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04 10:07:20

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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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노년기)권하자 사진.jpg
본명 권하자(權夏子)
출생 1940년 8월 13일
경기도 경성부
(現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사망 2013년 7월 12일 (향년 72세)
서울특별시 송파구
학력 한국외국어대학 (불어과/졸업)
종교 기독교[1]
직업 외무부 공무원 또는 공무직 (퇴직)
가족 아버지, 어머니, 8남매[2]
묘소 없음[3]

1. 개요2. 과거3. 노숙 생활4. 방송에 알려지다5. 반응6. 사망7. 논란8. 그 외9. 같이 보기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또는 공무직. 말년에 서울특별시 정동 등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매일 밤을 지새웠기 때문에 '맥도날드 할머니'라는 별명이 붙었다.

2. 과거[4]

서울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바로 위의 형제인 여섯째 자녀(성별은 불명)가 일찍 죽은 후에 어렵게 다시 얻게 된 자식이었다고 하며, 이 때문에 가족들 중에서 부모의 편애제일 많이 받았다고 한다.[5] 막내 여동생은 자신이 돈을 주고 산 것도 언니가 탐을 내면 부모가 뺏어서 줄 정도였다고 하는데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권하자는 다른 형제자매들의 소유물도 자신의 것인양 썼고 자연히 이들의 원망을 사게 되었다고 한다.

1959년, 한국외국어대학 불어과(현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양어대학 프랑스어학부)에 입학하여 4년 동안 학업을 마치고 졸업하였다.[6] 형제들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는데, 입학 당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정 형편이 무척 어려워서 셋방살이를 하는 형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까지 져가며 등록금을 내주었다고 한다.[7]

이후 주일본 대한민국 영사관에서 3년간 근무했고[8][9], 1976년부터 1991년까지 대한민국 외무부 유엔 담당 부서에서 15년을 근무했다.[10] 따지고 보면 도합 18년을 근속한 셈이다. 다만 정식 공무원이었는지 여부나 근무 당시 직급, 직책 등은 알려진 것이 없다.[11] 또 대학 졸업 이후 십여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외무부 시절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어묵을 사먹거나 사탕을 사도 꼭 백화점에서만 샀다고 할 정도로 사치가 심했다고 한다.[12]

젊은 시절 결혼을 생각한 적은 여러번 있었으나, 권하자의 눈이 워낙 높아서 생전에 계속 부모에게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면서 매번 혼담을 걷어차며 다음 기회를 기다리다 혼기를 놓쳐버렸고 결국 평생 독신으로 산 인물이다. 죽기 얼마 전까지도 권하자는 자신과 결혼할 사람은 국가의 지도자급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때는 치매가 진행 중이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치매에 걸리기 이전 시절에도 똑같은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13]

부모님이 그녀를 다른 형제들과 차별대우 해가며 공주 대접한 것이 권하자를 유아독존형의 오만방자한 성격으로 만들어버렸고 오히려 딸의 인생을 망쳐버렸다고도 볼 수 있다. 주변에서 아무리 도움을 주려고 해도 권하자는 '나를 데려갈 백마탄 왕자님' 운운하면서 끝내 스스로 거부하였고, 글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영원히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3. 노숙 생활

아무튼 한때는 분명 번듯한 직장이 있었던 그녀는 어째서인지 몰락하여 일정한 거주지조차도 없는 노숙자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퇴직 후 퇴직금을 탕진하고 그렇게 된 게 아니냐는 추측과[14], 외무부 시절부터 씀씀이가 헤펐던 점이나, 몰락 이후 도움의 손길이 오면 고급만을 고집하며 요구하는 점을 봤을때 퇴직 후에도 씀씀이가 그대로라서 결국 모든 재산을 탕진, 결국 살 집마저 잃어버려 글자 그대로 길거리에 나앉고 만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실제로 그나마 도와주려던 사람들도 그녀가 매번 고급만을 요구하며 자신을 상류층 인사인 양 행동하고 상대를 하급자 부리듯 하니 분노해서 지원을 때려치우는 일이 다반사였다니 말이다.

