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입문 전
1964년 3월 7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아버지 김인현과 어머니 평강 채씨 채영자 사이에서 1남 3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순천고등학교,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2008년 2월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안보정책학과에서 안보정책 전공으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대학 재학시절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총학생회장 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산하조직인 용인성남지구 총학생회연합(약칭 '용성총련') 1기 의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경기도 성남시에서 성남청년단체협의회 의장, 민주주의민족통일성남연합 공동의장 등으로 활동했다. 대학 졸업 후 1988년 11월 7일 육군에 독자 사유로 인한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제31보병사단에서 소총수로 복무하였으며, 1989년 5월 6일 일병으로 소집해제되어 병역을 마쳤다.
2. 정치 활동
2002년 유시민, 정청래가 주도한 개혁국민정당의 전국운영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의 분당 사태와 열린우리당의 창당 과정에서 개혁국민정당이 열린우리당에게 흡수되면서 열린우리당에 합류하게 되었다.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배우출신 한나라당 김을동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1] 참여정부 기간 내내 친노 직계로 분류되었으며, 실제로 정권 후반기 지지율이 수직하락하자 수많은 정치인들이 중도이탈하면서 만신창이가 된 열린우리당을 마지막까지 지킨 몇 안되는 현역 국회의원이었다. 이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한나라당 신영수 후보에 단 129표차로 밀려 낙선하였다.[2]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설욕하였다. 그리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돼 3선 고지에 올랐다.
유시민 작가는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김태년 의원을 짤막하게 언급하는데, "초선 시절 임기 4년 동안 지역구에 있는 모든 중소기업을 다 방문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작은 공장들을 방문했다"고 한다. 둘은 처음 개혁국민정당 창당 때부터 함께한 사이였고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태년 의원이 유시민 캠프의 유일한 현역 국회의원이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인 걸로 알려져 있으며, 언론에서도 김태년 의원을 친문재인계 정치인으로 분류하곤 한다.[3]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적 있다.
2019년 5월 초로 예정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었다. 김태년 의원은 추미애 전 대표 체제에 이어 이해찬 전 대표 체제에서 정책위의장을 연임할 정도로 당 지도부의 신임을 받고 있다고 한다. 당 지도부의 지원을 받으며 차기 원내대표 경쟁구도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유하고 있다고 평가되었으며[4] 선거는 김태년-노웅래-이인영 3파전으로 치러졌다. 기사 5월 8일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37표를 획득해 54표를 획득한 이인영 의원과 결선 투표를 치렀으나, 결선 투표에서 48표를 획득해 74표의 이인영 의원에게 밀려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1차 투표에서 자신과 비슷한 수준인 34표를 기록한 노웅래 의원의 지지표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5]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성남 수정 지역구 단수공천을 받았으며 선거결과 국민의힘의 장영하 후보를 누르고 무난하게 5선에 성공했다.
5선 달성으로 이인영, 우원식, 정성호와 함께 제22대 국회 국회부의장 유력 후보군이 되었다.
