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23:07:06

하비 와인스틴

하비 와인스틴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folding [ 펼치기·접기 ]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oscar_logo.svg
작품상
제70회
(1998년)
제71회
(1999년)
제72회
(2000년)
제임스 카메론
존 랜도
(타이타닉)
데이비드 파핏
도나 질로티
하비 와인스틴
에드워드 즈윅
마크 노만

(셰익스피어 인 러브)
브루스 코엔
댄 징크스
(아메리칸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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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012b><colcolor=#fff> 하비 와인스틴
Harvey Weinstein
파일:하지 와인스틴 프로핀.jpg
출생 1952년 3월 19일 ([age(1952-03-19)]세)
미국 뉴욕주 뉴욕시 퀸스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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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前 영화 제작자
신체 183cm
학력 뉴욕주립대 버팔로
동생 밥 와인스틴 (1954년생)
배우자 이브 칠튼 (1987년 ~ 2004년, 이혼)
조지나 채프먼 (2007년 ~ 2018년, 이혼)
자녀 5명
종교 유대교

1. 개요2. 활동3. 비판
3.1. 영화 제작 간섭3.2. 성범죄 파문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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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할리우드의 前 영화 제작자. 한때는 미국 영화계에서 흥행보증수표로 그 명성이 자자했으나, 자신의 영향력을 악용해 여배우들에게 각종 성범죄를 행하거나 영화 제작진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등의 악행을 일삼다가 결국 미투 운동으로 완벽하게 몰락하였다. 폭로 이후 영화계에서 퇴출되어 징역 39년형을 선고받아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1]

2. 활동

1952년 출생으로, 보석 상인인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2] 어린 시절 프랑소와 트뤼포400번의 구타를 보고 영화의 길을 정했다. 1979년에 동생 밥 와인스틴과 함께 미라맥스를 설립하여 영화 제작 및 배급을 맡게 되었고, 1990년에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을 수입하여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1992년부터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을 시작으로 그의 모든 영화 제작 및 배급도 맡게 되었으며, 차기작 펄프 픽션은 미라맥스 영화 최초로 1억 달러를 돌파하였다. 이후 굿 윌 헌팅, 셰익스피어 인 러브, 무서운 영화, 스파이 키드, 에비에이터 등이 연이어 1억 달러를 돌파하였고 2002년 시카고는 1억 7000만 달러를 기록하여 미라맥스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동시에 공포 영화 제작 및 배급을 맡은 자회사 디멘션 필름도 설립한다.

1989년에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영화 <나의 왼발>이 미라맥스 영화 최초로 5개 부문 후보(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다니엘 데이 루이스), 여우조연상(브렌다 프리커, 나홀로 집에 2의 비둘기 아줌마 배우))에 올라 아카데미 시상식에 진출한 이후로, 펄프 픽션과 크라잉 게임 등이 모두 각본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이후에도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다양한 영화들은 물론 아카데미 수상작들의 제작, 배급에도 여러 차례 참여하였으며,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경우에는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올리며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였다.[3]

1993년부터 월트 디즈니의 계열사로 들어갔지만, 디즈니와 갈등을 빚고 2005년 동생과 함께 와인스틴 컴퍼니를 설립하여 독립하였다.

