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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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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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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colbgcolor=#ffffff,#191919> 용감
진실
사랑
상징 교목 느티나무
교화 꽃사과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성별 남자고등학교
형태 사립
재단 파일:홍익대학교_UI_Blue.svg 학교법인 홍익학원
개교 1968년
교장 한명국 (13대)
학생 수 639명
(2023년 기준)
교직원 수 58명
(2023년 기준)
관할 교육청 서울특별시교육청(서부교육지원청)
위치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미산로 111
전화 대표번호 02-3140-1168
FAX 02-334-7533
행정실 02-3140-1100
홈페이지 파일:경성고등학교로고.jpg


1. 개요2. 역사
2.1. 학교 연혁
3. 학교 상징
3.1. 교훈3.2. 교표3.3. 교가
3.3.1. 교목 및 교화
4. 학교 특징5. 학교 시설6. 학교 생활7. 출신 인물8.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8.1. 버스 노선8.2. 철도
9. 사건·사고10. 기타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마포구 연남동에 소재하는 일반계 남자고등학교다. 1967년 학교법인 경성학원에서 설립인가하여 1968년 24학급으로 개교했다. 초대 설립자는 윤사 김병삼 박사다.

개교 이후 경성학원 산하 학교는 서울 경성고등학교, 경성중학교, 경성고등학교(2부)[1] 와 경기도 화성시에 소재하는 수원경성고등학교[2]가 있었다.

2002년 학교법인 경성학원이 홍익학원에 합병되면서, 홍익대학교 병설 고등학교가 되었다.

2023년 현재 재학생 수는 639명, 교직원 수는 58명이다.

2. 역사

2.1. 학교 연혁

1967.12.29 경성고등학교 설립 인가(24학급) / 설립자(김병삼 박사)
1968.03.02 초대 이창우 교장 취임
1968.09.19 마포구 연남동 369-1(현위치)로 이전
1968.12.10 제2대 김병삼 교장 취임
1970.01.28 경성고등학교 30학급 인가
1970.06.27 체육관 및 종합관 준공
1976.01.20 경성고등학교 45학급 인가
1977.02.28 도서관 준공
1980.12.30 학급 증설에 따른 학칙 변경 인가.주간(남) 45학급, 야간(여) 36학급, 계 75학급.
1985.05.08 중화 민국 대북시 육달 고급 상업 직업 학교와 자매 결연
1986.10.29 학교 학칙 변경 인가.주간(남) 45학급, 야간(여) 36학급 계 81학급.
1988.02.20 김병삼 교장 이임
1988.03.02 제 3대 이종택 교장 취임
1991.10.22 학교 학칙 변경 인가 여고(야간) 24학급
1992.01.24 학교 학칙 변경 인가 남고 (주간) 39학급
1992.03.02 제4대 허경운 교장 취임
1992.10.07 학교 학칙 변경인가.여고(야간)24학급 "경성여자실업고등학교"로 개편인가
1995.01.10 학교 학칙 변경 인가 36학급
1996.01.16 학교 학칙 변경 인가 30학급
1997.02.19 제 5대 이오섭 교장 취임
1998.03.31 홍익대학교와 자매 결연
2001.03.01 학교 학칙 변경 인가 28학급
2002.03.02 제 6대 이덕수 교장 취임
2002.04.18 홍익대학교 병설고등학교
2003.09.01 제 7대 허영훈 교장 취임
2004.09.01 제 8대 차재연 교장 취임
2006.03.01 학교 학칙 변경 인가 27학급
2007 논술교육동아리(통합논술지도팀) 선정(서울시교육청)
2007.09.14 제 1함대 경주함 자매결연
2008 교사수업평가와 장학의 활성화 연구 선정(서울시교육청)
2009 서울교육력제고 중점학교 선정(서울시교육청)
2009.11.23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월학1리 냇강마을 농촌자매결연
2011.09.01 제 9대 양명기 교장 취임
2011.12.15 본관 재건축 준공
2014.09.01 제 10대 조신구 교장 취임
2016.03.02 제 11대 황병희 교장 취임
2018.03.12 중앙도서관 개관
2019.03.01 학교 학칙 변경 인가 24학급
2020.02.07 제 50회 졸업식
2020.09.01 제 12대 황광욱 교장 취임
2023.02.10 제 53회 졸업식(211명, 누계 28,948명)
2023.03.02 제 56회 입학식(226명)
2023.09.01 제 13대 한명국 교장 취임

