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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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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산하 구단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뉴캐슬 유나이티드 WFC
선수단 스쿼드스쿼드(간략)
역사 구단 역사유니폼
역대 시즌 2010-112011-122012-132013-142014-152015-162016-172017-182018-192019-20 /리그2020-21 /리그2021-22 /리그2022-23 /리그2023-24 /리그2024-25 /리그
더비 매치 파일:선덜랜드 AFC 로고.svg 타인위어 더비
파일:미들즈브러 FC 로고.svg 타인티스 더비
구단 시설 세인트 제임스 파크
관련 인물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구단주에디 하우 감독역대 감독
관련 구단 파일:알 힐랄 SFC 엠블럼.svg 알 힐랄 SFC파일:알 나스르 FC 엠블럼.svg 알 나스르 FC파일:알 이티하드 FC 엠블럼.svg 알 이티하드 FC파일:알 아흘리 SFC 로고.svg 알 아흘리 S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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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구단 초창기1.2. 90년대 ~ 00년대 초반의 전성기1.3. 몰락1.4. 챔피언십 강등의 수모(2008-09 시즌)1.5. 프리미어 리그 복귀(2009-10 시즌)1.6. 2019~2021년 매각 사가1.7. 세계 최고 부자 구단이 되다
2. 최근 시즌 요약

1. 개요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의 역사를 설명하는 문서.

1.1. 구단 초창기

1892년에 뉴캐슬 이스트 엔드와 뉴캐슬 웨스트 엔드가 합치며 탄생하였다. '유나이티드'라는 명칭은 이 두 팀이 합쳐졌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으로, 창단 후 현재까지 뉴캐슬어폰타인의 유일한 축구팀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도시의 유일한 팀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뉴캐슬 팬들은 다른 '유나이티드' 명칭을 쓰는 팀(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등)이 스스로를 '유나이티드'라고만 칭하면 상당히 아니꼬와한다. 다만 보통 영국의 '유나이티드'는 팀의 출신 배경이 '노동조합(United)'이라는 의미인 경우가 많아서 뉴캐슬과는 의미가 다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셰필드 유나이티드 등이 있다.

뉴캐슬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프랭크 와트 비서가 1895년부터 35년간 비공식적으로 팀을 지휘하여 콜린 비치, 스탠 시모어, 앤디 커닝엄, 휴이 갤러거 등을 중용했고, 1900년대에 3번, 1920년대에 1번 등 4번이나 리그에서 우승하는 등 나름 전성기를 지녔으나 1934년에 처음으로 2부 리그로 강등당했다.

1938년에 단장으로 돌아온 스탠 시모어는 이듬해부터 감독도 맡아 1943년 재키 밀번을 영입하여 새 시대의 기초를 다지고, 1948년 1부 리그에 승격시켜 1950년대에 FA컵을 3번이나 우승시켰다. 이후 시모어 시대에 주장으로 활약한 조 하비가 1962년부터 팀 감독이 되어 1965년에 2부 리그 우승으로 또다시 1부 리그로 승격시킨 뒤 1969년에 인터-시티 페어스컵 결승에서 헝가리우이페슈트를 꺾어 우승컵을 차지하기도 했다. 허나 그 역시 리그에서의 지지부진한 성적으로 팬들의 원성을 사서 1974-75 시즌을 끝으로 물러났다.

후임으로 블랙번 로버스 감독이던 고든 리를 선임한 것을 시작으로 리차드 디너스, 빌 맥개리, 아더 콕스, 잭 찰튼, 짐 스미스,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등이 지휘를 맡았으나, 팀은 끝없는 부진에 시달리며 1부와 2부 리그를 오갔다.

1.2. 90년대 ~ 00년대 초반의 전성기

그러나 1992년부터 부동산 개발업자 존 홀 경이 회장으로 부임한 후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하여 케빈 키건을 감독으로 선임했고, 이에 따라 팀은 더욱 강해져 1993년 2부 리그에서 승격하여 1993-94 시즌 바로 3위를 차지하였고[1], 1995-96 시즌에는 시즌 초 10경기에서 9승 1패를 기록하면서 엄청난 기세로 선두권에서 치고나갔다. 시즌의 2/3 가량이 진행된 시점에서 도 맨유를 승점 12점 차로 앞서나가며 우승이 매우 유력했으나.. 후반기에 기세가 꺾이면서 8경기에서 2승 1무 5패로 주춤하는 사이,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노련한 언플과 에이스 에릭 칸토나의 복귀를 앞세운 맨유가 상승세를 타고 7승 1무를 기록하면서 승점 차를 다 따라잡히며 역전을 허용했고, 맨유가 35R 사우스햄튼 전에서 1-3 패배를 당한 사이 뉴캐슬은 35R, 36R 에서 승리를 거두며 다시 승점을 동률로 만들긴 했으나 마지막 2경기에서 맨유는 5-0, 3-0 대승을 거두고 뉴캐슬은 2경기 모두 1-1 무승부에 그치면서 결국 승점 4점차로 준우승했다.

1996-97 시즌에는 우승을 목표로 당시 세계 최고 이적료 기록을 갱신하면서 블랙번에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하던 앨런 시어러를 영입하며 시즌을 시작했으나, 시즌 중반까지 4위를 기록하며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하자 1월에 키건 감독을 경질했다. 이후 2년 전 블랙번의 리그우승을 이끈 후 디렉터로 자리를 옮겼던 케니 달글리쉬 감독을 선임하면서 다시 상승세를 탔고, 리그 2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2년 연속 리그 2위를 기록. 단박에 프리미어 리그의 상위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리그에서 연이어 준우승을 차지한 뉴캐슬은 1997-98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데뷔했고[2]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FC 바르셀로나에 짜릿한 3-2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나 리그에서는 13위로 부진했기에 달글리쉬 감독은 98-99 시즌 초 경질되었고, 후임으로 선임 된 루드 굴리트도 부진하면서 98-99 시즌에도 리그 13위를 기록하는데 그쳤고 이듬해에는 시즌 초 5경기에서 1무 4패에 그치며 강등권으로 추락한데다 선수단 장악 실패 및 시어러와의 불화까지 터지며 결국 경질되었다.

