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9 14:43:30

AFC 아약스/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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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약스의 탄생과 성장
1.1. 리누스 미헬스요한 크루이프토탈 풋볼1.2. 다시 찾아온 아약스의 르네상스1.3. 2000년대
2. 현재
2.1. 2009-10 시즌2.2. 2010-11 시즌2.3. 2011-12 시즌2.4. 2012-13 시즌2.5. 2013-14 시즌2.6. 2014-15 시즌2.7. 2015-16 시즌2.8. 2016-17 시즌2.9. 2017-18 시즌2.10. 2018-19 시즌2.11. 2019-20 시즌2.12. 2020-21 시즌2.13. 2021-22 시즌

1. 아약스의 탄생과 성장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을 연고로 1900년에 탄생했다. 팀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자 일리아스의 등장인물인 아이아스에서 따온 것이다.

창단 후 초창기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아마추어 실업 축구팀에 더 가까운 형태였는데, 어쨌든 1910년대부터 네덜란드 전국 축구 대회에 참가했고, 이미 지역 리그에서는 적수가 없었던 아약스는 전국 대회에서도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당시 아약스의 감독이 잉글랜드에서 온 잭 레이놀즈(Jack Reynolds)라는 인물로, 레이놀즈는 토탈 풋볼의 형태를 최초로 구상한 감독이었다. 그는 아약스에서만 25년의 감독 생활을 했으며, 레이놀즈의 지도 하에 아약스는 에레디비시 출범 전까지 총 8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누린다. 이미 아약스는 네덜란드의 강호였고, 항구 도시 로테르담의 챔피언격인 페예노르트와는 이 때부터 라이벌 관계였다.

1955년 에레디비시가 정식으로 출범하자, 기존의 아마추어 실업 팀 단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프로 클럽으로 출범했다. 프로 무대에서도 기존의 명성을 꾸준히 이어나가 1957년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네덜란드 무대에서 여전히 강호로서 명성을 이어 나갔다. 이런 강호로서의 면모는 1960년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하는 형태가 아닌, 더 혁신적이고 무서운 팀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나타난다. 바로 토탈풋볼이라는 혁명적인 사고를 가진 감독 리누스 미헬스와 그의 사고를 현실에서 구현시킬 천재 요한 크루이프였다.

1.1. 리누스 미헬스요한 크루이프토탈 풋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평가되는 리누스 미헬스 감독은 토털 풋볼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당대 최고로 혁신적인 전략이었다.

물론 갑작스럽게 생겨난 전술은 아니었다. 말했다시피 잭 레이놀즈 감독이 아약스를 이끌면서 선보인 바가 있었기 때문, 토탈 풋볼 또한 미헬스가 어렸을적 잭 레이놀즈의 아약스를 보면서 자랐기에 영향이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레이놀즈의 아약스는 네덜란드 안에서만 활약하였기에 유럽 전역에 알릴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아약스는 자기들만의 축구를 더욱 발전시킬수 있었다. 그리고 미헬스가 아약스를 이끌던 때에 생겨난게 바로 유로피언 컵 별들의 축제라는 무대가 있었기에 미헬스는 유럽과 세계를 무대로 토탈 풋볼을 널리 알릴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토탈 풋볼은 현대 축구의 시발점이 되는 계기가 된다. 토탈 풋볼의 선구자인 레이놀즈를 보며 자라난 소년 미헬스는 아약스의 감독이 되어 토탈 풋볼을 완벽히 구현하였고 이에 가장 성공한 혁명가가 되었으며, 이 전략을 일선에서 선두지휘하고 실행할 천재 요한 크루이프가 있었다. 결국 이 둘은 아약스를 네덜란드의 그냥 강호에서 축구 역사를 뒤흔드는 절대 강자로 탈바꿈시키게 된다. 1960년대 이러한 아약스의 전략은 네덜란드 무대에서 리그를 씹어 먹는 수준으로 변했고, 유럽에서 명성을 알리기 시작한 벨리보르 바소비치가 합류하였다. 이로써 아약스는 피트 케이저르스야크 스바르트라는 베테랑 선수들을 중심으로 수비의 축 바소비치와 공격의 축 크루이프를 리누스 미헬스가 지휘하면서 급기야 네덜란드 무대를 넘어 전 유럽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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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유망주로 주목받던 크루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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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크루이프, 벨리보르 바소비치, 피트 케이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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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69 유로피언 컵 결승전에서의 크루이프

특히 1968-69 시즌은 아약스로선 찬란한 시작이었다. 물론 이전에 출전한 두번의 유로피언컵은 다소 실망스러운 성적이었다. 그러나 유로피언컵 32강 1차전 FC 뉘른베르크 원정경기에서 0-1로 끌려가던 80분을 기점으로 아약스는 바뀌기 시작했다. 크루이프가 동점골을 넣으면서 기세를 역전시켰고 이어진 2차전에서 4-0으로 종합 5-1 대승을 거두고 16강에서 페네르바흐체를 종합 4-0으로 격파하며 파죽지세로 8강까지 진출한다.

