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이며 노기가 할복한 만큼 구로키도 할복했을 가능성이 있다.
  • 노기 마레스케
    러일전쟁기 3군 사령관. 원역사보다 훨씬 꼬여버린 상황에서 3군을 지휘하지만 한국 전술을 도입한 러시아 8군단의 공격을 직격으로 쳐맞으며 파국을 맞게 되며 본인 역시 포로로 잡히게 된다. 이후 외전에서 패전의 책임을 지고 할복했다고 언급된다. 원역사에서는 메이지 천황 사후 할복했으니 원역사보다 빨리 죽은 것이다.
  • 야마가타 아리토모
    원 역사 일본 유신지사 계의 거물. 군부에서 십수명의 장성들이 배를 가르는 동안. 민심을 진정시키는 연설을 했는데, 실체는 외무성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면피면책성 발언으로 유신 테러를 사주했다.
  • 노즈 소좌
    원역사에서 주한일본공사관 무관으로 근무하며 한국군에 무기를 팔아주거나 군사유학생들을 지원해주는 등 도움을 준 인물. 여기서도 김시혁이 군제 개혁을 할 당시에 먼저 접근해 30년식 소총을 공급해주겠다며 미쓰이 물산과 연결해주기도 한다.[8] 극동전쟁 이후 친한 인사인데다 한국에 자국 무기를 넘겼다는 이유로 군에서 강제전역 당했으며 이후 미쓰이 물산에 취직했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노즈 소좌와 미쓰이 물산을 "대체로 무해함"이라고 할 정도로 적대적으로 보지 않아서 미쓰이 물산의 한국 전담사원으로 순조롭게 정착했으며 그 덕에 쑨원을 지원할 대상으로 뽑히기도 했다.
4.3.1.2. 해군
  • 야마모토 곤노효에
    현시점 일본제국 해군장관. 러일전쟁때도 대표 강경파로 나서며 대본영이 그렇듯 한국을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극동 전쟁이 예상과 전혀 다른 전개로 가면서 서서히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고 결국 그 불안은 현실이 되고 만다.
  • 도고 헤이하치로
    원역사대로 러일전쟁때 연합함대 총사령관을 맡고 있다. 대한제국군에게 털리던 육군과 달리 전력을 그런대로 유지 하고 있었고 만주와 한반도에서 육군이 사실상 소멸되자 이제 최후의 희망은 자신들 뿐임을 알고 발트함대를 격파해 완전한 최악만은 면하고자 한다. 그러나 원역사와 달리 대한제국의 정보 전달로 발트함대가 츠가루 해협으로 향하며 함대결전도 못해보고 무기력하게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4.3.2. 내각

  • 이토 히로부미
    역시나 원역사대로 미쳐 돌아가는 일본 속에서 나름 정상인으로 묘사된다. 시대가 시대라 제국주의적 면모는 있지만 노회한 여우라 불리는 만큼 외교술 등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이며 외교 협상장에 모습을 자주 보인다. 그러나 극동전쟁에서 패하면서 내각에 속해있던 그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1909년에 원역사와 비슷하게 암살당하는 것으로 작중에서 퇴장한다. 다만 원역사에선 안중근에게 암살당했다면 여기서는 같은 일본인의 손에 암살 당했다.
  • 사이온지 긴모치
    이토와 마찬가지로 일본 안에 보이는 몇 안되는 정상인. 이토 사후 내각총리대신이 되어 폭주할 기미가 보이는 군부를 그나마 억누르고 있다. 그러나 차기 총리로 군부에 속한 데라우치가 확정되면서 결국 일본이 폭주하는 길로 향하는 것을 완전히 막지 못했다.

4.4. 프랑스 제3공화국

  • 페르디낭 포슈
    프랑스에서 대한제국에 파견한 군사고문으로 첫 등장. 처음에는 진급 길도 사실상 막힌 터에 먼 타국으로 좌천되었다 생각해 좌절해 있었으나 주인공을 만난 이후 기운을 얻어 열심히 일하게 된다. 이후 주인공과 함께 엘랑 비탈[9]을 기반으로 하여 '러시아의 육신, 프랑스의 정신'을 가진 군대를 육성하기 위해 많은 도움을 주며, 특히 포병과 관련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후 전쟁으로 인해 군사고문 임무가 종료되자 귀국길에 올랐으나, 귀국 도중 러일전쟁 관전무관 자격으로 다시 한국에 돌아오고, 한국의 현대식 보병 전술을 보며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외전에서는 다시 귀국해서 육군대학 교장으로서 후임들을 양성하면서 자신이 한국에서 본 신전술을 퍼뜨리고자 했으나 프랑스는 그걸 어설프게 받아들이며 골머리를 썩던 중 조프르에 의해 제20군단장 보직에 앉게 된다. 처음에는 실전 경험이 없어 거절했지만 곧 군단장이라면 자신이 뭔가 해볼 수 있다고 판단해 보직을 받아들이게 된다.
  •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
    주한프랑스공사로 여기서도 한국을 돕는 대표 조력자 중 한명이다.
  • 조제프 조프르
    2부 프롤로그에서 등장하는 프랑스군 참모본부장. 대한제국에서 김시혁과 함께 개발한 전술을 도입하려던 포슈의 계획을 지지해주고 있으며 그를 20군단장에 임명해 나름 힘을 실어주려 한다.

4.5. 독일 제국

  • 에리히 폰 팔켄하인
    아시아에서 근무했던 것을 고증해 대한제국군 훈련 참관을 위해 교주만에서 파견을 왔다가 포슈와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이후 주인공에게 나름 조언을 해주면서 극동에 관련해 놀라운 식견을 보여주기도 한다.
  • 알프레트 폰 발더제
    의화단 운동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등장하며 이후 1901년 대타협때도 독일 측 대표로 참석한다.