십수년 넘게 공직 생활을 하다가 중도에 퇴직하게 된 사유는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말년에 친하게 지냈던 캐나다인 스테파니 세자리오의 여성조선 인터뷰에 따르면 권하자 본인은 자신의 직무에 애착이 컸고 계속 일을 하고 싶어했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직장을 그만뒀다고 하는데, 그녀의 실제 퇴직 시기(1991년)나 외국인 여성과 80년대 한국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했다는 것을 종합해보면 권하자 개인의 정치 성향과 당시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황이 퇴직에 중요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여성조선 인터뷰 전문

2005년 무렵부터 몇 년 동안이나 24시간 영업을 하는 맥도날드롯데리아 등 패스트푸드점에 심야 시간에 방문해 잠을 자고 새벽에 교회를 오가면서 기도를 드렸으며 낮에는 일본문화원에서 무료로 상영하는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 다시 맥도날드로 가는 일정을 반복했다고 하며 3일에 한번 스타벅스에서 고급 커피를 주문하여 마셨다고 한다.[15] 생활비 전액은 다니던 교회의 교인이 후원해주는 돈으로 생활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늘 가지고 다니는 쇼핑백에는 영어 신문이 가득 차있었는데, 할머니는 이 신문을 막힘없이 술술 읽을 정도로 영어 실력 수준이 전문가 수준이었으며 프랑스어도 상당히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2020년대 기준으로도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막힘 없이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당시 시대상으로는 그야말로 엘리트. 또한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말하는 보그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0년 12월 12일 가수 겸 생명 운동가 이광필이 이 할머니의 사연을 널리 알리고 돕기 위해 인터뷰 영상을 작성하여 유튜브에 올리고 신문 기사가 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씨는 2005년에 자신이 운영하던 커피숍에서 맥도날드 할머니를 5개월가량 쉬어가게 한 적이 있는데, 그 뒤로 맥도날드 할머니가 가게에 오지 않게 되어 도와주지 못하게 되고 그것이 아쉬웠던 차에 11월에 우연히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에 할머니의 사연을 알리고자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16]

사실 이 할머니는 그쪽에서는 나름 명물이자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매점 직원들과 심지어 다른 손님들에게도 갑자기 이유 없이 소리지르며 시비를 거는 등 자주 행패를 부려서 패스트푸드점 점주들과 커피 전문점 주인들이 합의하고 가게 내에서 못 자게 했었다. 잘하면 긴급출동 SOS 24에 출연할 했는데…

4. 방송에 알려지다



2010년 12월 24일에 같은 방송국의 휴먼 다큐인 SBS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에서 사연이 방송되어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2011년 1월 14일에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좀 더 자세한 취재를 하였다.

1차 방송에서 본명과 학력, 과거 직업이 밝혀졌다. 또 대학 시절 미모가 출중해 당시 메이퀸으로 뽑힐 정도였다고 한다.[17]

2차 방송에서 공개하기를 외무부에서 퇴직한 뒤에 어떻게 지내왔는지 상세한 것은 불명이나, 동사무소의 기록에 의하면 2005년 1월 24일에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고, 국내에 남아있는 사람[18] 가운데서는 여동생이 유일한 혈육이었다.

사실 긴급출동 SOS 24와 달리 이 방송에서는 훈훈한 휴먼다큐로 제작하려고 했으나, 당사자가 워낙 황당한 태도를 취한 것 때문에 결국 그 주제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할머니의 추악한 실체만 까발리게 되었다. 권하자는 노숙자로 사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이 금전적 지원을 해주자마자 택시를 타고 호텔 사우나에 가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소갈비 등 값비싼 음식을 당연하다는 듯이 주문하는 등 사치를 부리며 순식간에 그 돈들을 탕진했다. 또 설날을 맞아 제작진이 떡국 한 그릇을 대접하겠다고 하자 대뜸 자신이 아는 종로의 한식집을 가자고 했으며, 찾으러 가는 길에서도 제작진에게 잔심부름을 시키고, 한식점이 이전해서 찾기 어렵자 신경질을 내다가 마침내 찾아간 한식집이 지하로 이전한 것을 알고는 '시시한 곳에서 먹고 싶지 않다'며 역정을 내는 등 안하무인의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더불어 버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기관을 20년 이상 이용한 적 없다는 발언 등을 하였다. 실제로 버스, 지하철의 요금 체계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추가로 기자와 대화할 때의 태도도 대단히 일방적이고, 자기 생각에 안 맞는 말 같으면 기자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버리는 등, 기본적인 소통에도 문제가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핵심적인 내용에 가려지긴 했지만 기자가 할머니의 짐에서 뭔가를 꺼내려 하면서 물어보자, 기자의 손을 확 뿌리치면서 "이건 내 비밀"이라고 못 건드리게 하는 통에 기자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보여주기 싫은 것일 수도 있지만 완곡하게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을 대번에 그런 행동을 보인 것을 본다면 기본적으로 대화하는 데 있어서 고집스러운 성격일 가능성이 많다. 거기에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모습도 있었다.

