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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빈

하수빈
河琇彬 │ Lisa Ha
파일:external/img.tf.co.kr/20101012_121047885100_1.jpg
<colbgcolor=plum><colcolor=white> 본명 [ruby(하수빈, ruby=河琇彬)], Lisa Ha
출생 1973년 5월 3일 ([age(1973-05-03)]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65cm, 42kg, A형
직업 가수, 작곡가, 작사가, 음악 프로듀서, 해외 건축 디자인 경영인
데뷔 1992년 1집
Lisa in Love
소속사 라스텔라 엔터테인먼트
종교 천주교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1],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2]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3]
1. 개요2. 어린 시절부터 소녀기3. MUSIC4. Produce 참여 앨범5. 3집 《 The Persistence Of Memory 》2010년6. 문학7. 여담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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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수빈( 河琇彬 Lisa Ha, 1973년 5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작곡가, 작사가, 음악 프로듀서, 해외 건축 디자인 경영인 이다.

데뷔 앨범은 1992년 1집 Lisa in Love이며, TV 방송은 1992년 8월 1일,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여름 특집 생방송으로 데뷔했다. 수많은 남학생 소년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청순 가련형의 여자 솔로 가수로 한 시대를 대표했다.오랜 기간 공백기를 가졌음에도 여전히 여러 형태의 팬클럽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동안은 음악 프로듀서, 조형 미술, 해외 건축 디자인, 패션 컬렉션, 문학 등 다채로운 예술 장르에 역량을 표현해 왔다.

2. 어린 시절부터 소녀기

하수빈은 정종 문종때 문신을 역임했던 시조 하진의 뿌리를 둔 진주 하씨 친가와 태종 이방원 세종대왕의 후손인 전주 이씨 외가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본적은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이다.

어릴적 부터 무척 여리고 내성적이며 몸이 약해 잦은 잔병 치레를 했었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보다 오히려 의사 선생님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눴었고 따뜻한 추억도 많았다. 어릴적 꿈은 커서 훌륭한 의사 또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이렇게 몸이 자주 아파 학교 출석을 다 하지 못하는 등 결석이 빈번해지자, 학자 집안 배경이었던 어머니의 특별 교육 법, 가르침은 그녀 학업 성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전 과목 all 수, 100점 등 결석 일수와 학업 성적은 오히려 반비례 하여, 세상 가장 훌륭한 선생님은 바로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녀는 하수빈의 정서적 성장도 고려해 동요 뿐 아니라 3살 4살때부터 클래식, 팝송 등을 듣기 시작했다고.. 그녀의 영상 시집 <La Stella... 그리움은 아름다운 별이 되어 >의 <아지랑이 빛 코끼리>에도, 4살 적 기억 비틀즈에 관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5살 때 처음 피아노를 시작 했던 그녀는 피아노가 마치 소중한 친구와 같은 존재 였었다. 그 후 콩쿨 대회, 정례 연주회 등에 참여하며 Frederic Chopin, J.S Bach, Debussy 작품 등을 연주 했었다.

13살 즈음 16마디 3박자 왈츠곡 <하늘>을 처음으로 작곡했고, 이 곡은 약간의 마이너성 코드가 있었던 기억으로 아마도 사춘기가 시작되려 했었다고.. 남달리 청음 능력도 우수하여 듣고 바로 악보를 그리거나 또는 듣고 바로 연주를 하는 등 바이올린 또한 재능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사춘기 소녀기 즈음, 글 쓰는걸 좋아해 창작 소설, 에세이, 일기 등을 많이 썼다. 비교적 음악적 감수성이 깊은 문학 소녀로 성장했던 것이다.

신체적 특징은 어린시절 왼손잡이, 현재는 양손잡이에 왼발잡이, 허리가 얇고 발이 작으며 팔, 다리, 목이 긴 체형이다. 특기는 유화 그리기, 피아노 바이올린 연주, 혈액형은 A형, 성격은 내성적이며 주관이 뚜렷한 편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기독교 천주교 미션 스쿨을 다녔고, 재학 시기에 방송반 특별 활동으로 특히 성경 수업때 전교생 앞에서 책과 시를 낭독 하는 등 아나운서의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방송과 친밀한 환경에 놓여진 계기가 되었다.

