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4 16:47:22

대한항공 085편 납치 오인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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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납치된 비행편 <colbgcolor=#ffffff,#1f2023>AA11 · UA175 · AA77 · UA93
납치 오인 비행편 KE085 · DL1989
충돌 구 세계무역센터(붕괴) · 펜타곤
관련 정보 최후의 메세지 · 노란 리본 작전
관여 인물·단체 알카에다 · 오사마 빈 라덴 ·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 모하메드 아타
테러 피해자·영웅 베티 옹 · 키스 A. 글래스코 · 릭 레스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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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6개월 전, 홍콩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사고기의 모습.[1]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발생일 2001년 9월 11일
유형 납치 오인, 조종사 과실[2]
발생 위치
[[캐나다|]][[틀:국기|]][[틀:국기|]] 유콘, 화이트호스 국제공항
기종 Boeing 747-4B5
운영사 대한항공
기체 등록번호 HL7404[3]
출발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인천광역시 인천국제공항
도착지
[[미국|]][[틀:국기|]][[틀:국기|]] 뉴욕시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탑승인원 승객: 201명
승무원: 15명
피해 승객 전원 일정 지연
생존자 탑승객 216명 전원 생존

1. 개요2. 사고기/사고기편3. 사고
3.1. 발단3.2. 경과3.3. 결말
3.3.1. 만약 KE085편이 격추되었다면3.3.2. 대한항공 085편 비행 일지
3.4. 원인
4. 사건 이후

[clearfix]

1. 개요

KAL기 캐나다 공항 비상착륙 긴박했던 순간

2001년 9월 11일 일어난 대한민국 국적기의 격추 미수 사건. 하필이면 날짜가 날짜인 탓에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항공당국의 납치 오인으로 인해 일어난 사고이다. 관련 블로그

2. 사고기/사고기편

사고기는 1998년 대한항공보잉에 발주하여 만든 보잉 747-400 여객기이다. 1998년 12월 30일 인도되어 지금은 2016년 6월식 보잉 777-300ER(HL8042)로 대체되었으며, 2016년 7월 2일 맥스 에어라는 나이지리아 항공사에 팔린 후 2020년 퇴역했다.

기존에는 사건기가 1997년 인도된 HL7460[4]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MBC 뉴스데스크의 해당 사건에 대해 다룬 뉴스 확인 결과 전혀 다른 기체인 HL7404로 밝혀졌다. 아래가 당시 뉴스 캡쳐본.
파일:KE085_HL7404.png
노즈기어 도어에 확연히 ‘404’(=HL7404)라고 적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5][6]

사고기 편은 서울발 뉴욕행 KE085편으로, 2004년까지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경유해서 갔다. 지금도 무기착 직항으로 유지 중이며, 2012년까지 B777-3B5/ER이 투입되었고 2015년 12월부터는 A380-861이 투입되다가 이후에는 B747-8B5가 투입되고 있다.

3. 사고[7]

3.1. 발단

당시 미국아메리칸 항공 11편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세계무역센터꽂히고, 아메리칸 항공 77편이 펜타곤으로 돌진하고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은 워싱턴 D.C의 백악관 or 의회를 테러 목표로 잡고 비행하던 도중 승객들의 저지로 펜실베이니아의 샹크스빌에 추락하는유례없는 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에 패닉에 빠져 버린 참이었다.

한편 KE085편은 캄차카 반도를 지나던 도중 대한항공으로부터 테러에 관련된 전보[8]를 받았다.

마침 비행기에는 수습 부기장이 타고 있었고 기장은 수습 부기장에게 비행기 납치 상황 발생 시 대처 방안을 알려주기로 했다. 그래서 레이더 트랜스폰더에 납치 시 입력하는 비상버튼[9]을 입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동시에 행동으로 옮기나, 실제로 보내지는 않았고 도중에 취소 버튼을 눌렀다.