그러나 에우제비우벤피카에게 홈에서 1-3으로 패하면서 탈락의 위기가 있었지만 벤피카 원정에서 크루이프가 동점골과 역전골을 터뜨리며 3-1승리로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고, 이어진 재경기에서 연장전승부 끝에 크루이프가 결승골, 다니엘손이 쐐기골을 연달아 두번 박으면서[1] 준결승에 안착한다. 그리고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강호인 스파르타크 트르나바를 3-2 혈투끝에 간신히 꺾고 결승까지 진출한다.

다만 결승에서 AC 밀란에게 1-4로 완패하며 첫 우승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설상가상 리그에서도 페예노르트에게 우승을 내주었고 다음시즌인 1969-70 시즌 아약스는 리그 우승은 하였으나, 전시즌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유러피언컵에 진출한 페예노르트네덜란드 리그 최초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크루이프가 대회내내 뛰어난 활약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고, 미헬스의 토탈풋볼 또한 주목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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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약스의 황금기를 이끈 선수들
(좌측부터 슈테판 코바치(감독), 피트 케이저르, 호르스트 블랑켄부르크, 요한 크루이프, 빔 쉬르비르, 하인츠 쉴허, 헤하르트 뮈런, 아르놀트 뮈런, 요한 네스켄스, 배리 휠스호프/스야크 스바르트, 요니 렙, 아리에 한, 시스 베버, 하인츠 스투이, 뤼트 크롤, 헤리트 클레턴, 얀 뮐데르)

1970-71 시즌을 앞두고는 RC 헤임스테더에서 또 다른 요한 유망주 요한 네스켄스를 영입하며 해당시즌 유로피언 컵에서 감독이 된 페렌츠 푸스카스가 이끄는 파나티나이코스를 결승에서 꺾고[2] 처음으로 정상을 차지하더니, 급기야 3년연속 아약스가 빅 이어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와중에 71-72 시즌에는 트레블까지 달성한 것은 덤. 특히 71-72 시즌을 앞두곤 팀의 주장이였던 바소비치가 은퇴, 미헬스 감독이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떠나면서 루마니아 출신 코바치 감독이 지휘봉을 물려받은 첫 시즌이었는데, 해당시즌 48전 42승 5무 1패, 135 득점 27 실점, 승률 87.5%라는 기록을 세웠다. 87.5%의 승률은 유럽 대회 참가 클럽 중 역대 최고 승률이기도 하다.

이 시기 동안 아약스가 무찌른 클럽들은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아스날, 인테르, 유벤투스, 벤피카, 마르세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셀틱, 파나시나이코스, 밀란[3] 당대 유럽에서 최정상을 다투던 클럽들이었다. 그것도 신승이 아니라 완벽한 압승으로 우승을 거두었으니, 아약스가 던져 준 충격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73년에 크루이프미헬스 감독이 있는 바르셀로나로 떠났고, 정신적 지주이자 최고참인 스바르트가 은퇴를 하였고, 그리고 코바치 감독이 아약스를 떠나 프랑스 축구 대표팀으로 부임하면서 구심점을 잃은 아약스는 유럽대항전에서의 첫번째 황금기를 너무 이른 시기에 마무리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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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약스 그 자체이자 전설

1.2. 다시 찾아온 아약스의 르네상스

크루이프가 떠난 아약스의 화려한 유로피언 컵 전성기는 당분간 지속되지 못했다. 세번째 빅 이어를 획득한 아약스는 이후 10년동안 암흑기에 빠지게 된다. 이 기간동안에 유럽 대항전에서 준결승 1회, 8강 1회를 제외하면 조기탈락이 많았을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리그는 6번 우승하며 적어도 국내에서 만큼은 아직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1985년, 크루이프가 감독으로서 아약스에 복귀하게 된다. 크루이프는 3년 동안 아약스 지휘를 했는데 정작 리그 우승에는 연달아 실패하고 말았다. 대신에 컵 위너스 컵 우승에 성공하여 염원하던 유럽 대항전 챔피언 자리를 되찾게 되었다. 크루이프가 떠난 이후 아약스는 마르코 판 바스턴프랑크 레이카르트의 밀란 이적, 70년대 크루이프 아약스의 막내였던 정신적 지주 아르놀트 뮈런이 은퇴를 하면서 전력에 큰 손실을 입었고 결국 1989-90시즌에야 에레디비시에 챔피언 타이틀을 겨우 한번따는등, 부침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UEFA컵 1라운드에서 아우스트리아 빈과 경기를 치뤘는데, 아약스 서포터가 빈의 골키퍼였던 프란츠 볼파르트를 부상시키면서 다음 시즌 유럽대항전 출전금지라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혼란한 상황이였지만 판을 다시 뒤집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로 1991년, 당시만 해도 초짜 감독인 루이 판 할이 아약스에서 첫 감독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경험이 없는 반 갈에 대한 세간의 우려가 있었지만 반 갈이 선수단을 패기있게 휘어 잡으면서 다시 분위기를 역전시키게 된다. 그리고 반할 감독이 이끄는 아약스는 1991-92 시즌 UEFA컵 결승에서 이탈리아 토리노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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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컵 우승 당시의 아약스

이 우승에는 오랫동안 같이 플레이를 했었던 다니 블린트, 프랑크 더 부르, 데니스 베르캄프, 아론 빈터르 등 선수들의 뛰어난 조직력에 대한 공헌이 컸었다. 그러나 이후 베르캄프를 필두로 주축 선수들 대부분이 떠났고, 남은 베테랑이라고는 다니 블린트, 프랑크 더부르, 소니 실로이 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에드빈 판데르사르,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클라렌스 세도르프, 에드가 다비즈, 마르크 오버르마르스, 은완코 카누, 마이클 레이저허르, 로날트 더부르같은 풋내기들 뿐 이었다.[4]