재학 시절 CF모델로[4] 잠시 활동하는 동안 미국 팝 싱어송라이터 토미 페이지<Tommy Page>를 처음 만나게 된다. 당시 미주 뿐 아니라 아시아 대륙에서도 엄청난 인기의 토미 페이지 였다. 그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특히 한국과 인연이 많았다. 또한 80년 후반에서 90년대엔 어마 어마한 미국 보이 그룹, 토미 페이지와 절친이기도 했던, 해서 함께 음악도 만들고, 백 보컬도 참여했던 전설의 <뉴키즈온더블록> 이라는 그룹도 잊을수가 없다. 이것은 훗 날 하수빈이 보이 그룹 프로듀싱을 하게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어린 소녀였던 하수빈을 토미 페이지는 모델이 아닌 가수의 길, 뮤지션으로의 길로 처음 이끌어 준 인물이다. 사춘기 소녀였던 그녀를 보고 리사Lisa 라는 이름까지 다정하게 만들어 주었던 일화가 있다. 그녀를 " Lisa... my little baby" 라고 표현 했었다. 세계적인 가수가 되라며 지어진 이름이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젊은 시절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데뷔 시절 <리틀 엘비스 프레슬리> 라고 불리던 토미 페이지는 엘비스의 딸이었던 리사 마리 프레슬리를 떠올리며 남성들에게 보호 본능, 부성 본능을 자극하던 여린 하수빈을 보고 마치 가족과 같은, 그런 친밀감을 느꼈던게 아닐까 이름 지은 배경으로 생각해 본다.

드디어 1992년 하수빈의 1집 앨범 Lisa in Love 출시하게 되었다. 그녀를 위해 본인의 자작곡 I`m Falling in Love 을 레코딩 하게 도와주었고, 서로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 할 것을 약속 했었다고... 처음 그녀에게 전달된 데모 CD에는 20여 곡의 토미 페이지 자작곡이 어쿠스틱 버전으로 들어 있었고 함께 셀렉하는 것 이였다. I`m Falling in Love 외에도 I'm Always Dreaming of You 등 다수 곡 포함, Arrange는 다이안워렌 Diane Warren'''이 참여될 예정이었다.

이처럼 90년대엔 세계 음악시장으로의 더욱 폭 넓은 도전이 활발히 있어왔다. 좋은 예로, 이미 앞서 언급한 토미 페이지와 절친이기도한 그룹 뉴키즈온더블록 New Kids On The Block의 도니월버그 Donnie Wahlberg 와 일본 J POP의 전설 마츠다세이코 Seiko Matsuda의 The Right Combination 이 duet 곡 형식으로 발표되어 이미 미주, 아시아 대륙에서 큰 이슈가 된 사례가 있었다. 이것은 곧 미국, 일본 각각의 나라에서 큰 팬덤을 갖었던 마츠다세이코의 성공적인 미국 데뷰를 갖게 했다. 또한 뉴키즈온더블록의 아시안 팬 층이 더욱 거대하게 두텁게된 결과를 남겼다. 이처럼 토미페이지와 수빈의 duet 곡도 이런 흐름의 좋은 기획이었음에 틀림 없다.