4.6. 미합중국

  • 존 조지프 퍼싱
    러일전쟁이 발발한 후 관전 무관으로 등장한다. 현대 보병전술을 이식한 대한제국군의 모습에 감명받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본국에 알리나, 유럽식 전술에 익숙하고 예산이 부족했던 미군은 이 보고서를 서류 보관소에 처박아버리고 만다. 그나마 서술에서 1차대전 직전에 다시 세상 빛을 본다고 밝혔으니 그나마 다행. 외전에서 주인공에게 지속적으로 조언을 구함과 동시에 대한에서 새로 개발한 강습소총을 사비로 구매, 휘하 병사들을 강습보병화를 시키고 있다.
  • 허버트 후버
    본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취업하려고 했으나, 대한제국에서 내세운 조건이 워낙 좋았고, 미지의 세계에서 성공신화를 써내려가는 이른바 "프론티어 정신"에 이끌려 고민끝에 대한제국에서 취업을 결정했다. 이후 대한제국의 금광 및 기타 광산들을 기반으로 한 거대한 자본가가 되었으며 러일전쟁기에도 그 막대한 자본으로 대한제국을 서포트한다.[10]
  • 제임스 하코트
    해당 작품의 오리지널 캐릭터. 전형적인 딕시이며, 후버의 친구의 지인이라는 설정이다. 후버의 광산에서 경비직을 서던 중 미합중국 기병대에서 복무한 경험을 살려 기병 고문직을 구하던 대한제국 육군에 입대한다. 딕시스러운 행동거지로 여러 문제를 일으켰지만[11] 김시혁에게 일침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러일전쟁시기에 들어서는 인간관계에 꽤나 진전이 있었다.
    이후 굵직한 전투마다 등장하며 꽤나 큰 인상을 남겼다. 특히 흉갑기병대를 이끌며 남포에 갇힌 일본군 근위기병연대를 궤멸시키면서 연대기를 탈취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이어나갔다.
  • 윌리엄 다이
    고종에게 고용된 미국인 군사고문으로 한성구락부의 초창기 협력자. 친위영 2중대장에 임명된 김시혁이 일본의 농간으로 그나마 정예한 장위영 병력을 빼앗기고 총도 제대로 못쏘는 오합지졸들을 넘겨 받았을때 왕년의 교관 가락을 발휘해 쓸만한 병사로 조련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미군 고문관 중에 유일한 사관학교 경력자였기에 신설된 무관학교의 초대 교장에 임명. 한국군 군제 개혁의 주춧돌이 된다. 원래 역사에선 1899년에 미국으로 돌아가 사망하나 여기선 1905년 극동전쟁 종전 시까지 조선에 머물며 생존해 종전 협상을 참관한다.
  • 페르디난트 닌스테드
    다이와 함께 고용된 미국인 고문. 무관학교 교감으로 재임하며 다이와 한국군 개혁의 초석을 놓아 주었다. 2차 쿠데타가 다이와 함께 불안함에 몸서리치는 고종을 호위했고 극동전쟁 종전 후 함께 극동전쟁 종전협상을 참관했다.

4.7. 대영제국

  • 프레더릭 매켄지[12]
    원역사에서 한국인들이 정미의병하면 흔히 떠올리는 사진을 찍은 것으로 유명하며 이후로도 반일 언론 활동을 지속해 한국 독립유공자에 서훈된 영국 기자. 본디 일본군의 종군 기자단에 소속 되어 있었고 일본이 말한 러시아로부터 조선을 해방시킨다는 말을 믿었지만 경인가도 전투를 지켜보고 생각이 바뀌어 한국의 사정을 취재하기 위해 몰래 일본군을 피해 홍범도가 이끄는 한국군에 합류한다. 그 뒤 한국군을 취재하면서 함흥까지 가게 되고 거기서 김시혁과 인터뷰를 하면서 Korea will never surrender라는 제목의 기사를 만들어 국제 여론전에서 한국이 우위에 설 수 있게 해준다.
  • 어니스트 베델
    원역사에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반일 언론 활동을 벌여 한국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영국 기자. 역시나 메켄지와 같은 이유로 일본군을 탈출해 한국군을 취재하려 했으나[13] 메켄지의 탈출 이후 감시가 삼엄해지며 탈출에 실패하지만 우연히 삼광 작전의 일환으로 삼남 지방에서 벌어지는 대학살에 대한 실마리를 잡게 되어 잠입 취재에 들어가고 삼광 작전에 대한 진실을 기사로 폭로해 일본의 전쟁 명분이 거짓임을 밝혀낸다. 외전에서 밝혀지길 원역사대로 한국에 눌러앉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 건강을 헤쳤던 일제와의 송사가 사라져 1909년에 세상을 떠난 원역사보다 훨씬 오래 살고 있다.

    베델이 사장으로 있는 대한매일신보는 고종도 건드릴 수 없었기에 고종은 반대급부로 독립신문을 적극 후원해 가장 잘 팔리는 신문사로 만들어 여론 형성에 써먹는다.

4.8.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 막시밀리안 치체리츄 폰 버차니
    원역사에서 오헝제국의 군대를 개혁하려했던 장군. 극동전쟁 당시 관전무관으로 파견되어 대한제국의 전술을 보고 이것이 앞으로의 전장을 지배할것이라 판단해 대한제국에 오헝 제국 공사관이 정식 개관한 것을 기회로 한국을 찾아와 김시혁에게 조언을 구하려 한다. 이후 대한제국군의 훈련을 참관하고 귀국해서 자신이 본 것을 기반으로 한 군제개혁을 강력히 주장했고 그 결과 육군학교장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장교들을 육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육성한 장교들이 동부전선에서 활약하며 원역사의 그 허접 오헝군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나비효과가 생긴다.
  • 게오르크 루트비히 폰 트랍
    원역사에서 오스트리아 해군 잠수함 에이스이자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온 트랩 대령의 모티브. 역시나 주한 오헝 제국 공사관이 정식 개관하자 공사관 무관으로 파견와 버차니와 함께 김시혁에게 조언을 구하려 한다.

4.9. 청 제국-중화민국

  • 이홍장
    의화단 운동 진압 이후 청측 대표로 등장해 대한제국 대표단과 협상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 쑨원
    원역사에서 중화민국의 국부라 일컬어지는 인물로 본디 한국의 남만주 영향력 인정을 조건으로 지원을 받아왔으나 복잡한 국내 정세로 영향력 인정을 철회했다가 그대가로 지원이 끊겨 고생한다. 이후 장작림 전쟁때 대한제국이 다시 그를 끌어들일 필요성을 느껴 같은 조건으로 다시 지원을 받게 된다.[14]
  • 장쭤린
    2부 프롤로그 메인 빌런. 여기서는 극동 전쟁이 러시아에 유리해지자 러시아에 붙어 살아 남았으며 이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내고 일본으로부터 군사 고문을 들여 군의 근대화도 성공시키며 원역사처럼 만주에 상당한 세력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그과정에서 대한제국이 영향력을 행사중인 남만주에 진출하려하면서 대한과 충돌이 터지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 대한제국이 일본을 발라버린 김시혁의 국가라는 점이 문제였고 결국 자전거보병화된 강습보병과 신규 무기인 강습소총에 제대로 당하며 본거지인 영구까지 밀려났으며 키운 군대도 전멸해버리다시피 해 원역사처럼 봉천군벌의 수장으로서 사실상 만주의 왕이 되기란 어려워졌다.