3. 학교 상징

3.1. 교훈

용감(勇), 진실(眞), 사랑(愛)

3.2. 교표


3.3. 교가

아침 햇빛 눈 부신 동방의 나라
한양은 오랜 전통 문화의 중심
한가람 언덕 위에 우뚝 세운 집
새 역사 꾸밀 일꾼 여기 모였다
힘과 지혜 길러 주는 진리의 동산
세기의 빛을 받은 학문의 전당
겨레의 자랑 되자 경성 중고등
조국과 함께 크는 경성 중고등

가슴마다 간직 한 높푸른 이상
미덥다 슬기롭다 보람 찬 모습
맑음과 참 됨을 배우고 닦아
새 사회 이룩 하되 우리 손으로
힘과 지혜 길러 주는 진리의 동산
세기의 빛을 받은 학문의 전당
겨레의 자랑 되자 경성 중고등
조국과 함께 크는 경성 중고등

경성고와 경성중은 교가가 같다. 참고로 바로 옆에 위치 해 있는 홍익디자인고등학교에서는 경성 중고등이라는 가사를 홍익디자인고등학교라 바꾸어 부른다.

3.3.1. 교목 및 교화

4. 학교 특징

  • 남자고등학교이다. 바로 앞에 경성고2부→경성여고→경성여자실업고→홍익디자인고로 여고가 있지만, 점심 시간 외에는 마주칠 일이 없다.
  • 경성중학교와 같은 건물을 사용한다.
  • 전통적으로 아이스하키부가 있다.
  • 종소리가 약간 섬뜩한 편이다.

5. 학교 시설

  • 본관 - 4층 건물로, 경성중학교와 같이 사용하는 건물이다.[3] 1학년과 2학년이 사용한다.
  • 진학관 - 5층 건물로, 3학년들이 사용한다. 과학실험실들이 이곳에 있어 1,2학년들도 수업이 있을 때는 가끔 사용하며, 2021년 4월 15일 엘리베이터가 완공되었다.
  • 급식실 - 정면 외관은 파르테논 신전과 유사하다. 경성중과 홍디고가 같이 사용하는 급식실이다.[4] 이전에는 고등학교 체육관으로 사용되었으며, 무대와 2층 난간도 있다.[5] 학교 축제인 용마제 공연을 이곳에서 하기도 했다.
  • 도서관 -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연결되는 1층 로비에 위치한다. 2018년 이전에는 진학관 3층에 위치했었으나 홈베이스로 바뀌면서 본관에 새로 생겼다. 1,2층 복층형 도서관이지만 2층으로는 출입할 수 없다.
  • 독행정 - 학교 내부에 있는 정자다. 대만에 있는 육달학교와의 자매결연을 기념하며 대만에서 공수한 원자재로 지은 목재 건축물로, 안쪽에서 보면 한글과 한자로 그 의미가 기록되어 있다. 대만에서 제작되어 서툰 글씨체가 인상적이다.
  • 홈베이스 - 2018년에 교과교실제가 실시되면서 생긴 곳이다. 개인 사물함과 책상이 있어 자습도 할 수 있다.
  • 체육관 - 교사 안에 있는 체육관은 2023년에 완공되어 경성고, 경성중, 홍익여고가 협의하여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과 중에는 다양한 체육활동이 실시되는 중학교 특성상 대부분 경성중학교 사용하고 있다.
  • 자전거 보관소 - 급식실 왼쪽과 진학관 뒤에 자전거 보관소가 있다. 급식실 쪽 방향은 주로 중학생이 보관하며, 고등학생은 진학관 뒤에 보관하는 편이다. 자전거로 통학하는 학생이 많은 편이다.
  • 매점 - 약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즈음까지 운영한다. 매점에서는 음식[6], 음료 등을 판매할뿐만 아니라 학용품[7]도 팔고있다. 매점의 존재로 급식을 거르는 학생도 종종 있다.
  • 남극회관 - 이 건물은 급식실도 포함하고 있다. 급식실 뒤쪽에 건물하나가 있는데 이곳에서 음악 수업을 한다. 1층 화장실, 2층 운동부실, 3층 기술가정교실, 4층 음악교실 및 밴드부실, 5층 헬스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6. 학교 생활

