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09:50:46

2011 홍익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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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배경3. 발단
3.1. 저임금 문제를 지적하는 입장3.2. 파견근로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입장3.3. 총학생회 책임 공방
3.3.1. 총학생회에 대한 입장
3.4. 홍대노동자와 함께 한 홍대생들
4. 결말5. 후폭풍
5.1. 노조간의 반목과 분열5.2. 그러나 다시 합체
6. 둘러보기

1. 개요

2011년 1월 초부터 2월 하순까지 이어진 홍익대학교 청소·경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본관 점거 사태.

2. 배경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주장한 노조 측과 이에 반발한 재단 측의 대립으로 인해 사건 당시 매우 뜨거운 논란이 일었다.

이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은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면서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75만원의 임금과 한 달 9,000원(=하루 300원)의 식대를 받고 노동했다. 청소노동자는 근무지 외의 노동 청소도 해 왔으며 같이 농성한 경비노동자는 명백한 근무 외의 항목인 교수의 이삿짐 나르기 등도 해 왔다고 한다. #

이러한 처지를 견딜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2010년 12월 2일 노동조합을 결성했으며 170명 중 140명이 이 노동조합에 가입했지만 설립 과정에서도 학교가 노조 출범식을 교내에서 못하게 막는 등 학교와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학교는 2011년 1월 2일 새벽에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면서 노동자 170명 전원에 대한 해고를 단행했다. 이에 대해 학교는 "용역업체 측의 계약 포기가 주원인"이라는 주장을 펼쳤지만 노동조합 구성원들은 "학교 측이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세우며 용역업체의 계약 포기를 유도했다" 고 주장했다. 실제로 홍익대는 업체와의 계약 과정에서 낮은 용역 단가와 단기적인 용역계약 연장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고 소식을 전해들은 노조 지도부는 곧바로 총무과를 찾았지만 문전박대만 당했을 뿐 별다른 대책을 논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재용 공공노조 서경지부 조직차장 차장은 "몇 번이나 총무과를 찾았지만 직원들은 (상급단체에 대해) 아줌마들을 팔아서 장사한다는 식의 욕설을 했고 자신들과 관계 없다며 이야기를 회피했다" 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해고에 항의하기 위해 홍익대학교 본관을 점거하여 농성을 시작했다. 49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유지되어 오던 이들의 농성은 2011년 2월 20일 학교 재단과 용역업체간의 합의안이 도출됨으로써 끝났다.

3. 발단

이 사태의 핵심은 제정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해 왔던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의 문제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다수의 학교에서 이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고 특히 비슷한 시기에 동국대학교에선 총학생회가 사태에 직접 개입해 학교 측과 협상하여 원만히 타결을 본 것과 비교되었다. 일부에선 어느 정도 조율의 여지를 두고 차분히 협상해 임했던 다른 학교와 달리 본 사태는 학교와 노조 쌍방 모두 유예기간을 주지 않고 계약 갱신이 임박한 시점에서 굉장히 기습적으로 카드를 들이밀었다고 주장했다.[1] 그러나 이미 계약 재갱신을 지속적으로 해온 배경이 있는 상황에서 학교가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계약 기간만을 재갱신하고 임금인상을 협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2] 학교 측의 입장이 더 우위에 서 있었다.

다음은 1월 6일에 올라온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 명의의 공식 입장이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홍익대학교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140여명의 노동자 분들이 용역업체 계약의 연장과 처우문제로 지난 1월2일부터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나, 그에 대한 책임은 용역회사와 학교 측의 관리상의 문제로 판단됩니다. 추우나 더우나 우리 홍대생들이 깨끗하고 편안한 환경 속에서 학습에 정진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청소-경비 노동자분들에게 제45대 Change You Can Plus 학생회 및 중앙운영위원회는 선봉에 나서 적극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학생의 환경을 지켜주셨던 노동자분들이 아닌 외부 세력의 학내 점거나 농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유라도 반대하는 입장이며, 학생들의 편의나, 학습에 지장을 주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열악한 근무조건 속에서 우리 학생들을 위해 도움을 주신 청소-경비 노동자분들을 위해 총학생회 및 중운위에서도 지지를 아끼지 않으며 가능한 많은 대화를 통해 이 사태를 조속히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하 서명 날인 :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 총여학생회장, 사범대학 학생회장, 건축대학 학생회장, 공과대학 학생회장, 경제학부 학생회장, 경영대학 학생회장, 문과대학 학생회장, 미술대 학생회장, 법과대학 학생회장, 동아리 연합회 비대위원장