공격적이면서도 전략적인 홍보와 캠페인으로 본인이 배급한 수많은 배급 작품들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줄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던 건 분명하나, 그가 펼친 오스카 캠페인에는 어두운 이면이 존재한다. 하비 와인스틴이 처음으로 대규모의 오스카 캠페인을 시작한 영화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 영화 <나의 왼발>로, 감독, 프로듀서들을 L.A로 이사오도록 설득해서 아카데미 회원들과 만남을 주선하고, 온갖 행사와 스크리닝을 개최하였다. <슬링 블레이드>의 경우에는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며 영화를 홍보하였으며,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어지간한 오스카 캠페인 비용을 훨씬 넘어서는 대규모 캠페인을 펼쳐 결국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역작이라 불리우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꺾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역대 최악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영화 <침실에서>로 <뷰티풀 마인드>와 경쟁할 때부터는 경쟁 작품의 완성도나 작품 외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슈를 기사화하는 방식으로 네거티브 캠페인 역시 펼치기 시작하였는데, 이 수법은 배급작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와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경쟁하였을 당시 다시 사용하였으며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허트로커>와 경쟁할 당시에도 사용하였다. 그 외에도 와인스틴이 배급했던 브라질 영화 <시티 오브 갓>은 본래 2003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서 탈락한 작품이었으나, 개정된 규정의 허점을 이용하여 <시티 오브 갓>을 200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에 후보로 올렸다. 당시 와인스틴은 <시티 오브 갓>을 여러 차례 재개봉을 통해 장기간 동안 상영시켰다고 한다.

하비 와인스틴의 이러한 캠페인 방식은 오늘날 아카데미 시상식이 대규모 예산을 들인 마케팅과 캠페인 싸움으로 변질된 시발점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하비 와인스틴의 오스카 캠페인 역사

3. 비판

3.1. 영화 제작 간섭

하비 와안스타인의 영화 제작 간섭 역사

우선 리처드 윌리엄스가 30년 가까이 제작한 야심작인 욤욤 공주와 도둑을 상업성과 거리가 먼다는 이유로 난도질해서 알라딘 아류작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감독이 제작한 오리지널 필름도 멋대로 폐기하는 바람에 감독인 리처드를 크게 분노하게 만들었다.

피터 잭슨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를 기획 중 4시간짜리 단편영화로 만들어라, 자신이 성추행한 여배우인 미라 소르비노, 애슐리 저드를 캐스팅하지 마라, 맘에 안들게 하면 다른 감독으로 교체하겠다 등 여러 간섭을 해 빡친 피터 잭슨이 그의 얼굴을 본떠 상피병 걸린 오크 대장을 만들었다. 이 일화는 그가 구속된 후 일라이저 우드가 공개했다. #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가 지나치게 난해하다는 이유로 20분 분량을 삭제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게 봉준호 감독의 반발로 무산되어 결국 설국열차는 제한적 상영을 하였다. 2020년이 돼서야 설국열차가 영국에서 상영되는 이유엔 감독판을 지지했던 틸다 스윈튼존 허트에 대한 괘씸함 때문이 아니냔 이야기도 있다.# 특히 존 허트가 인터뷰 중에 강도 높은 비판을 한 바 있다.

비영어 영화 외에 영미권 영화조차도 가위질을 하고 개봉해 가위손 하비(Harvey The Scissorhand)라고 불릴 정도로 악명 높았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영화를 함부로 대접하면서도 아카데미상으로 밀어 볼 만한 영화들은 억지로 밀어 주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이런 와인스틴의 가위질을 거절하고 살아남은 작품은 사실상 봉준호설국열차미야자키 하야오모노노케 히메 정도뿐이었다.[4] #

여러 갑질과 부당해고, 오만하고 이기적인 성격 등으로 대놓고 평판이 안 좋았던 인물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패러디한 캐릭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워낙 많은 영화를 성공시켰기에 할리우드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런 성격을 가진 와인스틴과 같이 미믹을 찍을 때 매우 불편했다고 했다. # 이것 때문에 델 토로 감독과 절친이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이 사실을 알고 와인스틴을 오스카 트로피로 한 대 칠 뻔했다 회상하기도 했다. # 심지어 델 토로 감독의 부친이 납치되어서 영화 제작이 일시중단되었다는 말을 듣고 고작 아빠가 납치되었다는 것 하나 때문에 영화 제작을 연기해서 돈을 낭비했냐면서 너희 아빠가 죽든 말든 영화는 끝까지 만들었어야 했다는 패드립까지 쳤다고 한다.

