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22:09:49

다카라즈카 가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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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라즈카 가극단
宝塚歌劇団
Takarazuka Revue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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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일본|]][[틀:국기|]][[틀:국기|]]
창단 1913년 7월
(창단일로부터 [dday(1913-07-01)]일, [age(1913-07-01)]주년)
초연 1914년 4월 1일
(초연일로부터 [dday(1914-04-01)]일, [age(1914-04-01)]주년)
본사 효고현 다카라즈카시
설립자 고바야시 이치조
이사장 오가와 토모지
모회사 한큐 전철[1]
연간 관객수 약 277만 명(2018년)[2]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 및 발전 과정3. 운영 체계4. 다카라젠느
4.1. 다카라즈카 음악학교4.2. 젠느로서의 활동4.3. 퇴단
5. 스타 체계6. 공연 체계7. 논란 및 사건사고8. 미디어에서의 등장9. 여담

[clearfix]

1. 개요

일본 효고현 다카라즈카시에서 시작된, 일본의 여성 뮤지컬 극단으로, 한큐 전철의 창립자 '고바야시 이치조'(小林一三)[3]가 1913년 7월에 창단했다. 일본 역사상 두 번째로 창단된[4],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소녀가극단으로 창단 역사가 [age(1913-07-01)]년이나 된, 일본을 대표할 만한 인기 있는 극단인데, 규모 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크다.

소속 배우 전원이 미혼 여성이며, 남성 역할도 여성이 맡는다. 다카라즈카 대극장(효고현 다카라즈카시)과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도쿄도 치요다구)과 같은, 규모가 2천 석 이상인 전용 극장을 두고 매년 9가지 작품을 한 달 가량 공연한다.[5]

2. 역사 및 발전 과정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한큐 전철(당시 미노오아리마 전기철도)의 창업주인 고바야시 이치조(小林一三)가 창립했다. 한큐 전철은 철도를 부설하면서 철도 주변을 개발하고 대중이 이용할 만한 시설을 갖춰 이용객을 늘리는 사업 모델을 갖고 있었는데[6] 한큐 전철의 노선 중 하나인 한큐 타카라즈카 본선의 경우 종착역인 타카라즈카역 인근에 다카라즈카 패밀리랜드(宝塚ファミリーランド, 당시 다카라즈카 신온천)라는 테마파크를 개원한다. 이 테마파크의 핵심은 실내풀장으로, 이 수영장은 일본 최초의 실내 수영장인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7][8]

그러나 다카라즈카 패밀리랜드 내 실내풀장은 당시 수온을 높이는 기술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동절기에는 실내 풀장을 폐쇄했고, 이 때문에 동절기에는 이용자 수가 줄었다. 이에 고바야시는 풀장을 폐쇄했을 때 그 공간을 이용해 공연을 하여 겨울 관광객을 끌어들이고자 했고, 이에 1913년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전신인 다카라즈카 창가대가 탄생했다.

이렇게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본래는 다카라즈카시에 있는 테마파크 방문객의 증대를 위해 만든, 즉 철도 사업의 곁다리쯤 되는 공연단이었다. 처음엔 16명에 불과했지만, 그해 12월 4명을 추가하여 다카라즈카 소녀 가극 양성회로 개칭했다. 이듬해인 1914년 4월부터 소녀 가극을 공연하기 시작하였으며, 서양 악기를 연주하면서 일본의 창가극이나 무용극을 공연하여 주목을 받았다. 당시 대부분의 극본은 고바야시 이치조가 직접 집필하였고[9], 때로는 의욕적으로 연출까지 지도했다. 그의 노력으로 온천장이 흥한 것은 물론이고, 본업인 철도 사업도 성황을 이루었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수준이었으나, 1919년부터 가극 단원들에게 본격적으로 노래와 춤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다카라즈카 음악학교를 설립하면서 전문 극단으로 발전했다. 같은 해 1기와 2기수에 해당되는 단원들 중에 남학생 총 8명이 있었지만 이들은 10개월 후에 해산되었다. 이 초창기 남자 단원 8명은 해산된 이후 극단 내 연출가 및 작곡가 등의 스태프로 영입되어 일했는데, 1927년에 첫 상연된 일본 최초의 레뷰 공연인 몽 파리의 안무 담당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해 여러 명작품들을 제작했던 연출가 시라이 테츠조(白井鐵造)가 이들 중 한명이었다.

초창기에 이 가극단은 "전체가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 하는 정신 아래 특정 배우가 스타로 부각되지 않도록 애썼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부터 가부키를 연상시키는 에로틱한 요소의 도입과 더불어, 다카라즈카 배우들이 남자 역을 맡은 '오토코야쿠'와 여자 역을 맡은 '무스메야쿠'로 나뉘었다. 남자 역을 맡은 배우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창립자 코바야시는 남자부(男子部)를 1945년 11월에 재설립해 남성 배우를 극단에 다시 영입했다. 1947년까지 총 13명의 남학생들이 입학해 각 기수별로 준비했으나 기존에 있던 여성 단원들과 팬들이 반발했던 탓에 본 공연에는 오르지 못했고 참여할 수 있었던 파트는 백코러스가 전부였다. 그 이후에 또 다시 살아났던 남자부는 몇 번의 협연을 하였으나 1951년에 공연한 우미인(虞美人)의 성공으로 여성만으로도 레벨이 높은 연극을 만들 수 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1954년 3월에 해산되었다. 그렇기에 현재까지 극단의 단원 전원이 여성이다.[10]. 이렇기 때문에 남성 역을 하는 여성 배우가 필요한 특성상 이 극단에는 키가 큰 여성이 상당히 많다.

이후 1940년부터 현재 명칭인 다카라즈카 가극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TV의 보급으로 일시 인기가 하락하며 잠시 쇠퇴하기도 했지만 1974년 이케다 리요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동명의 헐리웃 영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창작 뮤지컬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비롯한 히트작들을 무대에 올리며 부흥하여 오늘날에 이른다.[11]

창업주 코바야시 이치조는 이 극단을 매우 아꼈다. 1957년 사망할 때 이 가극단과 야구단은 팔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12]

2014년에 극단 창단 100주년을 맞았다.

2022년 공식 어플리케이션 "다카라즈카 가극 Pocket(宝塚歌劇Pocket)"을 출시했다.

3. 운영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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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철도 운영의 부대사업 격이었고 지금도 한큐 전철 창유(創遊)사업본부 가극사업부가 운영하는 한큐 내 부서이다. 따라서 가극단원들도 한큐 전철 직원 신분이다.