  • 7시 40분 이후로 등교 할 시 벌점이 부과 된다. 7시 55분까지 단속 하는 듯 하다. 학생생활규정은 '착실'까지 해야 등교한 것으로 인정하므로 사실상 7시 35분 경에는 교문을 통과해야한다.
  • 지각, 수업 태도, 무단 결과, 복장 등으로 벌점이 부과 될 경우 10점 단위로 징계를 받는다. 학부모 면담부터 시작 해서 선도위원회의 과정을 거치며, 사회 봉사, 특별 교육, 출석 정지 등의 처벌이 있으며, 심할 경우[8] 강제 전학도 보내거나 퇴학 조치가 내려진다. 벌점은 학년이 올라 갈 때마다 초기화 된다.
  • 학교 자체 축제로 경성고 용마제(龍馬祭)가 있다.
  • 원래는 휴대폰을 걷다가 교칙이 바뀌면서 2022년 9월 1일부터 휴대폰을 걷지 않게 되었다.
  • 두발 규정도 완화 됐는데, 애초에 염색만 아니면 장발, 약한 파마도 안 잡았다.

7. 출신 인물

가나다순으로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8.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학생들이 많이 사는 망원동은 마땅히 이용가능한 대중교통이 없다. 걸어오기에는 생각보다 멀기에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게 일반적이지만, 비오는 날에는...

8.1. 버스 노선

학교 앞 - 마포06
코오롱아파트사거리 - 마포05
경성중고 사거리 - 마포08, 마포15, 7013[11], 7016, 7711, 7737
성미약수터[12] - 마포08, 마포15, 7013, 7016, 7711, 7737

8.2. 철도


두 역 모두 의외로 거리가 멀어 걸어다니기 귀찮으면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 두 역 모두 마포06을 타면 된다. 당연히 방향은 반대.

9. 사건·사고

언론에서 보도한 경우에만 서술하시기 바랍니다.