3.1. 저임금 문제를 지적하는 입장

학교 측은 이 사태 전까지 청소노동자들에게 75만원, 경비노동자들에게 90만원 정도의 임금을 지급해 왔다. 이 사태가 언론에 부각되기 시작하자 학교 측은 "기존 용역비보다 70% 인상된 금액으로 용역계약 갱신 등 업체의 무리한 요구로 협상이 결렬됐다" 고 주장했지만 문제는 이들의 임금을 70% 인상한다고 해도 140만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시급은 4,450원으로 타결되었다.

다음은 학교 커뮤니티인 홍익인 사이트에 게시된 어느 네티즌의 주장이다.

근로기준법에 휴게시간을 제외한 근무시간은 주당 40시간 이하로 제한되어있고, 이를 한달 31일로 계산하면 근무시간은 172시간 정도가 된다. 2010년의 최저시급 4,110원을 곱하면 최저임금은 706,920원으로 아주머니들이 받으셨다는 기본급 75만여원은 최저임금 기준을 상회하는 것이다.

식대는 법적으로 기본급에서 제외되고 지급의무가 없는 보조수당으로 아주머니들이 받으셨다는 9,000원은 사실 학교에서는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돈으로, 복지와 사기 등을 위해 명목상 가져다 붙인 금액으로 이러한 비현실적인 보조수당은 다른 직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반론에 따르면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근무 시각은 오전 8시에서 오후 6시까지의 10시간이므로 주당 근무시간 40시간 제한 같은 것이 지켜졌을 리가 없다고 본다.[3] 하루에 8시간씩 주 6일을 노동해 한달에서 일요일을 뺀 25일을 노동했을 경우 이들이 받아야 할 급료는 82만 2천원이고 정규 노동시간 8시간 외의 두 시간 추가 근무에서는 기본급에서 1.5배를 가산해야 하므로 추가 노동시간의 경우 받아야 할 급료는 30만 8250원이다.

그러나 대학교 측에서는 점심시간인 2시간과 오후의 1시간을 각각 쉬는 시간으로 돌려 운용했으므로 1일 정규 노동시간을 지켰음은 물론 최저임금을 지켰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근무 시각은 위의 10시간에서 3시간이 빠진 7시간이다. 이는 실제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이 8시간인 경우 1시간의 휴게시간을 지정하라는 준칙에 따른 것이며 휴게시간이기 때문에 급료에 산정하지 않아도 법적인 하자가 없을 수 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고용주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야 하지만 학교에서 호출시에 식사 시간이라도 바로 일을 해야 했다는 증언이 있는 것을 봐서 홍익대에서는 근로기준법을 철저히 준수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4]

식대가 법적으로 기본급에서 제외되고 지급 의무도 없는 '보조수당' 인 것은 맞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반드시 12가지 사항에 대한 취업규칙을 작성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하며 이 가운데는 식비도 포함된다. 만약에 이 취업 규칙이 정말 민주적인 노동자와 사용자의 합의에 의해 작성되었다면 이런 비정상적인 식비가 나올 수 있었을까? 선심을 쓴 것까진 사실이지만 생색내기 정도라고 볼 근거가 된다.

식대는 명목상일 뿐이며 학교에서 나오는 폐휴지를 팔고 받는 돈 대신 매달 9천원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3.2. 파견근로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입장

이들 홍익대 청소노동자는 파견이라는 고용 형태에 의해 고용된 사람들이다. 파견은 사용자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용역회사를 통해 노동자들을 공급받는 고용 형태를 말한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려면 대학본부가 아니라 용역회사를 찾아가야 한다. 청소노동자가 취업했을 경우 학교 안에서 청소하면서 학교 사람에게서 업무에 관한 지시를 받지만 청소노동자의 소속은 학교가 아니라 용역회사고 월급도 학교에서 계약금을 받은 용역회사가 준다. 파견의 문제점 중 하나는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원청과 이를 공급하는 용역회사가 이들을 이중으로 착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수익을 남겨야 하는 용역회사는 여성노동자들의 적은 월급에서 수수료를 떼어가며 원청은 보다 더 싼 값에 노동자들을 공급받으려고 한다.

