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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칸젤로 코렐리 Arcangello Corelli | |
얀 프란스 반 두벤 작, 1713년경 | |
출생 | 1653년 2월 17일 |
교황령 푸지냐노 | |
사망 | 1713년 1월 8일 (향년 59세) |
교황령 로마 | |
직업 |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
서명 |
▲ 합주 협주곡 Op.6 No.4 전악장. 연주는 보이스 오브 뮤직. |
▲ 바이올린 소나타 Op.5 No.3. 바이올린에 레미 보데(Remy Baudet) |
... (코렐리의 음악의) 전체적 분위기는 무척 웅장하고, 엄숙하면서도 경건해서 그에 대한 모든 비판을 잠재우기 충분했다.
― 찰스 버니(Charles Burney)
― 찰스 버니(Charles Burney)
코렐리만큼 열정적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이는 본 적이 없다. 그의 눈은 종종 불처럼 붉게 타올랐다.
― 프랑수아 라게네(François Raguenet), 『음악과 오페라에 대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비교Parallèle des Italiens et des Français en ce qui regarde la musique et les opéras』 中, 1702년
[clearfix]― 프랑수아 라게네(François Raguenet), 『음악과 오페라에 대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비교Parallèle des Italiens et des Français en ce qui regarde la musique et les opéras』 中, 1702년
1. 개요
아르칸젤로 코렐리는 이탈리아 지역의 바로크 기악곡 작곡가이다. 중기 바로크 시대에 이탈리아 기악곡 음악세계를 크게 넓힌 인물로 서양음악사 최초의 바이올린 비르투오소로 평가받으며, 바이올린의 연주기술과 예술성을 한차원 높은 경지에 올려놓은 인물이다.당시에 '우리 시대의 오르페우스'라는 칭송을 받았으며 현재에도 기악곡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중요한 음악가로 인정받고 있다. 명성에 비해 그가 남긴 작품 수는 의외로 적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음악사에 남긴 족적은 상당히 크다.
그가 남긴 곡은 모두 현악기를 위한 기악곡이며 성악곡은 단 한 곡도 쓰지 않은 특이한 이력이 있다. 대중적으로는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 '라 폴리아(La Folia)'가 유명하다.
2. 생애
로마의 피에트로 오토보니 추기경[1] |
코렐리는 근처의 성직자로부터 처음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십대시절부터 바이올린을 꾸준히 공부했다. 1666년에 당시 기악음악의 중심지였던 볼로냐로 이주해서 여러 저명한 음악가들에게 음악을 배웠는데 코렐리는 특히 바이올린에 심취해 있었다. 여기서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1670년에는 17살의 어린 나이로 볼로냐의 아카데미아 필라르모니카(Accademia Filarmonica)에 입학했다.
여기에 입학한 후 몇년간의 코렐리의 행적은 불확실한데, 행적이 확실히 확인되는 1675년에 코렐리는 이미 로마에서 볼로냐의 코렐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1675년 로마에 있는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San Luigi dei Francesi) 성당의 제 3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되며 이듬해에는 제2 바이올린 주자로 승격된다. 1677년에는 현재까지 확인된 그의 첫 작품인 '바이올린과 류트를 위한 소나타'가 작곡되었다.
코렐리는 로마 고위 성직자들을 위한 연주회를 여러 차례 개최하면서 입지를 굳혔다. 코렐리는 거장 작곡가들의 여러 작품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는데, 대표적으로 1676년 알레산드로 스트라델라의 오라토리오 "성 요한 세례자" 의 초연때에 바이올린 주자로 연주에 참여했다.
코렐리 당시에는 오늘날과 교향악단과 같은 개별적인 음악단체가 없었으며 때문에 기악 연주자들은 일종의 궁정음악가가 돼서 유력 가문 소속으로 활동하거나 음악회가 개최될 때 개별적으로 보수를 받고 연주에 참여했는데, 코렐리는 최초로 연주자들로 조직된 기악 앙상블[2]을 조직하여 로마의 유력자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았다.