극단은 6개의 조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꽃, 달, 눈, 별, 우주를 뜻하는 화조(花組/하나구미), 월조(月組/츠키구미), 설조(雪組/유키구미), 성조(星組/호시구미), 주조(宙組/소라구미)에 특별 베테랑 그룹인 전과(專科/센카)까지 합쳐서 6개 조다. 화조의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고 주조가 가장 나중에 생겨났다. 전과의 경우 보통 재단 경력이 20년 이상인 원로급 배우들이 소속되어 있으며[13] 나이대는 대략 적으면 30대 중후반, 많으면 환갑을 넘어간다.[14] 단 1972년 이후 입단자부터는 정년 제도가 도입되어 현재는 환갑 이후까지 활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년은 초창기에는 만 57세였다가 현재는 만 60세로 늘어난 상태. 해당 소속 여역들 중 한명이자 주로 일본물(日本物) 무용극 위주로 활동했던 마츠모토 유리(松本悠里) 한 명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 대부분은 주로 중노년 역을 주로 맡는다.

특정 구미 선호를 타파하기 위해 고안. 5개조가 교대로 공연을 하며 각 조마다 각자의 특색이 있어 소속된 연기자들이 거기에 맞추어 연기를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각 조 간의 차이가 과거만큼 선명하게 다르진 않다. 보통 춤의 화조, 연기의 월조, 일본물의 설조 등등의 특색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이것보단 톱스타의 개성에 더 많이 좌우되는 편.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가령 설조같은 경우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칼군무가 유명하다.

극단의 규모는 연기자 400여 명, 프로듀서, 각본가, 연출가, 음악가[15]와 의상 디자이너, 무대미술 디자이너, 전속 오케스트라(다카라즈카 관현악단) 35명, 도구 담당, 의상 제작, 무대장치 운영, 영업 담당 등의 스텝진을 포함하여 900여 명이 넘는다. 극단 전용의 대형 극장도 두 군데를 보유했는데, 본거지인 다카라즈카에 있는 다카라즈카 대극장(2,550석)과 도쿄도 지요다구의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2,069석)이다[16]. 이외에도 특별공연 때 임시로 도쿄 신주쿠의 일본 청년관(닛폰 세이넨칸), 오사카의 우메다 예술극장을 자주 대관해 사용하고, 지방 순회 때는 후쿠오카의 하카타자와 나고야의 주니치 극장에서도 공연한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정신은 깨끗하고 바르고 아름답게란 표어로 알려졌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설립자인 코바야시 이치조가 설립 시 "밝고, 깨끗하고, 바르고 아름답게, 이것을 모토로 하는 우리의 예술은 즉 고상한 오락본위에 기초로 하는 국민극이다."라고 언급한 것에서 유래한다. 이 정신에 걸맞게 '스미레 코드'라는 암묵의 룰이 있는데, 관객의 '꿈'을 손상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공개하지 않고 팬들도 찾지 않는다. 예를 들면 젠느들의 본명, 나이, 사생활 등. 또한 이 코드 때문에 공연에서 소위 퇴폐적인 장면이나 러브신은 모조리 짤리거나 순화시켰다. 물론 해외 라이센스 뮤지컬도 예외는 없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공연 쪽의 자체 검열은 많이 풀린 듯. 그러나 젠느 관련 사항은 여전히 금기이다.

4. 다카라젠느

앞에서도 설명했듯 극단 소속의 배우는 통칭 '다카라젠느(약칭 젠느)'라 불리며 전원 미혼 여성이다. 이는 과거 이화여대의 금혼학칙과 비슷하게 조혼으로 부터 배우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퇴단 전 활동기간에는 교제는 허락하지만 결혼은 불허한다.

이 때문에 남성 역할도 여자가 맡는데, 남성 역할은 '남역'(男役/오토코야쿠), 여성 역할을 '아가씨 역' 또는 '여역'(娘役/무스메야쿠)라 부른다.[17] 남자 배우만 있기 때문에 여자 역할도 남자가 소화하는 가부키와 대척점을 이룬다는 평가도 있다.[18]

극단의 메인 체계이자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남역 젠느는 남자다운 몸가짐과 발성을 가지도록 훈련받으며 머리카락도 숏컷이나 단발로 짧게 자른다. 이의 영향으로 남역들은 퇴단하기 전까지는 반쯤 남자처럼 살아가고, 퇴단 이후에도 많으면 10여년간 해왔던 행동과 버릇이 직업병으로 남기도 한다고도 종종 언급된다. 심지어 오쿠스 테라극단원 활동 중 삭발한 적이 있다. 이런 만큼 주로 극의 흐름이 남역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다카라즈카만의 특징이기도 한데, 엘리자벳과 같이 원작에서 여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을 각색할 시 주연 혹은 조연 남역을 띄워주기 위해 일부러 필요 이상으로 비중을 높이고 원작파괴를 한다.

이와도 비슷하게, 여역 젠느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아가씨를 연기하는데, 좋게 말하면 조강지처 내지는 현모양처, 나쁘게 말하면 정형적으로 굳어진 수동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자주 연출한다. 이와 반대되는 여성스러우면서도 남자 못지않은 적극성을 보여주는 배역의 예시 중 하나로 스칼렛 오하라가 있다. 그러나 스칼렛 오하라와 오스칼 역은 신인공연을 제외한 대부분 공연에서는 남역 젠느가 담당한다.

남역들이 남자다운 몸가짐과 발성을 보여준다면, 여역들은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콧소리 섞인 두성에 가까운 톤으로 연기와 노래를 한다. 배역이 젊을수록 콧소리 섞인 톤이 높아지고, 그 반대이거나 자주적인 성격의 배역일수록 톤이 낮아지거나 남역과 비슷하게 진행한다.

'다카라젠느'라는 이름은 다카라즈카 + '파리지앵(파리지엔느)'의 합성어로, タカラジェンヌ라 표기한다. 다카라젠느라는 말이 생기기 이전에는 다카라즈카 걸, 줄여서 즈카걸(ズーカガール)이라 불렀으나 창시자인 코바야시 이치조가 이 호칭을 매우 싫어해 우아한 단어를 고민하다 다카라즈카+파리지앵을 합쳐 다카라젠느라는 단어를 창시하고 배우들을 다카라젠느라 불러달라 발언하며 다카라젠느로 굳어졌다.

4.1.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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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젠느로서의 활동

음악학교 졸업 후 입단 시에는, 이듬해 1월 1일에 입단생 전원이 다카라즈카 대극장에서 정월 인사를 하고, 3-4월쯤에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조의 공연에 출연함으로써 초무대를 밟는다. 이후 입단생들은 새내기 배우로서 '연1년(硏1年)'이 되며, 보통 5월달에 조 배속을 받는다. 화조(花組/하나구미), 월조(月組/츠키구미), 설조(雪組/유키구미), 성조(星組/호시구미), 주조(宙組/소라구미) 5개조 중 한 곳에 소속된다. 하지만 재단 중 주연배우 취임이나 내부 인사 사정으로 인해 '구미가에(조 이동)'를 하는 경우도 있다.