그때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테러로 인해 다급하게 영공 내 모든 항공기를 강제 착륙시키고 영공을 폐쇄하는 초유의 긴급 조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085편처럼 영공 진입을 앞둔 비행기들이 여럿 있었으므로 항공청과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는 전부 회항시키거나 캐나다 등의 도움을 받아 가까운 공항에 강제 착륙시켰다. 그러면서 미국은 여러 업체들을 동원해 사정거리 내 모든 비행기들의 트랜스폰더를 감시하였다. 그러던 중 ARINC[10]에서 085편이 납치코드(HJK)를 입력한 것을 포착하였고, 오후 12시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에 085편이 납치된 것 같다고 통보했다.

3.2. 경과

미국 중앙정보국에서는 뉴욕으로 향하던 085편의 통신 단말기를 감시하고 있었다. 한편 앵커리지 센터 관제사는 순항 중이던 KE085편과 교신 도중 납치 암구호를 들었다는 착각을 하게 되고, "만약 비상 시에는 트랜스폰더 코드를 7500으로 바꾸라"며 알려줬는데 조종사들은 트랜스폰더 코드를 7500으로 바꾸라는 지시인 줄 알고 진짜로 코드를 바꿔 버리고 말았다.[11]
CIA, NORAD 등 KE085편을 예의 주시하던 관계당국들은 코드 7500이 발송되자 항공기가 정말 납치되었다고 생각했다. 항공기가 알래스카에 있는 건물에 충돌할 것을 우려해 앵커리지 등지에 있는 관공서 빌딩 및 대형 호텔에는 비상 대피하는 소동이 발생했다. 동시에 앵커리지 관제센터에서 085편에 납치 상황임을 물었고, 조종사들은 항공당국의 질문[12]을 듣고 어리둥절해하며 '우리는 납치를 당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항공당국은 확인 겸 영공폐쇄 절차를 위해 강제 착륙 지시를 내렸고, 결국 조종사들은 착륙 지시에 순응해 뉴욕 시각 2시 54분 캐나다 유콘 준주 화이트호스 국제공항에 F-15 전투기의 유도를 받으며 착륙했다.[13]
파일:attachment/대한항공 085편 납치 오인사건/ke085_panc.png
사고 당시, 화이트호스 국제공항에 착륙하는 사진
파일:KE085WH1.jpg
파일:KE085KE281.jpg
당시 화이트호스 국제공항에는 같은 회사 소속인 대한항공 281편[14]도 영공봉쇄로 인해 착륙해 있었다.

3.3. 결말

착륙 직후 캐나다 무장경찰이 난입해 조종사들을 심문하고 승객들을 검문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승객들이 불편함을 겪었다.[15] 다행히 단순 오해로 결론났고, 사고기는 미국 영공이 다시 열린 뒤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으로 무사히 갔다. 이 사건은 9월 13일 현지 언론에 소개되었고, 대한민국에서는 9월 14일 보도되었다.

그날 대한항공 093편도 납치 오인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이쪽은 큰 혼란 없이 끝났다.

3.3.1. 만약 KE085편이 격추되었다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민항기 격추권은 군이 아닌 대통령이 갖고 있다. 당시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국 영토에 있는 민항기에 대해 하이재킹이 연달아 발생하고 이미 2~3대가 에 충돌한 상황에 美정부 입장에서는 국내선이든 국제선이든 자국 국적기 여부까지 무관하게 의심되는 항공기는 모두 색출해 내야 하는 매우 긴박한 상황이였다.

특히 그 당시 미국 연방항공청,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 ATC(항공교통관제소) 등 관련기관에서 상호 간의 정보교류가 어려워 정신이 팔려 있는 와중에 이미 비행기 3대는 테러에 이용당했고, 1대는 추락하고 말았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교신이 안 되는 항공기는 모두 납치의심항공기로 분류되는데, 하이재킹 코드 7500이 떴다고 생각해 본다면 살아남은 게 기적이다. 당시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은 AA11편의 경우 이미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해 불타오르는데도 몇 분 후 NORAD에서 다른 ATC로부터 AA11과 교신에 성공했다며 AA11는 추락하지 않았다고 하는 등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였다.