1679년에는 스웨덴 왕위를 양위하고 로마에 정착한 크리스티나 여왕의 개인 악단에 들어갔고 자신의 첫 작품집 Op. 1을 여왕에게 헌정한다. 이후에 로마의 저명한 베네데토 팜필리 추기경이 주최하는 연주회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이곳에서 여러 작품을 선보인다. 1687년 7월 추기경의 정식 음악 감독으로 채용되었고 추기경궁 안에 자신의 방도 가지게 되었다. 이후 팜필리 추기경이 볼로냐로 옮겨가자 이번에는 피에트로 오토보니 추기경과 가까워지게 되며 자신의 작품을 헌정했다. 1706년에는 교황청 소속의 문학 아카데미(Pontificia Accademia degli Arcadi)의 정식 멤버가 되었고 1709년에는 추기경의 음악감독으로 정식 임명된다.
44세의 코렐리. 휴 하워드 작, 1697년 |
2.1. 말년
1702년 코렐리는 오페라 연주를 위해 나폴리로 갔게 됐는데 이곳에서 코렐리의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코렐리는 나폴리의 연주자들의 수준을 얕잡아보고 로마에서 두 명의 연주자들을 데리고 나폴리로 갔는데 이 나폴리 연주자들은 어려운 기교 패시지를 코렐리보다 더 훌륭하게 해냈다고 한다. 다만 이 이야기는 야사에 가까우며 진위여부는 확실치 않다.[3]그는 동시대 인물인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나 주세페 토렐리 등과 교류를 나누었으며, 제자들 교육에도 힘을 썼는데 이들 중에는 바이올린의 거장으로 유명해진 프란체스코 제미니아니와 피에트로 로카텔리도 있었다.[4] 또 음악을 공부하러 로마에 온 젊은 헨델과도 교류했는데, 헨델은 코렐리의 정식 제자는 아니었지만 그에게 많은 조언을 받았으며, 이후 작곡된 헨델의 기악곡에서는 코렐리의 영향이 많이 나타난다.
코렐리는 1710년대 접어들면서 건강악화로 고생했으며 결국 1713년 1월 5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코렐리의 시신은 판테온에 안치되었으며 평생 독신으로 지냈기 때문에 그가 남긴 꽤 많은 재산은 자신의 친족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상속되었다.
코렐리 사후 음악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고 작품집이 출판됐는데 바로 12개의 합주협주곡집 op.6(12 concerti grossi, Op. 6)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
3. 코렐리의 음악과 작품
코렐리는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종교음악 등의 작곡에 주력했던 다른 이탈리아의 작곡가들과 달리 오직 기악곡, 특히 바이올린을 위한 음악에 헌신한 작곡가였다.[5] 코렐리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중 한명이었으며 다양한 바이올린의 연주법과 작곡법을 발전시키고 확립시킨 인물이다. 그는 데타셰나 마르텔레, 메사 디 보체[6]같은 현악기 연주법을 고안했으며 장식음을 본격 도입했다.전술한 바와 같이 코렐리는 당대의 다른 작곡가에 비해 매우 적은 작품을 남겼는데, 생전에 5개의 작품집을 출판했고 사후에 한개의 작품집이 더 출판됐다. 작품 목록은 아래와 같으며 기타 발표되지 않은 작품이나 미완성 악보가 몇곡 남아 있다.
