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1 21:22:02

키키 키린

키키 키린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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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일본 아카데미상
파일:japan-academy-prize.jpg
최우수 여우주연상
제30회
(2007년)
제31회
(2008년)
제32회
(2009년)
나카타니 미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키키 키린
(오다기리 조의 도쿄 타워)
기무라 타에
(나를 둘러싼 것들)
제35회
(2012년)
제36회
(2013년)
제37회
(2014년)
이노우에 마오
(8일째 매미)
키키 키린
(내 어머니의 연대기)
마키 요코
(안녕, 계곡)
최우수 여우조연상
제33회
(2009년)
제34회
(2010년)
제35회
(2011년)
요 키미코
(우리 의사 선생님)
키키 키린
(악인)
나가사쿠 히로미
(8일째 매미)
제41회
(2017년)
제42회
(2018년)
제43회
(2019년)
히로세 스즈
(세 번째 살인)
키키 키린
(어느 가족)
나가사와 마사미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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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출연작3. 여담

1. 개요

파일:kikikirin.jpg

樹木希林(1943.1.15 ~ 2018.9.15 )

일본의 배우며 본명은 우치다 케이코. 일본 도쿄부 도쿄시[1] 출신. 한국에서의 이미지는 일본의 국민 엄마, 할머니 정도로 통했다. 외래어 표기법상으로는 기키 기린이다.

한국에선 일본 문화개방 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1961년부터 연기를 시작한 원로 배우이다. 시작은 연극배우였으나, 1964년 드라마 '일곱 명의 손자'에서 일약 스타가 된 이후,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꾸준한 연기 활동을 하였다. 1978년부터 40년간 후지필름 신년광고 전속모델로도 활약했다.

1974년 일본 TBS 테레비에서 방송된 드라마 '데라우치 칸타로 일가'[2]에서 주인공 타로의 친어머니를 연기하였는데, 실제 나이가 3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40대 중후반을 연기하기 위해 머리를 탈색하고 쭈글쭈글한 장갑을 끼는 등 열연하였다. 일본의 김수미?!?! 김수미 역시 30대 초반에 전원일기의 일용엄니를 위해 할머니 분장을 하였다.

남편은 일본의 유명한 가수 '우치다 유야'. 결혼 후 50여 년 간 별거를 하는 결혼 생활로 유명했다. 다만 키키 키린의 폭로에 따르면 우치다의 가정 폭력과 바람기 때문에 억지로 잡아둔 쪽에 가깝다고 한다.

2013년 제36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수상 연설에서 암에 걸린 사실을 공표하였다.

2004년 유방암에 걸린 이후 온몸에 암이 전이되면서 2018년까지도 계속 투병생활을 해오고 있다가 같은 해 9월 15일 별세했다.

2. 출연작

한국에서 알려진 작품만 나열한다.

3. 여담

  • 2003년 1월 왼쪽 눈의 망막이 박리되어 실명되었다. 위의 사진처럼 사시로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 국민 엄마 이미지랑 달리 일본 내에서는 젊었을때부터 성격이 강하고 특이한 캐릭터로 유명하다. 다테마에가 없는 가식없고 거침없는 언행 [4]과 행동거지 [5], 독특한 연애사 [6]로 일본에서는 성깔있지만 연기 잘하는 노배우 이미지가 강하다. 한국으로 따지면 윤여정과 이미지가 비슷하다.
  • 자식으로는 딸 우치다 아야코와 손녀 캬라가 있다. 야야코는 에세이스트로, 캬라는 배우로 활동중이다. 캬라하고는 앙: 단팥 인생 이야기에서 같이 활동한 적이 있다. 딸 우치다 아야코는 쟈니스 출신의 모토키 마사히로와 결혼하였다. 모토키 마사히로가 데릴사위로 우치다 가의 호적에 들어가 있다.
  • 딸인 우치다 아야코는 2007년작 오다기리죠의 도쿄타워에서 키키 키린의 젊은 시절 역할을 연기했다.
  • 유고집인 《키키 키린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원제: 樹木希林 120の遺言)이 2019년 6월에 대한민국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표지 사진이 요상(?)한데, 라파엘 전파의 대표적 작품인 밀레이의 '오필리아'의 패러디이다.
  • 의외로 노래도 부른 적이 있다. 1978년에 당대의 아이돌인 고 히로미와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노래도 발표한 것. 당시의 tv 출연 영상[7]
  • 젊은 배우의 연기를 칭찬하는 것에 인색하고 오히려 독설을 날리는 편이었는데, 예외적으로 야기라 유야, 히로세 스즈, 쿠로키 하루, 안도 사쿠라만큼은 연기력이 훌륭한 배우라고 칭찬하였다.


[1] 현 도쿄도[2] 칸타로 역은 작곡가 고바야시 아세이가 맡았다.[3] 원제는 시모츠마 이야기.[4] 사와지리 에리카 간접 디스건이라던가 (저는 상은 필요없고 마츠 타카코나 에리카님에게 상 줬으면...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보고 젊은 여자배우 보는 눈이 없다, 왜 그 자리에 그 배우를 데려다 놓는지 알 수 없다라고 공식선상에서 거침없이 디스를 하기도 했다. 반대로 연기가 좋았다고 얘기를 들었을때는, 고레에다 감독이 잘해서 그런 거다라는 겸손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5] 동료 배우가 준비해 온 간식을 필요 없다고 단칼에 거절하거나, 낡은 옷에 묻은 곰팡이를 보여주는 소소한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다만 연기에 있어서는 프로페셔널하다고.[6] 우치다 유야 (항목과 동명이인의 록 가수 및 배우)랑 결혼했으나 50년 이상 이혼하지 않고 별거하고 있기로 유명하다.[7] 노래는 2분 50초부터. 참고로 이때 고 히로미는 21세, 키키 키린은 35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