자국 영토에 있는 민항기에 대해 어떤 나라든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벌어졌을 경우 민항기 격추권은 매우 신중해져야 하는 게 외교적으로든, 국방적으로든, 국제사회든 파장이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이렇게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항공기 4대가 동시에 납치로 인해 모두 , 추락함에 따라 군 지휘부의 빠른 대응을 위해 부시 대통령은 공군 장성 2명에게 유사시 민간항공기 격추권을 위임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장군들은 불필요한 인명피해를 막고자 아무리 의심이 들어도 격추권은 최후의 수단이라며 실행하지는 않았다. 즉, KE085편은 하이재킹코드 7500이 떴음에도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해야 한다.[16]

이런 상황에서 만약 격추됐다면?

일단 확실한 건 탑승객 216명 전원 사망. 그야말로 진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격추 피해자들은 공식적으로 9.11 테러 피해 사망자들로 분류되어 그라운드 제로에 이름이 새겨졌을 것이다.

그 이후는 2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국민감정 및 미 행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
한미관계에 장기적으로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사건 당시에는 9.11 테러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졌겠지만, 블랙박스 등의 조사를 통해 테러와는 무관했음이 밝혀졌을 경우 1997년 이태원 살인 사건2000년 주한미군 독극물 한강 무단 방류 사건(영화 괴물의 모티브) 때문에 반미 감정이 고조되던 한국 사회에서는 이로 인해 엄청난 시위가 일어났을 것이었다. 게다가 그 시점에서 2002년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김동성 실격 파문까지 겹쳤다면 반미 감정이 터져서 폭동 수준까지 갔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그 당시에 작성된 맥도날드 불매운동 선언문이 지금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판이니 한미 관계가 아주 최악의 상황에 치달았을 듯.[17] 특히 대한항공은 이미 1983년에 서울-뉴욕 항로를 운항하던 자사 747이 적성국이었던 소련한테 격추된 적이 있는데[18] 만약 이번에도 격추됐으면 최우방국인 미국한테 격추당한 것도 모자라 대한항공은 이전에 747을 5대나 사고로 날려먹었는데 이제 6대가 될 뻔한 것이다.

만약이란 없다지만, 이 격추라는 게 상당히 큰 인명 피해인지라 미국한국대한항공, 격추 피해자 유족들에게 지급해야 할 보상금은 상당히 큰 액수에 달했을 텐데 미국은 격추에 대해 대한항공 조종사의 원인제공도 있다는 이유를 들어 양비론으로 몰아가 보상금을 아예 안 주거나 대폭 깎아서 지불하려는 시도를 했을 수 있고 그런 시도가 한미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었다. 또한 그러한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한미관계뿐 아니라 미국 국내 정세에도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었고[19]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관한 명분을 크게 잃고 여러 국가들에게서 비난받았을 것이었다.[20]

2. 테러로 분노한 미국 연방 정부가 찍어눌러서 닥치고 버로우
하지만 외교 정책적으로 보자면 해석이 달라진다. 국민감정은 악화되었겠지만, 그럼에도 한국 정부와 대한항공은 미국의 지침에 따라 조종사의 책임으로 몰아가고 덮으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국민 수천 명이 죽었는데, 우리 책임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고가지고 뭐라 할 군번이냐? 수 틀리면 어디 한 군데는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이성을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린 분위기가 나올 수 있었을 만큼 당시 미국 행정부의 분노는 강했기 때문이다.[21] 당연히 명분이 밀리기는 하겠지만 초강대국이 가진 권력이라는 수단 앞에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은 크지 못했을 것이다. 국가의 힘은 그만큼 중요하다.

테러로 인한 미국의 분위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명분에 치명타를 가했을지는 모르지만 당시 미국의 전쟁 분위기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많은 희생자가 날 사건이지만, 당시 분위기에 강제적으로 무마되고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고 끝났을 것이다.

또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한미동맹 자체는 어떻게든 유지되기는 했을 것이었다. 조선인민군은 물론 당시 한참 뜨기 시작하던 중화인민공화국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때문에라도[22] 미국은 한국, 일본이 꼭 필요하고 대한민국 역시 마찬가지로 미국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격추되었다면 한국 내 미국의 영향력이 지금만 못해짐은 분명한 일이다. 여차 강제로 덮었다 치더라도 어쨌든 국민들에게 '미국이 우리 항공기를 격추했다'는 사실과 이를 묻으려는 미국의 행동이 좋게 보일 리는 없다.