2시즌 연속 13위에 그친데다 99-00 시즌 초에는 굴리트 경질 후에도 연패를 당하면서 시즌 초반 7경기에서 1무 6패로 극심한 부진에 빠져있었고 팀의 주포였던 시어러도 PK 1골에 그치는 극심한 부진에 빠져있었기에 이러다 뉴캐슬이 강등 당하는게 아니냐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었으나, 1999년부터 5년간 재임한 바비 롭슨 감독의 지휘 하에 팀은 다시 재정비에 들어갔다. 바비 롭슨 부임 첫 경기였던 셰필드 웬즈데이전에서 시어러가 5골을 터트리며 8-0 대승을 거뒀고, 팀은 바비 롭슨 부임 후 14승 9무 8패를 기록하며 안정화 되었으나 시즌 초의 극심했던 부진의 영향으로 11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다 다음해에는 시어러가 무릎 부상으로 인해 리그 5골에 그치는 악재가 터지며 2년 연속 리그 11위를 기록. 4년 연속 리그 10위권에 그치며 주춤하기도 했으나 해당 기간 동안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며 팀을 리빌딩했고, 2001-02 시즌에는 크레이그 벨라미, 로랑 로베르, 저메인 제나스를 영입하고 시어러가 플레이 스타일에 변화를 주면서 반등에 성공. 시어러 - 벨라미의 투톱과 로랑 로베르, 게리 스피드, 로베르토 솔라노 등의 미드필더 들을 앞세운 화끈한 공격 축구로 팀 득점 3위, 리그 순위 4위를 기록하며 챔피언스 리그에 복귀했다.
이어진 2002-03 시즌에는 챔스 3차 예선에서 보스니아의 FK 젤레즈니차르를 도합 5:0으로 제압하고 조별 리그에 진출했지만 초반 세 경기에서 모두 패배하며 조별 리그 탈락이 예상되었으나(유벤투스, 디나모 키이우, 페예노르트와 같은 조에 있었다) 이후 3경기를 모조리 잡아내면서 3승 3패로 16강에 진출했다. 다만 이 당시에는 16강에 진출해도 2차 조별 리그가 있었고, 그 조에는 FC 바르셀로나, 인테르, 바이어 레버쿠젠과 한 조였는데 여기선 2승1무3패로 조 3위로 탈락했다. 2002-03 정규 시즌도 리그 3위로 마치면서 챔스에 나갔으나, 다음 시즌 챔스 3차 예선에서 세르비아FK 파르티잔을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패배하며 충격적인 광탈을 당했고 리그에서는 시즌 초 3무 3패로 부진하게 시작했었던데다 시즌 막바지에도 3무 1패로 부진하면서 리버풀에게 밀려 승점 4점차로 리그 5위를 기록.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했고 이 이후 21년간은 챔스와는 인연이 없었다.

'엔터테이너'라고 불릴 정도의 공격적인 팀컬러와, 1996-97 시즌을 앞두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당시 세계 이적료 기록을 갈아치우며 앨런 시어러를 하이재킹 할 수 있었을 정도의 공격적인 투자가 어우러졌던 과거의 뉴캐슬은, 2000년대 후반 ~ 2020년대 초반과는 확연히 다른 위상과 매력을 지닌 빅클럽이었다. 한국에 해외축구가 널리 유통되던 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강팀이었기 때문에 한국에도 당시부터의 꽤 긴 구력을 지닌 뉴캐슬 팬들이 많다.[3] 이 시기에 팀이 강팀으로 자리를 굳히는 데에는 시어러의 월등한 득점력과 셰이 기븐 골키퍼의 철벽수비가 한몫했다. 이 외에 우구 비아나와 저메인 제나스 등 유망주들의 활약도 빛을 발했다.

그러나 프레디 셰퍼드 당시 구단주의 무리한 투자는 재정에 상당한 악영향을 준 데다[4], 2000년대 초반 팀을 이끌던 바비 롭슨 감독이 03-04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한 후 04-05 시즌에도 시즌 초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성적 부진 및 선수단 관리 실패 등을 이유로 들어 경질한 후 유명한 막장 감독 그레이엄 수네스 감독이 롭슨 경의 뒤를 맡게 되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뉴캐슬은 드라마틱한 침체를 경험하게 된다.

1.3. 몰락

2004-05 시즌을 앞두고 토트넘에서 스티븐 카를, 맨유에서 10년 넘게 준수하게 활약한 니키 버트를 영입했고 리즈 유나이티드의 신성으로 떠오르던 제임스 밀너를 영입한 후 바르셀로나와 네덜란드의 주전 스트라이커였던 파트릭 클루이베르트를 영입하며 다양한 포지션을 보강했고, 특히 클루이베르트의 영입으로 시어러, 클루이베르트, 벨라미의 화려한 공격진을 보유하게 되었기에 대부분의 팬들은 뉴캐슬이 상위권을 차지할 거라고 예상했다.

거기에다 팀의 주장이었던 시어러가 04-05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예고 했었기에 시어러의 마지막 시즌에 우승을 안겨주길 바라며 시즌을 시작했지만 시즌 개막 후 첫 4경기에서 2무 2패로 부진하면서 4R 종료 후 롭슨 감독을 경질한 후 유명한 막장 감독 수네스를 선임했다[5]. 부임 후 첫 두 경기에서 연승을 기록하며 선전하는 듯 했으나, 이후 로랑 로베르, 저메인 제나스, 올리비에 베르나르 등 많은 선수들을 팀에서 일방적으로 배제시키고 스트라이커였던 벨라미와 아메오비를 윙어로 기용하는 이해하기 힘든 선수기용과 전술을 보여주면서 팀 내 많은 선수들과 불화를 겪었고, 전술도 초반 이후로는 통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팀은 부진하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감독과 불화를 겪는 선수가 많았던데다 성적까지 막장이었기에 팀 내 분위기도 엉망진창이 되어 시즌 막바지에는 감독과 선수단을 싸잡아 비난하고[6], 경기 도중 같은 팀 선수들끼리 주먹을 날리며 싸움이 일어나 상대팀 선수가 와서 이를 말리는 등 막장이었다[7].

수비는 기븐이 분전했음에도 숭숭 뚫리며 57실점을 허용했고 시즌 전 기대를 받았던 공격진도 부진했었는데, 매년 20골 이상을 넣어주던 시어러는 막장이었던 팀 상태와 노쇠화가 겹치며 리그 7골에 그쳤고, 엄청난 기대를 받았던 클루이베르트도 리그 6골, 시즌 13골로 기대에 못 미치는 시즌을 보냈고 전반기에 리그 7골을 터트리며 좋은 득점 페이스를 보였던 벨라미는 수네스와의 불화로 인해 겨울에 임대로 팀을 떠났다.[8] 그나마 컵대회에서는 성과가 좀 있어서 UEFA컵 8강 진출, FA컵 준결승전까지 진출 했지만 리그에서는 14위에 그치며 최악의 성적을 냈다.