그렇지만 밀란에서 황금기를 보낸 베테랑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핀란드에서온 폭격기 야리 리트마넨이 합류하면서 아약스는 강팀으로 변모하게 된다. 신세대와 구세대의 적절한 조화는 곧 팀 케미의 폭발로 이어졌으며, 1993-94 시즌을 앞두고 에이스 베르캄프가 떠났으나, 그 시즌은 리트마넨리그에서 26골을 넣고 득점왕을 차지하며 베르캄프의 공백을 완전히 매우고 물론 리그 우승도 차지하였다. 그리고 야리 리트마넨은 자신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렸다.

그리고 다음시즌인 대망의 1994-95 시즌에 정점을 찍었는데 리그에서 27승 7무, 챔스에서는 7승 4무를 기록하며 무패 더블을 달성한 것이다. 리그에서는 아예 무적, 챔스에서는 조별리그에서 4승 2무, 8강에서 다크호스인 하이두크 스플리트를 3-0으로 대파하고, 준결승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5-2로 대파 하면서 후덜덜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결승에서 클루이베르트의 결승골로 AC 밀란을 1-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이 사건은 전무후무하며 앞으로도 나오기가 매우 힘들 것이기에, 사실상 아약스만이 가진 기록이 될 것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챔스에서의 7승 가운데 3승이 모두 밀란을 상대로 얻은 것이며, 조별리그에서 홈,원정 모두 2-0 승, 그리고 결승에서도 AC 밀란에게 1-0 승을 거뒀다는 것이다.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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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상단 유니폼 입은선수부터 시계방향으로 클라렌스 세도르프, 프랑크 레이카르트, 프랑크 더부르,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빈스턴 보하르터, 마이클 레이저허르, 다니 블린트, 피니디 조지, 피터 판 포선 그 아래에 로날트 더부르, 은완코 카누, 에드빈 판데르사르, 프레드 그림, 에드가 다비즈, 마르크 오버르마르스, 야리 리트마넨

밀란 제너레이션이 긴 전성기로 인한 임팩트였다면 아약스 제너레이션은 젊은 패기로 단기간에 역대급 포스를 뽐냈던 시대로 본다.

1995-96시즌엔 레이카르트의 은퇴와 세도르프의 세리에 진출로 전력손실을 입었음에도 더욱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 3연패와 챔스 2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한다. 그것도 그냥 올라온 것이 아니라 레알 마드리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같은 강호들을 때려 잡으면서 올라왔다. 8승 1무 1패라는[5] 압도적인 전적으로 결승에 진출, 그렇게 해서 만난 상대가 마르첼로 리피가 이끄는 유벤투스였다. 아약스는 챔스 2연패를 노렸지만 유베 역시 만만치 않았고, 결승 연장까지 팽팽한 대결 끝에 승부차기에서 다비즈와 실로이의 실축으로 4-2 패배를 하며 준우승에 머물고 만다.

그리고 다음 시즌인 1996-97 시즌에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에서는 4위, 더치 컵 탈락, 그래도 챔스에선 준결승까지 진출하였지만, 전 시즌 결승에서 만났던 유벤투스에게 1,2차전 통합 2-6 대패를 당하게 된다. 결국 루이 판 할이 FC 바르셀로나로 떠나고 베테랑들의 은퇴와 주축 선수들의 이적으로 인해 1990년대 중반의 르네상스도 마감하게 된다.[6]

여담으로 이 시기에 아약스의 멤버로 활약했던 선수 중 한 명인 키키 무삼파는 2008년 K리그의 FC 서울에 입단하면서 K리그 역사상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지닌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남겼지만...

1.3. 2000년대

2000년대에는 여전히 리그 강호로 강력함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리그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새롭게 떠오른 라이벌 PSV 에인트호번에게 번번이 밀린 탓이 크다. 그리고 에인트호번이 어느 정도 쇠락한 후에는 신흥 강호로 떠오른 알크마르 잔스트레이크라든가, FC 트벤테에게 밀리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아약스는 좋은 선수들을 잘 키워내고 있다. 베슬러이 스네이더르나, 클라스 얀 훈텔라르, 루이스 수아레스 같은 선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UEFA 영예의 뱃지를 달 수 있는 팀들과는 대조적으로 국제 무대에서는 초라하다. 2000년대 와서 챔피언스 리그도 32강에서 고전하고 있으며 우승 후보에서 멀어진 지 오래되었다. 2008년에는 체코 슬라비아 프라하에게 원정과 안방 경기 모두 지면서 32강조차 못 가고 탈락했으며 그 뒤로 줄곧 유로파 리그에서도 32강 가기도 벅찬 부진을 보여줬다.

여기서 왜 갑자기 팀이 이렇게 몰락해버릴까?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원인은 바로 재정문제에 있다. 불과 20년전만 해도 아약스는 유러피언컵 대회에서 최강의 팀 중 하나였으나, 2000년대초 레알의 갈락티코스 정책과 로만을 시작으로 해서 엄청난 돈이 유럽축구계에 유입[7]되면서 빅 클럽들의 과도한 영입경쟁이 시작되었고, 상대적으로 재정이 열악한 아약스는 경쟁력에서 밀려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 이다.