또는 극단적으로 미국이고 중국이고 러시아고 다 싫다고 차라리 (당시 IMF로 이미 망가지고 선진국 진입은 실패한 것처럼 보여서 더이상 잃을 게 없는) 경제를 버리겠다면서 북한처럼 NPT 탈퇴 후 자체핵무장 및 독자 중립노선을 탔을 수도 있기는 하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철저히 한국의 입장에서 한미동맹이 필요한 이유는 북한과 중국의 핵보유 + NPT로 한국의 핵보유를 막았기 떄문이다. 한국이 북한, 더 나아가 중공과의 MAD를 성립시킬 수 있게 되면 솔직히 말해서 한미동맹은 필수가 아닌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가 된다. 이후 장갑차 사건까지 합쳐보면서 당시 정치지형이 이전에 비해 좌경화 되던 시점임을 고려하면, 어디까지나 만약이지만 그럴 수도 있긴 하다. 결국 민주주의는 다수여론에 따라 돌아가기 때문이다. 어떻게 되었을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당시 한국의 능력을 고려하면 전세계의 경제제재 및 모든 교역이 다 끊어지더라도 원자력발전과 화력발전, 그리고 국내의 우라늄과 석탄 광산을 이용해서 전시계획경제 형식으로 전국민에게 80년대 생활 수준을 최소 보장하며 경제발전 등 첨단산업 다 포기하고 굶어 죽지만 않게 유지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으리라 보인다.[23] 마침 그정도 시점이면 북한도 1차 핵실험을 준비하기 시작하던 시점이기도 했고. 그리고 언젠가는 제재가 풀리기는 했을 것이다. 정확히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과 파키스탄이 비공식 핵보유국이 됐다.[24]

2001년이면 이미 반도체 기술 등 중요기술을 꽤나 습득한 시점이고 그정도 수준의 기술력이 있는 나라가 핵을 어쩄든 가지게 되었다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중국+러시아든, 미국이든 더 유리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6년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면, 더욱 명분이 서게 된다. 오히려 이렇게 한국도 핵무장 노선을 탔으면 북한 핵실험도 눈치볼 게 없어짐으로 2002~2003년 정도로 더 빨랐을 가능성이 높다. 쬐깐한 한국따위 강대국이 말려죽이면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그 즈음의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기술력이면 세계와 단절되고 자력갱생에 목매더라도 최소한 동남아 개도국 내지는 한국 80년대 수준(국민소득 2000~5000달러 수준)으로는 자체적으로 남아서 연명하는 게 충분히 가능했고, 결정적으로 그 북한도 아프리카 최빈국 꼴이 났을지언정 완전 붕괴는 못 시키고 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음으로 아무도 알 순 없겠지만 국제 발언권이나 한국의 파워 면에서 경제 발전은 한 20년 늦춰지더라도[25] 이게 더 나았을 여지도 있긴 하다. 공식 핵보유국이 되지 못하더라도 비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이스라엘이나 파키스탄 수준만 되어도 코끼리가 개미새끼 밟듯이 소리소문없이 묵살해버리는 건 방지할 수 있고, 2018년 당시 북한이 통미봉남식 태도를 보여주며 고압적으로 나왔던 일 같은건 남한이 핵보유국(비공식이더라도)이 되었다면 애시당초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핵폭탄 있으니 찌짐 당하기 싫으면 당장 튀어나오라고 했으면 통미봉남의 ㅌ도 못꺼냈을것이다. 북한은 잃을 게 없지 않냐고 반문하겠지만 김정은은 잃을 게 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며 비대칭 전력으로 내세우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도 핵무장을 한다면 그저 MAD가 성립하는 대칭 전력이 될 뿐이다.