결국 권하자가 주장하는 '한국외국어대학교의 메이퀸으로 뽑혔었다'는 미모 화제만 언론에서 실어주는 형편. 말하자면 방송 컨셉을 처음부터 잘못 잡은 대표적인 경우. '다큐가 아닌 솔루션 형식으로 갔어야 했다'는 말이 많았다. 그 뒤에 방송된 화장실 3남매[19]의 아버지가 보이는 모습과도 꽤 유사한 상황이다. 역시 나름 잘살던 가장이었지만 사업이 망한 뒤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꽤 유사하다.

5. 반응

권하자의 사연이 세간에 알려진 뒤 넷상에서 나온 목격담들에 의하면 이미 90년대 중후반~후반에도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보였었다는데, 이로 보아 퇴직한 지 몇 년도 채 안 된 90년대에 이미 몰락했거나 몰락이 시작됐던 듯 하다. 게다가 그 당시에도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혼잣말을 하거나 혹은 가만 있는 다른 사람들한테 갑자기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며 시비를 거는 등 정신이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며, 사망 당시 치매가 상당한 상태였다고 알려졌기에 이미 한참 전부터 치매를 앓았으며 그때문에 근속 20년을 2년 남긴 상태에서 퇴직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방송사에서 흥미 위주로 개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캐는 것이 불쾌하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나 긴급출동 SOS 24,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도 마찬가지이니 뭐라고 하기는 어렵다. 사실 상황이 저렇게 되면 이미 '개인의 사생활'이라기보다는 '사회 문제'에 더 가깝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노숙하면서 사는 것을 제대로 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방송을 보고 그녀를 알아본 외무부 시절 동료와 지인, 고등학교 동창들이 나타났다. 권하자가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거처와 함께 일자리를 제공하고 나섰다. 그런데 그녀는 이 모든 도움의 손길을 거부했다. 자신은 자기의 방식대로 남은 생을 이어가겠다고 했다.[20] 생계가 될 수 있는, 약간의 월급이나 봉사료 등이 제공되는 일자리를 스스로 거절해버렸다.

찾아온 사람 중 후배 한 명은 자신과 같이 살자면서 거주지를 마련해주려 하는 등 큰맘 먹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도 했다. 후배가 어디 외딴 시골도 아니고 서초구 양재동에 산다고 하는데도 동네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그 집으로 가지 않고 용돈만 받았다고. 본인이 사대문 안에 있는 것에 상당히 많은 의미를 두는 것으로 보이는데, 권하자 본인이 가장 자부심 높고 화려했던 시절을 광화문 일대 등 사대문 안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도 자신의 옛 직장 외교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노숙을 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가 상당히 유력하다. 사실 이것은 권하자뿐만이 아니라 한때 화려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2011년 2월 이후 한동안 언론 보도가 나오지 않았지만, 각종 커뮤니티에서 맥도날드 할머니를 봤다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여전히 기존의 자기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21] 이 정도면 일반인이 아니라 전문가가 필요한 수준. 아울러 후속 방송이 필요하긴 한데 이 할머니의 비정상적인 생활과 행동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다른 자잘한 개인 문제 이런 거 떠나서 고령인 데다 저 생활을 계속 유지하게 될 경우 갑자기 건강 악화가 올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방송을 탄 2011년 1월 이후로도 전혀 변화가 없었다. 이 시기에 일베 유저들이 할머니를 쫓아다니며 인증 사진을 찍고 커뮤니티에 조롱 글을 여러 차례 올려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6. 사망

권하자는 방송을 탄 이후로도 변함없이 살다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는 캐나다 여성 스테파니 세자리오와 만나게 된다. 우연히 할머니와 대화하게 되면서 서로 절친해졌고, 만남을 지속하며 풍부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긴 머리를 잘라주기도 했다고. 할머니를 설득해서 요양병원에 가도록 도와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할머니가 임종 직전에 그녀에게 "이제 당신이 제 유일한 가족이군요."라고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며, 그녀가 과거에 안주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단순히 정신이상자로 치부해서는 안 되며 그녀 또한 자신에게 도움을 준 소중한 친구였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인터뷰).