Op.1 - 트리오 소나타(12개의 교회 소나타), 1681년
Op.2 - 트리오 소나타(12개의 실내 소나타), 1685년
Op.3 - 트리오 소나타(12개의 교회 소나타), 1689년
Op.4 - 트리오 소나타(12개의 실내 소나타), 1694년
Op.5 - 바이올린 소나타(6개의 교회 소나타, 6개의 실내 소나타), 1700년
Op.6 - 12개의 합주협주곡, 1714년
3.1. 합주 협주곡
코렐리는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이라는 장르를 본격 대중화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사실 콘체르토 그로소라는 용어와 양식은 코렐리가 아니라 선배였던 알레산드로 스트라델라가 처음 사용했으며 코렐리의 합주 협주곡에서도 스트라델라의 영향이 많이 나타난다.[7] 하지만 스트라델라의 합주 협주곡이 일종의 실험적인 작품이었다면 코렐리는 합주 협주곡은 바로크 후기를 대표하는 기악곡 양식으로 정착했고 이후 많은 후배 작곡가들이 이 합주 협주곡 양식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남겼다.안토니오 비발디는 1711년에 코렐리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유명한 작품집《조화의 영감》(Op.3)을 출판하면서 본격 협주곡 작곡가가 되었다. 헨델은 1739년 코렐리 양식을 본뜬 협주곡집 콘체르토 그로소 Op.6 을 출판한다. 이 외에도 당시의 많은 음악가들이 코렐리 양식을 귀감으로 삼고 작품을 썼으며, 문하에는 피에트로 로카텔리, 프란체스코 제미니아니, 프란체스코 가스파리니 등 이탈리아 후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포진해 있었다. 제미니아니와 바흐 같은 작곡가들은 코렐리의 작품을 다른 악기용으로 편곡하거나 코렐리 작품의 선율을 바탕으로 개작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합주 협주곡은 작품번호 6번(Op.6)의 12곡이 전부로,[8] 수십 ~ 수백곡의 협주곡을 남겼던 후배 작곡가들에 비하면 정말 작품 수가 적다. 게다가 이 작품집은 그의 생전에 출판된 것도 아니며 그의 사후 1년이 지난 1714년에 그간 그가 작곡했던 협주곡을 모아서 출판한 것이다. 하지만 후배 작곡가들이 이 적은 수의 작품에 그토록 열광한 것은 그만큼 이 소수의 협주곡들이 보여준 음악적 성취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집의 협주곡은 1680년대에 씌어진 곡도 있고 1700년 이후에 씌어진 곡도 있는 등 작곡연대가 다양하기 때문에 코렐리의 작곡 수법의 변화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코렐리의 합주 협주곡의 가장 큰 특징은 독주악기 부분(콘체르티노)과 합주 부분(리피에노 또는 그로소)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2~3개의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협주곡이라고 보면 된다. 아래의 예시에 나오는 악보에서 윗부분이 독주부(바이올린 2대와 비올론 첼로)인 콘체르티노이고 아랫부분이 합주부인 리피에노이다.
코렐리의 합주협주곡집 Op.6의 8번 협주곡[9] |
코렐리의 합주 협주곡은 후배 비발디나 로카텔리의 협주곡과는 반대로 독주 바이올린의 기교가 상당히 절제되어 있으며 독자적으로 튀지 않고 최대한 합주 파트와의 어울림을 추구하고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개인기보다는 조직력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더블스톱 기법을 완전히 배제했으며 심지어 솔로 바이올린 독주 파트에서도 초고음역은 가급적 피하고 있다. 그나마 기교라고 하면 독주 파트에서 자잘한 꾸밈음을 활용하는 것 정도. 그 때문인지 비발디의 협주곡이 이탈리아의 열정을 보여주었고 로카텔리의 협주곡이 굇수급의 기교를 과시하고 있다면 코렐리의 음악은 중후하고 럭셔리하고 품격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야말로 훌륭한 마성의 BGM.
바이올린 소나타 Op.5 No.9 2악장 지그(Giga)를 합주로 연주한 것 모 백화점 광고 등에 나온 바 있어 한국인들에게는 대표작 라 폴리아보다도 귀에 익을 것이다. |
이처럼 조직력을 중시하는 코렐리의 작품들은 연주자에게 뜻밖의 난관을 선사하는데, 그의 협주곡은 대위법이 굉장히 괴랄하게 적용되어 있다. 귀로 듣기에는 분명 하나의 성부로 연주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두 개 이상의 성부가 하나의 중심 선율을 연주하는 수법인데, 이 말이 잘 이해가 안된다면 반짝반짝 작은 별》 처음 선율을 바이올린 두 대가 함께 연주하는데, 한 대는 "반, 반, 작, 별" 만 연주하고 다른 한 대는 "짝, 짝, 은" 만 연주한다고 상상해 보자. 이런 특징 때문에 코렐리의 협주곡은 개별 주자들의 기교 자체는 크게 요구되지 않을지라도 손발이 척척 맞는 절묘한 팀워크가 요구된다.