5. 개변된 역사

  • 대한제국 친위 쿠데타
    작품상에서 총 2번에 걸쳐 일어나며 1차 쿠데타는 경복궁 습격과 동학 농민 혁명 진압, 을미사변 이후 일본의 영향력이 거세지자 주인공이 원역사의 아관파천을 기반으로 친일파 내각 척결 계획을 세운 쿠데타로 원역사에서는 고종이 경복궁을 탈출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갔지만 여기서는 공사관이 아닌 경복궁에 머물며 주인공이 이끄는 소부대와 보부상들이 일본군의 진입을 러시아군이 도착할때까지 막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용산의 일본군이 도착하기 전에 러시아군이 한 발 앞서 도착하며 쿠데타는 성공적으로 끝난다. 이후 2차 쿠데타는 역시나 일본이 다시금 친일 내각을 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러일전쟁을 준비하고 고종도 주인공을 견제하며 전쟁 준비가 힘들어지자 역시나 주인공이 수립한 황색 작전을 발동하여 일어나며 역시나 친일 내각을 무너뜨리고 고종의 실권도 대부분 앗아가며 러일전쟁 준비의 최후의 기반이 되어준다.
  • 대한제국 군제개혁
    주인공이 가장 서두른 개혁이자 역사의 큰 분기점으로 이 개혁을 통해 대한제국은 주변 모든 국가들보다 한 세기 앞선 현대전술을 익힌 군대로 각성한다. 대충 정리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 보병
      의화단 사건 개입을 앞두고 강습보병대대라는 중앙군 직할대를 만들어, 새로운 현대식 보병전술을 먼저 습득시킨 뒤 전군에 확대하는 식으로 대한제국을 세계에서 제일 진보된 보병 및 보병전술 보유국으로 탈바꿈시켰다.밀집하면 강력한 현대 무기의 살상력에 쉽게 표적이 되어 희생되기 쉽기에, 전술제대의 최소단위를 소대까지 낮추고, 분대급 이하에서 각개전투가 가능하게 만들어 적의 화력으로부터, 은/엄폐/침투기동이 용이하게 개편하는 한편, 전술단위의 소형화로 인해 수반되는 화력의 약화는 경기관총, 수류탄, 척탄통 같은 이전같으면 포병 등의 타 병과에서나 운용했을 장비를 보병 소부대에 편제시켜 보완, 치명성을 극대화 시키는 방향을 추구하여, 새로운 전술을 강습부대-> 중앙군 근위사단-> 지방군 여단에 점차 확대시켜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는데, 이는 1차 세계대전 중후기에 들어 동맹국/협상국 양 진영에서 수렴진화하듯 등장하여 현대에까지 큰 틀이 이어지고 있는 현대 보병전술의 기본 전제 이며, 이를 조기에 정립한 것 만으로 충분히 현대 군사사에 길이 회자될 업적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 포병
      군사개혁 과정에서 주퇴복좌기를 최초로 적용시킨 현대식 야포인 프랑스제 Mle1897을 대량으로 도입, 1부 완결시점에서 육군은 교육부대 1개 포대와 10개 포병대대[15], 해군은 러시아제 152밀리 해안포 6문과 프랑스제 야포 1개대대를 운용하는 현대식 대규모 현대식 포병전력을 운용하고 있다. 해당 야포가 곡사포가 아닌 평사포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관측반, 야전 통신수단과 연계된 간접사격을 구사하고 있는데, 야전포병은 표적을 직접 조준하여 사격하던것이 일반적이던 당대 기준으로는 상당히 진보된 포병전술을 구사하는 셈이다.[16] 또한 일본군의 야포들이 주퇴복좌기가 없어서 발사속도가 느린 점을 이용해, 높은 연사력과 수준높은 전술로 부족한 수량을 만회, 대포병전에서 상당한 위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신 이런 연사력 높은 야포의 대량운용에는 필연적으로 대량의 포탄소모가 수반되며, 이는 실제로 1부 러일전쟁 시점에서 한국의 열악한 교통 인프라와 맞물려 전쟁수행에 장애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 해군
      원역사에서는 대충 구색만 갖췄던 해군이 여기서는 프랑스로부터 구축함 6척을 도입하고 관련 교육도 제대로 받은 나름 싸울수 있는 해군이 되었다. 본래는 추가로 어뢰정 6척도 갖춰질 예정이었으나 해군 양성을 견제하려는 일본의 순양함 판매라는 미끼에 넘어가 무산되었고 결국 그 자리는 자칭(?) 순양함인 양무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 결과 양무호를 뺀 나머지 배들은 러일전쟁에서도 제대로 싸우며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양무호는 전쟁 막바지까지 후방에 틀어박혀있다가 의외로 원산 상륙작전에서 활약해서 독자들 사이에선 군밤의 혜안(...)이라 불리기도 하며 일본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고도 칭해지기도 했다.
    • 기병
      원 역사에서도 슬슬 사장되어가는 시기고 결국 기갑으로 대체되는 병과라 큰 개혁요소는 없다. 그래도 이쪽도 최소 1차대전 시기까진 현역이고 대한제국은 베이스도 거의 없다보니 개선 작업은 이루어지긴 해서 1차 친위 쿠데타 당시 들어온 러시아 카자크들에게 기병 훈련을 맡겼으며 이후 하코트가 기병고문으로 들어오고 러시아에서 군마를 수입하며 제대로 된 기병대를 갖추게 된다.
  • 1901년 대타협
    원역사에선 없던 외교전으로 일본이 만주와 한반도에 야욕을 드러내자 주인공의 주도로 프랑스에 중재를 요청했고 거기다 고종이 독일도 끌어들이며 2차 삼국간섭의 형태가 되었고 아쉬운대로나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 극동 전쟁
    주인공의 개입으로 역사의 큰물결이 바뀐 대표 사례로 원역사의 러일전쟁에 대한제국이 러시아 편에 붙어 싸우게 된데다 1904년 2월에 벌어질 전쟁이 1903년 10월로 당겨지면서 한러일 모두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전쟁에 돌입했고, 이 결과는 엄청난 변화로 바뀐다.
    • 한반도 전역
      본디 일본서는 한러일 전쟁의 부가적 전선으로 여겼지만 실질적인 주전선이라 봐도 될 정도로 혈투가 벌어졌다. 우선 제3진위여단이 불리한 상황 속에서 경인가도를 5일이나 막아버린 덕에 시작부터 막대한 피해를 입고 시작했고 이후 평양 남부 방어선에서 한러 연합군에게 털리며 근위사단이 괴멸급 피해를 입었다. 이로 말미암아 일본 제 1군이 한반도에 발이 묶여버렸고 어찌어찌 함경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을 점령하지만 점령지에서도 의병들이나 숨은 진위대가 지속적으로 보급선을 공격하고 동해 재해권을 잡은 한러 해군이 그곳을 통해 수송선단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등 보급이 사실상 끊겨 버리며 일이 풀리지 않아 주전선을 밀지도 못한 상황에서 삼광작전이라는 대규모 토벌 작전까지 벌여야 했을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원산 상륙작전이라는 한 방을 제대로 얻어맞게 되고 뒤를 이은 한러 기병대의 대규모 전격전[17]까지 벌어지며 결국 일본군은 군산, 부산, 진해, 제물포를 제외한 모든 한반도 지역에서 축출된다.
    • 만주 전역
      러시아와 일본이 직접 충돌하는 전선으로 여기도 대한 제국의 참전으로 시작부터 꼬인 것이 우선 신속하게 만주로 진입해야 했을 1군이 한반도에 발이 묶이며 예상한 풀 전력이 아닌 상태로 요동을 쳐야 했고 당연히 피해도 더 커졌다. 특히 뤼순이 원역사보다도 2달을 더 버티며 2군과 3군의 소모를 강요했고 대한제국의 방해로 보급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나마 러시아도 준비가 제대로 못된 터라 뤼순을 함락하고 어찌저찌 밀어붙이는 듯 싶었으나 타이밍 좋게 그리펜베르크의 원군이 도착해 봉천 전투에서 러시아군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일본군은 10만여명만 겨우 살아남아 뤼순으로 도주했다.
    • 쓰시마 해전
      원역사에서 일본의 결정적 승리였던 쓰시마 해전이 없어졌다. 이는 쓰시마 해전에서 발트함대가 패하면 육전에서의 승리가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주인공이 어떻게든 정보를 모아 러시아 함대에 전달하고자 노력한 결과로 블라디보스토크 순양함대와 한국 해군이 발트함대와 접선해 발트함대의 항로를 원역사의 대한해협에서 츠가루 해협으로 바꾸면서 쓰시마 해전의 참상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 결론
      전쟁 결과 한러도 엄청난 인적물적 손실을 입었지만 일본은 사상자만 60만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맞이한다.
  • 포츠머스 조약
    원역사와 비슷하게 포츠머스에서 전쟁의 끝을 알리는 조약이 체결된다. 하지만 원역사와 차이가 있는 것이 우선 전쟁에서 가장 크게 활약한 대한제국의 입지가 커지며 협상 당사자로서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로 인해 원역사대로면 이 조약으로 한국의 식민화가 확정되지만 당연히 한국의 식민 조항은 삭제되고 한러방위협정을 끝내는 대가로 일본에 목줄을 채우는 방향으로 협상이 끝난다.[18]
  • 남만주의 대한제국-장작림 전쟁
    포츠머스 조약에서 한국에게 할당된 남만주를 두고 한일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물론 우선권은 열강들에게 인정받고 남만주를 사실상 점유한 한국에게 있었지만 일본군부의 대륙에 대한 집착은 엄청났다. 한국 역시 당장 남만주를 제대로 편입하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이 틈을 잘 파고든 인물이 장작림으로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군의 근대화까지 이루는 등 만주에서 무시 못할 세력을 형성한다. 당연히 일본을 그를 이용해 만주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장작림을 지원했고 때맞춰 위안스카이도 자신의 황제 즉위 명분을 위해 고토 수복을 내걸며 은근슬쩍 장작림을 밀어주면서 장작림은 남만주로의 진출을 꾀하게 됐고 결국 전쟁이 터진다.[19]