2.1.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020년 5월 7일,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총회에서 163표 중 82표를 획득해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 문재인 전 대통령과 경희대학교 동문이자[6], 친노-친문이면서 이해찬 전 대표와 가까워 당 요직을 고루 맡은 부분이 친노 - 친문 직계인 전해철을 꺾고 당선된 이유로 보인다.[7] 실제로 윤호중 사무총장 (4선), 김성환 당대표 비서실장 (재선), 김경협 · 홍익표 의원 (3선) 등도 김 전 원내대표와 관계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과거 정책위의장을 맡으면서 '규제혁신 5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기도 하였다. #여담으로 김태년보다 하루 뒤에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된 주호영과는 17대에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 동기이며,[8] 두 원내대표 간 삶의 공통점은 별로 없음에도[9] 협상력을 인정받은 '정책통', '전략통'이라는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당내에서 정책위의장[10]을 맡은 경력도 있다. 5월 8일 두 의원은 서로를 칭찬하면서도 은근한 기싸움을 벌였다. #
원내대표 취임 이후 김영진 의원을 원내총괄수석부대표에, 박성준·홍정민 당선인을 원내대변인에 임명했다. 지역 안배 등 소위 말하는 탕평보다는[11] 소통능력과 전문성을 우선시한 인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이후 177석[12]에 달하는 압도적인 의석 점유율을 바탕으로 제21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 협상을 맡게 되었다. 개원 일정과 관련해서, 국회법 5조 3항을 근거로 6월 5일에 국회의장단 선출 및 21대 국회 개원을 관철시키겠다며 강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 특히 그간의 관례를 깨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 및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반드시 가져가겠다고 주장하며, 미래통합당 등 야당이 협의에 불응할 경우 열린민주당, 시대전환 등 소수 야당과 함께 단독으로 국회를 개원하고 국회 상임위원장 18석을 민주당이 독점하는 길도 열려있다고 경고했다. #
개원 일정과 관련해 국회법 5조 3항의 성격에 대해 논쟁이 있었는데, 주호영 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국회법의 해당 규정은 강제성이 없는 훈시규정이기 때문에 가급적 지키면 좋은 것이고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하자 # 박성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법은 우리 스스로 만든 룰이다. 입법기관 스스로 기관 운영의 룰을 지켜도 그만,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국회법을 준수할 것을 당부했다. #
그리고 6월 2일에는 정의당, 열린민주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과 함께 5일 본회의 개최를 위한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국회 의사과에 제출했다. # 예정대로 6월 5일 제21대 국회를 단독 개원해 민주당 몫 의장단 선출을 마쳤고,[13] # 이후 6월 15일 여당 단독으로 6개 상임위의 원구성을 마치고 해당 상임위의 위원장을 선출했다. 특히 여야 간 치열한 다툼이 있었던 법제사법위원장직에는 민주당의 윤호중 의원이 선출되었고, 통합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
김태년은 18개 상임위를 다 가져가겠다는 과거 주장과 달리, 의석수 비율(11:7)대로 예결위 등을 포함한 7개 상임위를 미래통합당에 양보하는 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주호영은 법사위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김태년의 제안을 거부하였고, # 법사위원장을 여당이 가져가자 전국 사찰을 전전하며 연락을 끊었다. 이에 김태년은 수소문 끝에 6월 23일 강원 고성군 화암사로 주호영을 찾아가 협상을 이어갔으나 합의는 결렬되었다.
주호영은 국회 복귀를 이야기하면서 민주당과의 원 구성 협상엔 응하지 않겠다며 모든 상임위를 다 가져가라는 입장을 밝혔고, 김태년은 3차 추경 처리를 위해 6월 26일 나머지 12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마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
29일 원구성 협상이 최종 결렬되면서 민주당이 상임위원장직을 모두 가져가게 되었다.[14]
7월 20일에는 교섭단체대표연설 중 행정수도 이전 재개를 주장했다.
집권 3년차임에도 불구하고 폭등하는 부동산 값을 진정시키지 못하자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야당들로부터 비판 및 공세를 받게되는데 결국 또 다시 6년전 박근혜 정부가 제정한 부동산 정책 및 통합당 전신인 새누리당 주도로 이뤄진 것 정책탓으로 돌리자 열린민주당 최고의원 주진형은 인터뷰에서 통합당도 책임에 자유로울수 없지만 "2014년 말에 나온 법이 폭등 주범이라고 할 근거가 뭐가 있나. (해당 법들이) 문제가 됐으면 지난 3년간 국회에서 고치려고 노력을 해야 했는데, 왜 지금 와서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내나"냐며 비판했다.