다만 전술한 바와 같이 그의 합주 협주곡집은 다양한 시기에 작곡된 곡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에 작품에 따라 독자적인 특징이 많이 드러난다. 일단 협주곡의 규모 측면에서 작은 현악 4중주급의 앙상블에서부터 오케스트라 수준을 요구하는 경우까지 다양하며 마지막 12번 협주곡의 경우 빠른 악장에서는 비발디가 부럽지 않은 독주 바이올린의 기교가 돋보인다. 또 이 곡에서는 독주부와 합주부가 순차적으로 등장하는데, 이처럼 독주와 합주가 번갈아가면서 등장하는 수법을 리토르넬로(ritornello)라고 한다. 코렐리의 협주곡에서는 아직 리토르넬로가 개념으로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는 않지만 후에 이 리토르넬로가 합주 협주곡의 주요한 작법으로 자리잡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코렐리의 합주협주곡집 Op.6의 12번 협주곡의 2곡(알레그로) |
11번 협주곡도 상당히 특별한데, 2번째 곡인 알르망드에서는 독주파트의 첼로가 시종일관 16분음표의 기교적이고 빠른 패시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아래 영상에서 2분 40초부터 시작된다).
코렐리의 합주협주곡집 Op.6의 11번 협주곡의 1곡(전주곡)과 2곡(알르망드) |
이처럼 코렐리의 합주 협주곡은 콘체르티노-리피에노라는 일관된 체제하에서도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우며, 그 하나하나가 모두 음악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클래식팬 입장에서도 들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한편 코렐리의 협주곡은 바로크 합주 협주곡의 특징 중 하나인 급-서-급의 3악장 체제는 아직 갖추고 있지 않으며 모두 4악장~6악장의 짧은 다악장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마지막에 별도의 코다가 마련된 경우도 있다). 특히 9번부터 12번까지의 네 협주곡은 통상적인 의미의 악장보다는 전주곡으로 시작해서 춤곡인 알르망드(allemanda), 쿠랑드(Corrente), 사라방드(Sarabanda), 가보트(Gavotta)등을 거쳐 미뉴엣(Menuetto)이나 지그(Giga)로 마무리되는 바로크 모음곡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또한 화성 위주로 전개되는 후배들의 협주곡에 비하면 코렐리의 협주곡은 상대적으로 대위법적인 경향이 강하며 2,3,5,7번 협주곡에는 푸가가 삽입되어 있다.
참고로 빠른 두 악장 사이에 느린 악장을 배치하는 3악장 구성은 코렐리의 5년 후배인 주세페 토렐리가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비발디에 의해 이 체제가 확립된다. 전술한 리토르넬로를 개념으로 정립해서 협주곡에 적극 도입한 것도 바로 토렐리와 비발디 이 두 사람이다.
3.2. 트리오 소나타
코렐리는 48곡의 트리오 소나타(Op.1 ~ Op.4)와 12곡의 바이올린 소나타(Op.5)를 남겼는데 이들 작품 역시 합주 협주곡에 버금가는 위상을 갖고 있다.바로크 초기의 작곡가였던 알레산드로 그란디(Allessandro Grandi,1586-1630), 지오반니 부오나멘테(Giovanni Battista Buonamente, 1595-1642), 타르퀴니오 메룰라(Tarquinio Merula, 1594-1665) 등이 이 형식의 선구격인 작품을 남겼다.
트리오 소나타의 형태를 제대로 구현한 최초의 작곡가는 지오반니 레그렌치(Giovanni Legrenzi, 1626-1690)이다. 그는 2~3개의 악기와 통주저음으로 구성된 합주곡에 트리오 소나타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붙였다.[10] 이 때 화음을 넣으면서 반주하는 악기로 오르간을 사용할 경우 교회 소나타(Sonata Chiesa), 비올론 첼로나 하프시코드같은(또는 두 악기의 조합) 악기를 사용할 경우 실내 소나타(sonata da camera)라고 불렀다.