10. 기타

  • 학교 이름에 관하여 경성을 사용하는 학교가 몇 개 있지만, 모두 한자가 다르다. 과거에는 경성고등보통학교[13] 가 있었으나, 이때 경성서울특별시의 왜정시대 지명 京城이다. 또 부산에 있는 경성대학교慶星이라는 한자를 사용한다. 초대 설립자가 京城으로 교명 승인을 요청했지만 옛 서울의 지명과 같아 승인이 나지 않아, '서울경' 위에 '날일'자를 얹어 '볕경'자로 수정하여 요청해 승인되었다.
  • 80년대에는 엄청 잘나가는 명문고였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이 두 번 배출되었다.[14] 서울대50 명 이상, 연세대에는 100 명 이상 보내는 정도로.... 강남 8학군이 막 뜨기 시작하기 직전 서울의 전통 부촌 연희동쪽 학생들이 배정되었기 때문이었는데, 전두환 정부 시절 정권 실세 인사들이 연희동에 대거 거주하다보니 심지어 1980년대에는 장관급 관료의 자제 3명이 배정되어서 재학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1981년에 서울대에 59명을 진학시켰다.1981학년도 주요 고교 서울대 합격자수
  • 학교 설립자인 김병삼[15][16] 설립자가 장군 출신이라, 학교에서 교사나 학생이나 똥군기가 작렬했다.[17] 교련시간이 그 정점. 교련 교사들은 아예 군복을 입고 학생들 수업과 학생지도를 할 정도...[18]
  • 월요일 조회시간 교장에게 경례를 할 때 '빰~ 빠라라라 빰~...으로 시작하는 장성곡이 연주되었다.
  • 교복 혹은 교련복을 입고 거수 경례를 할 때는 전진 이라고 외쳤다.
  • 본관이 신축되기 이전, 구 본관은 아시아에서 제일 긴 건물이라고 전해졌다.[19] 고등학교에서 중학교에 이르는 복도의 길이만 120 미터가 넘었기 때문에, 복도에서 100 미터 달리기가 가능했다.
  • 아이스하키부를 전략적으로 육성하였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하나같이 아이스하키 스틱[20]몽둥이로 사용하여, 학생들에게 체벌을 하였다. 현재는 체벌이 사라졌지만, 교무실 곳곳에서 잘려진 스틱이 보이기도 한다.
  • 과거 80년대에는 웬만한 학교 저리가라의 군기를 자랑. 80년대에 학생이 넘쳐나던 시절 2호선 개통으로 강남에 사는 중학생도 2호선 홍대입구역에 있는 경성고등학교로 진학이 가능했음. 학생간의 폭력도 상시로 있었고, 그 당시 남교사의 체벌이 심하고 모욕적 언사도 많이 있었음. 적응이 쉽지 않은 학교였음.
  • 체신부장관출신 김병삼씨가 만든 학교로 군장성출신으로 알고 있음. 80년도에 생존해 계실땐 가끔씩 수업중인 교실에 다녀가곤 하셨는데 인품이 좋아보이긴 했음. 80년대 후반기에 건강하시다가 갑자기 별세. 남자 교사들 중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이 조금 있었음. 예를 들어 수업 시간 초반 20분 정도를 빠따로 시작해서 깍아먹고 다음도 대충하다가 끝내는 교사들도 몇 있었음. 아마 사립학교라 교사들이 경영진에게만 잘보이면 되는 문화의 병폐라고 생각됐음.
  • 1987년 교복을 다시 입기 시작하여, 당시 2학년이였던 1986년 입학생('70년생)부터 착용하였다. 지금의 디자인과 큰 차이가 없다.
  • 1980년대 말에는 한 학년에 900명 이상 학생이 재학하여, 고등학교에만 2700명 이상의 학생들로 북적였고, 많은 수의 학생들이 자전거 통학을 하였고, 지금 학교 앞 유치원 자리에는 자전거 월주차가 가능한 자전거 보관소가 있었다. 현재는 자전거 보관소를 급식실 뒷편으로 쓰고 있다.
  • 지금의 홍익디자인고가 당시에는 경성여고라고 칭하는 경성고2부 학급이였다. 야간학급이였으나, 주간에 학교를 다니는 일종의 특수한 경우.[21] 그래서 남고생들이 경성 야순이라고 많이 놀리고 다녔다.
  • 당시에도 용마제가 개최되었는데, 그때 교사들은 학생들의 서클활동에 대해서 그리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 과거에는 두발 규정이 매우 엄격하여, 교사들이 바리캉을 들고 다니면서 머리 긴 학생이 보이면 직접 머리 한 가운데 고속도로를 내고 다녔다. 현재는 상당히 완화되어 심각하게 장발이거나 단속 기간, 흡연 학생이 아니면 바리캉에 당할 일은 없다.
  • 1987년 어느 날 체육관 5 층(현 급식실)에 있던 밴드부 실에서 불이 났다. 화재의 원인은 역시나 밴드부 학생의 흡연.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대신 모든 악기들이 홀라당 타 버렸다. 그 바람에 모든 악기들을 새 것으로 교체해야만 했다.[22]
  • 1980년대 졸업생에 의하면 수학여행가는 기차에서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한동안 수학여행을 안갔다고 한다.
  • 주로 수학여행은 1학년 때 설악산으로 갔었다. 여관에서 주는 개떡같은 밥을 먹어야 했지만[23] 시간이 지날수록 강원도, 충청도 등 다른 코스로 변경되었다. 현재는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3 학급 단위로 따로따로 여행을 떠나는데, 교사들 플랜이 다 제각각이라 학급들의 평가가 제각각이었다. 2015년에는 1,2,4 반의 코스 빼고는 전부 등산만을 전전했다. 그에 비해 1,2,4반 코스는 문화 체험, 동굴 구경, 치즈만들기 등의 코스를 했다. 2019년에는 갯벌, 딸기 농장 등의 코스가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수학여행을 못갔으나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난 2022년부터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 아쉽게도 2학년은 수련회, 3학년은 그런거 없다. 수련회장이 평창에 있는데, 경성중학교부터 다닌 학생들은 그곳을 최소 2~3번은 갔다왔을 것이다. 3학년은 그냥 수업을 한다.