    이러한 장작림의 움직임에 한국군은 신속하게 대응한다. 극동전쟁 이후 대량의 자전거를 보급하고 기동 작전 훈련에 주력한 덕분에 한국군은 미쳐버린 기동성을 지니게 된 상태였고 정보전도 잘돼서 장작림의 움직임에 대한 예견도 어느정도 되어있었기에 전쟁에서 누가 이길지는 명백해진 상태였다. 결국 장작림은 자신만만한 공세가 무색하게 순식간에 한국군에게 반격당해 주력군의 과반을 잃고 근거지인 잉커우까지 밀리며 시한부 신세가 되고 만다.

    당시 고종황제를 꼬드겨 일본군을 파견할 생각이던 일본 외무성은 서울에 와서야 이상사태를 감지하고 경악한다. 일본 외무성은 중국 현지의 신문을 통해서 정보를 얻은 탓에[20] 장작림이 잘 싸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한국에 왔더니 진실은 정반대 였던 것.[21] 이번 전쟁으로 장작림이 완전히 파멸하면 이번 전쟁을 지지한 위안스카이는 무조건 몰락하는 길밖에 없으니 대륙의 주도권 전쟁의 승패 결정권이 사실상 한국의 손에 들어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일본이 지난 수십년간 대륙에 펼친 모든 영향력이 소멸할 게 확실했다. 결국 이전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음을 깨달은 일본은 장작림이라도 살리기 위해 주변국들에 중재를 요청하기 시작한다.

    결국 러시아 공사관에서 한국에게 전투 중지를 요청하면서 장작림은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다시금 인고의 시간을 보낼 것을 다짐한다. 한국은 잉커우를 포격해 파괴하는 선에서 군사 행동을 마무리 한 뒤 장작림의 행동을 빌미로 북양정부에게서 막대한 배상금을 뜯어내는데 성공했다. 이후 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쟁은 마무리 되지만 장작림이 살아남으며 만주는 언젠가 다시 전쟁이 터질 수 있는 불완전연소 상태로 남게 된다.
  • 제1차 세계 대전

5.1. 작중 등장하는 무기체계

  • 레밍턴 롤링블럭
    미제 단발 소총. 빙의 후 첫 전투인 경복궁 전투에서 조선군의 무장으로 등장한다.
  • 게베어 1871
    청나라에 요청해 1000정을 받아온 것이 동학농민운동에서 친위영의 무장으로 사용된다.
  • 모신나강
    러시아 제국제 볼트액션 소총. 생산량의 일부를 러시아 극동에 넘겨주는 조건으로 조병창을 건설하여 생산한다.
    작중 러일전쟁기 대한제국군의 제식소총. 러시아의 한자식 표기 중 하나인 아라사에서 따온 것인지 아식 보총이라 불리는데, 현실 한국에서 모신나강에 붙인 별명과 같다.
    한국군 체형에는 너무 길고, 무겁다는 단점과 소총수의 실제 교전거리는 길어도 200미터 내외라는 극동전쟁 전훈, 산이 많은 한반도 지형, 기동전을 선호하는 한국군 교리등을 고려해 1910년부터 짧고 가벼운 개량형, M91/10으로 개발되어 1915년 시점에 이미 북부 지역 부대들은 교체를 마쳤다.
  • 30년식 소총
    일본군의 제식소총. 군제 개혁 와중에 고종이 미쓰이의 로비에 넘어가는 바람에 계획에 없던 3만 정이 도입되었다. 극동전쟁을 앞두고 방어가 불가능한 남부 지역의 향교, 서원, 사찰 등지에 은닉해 두었다 현지 유격대에 보급되었다. 별도로 극동전쟁 중에 노획, 무장해제 과정에서 20만 정에 육박하는 수량을 확보해 종전 후 한동안 1.5선 장비로 쓰이다 민간에 불하된다.