홍익대학교 안에서 발생한 문제인 만큼 홍익대학교 당국이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인데 실제로 청소노동자들은 "해고에 대한 학교 책임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홍익대학교 총장이 "우리는 일터를 빼앗은 적이 없다"고 발언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교 측은 '자신들이 이 사태에 관해 전혀 무관하며 해당 사태는 노동자들과 파견용역회사가 알아서 해야 한다' 는 주장을 폈다.

이러한 주장이 가능한 이유는 파견법 때문에 노동자들을 고용한 주체와 사업장이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용 형태는 실제 고용관계에 있어 원청의 책임을 모호하게 한다고 줄기차게 비판받았다. 실제 고용관계에 있어 원청, 즉 대학교가 도저히 무관계할 수 없는데도 이들의 책임을 부당하게 면책한다는 것이다. 이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항의하거나 노동조합을 만들 경우 원청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 이 사태처럼 원청이 용역회사와 맺은 계약만 해지하면 노동자들은 자동적으로 실업자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사실은 문민정부 말기에 탄생한 파견근로법이야말로 진정한 문제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파견법 자체가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악법으로서 헌법 및 직업안정법의 정신을 침해하고 실제로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으로 인해 이 법을 개정 혹은 폐지하려는 시민사회단체의 움직임이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3.3. 총학생회 책임 공방

새로운 비운동권이 당선된 후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벌였는데 총학생회는 노동자들을 적극 지지하겠으나 다른 외부세력[5]이 개입해 학생들의 수업 분위기를 침해하는 것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논리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애당초 출발선상에서부터 학교의 입장이 법적으로나 기득권적 힘으로나 우세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으므로 학생회가 이런 입장을 지킨다는 것은 노조 측의 힘을 키우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노조를 위축시킨다고 비판받았다.

또 간담회 자리에서 학교 측 자료를 중심으로 사태를 진단하여 노동자들의 주장을 사실무근이라고 폄하하거나[6]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림에 있어 비대위의 활동에 상식적 수준 이상의 제약을 두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았다.[7]

총학생회가 말로는 이들을 지지한다고 해 놓고도 적극적으로 그것을 행동에 옮기지 않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의 타 학교 총학생회가 학내에 비판자보를 붙였으며 고려대학교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홍대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켜 학내 곳곳에 게시했을 정도로 학외 여론은 총학에 매우 비판적이었다[8].

홍익대 총학생회에서는 학교측 논리를 다수 사용하여 대응해 네티즌들에게 더더욱 까일 거리를 제공한 셈이었다. 비록 이 사태에서 노동조합이 감정에 호소한 선전활동을 해 왔다고는 하나 그들의 상급단체인 공공노조와 민주노총은 이 사태의 문제점을 더 꼬이게 만든 파견법에 대한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 왔으며 노동조합의 입장을 지지하는 외부 세력도 해당 법조항이 일으키는 고용관계의 모순과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꾸준히 하고 있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외부세력들이 이 투쟁을 '반정부투쟁' 으로 변질시키는 감이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로서는 매우 억울한 것이다. 일단 민주노총이 정부의 시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많이 내고 이를 정권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로 이어나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안은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기본적으로 파견법이 가지는 문제점이 폭발한 것이고 앞에서 서술했다시피 이는 비단 홍익대 뿐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노동,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운동 전체의 문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파견법을 폐지하고 직접 고용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인데 당시 이명박 정부는 파견법을 폐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대상업종을 확대해서 비정규직을 늘리려고 했다.