연 1~7년 사이의 학생들은 모두 하급생(下級生), 그 이후부터는 상급생(上級生)이라 불린다. 무대 연출가 및 안무가들은 이 생도들에게 선생님(先生)이라고 불린다.

음악학교에서도 혹독한 고생과 노력을 했지만 입단 후에도 성적이 절대적이다. 입단 1년, 3년, 5년째에 시험이 있으며 5년째의 성적이 평생을 결정한다. 퇴단 후에도 성적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고 한다.

음악학교 생도 시절에도 가능하지만, 재단 중에 남역에서 여역으로 전향하는 젠느들도 더러 있다. 개중에는 전향 후 주연배우로 취임하는 경우도 있다.

젠느로 활동하면서 실력, 인기, 스타성 등을 인정받아 꿈의 지위인 '주연배우(톱스타)'로 취임하기도 한다. 한 조에 오래 재단했거나 연차가 많은 경우 '조장'이나 '부조장'이 되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스타 체계' 항목을 참고.

4.3. 퇴단

퇴단은 '졸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작을 다카라즈카 음악학원에 입학했을때로 보기 때문인듯. 퇴단의 이유는 다른 분야로의 진출, 결혼, 건강악화,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이다.

톱스타나 톱 여역이 퇴단할 경우 그들만을 위한 본공연이 상연되며 다카라즈카 대극장 및 도쿄 극장의 마지막 공연 하루 전인 전락, 당일인 천추락 때 '사요나라 쇼'를 가진다. 사요나라 쇼는 퇴단공연 및 그전에 임했던 공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한 노래와 댄스들로 구성된다. 니방테일 때 퇴단하는 경우나, 그 조에 오래 소속해 다양한 활동을 했던 배우도 더러는 사요나라 쇼를 선보인다.

퇴단 후에는 주로 뮤지컬, 연극 분야로 진출하며 탤런트, 영화배우로 활동하기도 한다.[19] 물론 외부 활동을 접고 결혼하여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경우도 많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한큐 전철의 직영 사업으로써 다카라젠느 역시 한큐 전철 직원이기 때문에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퇴단이후 한큐 전철에 남아 평범한 회사원으로 생활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일종의 부서이동인셈. 이 경우에는 다카라젠느 시절의 예명을 버리고 본명으로 회사생활을 하게 되며 일반적인 직원 취급을 받는다. 타카라즈카 가극단 관련 부서로 배정 받을수도 있지만 이건 운이 좋은 케이스에 속하며 보통은 랜덤하게 근무지를 배정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역무원이나 전동차 차장이 되는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또는 한큐한신토호그룹 내 타 회사로 인사발령이 날수도 있는데, 그래도 이 경우는 그룹내 예술관련 기업들이 꽤 있는편이라 사정이 좀 낫다.

아무래도 학창시절부터 학업보다 춤과 노래 연습을 주로 해온 사람이 평범한 회사원으로 근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해당 진로를 선택하는 타카라젠느는 극히 드문 편이다. 위에서 언급한 평범한 가정을 꾸린다해도 유복한 집안의 딸들이 많이 다닌다는 인식이 있어 다카라젠느 출신이라고 하면 어딜가나 인정해주기도 하고, 이를 살려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의 입시지도나 그외 예술학교 입시[20]지도하는 강사로 활동하면 회사생활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다카라즈카는 위에서 설명한 배우나 가수 같은 연예인은 물론이고 여성 정치인, 교육자, 사업가를 여럿 배출했으며 각계각층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가장 주된 활동 분야인 연예계의 경우 아마미 유키, 스즈카제 마요, 단 레이, 쿠로키 히토미, 다이치 마오, 이치로 마키가 다카라즈카 출신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쟁쟁한 인기 여배우인 이 다섯 사람은 모두 다카라즈카의 주연배우를 지냈다. 그 외에도 마야 미키, 마코토 츠바사 등이 TV에서 활약 중이다. 또한 부잣집이나 명문가 등으로 시집을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카라젠느 출신의 사모님들도 상당하다. 전 일본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의 부인 미유키 역시 다카라젠느 출신. Sound Horizon 7지평 객원 보컬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한 아야노 카나미[21], 리브 문의 메인보컬 아카네 리브(생도 시절 예명 카미즈키 아카네)도 이 극단 출신이다.

참고로 다카라젠느 출신 중에 유일한 코미디언이 있는데, 일본 최대 연예기획사인 요시모토 흥업 소속의 센도 카호(仙堂花歩, 본명 하야시 마이)이다. 입학하기도 어렵다는 다카라즈카 음악학교를 수석졸업하고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수석입단한 인재였으나, 코미디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 퇴단하고, 요시모토 공채 오디션을 다시 봐서 합격하였다. 댄스 스튜디오 대표강사[22] 일과 병행하면서 코미디언 일을 하는 중.

앞서 설명한 배우나 가수 외에도 성우로 전향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모리 나나코, 나나미 히로키이다.

5. 스타 체계

현재의 톱 스타 체계는 1980년대에 확립했다. 오직 다카라즈카에만 있는, 극단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23]

전과를 제외한 5개조는 조장, 부조장, 조원 그리고 톱스타 콤비로 구성된다.

톱스타는 그야말로 그 조의 얼굴이자 간판으로 티켓 판매를 좌우하는 주요 인물.'주연남역'(主演男役), 통칭 '톱스타'(トップスター)라 불리며, 각 공연의 주역을 맡는다. 이에 따라 각본은 톱스타에 맞춰서 작성된다[24]. 톱스타의 상대역인 여자 역할의 배우는 '주연여역'(主演娘役), 통칭 '톱 여역'(トップ娘役)이라 불린다. 각 공연의 히로인 역할은 이 톱 여역의 배우가 맡는다[25]. 퇴단할 때까지 대극장 공연 및 기타 중요 소극장 공연의 주연은 이들의 몫이다.

보통 '노선'이라 하여 하급생 때부터 신인공연과 기타 소극장 공연의 주연을 맡아 커리어를 쌓으며 두각을 나타내는데 대개 음악학교 졸업 공연인 문화제부터 입단 초중기에 주목도가 높은 생도가 주로 노선을 밟는데, 실력으로 노선을 밟는 경우도 있지만 성적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외모나 주목도로 노선을 밟는 경우도 있다.

주연남역은 통상 연12-15년에 취임[26]하며 주연여역은 딱히 연수에 구애받지 않지 않는다고 하지만 주연남역에 비해서 많이 연수가 적은 경우가 대다수이다.