그리고 아약스가 소속한 에레디비시 또한 이미 리그 경쟁력을 잃어 소속클럽들이 유럽대항전에 나가기만 하면 승점셔틀당하기 일쑤며, 그나마 선수수급 및 유망주 수출로 먹고살던 것도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에 밀리는 바람에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리그가 되고 말았다. 물론 아약스를 비롯한 상위권팀들은 그동안 다져온 유스 시스템 덕분에 버티고 있다지만, 옛날만 해도 유럽의 상위리그들과의 경쟁에서 전혀 꿀리지않던 때를 생각하면 이마저도 상당히 굴욕적인 신세이다. 특히 네덜란드 중하위권팀들의 실력은 매우 처참한 상태이며, 아약스를 비롯한 상위권팀들은 이 중하위권을 유망주 성장의 거름으로 삼아 어느정도 성장하면 팔고 있다.(...) 이러니 리그 수준이 처참해지는 것이다.

요즘 프로세계는 돈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게 부를 거머진 구단들은 대부분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첼시 FC로만을 시작으로 만수르, 또한 파리 생제르맹같은 경우도 구단주이자 카타르 국왕인 알 사니의 강력한 부를 바탕으로 막강한 지름신과 함께 곧바로 강팀으로 급부상하는등 현대 축구에서는 돈이란 곧 경쟁력이 되어버렸다. 그에 반면, 아약스는 이적자금에 쓸 예산은 커녕 선수들의 주급 감당조차도 힘들게 되어 결국 셀링클럽으로 전락하였고, 아약스가 자랑하는 유럽 최고의 유스 시스템마저 이 시스템으로 키운 유망주들을 붙잡을 돈이 없어서 기껏 발굴한 대형 유망주들을 속속히 뺏기고 있는 실정이다. 오일머니에 황사머니까지 유입되면서 유럽축구계는 극단적인 양극화가 진행중인데 에레디비지는 그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2008년, 모처럼 최고 이적료 갱신 영입을 했다지만 이때 쓴 이적료가 17m도 안되며,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이러서도 이 이적료 기록을 갱신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약스가 유럽의 강호에서 완벽히 몰락했다는 증거가 되었으며, 명색의 UEFA 영예의 배지를 달 수 있는 6팀중 하나지만 재정 환경은 이들중에서 가장 열악하다는 점에서 아약스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 챔피언스리그를 4번이나 우승했지만, 현재 그 누구도 아약스를 강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아무리 트로피를 쓸어담았어도 돈이 없으면 언제든지 셀링 클럽으로 전락 할 수 있다는 것의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2. 현재

2.1. 2009-10 시즌

리그에서는 참으로 아쉬운 성적을 거두면서 2위에 그친다. 어떠한 성적인가 하니 27승 4무 3패, 승점 85점에 골 득실 +86의 대단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1위인 트벤테가 골득실은 +40에 불과하면서 86점의 승점을 쌓는 바람에 30번째 우승을 놓쳤다.

그나마 FA 컵인 더치 컵에서 2010년 라이벌 페예노르트를 4:1로 이기며 오랜만에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2.2. 2010-11 시즌

더치 컵 결승전에서 트벤테에게 3:2로 역전패했지만 리그 마지막 경기가 5월 15일 아약스 안방에서 열리는데 아약스가 상대팀인 트벤테를 이기면 승점 2점을 앞서 오랜만에 리그 우승을 거두게 된다. 그야말로 리그 결승전인 셈. 그리고 이 리그 결승전에서 3:1로 승리하면서 7년 만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통산 30번째 우승.

루이스 수아레스가 여기서 첫 번째 핵이빨 사건을 일으켰다.

2.3. 2011-12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마지막 1경기를 남겨 두고 레알 마드리드 다음으로 조 2위에 오랜만에 16강에 진출하는가 싶더니만 약체인 디나모 자그레브가 올랭피크 리옹과의 마지막 안방 경기에서 7:1로 대패하면서 골 득실을 넘어서는 바람에 3위로 밀려나면서 극적으로 탈락, 유로파 리그로 진출하게 되었다. 32강에서 맨유와 격돌하게 되었는데 1차전 안방 경기에서 2:0으로 패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맨유 원정에선 2:1로 역전승을 거뒀지만 사실 맨유가 주전들을 쉬게 하고 유망주들을 대거 시험한 경기라서 큰 의미는 없었다. 게다가 골 득실로 밀려서 결국은 32강에서 탈락했다.