  • 인근에 있는 광성고등학교 아이스하키부와 경기가 있는 날에는, 단체로 응원을 가기도 했다. 경기 후 반드시 이긴 학교 응원단을 먼저 귀가 시켜주었다. 패배한 학교 응원단이 먼저 귀가 할 경우에는 길거리에서 학교 대항 패싸움이 벌어졌다는 설도 있을 지경이다. 현재는 아이스하키 단체 응원을 가지 않는다.
  • 2022년 현재는 학교 분위기가 많이 나아졌지만 2010년대까지만 해도 교장, 교감보다 파워가 쎈 교사들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공립학교처럼 교사들이 5년정도 근무를하면 다른학교 이직을 가는 경우가 없다, 실제로 학교에는 경성고등학교에서만 20~30년 근무하고 있는 교사들이 많다) 이 예전 방식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재학생들의 실제 말을 들어보면 일명 '떨치기' 라는 모 국어교사가 학생들의 성기를 효자손으로 때리는 척 (때리는 척을 하지만 힘조절에 실패해 실제 효자손에 성기를 맞은 학생들이 있다) 하는 그런 경우가 있었고 체벌금지가 한참 화두였던 2010년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학생의 귀싸대기를 때리는, 혹은 랜덤으로 학생의 허락없이 가방을 뒤져 소지품검사를 하는 그런 몰상식한 교사들이 아직까지도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학교를 졸업한 재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애교심이 일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연남동 주변 혹은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영 좋지 않은 고등학교 중 하나. 그러나 그러한 교사들이 줄지어 퇴임을 하고 점점 젊은 교사들이 유입되고 있어 분위기는 더욱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 2021년 10월, 그해 8월에 개설된 디시인사이드 경성고 미니갤러리에서 2학년으로 추정되는 글쓴이가 3학년의 욕설을 담은 게시글 2개가 올려져 있는 것을 3학년에게 발각이 되어, 3학년에게 큰 분노을 샀다. 이 일로 인해 2학년은 3학년을, 3학년은 2학년을 저격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3학년은 글쓴이의 신상까지 파악하게 되고[24], 당시 3학년 몇명은 직접 글쓴이에게 전화로 사과를 받았으며, 그 게시글에 3학년을 향한 비난댓글을 적은 다른 한 명은 신상을 파악하지 못했다. 또한, 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안전생활부에서는 경고성 게시글을 DC에 올렸다.[25] 또한, 3학년을 향한 비난댓글을 단 다른 한 명은 잡아내지 못하여 교내에서는 직접 자수하라는 프린트물을 각 반의 칠판에 부착했으며 '자수하지 않을 시 사이버 수사대의 신고까지 할 수 있다'라는 경고문을 달기도 했다. 결국, 경성고 미니갤러리 매니저는 학교의 폐쇄조치로 인해 10월 7일 오후 5시에 폐쇄되었다. 그러다 생활안전부의 모니터링 하에 다시 열리게 되었다.
  • 1980년대에 폭력조직이 교내에 폭력서클을 다수 만들었는데 이 폭력서클에 가입한 학생이 이때부터 그 서클과 연결된 조직의 일원이 되어서 졸업하면 자동적으로 그 조직의 조폭이 되는 일이 있었다. 이 당시에 소지품 검사를 하면 가방에 쇠파이프같은게 자주 적발되었다고 한다.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폭력적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이 무렵에는 동네 사람들이 밤에 외출을 최대한 안하려고 했으며, 방과 후에 성미산이 그들의 아지트여서 인근주민들은 성미산을 갈때도 조심해야 했다. 교사들의 노력으로 결국 폭력서클은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 영향으로 교내 서클이라는 것에 대해서 교사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 1988년에 학생들이 교사들에게 두발검사를 심하게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에 학생들이 두발 자율화를 주장하면서 운동장에 모여서 교가와 애국가를 부르는 일종의 시위를 했다. 그러자 당시에 체육교사로 학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일명 '킬러'라고 불리는 김봉희 교사를 필두로 교사들이 죽도와 아이스하키채를 들고 나오면서 안들어가 이 xx야 라고 고함치며 윽박지르자 학생들이 다들 도망가며 두발 자율화 주장 시위는 조용히 사라진다.
  • 매년 10월 축체 무렵에는 '경성' 이라는 연간지가 발행되어서 학생들에게 무료 배포되었다. 90년대 당시 이 책의 내용은 교사, 학생들의 수필이나 논설문 같은 글들 위주였다. 이 책의 뒷부분에는 교직원 명단이라는데 실렸는데 여기에는 교사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교사의 이름이 적히는 순서였는데 이게 교사의 서열 순이라는 말이 있다. 사립 학교였기 때문에 이런게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이런 교사간 서열에 대한 주장이 신빙성이 있다고 학생들에게 여겨진게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있던 ca시간이 그걸 믿게 하였다. ca시간이란 일주일에 한시간씩 본인이 희망하는 특정 클래스(예를 들면 탁구, 축구, 바둑)를 하나 정해서 한 학기 동안 처음에 본인이 정한 클래스만 참가하는 수업이었다. 처음에 축구를 선택하면 한학기 내내 축구만 들어야 한다. 이 수업의 신청인원은 각 학급마다 숫자가 정해져있었다. 축구를 듣고 싶은데 인원이 5명으로 제한되어서 5명 이상 받을수없지만 서열이 높은 교사의 반에 속하면 그런건 가볍게 무시되었다.