3.3.2. 대한항공 085편 비행 일지

시각은 뉴욕 현지시각으로 통일 표시. 주석으로 관련 도시 현지시각 병기. 워싱턴 D.C와 펜실베이니아 주 시간대는 뉴욕 시간대와 같으므로 따로 서술하지 않음.
  • 2001년 9월 11일 오전 5시 55분[26]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085편 이륙
    • 오전 8시 46분 AA11편이 세계무역센터 1번 타워에 충돌
    • 오전 9시 3분 UA175편이 세계무역센터 2번 타워에 충돌
    • 오전 9시 19분 보스턴 관제 센터에서 DL1989편에게 연락을 시도하나 실패했고, 이를 토대로 DL1989편이 하이재킹당했다고 오인[27]
    • 오전 9시 37분 AA77편펜타곤에 충돌
    • 오전 9시 59분 세계무역센터 2번 타워 붕괴
    • 오전 10시 3분 UA93편이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추락
    • 오전 10시 28분 세계무역센터 1번 타워 붕괴
    • 오전 11시 8분 영공 진입을 앞둔 KE085편에서 첫 기밀코드 포착
    • 오후 12시 정각 ARINC에서 미국 연방 항공청에 KE085편이 납치된 것 같다고 통보
    • 오후 1시[28] 알래스카 엘멘도르프 공군기지에서 F-15 발진
    • 오후 1시 24분 KE085편이 트랜스폰더(Squawk) 신호를 7500으로 변경[29]
    • 오후 1시~오후 2시 45분[30] 알래스카 주지사의 명령으로 주민들이 대피하고 주요 시설 폐쇄
    • 오후 2시 54분[31] 납치 여부 확인, KE085편을 화이트호스 국제공항에 유도 착륙시킨 후 탐문.
  • 2001년 9월 14일 운항 재개 제한적 허가로 KE085편이 JFK 국제공항에 착륙.

3.4. 원인

발단은 9.11 테러와 이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대한항공 사측의 실수이며, 조종사들은 납치 상황에 대비한 통신장치 사용법을 연습하고 있었다.[32] 그러나 통신 회선을 감시하고 있던 미국 중앙정보국은 해당 여객기가 납치 코드를 입력한 사실을 알아냈다. 영공 폐쇄 절차를 진행 중이던 항공당국은 085편을 납치 의심 항공기로 간주하고 화이트 홀스 공군 기지에 비상착륙시켰다.

조종사의 영어 실력을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는 경우가 있다.[33] 확실히 발음을 잘못 해서 관제사가 암구호를 들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고 관제사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진짜로 코드 7500을 보낼 정도의 실력이면 확실히 범상친 않지만 조종사의 문제가 아닌 관제사가 다급한 상황 속에서 암구호를 잘못 알아듣고 만약 납치당했으면 코드 7500을 보내라는 교신을 잘못 또는 너무 빠르게 발음하는 등 조종사가 알아들을 수 없게 말하는 바람에 조종사 진술대로 코드 7500을 보내라고 했다는 착각을 유도했을 수도 있다. 즉 조종사에게 완전히 책임을 묻기엔 옳지 않다. 만약의 관제사 책임도 상정해야 한다. 게다가 이에 대해서는 교신 내용이나 음성기록 등이 세부적으로 나오지 않고 묻혀 버린 상황이다.

전대미문의 테러로 미국 전역이 공황 상태에 빠진 걸 감안했을 때 NORAD의 대응이 과잉 대응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사건 발생 시점에는 이미 막대한 사상자가 나온 상황이었고 펜타곤도 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낮게 잡아 5%라도 하이재킹 가능성이 있다면 인구밀집지역에 테러를 가해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낼 수 있는 상황에서 격추시키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 자국인 수천명이 비행기 테러로 사망했는데 민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한항공의 경우에는 북한의 항공기 납치 등으로 인해 9.11 테러 이전에도 조종석 보안을 철저히 하기로 유명한 항공사였다고는 해도 이것을 NORAD 쪽에서 '아 이 항공사는 대응이 좋아서 납치 같은 건 없어' 라고 생각해 줄 리는 없다. 또한 무엇보다 다소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납치로 오인했을 뿐 실제로 격추하지 않았으며 그 급박한 상황을 비교적 침착하게 대처해 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굳이 회선감시를 하면서 HJK 신호가 입력되었지만 송출되진 않았던 것을 두고 납치된 것 같다는 속단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는 주장도 있고, 일부에선 회선감시를 굳이 할 필요가 있었냐고 하기도 한다. 다만 당시 상황이 매우 특수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쨌든 결론은 어느 한 쪽에 책임을 전가시키기에는 당시 상황 때문에 참 뭣하다는 것...

