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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음악 Baroque Music | |||||
{{{-1 앙드레 부이스(André Bouys), 《음악모임》. 캔버스에 유채, 1710년경. | |||||
17세기 ~ 18세기 | |||||
지역 |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 | ||||
언어별 명칭 | |||||
프랑스어 | Musique baroque | ||||
이탈리아어 | Musica barocca | ||||
스페인어 | Música del Barroco | ||||
영어 | Baroque music | ||||
독일어 | Barockmusik |
수많은 바로크 거장들의 오페라가 초연되었던 베네치아 산 사무엘 극장.바로크 음악은 규모가 점점 크고 화려해졌으며, 대중적인 극장들도 여러 곳 지어졌다. 오페라가 나온 시기도 바로크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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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로크 음악은 르네상스 음악이 끝난 1600년경~1750년경의 유럽 음악의 사조로 원래 바로크란 17, 18세기의 예술양식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바로크 음악이라는 용어가 쓰이게 된 일은 꽤 오래되지는 않았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1600년경부터 1750년경의 음악에 대해서도 이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역사적 배경을 보면 정치적으로는 절대주의 왕정으로부터 계몽주의로의 이행을 볼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중상주의, 정신사적으로는 합리주의적·계몽주의적인 사조의 흐름 속에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여러 사회적 상황이 몇 겹으로 겹쳐서 궁정, 도시, 교회 등 세 활동범위를 기초로 하여 바로크 음악을 형성하였다.오페라, 칸타타, 소나타, 협주곡들의 발달을 가져온 바로크음악은 근대음악의 기초가 되었다. 장 자크 루소가 음악의 한 형태를 지칭하게 된 바로크 음악 (musique baroque)라는 용어를 완전히 정착하게 한다. 1768년에 쓴 《음악사전 Dictionnaire de musique》에서 바로크 음악을 '화성적으로 혼란스럽고, 전조와 불협화음이 가득하고, 노래는 굳어 있고 자연스럽지 못하며, 음정도 잡기 어렵고 움직임은 억지스러운 것'이라고 평하였다. 링크, 네이버캐스트 바로크(baroque)라는 단어는 포르투갈어 단어 'barroco'에서 왔는데, 찌그러진 진주, 혹은 '괴이한 형태의 진주'를 말한다. 앞뒤 문맥을 고려할 때 실로 루소는 이 바로크라는 말을 매우 극단적인 언어로 사용한 것이 분명해 보이며, 실제로 그가 바로크 음악을 '괴이하고, 지나치고, 부자연스러운' 음악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유추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미학적으로는 '정서론' 즉 '음악의 궁극목적은 음과 음의 리듬, 멜로디, 하모니, 음정 등으로 모든 정서를 자아내는 데 있다'고 하는 독특한 타율적 미학관으로 뒷받침되었다.
바로크 음악은 시대와 국가로 분류해볼수 있는데, 초기 바로크는 1600년~1630년, 중기 바로크는 1630년~1680년, 후기 바로크는 1680년부터 1750년까지로 분류해볼수 있고, 각 국가의 바로크 음악은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 정도로 분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요즘 들리는 음악의 기법들을 정립한 시대이며, 현대에도 종종 바로크적 작풍을 활용하기도 한다. 클로드 볼링(Claude Bolling)의 《Baroque and Blue》 의 도입 주제라든가,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프랑크푸르트 BGM이라든가 칼 젠킨스가 작곡한 합주협주곡(concerto grosso) 1악장은 심지어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귀에 익은 선율이다. 브라질의 에두아르도 안토넬로(Eduardo Antonello)라는 고음악 연주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종종 르네상스/바로크 음악을 작곡하기도 하므로 바로크적인 작곡법에 관심이 있다면 참고해 보는 것 역시 나쁘지는 않다.
1960년대 중반 대중음악에서 바로크 음악의 요소를 일부 차용한 바로크 팝이라는 장르가 생겨나기도 했다.