대개 톱스타를 짧게는 2년 이상, 길게는 5년 정도 맡으며 이후에는 퇴단해서 드라마에 출연하거나 연극/뮤지컬 무대에 선다. 톱스타를 맡으면 그 이후의 연예활동은 거의 보장받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 스타는 그 용모, 스타성, 인기가 중요한 요소이며, 실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스타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입단 당시에는 성적도 낮고 하급 레벨이었으나 노력을 거듭하며 인기를 얻어 톱스타가 된 배우들도 있다.

톱스타 밑으로 2번수, 3번수 등 역할이 붙여지나, 톱스타 외에는 명확하게 고정된 지위가 아니므로 변동되기도 한다. 2순위 남역배우는 2번수, 니방테로 불린다. 공연에서는 주인공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기타 소극장 공연에서 주연을 맡기도 한다.

니방테를 준톱(준톱스타)라고 부르는 걸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니방테와 준톱은 엄연히 다르며 니방테를 준톱으로 호칭하는 건 톱스타와 톱스타 팬에게 굉장히 불쾌한 일이다. 다카라즈카 톱스타 체계가 확립된 이후, '준톱'이 존재했던 시기는 류 마사키 톱 시절 아스미 리오가 유일하다. 이 마저도 다카라즈카 팬들 사이에서는 흑역사이기 때문에, 니방테를 준톱이라고 부르지 않도록 주의하자.[27] 특히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한국 팬들이 니방테를 준톱이라고 잘못 부르는 사람이 매우 많은데, 잘못된 언급이며 실례이므로 삼가야 한다. 애당초 니방테를 준톱이라고 부름은 현재 톱스타를 반쪽짜리 스타로 여긴다는 뜻이다. 본고장인 일본에서도 팬들이 니방테를 준톱이라 부르는 일은 없다.

각 조(구미)에는 간부급인 '조장'(組長)과 부조장(副組長)이 있다. 가장 높은 기수의 상급생이 보통 맡는 조장은 조 전체의 총괄, 관리를 맡거나 공사면에 걸쳐 각 조의 단원들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 부조장은 조장을 도와 조의 총괄 관리를 담당하며, 조장에게 사고가 있을 때 그 직무를 대신한다.

6. 공연 체계

다카라즈카의 공연은 1월 1일부터 시작해 1년에 총 9회의 공연을 올리게 되며 한 공연 기간은 보통 30일 정도가 소요된다. 관객 수는 연평균 200만 명에 가깝고 극장 가동률은 평균 90%가 넘는다. 2018년에는 관객 동원이 약 277만 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가동률도 다카라즈카 대극장에서는 102.8%,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은 101.8%로 신기록을 달성했다.
  • 본공연
    다카라즈카 대극장과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에서 톱스타 콤비를 주연으로 상연되는 공연. 대극장 공연을 그대로 도쿄에서도 계속한다. 기간은 각각 약 1달 정도.
  • 신인공연
    본공연의 레퍼토리를 가져와 하급생 젠느들로만 대극장/도쿄극장 공연 기간 중 각각 1번씩 공연한다. 본공연의 절반 정도의 인원이 참여하기에 삭제되거나 축소되는 장면들이 많다. 보통 연 5-7년 남짓한 남역들이 주연을 맡고[28], 여역은 보통 남역들과 연차가 비슷하다.

이외에도 다카라즈카 바우홀, 우메다 예술극장, 일본 청년관, 주니치 극장, 하카타 극장 등에서 중·소규모 공연이 상시 진행되며, 전국 투어 공연도 간간히 있다.

매년 말에 열리는 특별공연인 다카라즈카 스페셜, 남역 젠느[29]이 주연으로 공연하는 디너쇼와 콘서트, 톱여역이 공연하는 뮤직 살롱 등이 있다.

공연은 아니지만 10년에 1번[30], 현역 다카라젠느 전원과 음악학교 생도가 참여하는 '다카라즈카 대운동회'[31][32]라는 행사도 열린다.

일반적으로 공연은 톱스타의 개연 안내 멘트로 시작되며 1시간 40분 정도의 연극 중심의 1막과 30분 휴연 이후 2막으로 1시간 정도의 음악과 댄스가 중심이 되는 '레뷰(レビュー)'로 구성된다[33].

레뷰의 마지막[34]에 피날레 공연이 진행되는데, 니방테의 메인 테마곡 독창, 톱스타 독무 및 독창, 로켓[35] 등으로 구성된다[36]. 그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남역 군무. 톱스타를 필두로 남역 젠느들이 다같이 의상[37]을 맞추어 입고 대계단[38]에서 음악에 맞춰 질서정연한 군무를 선보이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다. 남역군무 후 마지막에 진행되는 톱스타 콤비의 듀엣댄스도 피날레에 빠질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이다.

듀엣댄스 후에는 바로 퍼레이드가 이어지는데, 한 젠느가 대계단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공연 주요 넘버 몇 소절을 독창하면서 퍼레이드의 시작을 알린다[39]. 배역의 중요도 또는 기수에 따라 순서대로 대계단을 내려와 관객에게 인사한다[40]. 단역/조연은 양 옆에서 서너 명씩 내려오고, 비중 있는 조연들부터는 중앙부에서 공연 넘버의 일부를 부르며 내려와 제자리에 선다. 보통 중앙부에서 내려오는 순서는 '비중 있는 조연들-3번수 남역-2번수 남역-톱 여역-톱스타' 순이다. 2번수과 톱 여역, 톱스타는 등 뒤에 큰 날개를 착용하는데[41] 2번수 톱 여역의 날개는 상대적으로 작고 수수한 편. 톱스타의 것은 앞의 두 젠느의 것과 달리 크고 화려하다[42].

톱스타 인사 후에는 다함께 공연 주제가를 부르면서 톱콤비, 2번수, 기타 비중있는 조연들이 은교[43]로 나아가 다시 관객에게 인사한다. 그리고 양 옆의 젠느들과 서로 인사한 후 다시 무대 안쪽으로 돌아와 중앙의 톱스타 주위에 모두 서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것을 끝으로 무대의 막을 내린다. 공연 첫날이나 마지막 날(천추락) 등 특별한 날에는 몇 번씩 막을 걷었다 내리면서 관객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공연 작품들은 대개 뮤지컬의 형태로 공연하지만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4][45]'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소설부터 영화 '오션스 일레븐',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메이의 집사', '백작영애', '루팡 3세', 게임 '역전재판', '왕가를 위한 노래[46]' 등을 창작 뮤지컬로 제작해 공연했으며, 뮤지컬 '엘리자벳', '팬텀', '스칼렛 핌퍼넬' 같은 해외 뮤지컬은 물론 'boxman'같은 창작 시대극도 공연하는 등 소재가 매우 다양하다. 다카라즈카 붐이 식어 위기에 처했을 무렵에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뮤지컬로 만들어 공연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이후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대표 레퍼토리가 되었다[47]. 그러나 정작 원작만화는 다카라즈카 극단의 남성역할 배우에게 영향을 받았다고[48][49]. 이야기가 워낙 방대해서 오스칼 편, 오스칼과 앙드레[50], 페르젠 편, 페르젠과 마리 앙투아네트편, 외전 편 등으로 나누어 따로 공연한다[51]. 명실상부 다카라즈카의 대표작으로서 화려한 의상과 노래, 규모가 볼만하다. 하도 남역 중심으로 극이 진행되다보니, 오스칼과 앙드레는 그렇다쳐도 원작의 진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중은 점점 갈수록 페르젠에 밀려 줄어들고 있다.