하지만 이런 성적에도 수네스는 유임에 성공했고, 구단에서는 2005-06 시즌을 준비하면서 다시 챔피언스 리그 무대를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우선 스콧 파커엠레 벨뢰졸루를 영입하며 미드필더를 보강한 후 스페인에서 준수한 활약을 하던 알베르트 루케를 영입하더니 클럽 레코드를 갱신하면서 잉글랜드의 마지막 발롱도르 수상자 마이클 오언까지 영입하면서 화려한 이적시장을 보낸 것. 그 후 수네스와 불화가 생긴 선수들을 대거 정리하면서 수네스는 엄청난 지원을 받았고,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려고 했던 시어러가 1년 더 뛰기로 마음을 바꾸면서 은퇴를 번복했기에 이번 시즌에는 제발 반등하길 빌었던 뉴캐슬 팬들이었으나.. 막상 시즌 개막 후에도 전설의 3B 라인을 대표로 하는 삽질만 계속해서 거듭하며 중위권에서 헤멘데다 오언은 이적 직후 부상을 당하더니 시즌 중반에는 장기 부상까지 당하며 리그 11경기 7골에 그치는 악재까지 터졌다. 그나마 늦게나마 수네스를 경질한 후 수석 코치였던 글렌 로더 감독대행 체제에서 팀을 수습하는데 성공하면서 수네스 경질 후 10승 2무 3패의 호성적을 기록하며 7위까지 성적을 끌어올렸고, 시즌 종료 후 팀의 상징이었던 시어러는 은퇴를 선언하며 팀을 떠났다.

2006-07 시즌에는 글렌 로더를 정식 감독으로 선임 했으나 지난 시즌 부상으로 시즌의 절반 이상을 놓쳤던 오언이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면서 안 그래도 시어러의 은퇴로 약화된 공격진에 비상이 걸렸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프리미어 리그 수위급 윙어였던 데이미언 더프, 인테르에서 3시즌 연속 두자릿 수 득점을 기록하며 활약하고 있던 오바페미 마틴스를 영입하고 당시 유망주였던 주세페 로시를 임대로 데려오는 등 공격진 보강에 초점을 두고 여름 이적시장을 보냈다. 시즌 개막 후에는 인터토토컵에서 우승컵을 따내고 개막전에서는 위건을 2:1로 잡아내며 시즌 출발은 좋았다.
하지만 부상 악령이 팀을 덮치면서 1군 선수단 대부분이 부상으로 이탈해버리면서 한때는 유스들을 선발로 내보내야 할 정도로 선수단이 망가졌었고, 약 두 달 가까이 승리가 없을 정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너무 부진하면서 강등권까지 추락하자 팬들이 참다 못해 셰퍼드 회장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까지 벌였을 정도였다. 그나마 11월 말부터 부상자들이 복귀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상승세를 탔고, 27R에서 리버풀을 2-1로 잡아내면서 9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기에 희망이 보였으나.. 시즌 초 부터 문제였던 빈곤한 득점력이 발목을 잡으면서[9] 남은 11경기에서 단 1승에 그치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멸망했다. 결국 글렌 로더 감독은 37R 종료 후 경질, 뉴캐슬은 13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셰퍼드 회장은 스포츠 다이렉트 창업주 마이크 애슐리에게 구단을 판매하며 구단주가 교체되었다.

2007-08 시즌을 앞두고 구단주가 된 마이크 애슐리는 볼튼을 중상위권으로 이끌었던 샘 앨러다이스를 선임했다. 그리고 오언의 부상 복귀와 함께 선수단 보강을 위해 상당한 지출을 감행했다. 우선 지난 시즌의 빈곤한 득점력 개선을 위해 마크 비두카앨런 스미스, 조이 바튼을 데려오며 공격진과 미들진의 뎁스를 늘렸고, 특히 수비진은 지난 몇 년 간의 수비불안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운영진의 한이 서린 대대적인 영입이 있었는데 호세 엔리케, 제레미 은지탑, 카사파, 다비드 로젠할, 하비브 베예, 압둘라예 파예 등 프리미어리그 및 유럽 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상을 보여주던 수비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선수층을 대거 보강했기에 토트넘과 함께 빅 4의 대항마가 되리라는 예상이 있었다.[10][11] 그리고 3B의 일원이던 타이투스 브램블을 위건으로 방출하는 데도 성공했다.[12]

빅 샘의 출발은 상큼했다. 개막전에서 친정 팀 볼튼을 방문하여 마르틴스의 바이시클 킥 포함 2골로 3:1 승리를 거두며 '올해는 다르다'가 될 줄 알았다. 더비에 패하기도 했으나[13] 그래도 초반 9경기에서 5승 2무 2패로 순항했다.[14] 그러다가 11라운드 레딩 원정에서 1-2 패배로 삐걱대더니 12 라운드에서 포츠머스 FC에 안방인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전반 8분부터 11분까지 3골을 내주며 4-1로 패배하며 홈 관중들이 전반도 마치기 전에 빠져나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곧이어 리버풀과의 홈 경기도 3-0 완패, 빅 샘은 홈 관중에게 대놓고 삿대질을 당하는 등 홈 팬으로부터 사실상 지지를 잃었다. 단독 꼴찌 더비와의 홈 경기도 이기지 못하며 결국 빅 샘은 2008년 새해가 된 뒤 얼마 안 가 경질당했다. 감독 대행으로 경기를 치른 맨유 원정에서 후반에만 6실점하며 0-6으로 졌다. 이 경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커리어 첫 해트트릭 허용 구단이 되었다.

맨유전 대참사 이후 케빈 키건이 1997년 1월 이후 11년 만에 컴백하자 홈 팬들은 그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키건의 부임 이후에도 연말부터 이어진 무승 행진이 이어졌다. 아스날에 3-0, 빌라엔 4-1 대패를 당한 뒤 27라운드 맨유에 홈에서 1-5로 패하며 맨유전 도합 11골을 헌납했다. 심지어 타인티스 및 타인위어 더비 1차전에서 무승부를 한 데다 블랙번에 홈에서 0-1로 패배, 리버풀에도 0-3 대패를 당하는 등 무승 기록은 13경기까지 이어지며 한때 강등권에 간당간당하게 앞서게 되었다. 대패를 많이 허용해 골 득실도 불리했다.