하수빈의 데뷰가 실은, 1992년이 아닌 레코딩 마무리 시기였던 91년 여고 재학시절 18살 때 였다고 한다. 하지만 재학 중이던 학교는 방송 데뷔 또는 상업적 촬영 등이 쉽게 허락되는 학교가 아닌, 다소 엄격한 캐톨릭 미션 스쿨이어서 데뷔 시기가 그만 늦춰지게 된 거라고 한다. 그녀가 서울 예술대학교 1학년이 된, 19세에 정식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만약 계성여고 재학 시절 방송 데뷔가 허락 되었다면, 더 어린 시절의 하수빈을 우린 만났을 테고, 또한 토미 페이지와 약속했던 서로의 뮤직 비디오 출연을 진행 했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다음 학교부터는 종교적 색채의 미션 스쿨보단, 예술 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다고 그런 계기가 된 이유라고 한다. 어린 소녀였던 그녀는 해외 촬영의 이유로 결석이나 조퇴가 어려워, 함께 뮤직 비디오 출연 약속은 그만 홍콩 스타 엽청문과 이루어진 계기가 되었다. 좀 더 촬영의 시간적 여건이 좋았더라면 어땠을까? 고3 입시생이었던 하수빈에겐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예측되는 부분이다.
하수빈 데뷰 기사엔 토미페이지와 함께 뮤직 비디오 촬영과 세계 음악시장 도전이라는 문구가 있다. 정겨운 1992년도 레어한 소중한 자료이며 또한 그녀의 역사이다.

3. MUSIC

3.1. 1992년

1집 《 Lisa in Love 》

예민, 토미 페이지 Tommy Page, 심상원, 김형석 등의 뮤지션이 참여된 하수빈의 데뷔앨범으로, 데뷰곡은 작곡가 겸 프로듀서 예민의 발라드곡〈더 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 스위트 팝 댄스곡〈NoNoNoNoNo〉, Tommy Page의 곡〈I'm Falling In Love〉이다. I'm Falling In Love은 하수빈이 17세에 미국 POP Singersongwriter 토미 페이지 Tommy Page로부터 아시아 스타 첫 예로 받은 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Lisa:리사> 라는 이름을 선물 받았다. 데뷰 후, 토미 페이지는 방송 홍보 기간 중 KBS 쇼 프로그램에 출연한 하수빈을 위해 미국에서 귀국, 바로 그녀에게 선물한 곡 설명과 리사라고 부른다는 일화 등을 소개했다. 그녀의 첫 방송 데뷔는 1992년 8월 1일 MBC 여름 특집 생방송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310회였다. 그 후 방송 2회 전파 후, 그 당시 여가수들에게 흔치 않은 초스피드로 음반 판매량 10만장을 기록했다. 이것은 여가수 단기 판매량 기록 이기도 했다. 10대 소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바로 그녀를 위한 팬 클럽 <숙녀리사 Lady Lisa>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특히 발라드 <너는 나의 사랑의 이름>은 하수빈이 17세에 만든 자작곡으로 정규앨범에 실은 첫 타이틀이다.
1992년 8월 1일, 하수빈 데뷔무대
하수빈 더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 [5]
하수빈 nonononono_ 토미페이지TommyPage 인터뷰

드림랜드 수영장에서 라이브로 방송된 하수빈의 첫 데뷔 방송은 워낙 큰 이슈가 되었다. 마치 비현실적인 순정만화 여주인공 같은 외모의 등장이였기 때문에 하수빈을 기억하는 40~50대 세대들은 이 토토즐 생방송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첫 앨범 Lisa In Love는 프로듀서 예민의 곡인 팝 발라드 '더 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 스위트 팝 댄스 'NONONONONO' 를 더블 타이틀로 내세웠고, 미국 팝 가수 토미 페이지의 곡 'I`m Falling in love', 하수빈 자작곡 '너는 나의 사랑의 이름' 등으로도 음악 방송에서 활동했다. 신인 가수로는 보기 드물게 발라드와 댄스 더블 타이틀로 활동하는 형태를 취했고, 가요방송 차트에서는 발라드 '더 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를, 예능 쇼 프로그램 등에서는 'NONONONONO'를 선호했다.

방송계와 언론으로부터 알프스 소녀, 무공해 소녀가수라는 별칭을 얻었다. 또한, 토미 페이지로부터 리사'Lisa'라는 이름을 선물 받았다. 그녀의 (후대의 평가로는) '시대를 초월한' 예쁜 미모와 순정만화 속 주인공 같은 아련한 이미지로 10대 남학생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지만, 반면 10대 여학생들에게는 많은 시기와 질투를 받았다.