리그에선 좀 부진한 편. 21 라운드까지 리그 6위로 밀려나 있다. 1위 PSV와의 승점차는 8점이라 그렇게 불안한 것은 아닐...지 모르나 알크마르, 트벤테, 페예노르트와 중위권 팀인 SC 헤렌벤에까지 승점에서 뒤쳐져 있으며 20 라운드 경기에선 리그 15위로 하위 팀인 위트레흐트에게 안방에서 2:0 완패를 당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4 라운드까지 4위로 일단 올라서긴 했지만 헤렌벤과 페예노르트가 1, 2점차로 바짝 추격 중이라 그야말로 물고 물리는 분위기. 그리고 연승을 달리면서 2위로 껑충 올라섰다. 27차전에선 PSV를 홈에서 2:0으로 이기면서 1위인 알크마르를 1점차로 추격 중이다. 28차전에서 드디어 리그 1위로 올라서며 부진을 털어 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32차전 트벤테 원정에서 2:1로 이기면서 31번째 리그 우승을 거뒀다. 2위로 뛰어 오른 페예노르트와 골 득실차가 20 골 이상이나 나기 때문에, 남은 2경기를 져도 승점 70점 동률인 상태에서 골 득실에서 앞서는 아약스가 일찌감치 우승을 결정지었다.

2.4. 2012-13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DDeath조에 들어가서 3년 연속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아약스에겐 신도 부처도 없단 말인가하게 됐고 맨체스터 시티 FC,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한 조에 속해 있다. 1차전 도르트문트와의 원정 경기에서 0:1로 패배했다. 2차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홈 경기에서는 1:4로 패배했다. 다시 도르트문트에게 안방에서 1:4로 대패하면서 16강은 무산되었지만 맨시티를 상대로 안방에서 3:1 승, 원정에선 1:1로 비겼다. 마지막 6차전 레알 마드리드 원정이 고비. 아약스가 지고 맨시티가 도르트문트 원정을 이기면 아약스는 4위 꼴찌로 탈락하지만 둘 다 질 경우 아약스가 3위로 그나마 유로파 리그 진출권이라도 얻게 된다. 맨시티 챔스 꼴 보니 희망이 있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 원정에서 1:4로 털렸지만 맨시티도 져서 3위로 유로파 리그나마 진출했다. 유로파 리그 32강 상대인 루마니아의 강호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는 지금은 챔피언스 리그 나오면 동네북이 되는 팀이지만 이래봬도 과거 유러피언 컵 시절인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FC 바르셀로나까지 제치고 우승한 역사가 있다.[8] 챔피언스 리그 우승 기록으로는 더 압도적인 아약스지만 2000년대 와선 챔피언스 리그에서 같이 동네북이 된 상황. 그렇기에 서로 무시할 팀은 아니었다. 1차전 안방에서 2:0으로 이겼지만 2차전 원정을 0:2로 패하는 통에 연장전까지 벌여 결국 승부차기 끝에 2:4로 패배, 유로파 리그에서는 일찌감치 탈락했다.
리그는 13차전까지 4위. 저번 시즌처럼 중반까지 부진하다가 역전하여 우승한 경험도 있기에 아직은 불안하지 않지만 일단 1위 에인트호번과 9점으로 벌어진 상황. 하지만 역시 추격하면서 23차전까지 47점을 기록, 승점차를 3점으로 좁혔고 역전에 성공했다. 5월 5일 빌렘 II를 상대로 5-0으로 승리하여 승점 3점을 추가한 아약스는 2위 PSV와의 승점 차이를 4점으로 유지했고, 마지막 라운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지었다.

2.5. 2013-14 시즌

챔피언스 리그 32강 조 추첨이 환상적이다. 바르셀로나, 밀란, 셀틱. 공교롭게도 역대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끼리 모였는데 아약스로선 가장 만만한 게 셀틱...벌써부터 셀틱을 잡고 유로파 리그 32강이라도 진출해야 한다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 그나마도 크리스티안 에릭센, 토비 알데르베이럴트 등 주요 전력이 왕창 빠져 나간 아약스 입장에선 한숨만 나온다. 안방에서 밀란과 1-1로 비기는 선전을 했지만 바르셀로나 원정에선 0-4로 뭉개졌고 3차전 셀틱 원정에서 1-2로 패하며 유로파 리그 진출권도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5차전에서 안방 경기로 치러진 바르셀로나전을 2-1로 이기고, 셀틱은 대패하면서 3위로 역전되었다(셀틱은 최하위 확정). 마지막 6차전인 밀란 원정을 이기면 조 2위로 16강행이 확정된다...지만 어려울 듯. 패하면 유로파 리그행인 밀란도 총력을 다할 테고 일단 밀란과 안방 경기를 비기고 바르셀로나도 이긴 아약스였지만 원정은 셀틱전에서 패했듯이 약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밀란 원정에서 무재배를 이끌었지만 밀란에게 1점차로 밀려 3위로 탈락, 유로파리그로 나가게 되었다. 이 경기에서 초반부터 훌륭한 찬스를 만들어 내며 밀란을 몰아붙였고 몬톨리보의 퇴장으로 전반전부터 숫적 우위까지 점했지만, 밀란의 중동 축구를 연상케 하는 배째기식 전원 수비를 뚫지 못하고 아쉬움을 삼켰다.
유로파리그에선 오스트리아FC 레드불 잘츠부르크[9]과 32강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축구월간지 베스트 일레븐 지에선 아약스가 유로파리그 16강에 거뜬하게 나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는데 웬걸, 리그에 전념하고자 그런 건지 1차전 안방경기에서 예상을 뒤엎고 잘츠부르크에게 0:3 참패를 거두며 2차전 원정을 힘겹게 치루게 되었다. 결국 2차전에서도 1-3으로 패하면서 1:6 이란 압도적인 참패로 탈락했다. 리그에 전념하고자 유로파리그는 포기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아약스 이름값과 그다지 강호가 아닌 상대를 봐도 너무 크게 져서 아약스팬들에게 욕을 거하게 처먹었다. 하지만 그나마 아약스가 거둔 유로파리그 32강이 13-14시즌 유러피언컵에서 에레디비시 팀으로서 가장 잘한 성적이었다...[10]

리그는 우승하면서 4시즌 연속 우승이자 3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FA컵인 KNVB 컵 결승에서 리그 11위를 거둔 PEC 즈볼레에게 예상을 뒤엎고 1:5 라는 환상적인 참패를 거두면서 준우승하는 통에 리그 우승하고도 유로파리그와 KNVB 컵에서 참패로 덩달아 화려한 욕도 처먹었다.