그리고 임대차 3법 등 부동산 관련 법안 처리를 강행해 야당과 보수 성향의 지지층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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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주호영 전 원내대표의 말에 따르면, 김태년 전 원내대표가 "부동산 입법은 시간이 없고 급해서 그렇게 했다고 했다"며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만 공식적인 발언이 아니고 비공식적인 저녁식사에서 한 발언이어서 김태년이 실제로 저런 말을 했는지, 그리고 민주당의 국회 운영 방식이 달라질지는 불분명하다. #
결국 180석이라는 거대 여당의 원내대표로 발돋움한 뒤 벌어진 오만한 모습과 강경 지지자들만을 고려한 지도방식을 보여준 결과 총선 압승[15] 4달만에 통합당에게 지지율을 역전 당했다. 이는 민주당에 있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최초로 미래통합당에 뒤쳐진 결과다.#
그러나 이후 태극기세력의 자폭 덕분에 다시 지지율은 미래통합당보다 우세가 되긴 했다. 하지만 서울, 부산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 위해 현재 대통령이 세운 당헌을 바꾸는 오만한 모습을 시작으로 계속되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 및 이낙연 전 대표를 위시한 중진들의 현실을 모르는 부동산 정책 지지발언, 연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찍어 누르려 하는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의 행동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으로 중도층이 계속적으로 이탈함에도 40퍼에 달하는 강성지지자들만 믿다가 결국 다시 12월초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에게 지지율이 뒤쳐졌다. 대통령 지지율 또한 견고할것만 같던 40퍼센트가 무너진 것은 덤.#
그러나 위기를 느끼기는커녕 그정도야라는 반응을 보여 역시 그랜드태년이라는 별명다운 모습을 보여줬다.#[16]
하지만 지지율 하락이 당연히 당 입장에서도 골치였고, 12월 국회에선 그랜드태년이라는 별명답게 국민의힘이 시도한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키고 개혁 입법을 단독 추진한 결과 지지율이 또다시 하락했다.#
이렇게 180석의 거대 여당인 만큼 야당 없이 공수처 등 여러가지 법안을 단독으로 해내가다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올리지 않았으며,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희생자인 김용균 씨의 모친이 법 통과까지 단식투쟁을 벌이겠다고 나서자 설득에 나섰다. 그런데 설득 과정에서 "야당이 심의를 거부하지만 설득해보겠다" 라며 법안 통과가 안 된 것을 야당 탓으로 돌렸고, 이에 김용균 씨 어머니가 "여태껏 여당이 많은 법을 다 통과시켰는데 왜 이 법은 꼭 야당이 있어야 하냐"는 일침을 놓자,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하고 황급히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2021년 1월 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수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중소기업들의 부담을 고려한다는 이유로 예외 설정의 범위가 너무 넓어 이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
2020년 12월 24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직무정지를 당했다가 법원에 의해 복귀하자 당 내부에서 윤석열 탄핵 논의까지 나왔으나 민생에 먼저 집중하자며 탄핵안 발의에는 반대했다고 한다.[17]
2.2.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2021년 3월 9일, 이낙연 전 대표가 대선 출마를 위해 대표직에서 조기 사퇴하며 김태년은 더불어민주당 역사상 처음으로 대표 직무대행을 맡게 되었다.[18] 당의 원내대표이자 당대표, 상임선대위원장으로서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남은 이낙연과 재보선을 총괄하게 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셈.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건이 발생하자 국회의원 300명 전체에 대한 부동산 투기 관련 전수조사를 제안했다.# 11일엔 박병석 전 국회의장을 직접 찾아가 전수조사 건의서를 제출했다.##
3월 12일에는 박영선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 후보의 제안을 받아 LH 사건에 대해 특검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17일에도 부산을 방문해 과거 엘시티 게이트 부실 수사 의혹과 관련해 엘시티 사건도 특검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한편 박원순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의 기자회견 이후 3월 18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다시 한번 당을 대표해서 피해자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당이 부족했다”라며 피해자에 사과했다. #
LH 사태와 관련해 특검 도입을 제안한 것의 여파인지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서 열린 김태년 대표대행의 사퇴를 요구하는 투표에서 찬성 의견이 2,000표 이상이 나오기도 했다. 딱히 김태년 대표대행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과거 드루킹 특검의 여파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연이은 재판에 정치적 곤혹을 겪고 있는 기억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결국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의 시장자리를 둘 다 빼앗기는 참패를 당하면서 향후 거취가 불명하게 되었다. 너무나 큰 참패로 인해 책임을 지고 나가야 할 상황. 결국 책임을 지고 본인 뿐만 아니라 지도부 총사퇴를 결정했다.#
2.3. 원내대표 및 대표 직무대행 사퇴 이후
2021년 4월 16일 신임 윤호중 전 원내대표가 선출되자 꽃다발을 건네주며 축하의 뜻을 전했다. #2024년 4월 10일 있었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5선 고지에 올랐다.