다행히 31라운드 풀럼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키건 감독은 부임 후 9경기 만에야 복귀 승에 성공했다. 이어서 토트넘과 레딩에 대승을 거두고 타인위어 더비 2차전도 승리하며 강등 걱정에서 벗어났다. 결국 12위로 리그를 마감하게 되었다.

1.4. 챔피언십 강등의 수모(2008-09 시즌)

비록 지난 시즌도 부진한 성적으로 마감했지만 돌아온 키건 감독 밑에서 다시 반등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던 뉴캐슬이었다. 개막전에서는 지난 시즌 11실점의 수모를 안긴 디펜딩 챔피언 맨유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거뒀고 2R 볼턴과의 홈경기는 오언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 3R 아스날 원정에서 3-0 완패를 당하며 8월 일정을 마친 상황에서 갑자기 키건 감독의 사임 소식이 들리며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키건 감독은 2007-08 시즌 종료 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 구단 측과 마찰을 빚었다. 키건은 네임 밸류 높은 프리미어 리그 출신 스타들의 영입(베컴, 앙리 등)을 강조했고, 데니스 와이즈 디렉터는 대륙의 자원들(콜로치니, 구티에레스 등)의 영입을 고수했다.

결국 디렉터쪽이 승리하며 파브리시오 콜로치니, 호나스 구티에레스, 나초 곤살레스[15]등의 선수들이 영입되었고, 키건 감독이 잔류시키길 원했던 제임스 밀너가 아스톤 빌라로 이적하자 키건 감독은 분노하여 계속되는 구단의 잔류 설득에도 끝내 결별을 선언했고 사임 후 구단에 소송까지 걸었다. 키건 감독이 부임 8개월, 시즌 3경기 만을 치르고 떠나게 되어 열받은 팬들이 구단 측에 격렬하게 반발하자, 애슐리 구단주는 구단 매각 방침을 세워 여러모로 노력했으나 적극적인 인수자가 등장하지 않았다.(당시 유력 인수자 후보로 베리 모트라는 사람이 등장하지만 인수를 위한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잠정적으로 매각을 포기하고 계속 운영을 이어갔다.

키건의 후임으로 임시 감독 조 키니어[16]가 부임했으나 일전 감독 경력에서 채 채우지 못한 퇴장 명령이 남아 몇 경기를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하는 개그를 하기도 했다.

키니어 임시 감독 체제에서 팀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선덜랜드와의 라이벌전 원정에서 28년만에 지는 수모도 있었으나 빌라전에서 2:0으로 승리하고 첼시 원정 무승부를 따냈으며 포츠머스 원정 3-0 완승, 토트넘과의 홈경기 2-1 승리로 크리스마스 시점인 18R까지 5승7무6패로 12위에 있으면서 중위권 도약을 꾀했다. 그러나 박싱데이 위건 원정에서 작년부터 계속해서 뉴캐슬을 상대로 원더골을 뽑아냈던 라이언 테일러에게 또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실점하며 졌고, 2008년 마지막 경기인 선두 리버풀과의 홈경기는 기븐이 무수한 슈팅을 막아내 평점 9점을 받고도 5:1 참패를 당하는 굴욕적인 경기를 하면서 중위권으로 올라간다는 목표는 꼬이기 시작했다.

1월에도 1무 2패에 그치면서 겨울 이적시장에서 선수단 보강을 위해 페테르 뢰벤크란츠, 케빈 놀란, 위에서도 언급됐지만 계속해서 뉴캐슬을 괴롭혔던 라이언 테일러를 영입했으나 핵심 선수인 셰이 기븐이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는 악재가 터졌다. 거기다 임시 감독 키니어가 윔블던 때처럼 심근경색 수술을 받게되면서 당시 수석 코치였던 크리스 휴튼이 임시 감독으로 팀을 이끌게 되면서 임시 감독의 임시 감독이라는 상황까지 벌어졌고, 키니어의 공백 기간 무승행진으로 순위가 강등권까지 처지자 4월에는 앨런 시어러를 임시 감독으로 데려오는 초강수까지 두었다. 그러나 시어러 부임 후에도 팀 상황은 반전되지 않았고, 2월 이후 3달 가까이 승리가 없을 정도로 부진하면서 라이벌인 선더랜드에게도 밀리고 강등은 눈 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다 36라운드에서 라이벌 미들즈브러와 타인티스 더비가 치뤄졌는데, 당시 뉴캐슬이 18위, 보로가 19위로 강등을 건 단두대 매치가 벌어졌다. 여기서 뉴캐슬은 3-1로 승리하여 보로를 사실상 강등으로 몰아넣었고 뉴캐슬은 약 3달 만의 승리를 거두며 17위였던 헐 시티를 골 득실로 제치고 17위로 올라서며 잔류의 희망을 챙겼으나 다음 라운드 풀럼전에서는 0-1로 패배한데다 같은 날 헐 시티가 무승부를 거뒀기에 다시 강등권으로 추락하며 상황은 다시 악화되었다.

그래도 리그 최종전만이 남은 상황에서 헐 시티가 뉴캐슬에 승점 1점 차이로 간신히 앞서고 있었고, 득실 차에서는 뉴캐슬이 한 골 차로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헐 시티가 최종전에서 리그 챔피언인 맨유를 만나 패배할것이 확실했기에[17] 뉴캐슬은 아스톤 빌라와의 마지막 라운드에서 비기기만 해도 골 득실로 잔류가 가능한 상황이었으나 전반 38분에 더프의 자책골이 들어가며 벼랑 끝까지 몰렸고,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든 동점을 만들려고 시도 했으나 실패하고 0-1 패배를 거두면서 18위로 챔피언십으로 강등되어 2009-10 시즌을 챔피언십에서 보냈다. 36R에서의 승리로 보로를 사실상 강등으로 몰아넣었음에도 결국 본인들도 라이벌과 사이 좋게 강등당한 것. 오언은 시즌 중반까지는 리그 8골을 득점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이고 있었으나 2009년 1월 이후에는 무득점으로 부진하면서 시즌 막바지 팀의 강등에 일조했고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으로 풀렸다.

1.5. 프리미어 리그 복귀(2009-10 시즌)

뉴캐슬은 2009-10 시즌 구단주(마이크 애슐리)가 팀을 시장에 내놓고 그간 투자했던 비용을 구단주에 대한 부채로 처리해 거의 돈을 쓰지 못했는데,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덕장 휴튼 감독이 선수단을 신뢰하며 팀을 뭉치게 만들었고, 여기에 니키 버트, 숄라 아메오비, 스티브 하퍼 등의 베테랑 보컬리더들이 별 말 없이 잔류하면서 분위기를 수습해 갔다. 또한 전 시즌 중반 합류한 케빈 놀란이 시즌 17골로 챔피언십 2009-10 최우수 선수상을 거머쥐며 맹활약했고, 키만 큰 멀대였던 유망주 앤디 캐롤이 하부 리그에서 경험치를 쌓아 역시 시즌 17골을 기록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호재도 뒤따랐다. 크리스 휴튼 임시 감독은 임시 감독 신분으로 코카콜라 이달의 감독 상을 수차례 받는 등 선전하여 정식 감독으로 계약했다.