2.6. 2014-15 시즌

리그에서는 15라운드까지 에인트호번에게 밀려 2위를 기록 중이다. 다만 1점차라서 역전 우승 가능성도 남아있었으나 점차 벌어지면서 24라운드에서는 14점까지 승점차에 에인트호번에게 밀려 리그 우승이 어려워졌다. 결국 이 14점차를 좁히지 못하며 일찌감치 에인트호번이 7시즌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KNVB컵에서는 8강전에서 2부리그인 비테세 아른헴에게 0-4로 참패하면서 탈락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32강 조추첨으로 FC 바르셀로나파리 생제르맹 FC,아포엘 FC과 맞붙게 되었다. 그리고 첫 경기인 파리와의 경기에서 예상을 뒤집고 대등한 승부를내고 바르샤도 아포엘에게 의외로 한골밖에 못넣는 경기를 해서 16강 진출도 노릴만했지만 3,4차전에서 바르셀로나에게 정신없이 털리는 바람에 16강 진출은 실패했고, 남은 경기에서 아포엘과 3위 경쟁을 하게되는데 만약 3위가 된다면 5연속으로 챔스 조별리그에서 유로파행이라는 기록을 세우게된다. 결국 아포엘을 이기면서 3위를 차지해 유로파리그에 나가게 되었다. 32강전 상대는 레기아 바르샤바(폴란드). 3-0,1-0으로 거뜬하게 이기며 오랫만에 유로파리그 16강에 올랐다.풍악을 올려라, 유로파리그 16강이나 올라갔다...챔스리그 우승 4번의 명문이 이젠 유로파리그조차도 16강에 올라가면 감지덕지

32강전에서 에인트호번이 똑같이 0-3,0-1로 제니트에게 박살나며 탈락하고 페예노르트도 AS로마에게 탈락한 터, 이번 14-15시즌 유러피언컵에서 에레디비시 팀에서 가장 성적이 좋다. 16강전 상대는 우크라이나FC 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일단 상대가 쉬워보이지만 2000년대와서 아약스도 중위리그 중위팀에게 유로파리그에서 덜미를 여럿 잡혀본 터라 얕잡아 볼 상대는 아니다. 결국 드니프로에게 1승 1패(2-1,0-1)를 거뒀으나 원정 다득점 우위로 밀려 유로파리그 16강에서 만족해야 했다. 참고로 드니프로는 이번 유로파리그 준우승(우승은 세비야)까지 차지했던 만큼,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하지만 2년도 안가 드니프로는 2016년 팀이 재정난으로 해산했다!

그런데 UEFA 유스리그에선 아약스 청소년팀이 유스리그 디펜딩 챔피언인 바르샤를 상대로 1승 1무를 거두고 파리와 아포엘을 관광보내는 등, 선배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아약스 유스의 위엄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그럼 뭐하냐 다른 구단으로 이적할텐데

2.7. 2015-16 시즌

리그에서 초반부부터 리그 1위를 줄곧 달렸으나 후반에 점차 밀리더니만 마지막 34차전에서 강등팀인 그라프샤프 원정에서 1-1로 비겼다. 그리고 2위이던 에인트호번이 34차전을 이기면서 2점차로 리그 우승을 넘겨줘야 했다. 2시즌 연속 준우승.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오스트리아SK 라피트 빈에게 2-3,2-2, 이렇게 1무 1패로 일찌감치 탈락했다. 그나마 유로파리그 48강 본선에 올라가 페네르바흐체 SK, 셀틱 FC, 몰데 FK (노르웨이)와 경기를 벌이게 되었다. 첫경기인 셀틱과의 홈경기는 2-2, 2번째 경기인 몰데 원정은 1-1로 비겼고 3차전 페네르바흐체 원정은 0-1로 졌다. 결국 셀틱과 페네르바흐체에 밀려 조 3위로 탈락해 시즌 유러피언 대회는 일찌감치 끝낸 반면, 리그 라이벌 에인트호번이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오르면서 오랫만에 네덜란드 클럽으로 좋은 성적을 냈기에 아약스의 탈락은 씁쓸한 끝을 맺었다.