넥스트기타리스트로 활약한 정기송이 '노노노노노'를 편곡했으며, 서울나그네 & 사랑과 평화의 키보디스트이자 작곡가였던 김명곤이 '더 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 마'[6]를, 바이올리니스트로도 활약했던 심상원이 '너는 나의 사랑의 이름'[7], '잊혀져 가는 건'을 편곡하였다.

2000년대 초반과 2010년대 초반에 하수빈이 컴백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면서 앨범이 재평가되었고, 2020년 5월 28일 음원사이트에서 음원이 드디어 풀리게 되었다.[8]
테이프 뿐만 아니라 LPCD에는 각각 조금 다른 포즈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현재는 희귀음반이다.

《 Lisa in Love 》

1.더 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
2.노노노노노
3.너는 나의 사랑의 이름
4.햇살과 같은 그대의 미소
5.I'm Falling In Love
6.잊혀져 가는건
7.아름다운 너
8.사랑의 왈츠

3.2. 1993년

타이틀 '그대 나를 떠나가나요' 뮤직 비디오
하수빈 시간여행1993_ 한국예능 _ analogue films_HaSooBin

1993년 2집 앨범 《The Heart of...》을 출시한다. 작곡가 유정연, 윤상, 예민, 김형석 등의 뮤지션등이 참여된 Naturalism 유럽 팝 스타일의 음악들로 구성된 앨범을 선보이며, 해외 로케이션 뮤직비디오 및 영상집[9]을 수록한다. 영상집 촬영에 참여한 분은 김중만 작가이다.

1993년 6월 28일, KBS2 뮤직스테이션으로 컴백 무대를 가졌으며, 9월 2집을 발매했다. 대표곡은 '그대 나를 떠나가나요', '처음 사랑 이야기', '나'가 있다.

앨범 대부분 곡을 작사하였다. 그 중에서도 새로운 음악적 구성 요소를 취한 왈츠 곡 '마지막 소녀기'는 하수빈의 10대 소녀기를 회고하며 만든 자작곡으로, 곧 20세를 맞는 축하 의미로 발표되었다.
한층 성숙해진 음악과 서정적인 가사, 멜로디의 앨범이었으며, 여러 작곡가들의 참여로 인해 다채로움 속 일관된 정서가 있었으나, 이미 가요계는 댄스 그룹의 열풍이 너무나 강렬하게 불고있던 시기였다.

MBC 청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불어불문학과 다흰 역으로 출연하며 잠깐 연기자로 겸업하게 되고, 드라마 OST도 함께 방송 되어 음반을 발매하였다.

CD에는 LP에 들어간 사진 일부가 작게 수록되어 있다. 1집에 비해 구하기 수월한 편. 뮤직비디오는 배급사였던 현대음향에서 제작되었다.[10]

1집의 'I'm Falling in Love'도 타이틀곡 뮤비와 함께 만들어졌는데, 이 'I'm Falling in Love' 뮤비가 홍콩 MTV의 전파를 타기도 했다. 대선배 조용필, 한국에서 은퇴한 후 홍콩에서 활동한 김완선[11]을 논외로 치면 중화권에도 이름이 알려진 거의 최초의 한국 가수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 The Heart of...》

1.그대 나를 떠나가나요
2.그대 눈에 젖은 나
3.날 잊어야해
4.마지막 소녀기 (별. 소녀)
5.나
6.처음 사랑이야기
7.날 대신하기에 충분한 그대
8.그대 나를 떠나가나요(Remix)

3.3. 1994년

1994년 드라마와 동명인 OST 사랑의 향기를 발표해 활동했고, 3집 발표직전 타이틀곡 나를 지켜줘[12]로 음악 방송 등에 선행 출연하다 돌연 활동을 중지하게 되었다[13]

참고로 하수빈의 2010년 인터뷰엔, 그때의 3집은 다 만들어져서 발매만 하면 되는데, 건강상 문제와 음악적인 견해, 연예 활동에 대한 회의감 등으로 망설임 없이 접게 되었다고 한다.