그러다 2013년 5월 29일, 서울역 노숙자 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국립중앙의료원으로 후송되어 검사한 결과 복막암 말기로 밝혀졌다. 이후 서울 송파구 소재 새희망 요양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했지만, 그 와중에도 요양병원에서도 자신을 상류층처럼 대접하길 요구했다.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자 적응하지 못해 요양병원을 빠져나왔다. 물론 이는 죽음을 자초하는 짓으로, 노구에 암까지 걸린 몸으로 길거리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2013년 7월 12일 병원 인근 공원 벤치에서 생을 마감한 채 환경미화원에게 발견되었다. 당시 149cm에 33kg으로 영양실조 상태였다. 시신은 무연고 변사자로서 화장되었다고 한다(관련 기사).

네티즌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적지 않았던 권하자였지만, 사망 소식에는 안타까움을 표하는 반응들이 많았다. 평생 백마 탄 왕자를 원했으나, 결국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에 도움을 준 것은 가족도 지인도 아닌 생면부지의 외국인 한 명이었기 때문에 이런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착잡하거나 비참한 심정이 들 수도 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요양병원을 무단으로 나간 뒤 사망했다. 다만 어차피 권하자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오히려 여러 사람들이 있으면 불편해 하거나 스스로 사람들을 경계하며 거리를 두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인간 혐오증'적인 면도 있었던 만큼, 그래도 말년에 백마 탄 왕자는 아닐지언정 자신에게 요양병원을 연결해준 스테파니라는 인연을 하나라도 얻은 것만으로 다행. 어쨌거나 고통에서 해방되어 자유가 되었기에 편히 영원한 안식을 취하라며 영면하기를 비는 추모 댓글들도 많았다.

7. 논란

2011년 7월 31일에 이광필의 부상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어 비판적인 여론이 늘어났다. 당시 이광필이 여름용 의류 등을 전달하려다 우산으로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광필에 의하면 우산에 눈을 찔렸다고 한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면 이광필이 권하자에게 와서 뭔가를 계속 권하자 굉장한 거부반응을 보였는데도 물건을 계속 주려고 하고, 권하자는 이광필을 피해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 피해다녔는데 자꾸 쫓아오자 우산을 휘둘러댔다고 한다. 다만 크게 위협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권하자나 이광필 모두 한 성격 하는 스타일인지라 이광필은 기껏 자신이 준비해 간 후원 물품이 거부당하자 집요하게 전달하려고 했고(그냥 조용히 물러날 성격이 아니다.) 권하자 역시 상대의 호의를 배려해 일단 받고서 정 싫으면 나중에 버리든지 해도 되는데 둘 다 노빠꾸라 '우산 신공'까지 발휘하며 결사코 거부하고 또 우산 맞고 눈 찔렸다고 드러눕는(...) 이광필 등 뭔가 총체적 난국처럼 보인데다가(사실 충돌이 날 만한 사안도 아니었는데 파국으로 끝났다.), 할머니가 도움 받기를 싫어하는데 굳이 도와줘야 하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생겨났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인터넷상에서 과연 그 할머니를 도와주는 게 옳은가라는 의문과 더불어 언론의 보도 태도 등지에서 논쟁이 일었고, 설상가상으로 이광필이 하리수의 트랜스젠더 사진전 참가에 대해 음란하다며 하리수를 음란물 유포죄로 고소한 것 때문에 네티즌들의 비난 여론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광필과 권하자 모두에게 등을 돌리는 분위기도 생겨났다. 권하자를 이슈화시키며 돕자고 나섰던 게 바로 이광필이었기 때문이다. 이광필이 없었으면 권하자가 위키에까지 등재될 정도로 유명세를 얻지 못했을 수 있는데, 정작 그런 이광필조차 우산으로 얻어맞을 정도로 권하자는 도움을 원하지 않으며 그리 착한 성격도 아니고, 이광필 역시 하리수 고소건으로 구설수에 오르며 부정적인 여론이 증가했다.

8. 그 외

이 사람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 한은형 작가의 <레이디 맥도날드>(2022년작)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실화와 동일하나 장편소설인 만큼 각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담겨 있어서 어떻게 권하자가 맥도날드에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힌트를 준다. 단,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넣은 것이지 실제 권하자의 자서전은 아니기 때문에 권하자의 생각을 이 소설만 보고 판단하긴 어렵다. 그녀의 어리석음과 낭비벽에 대해서도 분명히 묘사하고 있기는 하나, 결국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처럼 아주 동정적이고 우호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며 그녀 편을 들어주는 작품이라는 한계가 있다.

