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23:37:18

꿀꿀이죽


파일:밥 아이콘.png 죽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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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꿀꿀이죽.png
KBS 1TV 교양 방송 《한국인의 밥상》에서
당시 체험을 토대로 현대의 식재료를 사용해 재현한 꿀꿀이죽의 사진.

1. 개요2. 역사3. 해외의 유사 사례4. 여담
4.1. 2002년 어린이집 '꿀꿀이죽' 제공 사건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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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꿀꿀이죽 또는 유엔탕(UN탕)은 6.25 전쟁 당시 한반도에 주둔하던 미군 부대에서 먹고 남은 잔반을 재활용해 만들었던 잡탕의 일종이다. 식량을 구하기 어려웠던 피난민이 주로 먹던 음식으로 이를 자조적으로 돼지 사료에 빗대 '꿀꿀이죽'이라 불렀다.

2. 역사

파일:꿀꿀이죽 역사 사진 01.jpg
파일:꿀꿀이죽 역사 사진 02.png
1950년대 당시의 빈민들이 꿀꿀이죽을 먹는 모습.
꿀꿀이죽은 6.25 전쟁의 발발과 전선 후퇴로 인한 피난을 배경으로 탄생했으며, 전후 경제 재건이 시작되기까지 한국이 최빈국이던 시절에 널리 만들어졌다. '꿀꿀이죽'이라는 이름과 같이 돼지 먹이로 사용해야 할 정도의 조악한 재료가 들어갔는데 대부분은 미군부대의 병영에서 식사를 끝내고 버린 음식물 쓰레기였다. 이를 점잖게 표현하여 유엔군이 준 재료로 만든 탕이라는 뜻에서 '유엔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각자 먹기죠. 밥을 누가 줘요. 워낙 (사람이) 많으니까 밥을 다 대줄 수 없잖아요. 그러니깐, 그래서 그 애들이 그냥 미군 차만 지나가면 "할로 쪼꼬렛(Hello Chocolate)" 하고 손짓하고 별 짓 다 했어요. 미군들이 막 뿌려줬다고 …(중략)… 미군들이 먹다 나머지 버린 거 있잖아요. 그걸 주워다가 다시 끓여서 먹고 해서, 그걸 '꿀꿀이죽'이라 그런 거에요. 밥 먹는 데 가서, 그거 먹던 것 좀 달라고 그냥……. 구걸하고 별 짓 다 했죠.
진복균(6.25전쟁 당시 15세), 《시간탐험대 보릿고개 편》에서 증언한 내용5분부터

먹어 본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포크나 이빨 자국이 보이는 소시지 따위의 물건들은 양반이고 곰팡이가 피어 있거나 휴지조각이 떠다녔으며 심하면 이쑤시개 조각 등을 삼켜서 목에 걸리기도 했다고 한다. 미군에서 후식으로 보급된 담배, 심지어 콘돔까지 그대로 섞여 있는 일도 잦았는데 이 광경을 묘사한 어린이 소설 《아버지의 국밥》에도 꿀꿀이죽을 주면서 "천천히 후후 불며 먹어라, 담배꽁초 삼킬라."라고 주의를 주는 장면이 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런 것조차 당시에는 매우 귀해서 건더기를 서로 가져가려고 실랑이를 벌였고 경쟁에서 밀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건 국물이나 담아가서 먹어야 했다고 한다. 더구나 근본이 음식물 쓰레기인 만큼 수 일 이상 방치되어 곰팡이가 핀 것까지 억지로 삶아먹어야 했다.[1] 그러다 보니 꿀꿀이죽을 먹고 집단 식중독이 일어나거나 심지어 패혈증 등의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사고도 굉장히 잦았다. 비슷하게 미군 부대가 아닌 일반 식당의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때 독극물 덩어리인 복어의 내장을 먹고 사망하는 사례가 많았다.
먹는 것이 죄일 수는 없다. 먹는 것이 죄라면 삶은 천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돼지먹이로 사람이 연명을 한다면 식욕의 본능을 욕하기에 앞서 삶을 저주해야 옳단 말인가? 『30원어치면 8식구가 아침을 먹고 점심을 굶을수가 있어서―』보채 볼 맥조차 잃은 어린 것을 등에 메고 「꿀꿀이죽」한 통 사서 든 중년 아주머니의 기막힌 변, 쌀 30원어치로 죽을 끓여 8식구가 풀칠하면 점심때 식은땀이 쏟아진다고. 그래도 미군부대의 찌꺼기가 영양이 많다고 우겨대는 그녀는 인천시 용현제1동에 산다고 했다.[2]