2005년에 성조가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 편'으로 내한공연을 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한류붐을 타고 태왕사신기를 각색 및 제작해 공연했다. 공식홈페이지

최근 다카라즈카에서 공연한 가장 충격적인 공연은 하나구미의 '전국 바사라-사나다 유키무라 편-'. 톱여역을 위한 오리지널 여주인공 배역도 추가했다. 다카라즈카의 강점인 원작에 충실한 높은 퀄리티의 캐릭터 재현도 + 젠느들의 명연기로 호평 속에 종연했다고.

다카라즈카만의 특이한 점이라 하면, 일부 소극장 공연, 저작권에 저촉되는 작품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공연을 DVD로 발매한다는 것이다[52]. 천추락 등의 기념할 만한 공연, 예전 공연의 재방송, 기타 오리지널 프로그램 등은 극단 전용 CS채널인 TAKARAZUKA SKY STAGE를 통해 방송한다. 공연 외의 프로그램은 WOWOW 등에서 방송되기도 한다. 엄격했던 예전에는 젠느들의 외부방송 출연이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시대가 시대인지라 현재에는 아라시니 시야가레나 SMAPXSMAP 등의 토크쇼에 가끔씩 젠느들이 출연하곤 한다.

참고로 1996년에 뮤지컬 '엘리자벳'을 일본에서 초연했으며, 주연인 토트 역을 맡았던 당시 유키구미 톱스타 '이치로 마키'는 이 공연으로 퇴단한 후 2000년에 토호 극단의 엘리자벳 공연에서 히로인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역을 맡았다[53][54]. '엘리자벳'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기록이 있는데, 츠키구미 톱스타 출신의 세나 준은 엘리자벳, 토트, 루키니 3개의 역을 모두 연기[55]해본 세계 유일의 연기자다.

스칼렛 핌퍼넬의 경우, 프랭크 와일드혼[56]이 브로드웨이에 올렸을 땐 큰 반응이 없었는데, 다카라즈카에서 각색해 올린 뒤 대히트를 쳤다. 원작자인 와일드혼이 당시 이 공연의 주연을 맡은 성조 톱스타 아란 케이의 목소리에 맞춰 '한조각의 용기'라는 곡을 새로 작곡했다고 한다.

블랙잭도 뮤지컬로 만들어 공연한 적이 있다. 정말 못하는 공연이 없다 OTL. 일본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 '파트너(相棒)'도 뮤지컬화 되었다. 주연이며 다카라즈카의 광팬으로 유명한 오이카와 미츠히로는 '이때만큼은 내가 남자인게 속상하다'는 코멘트를 하기도 했다고.

2012년 드디어 은하영웅전설도 무대화하였다. 무대사진을 보면 정말 '일본''여성'이 맞나 싶을 정도로 원작과의 싱크로율이 높다.

2015년 1월 1일, 다카라즈카 101주년을 맞이하여 일본의 국민만화 루팡 3세도 다카라즈카 오리지널 스토리로 무대화되어 호평 받았다. 각본의 경우 루팡 3세의 세계관과 다카라즈카 세계관을 잘 융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우들 역시 원작자인 몽키 펀치가 극찬할 정도의 싱크로율과 열연을 자랑했다. 유명 개그맨 치하라 주니어도 첫 관극을 갔다온 후 라디오에서 극찬. 루팡의 명대사들을 여성이 하는데도 위화감 없이 재미있었다고.[57]

7. 논란 및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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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미디어에서의 등장

  • 가극 소녀!!: 다카라즈카 음악학교가 모티브인 '홍화가극 음악학교'에 입학한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 날아라 호빵맨: '츠키노시라타마 씨'가 다카라즈카 모티브 캐릭터로 화려한 뮤지컬 무대와 남장 기믹이 있다. 롤빵소녀도 여자가 남자 역을 하는 데서 영감을 받았다.
  • 사쿠라 대전: 주인공들의 소속인 제국 가극단이 다카라즈카 모티브이며, 5개조+특별조의 구성도 땄다.
  •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태풍을 부르는 노래하는 엉덩이 폭탄!: 2007년에 개봉한 15번째 극장판이다. 원작에서는 ひなげし歌劇団, 한국판에서는 개양귀비 뮤지컬 공연단으로 나오는 이 등장인물들 또한 다카라즈카를 모티브로 했다. 중간중간 나오는 개양귀비 뮤지컬 공연단의 트럭 뒷마크는 다카라즈카의 각 조 마크와도 유사하다.
  • 추억은 방울방울: 宝塚のナントカさん이라고 나온다. 번역하면 다카라즈카의 어느누군가씨. 이 음성과 동시에 나오는 사진은 内重のぼるの霧深きエルベのほとり의 표지이다.
  • 프리파라: 2기에서 등장한 시쿄인 히비키가 천재들을 모아서 만든 드림팀의 팀명이 '세레파라 가극단'이며, 시쿄인 히비키의 모티브가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남역 배우'이다.
  • Phantom of the Black Rosd Revue ~흑장미의 유령~: Yamino가 개발한 인터랙티브 추리 게임으로 보통 가극단 계열 매체는 남역이 주인공이나 이 작품은 특이하게 여역이 주인공이다. 1970년대풍 순정만화 그림체가 특징이다.

