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연방 존속에 관한 전연방 국민투표 Всесоюзный референдум о сохранении ССС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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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목적 | <colbgcolor=#fff,#1f2023>소비에트 연방의 존속 여부 결정[5] | ||||||||||
투표율 | 80.03% | ||||||||||
개표 결과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찬성 | 반대 | |||||||||
113,512,812표 77.85% | 32,303,977표 22.1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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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 존속에 관한 국민투표는 1991년 3월 17일 실시한, 소련의 존속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로, 건국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행된 소련의 국민투표이다. 전체 투표 결과 찬성 투표는 77.85% 반대 투표는 22.15%로 연방 유지에 압도적인 표가 나왔다. 다만 연방 반대 국가는 아예 참여 자체를 하지 않았다. 선거 결과 찬성 국가와 반대 국가가 확연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각 공화국 별로 찬성과 반대는 아래와 같다. 아래 표는 투바 공화국 같은 자치 공화국의 선거결과는 옮겨오지 않았다. 자치 공화국들의 선거결과도 연방 유지가 압도적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신연방조약을 체결, 1991년 7월에 최종 합의가 이루어진 바 소련을 대체할 주권국가연맹(Союз Суверенных Государств, ССГ)을 출범시킬 예정이었지만, 같은 해 8월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사실상 폐기되고 말았다.
2. 결과
빨간색 부분은 찬성국가. 나머지 부분은 반대국가.[6] 출처 여담이지만 노르웨이 소속인 스발바르 제도가 러시아령으로 칠해졌다.
2.1. 찬성 국가
나라 이름 | 찬성 | 반대 |
동슬라브 3국 | ||
러시아 | 73% | 27% |
우크라이나[7] | 71.48% | 28.52% |
벨라루스 | 83.72% | 16.28% |
캅카스 | ||
아제르바이잔 | 94.12% | 5.88% |
중앙아시아 | ||
카자흐스탄 | 95% | 5% |
우즈베키스탄 | 94.73% | 5.27% |
투르크메니스탄 | 98.26% | 1.74% |
키르기스스탄 | 95.98% | 4.02% |
타지키스탄 | 96.85% | 3.15% |
- 부재자 투표
찬성 | 반대 |
89.8% | 9.2% |
2.2. 반대 국가 (투표 거부)
아래의 6개국은 이 투표가 진행되기 이전에 이미 독립을 선포하거나 독립 투표가 예정된 국가들이었으므로 투표를 실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따라서 6개 공화국은 중앙선거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국가들에 거주하던 찬성파(주로 러시아계)들은 투표를 원했으며, 국영 기업소와 군사기지, 노동조합, 교육기관에 소속되었던 사람 가운데 투표를 원하던 사람들은 소련중앙선거위원회에 등록을 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래서 이들의 개표 자료는 남아있다. 그러나 사실상 연방 유지 찬성파만 참여하였기 때문에 개표 결과는 크게 의미가 없다. 또한 현재의 자치 공화국인 몇몇 지역들에서도 참여하였다.- 발트 3국
- 라트비아 - 1991년 3월 3일에 이미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를 하여 73.68%의 찬성으로 독립을 결정하였기 때문에 연방 투표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 에스토니아 - 라트비아와 마찬가지로 1991년 3월 3일에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를 하여 77.83%의 찬성으로 독립을 결정하였기 때문에 연방 투표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 리투아니아 - 1991년 2월 9일에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를 하여 90.47%의 찬성으로 독립을 결정하였기 때문에 연방 투표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 아르메니아 - 1991년 2월 열린 아르메니아 최고 소비에트에서 연방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9월 21일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를 진행할 것을 의결하였다. 해당 국민투표에서 72.46%의 주민이 소련에서 독립하는 것을 지지하였다.
- 그루지야 - 아르메니아와 마찬가지로 그루지야(조지아) 정부 인사들이 연방 투표 보이콧을 선언하고 대신 3월 31일에 독립에 관한 투표를 실시하였다. 이 투표에서 99.08%의 주민이 독립을 찬성하였다. 친러 성향이 강한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는 연방 국민투표에 참여하였다.
- 몰도바 - 친루마니아 성향이 강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연방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독립 투표를 진행하였다. 이 투표에서 98%가 독립을 찬성하였다. 다만 친러성향이 강한 가가우지아 자치공화국과 트란스니스트리아 자치공화국에서는 연방 투표가 진행되었다. 특히 가가우지아에서는 98%의 주민이 소련 존속에 찬성하였는데 이것이 이후 내전의 원인이 된다. 수도인 키시너우에서는 소련 국방부의 군사 지역에 한해 투표를 진행하였다. 게다가 몰도바는 다른 공화국과는 상황이 다른데 발트 3국, 캅카스 3국과는 달리 2차대전 이후 추축국이었던 루마니아에서 소련에게 전리품 개념으로 넘어간 영토라 칼리닌그라드처럼 독립의사랑 상관없이 계속 붙들어맬 명분은 충분했다.
아제르바이잔 SSR의 일부분이지만 아르메니아 민족이 다수 거주하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에서도 국민투표가 실시되었으나, 투표율은 20.6%에 불과했다. (찬성률은 87.3%)
3. 부가 투표
러시아 SFSR, 우크라이나 SSR, 우즈베크 SSR, 키르기스 SSR에서는 전연방 국민투표와 같은 날 부가적인 투표를 실시했다.- 러시아 SFSR : "직선제로 선출되는 러시아 대통령직 도입에 동의하십니까?"