시즌 중반 이후 줄곧 1위를 달렸던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2010년 4월 6일 챔피언십팀 중 가장 먼저 승격을 확정지었다. 경기 시작 전 3위 노팅엄 포레스트카디프 시티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승점 72점을 기록, 뉴캐슬은 승점 86점으로 남은 경기에 상관없이 자력으로 승격을 확정지었다. 이어 열린 경기에서 뉴캐슬은 페테르 뢰벤크란츠와 케빈 놀란의 골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승격을 자축했다. 결국 챔피언십 역대 최다 승점 2위인 승점 102점으로 코카 콜라 트로피를 손에 쥐며 험난했던 챔피언십 시절을 화려하게 마감하고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했다.

여담으로 2009-10 시즌 어웨이 유니폼은 홈 유니폼과 디자인이 똑같았는데 줄무늬 색상만 달랐다. 그런데 그 색깔이 노랑-흰색 줄무늬라서 일명 참외 유니폼으로 통했는데 역사상 최악의 유니폼으로 꼽힌다. 그래도 이 시즌 유니폼이 뉴캐슬과 줄무늬 정체성을 공유해 잘 어울리던 아디다스가 제작한 마지막 유니폼이었기에[18]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6. 2019~2021년 매각 사가

전임 구단주인 마이크 애슐리는 스포츠 용품 유통업체 '스포츠다이렉트'의 회장으로 자신의 비즈니스와의 시너지를 기대하며 2007년 클럽을 인수했으나, 구단 운영에 대한 간섭과 팀의 PL 첫 강등 등 부진한 성적 등이 서포터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아 금세 구단 운용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렸다. 애슐리는 2008년부터 구단을 매각하려고 했으며, 그해에 아랍에미리트로 가서 인수 논의를 했으나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왔었다. 포포투 보도에 의하면 가서 8,000억 이상을 생각하며 팔려고 했으나 아부다비두바이에선 그다지 관심도 안 보여서 그냥 피서나 즐기고 왔다고 비꼬았다. 솔직히 이 돈은 너무 비싸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참고로 첼시 같은 경우나 맨시티도 4,000억대에 팔렸다는 게 정설이다. 과거 첼시나 맨시티가 팔리기 전까지는 뉴캐슬에 비해서 한끗 처지는 클럽이긴 했으나 그래도 금액 차이가 너무 컸다. 2010년 말에도 계속 오일 달러 부호의 인수 떡밥이 돌고 있으나 죄다 빗나가고 있다. 애슐리의 요구때문에 인수는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애슐리가 있으면 팀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데, 팀이 팔리지가 않는다.

하지만 2019년 만수르의 사촌인 셰이크 칼레드가 5270억으로 인수 직전까지 갔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해 국내외 툰 아미들은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다. 거기에 2020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차기 국왕이 될 왕세자 빈 살만도 이 팀을 노리고 5000억대로 사고자 협상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가 공교롭게도 노리던 팀이 바로 맨유조엘 글레이저에게 4조 원 이상이라는 돈을 부르며 사려고 했으나 실패하여 뉴캐슬을 대신 살 것이라는 보도이기에 꿩 대신 닭으로 뉴캐슬을 산다고 나선 셈이라 뉴캐슬 서포터들은 좀 씁쓸한 느낌도 들겠지만 이는 첼시와 맨시티도 그랬었다. 공교롭게도 알 나얀도 맨시티보다 먼저 사려고 나섰던 팀이 뉴캐슬이었고 이게 무산되자 발렌시아 CF를 사려다가 거부당해 결국 3번째로 나선 것이 바로 맨시티. 우습게도 외국인 구단주를 거부하며 알 나얀 왕자가 포기한 발렌시아는 10년도 안가 2010년대 중순에 재정난에 빠져 결국 중국계 싱가포르 재벌 피터 림에게 팔려서 발렌시아 서포터들은 차라리 외국인에게 팔릴 바에는, 예전 알 나얀에게 팔렸더라면 팀 역사가 달라졌으리라고 아쉬워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더 선은 2020년 2월 26일(현지 시간) “빈 살만 왕세자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대한 관심이 식었다. 그리고 다시 맨유를 인수하려고 한다”라고 보도하고 있는데 자세한 건 알려지지 않았으나.뉴캐슬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있기에 빈 살만 왕세자가 뉴캐슬을 포기하고 다시 맨유를 값을 더 부른 5조 5천억원이라는 뉴캐슬 인수 비용 추정치의 11배를 부르고 있기에 어찌될지 모른다.

그리고 2020년 3월 30일자 영국 언론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뉴캐슬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 컨소시엄 입찰이 수 개월 내 완료 될 것"이라며 "인수 금액은 3억 4,000만 파운드(약 5,160억 원)다.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PIF)가 지분 80%를 소유하는데 이 PIF는 총 자산 3,200억달러(약 392조 원)에 이르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이다. 여기와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PCP 캐피탈과 뉴캐슬 레이싱 코스를 갖고 있는 루벤 브라더스가 10%씩 나눠갖는다는 것이다. 입찰을 확인한 프리미어 리그 사무국은 컨소시엄이 자금 지원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지 필요 점검에 나선다.

결국 7월말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에서 사는 일은 취소되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와 'BBC’ 등은 7월 30일(한국 시간) 일제히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뉴캐슬 인수 계획을 취소했다"라고 보도했다. 프리미어 리그 사무국의 승인만 남겨둔 상황이었지만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려왔다. 사우디의 인권 침해, 자국 내 무단 프리미어 리그 스트리밍 방관 등 논란이 이어졌고, 결국 인수 철회되었다. 팬들은 2021 시즌은 강등당할지도 모른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뉴캐슬 측은 2020년 9월 10일 홈페이지를 통해 "EPL 사무국이 사우디 자본 컨소시엄의 구단 인수를 부적절한 판단으로 거절했다"라고 지적했다. 사우디 극부 공공투자펀드(PIF) 중심 컨소시엄은 3억파운드(약 4,623억원)에 뉴캐슬 인수를 추진했으나 승인에 앞서 소유주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는데 소유주 테스트는 개인이 구단주가 되는 걸 금지하는 요건을 의미한다. 여기에 범죄에 대한 유죄 판결, 스포츠나 프로 기구에 의한 금지, 승부 조작 같은 일부 규정 위반이 들어간다.