이라는 무기를 가진 학교측 힘이 더 우세하고 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총학생회가 재단측의 기대대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학교 내의 여론이 분열되었다. 이는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빠른 시일 내에 투쟁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타 대학교의 사례[9]와 대조되는 것이며 이들의 농성이 장기화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비싼 등록금을 물고 다니는 학교에서 학습권을 보장받음은 당연하지만 위와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한동안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3.3.1. 총학생회에 대한 입장

사실 홍익대 총학생회가 이렇게 소극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2010년과 2011년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2009년 이전의 문제투성이인 운동권 총학생회를 뒤엎고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홍익대학교 문서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한총련 계열이었던 2009년 이전의 운동권 총학생회가 공금횡령, 세무기록 위조, 학내 무단점거, 학생회장 제적[10]까지 고루고루 바보짓을 해 놓았기 때문에 운동권 자체가 홍익대 학생들의 신뢰를 심각하게 잃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정치적 중립' 을 표방한 당시의 총학생회가 2년째 선출되었기 때문에 총학생회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한 공약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물론 이런 사정이 있었다고 해서 홍익대 총학생회의 책임이 100%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대학교의 청소노동자의 투쟁에서 학생들의 지지와 응원으로 인해 사태가 빨리 마무리될 수 있었음에 반해 홍익대학교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학습권과 엄연한 학내구성원인 청소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대립시킴으로써 학내의 여론을 분열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사태 중기, 즉 1월 말~2월 초부터 홍익대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들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고 실제로 학생들이 먹거리를 날라주거나 학생들이 청소노동자 편에 합류해 문헌관 안에 함께 먹고 자고 대자보를 그리기도 하는 등 함께 활동하였고 사태가 마무리 된 2월 중순까지 약 100명의 노동조합원들이 같이 교대로 농성하고 공공노조 조합원들과 협력하던 상황이었으며 학내 학생들의 여론이 분열된 상황에서도 이 농성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발길은 한동안 이어졌다.

3.4. 홍대노동자와 함께 한 홍대생들

사태 이전부터 한 학술소모임 소속 학생들이 학내 노동자들의 실태를 알리는 대자보들을 붙여 왔으며 민주노총 산하 공공노조 홍익대분회와 긴밀히 연대해 왔다. 사태 발생 후부터는 그 소모임 학생들과 다른 학내 운동단위 학생들, 농성장을 찾은 학생들이 모여서 노동자와 연대하는 홍대생의 연대체인 '홍익서포터즈' 를 결성하게 되었다. 집회 때마다 홍익서포터즈 학생들은 발언 및 노래, 편지 낭송 등을 하였고 여력이 되는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농성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숙식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1월 중순경 예술학과 및 미대생들을 중심으로 데굴데굴이라는 단체가 조직되었다. 데굴데굴과 홍익서포터즈의 가장 다른 부분은 운동의 방식이다. 홍익서포터즈는 운동의 방식에서 기존 운동권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학내 노동자들을 사회적약자로 보지 않고 함께 연대하여 싸워나가야 할 대상으로 본 반면 데굴데굴은 자신들이 '자발적' 으로 모였다는 점에서 비조직적이며 자발적인 운동을 강조하여 운동권과 같은 조직을 거부했고 현상적으로는 영어로 된 피켓을 쓴다거나 퍼포먼스, 플래쉬몹과 같은 형태의 운동을 조직하였다. 이러한 방식적인 것 외에도 이념적으로도 조직과 권위를 거부한 점에서 2008년 촛불집회와 유사하며 아나키즘적인 면모를 보인다.

홍익서포터즈와 데굴데굴은 방식적인 측면에서는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데굴데굴의 퍼포먼스에 홍익서포터즈가 참여하고 홍익서포터즈 회의에 데굴데굴이 참여하는 등 총학과 학교에 맞서 함께 싸우는 세력으로서 함께하려고 노력하였다. 홍익서포터즈와 데굴데굴을 합치거나 새로운 연대체를 꾸리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흐지부지되었다.

하지만 사태 막판인 2월에 접어들면서는 홍익서포터즈와 데굴데굴이 적극적으로 함께하였다. 미술대의 신입생 예비학교에서 사태를 알리는 발언권을 얻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발언 때는 데굴데굴 중 미대생 1인, 홍익서포터즈 중 미대생 1인이 나와 발언하였고 사태 마지막 집중집회인 4차 집중집회에서는 홍익서포터즈, 데굴데굴에다가 현장에서 조직된 홍대생들까지 합쳐서 약 30여 명 정도가 집회의 한쪽 면에 길게 늘어져서 '학생' 이라고 적힌 전경방패를 패러디한 널판지를 들고 집회 시작부터 끝까지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연대하는 장관을 보였으며 같은 날 오전에 데굴데굴과 홍익서포터즈 주관의 홍익대생 기자회견을 하였다.