2. 새로운 장르
2.1. 극음악
초기의 바로크 음악은 이전 세대인 르네상스 음악이 남겨준 양식, 장르 등과 쟁쟁한 시인, 음악가, 작가, 과학자 등이 모인 피렌체의 협회 '카메라타[1]'가 '모노디 형식'을 만들어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모노디 양식은 독창 성부와 통주저음 성부만을 쓰는 양식[2]을 말하는데, 이 양식으로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기타 성악곡의 기본적 양식이 되는 레치타티보가 생겨났다. 이 레치타티보는 음악적으로 아름답다고 볼 수는 없었으나, 극음악에 필요한 빠른 전개와 스토리 설명등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에 적격이었다.이 모노디 형식을 바탕으로 음악가 야코포 페리Jacopo Peri의 역사상 첫 번째 오페라인 《다프네(Dafne)》[3]가 1598년 피렌체의 카니발에서 상연된다. 뒤이어진 그의 오페라 《에우리디체(Euridice)》가 1600년 10월 6일 앙리 4세와 마리아 데 메디치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하여 피렌체에서 초연되었는데, 기악이 쓰이지 않고 성악과 통주저음만이 쓰인 전형적인 초기 오페라였다. 그는 에우리디체에서 오르페오가 슬픔에 빠지는 부분에서 쉼표를 자주 쓰고, 반음계를 쓰는 등 어느 정도 마드리갈적 요소를 넣었다.
야코보 페리의 두 번째 오페라 에우리디체 초판, 1600. 페리는 그의 오페라에 최초로 통주저음 기법을 사용했다. |
하지만 초기의 오페라는 바로크 음악이라고 부르기엔 약간 애매했는데, 최초의 바로크 오페라라고 부를만한 곡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1607년 작 오페라 《오르페오L'Orfeo, SV 318》다. 오르페오는 페리의 에우리디체에 비해 퀄리티가 엄청난데, 오케스트라 편성만 해도 하프시코드2, 트럼펫4, 트롬본5, 코르네토2, 리코더2, 하프, 비올라 다 감바3, 오르간2, 피콜로 바이올린2, 바이올린2, 비올라2, 첼로, 더블베이스2 , 키타로네3, 팀파니라는 거대한 편성은 현대 오페라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대규모 편성이다. 내용적으로만 보면, 마드리갈 작곡가로 유명했던 몬테베르디답게, 마드리갈이 필요로 하는 극적인 분위기와 코믹한 요소를 몬테베르디는 오르페오에 차용함으로써 오페라의 극적인 효과를 더했다.[4]
몬테베르디의 오페라가 대성공을 거두자 오페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갔는데[5], 그가 오페라에 차용한 요소들은 오페라 같은 세속적인 음악뿐 아니라 오라토리오나 수난곡 같은 요소들에서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몬테베르디는 새로운 양식과 옛 르네상스의 양식을 융합했을 뿐 아니라[6] 극음악에 여러 악기를 반주로 사용해 관현악의 기초를 다졌다는 점에서도 바로크 음악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높은 평을 받는다. 오페라 양식은 점점 퍼져나가 베네치아, 나폴리 등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서 두드러지게 된다.
또한 17세기 초기에는 오페라 양식을 본뜬 칸타타가 생겨났다. 시간이 갈수록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칸타타는 점점 인기있는 장르가 되었는데, 칸타타는 오페라의 음악적 매력을 즐길 수 있으면서도 오페라처럼 막대한 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음악 또한 우아하고 세련되었기 때문이었다. 주로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는 소편성에 높으신 분들의 여흥을 돋우기 위한 세속 칸타타가 많이 작곡되었으나, 독일에서는 거의 예배음악으로 연주될 목적으로 많이 작곡되었으며, 타국 칸타타보다는 규모가 크며, 조금 진지한 분위기를 풍긴다.