지오반니 레그렌치의 트리오 소나타 "La Cornara" |
레그렌치의 트리오 소나타는 보통 3~5분 정도의 단악장(일종의 칸초네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빠른 악장과 느린 악장을 교대로 배치한 다악장 형식을 도입한 작곡가가 바로 스트라델라이다. 스트라델라의 트리오 소나타와 바이올린 소나타는 연주기술 측면에서도 진일보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코렐리의 트리오 소나타와 바이올리 소나타에서도 합주협주곡과 마찬가지로 스트라델라의 영향이 많이 나타난다.
코렐리의 트리오 소나타 역시 합주 협주곡과 마찬가지로 4~6개의 악장체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당수의 작품이 춤곡 모음곡 형태로 작곡되었다. 악기 구성으로는 공통적으로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로네(violone)가 포함되어 있으며 통주 저음으로 오르간을 사용할 경우(작품집 1번과 3번)는 교회 소나타, 하프시코드 또는 저음 현악기를 사용할 경우(작품집 2번과 4번)는 실내소나타라고 이름을 붙였다. 다만 오늘날에는 교회 소나타를 연주할 때도 오르간 대신 다른 악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래의 영상에서도 오르간 대신 하프시코드를 사용하고 있다.
코렐리의 (교회) 트리오 소나타 Op.3의 5번째곡 |
코렐리의 트리오 소나타가 주목을 받으면서 이 트리오 소나타는 바로크 후기의 대표적인 실내악 장르로 자리잡았다. 많은 작곡가들이 코렐리의 작법을 참고하여 트리오 소나타를 남겼으며 악기 구성도 잠차 다양해져서 바이올린 대신 리코더, 플루트, 오보에와 같은 목관악기를 사용하기도 했고 심지어 트럼펫을 위한 트리오 소나타도 있다. 텔레만의 리코더, 바이올린, 콘티누오를 위한 트리오 소나타
바로크 후기의 대작곡가 바흐와 헨델도 트리오 소나타를 남겼으며, 특히 바흐는 6곡의 오르간 독주를 위한 트리오 소나타를 작곡했는데 왼손과 오른손, 페달이 각각 트리오 소나타의 한 성부를 담당하고 있다. 이 오르간 트리오 소나타는 바이올린 등의 악기와 통주저음으로 편곡돼서 연주되기도 한다.바흐의 오르간 트리오 소나타 BWV 525
3.3. 바이올린 소나타 "라 폴리아"
코렐리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곡으로 12곡 가운데 6곡은 통주저음으로 오르간, 다른 6곡은 저음악기를 사용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12곡 모두 하프시코드나 저음 현악기(또는 이들의 조합)를 통주저음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코렐리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마지막 곡인 "라 폴리아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주제와 22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된 곡으로 그의 음악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코렐리 역시 다른 바로크 작곡가들처럼 한동안 잊혀졌다가 20세기에 복권됐는데 라 폴리아 변주곡만큼은 코렐리 사후에도 잊혀지지 않고 잘 알려져 있었다.[11]
코렐리, 바이올린 소나타 Op.5 12번 d단조 "라 폴리아"[12] |
폴리아(Folia)는 사라방드풍의 느린 스페인 춤곡이다. 이 폴리아가 역사상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15세기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작곡가였던 질 비센테(Gil Vicente, 1465-1536)가 1503년 경에 창작한 '시빌라 카산드라의 행적(Auto da Sibila Cassandra)'이라는 종교극인데, 여기서 폴리아를 노래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1577년 프란시스코 데 살리나스(Francisco de Salinas, 1513-1590)가 쓴 '음악에 대한 책'에서 폴리아는 포르투갈에서 유래했으며 목동이나 농부같은 일꾼들이 여장한 동료를 어깨에 태우고 다니면서 추는 무용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폴리아(광기)라는 이름은 이 춤의 분위기가 상당히 열광적이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하지만 이 폴리아는 기록만 존재할 뿐 악보나 선율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원곡이 어땠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특이하게 이 곡의 화성 진행 방식만은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 폴리아는 초기 폴리아(early folia) 와 후기 폴리아(late folia)로 구분이 된다. 초기 폴리아는 16세기 후반부터 등장했는데 주로 즉흥 연주를 위한 대략적인 화성 전개 방식이었으며 작곡가마다 다양한 리듬과 선율을 구현했다. 초기 폴리아를 바탕으로 곡을 남긴 작곡가로 안드레아 팔코니에리(Andrea Falconieri,1585~1656)나 프란체스코 코르베타(Francesco Corbetta, 1616-1681)가 있다. 프란체스코 코르베타의 폴리아
후기 폴리아는 초기 폴리아에 비해 화성전개가 좀더 정형화 되었으며 사라방드 풍의 멜로디도 갖추어져 있었다. 현존하는 후기 폴리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작곡된 것은 장 바티스트 륄리의 스페인의 폴리아(Les Folies d'Espagne, 1672경)인데, 코렐리의 라 폴리아 주제는 바로 이 륄리의 폴리아가 원조이며 주제와 23개의 변주로 구성되어 있다.