홍익서포터즈와 데굴데굴처럼 전면에서 운동을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찾아오거나 후원물품을 전달한 홍대생들이 많았다. 공공노조 서경지부에서 기록한 후원물품목록을 보면 홍대생의 비율이 상당히 많았으며 홍익서포터즈와 데굴데굴의 구성원들 상당수가 개인적으로 찾아와 함께 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총학과 달리 노동자와 직접적으로 연대하고 지지한 홍대생들이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태의 종지부를 찍은 잠정합의문에는 공공노조 홍익대분회가 홍익서포터즈의 공로를 인정하여 홍익서포터즈 1인이 합의테이블에 참관하여 참관인 자격으로 서명하였다. 사태 해결에 있어 홍대생의 공로가 컸음을 홍대 노동자들이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7월에 접어들면서 손해배상국면에 접어들자 홍익서포터즈와 데굴데굴의 핵심멤버들이 모여서 '플라멩고' 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는데 운동 방식은 기존 운동권과 유사하되 운동의 색채에 있어서는 보다 세련미를 띤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비록 농성 때처럼 노동자들과 상시적으로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매일 중식에 있는 선전전에 노동자와 학생이 함께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며 플라멩고와 홍익대분회는 긴밀하고 활발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2012년 1월 기준으로 플라멩고는 운영되었으며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시간을 돌리는 작은 교실' 을 운영했다.

4. 결말

2011년 2월 20일 학교 측과 새로 계약한 용역업체들과 공공노조 서경지부가 고용승계 및 임금인상 등을 골자로 한 잠정적인 합의를 했다. 관련 기사

그러나 홍익대에서 자신들의 원청 사용자성을 거부하고 파견 업체의 선정 과정을 비밀로 하여 조합원들이 업체들과 교섭하는 것을 어렵게 하였으며 공공노조 간부와 홍익대학교 분회장에 대한 고소고발을 취하하지 않았고 여론을 호도하여 학생들을 투쟁 지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분할시켰다는 점을 들어 홍익대학교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은 한동안 이어졌다.

어쨌든 개강 시즌인 3월 기준으로 홍대는 당최 언제 그랬냐는 듯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아 그 격렬하던 투쟁의 흔적이 말끔히 사라지고 없어졌다. 교내를 휘감던 온갖 벽보와 현수막은 흔적도 없어졌고 대내적 분위기도 매우 평온해졌다. 이러다보니 방학 때 학교에 나오지 않던 학생들은 대체 그 사이 학교 상태가 어땠는지조차 전혀 모를 정도였다. 일단 개강 전까지 대타협이 이뤄져 학생들의 본격적인 면학에 피해가 따르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5. 후폭풍

대타협으로부터 수개월이 지나 사건이 세간에서 잊혀질 즈음, 그러니까 홍익대학교 당국은 파업과 업무방해, 총장 감금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 명목으로 시위를 주도했던 공공노조의 핵심 간부 5명+공공서비스지부 홍익대 분회장을 상대로 1인당 4천 5백만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실이 매스컴을 타고 보도되었다. 기사, 이 사건에 대한 홍대 재단의 공식 입장

여담으로 방학을 기회삼아 학교측이 즉각 청구를 개시했다는 오해가 있었지만 보도된 시점이 2011년 6월 말이고 해당 청구 시점은 6월이 아니라 5월 25일이었다. 즉 아직 기말고사도 시작하기 전이라는 것. 때문에 한 달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야 보도를 터뜨린 것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는데 그 즈음 한창 화제였던 반값 등록금 이슈에 묻힐까봐 일부러 이제까지 묵혀뒀다는 등의 논란이 분분했다.