EPL 사무국은 이 가운데 PIF를 사우디 왕가의 소유로 볼 소지가 있다고 봤다. 결국 PIF 콘소시엄은 지난 7월 뉴캐슬 인수 계획을 철회했다. 인수 기대감이 높았던 뉴캐슬 측은 "PIF는 사우디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다.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리는 내용과 법적 의견을 EPL에 전달했지만 계획을 무산했다"라며 "모든 방안을 검토해 대응하겠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사우디 국부펀드부터가 결국 사우디 왕가로부터 나온 돈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 정확한 사실은 사우디 왕가 소유인 PIF가 PL 중계권사인 카타르의 베인 스포츠와 극심한 마찰을 겪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우디는 카타르와 국가 간 갈등으로 인해서 중동의 독점 중계권사인 베인 스포츠와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불법으로 방송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이에 1조 원이 넘는 돈을 주고 계약한 베인스포츠에서 항의했고 해적 방송이 문제가 되자 EPL 사무국은 PIF가 소유자 테스트(Owners and Directors)에서 떨어졌다며 뉴캐슬 인수를 불발시켰다.

이런 가운데, 사우디 극부 공공투자펀드(PIF)는 세리에 A 강팀인 인테르나치오날레를 2021년 3월 들어서 사겠다고 나서고 있다. 인터 밀란 소유주이던 중국 쑤닝 그룹이 무리하게 돈을 끌어모아 투자했으나, 제대로 파산 직전으로 망해버렸기에 중국 슈퍼리그에서 소유하던 장쑤 쑤닝이 2020년 시즌 우승하고 2021년 개막도 하기전에 팀을 해체해버릴 정도이다. 하지만, 인테르와 인수 논의가 지지부진하더니 10월 들어서 갑자기 다시 뉴캐슬을 산다고 보도되고 있다.

BBC에서 2021년 10월 6일(현지 시간) "사우디 국부펀드가 뉴캐슬 유나이티드 인수를 앞두고 있다. 합의를 마친 상태이며, 24시간 내로 인수 작업이 마무리될 것"이라면서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인수를 두고 그동안 많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무려 18개월 만에 인수 작업이 마침표를 찍게 됐다"라고 보도했다. 사우디 왕가는 논란이 된 카타르 방송 '비인 스포츠'와 중계권 분쟁을 해결하면서[19] 사우디 국부펀드의 뉴캐슬 유나이티드 인수 작업이 급물살을 탔다. 최종적으로 프리미어 리그의 승인이 내려져야 하지만, 다수의 영국 현지 언론은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고 순조롭게 마무리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뉴캐슬 팬들도 사우디 국부펀드의 인수 소식에 기뻐하고 있다. 이에 대해 'BBC'는 "뉴캐슬유나이티드의 서포터즈인 '트러스트'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93%가 인수에 찬성했다. 뉴캐슬유나이티드의 인수 소식은 팬들을 기쁘게 할 만한하다"라며 뉴캐슬 유나이티드 팬들의 반응을 전했다.

1.7. 세계 최고 부자 구단이 되다

결국, 2021년 10월 7일 (현지 시간)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PIF(사우디 국부 펀드)로 3억 500만 파운드(약 4,953억 5,000만 원)에 매각되었다. 링크 이로써 장장 18개월이 걸린 사우디-뉴캐슬 인수 사가는 인수 완료라는 결과로 마무리되게 되었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사실상 구단주가 된 것에 서포터들과 팬들은 벌써부터 홈 경기장 앞으로 엄청나게 몰려와 축배를 터뜨리며 환호하고 있다. 기사 아랍풍 옷차림 코스튬 플레이까지 하며 구단주를 환영할 정도다. 시즌 예매권 판매가 폭발했고, 구단 홈페이지는 접속자가 폭발해 마비될 정도로 난리가 났다. 뉴캐슬 서포터들은 SNS에서 이젠 100년 가까운 리그 우승 단절 역사가 사라지고 뉴캐슬은 맨유나 리버풀, 첼시, 맨시티 같은 팀들과 우승을 다투는 팀이 될 것이라고 기쁨에 찬 글을 남기며 경축했다.

이로서 뉴캐슬은 추정치로만 40조 원 정도로 프리미어 리그 구단주 재산 1위였던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얀 왕자의 재산 규모보다 시가총액이 10배 이상 많은 모기업을 맞이하였다. 파리 생제르맹을 책임지고 있는 카타르 국부펀드보다도 많아 전 세계 구단주 재산 순위 독보적 1위이다.

결국, 이런 투자에 대하여 뉴캐슬 서포터들이 기뻐할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영국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뉴캐슬은 향후 3시즌간 재정적 페어플레이(FFP)를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2억 파운드(약 3,260억 원)를 사용할 수 있다. 지난 3개 시즌 동안 3,800만 파운드(약 615억 원)의 흑자,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FFP 규제 완화가 근거다.

그뿐만 아니라 뉴캐슬은 인프라까지 엄청나게 투자되어 확 뜯어 고칠 예정이다. PCP 캐피털의 스테블리 공동 소유주는 영국 '더 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계획을 알렸다. 그녀는 "우린 큰 야망을 갖고 있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영입을 위해선 그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 준비 없이 그들을 받아들일 순 없다."라면서 선수를 확 대거 바꿀 것을 밝혔다. 거기에 "뉴캐슬 훈련장은 매우 끔찍하다.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다행히도 훈련장 보수는 FFP에 제한을 받지 않는 분야다. 수준급 기량의 선수들이 훈련할 곳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우린 경쟁하기 위해 시장에 나와 있고, 그것에 맞게 탄탄한 인프라를 구축할 것이다. 그리고,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도 투자하고 싶다. 경기장은 좀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 프리미어 리그 정상에 오르기 위해 계속해서 손을 볼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다른 EPL 19개 구단은 긴급 연석 회의를 소집하고 재정상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있다. 19개 구단주 전 재산 다 합쳐도 뉴캐슬 구단주 재산 1/3조차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반대가 통할 가능성이 그다지 없다. 결국 프리미어 리그 사무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지배하지 않을 거라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보증을 받았다"라며 논란에 답했으며 따라서 왕가에서 정치적 간섭이나 계약과 다른 일이 없는 한, 펀드에 의한 구단 소유는 문제 없이 허용한다고 공식 발표했기에 "정 싫으면 구단 팔고 나가든가 마음대로 해라. 그것도 자유다."라면서 확실히 결론을 내버렸다.