예정된 3집 관련해선 한국음악 저작권협회와 국립중앙도서관에 'Happy Happy Day(행복한 마음)'이라는 수록곡[14]의 악보가 남아있는 것과 '나를 지켜줘' 생방송 쇼 프로그램이 남겨져 있다.

한편, 첫 기획사 티선엔터프라이즈와는 정상적으로 계약만료되어 결별했다.
하수빈 My Universe

4. Produce 참여 앨범

급변하는 가요계에 적응하기 위해 더욱 창의적인 음악의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캐나다로 이주하여 음악, 회화, 조형미술, 해외건축 디자인, 패션 컬렉션, 문학 등 더욱 다채로운 예술 장르에서 그 역량을 표현하며 지냈다.

천부적으로 섬세한 감성은 그녀를 다시 음악의 길로 선회하게 만들었고, 소속사 La stella Inc. 를 설립하여 음악 프로듀서, 제작자로 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정식적인 복귀 의사는 밝히지 않아 많은 팬들에게 아쉬움을 갖게 했다.

Produce 참여 앨범

M.Street 1집 《Boy's story in the city》— 제작 Agency , CoProducer (2003년)
SBS 드라마 《매직》OST — CoProducer (2004년)
KBS 2TV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OST — CoProducer (2004년)
Beyond 1집 《Sailing》 — 제작 Agency, Produce (2005년)
《영화같은 음악의 시작》 — 제작 Agency, Produce (2006년)
Mr. mimi 싱글앨범 《우리 결혼해》 — 제작 Agency, Produce (2006년)
Beyond 싱글앨범 《얼마나》 — 제작 Agency, Produce (2007년)
싱글앨범 《안녕》— 제작 Agency, Produce (2007년)

OST

SBS 드라마 《사랑의 향기》(1994년)
KBS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년)
SBS 드라마 《매직》(2004년)
하수빈 Coproduce 작_ 이 밤을 넘어 + Sailing

5. 3집 《 The Persistence Of Memory 》2010년

하수빈을 아티스트로의 성장으로 이끈 《 The Persistence Of Memory - 추억의 지속》 그녀의 감성 판타지, 영혼의 음악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삶의 여정, 사랑, 평화 그리고 오랜 그리움의 정서를 영상미학적 음향 ( Cinematic Sound ), 섬세한 문학적 언어와 감성적 음악으로 조각함이 인상적이다. 이 앨범은 기획 단계부터 한국 미국 영국 등 국내외 최고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여 완성된 수작(秀作)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앨범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전 곡을 직접 프로듀스, 작곡, 작사, 연주해 싱어송라이터로의 역량을 표현하고 있으며,특히 스티비 원더의 기타리스트이자 머라이어 캐리. 제니퍼 로페즈. 마돈나 등 수없이 많은 세계적 뮤지션들의 명반에 연주 기록이 있는 미국 기타리스트 모리스 오코너 Morris O`Connor 가 그녀의 새 음악에 참여됨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애틋한 그리움과 깊은 사랑을 표현한 헌정음악으로, 물리적 거리, 시간과 공간, 삶의 방식도 뛰어 넘을 수 있는 음악적 환경 속에서 열정과 정성을 다한 앨범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내면적 감성은 매우 회화적이다. 그 감성과 자연 생태에 근접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소리의 결을 찾고 추구했으며 회화적인 사운드로 채색했다.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The Persistence of Memory와 동명 타이틀을 취한 이 앨범은 그의 회화, 전위적 예술이 그녀의 음악에 큰 영감을 주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녀는 음악적 공간감을 표현하기위해 마치 시간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듯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원대한 바다... 마치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를 그려내 듯 하늘, 바다, 별, 태양, 바람, 비, 구름, 중력, 꽃, 숲, 호수, 파도, 피아노... 이 모든 것을 추억이라는 모태로 형상화 했으며, 자연 그 생태와 환경에 근접한 감상들을 영상미학적 음향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고뇌에 찬 긴 휴식 이후 만나게 된 그녀의 음악 세계는 ,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 된 듯, 더 깊은 음악적 성장과 감성적 충만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대표곡은 < Island (내 그리운 나라)> , < Memories > , < 아이리스 정원 > 등이다.