[1] 현 홍익디자인고등학교(서울)[2]홍익디자인고등학교(경기)[3] 본관 정문을 기준으로 왼쪽은 경성고, 오른쪽은 경성중이 사용한다.[4] 홍디고 → 경성고 → 경성중 순으로 먹는다.[5] 무대에서도 식사가 가능하며, 2층 우측 난간은 교직원들이 사용한다.[6] 빵, 만두, 과자, 음료, 소세지, 아이스크림 등[7] 스케치북, 지우개, 귀마개 등등[8] 보통 생활 벌점이 아닌 다른 사고를 쳤을 경우[9] 달성고등학교 재학중 경성고등학교로 전학[기준] 2024년 10월 16일[11] 경성중고.홍대부속여중고입구 정류장[12] 후문 루트.[13]경기고등학교[14] 1984년 학력고사 황덕순, 1986년 학력고사 이준걸[15] 1923~1988. 대한민국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육군본부 비서실장, 육군헌병사령관 등을 역임하였고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를 체포했다. 육군 준장 시절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입각하여 박정희와도 인연이 있으며 체신부장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나 경성중고교를 설립하였다.[16] 학교에 잡부금으로 납부 해야 하는 돈이 많았다. 그리고 자기 그림을 학부형들에게 팔기도 했다.[17] 김병삼은 조회시간에 전교생을 운동장에 세워놓고서 개(세퍼드)를 데리고 연단에 오르기도 했으며, 교무실에서 교사들의 쪼인트를 걷어차기도 했다. 정강이 걷어차는것은 군사 문화라고 한다.[18] 학교에 M1 소총 실총도 있었다.[19]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여담으로 한성과학고등학교 본관 길이도 경성고 못지 않게 긴 편이다.[20] 물론 사용하지 않는 폐품을 절단해 개조시킨 물건이다.[21] 고입연합고사 성적이 주간 인문계에 미치지 못하는 여학생들이 입학.[22] 화재가 발생했던 것은 봄으로, 1학년 수학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여관 마당에 모두 모여 밴드부의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본교에서의 화재 소식이 전해지면서 화가 난 교감이 욕설을 퍼부으면서 학생들을 강제 해산시켰다.[23] 심지어 군대 급식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에 양도 부실했다. 수학여행이 아니라 교도소 체험인 줄... 게다가 창문에 왜 쇠창살이 쳐있는 건데?[24] 걸리게 된 이유가 골 때리는데, ㅇㅇ이라는 반고닉을 사용하면서 글을 올렸지만 정작 식별코드(당시 ID)를 자기 이름으로 써놔서 걸렸다.[25] 익명성으로 이루어진 웹사이트에서는 이 또한 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