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교의 저작물
太極圖북송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가 역학(易學)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그림. 이 그림 밑에 스스로 설명을 단 것이 「태극도설」이다.
2. 중국 고전소설 봉신연의에 나오는 태상노군 소유의 먼치킨 보패
太極圖워낙 잔인하고 위력적인 무기라 최종병기로 아껴두는 무기다. 두루마리 형태의 족자이며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두루마리로 된 태극도를 펼치면 상대방은 태극도에 들어가 그림 안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이후 두루마리를 말아 버리면 태극도에 들어간 상대는 그대로 소멸(...). 말도 안 되는
3. 후지사키 류의 만화 봉신연의에 나오는 슈퍼보패 중 하나
太極圖본래 태상노군이 가지고 있다가 자신의 꿈 속에 들어와 귀찮게 구는 태공망에게 건네줬다. 하늘 위에 떠있는 커다란 부적 같은 형태였으나 태공망에게 맞추어 음양옥 형태의 구슬로 바꿔서 타신편 끝에 붙여 주었다.
통칭 반보패 & 안티 보패. 일반적인 보패는 선인들의 도력을 흡수해서 위력으로 전환하지만 태극도는 보패가 발휘하는 위력을 무효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이 덕분에 태공망이 태극도를 펼치면 상대의 보패가 무효화됨은 물론, 보패로 인한 깽판 짓도 무효가 되어(...) 보패로 입은 상처 등이 치유되는 따위 효과가 나타난다. 특히 보패인간인 나타는 태극도의 영향을 받으면 그대로 기능이 정지해서 뻗어 버린다.
단 모든 보패를 무조건 무효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상대가 태공망 이상의 대선인이라면 태극도의 무효 성능 자체가 중화될 수 있다. 작중에서는 달기가 경세원양으로 펼치는 유혹술의 위력이 태극도와 팽팽하게 밀고 당기면서 위력이 발휘되다가 말다 하는 모습을 보였다.
태상노군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태극도를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은 주위의 보패에서 힘을 흡수하여 자신의 힘으로 바꾸는 것이다. 태공망은 왕천군과 하나가 되어 시조(복희)의 기억을 되찾고 나서야 이러한 방식으로 운용할 수 있었다. 여태까지는 보패와 그 기능을 무효화하는 방식으로만 사용했지만, 여와와 싸우는 결전에서는 다른 이들의 힘을 흡수해 전투력으로 바꾼 것. 태공망이 이전에 곤륜산의 힘을 흡수하는 행황기를 사용했던 것도 어쩌면 복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통적인 방식으로 사용할 경우, 당연히 주변에 우호적인 의도를 지닌 선인이 많을수록 전투력이 올라가게 된다. 여와와 대적할 때 태공망은 본신의 도력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위력[1]을 발휘했는데, 다 우호적인 선인들의 도력을 흡수해서 나온 위력이다. 그럼에도 여와에게 밀렸으나 봉신대에 간 혼백들의 힘까지 빌려서야 여와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4. 강증산을 섬기는 증산계통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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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極道
사진은 태극도 대강전(감천도장)
태극도(太極道)는 1921년 정산(鼎山) 조철제(趙哲濟)가 창시한 증산 계열의 종교이다.
1895년 경상남도 함안군에 조철제가 태어났다. 1909년 조철제는 항일운동하던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망명하던 중 구천상제의 계시를 받고 귀국하였다. 1921년 무극대도(無極大道)라는 교단을 창도하였다. 조철제는 정읍군에 큰 교당을 지었고 신도들의 수효는 10만여 명에 달해, 당시 보천교(普天敎)를 세운 차경석(車京石)이 ‘차천자(車天子)’로 불리는 것에 비유하여 일반 사회에서는 조철제를 ‘조천자(趙天子)’라 불렀다. 그리고 조철제는 진업단(眞業團)이라는 신도 단체를 만들어 간척을 통해 농경지를 만들고 금광 사업에도 손을 대어 많은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1936년 조선총독부가 증산 계열의 종교들을 억압하기 위해 단행하였던 「유사종교해산령」에 의해 교당 건물이 철거되고 본부는 해체되다시피 하였다. 하지만 1948년, 조철제는 본부를 부산광역시 보수동으로 옮기고 태극도라는 명칭으로 다시 포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8년 조철제가 사망하자, 태극도는 조철제의 아들인 조영래(趙永來)의 구파와, 조철제의 사망 직후 잠시 종단의 책임직인 도전(都典)을 맡았던 박한경(朴漢慶)의 신파로 분리되었다. 주문 변경, 협동상회 사건등으로 1968년 결국 분열되고, 도인 단합 촉구 선언대회가 열렸지만 박한경의 신파는 그 후 서울로 이전하여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라는 별도의 종단을 설립하였다. 그 뒤 태극도의 도전 자리는 조영래로 이어졌다.
신앙 대상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 태극도주옥황조성상제(太極道主玉皇趙聖上帝)인데 각각 강일순과 조철제를 의미한다.
참고로 태극도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2동에 신앙촌을 이루어 지금까지도 생활하고 있다. 이 동네를 태극도마을이라고 하는데 부산 특유의 계단식 산동네를 이루고 있어서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다. 자세한 것은 태극도마을로 검색해 보길 권장한다. 2010년대 들어서는 감천문화마을로 엄청 유명해져 예술가와 사진가들의 입소문이 퍼져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몰려들어 연간 1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원도심의 랜드마크 관광 명소가 되었다.
[1] 주먹질 한 방 한 방이 뇌공편 위력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