아무튼 6월 말까지의 학내 분위기는 성적 공지와 장학금 등 이맘때 나올 법한 화제가 싹 들어가고 시국 관련에 집중될 정도로 상당히 심상치 않았으며 겨울방학 때 비교적 잠잠했던 것과 달리 재단 측을 성토하는 여론도 제법 강했고 학생회에 재단과의 투쟁을 촉구하는 등 여러 모로 노조측에 호의적인 여론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7월 1일 홍대 출신을 뽑지 않겠다는 모 트위터리안의 선언 탓에 역풍을 맞으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싹 식어 버렸다고 한다. 이후 다른 영상 제작 업체 네모비전의 육모씨 등도 비슷한 글을 올려 욕을 먹었다[11]. 재단 측의 문제를 갖고 학생 전체를 싸잡아 호도하는 게 지역차별과 뭐가 다르냐는 반응도 나오는 등 분위기가 급경색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미 루저의 난 사건 당시 위너대학교(...)로 몰려 한 사람 탓에 학교 전체가 대내외적인 홍역을 치른 경험도 있는지라 이런 식의 일반화에는 신경이 상당히 민감하게 곤두섰다고 한다.

당시 농성에 참가한 어느 홍익대생은 이 트위터리안이 운영하던 회사의 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12]

저는 지난 1월 3일부터 49일간 이어진 홍대 노동자 투쟁에 가담하였고 그에 따른 행동에 한치의 부끄러운도 없기에 이름과 소속을 밝히고 씁니다.

뭐 길게 써볼까 했는데 길게 쓸거도 없네요

질문이나 좀 하죠

1.제가 지원해도 홍대생이라서 지원서 찢기나요?

2제가 농성 49일중 40일 정도는 농성장에 있었는데 혹시 오셨는지..?

3.오셨으면 후원물품목록이나 그런데에 있을법한데 네모비전이라는 이름은...


결국 위 학생 말대로라면 이 트위터리안부터 방관자라는 것이다.

참고로 이와 비슷한 논란이 이미 2005년에도 일어났다. 대한상공회의소 간부 명의로 특정 학교의 강좌를 듣는 대학생은 취업시 불이익을 주겠다는 발표가 그것이었다. 발언 주체의 이념 스탠스가 다를 뿐 특정 꼬리표만으로 취업 불이익의 연좌제를 먹이겠다는 발상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두고 짐짓 중립적인 체하면서 양비론조로만 접근하는 해당 언론들의 태도도 비판을 받았다. 연좌제는 어떤 이유로도 두둔할 수 없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엄연한 금지사항임을 명심하자.[13]

5.1. 노조간의 반목과 분열

2011년 9월 말 또 한 차례 대반전이 터졌다. 연초 시위에 가담했던 경비노동자들의 노조인 '홍경회' 소속 노동자들이 학내 대자보를 통해 민주노총 서경지부의 횡포에 대해 커밍아웃을 하고 본격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이들은 49일간의 투쟁 과정에서 재단에 맞서 힘을 모았으나 대타협 이후 서경지부 측에서 제시한 약속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자보 내용에 의하면 심지어 "간부 교육이 잘못돼서 여러분들에게 잘못된 말을 한 것 같군요" 라는 변명까지 둘러댔다고 한다. 이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본문을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볼드체 표시는 원본의 대자보 내용상에도 볼드체로 표시된 것이니 임의로 수정하지 말 것).

(전략) 그때 알았습니다. 농성 중에 서경지부가 내뱉은 지켜지지 않을 약속은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허구였다는 것을.

군중심리가 무섭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한가지 목적으로 모이니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사실 농성이 치열할 때 서경지부 간부가 이런 말도 했습니다. "홍대가 아직 정신을 못 차리니, 경비 중에 건물 구조를 잘 아는 사람 한명이 밤에 화장실 창문 다 열어놓으세요. 배관 다 얼어 터지게…" 하지만 그땐 그것이 옳은 일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그런 일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돈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속담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농성 중에 생각지도 않은 거액의 후원금이 들어와서 들뜬 마음에 "농성이 길어져 몸들이 쇠약해졌으니 몸보신이라도 하자" "너무 추우니 단체 파카라도 사서 입자"라고 건의했더니, 서경지부 간부는 "농성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니까 아껴야 합니다" "농성이 끝나면 어차피 분회 운영비가 될겁니다" 했었습니다. 그런데 농성이 끝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간부는 일부 홍대분회 임원들만 모아놓고 "홍대분회 회계는 따로 없어서 지부가 가져가야 하니, 총회 개최할 때까지 함구하세요" 라며 함구령까지 내리고, 결국 총회 때 졸속 절차로 후원금 대부분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중략)