륄리, Les Folies d'Espagne |
주제 뿐만 아니라 변주곡 자체도 원조가 있는데 바로 스트라델라이다. 스트라델라의 바이올린 소나타 1집의 11번째 곡 바이올린 소나타 a단조,'주제와 24변주'를 들어보면 라 폴리아 변주곡이 이 곡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렐리의 라 폴리아 소나타는 일단 발표된 후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라 폴리아 주제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코렐리 생전에 이미 마랭 마레(1701)와[13]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1710) 등의 작곡가들이 이 주제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1705년에 발표된 비발디의 첫번째 바이올린 소나타집(Op.1)의 마지막 12번째 소나타도 바로 라 폴리아를 주제로 한 변주곡이다. 비발디의 라 폴리아 변주곡을 들어보면 코렐리와 레그렌치의 영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코렐리 이후 현재까지 150명 이상의 작곡가들이 이 라 폴리아 주제를 활용해서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영화 배리 린든의 주제곡으로 사용된 헨델의 사라방드,[14] 프란츠 리스트의 스페인 광시곡,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이 있다. 한편 코렐리의 제자 프란체스코 제미니아니는 스승의 라 폴리아 변주곡을 합주 협주곡으로 편곡하기도 했으며 모차르트와 관련해서 잘 알려져 있는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도 라 폴리아 주제를 바탕으로 한 26개의 관현악 변주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제미니아니, 합주협주곡 12번 '라 폴리아' |
안타깝게도 이 라 폴리아 변주곡이 너무 유명한 나머지 코렐리의 다른 바이올린 소나타들이 모두 묻혀버렸는데, 이들 소나타 역시 상당히 중요하고 가치가 높은 작품들이다. 코렐리가 새롭게 고안한 각종 바이올린 연주기법들이 이 바이올린 소나타에 망라되어 있으며 음악적으로도 훌륭하다.
코렐리, 바이올린 소나타 Op.5 10번 F장조 |
4. 여담
- 합주 협주곡 Op.6 No.8 "크리스마스 협주곡". 부제와는 달리 전반적으로는 단조풍의 건조한 분위기이다. 따라서 캐럴 느낌을 기대하고 듣는다면 곤란하다. 실제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성탄의 밤을 위하여" 라는 부제가 붙은 마지막 악장인 6악장[15]에서 비로소 표현된다. 거꾸로 말하면 1~5악장은 사계절용. 듣기
이 협주곡과 비슷한 다른 곡으로는 만프레디니(F.Manfredini)의 합주 협주곡 Op.3 No.12 "축복받은 성탄을 위한 파스토랄" 이 있다. #듣기 그 외에도 피에트로 로카텔리 역시 같은 주제로 합주 협주곡을 썼다. 번호는 Op.1 No.8. 이 곡 역시 마지막 악장이 캐럴로 되어 있다. #듣기 주세페 토렐리의 경우 합주 협주곡 Op.8 No.6이 크리스마스 협주곡이다. 듣기
- 브뤼겔이나 푸생같은 거장들이 그린 명화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후원자인 피에트로 오토보니 추기경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 체구가 작았지만 예의 바르고 겸손하고 화술이 뛰어났다고 전한다. 그가 로마에서 승승장구 하는데는 이런 뛰어난 사회성이 한몫 했다.