넷상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인권 문제를 들먹이며 비아냥거리는 해외 글이나 영상도 보이지만... 이런 논리라면 첼시나 사우스햄튼, 울버햄튼도 논란일 수밖에 없다. 첼시 FC 구단주이자 프리미어 리그에 돈다발 구단주 개막전 시초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역시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과 관련이 크며, 사우스햄튼 FC 구단주 고지승은 위구르 수용소 강제 노동 하청사를 가지고 있다는 논란이 있으며, 울버햄튼 구단주 곽광창도 티벳에서 이런 논란이 있는 등 인권으로 따지자면 여태 다른 구단주에 대해서도 결코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2022년 들어서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로만은 첼시 구단주직을 박탈당했으며 사우스햄튼도 2022년 1월에 세르비아 재벌 기업인 Sport Republic에 되팔렸다.

이런 가운데 10월 10일(한국 시간) 토트넘 웹진 'SB네이션'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은 토트넘 홋스퍼 FC에 문의했다고 한다. 이때, 다니엘 레비 회장과 25억 파운드(약 4조 752억 원)에 10억 파운드(약 1조 6,300억 원)를 추가로 지불하는 총액 35억 파운드(약 5조 7,000억 원)에 달하는 협상을 했다는 주장을 했다. 저 돈을 다니엘 레비가 제시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5조 7000억이나 주고 토트넘을 살 가능성은 없다. 사우디 국가펀드가 맨유에게 4조 원이 넘는 돈으로 인수 제의를 한 것은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토트넘을 인수하는데 맨유보다 큰 돈을 줄 가능성은 없다. 런던 연고지에서 본인들의 최대 라이벌인 아스날은 물론이오, 웨스트햄에게까지 구단 값어치와 관중 동원력에서 밀리는 토트넘이 말이다. 그나마, 2019년 토트넘은 못해도 챔스는 진출했으며 팀 역사상 처음으로 챔스 결승까지 진출할 정도로 지금의 토트넘과는 차원이 다른 팀이었다. 거기에 DESK 공격진이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고, 수비진도 심각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며, 토트넘과 프랑스의 주장인 위고 요리스까지 있었으니 그럴만 했다고 하지만 사우디 펀드 측은 부정하지도 않으나 아무 말도 없기에 알 수 없다. 저게 사실이라면 돈을 너무 과하게 요구해서 스스로 걷어찬 셈이다.[20] 우습게도 2022년에 토드 볼리가 52억 달러, 한화가치 7조원에 가까운 돈으로 첼시 FC를 사버려서 이젠 프리미어리그 구단 유명팀 값은 조 단위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맨유글레이저 일가가 10조원 이상으로 판다고 하는 판국이 되어버렸다.

정작 우스운 것은 뉴캐슬 지역지 '뉴캐슬 크로니클'에 따르면 사우디 펀드가 사려다가 실패한 두 구단인 맨유와 토트넘이 뉴캐슬 인수를 결사 반대했다는 것이다. 결국 지들이 안 팔렸기에 배아퍼 이러냐고 비아냥을 실컷 당할 뿐이다. 한편, 데일리 메일이 10월 24일 보도하길 유일하게 거부한 맨체스터 시티를 뺀 프리미어 리그 다른 18개 구단들은 뉴캐슬과 이적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19위인 뉴캐슬을 아예 강등시키자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목적은 실패한다.

이런 가운데, 11월 들어서 난데없이 에디 하우가 새로운 감독이 될 전망이다. 에디 하우 항목에서 나오듯이 중하위 팀을 여태껏 맡아본 게 전부인 상황. 그의 경력에서 그나마 자랑할 게 AFC 본머스를 승격시켰지만 결국 강등시켰던 터라 서포터들 반응은 임시적으로 리그 잔류에 일단 목적을 두고 영입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리그 15라운드 번리전, 칼럼 윌슨의 선제골과 선제골을 잘 지킨 수비진에 힘입어 1:0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21-22 시즌 첫 승, 2021년 6승째를 달성했다. 이 경기에선 조엘 린톤, 자말 루이스, 자말 라셀스 같은 브루스 체제에서 경기에 못 나오거나 부진했던 선수들이 대부분 잘해주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마지막 10분, 경기장 분위기는 선수들이 하나같이 인스타로 감사를 표할 만큼 압권이었다.

이후 무승부와 패배를 연이어 겪다가 21라운드. 리즈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2승째를 거두며 18위로 올라섰다. 17위와 1점 차로 강등권 탈출이란 목표에 희망이 커지고 있다. 이어 연승을 달리며 2월에는 무패행진을 달렸고 5승 3무 무패로 팀은 14위로 껑충 올라가 강등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첼시 원정에서 0-1로 패해 9경기 만에 무패행진이 깨졌지만, 첼시를 상대로 선전하며 겨우 몇 달 전 20위이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후에 토트넘에게 1-5로 대패하기도 했지만 울버햄튼을 이기면서 강등권 걱정은 확실히 떨친 분위기이며 이후, 12월까지도 같은 강등권이었던 노리치 시티[21]랑 가진 4월 리그 2차전 경기에선 3-0으로 압도하며 이겼다. 노리치 시티는 결국, 강등이 가장 먼저 확정된 반면에 뉴캐슬은 10위 정도로 순위를 굳건히 지키며 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막판에 아스날을 2-0으로 이기며 처음으로 빅 6급 팀도 이겼고 리그 11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뉴캐슬이 11위로 마무리를 한 게 별로라는 반응도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뉴캐슬의 인수는 시즌 도중에 이루어졌는데, 그 당시 뉴캐슬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었고, 19~20위를 오가며 강등이 거의 확정적인 상황이었다. 리그 개막 후 4개월이 지난 12월 5일에야 비로소 첫 승을 거두었고, 강등권을 탈출하며 11위로 마무리한 것은 오히려 대단한 일이다. 맨시티만 해도 알 나얀 왕자가 구단주가 된 첫 시즌 08-09 시즌에 리그 10위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그 다음 09-10 시즌은 리그 5위로 올라갔으며 3개 시즌 만인 10-11 시즌에 리그 3위가 된 뒤로 21-22 시즌까지 단 1번도 리그 4강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뉴캐슬도 차후에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만, 당시에는 FFP 룰 도입 초기여서 지금처럼 엄격하게 FFP를 적용하지 않았고 지금은 FFP 룰이 훨씬 엄격하게 적용되기 때문인 데다가 리그 수준도 상향 평준화되었기 때문에 1~2시즌 만에 챔스 단골 후보가 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었다.