서경지부는 다수의 힘을 누구보다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현재도 홍대분회 임원들은 노총의 가입을 주저하면 떼로 몰려가 일을 못하게 하고, 조금이라도 비협조적인 사람들에겐 "그럴 거면 홍익대학교 그만두고 나가"러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첫 출근 전날 설렌 마음에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전화하여 "당신은 민주노총에 가입 안했으니 내일 출근할 생각 말라"고 전화까지 하는 사람들입니다. (후략)
초기 경비노동자들의 친목회 단계에서 출발한 이 조직은 부조리에 더욱 강경하게 맞서야 한다는 사명감에 '홍경회노동조합' 으로 틀이 잡혔고 이 시점에서 학생들에게 노조 내부의 부조리와 반목 실상이 알려지게 되었다. 민주노총측에서는 이 사실에 대해 함구했다.

그리고 저 내용이 사실이면 민주노총 서경지부는 결과만을 내세우며 절차상의 정의를 외면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노골적으로 업무를 방해하거나 전화로 협박까지 했다는 것은 비판받을 행동이다. 이로써 상황은 노조간의 대립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부딪치게 되었다.

다만 홍경회는 홍익대분회측에서 어용노조라는 평가를 받았고 실제로 사측의 지원을 받으면서 단독교섭한 정황을 볼 때 저 대자보는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 # 무엇보다 홍경회 조합원들이 홍익대분회로 넘어와서 홍경회는 해산한 만큼 이 문제는 더 이상 의미 없다고 볼 수 있다.

5.2. 그러나 다시 합체

하지만 홍경회 내부에서도 조합원들의 불만이 상당했던 것으로 드러났고 홍경회 설립 후 서경지부 홍익대 분회에 비해 아무런 성과가 없자 다시 서경지부 홍익대 분회로 넘어왔으며 결국 홍경회는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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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조 측은 계약 만료 4일 전인 12월 28일에야 임금인상안을 발표했고 학교 측도 계약 만료 시점인 1월 2일 전격적으로 퇴거조치를 단행했다.[2] 학교는 이들을 해고한 후 대체인력을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노동자들은 당장의 생존권을 위협받는다.[3] 지켜졌다면 일주일에 단 4일만 출근해서 근무했다는 것이다.[4] 미디어 몽구 참조. http://mongu.net/764# 이들의 식사 시간이 절대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5] 그런데 청소노동자들이 소속된 공공노조는 법적으로 교섭 당사자다. 다만 공공노조 외의 다른 세력의 개입을 외부세력으로 볼 여지는 있다.[6] 이에 간담회를 참관했던 공공노조 서경지부 홍익대분회장, 즉 농성하는 노동자들의 대표가 참다 못해 중도에 퇴장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7] 비상대책위원회에 소속된 사람은 집회시위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모집에 응한 사람들은 반발하고 어느 정도의 타협을 요구했으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8] 당시 농성 현장에는 총학생회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는 학교 졸업생들과 다른 대학교 재학생들의 대자보가 많이 붙어 있었다.[9] 성신여대에서는 전교생의 2/3의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10] 제적당하면 엄연히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회장을 할 수 없는데도 하겠다고 버티다가 결국 2학기는 부회장이 회장 대리를 맡았다.[11] 이 트위터리안을 옹호한 사람 중 한겨레의 기자도 있었기 때문에 한겨레도 덩달아 까였다. 뒤늦게 잘못을 시인한다며 사과 성명을 냈지만 변명조로 읽혔다.[12] 참고로 이 글은 현재 사이트에서 찾을 수 없는데 회사측에서 자신들한테 불리한 글은 전부 지운 것으로 추정된다. 연좌제를 먹이겠다는 것도 모자라서 자신들한테 불리한 글을 지운다는 점은 정말 독선적이고 비민주적인 태도라고밖에 할 수 없다.[13] 광의로는 친족 이외의 자의 형사책임뿐만 아니라 기타 불이익한 처우를 받는 경우까지도 모두 포함해서 말한다. 헌법상의 연좌제 개념도 그러한 광의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즉, 친족의 형사책임은 물론 기타의 사회적으로 불이익한 처우를 모두 금지하는 것이며 친족 이외의 자에 대한 연좌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금지되는 것이다(출처: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