이 마을은 약 7백가구의 극빈촌으로 이북 피난민이 많이 산다. 멀리 동두천서 오는「꿀꿀이죽」까지 합쳐 하루평균 10~13 드럼을 소비하지만 때로는 그것도 못사서 굶어 늘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하소연. 담배꽁초, 휴지(무엇에 썼는지도 모를) 등 별의별 물건이 마구 섞여 형언할 수없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이 반액체를 갈구해야만 하는 이 대열, 그들은 돼지의 피가 섞여서가 아니다. 우리의 핏줄이요 가난한 이웃일 따름이다. 주류, 비주류, P 라인, K 라인의 입씨름으로 밤낮을 보내는 공복(公僕)들은 이 「꿀꿀이죽의 주권자」들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어울리지도않는 「민생고」란 단어만 되풀이하면서―
1964년 5월 20일 경향신문 기사 "'허기진 군상' (인천시), 「꿀꿀이죽」을 아십니까", 신영각 기고. #
휴전 이후에도 한국의 사정이 워낙 궁핍한 탓에 1970년대 초중반까지도 미군부대 근처 시장이나 골목의 허름한 식당에서 팔았다고 하며 70년대 중반 통일벼의 개발로 쌀 자급에 성공하면서 이러한 것은 완전히 사라졌다. 78년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서민 가정이 반찬은 김치 정도였어도 밥주발에 수북하게 밥을 먹었기에 쌀만 충분하면 저런 것을 먹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서울만 해도 마당에 공동 수도와 화장실을 둘러싸고 여러 방마다 단칸 쪽방에 온가족이 살던 가장 빈민인 노점상조차도 이런 식으로 쌀밥은 푸짐하게 먹었다. 소세지라면 분홍색 어육 소세지 말고는 없던 80년대 초반 미군부대에서 유출된 미제 소세지 등이 도깨비시장을 통해 상류층의 식탁에 올랐지만 가축사료용으로 빼낸 잔반을 끓여서 먹던 꿀꿀이죽과는 무관한 얘기다.
파일:attachment/꿀꿀이죽/ex1.jpg
전쟁기념관의 꿀꿀이죽 설명.

그래서 궁핍한 시절을 겪지 않았던 후대인들에게는 문화충격, 겪었던 이들에게는 슬픈 음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라는 책의 저자도 부대찌개 부분에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그런 걸 어떻게 먹어?' 하며 소스라치게 놀라겠지만 과거에는 '이걸 아까워서 어떻게 버려?'라며 먹었을 것"이라고 주석을 남겼다.

이런 처절한 역사를 가진 음식이다 보니 전쟁을 겪었던 노인들은 마찬가지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식재료로 만든 것에서 유래한 현대의 부대찌개에도 반감을 가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서울의 모 고등학교에서는 참전용사 출신의 이사장이 메뉴명을 보고 분노해 '부대찌개'가 '햄모둠찌개'로 바뀐 일도 있었으며 오늘날 한국군에서도 '부대찌개'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햄소세지찌개'로 지칭한다.[3] 물론 부대찌개는 꿀꿀이죽과는 달리 가공 전의 군납 식재료와 구호 물자로 받았던 밀가루 등을 썼던 것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못 먹을 음식은 절대 아니지만 탄생 내력이 어두운 것이 비슷하기 때문에 나오는 얘기다. 아예 두 가지를 혼동해서 부대찌개가 과거의 꿀꿀이죽과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3. 해외의 유사 사례

비슷한 예로 19세기 유럽에서는 부잣집의 집사 등 고용인들이 집에서 버리는 폐품들을 모아 수시로 방문하는 업자에게 내다 팔며 부수입을 올렸는데 여기에는 고기를 삶고 버리는 국물 등도 있었으며, 업자들이 이걸 식당에 다시 팔아서 서민들에게 판매하는 요리에 쓰였다.[4] 베트남의 대표 음식으로 유명한 쌀국수도 시작은 프랑스인 지배자들이 먹고 남긴 고기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은 것이 시초다.