1.Island (내 그리운 나라)
2.Memories'''
3.A Lovely Day
4.아이리스 정원
5.노르웨이 숲
6.파리엔 비가 와요
7.La stella
8.카사블랑카
9.Lake Louise
10.고백
11.사랑한 후에
12.여름 방학
13.The Winner
14.Sky Walker (Dedicated To My Fans)
15.Happy Birthday
16.OIA
하수빈 Island (내 그리운 나라)+ Memories+ 아이리스 정원


하수빈 파리엔 비가와요_ A rainy day in Paris_The Persistence of Memory 앨범 중에_
하수빈 파리엔 비가와요_ A rainy day in Paris_The Persistence of Memory 앨범 중에_ J.S. Bach_ Violin Concerto No.1


2011년, 콘서트 7080에 출연해서 신곡인 'A Lovely day' 와 함께 다시 한 번 노노노노노, 더 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 등을 부르기도 했다. 뮤직 뱅크에서 신곡 Memories를 불렀다.

2019년 이후, 유튜브 등지에서 하수빈의 1집 시절 미모가 큰 화제가 되어[15] 관련 영상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로 인한 것인지 3월 후반 유튜브 뮤직을 시작으로 국내 스트리밍 사이트인 멜론 등에 1집 앨범이 풀리게 되었다.

6. 문학

뉴에이지 영상시집 << La Stella... 그리움은 아름다운 이 되어... >> 2010년

싱어송라이터 하수빈의 또 다른 예술 세계, 그녀의 감성적 문학 세계, 풍경화 같은 영상 속 자연이 주는 감동과 오랜 여정을 담고 있는 평화, 그리고 긴 그리움, 추억의 항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녀의 내면적 감성은 매우 회화적이다. 노르웨이 숲, 그 끝없는 광활함이나 눈이 시리도록 맑고 깨끗한 캐나다의 호수, 신비로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 듯 생명력을 품고 있는 자연의 신비스러움에서 많은 시적 영감을 얻었다. 영상미학적 Cinematic 한 내면적 성찰을 섬세한 문학적 언어로 표현함이 인상적이다.
영혼마저 깨끗한 차가울 만큼 맑고 투명한 마치 하얀 눈꽃이 필 것 같은 눈 덮인 겨울 호수, 비오는 파리의 세느 강변을 거닐 듯 아련한 애수를, 그런 삶의 여정을 아름답게 표현해 가는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를 좋아했고, 알퐁스 도테의 <> 을 읽고 난 후의 느낌처럼 깨끗하고 맑고 애잔한 감동을 또한 오래 전 고성의 안개처럼 정서적 촉촉함을 전달해줄 것이다. 이제 음악, 건축 조형, 디자인, 문학에 이르기까지 더욱 다양한 예술적 재능의 그녀를 확인할 수 있어서 대중들은 더없이 반가움을 표현한다.

프로듀서, 작곡 작사가, 해외건축디자인, 조형장식미술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 그동안의 삶이 그대로 투영된 듯, 또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이 영상 시집은 지나왔던 시간과 그녀의 감성을 이해하기 위한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I. The Dawning

# 그대를 추억하다
# 새 벽
# A rainy day in Paris (파리엔 비가 와요)
# Oasis
# 기 도
# Memories
# 추억 살이
# 여전히 손이 차요
# 한 걸음 더 빠른 길
# Sky Walker (Dedicated to my fans )
# 일상엔 이별이 없다
# 삶 속에서
# La Stella
# 후 (後)
# Gravity


II. Through all Eternity

# 4月의 은파 (銀波)
# Through all Eternity
# 우유 빛 추억
# Angel
# 감 동
# Summer Vacation
# Happy Birthday
# Iris Garden
# 엄마를 닮은 바다
# 사랑한 후에
# 날 대신 하기에 충분한 그대
# 카사블랑카 (웅대한 사랑)
# 침묵으로 고백하기
# 8月부터 8月까지의 꽃과 꽃씨
# Mannequin