- 71.38% 찬성
- 우크라이나 SSR : "우크라이나가 "우크라이나의 주권 국가 선언"[8]에 기초하여 주권국가연맹의 일부분이 되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 우즈베크 SSR : "우즈베키스탄이 새로운 연맹 안에서의 동등한 권리를 가진 주권 공화국으로 남아야 하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 94.9% 찬성
- 키르기스 SSR : "키르기스 공화국이 새로운 연맹 안에서의 동등한 권리를 가진 주권 공화국이 되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 62.2% 찬성
4. 8월 쿠데타 이후
투표 결과에서 보듯 국민투표 실시 시점 에서의 우크라이나는 독립에 반대한 여론이 많았지만, 8월 쿠데타 이후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 1991년 12월 8일에는 1991년 12월 1일 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가 있었고, 찬성율은 90% 이상이었다. 이는 친러 성향이 강한 동부도 마찬가지였다.의외로 옐친은 8월 쿠데타가 발생했을 당시만 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및 기타 중앙아시아 공화국을 연결하는 연방을 유지하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고르바초프와 함께 우크라이나 독립을 지속적으로 방해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1991년 가을, 우크라이나 거주자가 12월 1일에 완전한 독립을 위해 투표할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지자 옐친은 국민투표가 되돌릴 수 없는 결과가 될 것임을 깨달았다. 공식 투표 집계를 보기도 전에 옐친은 독립적인 러시아 국가(지금까지 구 소련의 가장 크고 강력한 구성 요소)에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새로 선출된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레오니드 크라우추크와 벨라루스 의장이자 사실상 벨라루스 국가원수인 스타니슬라우 슈시케비치와 합류하기로 결정했다.[9][10] 12월 1일 우크라이나의 국민 투표 결과는 8월 쿠데타와 함께 소련 붕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평가될 정도로 소련 붕괴에 결정적인 사건이다.[11] 소련 해체 당시에는 투표가 없었지만 투표를 해봤자 우크라이나 없이 나머지 국가들만 소련을 유지하겠다는 국민투표가 될 뿐이었다. 이렇게 되면 무슬림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를 원하지 않았던 옐친은 결국 소련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5. 관련 문서
[1] Union, Союз[2] Federation, федерация 모두 둘 다 연방으로 번역하지만, 소유스(Союз)는 EU와 같은 국가 연합에 가깝고 페데라치야(федерация)는 현재의 러시아와 같은 연방에 해당한다. 소련이 러시아 중심의 연방스러운 모습을 보여 이 같이 번역되었지만 소련을 연방으로 번역한 것은 엄밀하게는 오역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연합을 러시아에서는 소유스로 번역하며, 유라시아 경제 연합 역시 소유스이다. 주한 소련 대사관이나 고려인 신문 등에서는 Союз를 한국어로 "연맹"이라고 번역했다.[3] 특이하게도 원하는 선택지에 O나 V 등의 표시를 하는 것이 아닌, 원하지 않는 선택지에 X 표시를 하는 방식이었다. 즉, 소련 존속에 찬성(예)하고자 하면 '아니오'에 X 표시(예 / 아니오)를, 반대(아니오)하고자 하면 '예'에 X 표시(예 / 아니오)를 하는 것. (여기서는 편의상 X 표시 대신 취소선을 사용하였다.) 또한, 아래에 나오는 주의사항에도 있다시피 두 선택지 모두 X 표시가 있거나 어느 선택지에도 X 표시가 없는 등의 이유로 어느쪽을 투표하였는지 불분명한 경우는 무효표가 된다.[4]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자캅카스·호라즘·부하라의 통합.[5]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본 투표에서 국민들의 압도적인 찬성을 얻어 일부 공화국의 독립 여론을 억제하고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신연방조약을 체결하여 새로운 형태의 소비에트 연방인 주권국가연맹을 결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6]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조지아, 몰도바, 아르메니아는 국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7] 서부 우크라이나(할리치나 3개주) 주민들 사이에서는 보이콧 움직임이 있었고, 실제로 이 지방 주민들 일부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대신 "독립 여부"를 묻는 대안투표에 압도적으로 찬성표를 몰아줬다. 투표에 참가한 할리치나 3개주 주민들의 찬성률도 20%가 안 되어 타 지방에 비해 독보적으로 낮았다. 만약 전 주민이 참여했다면 찬성 비율이 더 줄었을 가능성이 크다. 수도 키이우시에서도 찬성률이 과반을 밑돌았으나(44.6%) 이들 지방 이외에는 모두 과반수 주민이 찬성했다. 지도[8] 1990년 7월 16일[9] Peter J. Potichnyj (1991) The Referendum and Presidential Elections in Ukraine, Canadian Slavonic Papers, 33:2, 124-129[10] Mark Kramer (2022)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A Case Study of Discontinuous Change, Journal of Cold War Studies, 24 (1):213[11] Mark Kramer (2022)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A Case Study of Discontinuous Change, Journal of Cold War Studies, 24 (1):202-204, 213,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