2.2. 종교음악
바로크 음악은 르네상스 음악이 추구하던 '균형' 대신 감정표현, 대비 등이 중시되면서 오페라가 만들어졌는데, 이러한 양식들이 물결을 타 종교음악으로까지 들어왔다. 하지만 기악곡과 달리 성악, 특히 교회음악은 중세시대나 르네상스 시대의 대선배들이 여러 가지 주촛돌을 세워놓았기 때문에 교회음악은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게 된다.특히 바로크 초기에는 오라토리오가 확립되었다. 오라토리오는 기도소를 일컫는 말인데, 중세의 천주교 신도들은 오라토리오부터 행렬을 출발해 도시광장에서 복음서와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재현했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 오라토리오의 규모가 커져서 객석과 무대가 만들졌다. 1600년에는 음악 감독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가 이 오라토리오(...)에서 상연하기 위해 《영혼과 육체의 극Rappresentatione di Anima e di Corpo》을 작곡했다. 이 작품을 엄밀히 오라토리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오라토리오의 원형이 탄생한 것이었다[7]
이 형식을 더욱 발전시켜 비로소 오라토리오라고 불릴 만한 곡을 작곡한 사람은 바로 자코모 카리시미였는데, 카리시미는 낭송적인 레치타티보와 장엄한 합창을 추가시킴으로써 오라토리오를 정점으로 이끌었다. 그는 모든 오라토리오를 라틴어로 썼는데, 카리시미의 라틴어 오라토리오는 전 유럽 작곡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카리시미 사후에는 라틴어보다는 이탈리아어 대본이 많아지고, 오페라가 볼 수 없는 기간에 상연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전체가 2부로 되어, 중간에 설교나 휴식을 가졌다. 이러한 오라토리오는 조반니 레그렌치와 알레산드로 스트라델라에 의해 오페라적인 요소가 침투하게 되며 더욱 화려하게 발전한다.
2.3. 기악곡
바로크 시대가 되면 성악곡이 주를 이루던 르네상스 음악과는 달리 기악곡의 위상이 높아졌다. 하여 악기의 수가 크게 늘어났으며, 종교적인 음악에서나 세속적인 음악에서나 악기의 반주가 곁들어짐으로써 기악도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졌다.악기의 연주법도 바로크 시대에 진보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와 함께 여러 기악 장르가 만들어졌다. 이미 이탈리아는 극음악 이외에도 바로크 기악곡 확립에 대한 선구적인 업적을 이루었는데, 바로 소나타와 협주곡의 확립이다. 이탈리아의 거장들은 각각 두 개의 형식을 확립했는데, 소나타는 교회 소나타(sonata da chiesa)와 실내 소나타(Sonata da camera)가 그것이고, 협주곡은 독주 협주곡과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으로 분류했다. 17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작곡가이자 저자인 브로사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위엄 있고 신성한 장소에 어울리기에 교회에서 연주되기 적합한 교회소나타는 주로 느리거나 장엄한 악장으로 시작하고, 그 뒤를 이어 명랑하고 활기찬 푸가 같은 악장이 따라온다. 실내 소나타는 궁정 혹은 실내에서 연주되며 대부부 같은 조성의 다양한 춤곡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주로 전주곡이나 작은 소나타로 시작한다. 그 후 알르망드, 파반느, 쿠랑트 등의 춤곡 혹은 아리아 등이 연주되며, 지그, 파사칼리아, 가보트, 미뉴에트, 샤콘느, 아리아 등이 뒤따른다.
― 세바스티앙 드 브로사르(Sébastien de Brossard), 『음악 사전Dictionnaire de musique』 中
― 세바스티앙 드 브로사르(Sébastien de Brossard), 『음악 사전Dictionnaire de musique』 中
왼쪽: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 e단조, BWV 1023. 보통 전주곡 다음 춤곡이 뒤따르는 실내 소나타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바흐는 전주곡 다음에 알르망드와 지그를 넣었다. 오른쪽: 안토니오 비발디의 첼로 소나타 e단조, RV 40. 느림―빠름―느림―빠름이라는 전형적인 교회 소나타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
또한 유럽 각지의 민속음악과 춤곡을 모아놓은 곡도 크게 유행했는데, 이것을 모음곡이라고 한다. 모음곡의 가장 심플한 형태인 알르망드(Allemande) ― 쿠랑트(Courante) ― 사라방드(Sarabande) ―지그(Gigue) 네 춤의 4악장제로 이루어지는 모음곡 형식은 바로크 중반에 확립되었고, 바로크 후반에 갈수록 모음곡 서두에는 전주곡, 토카타, 환상곡 등이 붙고, 미뉴에트, 부레, 가보트, 파스피에, 폴로네즈 등 여러 춤곡이 추가로 붙는 등 더욱 화려해졌다. 모음곡에서는 다양한 지역의 민속적 선율과 고유 리듬으로 작곡되어 각기 다른 춤곡들이 한꺼번에 어우러져 하나의 곡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등의 시작 부분에는 서곡이 붙었는데, 이것을 신포니아sinfonia또는 서곡[8]Overture이라고 한다[9]. 이탈리아 중기의 본좌 작곡가인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는 서곡을 빠름-느림-빠름의 3부로 구성시켰는데 이것을 이탈리아식 서곡 이라고 하며, 장 바티스트 륄리를 필두로 프랑스 오페라의 서두에 연주된 서곡은 반대로 느림-빠름-느림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신포니아[10]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인기가 높아져, 아예 신포니아만 여러 개를 작곡해 출판하는 작곡가도 있었다. 이 신포니아는 곧 심포니, 즉 교향곡으로 발전하여 고전파 이후를 이끌어나가는 주축이 되었다.