9. 같이 보기



[1] 다만 왜곡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가 나왔기에 결국 이브인 자신은 자신에게 뼈를 준 자신의 짝, 아담을 만날 것이며, 그 아담은 하느님의 뜻으로 세상을 이끌 위대한 자이고 자신은 그의 배필이란 주장이다.# 다만 타계 직전엔 한 교회의 지원으로 그곳에서 지내고 성도들과 교재하며 신앙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2] 본인 포함[3] 권하자는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났다. 무연고 변사자는 묘지에 묻힐 수 없고 무조건 화장해서 봉안당 안치 혹은 산이나 바다에 뿌려진다.[4] 이 내용의 대부분은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 권하자 본인과 권하자의 여동생, 그리고 지인들과 인터뷰했던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다.[5] 권하자의 막내 여동생은 "언니가 공주로, 어머니시녀로 살았어요."라고 표현했다. 반면 막내인 자신은 오히려 심한 차별대우를 받으며, 성격조차 차이가 나서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피를 나눈 자매로서 이런 얘기하기는 뭐하지만, 지금도 난 언니가 내 앞에 나타나는 게 두려워요"라고 말했다.[6] 기사 1 기사 2.[7]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 진학률이 낮아 대학만 입학해도 지식인 대우를 받을 정도였으니, 부모가 얼마나 권하자를 지극정성으로 지원했는지 알 수 있다.[8] 기사 3[9] 다른 언론사들에는 주일본 영사관에서 3년 근무한 것은 생략되어 있다. 이것까지 합치면 그는 외무부에서 18년을 근무한 셈.[10] 기사 4[11] 외교부 혹은 대사관, 영사관에 근무하는 사람이 공무원만 있는 게 아니다. 공무원인지 공무직인지 여부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12] 지금 기준으로도 백화점에서만 물건을 사는 것은 꽤 까다로운 사람 취급받을 일이지만, 70~80년대 백화점의 위상은 서민은 꿈도 꿀 수 없는 부유층을 위한 장소였다. 적어도 외무 공무원 월급으로 매번 드나들 수 있는 장소는 절대 아니다.[13] 이는 앞의 종교 부분에 서술되어있듯이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가 나왔기에 결국 이브인 자신은 자신에게 뼈를 준 자신의 짝인 아담을 만날 것이며, 그 아담은 하느님의 뜻으로 세상을 이끌 위대한 자일 것이라는 왜곡된 신앙을 가져왔기 때문이다.[14] 퇴직 후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았다는 것은 확실히 알려졌지만, 공무원 연금은 20년 미만 재직하고 중도에 퇴직하는 공무원들은 연금수혜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근무연수를 채우지 못해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15] 10년대 후반 이후부턴 꾸준히 올라온 물가와 인식의 변화로 스타벅스가 딱히 고급 커피까진 아니게 되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스타벅스 커피는 짜장면 한 그릇보다 더 비싼 사치재였다.[16] 하지만 후에 벌어진 권하자와 이광필의 몸싸움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면 과연 이것이 이광필의 말처럼 순수한 의도였을지 의심된다. 자세한 내용은 이광필(가수) 문서로.[17] 다만 이것은 권하자와 전 동료들의 주장으로 정식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질의를 넣어 권하자가 정말로 메이퀸에 뽑혔는지 확인된 바는 없다. 반 세기 전에 졸업한 사람이라도 학적 기록 같은 거야 의뢰한다면 찾아줄 수야 있겠지만 누가 학교 생활 당시 주변의 평가가 어떠했는가까지는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으니 확인해줄 방법은 없다. 게다가 당시 대학 동년배로 생활한 사람들도 그 시점이면 사망자도 상당한 데다가 어디엔가 살아있다고 해도 학우들 중 누가 퀸카 대접을 받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이 주장은 의외로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데, 허영과 사치가 심할 뿐 허언 증세가 있었다는 증언은 없고 과거의 영광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특성상 거짓말일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18] 다른 형제는 이미 사망하거나 해외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상술했듯 형제들 중 당장 바로 윗 형제는 이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해서 생전엔 얼굴도 못봤다.[19] 이 3남매의 사례는 같은 방송사의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방송되었다.[20] # #[21] 종로, 중구 쪽에 회사를 다니는 회원들의 목격담이 심심찮게 나타났다. 몇몇 유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맥도날드 할머니를 맥도날드, 스타벅스, 롯데리아 등에서 목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