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9 16:51:15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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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총리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미하일로프
Георги Димитров Михайлов
파일:Georgi_Dimitrow.png
출생 1882년 6월 18일
불가리아 공국 코바체프치
사망 1949년 7월 2일 (향년 67세)
소련 러시아 SFSR 바르비하 요양원
재임기간 제32대 총리
1946년 11월 23일 ~ 1949년 7월 2일
국적
[[불가리아|]][[틀:국기|]][[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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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01c1f><colcolor=#fff> 직업 정치인, 식자공
정당 불가리아 사회민주노동당 (1919)

(1919~49)
부모 아버지 디미터르 트렌체프
어머니 파라슈케바 도세바
배우자 류비차 이보셰비치 (1906년 ~ 1933년; 사별)[1]
로자 플라이슈만 (~ 1949년)
자녀 디미터르 디미트로프[2]
파이나 디미트로바[3]
보이코 디미트로프[4]
종교 무종교(국가 무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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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0000><colcolor=#ffe400> 러시아어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디미트로프
Гео́ргий Миха́йлович Дими́тро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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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초기의 디미트로프2.2. 라이프치히 재판과 코민테른 지도2.3. 불가리아의 지도자2.4. 최후
3. 조국전선 강령

[clearfix]

1. 개요

불가리아의 정치인.

반파시즘 인민전선 노선을 주장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인민전선의 일종인 조국전선을 조직하여 나치 독일군과 싸웠고 1946년 9월 15일 왕정 체제가 무너지고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이 성립되자 초대 서기장이 되었다.

2. 생애

2.1. 초기의 디미트로프

소피아에서 노동운동에 참여한 인쇄식자공이었던 디미트로프는 1902년 불가리아 사회민주당에 입당했는데 후에 이 당은 불가리아 사회민주노동당으로 재편되었다. 불가리아 사회민주노동당은 급진화하면서 1919년 코민테른에 가입했고 불가리아 공산당이 되었다. 1904년부터 1923년까지 불가리아 노동조합연맹의 서기장을 지냈고 제1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15년 불가리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17년 체포될 때까지 불가리아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 및 새로운 전쟁 공채 발행에 반대했다.

1923년 6월 알렉산더르 스탐볼리스키 총리가 쿠데타로 암살당했을 때 공산주의자들은 쿠데타의 주역 알렉산더르 찬코프 총리에 반대하는 봉기를 조직하였고 디미트로프는 혁명 활동가로서 탄압에 맞선 저항을 지도했지만 저항이 실패로 돌아간 후 그와 지도부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망명했으며 궐석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여러 가지 가명으로 1929년까지 소련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독일로 다시 이주했고 거기에서 나치에 맞서서 독일 공산당이 이끌던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조직하는 활동을 하였다.

2.2. 라이프치히 재판과 코민테른 지도

1933년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의 공범으로 연루되어 베를린에서 체포되었으며 라이프치히 재판에서 디미트로프는 당시 법원과 검찰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관련 재판은 3개월 가까이 지속되었으며 1933년 12월 13일 변론단계에 들어가 검사총장의 논고, 변호인의 변론에 뒤이어 12월 16일에 디미트로프가 최종 진술했다. 당시 나치가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독일 사법부는 주범 마리뉘스 판데르뤼버를 제외한 모든 '공범'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으며 이에 따라 석방되었다.[5][6]

1935년 8월 2일 코민테른 7차 대회에 참가해 "파시즘의 공세와 파시즘에 반대하여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지향하는 투쟁은 코민테른의 임무"라며 파시즘에 맞서는 인민전선을 조직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반파시즘 통일전선론이 코민테른에 정식적으로 채택되면서 본격적으로 반(反)파시즘 투쟁을 위한 인민전선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표명한 테제를 디미트로프 테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디미트로프의 인민전선론은 스페인 내전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되었으며 프랑스, 미국, 인도, 영국에서도 반파시즘 통일전선이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2차대전 시기에 고국인 불가리아로 귀국하여 인민전선의 일종인 불가리아 조국전선을 조직하여 나치를 불가리아에서 몰아냈다. 이러한 인민전선 노선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파시즘에 맞서는 데 큰 영향을 줬다.