일본에도 잔반 스튜라는 똑같은 음식이 존재했다.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직후 궁핍하던 시절 한국처럼 미군 부대에서 나온 음식 찌꺼기로 죽을 끓여 먹거나 팔았고 이 시절을 다룬 영화애니메이션에도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1964년작 '육체의 문'을 보면 꿀꿀이죽을 먹다 콘돔을 발견하는 장면이 등장하며 애니메이션 이 세상의 한 구석에서도 '럭키 스트라이크'라는 담배 껍질이 그대로 꿀꿀이죽에 섞여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5]

오키나와에서는 오키나와 전투 이후 가난한 환경에서 엔진 오일로 만든 모빌 덴뿌라(モービル天ぷら)라는 튀김도 해 먹었는데 이렇게 생겼다. 물론 제대로 만든 엔진오일로 이랬으면 죽었겠지만 당시 일본군은 패전과 미국의 경제 제재로 석유 수입 제재에 동남아시아에서 원유 수급도 끊기자 소나무에서 채취한 송근유 외에도 정어리 기름, 귤피 기름 등 각종 동식물에서 기름이란 기름은 다 짜내서 원유의 대용품으로 썼기 때문에 엔진오일을 먹어도 죽지는 않을 확률이 높았다. 다른 케이스로는 미군부대에서 기계유를 구해 튀김을 만들었다는 오키나와인들의 증언도 많은데 이러한 기계유들 중 일부는 식물성 기름인 피마자유나 동물성인 고래기름 등을 사용했기 때문에 몸에 해로웠지만 튀김을 해먹을 수는 있었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식용으로 사용할 만한 것은 아닌지라 잘못 먹으면 배탈은 기본이고 심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져 죽어버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충분히 발전한 한국과 일본에서는 한때의 비극으로 남아 있는 음식이지만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예시로는 필리핀의 극빈층이 먹는 파파그('pagpag)'라는 음식으로,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감자튀김이나 프라이드치킨 조각 등을 모은 뒤 뼈를 제거한 후, 시장에서 구매한 야채와 향신료와 함께 푹 끓여 만든 스튜 요리이다.

2020년대 들어 그야말로 엄청난 빈민 문제에 시달리는 브라질만 해도 쓰레기통을 뒤져 먹는 이들이 넘치고 있는데 이들도 그냥 먹지 않고 최소한 락스로 소독한 다음 이걸 물로 씻고 식재료를 썰거나 가루로 만들고 양념으로 가열하여 먹는다. 세계는 지금에 나온 영상

4. 여담

  • 부평깡통시장의 죽거리 밀집지역은 6.25 전쟁 시절 유엔탕을 모아 끓여 팔던 도떼기시장이 시초라고 한다. 향토문화사전 내용 당시 꿀꿀이죽을 사람들에게 팔던 죽집이 아직 두 집이 남아 있다고 한다. 당연히 지금은 위생적으로 문제 없는 영양가 있는 죽을 판다.
  • 남극이나 북극, 히말라야 14봉 등의 극한지를 탐험하는 사람들이 현지에서 만들어 먹는 을 자조적으로 꿀꿀이죽이라고도 한다. 물론 모양만 닮았을 뿐이지 채소쇠고기가 들어가는 제대로 된 음식이다. 한 끼에 2,000kcal에 육박할 정도의 고열량[6]이지만 극한지에서는 거칠고 혹독한 지형과 추운 기후 탓에 소모되는 열량이 어마어마해서 이렇게 먹어도 살이 붙지는 않는다고 한다.[7]
  • 현대에 들어서는 가정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잡탕죽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높은 확률로 김치가 들어가기 때문에 대개 색깔은 빨갛다. 경상도 내륙에서는 갱시기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도 가정식으로 이런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으로 보인다. 아따맘마에서는 엄마가 냉장고에 남은 재료들(두부, 파스타, 채소, 소시지 등)을 아무렇게나 섞어서 스튜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 국방TV에서 6.25 전쟁을 겪었던 사람에게 꿀꿀이죽에 대해 물었는데 의외로 아주 맛있었다면서 그가 알려준 레시피대로 만들었더니 정말 맛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맛있었다는 기억은 워낙 배고팠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고 꿀꿀이죽의 핵심은 음식물 쓰레기를 재료로 한 데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온갖 쓰레기까지 뒤섞여 있다는 것인데 그걸 오늘날 재현하는 것은 윤리상 허락될 수 없으니 레시피대로 만들었다고 해도 원래의 꿀꿀이죽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었을 것이다.
  • 안녕 자두야에서는 최자두가 부유해지고 가난해지는 꿈을 꾸는 편이 있는데 가난해지는 꿈에서는 냉장고엔 먹을 게 꿀꿀이죽밖에 없어 최미미최승기가 꿀꿀이죽을 마시는 장면이 있었다.
  • 일본에는 장난성 음식인 야미나베가 존재하는데 무슨 재료가 들어가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러 사람이 한 가지씩만 재료를 넣어 만든 요리로, 생김새만큼은 꿀꿀이죽처럼 되기 쉽다. 특히 재료를 넣는 사람 중에 어린이가 있을 경우 국에 초콜릿이 들어가는 등 아주 골때리는 요리가 된다.

