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24 21:19:13

프리기두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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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비우스 다리 전투 콘스탄티누스 1세 vs 막센티우스
무르사 전투 마그넨티우스 vs 콘스탄티우스 2세
프리기두스 전투 파일:east_roman_mon_256.png 테오도시우스 1세 vs 파일:western_roman_mon_256.png 에우게니우스 }}}}}}}}}
프리기두스 전투
Battle of Frigidus
시기 서기 394년 9월 5 ~ 6일
장소 슬로베니아 비파바 강
원인 서로마 제국의 황제 에우게니우스기독교 탄압.
교전세력 파일:east_roman_mon_256.png 동로마 제국
파일:external/wiki.totalwar.com/100px-Visigoth_flag.png 서고트
파일:western_roman_mon_256.png 서로마 제국
지휘관 파일:east_roman_mon_256.png 테오도시우스 1세
파일:east_roman_mon_256.png 플라비우스 티마시우스
파일:east_roman_mon_256.png 플라비우스 스틸리코
파일:east_roman_mon_256.png 바쿠리우스†
파일:external/wiki.totalwar.com/100px-Visigoth_flag.png 알라리크
파일:external/wiki.totalwar.com/100px-Visigoth_flag.png 가이나스
파일:western_roman_mon_256.png 플라비우스 에우게니우스
파일:western_roman_mon_256.png 플라비우스 아르보가스트
병력 로마군: 20,000 ~ 30,000명
고트족: 20,000명
35,000 ~ 50,000명
피해 로마군: 피해 규모 불명
고트족: 10,000명
피해 규모 불명
결과 서로마 제국군의 패배. 테오도시우스 1세의 로마 제국 통합.
영향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 서로마 제국호노리우스동로마 제국아르카디우스 즉위.

1. 개요2. 배경3. 전개와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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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리기두스 강 전투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서로마 제국의 황제 에우게니우스가 맞붙은 내전으로 로마의 기독교화를 공고히 하고, 로마 다신교의 결정적인 쇠퇴를 결정지은 전투였다. 또한 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제국을 재통합한 테오도시우스 1세가 1년 후에 붕어함으로써, 로마 제국은 다시 동로마 제국서로마 제국으로 양분되었고 희대의 암군 호노리우스가 서로마의 황제가 되는 나비 효과를 불러온 전투였다.

2. 배경

서기 313년, 대제 콘스탄티누스 1세의 <밀라노 칙령>으로 말미암아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공인했다. 그러나 80년 후인 392년 경,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이교로 전락한 로마와 그리스 사원을 모독하는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서로마 제국의 실권을 거머쥔 플라비우스 아르보가스트는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암살당하자 고위 정무관인 플라비우스 에우게니우스를 후임 황제로 옹립했다. 에우게니우스는 승리의 제단과 베누스의 신전을 복원하여 로마의 다신교 부흥 정책을 실시했으며, 일찍이 테오도시우스 1세가 서로마 제국에 남겨둔 관료들을 제거하고 많은 이교도들이 원로원의 의석을 꿰차도록 했다. 이러한 에우게니우스의 정책은 동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독실한 기독교도인 테오도시우스 1세의 어그로를 끌었다.

마침내 393년 1월, 아들 호노리우스를 서로마 제국 황제로 공표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에우게니우스를 찬탈자로 규정하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출발했다. 테오도시우스 1세 본인이 스틸리코와 티마시우스를 대동하며 30,000명의 병력을 이끌었고 여기에 이베리아(흑해 동쪽 지역)의 바쿠리우스, 고트족의 알라리크가 이끄는 20,000명의 고트족과 보조군이 뒤따랐다.

3. 전개와 여파

에우게니우스와 아르보가스트는 헤라클레스의 상징을 군단기에 새기고 옛 전통에 따라 로마의 신들에게 승리를 기원했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즉시 서로마군에 공격을 감행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10,000명의 고트족과 바쿠리우스가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단, 여기에는 로마군 본군이 아닌 껄끄러운 고트족을 일종의 형벌 부대로 써서 소모시키려는 테오도시우스 1세의 의도였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당연히 에우게니우스가 이끄는 서로마군의 사기는 고조되었는데 이때 아르보가스트가 동로마군의 퇴로를 끊기 위해 분견대를 보내면서 서로마군의 병력이 분산되었다. 그러자 하나님에게 승리를 기원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아르보가스트의 분견대를 기습했다. 이때 강풍이 불면서 서로마군의 대열이 무너지자[1] 아르보가스트는 패주했고, 첫 번째 날의 승리에 방심하고 있었던 에우게니우스는 동로마군에게 사로잡혀 처형당했다. 아르보가스트 역시 얼마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교도들을 격파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신속히 서로마 제국의 지배권을 접수했으나 4개월 후, 어린 호노리우스와 아르카디우스를 남긴채 붕어했다. 역사가 티란니우스 루피누스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은 이 전투를 밀비우스 다리 전투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승리라고 여겼으며, 기독교화에 대항하기 위한 이교도의 마지막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교적 측면은 고사하고 에우게니우스의 군대에는 '헤르쿨리아니'를 비롯한 서로마 제국의 정예병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이는 결과적으로 서로마 제국의 군사력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게다가 승자인 테오도시우스 1세가 오래 살았다면 모를까, 그가 이 전투 이후 1년만에 붕어하면서 서로마 제국을 맡게 된 인물은 훗날 라벤나에서 닭이나 치게 되는 호노리우스 황제였다. 결국 이 전투로 주력 부대가 괴멸된 서로마 제국은 고트족의 봉기, 훈족의 도래, 게르만족의 라인 강 침공을 자력으로 막지 못해 '포에데라티' 같은 보조군에 의존하거나 게르만 부족과의 외교전으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게르만족 용병대장인 오도아케르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하면서 서로마 제국은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 100년도 채 넘기지 못하고 멸망하게 되었다.
[1] 기독교에서는 신의 바람이 테오도시우스 1세를 도와 이교도들을 물리친 것(...)이라고 했지만 후대의 사가들은 이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