    여기에 한국 해군의 통상파괴전에 시달린 일본이 아예 탄을 현지에서 보급할 요량으로 용산에 30년식, 6.5mm탄 제작 설비와 숙련공을 들여와 조병창을 꾸려 놓았다 전면패주 과정에서 고스란히 한국 손에 넘어가버리는 대박이 터져 한국은 뜻하지 않게 일본 다음으로 일본제 소총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된다. 군에서는 밀려났으나 민간에서는 호신용으로 인기가 좋아 미쓰이 사와 협력해 인력과 기계 설비를 보충해 매월 10만발 6.5mm 탄환을 생산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 M16 강습소총/강습기병총
    1910년대 초반 초도양산된 신형 개인용 자동화기. 권총탄을 사용하는 기관단총을 보급하자니 자동화기와 상성이 안 맞는 탄약[22]을 사용하는 리볼버를 제식으로 사용중이고[23], 아예 현대식 돌격소총을 만들자니 화력에 비해 과도한 중량[24]이 나올것을 우려한 주인공이 절충안으로서 실 역사의 M2 카빈을 먼저 선점했다. 군부 예산이 부족한 관계로 주인공의 장인어른이 운영하는 민간 기업인 홍익 정밀과 미국 총기설계자, 현지 협조를 위한 외국 총기 기업 윈체스터 사 섭외를 통해 제품화에 성공했으며, 실제 역사의 M2 카빈과 달리 사용탄약의 형상이 보다 소총탄에 가깝게 개선되었다.

    강습보병대에 선지급되어 1914년 장작림 토벌에서 실전성을 인정받았고 1차 대전 참전이 확정된 1915년 예정보다 빨리 대량 생산에 돌입한다. 본래는 1916년부터 본격 생산될 예정이었기에 군 제식명은 M16. 홍익정밀에서 붙인 상품명은 최초 독자모델 총기라는 의미에서 M1.
  • 콜트 뉴 서비스
    대한제국군의 제식 권총. 작중 물주 포지션인 최씨 어르신의 회사 "홍익정밀"에서 라이센스 생산을 맡는다.
    의화단 사건을 대비하여 강습보병대대 전원에게 지급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지급되고 있다.
  • 맥심 기관총
    대한제국군은 이를 지방군에는 여단에 6정 씩, 중앙군(근위사단, 강습보병연대, 기병연대)에는 대대당 6정씩 배치하였다.
    1900년대 초 당시에는 여단, 사단에나 1~2정이 배치되는게 평균임을 감안하면 매우 많이 편제된 것이며, 이를 통해 침략한 일본군을 갈아버린다.
  • 마드센 경기관총
    세계 최초로 실용화 된 경기관총. 강습보병연대와 기병연대에서 중대에 6정 씩 보급된다.
  • 1897년식 75mm 야포
    프랑스제 75mm 야포. 세계 최초로 주퇴복좌기를 장착한 야포이다. 대한제국군의 주력 야포로 활약한다. 극동전쟁 이후 개량을 거쳐 18도에 불과했던 포각이 45도까지 늘어나며 부족했던 사거리와 전술 유연성을 챙겼다.
  • 31년식 75mm 야포
    일본군의 주력 야포. 주퇴복좌기가 없는 구식화포로 분당 2발이라는 느린 발사속도를 가졌으며, 이러한 스펙 차이로 인해 포병싸움에서 밀리게 된다.
  • 1913년식 105mm 야포
    프랑스의 슈나이더 사가 제작한 105mm 야포. 슈나이더 사는 원래 프랑스군 도입을 노렸으나 프랑스군이 이를 도입하지 않자 새로운 고객으로 대한제국을 골랐으며, 마침 화력보국[26] 이라는 이름하에 건실한 포병을 건설하고자 하는 의지와 맞물려 도입은 몰론 아예 공장을 차려 라이센스 생산까지 하게 되었다. 특이하게도 김시혁 본인이 초도도입량을 2분의 1로 줄이는데 찬성하였는데. 대한제국군이 이를 재대로 운용할 교리, 기반[27]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 수류탄
    보병싸움의 핵심중 하나. 마찰점화식 신관을 이용한다.
    참호선으로 진입해오는 보병들을 처치하거나 백병전 중 집어던져서 적의 진형을 깨부숴 이점을 상실케 하는 등 큰 활약을 한다.
  • 척탄통
    일본군이 2차대전에서 사용한 척탄통과 유사한 무기체계. 포탄은 수류탄의 마찰신관을 충격신관으로 교체한 것을 사용한다.
  • 박격포
    2부 프롤로그에서 시안이 등장했으나, 대량 생산은 아직이라며 잠깐 언급된다. 1차 대전 참전을 목전에 두고 철모, 방독면 등과 함께 대량 생산에 착수한다. 구경은 60mm와 80mm.
  • 윈체스터 M1897
    의화단 사건때 공사관 경비대가 사용. 시가지에서 강력한 근접화력으로 의화단과 폭도들을 막아내거나 길을 뚫는데 쓰였다. 깨알같은 슬램파이어 묘사가 백미.
  • Auto-5
    반자동 산탄총. 제식화기는 아니지만 징발한 총포상에서 가져온 오토-5들이 백병전, 시가전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김시혁이 M16 개발을 위해 장인을 찾았을 때 언급된 바에 의하면 포수와 순검들에게 인기만점으로 민간 총포시장에선 가장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 아퀘부스급 구축함
    프랑스제 구축함. 배수량 323톤의, 현대 기준으로는 대형 고속정 수준의 체급이지만 어엿한 정식 군함. 주포는 러시아 해군과 규격을 통일해 75밀리로 강화했으며 외에도 47밀리 속사포 6문과 15인치 어뢰발사관 2문으로 무장하고 있다. 1900년대 초반 시점에서는 상당한 고속인 최대시속 28노트로 항해가 가능하다. 한국해군은 6척을 도입하여 운용하고 있다.
  • 보로디노급 전함
    러시아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본디 대한제국 해군은 33함대라는 함대구축 계획을 세워 방호순양함을 우선 도입해 거함 운용법을 익히며 서서히 전함을 도입하려 했으나 생각보다 빠르게 도입이 되었다. 그 과정이 기가 막힌데 일본이 극동 전쟁 중 자신들이 격침시킨 제1태평양함대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4척을 건져서 수리해 쓰자 러시아에서 전함 반환을 요구하며 충돌이 있었는데 이때 고종이 끼어들어 저 전함 4척의 일본행을 묵인하는 대신 러시아가 보로디노급 전함 1척을 대한제국에 팔아달라고 요청한 것. 당연히 원래 같다면 못 먹는 감 찔러나보자는 거지만 주변 상황이 기가 막히게 돌아가며[28] 실제 전함 도입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보로디노급 전함 중 3번함인 오룔이 대한제국으로 들어와 충무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6. 평가