2.3. 불가리아의 지도자

1944년 붉은 군대의 승리로 불가리아로 돌아온 디미트로프는 1946년 인민 공화국을 수립함과 동시에 서기장이 되어 1944년 조국전선 쿠데타로 총리가 된 키몬 게오르기에프를 부총리 겸 외무장관으로 임명했다.[7] 이 시기 그는 여전히 소련 시민권자였다.

1946년에 디미트로프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압력으로 마케도니아의 합병을 목표로 하기도 했지만 요시프 브로즈 티토에게 접근하여 발칸 사회주의 연맹 창설 프로젝트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자주적인 외교정책을 시작했다. 1947년 두 사람은 여러 지역에서 긴밀한 협력을 요구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디미트로프 자신이 줄곧 주장했던 소비에트 이념 논쟁에서는 의견이 맞았지만 1948년 스탈린과 티토가 틀어진 후 관계가 최악이었다는 점과 같은 해에 디미트로프의 루마니아 방문 때 그가 연방에 참여하라고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지도자들을 설득하고자 한 대중연설 때문에 동구권 전체의 통제를 원했던 스탈린의 희망에 방해가 되었다. 거기다 티토의 이견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가입 협상과 마케도니아의 할양을 방해했다.

2.4. 최후

디미트로프는 소련에서 병을 치료받던 중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사망했는데 방사능 치료를 받았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독살당했는지의 여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엠버밍 처리되어서 부검을 실시할 수도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 재빨리 시신이 화장되어서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다.

그의 시신은 엠버밍 처리되어 소피아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박물관에 조성된 영묘[8]에 안장되었으며 후임 서기장으로는 벌코 체르벤코프가, 총리로는 조국전선의 일원이었던 바실 콜라로프(Васил Коларов)가 임명되었다.

민주화 이후 유해는 화장되었고 남아 있던 영묘는 1999년에 철거되었다. 1990년 시신이 화장된 뒤 남아 있었던 영묘를 처리하는 문제로 9년 동안 논쟁이 있었다. 불가리아 공산당을 상징하는 건물이어서 빠르게 철거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6일만에 완공된 건물치곤 당시 소피아를 대표하는 건물이어서 철거 대신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재활용하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 소피아 시민의 3분의 2가 철거를 반대했다.

