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은 1855년 8월 25일, 프로이센 왕국의 실레지아의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다. 그는 1872년 해군에 입대하였다. 1882년, 폴은 당시 실험중이던 울란 어뢰정의 사령관이 되었다.
당시 실험중이던 어뢰선의 모습
1884년에는 당시 실험중이던 어뢰선에 발을 올렸고, 나중에 제독이 될 아우구스트 폰 히어린겔의 배와 충돌했으나 둘 다 다치지 않았다. 1890년대에는 제국해군청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1900년 그는 청나라에서 일어난 반란인 의화단의 난의 진압을 위해 파견된 해군에 포함되었다. 그는 SMS 한자를 중국에서 지휘하였다. 이 공로로 중령으로 승진하였다. 1913년 1월, 제독이 되면서 해군 참모총장이 되었다. 그리고 귀족 작위를 받았다.
제1차 세계 대전 개전 당시 해군 참모총장이었던 폴은 독일의 함선들은 영국 대함대와 결전을 벌이기보다는 독일 해안의 국지적 방어를 위해 쓰여야 하며, 영국의 함선들은 유보트가 침몰시키면 된다고 주장했다. 1915년 도거 뱅크 해전 이후 폴은 프리드리히 폰 잉게놀의 뒤를 이어 2월 2일 대양함대의 사령관이 되었다. 폴은 매우 신중하게 자신의 함대에게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명령했다. 그는 중립국인 미국을 자극하고 싶어하지 않았으나, 그의 잠수함 중 하나인 U-20가 RMS 루시타니아를 격침하면서 미국인들이 일부 죽었다. 이는 독일과 미국의 관계를 위협했다. 다행히 독일 제국은 미국에게 사과하며 미국의 참전을 막아냈다. 하지만 당시 폴은 간암 투병 중이었고, 결국 간암으로 죽었다. 죽기 전 그는 대양함대에서의 공로로 붉은 독수리 훈장을 받았다.
[1] 1915년의 모습[2]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폴'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