대체역사와 밀리터리를 조합해 인기를 얻은 신쥬신 건국사, 한제국건국사, 명군이 되어보세(2부 한정)의 직계 후배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군사 작전이나 장비 제원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상세하고 반대급부로 진행이 느리다는 특징이 정확히 일치한다.

사이다, 빠른 진행, 역사 밈 활용이 기본 메타가 되고 일정 수준 테크가 올라가면 스노불 구르듯 굴러가 성공이 보장되는 2020년대 대역물 흐름에서 벗어난 이단아로 제국주의 시대에 신생 국가로서 살아남는 다는 것이 얼마나 벅찬 일인지 숨이 턱턱 막히는 전개로 보여준다.

대역물을 비롯해 역사 기반 창작물에서 대개 아군 내지 동정적으로 다뤄지는 동학농민군은 창작물에서 의도적으로 쉬쉬되는 그들의 어두운 면[29]을 지적하며 1라운드 보스로 활용된다.

대한의 신묘한 외교에 갈라쳐지며 이권 퍼주는 멍청한 열강은 본작에 존재하지 않는다. 외교에서 헤매는 건 사대질서에 익숙한데다 경험있는 외교 가문을 배출하지 못했으며 비밀외교의 생리에도 어두운 대한이다. 자기 체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비둔한 열강도 없다. 2류 열강은 열강 중에서 2류일 뿐, 신생 국가 따위는 전력을 집중하면 얼마든지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수 있는 강력한 국가들이다. 러시아는 전력을 모을 시간이 생기자 대군은 병법이 필요없다는 격언을 현실에 구현해냈고,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조선군을 몇 번 참관한 것만으로도 군사 개혁에 성공해 약군 밈을 가볍게 던져 버린다. 일본은 정말 치가 떨릴 정도로 교활하고 치밀한, 심지어 꾸준히 성장하는 적이다.

황실 - 내각 - 군부의 3대 축 중 고종은 단순히 무능한 트롤러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품고 500년 왕조라는 강력한 정통성을 휘두르는 노회한 정치가이다. 그래서 주인공 김시혁의 힘으로 그를 견제할 순 있어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각은 주인공을 무한히 신뢰하는 단순한 예스맨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세력과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대립 세력[30]에 가깝다.

주인공 김시혁은 언제나 뛰어난 능력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만 군사 이외에 분야에서는 완전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그나마 주인공이 통제 가능한 군사 분야에서마저도, 절대적인 국가의 체급 차이가 워낙 크다보니 이로 인해 쉴새없이 위기를 느끼게 된다.

이처럼 사이다를 한 잔 주면 고구마는 대여섯 개 먹이는 작품인데 그럼에도 인기를 얻는 비결은 선배들을 뛰어넘은 성취 덕분이다.

과거 밀리터리 요소가 강했던 대역들은 저마다 한계가 분명했다. 작가는 자신보다 똑똑한 인물을 만들 수 없고, 등장인물은 명장이라도 작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기 박람회를 열어 병기 스펙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늘어 놓고 주인공 혹은 일행이 제작한 신무기로 일방적인 전투를 강요하는 전개가 대부분이고, 여기에 죽음을 불사하는 감투 정신과 적들의 감탄사를 섞어 부실한 전술 묘사를 가렸는데[31] 이러면 작품이 길어질수록 전개와 묘사가 단조로와 진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후대 대체역사물은 묘사가 어려운 전술 분야를 간결하게 줄이고, 대신 대전략과 정치 분야에 집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장교 출신 작가가 집필한 본작은 선배 작품들이 뭉개고 넘어간 전술 묘사를 지독할 정도로 세세하게 직조해 병기 우위가 아닌 전술의 우위로 승리하는 명장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상세한 전투, 전술 묘사에 있어서 본작에 비길 작품은 한국 대체역사물을 통틀어도 없다.

물론 전개가 지독히 느린 만큼 하루에 한 화씩 연재했다면 독자가 전술 묘사에 감탄하기 전에 전부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이를 보완한 것이 독자들이 고라니식 강습연재, 제파식 연참이라 부르는 연참. 회당 평균 글자는 6100자로 대체역사 기준으로는 평균 이하 수준[32]이지만, 5개월간 343화 연재, 주간 평균 연재 횟수 11.4회라는 엽기적인 연재 속도 덕분에 평균치로는 대체역사 작가는 물론[33] 모든 장르의 웹소설 작가들을 통틀어 봐도 최상위권이다. 별 이유 없이 2~3연참을 올리는 건 흔한 일이고, 내용이 고구마로 읽힐 수 있거나 엔딩이 가까워서 급전개가 필요하면 4~5연참을 달려 느린 전개를 보완한다.

대체역사물 통틀어 과거인들의 활약과 역할 분배가 가장 잘 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김시혁은 분명 명장이지만 결코 전지전능한 인물이 아니며 판세를 잘못 읽거나,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점을 지적하고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는 건 과거인들의 몫이다.

1부 완결 기준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은 문장력이 꼽힌다. 처녀작인 점도 있고, 잦은 연참 때문에 퇴고가 잘 되지 않는 것인지 문장 구성이나 배치가 어색할 때가 제법 있다. 2부에선 줄었지만 1부에선 접속사로 '뭐'를 남발하는 경향도 굉장히 심했다. 특히 의화단 진압 파트에선 한 문단 걸러서 '뭐'가 튀어나와 집중하면서 읽으면 굉장히 거슬린다. 또한 등장 인물의 대사에 화려있고 강한 수식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ex: 해군의 가능한 한 멋지게 죽을 전장을 찾는 것 / 소제목으로 쓰인 스당과 아우스터리츠) 한두 번 써서 임팩트를 주는 건 괜찮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지나치게 남발해서 오히려 유치하게 들리는 점도 고쳐야 할 점.