III. Lake Louise

# 고 백
# 노르웨이 숲
# 나
# 무인(無人)의 산책
# 9月의 비
# 아지랑이 빛 코끼리
# 제 가슴은 여러분의 사랑으로 ( A Letter from Canada )
# Love in October
# 달라져 가요
# 기다림의 정원
# 별이 된 새
# 그리움을 숨겨둘게
# 사랑은 생명이었음을
# Lake Louise
# 정말 안녕

VI. The Persistence of Memory

# 안개 속 하루의 풍경
# X-MAS Night
# 1月의 戀
# 만남 그리고 10년간의 이별 I really appreciate your love
# 헤어짐은 없어
# Victoria 에서
# 쉼
# 날 향해 있던 너
# Saint Lawrence (한국의 달빛을 닮은 하루)
# The Persistence of Memory
# 추억은 안개 빛으로
# 어느 고독이 깊은 날에
# Childhood Remembered
# 사랑은 위대하다
# Island (내 그리운 나라)

7. 여담

  • 2014년, SMROOKIES에 의하여 '노노노노노'가 커버 겸 리메이크되었는데, 편곡이 상당히 잘 되고, 안무가 추가되어 원곡만큼 발랄함과 귀여움을 잘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곡으로 몇 번이나 무대에 올랐는데 리메이크를 상당히 잘했기 때문에 정식 데뷔 후에 타이틀 곡으로 삼아도 될 만큼 퀄리티가 좋은 편이다. 그러나 결국 이들이 정식 데뷔까지 이뤄지지못해 이 음원은 정식 출시되지 못했다.
  • 유재석과는 대학 선후배 사이로, 유재석의 동기인 배우 예지원의 말에 따르면 '마르고 가녀린 여자'라는 유재석의 이상형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외모였다고 한다. 그래서 예지원은 줄곧 유재석이 하수빈과 사귀는 사이였다고 착각하고 동기들 사이에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녔다는 듯. 정작 유재석이 밝힌 바로는 당시 하수빈은 연예계 데뷔 준비를 하느라 방과 후면 집에서 차가 와있는 등 마중나오고 해서 딱히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던 모양.#

8. 관련 문서



[1] 공식 홈[2] 소속사 홈페이지[3] 유튜브[4] #[5] 1993년 1월 23일 토토즐에서 한복을 입고 부른 버전이 유명하다. #[6] 김명곤은 이 노래에서 키보드 뿐만 아니라, 색소폰도 연주하였다. 생전 김명곤은 색소폰 연주자로도 명성을 떨친 바 있다.[7] 하수빈이 17살 시절인 1990년경에 만든 자작곡이라 한다. 그의 아름다운 바이올린 멜로디는 하수빈의 작곡 악보에서 기인했다.[8] 현대음향의 음반 판권을 2000년대 초반 구입한 수도미디어가 음원 서비스를 개시했다.[9] 사진작가 김중만 참여[10] 당시 현대음향은 LD와 뮤직비디오 사업을 펼치고 있었으며, KMTV를 운영하기도 했다. 현대음향 소속 감독 출신으로는 하홍, 홍종호 등이 있다.[11] 하수빈과 동시대 가수이다.[12] 하수빈 작사/작곡[13] 건강 상의 이유로 추측된다. 실제로 1993년 이후, 활동 영상을 보면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을 볼 수 있다.[14] 하수빈 작사, 하수빈 작곡, 정기송 편곡. 혹은 '나를 지켜줘'와 같은 곡 이다. 후렴에 '행복한 마음' 파트가 잠깐 나오기 때문. 심의번호는 9408-8893.[15] 하수빈의 후세대 네티즌들에게는 이구동성으로 '2020년대 걸그룹 센터도 능가하는 수준의 미녀가 1990년대 초반에 있었다는 게 놀랍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0년대 일본보다 잘 살고 이탈리아랑 동급의 선진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반응인데 하물며 90년대 초반 포르투갈보다도 못 사는 '중진국의 최대'에서 살던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중진국이던 나라에서 혼자 선진국에서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