- 위작으로 악명 높은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타르티니의 주제에 의한 코렐리의 바이올린 변주곡》 이라는 작품을 썼다. 물론 이 작품은 타르티니와는 하등의 관련성이 없고 코렐리의 바이올린 소나타 Op.5 No.10의 가보트 선율을 전주부분에서 따 온 것은 사실이다. 크라이슬러가 직접 작곡한 것이지만, 적어도 주제선율 자체는 바로크 색채를 짙게 띠고 있으며 나름대로 유명하기까지 하다. 들어보기
- 위에 언급한 크라이슬러는 라 폴리아 변주곡을 바이올린과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하기도 했는데, 원곡을 충실하게 편곡한 것이 아니라 후반부에 카덴차를 삽입하는 등 자신의 연주기교를 과시할 수 있도록 한층 어렵게 개작했다. 크라이슬러의 라 폴리아 편곡 이래저래 원곡과는 상당히 다른 작품인 탓에 현재는 자주 연주되지 않는다.
- 프랑수아 쿠프랭은 코렐리를 기리어 '코렐리 찬가'(Apothéose de Corelli)라는 트리오소나타를 작곡했다.
[1] Pietro Ottoboni, 1667년 7월 2일~1740년 2월 28일. 교황 알렉산데르 8세(1610~1691)의 조카이기도 했다.[2] 오늘날 현악 4중주단이나 이 무지지 합주단과 같은 연주 단체를 생각하면 된다.[3] 코렐리와 관련된 일화 중에는 이처럼 진위여부가 불확실한 이야기들이 많다. 예를 들어 장 자크 루소는 코렐리가 프랑스에 여행왔을 때 당시 프랑스 궁정음악계를 꽉 잡고 있던 장바티스트 륄리가 자신의 입지가 약해질 것을 우려해서 코렐리가 프랑스에서 연주회를 개최하는 것을 막고 빨리 떠나도록 했다는 일화를 전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 역시 진위여부가 불확실하다.[4] 다만 로카텔리의 경우 코렐리가 죽기 직전에 만났기 때문에 오랫동안 배우지는 못했다. 로카텔리 항목 참조.[5] 바로크 시기 볼로냐 악파로 알려진 작곡가들 중에 기악곡 작곡가들이 많다. 이 악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주세페 토렐리와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 등이 있다. 코렐리의 경우도 볼로냐 악파로 분류하지는 않지만 로마에서 '볼로냐의 코렐리'로 활동하는 등 볼로냐 악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6] messa di voce, 일정한 음을 길게 끌면서 천천히 음량을 크게 했다가 다시 음량을 줄이면서 끝맺는 주법.[7] 예를 들어 코렐리 특유의 독주부와 합주부 두 파트로 나누는 협주곡 구성방식도 스트라델라가 원조이다.[8] 다만 그간 발표되지 않은 코렐리의 협주곡 악보 몇 개가 최근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현존하는 코렐리의 협주곡 수는 12개보다는 많다.[9] 이 8번 협주곡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작곡되었다는 이유로 크리스마스 협주곡이라고도 한다. 후술되는 내용 참조.[10] 비발디가 어린 시절에 레그렌치에게 잠깐 교육을 받은 적이 있으며, 그래서 그의 첫번째 작품집인 트리오 소나타 Op.1에서는 레그렌치의 영향이 많이 나타난다.[11] 그런데 이 때문에 한동안 코렐리에 대해 원 히트 원더 작곡가라는 부당한 인식이 생겨나기도 했다.[12] 영상 초반에 연주자가 처음 출판된 악보를 바탕으로 연주하겠다고 이야기한다.[13]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을 보면, 생트콜롱브가 제자로 삼아 달라며 찾아온 마레를 시험하기 위해 마레더러 라 폴리아를 연주해 보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14] 배리 린든의 주제곡은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4번(HWV437)의 사라방드를 관현악 합주용으로 편곡한 것이다.[15] 영상 약 10분 25초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