9. 여담

  • 단원 전원이 여성이고 남자 역할과 여자 역할을 나누는 것과, 엄격한 교육 과정과 선후배간의 깊은 유대로 인해 이들이 레즈비언일 것이라는 오해를 하거나 백합물을 떠올리며 환상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도 결국 무대를 내려오면 평범한 여성일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갔으니 그중에 동성애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상기한 이유만으로 동성애자 양성소쯤으로 치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
  • 남역과 여역의 구분은 키도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최근에는 개인의 선택이며 목소리 등 특별한 특징에 따라 배정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58] 남역도 여자가 해야 하기 때문에 매 기수마다 키가 173㎝ 이상의 단원들이 일정 비율로 항상 존재한다. 또한 연습시(비공연시)[59]에는 헤어스타일만 다른데, 남역은 포마드 헤어스타일, 여역은 속칭 '승무원 머리' 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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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역 / 161㎝ || 아오하 레이야
남역 / 175㎝ ||
  • 배우 숫자는 360명[60] 가량 되지만, 이를 보조하는 스텝은 1천 명에 달한다. 그만큼 준비가 많고 어렵다.
  • 의상이 매우 화려하다. 내부에 전문 의상팀을 두고 공연에 쓰이는 의상, 장신구 등의 소품은 공장이나 외주제작을 거의 맡기지 않고 직접 수작업으로 제작하는데, 그 디테일은 놀랍도록 정교하고 아름답다. 작은 큐빅 하나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다고. 다카라즈카의 타이트한 공연 스케줄을 생각하면, 아무리 재탕하는 의상이 있다고 해도 연 9회 본공연에 이런저런 소극장 공연, 기타 스페셜 공연들 의상을 다 챙기려면 꽤나 바쁠 듯하다.
    참고로 대극장에는 이 의상들과 가발 일부를 체험할 수 있는 사진촬영 스튜디오인 살롱 드 다카라즈카가 있는데, 전화 및 인터넷 예약제. 가발과 의상만 착용/촬영하는 쇼트스테이지(ショートステージ)와 화장까지 포함해서 분장/촬영하는 메이크 스테이지(メイクステージ)로 나뉘어져있다. 다만 메이크 스테이지는 여성 손님 한정으로만 예약 및 이용가능하다.
  • 작품의 폭이 상당히 넓다. 고전적인 작품들도 있지만 루팡 3세, 은하영웅전설 등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작품도 있다. 창립 95주년 기념작으로 태왕사신기를 공연하기도 했다. 연출의 말에 의하면 작품을 선택할 때 한국 공연도 많이 참고한다고 한다.
  • 종종 한국의 여성국극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여성국극의 경우에는 창립멤버가 1948년 당시 국악원에서 여성들만이 떨어져 나온 "여성국악동호회"라서 국악식의 창가와 전통 소재만을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다카라즈카의 경우에는 위에 나온 레퍼토리를 보면 알겠지만 애니메이션, 게임 등 별의별 소재를 다 끌어다 쓰고 있으며, 음악도 브라스 반주를 기본으로 하는 완전 서양식 공연이라 그 알맹이는 전혀 다르다. 둘 사이의 규모면에서도 넘사벽의 차이가 난다. 규모 문제는 상술했듯이 다카라즈카의 모 기업이 한큐 전철인데다가 전문적으로 배우들을 양성해왔지만 여성국극 같은 경우에는 경제적 문제로 기존 소규모의 극단이 여러 개로 갈라지고 배우들의 질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생기면서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한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끈 여성국극단을 소재로 한 웹툰 및 드라마 정년이의 원작자가 한국의 여성국극단의 자료가 너무 없어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자료를 참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 2002년 7월부터 극장 중계와 공연 정보를 중심으로 한 전문 채널 'TAKARAZUKA SKY STAGE'가 방송된다.
  • 덕후의 나라인 일본이니만큼, 다카라즈카 오덕들도 상당수 있다. 극단의 특성상 여성팬이 압도적으로 많다. 학생부터 중년에 이르기 까지 팬층의 범위가 상당한데다가 활동력도 대단해 알아주는 덕후 집단들 중 하나로 대를 이어 다카라즈카 덕질을 하는 경우도 있다. 톱스타의 은퇴 공연을 볼 때 객석에서 단체로 우는 경우는 예삿일이다. 기간 한정으로 판매하는 특정 공연과 관련된 만쥬를 냉동 보관해 모으기도 하고, 일본 본토와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에서 공연을 보러 오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연예계 내에서도 다카라즈카 덕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많은데 키타가와 케이코의 경우 무려 전국 투어 원정까지 다닌다고 알려져 있으며, 前 AKB48의 멤버였던 와타나베 마유야마모토 사야카, 前 노기자카46의 멤버였던 노죠 아미 등이 대표적이다.
  • 나루히토 덴노의 동생인 후미히토 친왕의 친어머니가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여배우라는 소문도 있다. 사실 미치코 상황후의 친아들이 아니라 서자라는 설[61]. 우스운 것은 후미히토 친왕 역시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여배우와 내연 관계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것. 그런 소문이 도는 와중에 후미히토 친왕은 아내 키코 비와 함께 100주년 기념 공연에 참관하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 배우 아이부 사키의 어머니와 언니가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이다.
  • 영화 배급사인 도호 주식회사는 도쿄(京)와 다카라즈카(塚)의 앞 글자를 따서 지어졌다. 가극단을 위한 음향시설등을 취급하다가 영화 배급사로 규모가 커진것.

  •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다룬 다큐멘터리.1990년대에 제작된 다큐멘터리라 지금은 폐장된 놀이공원 패밀리랜드도 나온다.
  • 2016년에 킹아더(La legende du roi Arthur)를 맡았다.
  •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뮤지컬 극단에 남자역할을 여자가 맡기 때문인지, 일본 창작계에서는 다카라즈카라는 단어가 보이쉬하고 중성적인 미녀를 지칭하는 은유적인 표현으로도 자주 쓰이기도 한다. 물론 여성적인 매력을 지닌 미녀에게도 다카라즈카 같다는 표현이 종종 나오기도 하지만, 다카라즈카라는 말 뒤에 오스칼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빼도 박도 못하고 남자로 착각당할 뻔한 잘생쁨한 미녀를 뜻하는 말이 된다. 또한 남자역할을 여자가 맡기 때문에 키가 큰 여자는 필연적으로 필요하게 되어 이 영향으로 극단의 단원들은 평균신장이 크다.
  • 한국인 단원도 있었다. 과거에는 김능자와 홍청자(1937년 입단, 1940년 퇴단)가 다카라즈카 가극단 단원이었다. 김능자는 남역 배우, 홍청자는 여역 배우였으며 홍청자의 활동명은 '야에 야에코'였다. 김능자와 홍청자는 이후 1940년에 조선 최초의 걸그룹인 '저고리 시스터즈'의 멤버가 되었다. 하지만 홍청자의 말년은 매우 비참했는데 저고리 시스터즈가 속한 악단의 단장인 김해송과 열애설로 인해 불륜녀 낙인이 찍혔고 결국 아편 중독자가 되어 비참하게 살아갔다. 또한 아란 케이(安蘭 けい, 1970~) 역시 재일 한국인 3세 출신이다. 키 167㎝으로 남역이지만 남역 치고는 작은 편에 속한다.
  • 간사이에서는 다카라즈카를 대비할 수 있는 레슨실, 발레스쿨, 학원이 많은 편이다. 주로 다카라즈카 OB들도 강사로 많이 활동하는 편인데, LE SSERAFIM카즈하가 상기한 발레스쿨 중 한 곳 출신.
  •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의외로 경마하고도 연관이 있다. 이유는 다카라젠느 출신인 미유키 하나요(63기생)가 요기보 베르사유 리조트 팜 대표이기 때문이다. 하나요는 미조(三城) 목장의 대표와 결혼하였으며 사별 이후에 빚더미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현재 이름인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대표 작품인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따온 베르사유 팜으로 바뀌었으며 그리고 대표의 아들도 같이 공동 운영을 하고 있다. 수완 능력도 뛰어나 요기보와 협약을 체결하였으며 빚더미에서 벗어나게 되어 순조롭게 운영을 하고 있다.
  • JACKJEANNE의 타마사카자는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설정을 완벽하게 뒤집은 설정이다. 아마도 다카라즈카 가극단에게 영감을 받은 설정이라고 추정된다.