왼쪽: 드레스덴 궁정에서 활약하던 작곡가 얀 디스마스 첼렌카의 세레나타, 《다이아몬드Il diamante, ZWV 177》의 신포니아. 빠름 ― 느림 ― 빠름의 이탈리아 서곡 양식을 취하고 있다. 특이하게 마지막 악장이 3박으로, 고전주의 음악의 교향곡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오른쪽: 게오르크 프레드리만 헨델의 오페라 《아그리피나Agrippina, HWV 6》의 신포니아. 느림 ― 빠름 ― 느림의 형식인, 프랑스 서곡이다. |
3. 특징
3.1. 통주저음
자세한 내용은 통주저음 문서 참고하십시오.바로크 시대에는 반주가 별로 없던 르네상스 음악에 비해 반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는데, 보통 이 반주를 통주저음(Basso continuo)이라고 한다. 여튼 이 통주저음이 바로크 음악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여서, 혹자는 바로크 음악을 '통주저음의 시대'라고도 한다[11]. 이 통주저음은 반주의 저음부를 맡으면서도 타 성부에 해당하는 화성을 보강해주는 역할을 맡았다[12]. 통주저음은 곡 전체의 울림을 풍부하게 하며, 장단조가 뚜렷이 대비된다. 통주저음 파트에는 연주할 화성을 숫자와 기호로 써놓았고, 연주자가 이 기호들을 보고 즉흥적으로 화성을 넣었다.
3.2.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확립
전술했다시피 보다 큰 오케스트라로 발전시키는 데 공헌한 것은 몬테베르디였는데, 그의 오페라 《오르페오》에서 현악기들을 오케스트라의 중심에 두는 등[13] 대규모 오케스트라로의 발전에 획을 그었다.장 바티스트 륄리나 아르칸젤로 코렐리 같은 후배 작곡가들은 몬테베르디가 사용한 현 4부를 오케스트라의 필수요소로 집어넣었고, 화려함을 더하기 위해 금관악기나 목관악기를 더했다. 바로크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많은 악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바로크 후반에 가서는 현대와 비슷한 대규모 편성을 쉽게 볼 수 있었다.
3.3. 셈여림, 템포, 박자, 장/단조의 확립
바로크 시대에는 음악의 속도, 즉 템포tempo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바로크 시대에 중요하게 다루어진 사람의 정서를 구체적으로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한 결과였다. 또한 르네상스 작곡가 조반니 가브리엘리의 《강약의 소나타Sonata pian e forte》에서 처음 쓰인 셈여림이 바로크 시대에는 더욱 널리 사용되었다. 또한 바로크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박자 개념이 완성되었다.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음체계였던 교회 선법은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장/단조 체계로 바뀌었는데, 이 또한 음악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성악 중심의 음악에서 기악이 중요하게 여겨짐에 따라 단순한 화성 체계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7화음, 증6화음 같은 화성들은 음악에 강력한 역동성, 다양한 감정등을 부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크 음악가들은 불협화음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또한 조옮김을 통해 분위기를 전환시키거나 끌어올리는 게 가능해졌다.