3. 조국전선 강령

이하 강령의 전문은 불가리아 공산당의 입장만 반영되었으므로 해석에 주의를 요한다. 특히 7, 8, 9, 12번 조항 등에 간접적으로 언급된 소위 탈파시스트화는 단순히 나치즘뿐만 아니라 소련과 공산주의 세력에 반대하는 것으로 간주된 모든 세력을 겨냥했으며 그 정책은 지극히 가혹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보리스 국왕정부의 반인민적인 정책은 절대절명의 민족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오늘날 불가리아는 사실상 히틀러의 속국이 되고 불가리아 인민은 독일 제국주의자의 노예가 되었다. 히틀러의 광기어린 세계지배 계획이 반드시 실패할 운명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배신적 정책을 수행하는 것은 곧 불가리아 인민을 의식적으로 파멸로 내몰아 민족적 독립을 잃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역사적 시점에서 불가리아 인민과 군대, 애국적 인텔리겐챠의 최고 임무는 불가리아를 구할 강력한 조국전선으로 결집하는 일이다. 조국전선은 스스로 다음과 같은 긴급임무를 부과하고 있다.
  • 1. 불가리아 인민으로 하여금 파멸적인 히틀러 전쟁에 불가리아가 말려들지 못하게 하는 것.
  • 2. 우리의 형제인 세르비아 인민이 독일과 이탈리아의 억압에 저항 하여 투쟁하는 것을 탄압할 목적으로 파견된 불가리아군을 즉시 철수시키는 것.
  • 3. 불가리아와, 히틀러 독일 및 그외 추축국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독일 파시스트군과 게슈타포 도당으로부터 불가리아의 국토를 해방시키는 것.
  • 4. 독일 등 추축국에 대한 식량과 원료 수출을 중단하고 인민과 군대의 식량을 확보하며 생활필수품을 알맞은 가격으로 주민에게 공급하는 것.
  • 5. 대서양선언을 쫒아, 다른 발칸국가 국민들과의 합의를 통해, 그리고 불가리아와 소련, 영국, 미국 등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들과의 긴밀한 우호 협력을 통해 불가리아 국민의 민족적 이익을 보장하는 것.
  • 6. 파시즘과 히틀러 독일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인해 박해받고 있는 모든 일반인과 군인을 즉시 석방시키는 것.
  • 7. 인민의 정치적 권리, 특히 출판 · 집회·결사의 자유를 부활시키고, 모든 반헌법적 · 반인민적 · 파쇼적 법문을 폐지하는 것.
  • 8. 파시스트 · 군주제파 일당의 손에서 군대를 앗아, 군대가 반인민적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하는 단호한 조치를 강구하는 것. 장교, 하사관, 병사에게 완전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
  • 9. ‘브니크(방위자)’, ‘사유즈 나 라트니크(군인동맹)’, ‘레기온 (군단)’ 과 같은 파시스트 조직을 해산시키는 것. 파시스트 악당과 범죄자들을 무력화시키고 적절히 처벌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
  • 10. 인민의 부와 인민의 노동을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부터 지키고 자유로운 독립국으로서의 불가리아의 정상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것.
  • 11. 도시와 농촌의 근로자에게 생계수단, 일거리, 수입,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
  • 12. 파시스트의 반(反)문화주의, 인종적 증오, 우리 국민의 민족적인 명예에 대한 모멸을 근절시키는 것.
우리 국민에게 긴요한 위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국전선의 구국정책을 단호하고 일관되게 실행할 힘을 갖춘 진정한 국민적 정부를 한시바삐 수립해야 한다. 그러므로 조국전선은 현재의 배신적 · 반인민적 친히틀러 정권을 타도하고 불가리아 국민의 진정한 정부를 세우는 일을 당면 투쟁목표로 한다. 또한 이 정부는 전 불가리아 인민의 의지와 지지를 바탕으로 대(大)국민의회의 소집을 위한 조건을 마련할 것이다. 그리고, 이 의회가 앞으로의 불가리아의 통치형태를 정하고, 우리 조국의 자유, 독립, 번영에 필요한 헌법상, 물질상의 보장을 확립해 낼 것이다."

1942년 7월 17일[9]

[1] 세르비아 출신으로 남편이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에 연루되자 베를린에서 자살하였다.[2] 친아들. 1936년 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3] 1931년에 입양한 딸이다. 친부는 중국공산당 서기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왕밍(천샤오위)으로 본명은 '천팡니(陈芳妮)'.[4] 입양한 아들, 1941년생.[5] 주범 격으로 체포되었던 마리뉘스 판데르뤼버는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처형당했다. 이 사건이 나치의 자작극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증거는 없다. 현대 독일의 공식 입장은 '정신이상자의 단순 방화를 나치가 정치적으로 악용했다'이다.[6] 사실 뤼버를 제외한 피고들은 증거불충분이라는 이유로 무죄로 할 것을 제안받았으며 따라서 디미트로프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7] 키몬 게오르기에프는 1923년 쿠데타를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1934년에도 즈베노 쿠데타를 일으켜 총리가 되었고 1944년의 조국전선 쿠데타가 그의 마지막 쿠데타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구 쿠데타 주동자' 였다.거의 불가리아의 피닉제[8] 디미트로프가 사망한 지 6일만에 완공하였다. 그래도 견고하였는지 1999년에 철거할 때 4번의 폭파 시도 끝에 비로소 해체되었다.[9] <통일전선 연구> 250~252쪽에 수록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