그러나 뉴캐슬은 인수 이후 무리하게 돈을 퍼붓기 보다는 천천히 팀의 체급을 올리고 스쿼드를 필요한 포지션부터 차근차근 보강하며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2-23 시즌에는 토트넘과 첼시 등을 제압하며 리그 중반부~후반부 중반에 3~4위를 굳건히 지켰으며, 그리고 마침내 37라운드에서 최소 4위 자리를 확보하면서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뉴캐슬은 위의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비웃듯이 2002-03 시즌 이후 21년만에 챔피언스 리그 본선 무대로 복귀하게 되었다.[22]

2. 최근 시즌 요약

2.1. 201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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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11-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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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012-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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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013-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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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014-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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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15-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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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16-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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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17-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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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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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2019-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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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20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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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2021-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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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2022-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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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2023-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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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2024-2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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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승격팀이 거둔 최고의 성적이다. 다음 시즌인 94-95 시즌 노팅엄 포레스트의 기록과 동률인데 두 팀이 똑같이 42경기 승점 77점으로 3위를 차지했다.[2] 2승 1무 3패로 조 3위로 탈락했다. 디나모 키이우, PSV 아인트호벤, FC 바르셀로나와 한 조 였는데 의외로 바르셀로나는 1승 2무 3패라는 성적으로 4위로 탈락했다.[3] 2010년대 이후 영화 '골!'을 본 사람들은 뉴캐슬이 무슨 챔스를 노리냐며 비웃기도 하는데 영화의 배경은 앨런 시어러가 현역으로 뛰던 2000년대 초의 뉴캐슬이다. 이때 뉴캐슬은 우승권까진 몰라도 맨유나 리버풀 등의 빅클럽과 충분히 경쟁이 가능한 명문 구단이었다.[4] 챔스 진출을 위한 무분별한 빅네임 영입과 방만한 운영으로 당시 구단 부채는 1억 파운드에 육박했다. 리즈 꼴이 안 난 게 다행일 정도였다.[5] 그래도 뉴캐슬 부임 직전에는 블랙번에서 준수한 모습을 보이며 어느정도 나아진 모습을 보이긴 했다.[6] 로랑 로베르[7] 04-05 시즌 30R 아스톤 빌라전에서 0-3으로 끌려가던 후반 80분,리 보이어키어런 다이어가 패스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먹을 날리면서 유니폼이 찢어질 정도로 싸웠고 당연히 둘 다 퇴장당했다.[8] 벨라미는 이후 FA컵 준결승전에서 뉴캐슬이 패배하자 시어러에게 패배를 조롱하는 문자를 보냈고, 그 후 당연하게도 시어러와도 불화가 생긴 벨라미는 뉴캐슬로 복귀하지 못하고 다음 시즌 이적당했다.[9] 이 해 뉴캐슬은 38경기 38득점으로 빈곤한 득점력을 보였고, 마틴스가 리그 11골을 터트리며 팀의 주포로 활약하긴 했으나 리그 득점 2위가 5골을 넣은 키어런 다이어였고, 나머지 선수들은 3골, 3골 이하에 그칠 정도로 부진했다.[10] 하지만 이때 영입 되었던 선수들 중 대부분이 폭망해 버리며 이 시즌 및 이후의 부진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11] 스미스와 비두카의 영입으로 밀너와 함께 리즈의 강등 멤버가 3명이나 재회하게 되었다.[12] 장 알랭 붐송은 2006년에 이미 유벤투스로 떠났고, 바바야로는 시즌 도중 방출돼서 LA 갤럭시로 이적했다.[13] 2007-08 프리미어 리그의 최하위인 더비 카운티의 유일한 1승 상대가 바로 뉴캐슬이다. 당시 1무 1패로 더비에 승점 4점 헌납. 챔피언십에서 잘 나가던 시즌에도 더비에게는 이기지 못했다. 2009-10 시즌에도 결국 1무 1패를 기록했다. 더비의 상징인 양에 빗대어 반 농담으로 건초라고 부르기도 했다.[14] 다만 이때까지 빅4를 상대하지 않은 상태라 승점을 충분히 못 쌓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15] 특히 나초의 경우 와이즈 디렉터가 유튜브 영상을 보고 영입을 결정했기에 키건은 해당 영입은 절대 안된다며 결사반대 했었다.[16] 여담으로 2013년 대한민국의 월드컵 8회 연속 진출 기념 다큐멘터리 태극전사의 탄생에서 86 멕시코 월드컵 예선 당시 상대 팀이었던 네팔의 외국인 감독과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바로 그 네팔의 감독이 젊은 시절의 조 키니어다. 당시 네팔 대표팀은 지금처럼 약체 취급에 한국의 고등학교 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조 키니어 스스로조차도 한국에 3-0으로만 져도 다행이라고 말했으나 한국에 홈에서 의외로 선전하며 자책골과 페널티킥 골로 2-0으로 졌고 동대문에서 4-0으로 졌는데 한편으로는 한국을 홈에서 잡은 말레이시아와 홈에서 0-0으로 비겨서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어느 정도 일조했다. 또 1992년부터 1999년까지 크레이지 갱 막바지 때의 윔블던 FC 감독이기도 하다.[17] 실제로 헐시티는 전반 24분 대런 깁슨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면서 0-1로 패배했다.[18] 2010-11 시즌부터 2020-21 시즌까지는 푸마가 킷 스폰서였고, 2021-22 시즌부터 2023-24 시즌까지는 영국의 신생 브랜드 '카스토어'가 킷 스폰서를 맡다가 2024-25 시즌부터, 약 14년 만에 아디다스가 다시 스폰서로 돌아오게 되었다.[19] 아랍권의 리그 중계권을 가진 비인 스포츠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각종 인터넷 해적방송이 사우디에 프리미어 리그를 중계해 맥을 못 췄는데, 이들이 사우디 왕가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정황이 발견되어 리그에서 사우디 측의 구단 인수를 비토하였다. 해적 방송들은 빈 살만의 뉴캐슬 영입 좌절 이후 모두 폐쇄되었다.[20] 다만 토트넘 서포터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의외로 과반수가 반대하였다.[21] 당시 12월에는 1:1로 리그 경기를 비겼다.[22] 2003-04시즌도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했지만 3차 조별예선 탈락으로 본선 무대는 밟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