2.8. 2016-17 시즌

데 부어 감독이 떠나고 페터 보츠 감독이 새로 부임하였는데 수비와 공격면에서 안정적이던 데 부어와는 다르게 다소 과감하게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격자원인 싱크라벤을 풀백으로 기용하거나 윙어와 클라센 등의 미드필더를 연계시키거나 중앙미드필더인 쇠네가 전진하며 패스를 연결해주면서 본인이 직접 페넌트레이션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등..굉장히 과감하다. 뭐 이러한 무한 스위칭 같은 것은 데 부어 때부터 보여주긴 했으나 훨씬 더 템포가 빠르고 공격적이다. 그리고 이 공격축구는 리그 초반에 다소 불안하였으나 후반기 들어서 굉장히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다만 리그에서 역시 상승세인 페예노르트랑 1.2위를 다투는 상황. 32라운드에 리그 2위를 지키고 있으며 1위인 페예노르트가 4점차로 앞선 상황이라 남은 2경기에서 페예노르트가 다 지거나 다 비기길 빌어야 한다..사실상 리그 우승은 어려운 상황. 페예노르트에게 올 시즌 리그 1승 1무로 앞섰으나 32라운드에서 에인트호번에게 0-1로 진 게 두고두고 아쉽게 되었다. 그런데! 33라운드에서 페예노르트가 엑셀시오르에게 0-3 대패당하면서 1점차로 좁혀져 역전 우승 기회가 남았다! 페예노르트는 마지막 34차전을 반드시 이겨야 상황이다.

그리고 페예노르트는 마지막 34차전 헤라클레스 전을 3-1로 이기며 똑같이 빌렘 2를 3-1로 이긴 아약스를 제치고 우승을 확정지었다. 역전 우승을 노리던 아약스로선 페예노르트가 지거나 비기길 기원했으나 결국 이뤄지지 못하고 준우승으로 만족하며 유로파리그 우승이라도 노리게 되었다.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FC 로스토프에게 홈에서 1-1로 비겼고 원정에서는 1-4로 뭉개져서 역시 이번 시즌도 32강 본선도 못가고 탈락했다. 이렇게 하여 또 유로파리그 48강으로 나가게 되었다. 리그에서는 초반 부진을 딛고 페예노르트에 이은 2위를 마킹중이다. 유로파리그도 역시 32강을 확정지었다. 32강전 상대는 폴란드 레기아 바르샤바. 홈에서 1-0으로 이겨 겨우 16강에 올랐다. 16강에서 만난 FC 코펜하겐 원정은 1-2로 졌으나 홈 승리 2-0으로 따돌리고 8강에 진출, FC 샬케 04와 8강전에서 맞붙는다. 샬케도 1승 1패, 골득실 우위로 제치고 정말 오랫만에 유로파리그 4강에 올라갔다. 그리고 4강전 1차전 홈경기에서 올랭피크 리옹을 4:1로 뭉개고 2차전엔 3:1 패배했지만 합계스코어 5:4로 결승에 진출한다. 과거 유럽을 지배했던 전성기시절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을지 기대된다.상대는 셀타 비고를 꺾고 올라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결정되었다.

UEFA 유로파 리그 결승
파일:UEFA 유로파 리그 로고 화이트.svg
2016-17 UEFA Europa League Final
2017. 05. 25 / 파르크 올랭피크 리오네 (프랑스, 리옹)
파일:AFC 아약스 로고.svg

AFC 아약스
파일:UEFA 유로파 리그 로고 (2015-2021).svg 파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0 - 2
18' 폴 포그바
48' 헨리크 미키타리안


결승전에서 0-2로 패해 준우승에 머무르며 시즌을 무관으로 끝냈다. 그렇긴해도 2002-03시즌을 끝으로 8강이상은 가보지도 못했던 아약스가 기적적으로 결승에 온것만해도 박수를 받아야 할 것이다. 결승전에서도 아약스는 공격적으로 계속 꾸준히 두드렸고, 맨유는 철저히 잠그는 식이었다. 맨유는 행운스럽게 골을 넣고도 집중을 잃지 않았지만 다소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줬으며, 아약스는 투지 있게 나섰지만 어린 선수들의 경험 부족 때문인지 미숙한 플레이로 찬스들을 아쉽게 날리고 말았다.

맨유에게 졌다고 해서 절대 아약스가 못한 것이 아니며, 평균 연령이 21세에 불과한 신예들이 슈퍼스타와 백전노장이 즐비한 맨유를 상대로 이긴다는 장담은 절대 없었고 애초에 전망도 맨유가 우승하는 쪽이 더 밝았다. 물론 맨유가 리그에서는 6위에 그치는등 다소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지만, 선수단 연봉을 다 합쳐도 포그바 한명 몸값도 안된다는걸 생각하자.

아무튼 아쉽게 유로파 리그의 우승은 물건너갔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결승까지 온 것만으로도 아약스로선 성공한 시즌이고, 리그 준우승으로 2017-18 챔피언스 리그는 3차예선 진출권도 따냈으니 결승전 패배의 아픔을 발판으로 다음 시즌에선 챔피언스 리그에서 호성적을 내도록 분발하면 될 것이다.

리그 전념하고자 그런지 KNVB 컵은 16강전에서 2부리그인 SC 캄뷔르에게 1-2로 패해 탈락했다.

시즌이 종료된 후 내부 갈등으로 팀의 유로파 리그 준우승을 이끈 페터 보츠 감독은 쫓겨나듯이 도르트문트로 이적하고 말았다. 바로 그가 라이벌 페예노르트 출신이라는 점을 내세워 페터 보츠를 쫓아낸 원흉 데니스 베르캄프는 팬들의 금지어가 돼서 가루가 되도록 신나게 까이고 있는 중이며, 심지어 팬들은 베르캄프가 하루라도 빨리 아스날로 꺼져주길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쫓겨난 보츠는 도르트문트를 망치고 있다.