3.4. 즉흥 연주
바로크 시대에는 즉흥 연주가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이 시대의 산물중 하나인 통주저음은 베이스 부분을 보충하여 연주해야 할 화성은 숫자나 기호로만 기보했기 때문이다. 특히 건반악기의 경우는 악보를 쭉 보고 연주하면서 즉흥적으로 화음을 채워넣어야 했기 때문에 즉흥 연주가 중요해질 수 밖에 없었다.또한 가수나 연주자들에게는 악보에 자기 자신만의 장식을 첨가하여 연주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는데, 이것은 작품에 대하여 창조적인 공헌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화려한 장식음과 연주법이 여럿 개발되었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건반 독주곡에 부점을 넣어주는 노트 이네갈(Notes inégales) 주법이 유행하던 것도 이때의 일. 따라서 바로크 시대에는 실제 악보에 씌여진 것과 다르게 연주되곤 하였다. 그러나 같은 바로크 시대라 할지라도 연주 관습은 시기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났다.
3.5. 정서론
르네상스 시대에는 낱말의 뜻을 음의 움직임으로 묘사하는 기법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종교곡에서 '십자가에 못 박힘'은 반음계로 점점 내려가는 선율로 슬픔을 상징하였고, '부활'은 반대로 상승하는 선율로 표현하였다. 바로크 시대에는 이러한 표현을 더욱 발전시켜 음악을 통해 인간의 관념과 감정을 표현하려고 하였다.이러한 전통 때문에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원래 예술가 개인의 느낌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서'를 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인간 감정의 여러 양상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정서론'이라고 한다.
이를 더욱 어울리고 생생히 표현하기 위해 음악가들은 리듬, 선율, 화성으로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하였고, 이런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들이 생겨났다. 예를 들어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하행선율과 잦은 쉼표, 불협화음을 빈번히 사용했고,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빠른 진행, 장식음, 트릴 등을 많이 사용했다. 바로크 시대에 와서 거의 모든 음악가들은 이러한 음악어법들을 중시하였고, 요한 마테존 같은 이론가들에 의해 체계화 됐다.
4. 역사
자세한 내용은 바로크 음악/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5. 악기
악기의 측면에서는 아직 현악기의 현이 거트현이라 하여 새끼양의 내장(…)으로 만드는 것이었고, 음색도 작고 수명도 짧았다. 또한 활의 형태 역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활(bow)의 명칭도 초기 활의 모양은 궁처럼 반달모양인 것에서 유래되었다. 활의 사운드 포인트도 현대의 활에 비해 많이 좁으며, 좋은 소리와 큰 볼륨을 내기도 상대적으로 어렵다. 활의 모양은 고전파에 이르러서야 비오티에 의해 현대적인 형태에 가까워 지게 되었다[14].당시 널리 인기를 끌었던 악기들은 오르간, 하프시코드, 클라비코드, 류트, 만돌린 등이 있었고, 비올라 다모레, 비올라 다 감바, 오보에 다모레 같은 악기들도 존재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 아마티같은 유명 악기들도 처음에는 바로크 형식으로 만들어졌으나, 고전과 낭만시대를 지나며 마개조[15]를 당한 탓에 현재 완벽하게 보존된 바로크 악기는 찾기 힘들다.
6. 음악가
비발디, 헨델 등의 거의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귀족이나 교회의 후원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까지는 음악가가 표를 팔아서 장사한다는 개념이 거의 없을 뿐더러, 음악 자체가 자본이 있는 계층의 향유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탈리아 베네치아 등 중산층 졸부의 후원을 받는 음악인들도 서서히 태동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아직 두드러진 모습을 보인다고 하기는 어렵던 시절.북독일 및 프랑스에서는 우아한 궁정 음악의 느낌이 풍겼고, 이탈리아에서는 정열과 낭만으로 가득찬 음악세계가 나타났다. 건반악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독주악기군의 기교 면에서 꾸밈음이 다양하게 사용되었고, 이것은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전매특허인 전꾸밈음(아치아카투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현악기의 경우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작곡기법상 찬송가와 같이 단순한 멜로디로 한 사람의 가수를 위한 모노디 양식과 더불어 여러 파트를 모아다 한 번에 진행하는 폴리포니 양식이 발달했다. 푸가, 카논 및 인벤션 같은 다성부 기악음악이 꽃을 피웠던 시기다. 또한 장단조 체계, 그러니까 기능화성(IV-I로 끝나는 구성)이 확립되기 시작하기도 했다. 또한 일명 "메아리 기법" 이라 하여 동일한 패시지를 가지고 강약을 대조하여 나누어 반복하는 형태도 나타났다. 이러한 양식은 후에 잉베이 맘스틴을 효시로 하는 바로크 메탈 등 많은 장르에 영향을 미친다. 얀 피터르존 스벨링크의 에코 환상곡과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내 영혼아 주를 송축하라(Nun lob mein Seel' den Herren)(BuxWV212)를 들어보자.