7. 기타

  • 군사 부분에 대한 고증이 매우 뛰어나다. 작가 본인이 대역갤에서 연 Q&A에 의하면 공보정훈장교 출신[34]이라고 하며, 그걸 감안하더라도 전술제대의 운용이나 움직임 같은 디테일이 상당히 치밀하다. 고증에 사용하는 자료 또한 범상치 않은데, 문피아의 어느 독자가 '수류탄을 풀밭에서 어떻게 굴리느냐', '고작 20m 거리에서 투척이라니 아군까지 죽을 일 있냐' 라며 작가에게 미필이냐는 댓글을 남기자 예비역 중위 출신이라는 말과 함께 6.25 전쟁 당시 한국군이 작성한 각종 전투상보와 미8군에서 저술하고 육군본부에서 번역한 자료, 중국 측 공간사 심지어 노획한 북한군 교범까지 들고와서 수류탄 운용교리를 설명하며 상대를 완전히 침묵시켰다. 이후 자잘한 고증 시비, 특히 군사적 고증에 대한 시비는 거의 나오지 않는 편이다. 이 사건으로 고증 측면에 있어서 제 2의 까다롭스키라고 불리기도 한다.
  • 필명인 앙금고라니의 유래는 작가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KCTC 훈련 도중 사단에서 나온 위문품인 앙금빵을 고라니가 훔쳐먹은 것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 1부에서 신생 대한제국 해군이 미래인을 놀라서 식겁하게 하는 행보를 자주 보이는것이 은근한 개그요소이다. 창군 직후 전대 주둔지 선정 시점에서부터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뤼순항 봉쇄로 인한 전멸을 예상하는 안목을 보여주는가 하면, 프랑스에서 도입한 구축함[35] 6척에는 고종을 씹고 자체적으로 실제 한국해군의 백두산급 PC함 함명을 순서까지 맞춰서 붙였고, 일본과 전쟁이 벌어진 직후에는 군 수뇌부 회의에서 "이제 우리 대한 해군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가능한 한 멋지게 죽을 전장을 찾는 것 뿐" 이라는 에리히 레더 제독의 발언을 수십년 앞서 먼저 말하기도 했다. 전쟁 후반에도 해군이 반격작전에 크게 활약하는데, 작전계획 내용이나 작전명이 톰 클랜시의 소설 붉은 폭풍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라 주인공과 독자들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 표지의 복장은 대한제국이 아닌 조선 말 1880년대~1890년대에 존재했었던 친군영 쪽의 복장이다. 아마 주인공의 최초 빙의시점이 1894년이고 이때 주인공의 소속이 친군장위영이었으며 표지 배경 시점으로 보이는 1차 쿠데타도 1895년이라 칭제선언을 하기 전이기 때문에 아직 건국되지 않은 대한제국군복 대신 친군영 복장을 입힌 것으로 보인다.
  • 원역사의 친일파와 독립군이 함께 조국을 위해 싸우는 if 전개가 흥미로운 작품인데 기준은 저항하다 회유되었는가, 처음부터 박쥐였는가로 갈린다. 조동윤, 민영기, 어담처럼 처음엔 저항하다가 나중(대부분 을사조약 이후)에 회유된 이들은 초심 잃을 일이 없으니 바뀐 역사의 수혜자가 되어 애국자가 되고, 이두황, 이진호 같이 처음부터 친일파였던 이들은 얄짤없이 처리된다.