헬레이저 시리즈가 디멘션 필름즈에 있을 당시 헬레이저 3, 4도 원래는 제대로 된 완결편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제작비를 사정없이 처내 간섭했다고 한다. 클라이브 바커 등의 다른 호러 감독들도 헬레이저 시리즈를 리메이크해서 부활시키려고 했으나, 여러 번 간섭하여 불만을 얻은 다른 호러 감독들도 하차하였다. 심지어 클라이브 바커에게 돌려주지 않으려고 판권 기간을 더 연장시켰다. 물론 와인스틴 본인이 체포된 이후에는 판권이 클라이브 바커에게 반환되었다.

3.2. 성범죄 파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하비 와인스틴 성범죄 파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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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4. 기타

  • 본인의 영화계에서의 악명과 마찬가지로 가족 관계도 굉장히 복잡한 편이다. 자녀는 전처 이브 칠튼과의 사이에서 세 명, 두 번째 아내인 조지나 채프먼과의 사이에서 두 명을 두었다. 동생인 밥 와인스틴은 영화계보다는 브로드웨이에서 활약하였다. 처음에는 형제간에 사이가 좋았지만, 경영권 문제로 완전히 소원해진 사이. 이와 별개로 동생인 밥 와인스틴 또한 자기 형을 닮아 사생활이 매우 더러운 인간인데, 부인과 이혼하면서 가정폭력 혐의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으며, 여성 프로듀서 대상으로 성폭력 혐의도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쪽도 영화 제작사가 2019년에 파산하면서 몰락했다.
  • 할리우드의 성범죄 파문미투 운동의 발단이 되면서 한국에서도 각종 언론사를 통해 이름이 언급되었는데, 대부분 읽기가 난해한 이름이 나올 때마다 늘 그렇듯이 매체마다 '와인스타인, 웨인스타인, 웨인스테인, 바인슈타인' 등 일관성 없는 발음으로 잘못 표기한 경우가 많다. 본인이 공석에서 와인스틴으로 불러 달라고 했던 적이 있으며, 영어권 언론에서는 모두 와인스틴(WINE-steen)으로 발음하고 있으므로 '와인스틴'이 옳다.[5]
  • 갱스 오브 뉴욕 촬영 당시 마틴 스콜세지의 감독 권한에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였다고 한다. 갱스 오브 뉴욕이 스콜세지의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미완성 작품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이것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하비 와인스틴은 미국에서는 스캔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만행들로 할리우드 영화계에 악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 그의 일대기가 2023년 5월 21일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아무래도 현대 배경이라 그런지 서프라이즈답지 않게 고증이 꽤 훌륭한 것은 덤이다.
  • 교도소 복역 중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되었으나, 이후 완치되었다고 한다.

[1] 뉴욕 법원에서 23년형을 선고받았고, LA 법원에서 징역 16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2] 사실 성씨만 봐도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성이 뒤에 -스타인/스틴/슈타인 등으로 불리면 십중팔구 유대인 조상이 한 명쯤은 있다.[3]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최초의 작품상 수상이란 이야기가 있는데,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작품상을 수상한 프로듀서는 사울 자엔츠다. 와인스틴은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포함한 대부분 작품상 수상, 후보작에 책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 형식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으며, 아카데미 특성상 책임 프로듀서로 이름이 올라간 사람은 후보로 지명될 수 없다. 와인스틴이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영화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갱스 오브 뉴욕이고, 이 중 수상한 작품이 셰익스피어 인 러브.[4] 그나마도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일본도 그림과 함께 NO CUT이라고 쓰인, 반쯤 협박에 가까운 편지를 보내서 간신히 막은 것이다.[5] 물론 같은 철자의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와인스타인'으로 불러 달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영어권에서는 이렇게 발음 기준이 애매모호한 이름의 발음은 본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Maroon 5의 보컬리스트 애덤 르빈(Adam Levine)과, 게임 개발자켄 레빈(Ken Levine)은 두 사람 다 성씨의 철자는 같지만 본인의 요구에 따라 서로 발음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