[1] 한큐 전철 창유사업본부 가극사업부가 운영하고 있다. 즉,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한큐 전철의 분할회사나 자회사 형태가 아닌 본사가 직접 관할하는 직할조직이다.[2] 역대 신기록. 가동률 다카라즈카 대극장 102.8%,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 101.8%.[3] 생몰은 1873년 1월 3일 ~ 1957년 1월 25일. 일본의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야마나시현 니라사키시 출신. 한큐 전철을 운영하는 한큐토호그룹 창업자이기도 하다. 또한 제2차 고노에 내각에서 상공대신을 지냈다.[4] 첫 번째는 1911년에 창단된 "시로키야 소녀음악대"다. 오래 존속하지 못하고 1917년에 없어졌다.[5] 중극장의 다카라즈카 바우홀 (다카라즈카시)도 소유했다.[6] 이후로는 다른 사철들도 한큐 벤치마킹을 많이 했다. 같은 간사이의 한신 전기철도(한신 코시엔 구장), 난카이 전기철도(간사이 국제공항고야산), 킨키 일본 철도(이세 신궁, 요시노 신궁 등)부터 도쿄권의 경우에는 세이부 철도(세이부 유원지 및 세이부 돔), 도부 철도(도쿄 스카이트리 및 도부동물공원 등) 등의 사례가 있다.[7] 온천은 80년대 말에 시설 노후화로 폐지된 뒤 다카라즈카 대극장 증축으로 인한 주차장 확장부지로 쓰였다. 이후 이용객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놀이공원과 동물원은 2003년 8월 31일에 폐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식물원은 같은 시기 '다카라즈카 판타지 가든'이라는 이름으로 리뉴얼해 2013년까지 영업하다 영업을 종료하며 다카라즈카 신온천 시절부터 시작한 90여년에 달하는 긴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8] 여담으로 다카라젠느 출신의 다이치 마오가 방송에서 언급한 이야기에 따르면,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학생의 경우 음악학교 교복을 입은 경우에 한해 다카라즈카 패밀리랜드를 무료로 이용할수 있었다고 한다.[9] 고바야시는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는 등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10] 공식 남성 단원까지는 아니지만 가부키 배우이자 전통무용가인 4대 하나야기 쥬스케(四代目花柳壽輔)가 2012년에 사망한 카스가노 야치요(春日野八千代)의 대역으로 2014년 100주년 기념식 공연에 출연했다.[11] 그 영향으로 현재 오스칼마리 앙투아네트, 스칼렛 오하라레트 버틀러는 거의 다카라즈카하면 떠올리는 마스코트나 다름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다.[12] 그 중 야구단은 1988년 말에 오릭스에 팔려서, 유언을 완전히 지키지는 못했다.[13] 재단 경력 20년 이하의 배우들이 전과로 조이동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보통 14년차 이상 남역들로, 하급생 시절 톱스타 노선을 달렸지만 톱스타 후보에서 밀린, 그러나 인기는 꽤 많은 젠느 중 전과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다.[14] 카스가노 야치요(春日野八千代)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본명 이시이 요시코(石井吉子)로 1915년생이며, 2012년 8월 29일에 만 97세의 나이로 별세하기 전까지 다카라즈카에서 활동했다. 결혼=퇴단이기 때문에 후사 같은 건 없다. 참고로 카스가노 야치요는 키 162cm로 남역배우 역사상 최단신이었는데 원래 이 키는 아니고 나이 들어서 줄어든 키이며, 당시 여성 평균보다 5cm 이상 큰 키였고 현재 일본 평균보다 4cm나 크다.[15] 과거의 전속 작곡가로 유명한 인물을 꼽자면 테라다 타키오, 요시자키 켄지 등. 7~90년대 다카라즈카 공연의 음악은 대부분 이들이 만들었다.[16] NHK 홍백가합전은 도쿄 시부야에 NHK 홀이 세워지기 직전인 1972년(제23회)까지 이곳에서 녹화 및 생방송되었으며, 2000년에 리모델링 및 증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17] 보통 여역이라고 하면 남자 한자와 반대인 '여자 여'(女)를 썼을 거라 생각하나 아가씨를 뜻하는 '계집 낭'(娘)이다. 그래서 다카라즈카의 여역을 직역하면 아가씨 역, 딸 역이라는 뜻이다.[18] 가부키는 일본 제1의 도시 도쿄(에도)를 중심으로 성장했고 총본산인 가부키자가 긴자에 위치해 있다. 이 역시 일본 제2의 도시권인 간사이/오사카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다카라즈카 가극단과 대비된다. 다카라즈카 주제의 만화 가극 소녀!!도 다카라즈카와 가부키의 2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19] 퇴단한 후에도 일반적으로 남자배우가 맡는 배역을 공연하는 배우들의 사례가 가끔 있다.[20] 현재 일본은 학원산업 자체가 쪼그라들긴 했으나 여전히 어느정도 수요가 있긴하다.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의 경우 입시를 봐주는 대형학원들도 있긴하나 이들 학원에서 나오는 합격생이 절반정도임을 감안하면, 나머지는 개별적으로 입시를 봐주는 사람들의 지도를 받고 있다 봐야한다. 예체능의 경우 단순히 인터넷 강의등만 들어서는 준비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21] 무려 톱 여역 출신이다. 이러한 후덜덜한 경력 때문인지, 콘서트 영상에서 CD를 씹어 먹을 것 같은 라이브를 선보여 팬들을 감탄하게 했다.[22] 사실 센도는 이쪽이 본업인데, 부업으로 코미디언을 하면서 요시모토 신희극에 나오기도 한다.[23] 하지만 현재에는 오사카의 가극단인 OSK 일본 가극단이나 나가사키현의 가극단인 하우스텐보스 가극단에서도 어느정도 사용하고 있다.[24] 이는 라이선스 뮤지컬이라 해도 예외는 없다. 대표적인 예가 '엘리자벳'.[25] 예외로 톱스타가 히로인 역할을 맡을 때가 있는데, 예를 들자면 엘리자벳스칼렛 오하라 역이 있다.