4.1. 2002년 어린이집 '꿀꿀이죽' 제공 사건

2002년 6월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에 개원한 어린이집 '고려어린이집'에서 무려 3년 동안 생선 뼈, 이쑤시개 등이 뒤섞인 못 먹을 잔반을 "영양죽"이라며 아이들에게 먹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2005년에 일부 보육교사들이 양심선언해 적발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아 105명 중 100명이 장염, 만성 장 증후군, 아토피 피부병, 물사마귀, 식중독, 피부병 등 질병에 걸렸고 지원금은 지원금대로 횡령했다고 한다.

2011년 기사에 따르면 해당 원장은 양심 선언한 교사를 모두 해고했다고 밝혔으나 이후 더 분기탱천할 기사가 나왔는데 서울특별시 도봉구 모 어린이집에서 버젓이 보육교사로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고 한다. 기사 링크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 유치원 원장이 저지른 비리 중 이와 비슷한 사례도 있었다. 이 때문에 마지막에 분노의 학부모들에게 쓰레기죽 식고문 참교육을 당한다.

5. 관련 문서

  • 부대찌개 - 해방 후 한국의 현대사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꿀꿀이죽과 비슷하지만 결국 음식물 쓰레기에서 유래한 거라 정식 음식이 되지 못한 꿀꿀이죽과 달리 적어도 멀쩡한 재료에서 유래하여 지금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 수제비 - 특히 못 먹고 살던 시절의 수제비는 양을 늘리기 위해 한껏 불렸기 때문에 꿀꿀이죽처럼 생겼다.
  • 갱시기 - 경상도 지역의 꿀꿀이죽처럼 생긴 음식.
  • 진흙쿠키 - 아이티에서 주로 만드는 음식이다. 이건 좀 심각한 게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것도 있지만, 진흙으로 만든 거라서 열량이 아예 없다.
  • 똥국 - 이런저런 잡재료들을 넣고 끓이기도 한다.
  • 잠발라야 - 서양 음식 잠발라야 중에서 국물이 많은 버전은 유난히 꿀꿀이죽과 비슷하게 보인다.

[1] 다행히 한국의 실상을 알게 된 일부 미군 부대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제외한 콘돔이나 담배 따위는 잔반통에 버리지 못하도록 병들을 통제해 주었다고 한다.[2]인천광역시 용현1동. 인천상륙작전 당시 UN군이 주둔했던 단지 근처이기도 하다.[3] 부대찌개를 줄여서 “부찌”라고 부르듯이 햄소세지찌개는 줄여서 “햄소찌”라고 부른다.[4] 물론 여타의 음식물 쓰레기들처럼 취급한 것은 아니고 최소한 국물만 따로 모았다가 팔았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라고 해도 상술된 꿀꿀이죽의 재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위생적이었다.[5] 당시 미군은 담배가 스트레스 해소나 현지에서의 사소한 거래 등으로 유용하게 쓰였던지라 본국에서 C레이션을 보급할 때 상자의 빈 공간에 사제 담배를 끼워 보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 담배가 '럭키 스트라이크'였다는 점을 고증한 것. 여담으로 한국에는 럭키 스트라이크 보다 말보로가 더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6] 참고로 한국 성인 일일 평균 필요량이 2,000kcal다. 즉 하루 동안 먹어야 하는 양을 한 끼에 다 먹는 셈이다.[7] 사람이 추운 곳에 가면 몸이 열을 내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극한의 땅인 남극에서 활동해야 하니 저렇게 어마어마한 열량의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 요리나 저 위 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기름진 요리를 많이 먹는데도 살이 안찌는 이유는 하루 소모 열량이 어마어마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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