[1] 여담으로 김을동은 총선 직후 다시 TV드라마에 복귀했으나, 총선을 약 3달 앞둔 2008년 1월 국회입성을 위해 다시 브라운관을 떠나 친박연대 소속으로 제18대 국회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거쳐 2012년 총선 앞두고 지역기반을 성남시에서 송파구로 옮겨 새누리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8년전 총선에서 낙선을 안겨준 김태년과 국회에서 같이 일하게 되었다.[2] 이때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는 김태년 후보가 더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3]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 계파 문건 공개 논란 당시 공개된 문건에는 이해찬계로 분류가 되어 있다. 추후에 어떤 경로든 친문 혹은 이해찬계가 아니라고 반박되지 않는 한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친노로 생각하면 편하게 볼 수 있다.[4] 대외적으로 친문계로 여겨져 이쪽의 지원을 받으리라 여겨졌으나, 전해철을 위시로 한 친문계는 이인영을 지지했다.[5] 사실 노웅래는 바로 전 원내대표였던 홍영표와의 선거에서도 38표를 얻어왔던 전력이 있다. 즉, 노웅래 근처론 고정적인 표층이 있음에도 이를 파악하지 못한거라면 너무 나이브했던 것이다.[6] 다만, 캠퍼스가 다르다. 김태년 전 원내대표는 수원캠퍼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서울캠퍼스를 졸업했다.[7] 여담이지만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을 보면 이인영과 노웅래 케이스를 제외하곤 원래 보통 처음에 낙선한 이후 재도전한 사람이 당선된 케이스가 많았다.[8] 다만 선수는 주호영이 5선, 김태년이 4선으로 주호영이 더 많다. 주호영은 17대 이후로 계속 총선에서 당선된 "내리 5선"이지만, 김태년은 18대 총선에서 128표 차이로 한나라당 후보에 밀려 낙선한 적이 있기 때문.[9] 김태년은 시민단체 출신이고 주호영은 판사 출신이다.[10] 다만,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에서 정책위의장은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로 의원총회에서 뽑히는 자리인 데 반해, 민주당계 정당에서 정책위의장은 당 대표가 임명하는 자리이다. 주호영은 이완구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로 당선되었고, 김태년은 추미애 전 대표가 정책위의장에 임명했고 이해찬 대표 체제 하에서도 유임되었다.[11] 김영진 의원은 수원시 병, 박성준 의원은 서울 중구·성동구 을, 홍정민 의원은 고양시 병이 지역구로 세 사람 모두 지역구가 수도권에 쏠려있다. 출신지를 따져보면, 김영진·박성준 의원은 충청남도 출신이고 홍정민 의원은 경기도 출신.[12] 박병석 전 국회의장 선출 이후 176석, 김홍걸 의원 제명 이후 175석.[13] 박병석 전 의장과 김상희 전 부의장이 선출되었다. 미래통합당 몫 부의장으로는 정진석 의원이 유력했으나 미래통합당이 항의 후 퇴장하면서 선출되지 않았다.[14] 여담으로 이때 예민해져서 복기왕 국회의장 비서실장이 원내대표실을 찾아와 "의장님이 찾으십니다"라며 설득하자, 김 전 원내대표는 "뭐! 됐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15] 사실 세부적인 결과로는 48 대 40이었다. 즉, 민주당도 잘한건 아니지만 통합당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아 접전의 상황에서 민주당이 좀 더 우세해 얻은 결과였고, 민주당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면 곧바로 부정적인 여론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16] 좋게 보면 여유이지만 나쁘게 보면 자만의 모습이라 볼 수 있다. 일단 총선 때와는 달리 국민의 힘은 김종인 비대위 아래에서 상당히 정비되었고 최대 단점인 막말도 많이 줄었다. 정작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이 연일 오만과 독선적인 모습에 견제할 야당의 필요성을 중도층이 느끼게 되었다. 결국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게 된다.[17] 사실 대통령이 승인한 직무정지가 법원에 의해 막한 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1년 신년을 맞이하여 추윤 사태에 대하여 사과했기 때문에 탄핵소추안 제출을 강행하는 것은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일이 될 수 있고, 탄핵을 해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해버릴 가능성이 더 크기에 이는 현실성이 별로 없다.[18]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표 시절 사임했을 때는 원내대표인 이종걸 대신 김종인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으며 이후 당대표인 추미애와 이해찬은 중도 사퇴 없이 당대표 임기를 끝까지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