2.9. 2017-18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2017-18 시즌에서도 나오듯이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라 리그 루트와 챔피언 루트가 있다. 말 그대로 챔피언 루트는 각 하위리그 우승팀끼리 격돌하는 거다. 이러니 16-17 시즌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팀인 레드불 잘츠부르크는 몰타리그 우승팀인 하이버니언와 만나도록 조 주첨이 이뤄졌고 리그 루트는 말 그대로 우승못한 상위리그 2~3위끼리 격돌하도록 조추첨이 이뤄지기에 아약스가 속한 리그 루트에 나온 2,3위팀들은 결코 만만한 팀들이 아니다. 니스도 우습게 볼게 아니지만 CSKA 모스크바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디나모 키예프,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같이 각 중상위리그 2위팀들도 아약스가 우습게 볼 팀이 아니다. 즉,레드불처럼 듣보잡이랑 대결할 일이 애시당초 조추첨부터 없었던 거다. 게다가 리그 루트팀은 예선도 2경기만 치루고 32강 본선에 갈 수 있는 반면, 하위 챔피언 팀들은 3차 예선을 4경기 치뤄야 하는 차이가 있다.

2경기 모두 비겼지만 아약스 홈에서 2-2로 비긴 탓에 원정 다득점으로 밀려 탈락,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로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로센보르그 BK에게 2-3, 0-1로 패하며 클럽 국제대회는 일찌감치 탈락했다.

그런데 2017년 7월 8일, 베르더 브레멘과의 친선경기 도중 팀에서, 또 네덜란드에서 가장 기대 받는 유망주였던 압델하크 누리(Abdelhak Nouri, 1997~)가 심장마비로 쓰러지며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버렸다. 반 데사르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약스와 네덜란드를 이끌어갈 것이란 펑가를 받던 유망주를 이제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됐다. 천만다행으로 지금은 1년만에 의식을 되찾은 상태.

그리고 리그 초반은 부진한 상태. 6라운드까지 3승 1무 2패로 리그 7위다! 물론 3위와 승점 3점차라서 얼마든지 순위야 오르겠지만 리그 첫 경기에서 헤라클레스 원정을 1-2로 진데 이어 SBV 피테서에게 홈경기를 1-2로 졌기 때문이다. 피테서야 전번 시즌 리그 5위를 거둔 팀이지만 리그 10위 헤라클레스에게 졌고 겨우 6라운드 상황에서 2패를 거뒀다. 참고로 전번 시즌은 16라운드까지 딱 1패이던 아약스였다.(리그 5라운드 홈경기 SBV 피테서 전은 1-0으로 이기던 게 거의 딱 1년만에 정반대 패배를 당한 셈.) 15-16시즌에도 6승 1무 무패행진을 달리다가 리그 강호인 에인트호번에게 첫 패배를 당했고 피테세와 헤라클레스에게 당한 패배를 딛고 리그 1위인 에인트호번이나 강력한 라이벌 페예노르트를 상대로 승점을 챙길지 모를 일.

그래도 적어도 리그 강호답게 다시 연승을 달리며 조 2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11라운드까지 1위인 에인트호번과 승점이 8점차로 벌어져 있다. 결국 리그 우승은 에인트호번이 차지했다.

2.10.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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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2019-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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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20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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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나이로 아약스 유소년 팀에서 6경기 출전해 11골을 퍼부으며 주목을 받은 노아 제서(Noah Gesser)가 2021년 7월 30일 교통사고로 16살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2.13. 2021-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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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약스는 벤피카와 3경기를 치르면서 두명의 아약스 선수만이 골을 넣었는데 다니엘손이 4골,크루이프가 3골을 넣었다.[2] 해당시즌 파나티나이코스에서는 안토니스 안토니아디스가 10골로 이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였다.[3] 밀란의 경우 이 때 아약스에게 당한 0-6 참패가 아직까지도 클럽의 유럽 대회 기록으로 남아 있다.[4] 그러나 이 풋내기들은 훗날 모두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 축구선수로 성장하였다.[5] 준결승 1차전 파나티나이코스에게 홈에서 당한 패배[6] 이때(1997-98 시즌 개막기준) 그나마 남아있던 챔스우승 당시의 멤버들은 다니 블린트, 야리 리트마넨, 반더사르, 프랑크 더부르, 로날트 더부르 정도였다. 그리고 다니 블린트가 은퇴한 1999년 아약스의 황금기 멤버들은 사실상 완전히 흩어진다.[7] 2010년대가 되면 여기에 황사머니까지 가세한다.[8] 게다가 요한 크루이프의 드림 팀으로 회자되는, 전성기의 바르셀로나였다. 스테아우아와의 결승전은 바르셀로나에게 손꼽히는 흑역사로 기억되는데 승부차기 스코어가 0-2.[9] 그 음료 레드불을 만드는 그 곳이다.[10] 에레디비시 문서에도 나오듯이 같은 시즌 유로파 리그에 나온 페예노르트는 플레이오프에서 탈락, 에인트호번은 48강에서 탈락했다. 32강이라도 간 아약스가 가장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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