[1] 경기도의 진위대 3여단을 제외하면 정규군 부대가 없어서 관서, 관북은 물론 서간도와 북간도 병마까지 전부 통솔하는 양서순무사 김시혁의 권위가 훨씬 높았다.[2] 작중 양무호는 성능은 보잘것 없는 주제에 연료인 석탄 소모량은 매우 커서 전력 부족에 시달리던 대한제국에서도 운용을 포기하고 그냥 항구에서 놀고 있었다. 오죽하면 원산 상륙작전에서 1회용 병력 수송선으로 활약한걸 두고 '군밤의 혜안(...)'이라고 할 정도다...[3] 현지 게릴라들과 교전 및 콜레라 발생으로 3천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게릴라 진압한다고 혼춘 일대에서 학살 행위를 벌이고 열악한 보급을 보충한답시고 북청, 성진, 경흥, 함흥 등지에서 과도한 징발을 해 함경도 사정까지 악화시킨다.[4] 엄밀히 따지면 제2차 쿠데타 이후 정권을 장악한 테크노라시가 전후에도 비상 대권을 놓지 않은 탓이 크다. 황제의 신임에 기반한 내각임에도 불구하고 황제를 배제한 채 국정을 주도하는, 집권 정당성 및 명분이 현저히 부족한 내각이기에 실권을 상실했던 고종이 여론을 업고 공작을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5] 해당 조건은 내각이 제시한 것이기에 고종에게 책임을 묻기는 애매하다.[6] 김시혁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3가지 있다고 하는데 2부 도입부까지 공개된 건 군인이 되겠다는 딸의 말을 흘려들은 것, 오스트리아-헝가리 무관단에게 대한군 교리를 전수해준 것 2가지.[7] 다만 도조 히데키도 최종 결정권자로서 한계를 보였을 뿐 의외로 사단장 같은 직위에 있을때는 오히려 참군인이라 불려도 될 정도로 유능한 모습을 보였다. 즉, 도조 히데키는 능력이 아예 없는 무능아라기 보단 사람이 자기 능력보다 더한 위치에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로 볼 수 있다.[8] 물론 주인공은 러시아의 모신나강을 들이기 위해 딱히 도입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경쟁자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 일단 프로모션은 들어봤다. 이후 고종의 독단으로 인해 선계약이 체결되면서 곤혹을 치르나 30년식 소총 계약금은 고종의 사비로 낸다는 조건으로 계약이 대충 성사된다.[9] 흔히 생각나는 무작정 닥돌이나 열화된 일본식 버전이 아닌, 포슈가 주창하던 대로 재대로 된 교리로 이식된다.[10] 자본을 기반으로 미국 정계에 로비를 하며 친한파 정치인 세력 구성에 한 몫을 했다. 일본 역시 한국 광산업을 꽉 쥐고 있는 그를 포섭하려 했으나 지금 나보다 돈 많은 건 한청일 삼국의 지도자들 뿐인데 겨우 그 돈으로 나를 포섭하려고 하냐며 쿨하게 무시했다.[11] 의화단 운동 당시 남부연합 국기를 걸어두었다가 미군과 시비가 트여 김시혁이 중재하는데 고생했고 하코트에게 일침을 먹이기도 한다.[12] 정확히 말한다면 캐나다 국적이지만 1부의 배경인 동학 농민 혁명~러일전쟁 시기 캐나다는 자치령이 되어서 내정 자치권은 있었지만 외교권과 군사권은 영국이 가지고 있어서 완전한 독립국이 아니었다. 그리고 매켄지가 죽을 때도 캐나다는 독립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매켄지의 국적은 영국 국적이라 할 수 있다.[13] 이때 주한 영국영사가 멋대로 종군 기자단 이탈해 한국 취재하면 바로 체포한다고 엄포를 놓자(영국은 일본의 동맹이었기 때문.) 잡을테면 잡아보라는 패기를 선보인다.[14] 정확히 말하면 직접 지원해주는 건 일본의 기업인 미쓰이 물산으로 한국은 직접 지원할 수단을 미쓰이 물산에 지급해 세탁 과정을 거친다.[15] 포병학교 교도대대 1개 포대, 중앙군 4개 대대, 지방군 6개 대대[16] 실제 러일전쟁 중후반경에야 러일 양국 포병에서 지형지물을 끼고 엄폐한 간접사격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며, 이러한 전훈은 독일군같은 일부 열강 육군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1차대전 개전시점에서 이미 상당히 보편화된다.[17]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동전 교리에 전격전이라는 이름을 붙인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출정 연설을 언론이 기사화하며 편집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실체없는 조어이다.[18] 이와중에 일본은 정신을 못차렸는지 한반도를 이익 지대로 설정하려고 바득바득 애를 썼지만 비테 선에서 컷됐다.[19] 이때 일본의 목적은 일본군의 만주 주둔이었다. 일본은 한국에 동양척식회사 합자를 제안하고, 그 과정에서 만주에 적잖은 일본 개척민들을 보냈는데, 그들이 큰 피해를 입으면 자국민 보호를 명분삼아서 일본군을 만주에 주둔시킬 명분을 얻으려는 계획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본 개척민들이 이미 엄청난 피해를 본다는 사실은 신경쓰지 않았다. 애시당초 개척민의 대부분이 불순분자들로 어차피 일본 내에서도 범죄자 취급받을 이들이라 거리낌이 덜했던 것으로 보인다.[20] 이건 달리 말하면 한반도와 남만주 내부에 그렇다할 정보망이 없다는 이야기다. 즉, 정보전에서 한국에게 사실상 패하고 있는 것.[21] 정황상 이를 밀어준 위안스카이의 북양 정부가 신문을 검열해 진실을 감춘 것으로 보인다.[22] 당시 리볼버들은 구조적인 이유로 림드탄을 사용했다.[23] 이 때문에 기관단총을 도입해야한다고 기존 권총탄과 위력 차이도 거의 없는 신형 권총탄을 별도로 도입하거나, 아니면 멀쩡히 쓰고있던 리볼버를 사온지 몇년 되지도 않았는데 자동권총으로 대체하자고 하기엔 예산의 압박이 심했다.[24] 최초의 돌격소총으로 알려진 StG44의 무게가 5kg에 육박하고, 절삭가공으로 제작하던 초기형 AK-47도 4.3kg이 나간다. 대한민국 제식소총 K2 소총의 무게가 3.3kg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무거운 것.[25] 당시에는 기관총을 포병이 운용했기 때문에 총이 아닌, 포라고 불렀다.[26] 강력한 화력이 부족한 인력을 매꿔주고, 인명손실을 줄여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이 들겠지만 이를 도입하지 않을때 전쟁에서 일어날 피해에 비하면 적을것이라는 논리에 의해 생겨났다.[27] 한국전을 예시로, 105mm 야포 대대를 재대로 운용하기 위해선 차량이 최소 50대 이상이 필요하며, 자동차 기술이 아직 미비한 시대이기에 이보다 더 많은 차량이 필요할텐데 대한제국이 이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 군마로 수송하는 방안도 있지만 중포를 무리하게 견인하다 폐사해버린 것을 예시로 들며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28] 당시 드레드노트급 함선이 등장하며 러시아 역시 드레드노트 도입을 위해 준비중인 상황에서 남아있던 보로디노급 전함들이 애물단지가 되가고 있던지라 빠르게 처분하길 원했고 마침 태평양에서 활동할 제2중대의 개념으로 우방인 한국 해군을 강화시킬 명분도 있었다. 거기다 나머지 열강들도 전함 1척 가지곤 균형이 깨지진 않을거라 판단했다. 그나마 반발할 여지가 있던 일본 같은 경우에도 당장 전드레드노트급 4척을 얻은데다 어차피 대세는 드레드노트급이 될테니 한국이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1~2척 갖는다 해도 개의치 않는다고 본인들 입으로 직접 말하기도 했다.[29] 천우협과의 협력, 김개남의 수상한 행보, 관군보다 나을 것도 없는 민간인 약탈과 행패 등[30] 심지어 작중 조선은 일본 제국을 비웃을 자격이 없다거나, '동방의 프로이센'이라는 것이 군사뿐 아니라 정치구조까지 따라가 버렸다는 댓글까지 있을 정도.[31] 이 방면의 선배는 데프콘을 집필한 밀리터리 소설가 김경진. 윤민혁슈타인호프는 직간접적으로 김경진의 영향을 받았다. 셋 다 상당한 내공이 있는 밀리터리 매니아기는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전문가라고 하기는 어려웠다.[32] 대체역사 기준으로 평균 이하라는 것이지, 웹소설 전체 기준으로는 평균 수준은 된다.[33] 기존의 유명 대체역사 작가 중 여기에 비견될 만한 인물은 빠른 연재로 유명한 리첼렌이나, 주5일 연재를 꼬박꼬박 지키면서 회당 평균 11000자 이상을 찍어내는 까다롭스키 정도뿐이다. 쿠데타 작가가 1화당 용량은 평범하지만 불규칙하게 연참을 자주 하는 편이라면, 리첼렌은 초반에 매일 2연참 이상씩 하면서 엄청난 물량을 쏟아내다가 100화 즈음 해서 안정적인 주5회 연재로 넘어가고, 까다롭스키는 연참을 잘 하지 않고 주 평균 5회 연재를 꾸준히 지키면서 1화 평균 글자수가 아주 많은 타입이다.[34] 대체역사에 필요한 전쟁사 쪽 전공자는 보통 정훈 특기로 배정되며, 정훈장교는 부족한 TO를 채우는 만능 장비 취급을 자주 받는다.[35] 현대의 고속정급 체급에 불과한 소형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