이 시기의 지휘자들은 오늘날의 짧은 지휘봉이 아니라 기다란 장봉을 들고 지휘했는데, 이걸 박자에 맞게 바닥을 찍으면서(…) 전체 주자들을 지휘하는 방식이었다. 쟝 바티스트 륄리 항목에 있는 동영상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딱 보면 알겠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 지휘봉이 마룻바닥이 아니라 자기 발등을 찍는다............. 실제로 륄리의 사인이 바로 이거였다. 음악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그만 지휘봉으로 자기 발을 찍었고, 하필이면 륄리 본인이 무용도 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치료조차 해 보지 못하고 사망했던 것.
이 시기에 유명한 음악가는 단연 헨델과 바흐이다. 작곡가들 중 텔레만의 경우 역사상 가장 많은 기악곡을 작곡한 인물로 기네스북에 올랐는가 하면,[16] 비발디와 타르티니, 로카텔리 등은 지극히 기교에 치중한 작곡가들로 유명했다. 심지어 타르티니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 을 작곡했다는 의심을 샀을 정도였다. 반면 상술한 텔레만의 경우 악기가 감당하기조차 버거운 고난이도 기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로코코 시대에 들어서면서는 알베르티에 의해 저 유명한 알베르티 베이스가 정립되었고,[17] 다성적 음악에서 점차 선율과 주제가 중심이 되는 소나타 형식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또한 피아노의 등장과 함께 하프시코드와 클라비코드가 몰락했으며, 플루트가 떠오르고 리코더가 저물었고, 바로크 시대에 "신포니아" 라고 통하던 장르는 곧 심포니, 즉 교향곡으로 발전하여 고전파 이후를 이끌어나가는 주축이 되었다.
[1] 여기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리스 문학, 특히 비극을 높이 평가하며 애호하였기 때문에 초기 오페라는 오르페오 같은 비극적인 그리스 신화 이야기가 많다.[2] 보통 르네상스 음악은 반주가 없고 합창만으로 이루어진 다성음악이 많았다.[3] 아쉽게도 상당부분이 망실되었다.[4] 예를 들면 두 인물의 불화가 생길 때 반주로 불협화음을 넣어준다던지.[5] 그가 생전에 베네치아에만 열여섯 개의 오페라 극장이 세워졌다고 한다.[6] 몬테베르디는 1605년에 르네상스 다성음악은 음악이 가사를 지배하는 1 관습이며, 바로크 시대의 새로운 음악은 가사가 음악을 지배하는 2 관습이라고 못 박았다. 이로써 바로크 시대에는 내내 새로운 양식과 옛 양식이 공존했음을 알 수 있다.[7] 내용이 오페라보다는 조금 진지하지만 초기 오페라의 형식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오페라로 분류하기도 한다.[8] 바로크 시대에는 '신포니아'라 불리는 장르 말고도 모음곡의 형식을 띠는 서곡이라는 장르도 있다.[9] 또는 가끔씩 Introduzione라는 말도 보이는데 이는 이탈리아 양식의 오페라나 오라토리아에서 많이 보인다.[10] 바로크 시대에는 이 곡을 서곡이 아닌 신포니아라고 불렀다.[11] 정확히는 음악학자 휴고 리만(Hugo Riemann)이 한 말.[12] 단 이는 하프시코드나 오르간, 류트 등에만 해당한다.[13] 이 오페라가 오케스트라에서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사용했다.[14] 그러나 고전시대의 활도 현재의 활과 비교했을때 길이도 짧았고, 윗반활에서의 볼륨도 작았다.[15] 바로크 악기들은 모던악기들보다 볼륨도 작고 좋은 소리를 내기도 힘들었다[16] 못해도 줄잡아 4,000여곡(!) 이상 발견되었고 지금도 끝없이 쏟아져나오고 있다.[17]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누구나 알 법한 왼손 반주법, "도솔미솔 도라파라 시솔레솔"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