[26] 아마미 유키는 예외로 입단 6년 반 만에 주연남역에 취임했다.[27] 이 시절 류 마사키가 극단에게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니방테를 준톱이라고 함부로 부를 수 없다.[28] 연 7년 이하 하급생 남역 팬들은 자신의 젠느가 신인공연 주연을 맡을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톱스타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신공 주연 여부다. 신공 주연 경험이 없으면 나중에 인기가 갑자기 많아져도 톱이 될 수 없다. 다카라즈카 역사상 예외는 딱 1명으로 신공연차 뒤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인기 급증했거니와 다른 사정이 더해져 탑이 되었다. 하지만 이 경우도 구색을 맞추기 위해 신공과 비슷한 공연의 주연을 시킨 뒤에 톱에 올랐다. 이런 예외는 앞으로도 없을 경우라, 연7 이전에 신공 주연이 없는 남역이라면 톱의 꿈은 바이바이.[29] 주로 톱스타나 2번수[30] 그래서 운동회 한 번 하면 방송사 카메라들이 총출동한다. 운동회 다음날 아침 정보방송에는 다카라즈카 대운동회 이야기가 꼭 나올 정도.[31] 우승 상금이 어마어마하다. 2014년에 열린 100주년 대운동회의 우승팀에는 상금 100만 엔이 걸렸다.[32] 재능 많은 무대인들답게, 대운동회에서 벌어지는 입장 퍼레이드+응원전도 볼거리가 많다.[33] 해외 라이센스 뮤지컬(엘리자벳 등)이나 상연시간이 긴 작품은 '레뷰'를 생략하고 1막-인터미션-2막 체제로 진행한다.[34] 레뷰가 없을 경우 2막이 끝난 직후[35] 하급생들이 단체로 줄을 맞춰 다리를 차올리며 추는 군무. 우리나라에서는 킥라인이라고 한다.[36] 상기한 3가지 장면의 경우 레뷰가 있는 공연에서는 로켓만 레뷰 중반부쯤에 삽입되고 나머지는 생략한다.[37] 주로 다카라즈카 남역의 상징인 흑연미[38] 피날레 때 사용되는 큰 계단[39] 이를 에뜨와르(エトーワル)라 하는데, 가창력의 실력자들이 맡는다. 톱스타는 아니지만 이 역을 맡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젠느들도 많다.[40] 이때는 단역부터 톱스타까지 모두가 '샹샹'이라 불리는 작은 장식물을 손에 들고 내려온다. 긴 리본이 달리거나, 봉 형태로 두 손에 잡기도 하는 등 종류가 다양하며 보통 공연의 테마에 맞게 디자인된다. 예를 들면 '엘리자벳' 공연에는 합스부르크가의 문장,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장미 꽃다발 모양의 샹샹이 사용된다.[41] 그나마도 레뷰가 없으면 2번수와 톱 여역은 날개가 생략됨이 부지기수. 톱스타는 거의 모든 공연에서 날개를 착용한다. 단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등의 작품은 제외.[42] 그리고 그만큼 무겁다. 실제로 타조 깃털을 사용한다고. 톱스타 용은 15~20 kg 정도라고 한다. (거의 완전군장 수준) 다카라즈카 톱스타 출신 배우들이 TV 예능에 출연할 때 단골로 쓰는 네타.[43] 무대 전면 오케스트라 석 앞에 설치된 좁은 길 모양의 무대[44] 실제 공연은 원작소설이 아니라 동명의 헐리우드 영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고, 몇몇 의상 디자인과 대사를 영화에서 차용했다.[45] 신인공연을 제외하면 역대 스칼렛 배우들의 대부분은 주로 톱스타들이 맡아왔다.[46] 오페라 '아이다를 원작으로 제작된 뮤지컬.[47] 다만 제작 초기에는 원작의 분위기를 훼손시킬까 우려한 원작 팬들의 반발이 있었는데, 심한 경우에는 제작진 측에 면도날이 협박편지와 함께 전달되는 등의 일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48] 그 증거는 볼 것도 없이 오스칼이다.[49] 베르사유의 장미의 원작자 이케다 리요코는 소녀 시절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시험을 보았으나 떨어졌다고 한다.[50] 2001년 버전을 제외하면 앙드레가 베르나르와의 대결에서 눈에 부상을 잃고 오스칼이 위병대로 전입하는 시점에서 줄거리가 전개된다.[51] 초판 공연 한정으로 '앙드레와 오스칼 편'이 있었는데, 다른 버전에서는 없는 오스칼의 드레스 차림이 초반부에 나오며, 로잘리의 비중도 작지 않았다.[52] 다만 이전부터 팬들로부터 인기있었던 몇몇 공연은 블루레이판이 발매되었는데, 2014년 10월 현재 공연 중인 화조의 '엘리자벳' 공연부터는 DVD와 블루레이 2가지 종류로 발매한다고 한다.[53] 이후 토호극단 버전 엘리자벳 공연의 엘리자벳 역은 지금까지도 다카라즈카의 톱스타 출신 배우들이 맡는다.[54] 토호버전 엘리자벳을 공연할당시 죽음 역할이었던 배우 우치노세이요와 결혼했다.[55] 루키니는 2002년 화조 버전에서, 엘리자벳은 2005년 월조, 그리고 토트는 2009년 월조에서 연기했다. 퇴단 후에는 토호버전 엘리자벳에서 엘리자벳을 다시 연기했다.[56] 2014년 소라구미 출신이자, 역대 최장기 집권 톱스타였던 와오 요우카와 결혼했다.[57] https://youtu.be/m6vGrCdWZHo.[58] 역할을 배정하는 기준 키는 160대 중후반이기 때문에, 키의 스펙트럼이 150㎝~180㎝ 이상으로 매우 넓다. 하지만 일본 여성의 평균키가 158㎝인 까닭에 170㎝ 이상도 귀하고, 180㎝를 넘는 여성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편이라, 키 180㎝ 이상인 생도는 몇 개의 기수에서 단 1명 나올 정도로 희귀하다. 이 때문에 102기의 오오쿠스 테라(180㎝)와 같은 장신의 생도는 극단 차원에서 매우 귀중하게 여겨, 180㎝ 이상에 다른 응시자에 비해 특출나게 떨어지지만 않으면 웬만하면 붙여준다. 즉 키가 크다면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입시에서 매우 유리한 입지를 점한다는 것.[59] 공연 시에는 연기하는 배역에 맞게 헤어스타일을 수정한다.[60] 5개 조에서 각 조당 70 ~ 80명 사이의 인원이 존재[61] 여동생 구로다 사야코에게도 같은 소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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