일부에서는 소련 격추 사건과 비교하기도 하지만 이 사건은 당시 미국 전역에 민항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자살테러를 하던 시점이라 매우 예민하게 방어적일 수 밖에 없었고, 때문에 전투기가 출격해서 요격 태세를 갖춘 것은 정당한 대응이라 볼 수 있다. 이때도 바로 쏘지 않고 전투기 조종사들이 "비행기가 하이재킹 되었는가?"라고 계속 질문하여 납치당하지 않았다고 답변하여 살아난 건데 만약 이때도 기장이 그냥 무시했으면... 요격을 당했어도 딱히 미국의 일방적인 잘못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막 그냥 민항기를 묻지마 격추해 댔으면 문제가 됐겠으나, 절차를 제대로 밟은 상황이었기에 전투기가 계속 "하이재킹 당했냐?"고 물었음에도 기장이 묵묵부답으로 대답하지 않았다면 딱히 요격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진짜 격추를 당했다면 당시 초유의 테러로 정신나간 미 행정부의 자극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정부와 대한항공도 조종사의 책임으로 몰아가고 덮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당시 테러로 인한 미국의 분위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4. 사건 이후

  • 이 당시 해당 비행기에 MBC의 기자가 타고 있었다.
  • 당시 착륙한 화이트호스 국제공항은 말이 국제공항이지 정기편이라곤 캐나다 국내선 밖에 없는 소형 공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그마한 공항에 조종사들은 747을 착륙시켰고, 당시 지역언론에서 취재할 정도였다. 심지어 상술한대로 747이 1대도 아니고 같은 항공사 소속의 2대가 연달아 착륙했다. 그 이전에는 이 공항에 747이 착륙한 적이 없었다. 마치 고속도로에 항공기가 착륙하는 것과 같았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 해당 항공기인 HL7404는 잘 날아다니다가 2016년 3월 퇴역하여 2016년 6월식 보잉 777-300ER(HL8042)로 교체 되었고, Max Air에 팔려나가서 2020년 1월까지 일하다 파이널 에어파크에 스토어되었다.


[1] 뒤에 있는 항공기는 사우디아 항공영국항공 소속 보잉 747-200캐세이퍼시픽 소속 A330이다.[2] 조종사 과실이 사고 원인의 일부인 이유는 바로 7500 주파수로 맞췄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 조종사가 7500을 쏜 것도 아니고 설마 미국이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을 것이라는 걸 알 리는 없으니 과실로 보기는 어려운 점이 많긴 하다.[3] HL7460으로 알려져 있으나 MBC에서 내보낸 해당 사건을 다룬 뉴스에서 HL7404로 밝혀졌다.[4] 2018년에 보잉 787-9(HL7209)로 교체[5] HL7460은 460이라 쓰여져 있다.[6] 원래 노즈기어 도어에는 항공기 테일넘버 뒤 3자리가 기재된다.[7] 출처: 신지수 저 "나의 아름다운 비행 - 사냥 편(120~143쪽)"[8] 뉴욕에서 비행기 납치소동이 일어났으니 조심하라는 식의 짧은 전보였다.[9] 비상신호 HJK. 트랜스폰더에는 여러 가지 비상버튼이 있다. 이 중 하이재킹 버튼이 HJK며 이것을 누를 시 비상 신호가 관제소 중앙 레이더에 뜨게 된다.[10] 비행기에서 지상으로 보내는 문자메시지를 중개해 주는 업체[11] 나중에 조종사들은 관제사가 강압적으로 바꾸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원래 조종사들은 'HJK'코드는 '비행기가 납치되었다'를 알리는 것이며, 트랜스폰더 코드를 7500으로 바꾸라는 것은 테러리스트들을 속여 진짜 납치인지 확인하는 방법으로서, 조종사들이 실수로 'HJK'를 보냈다고 하여도 만약 진짜 납치가 아니면 트랜스폰더 코드를 7500으로 바꾸지 말라고 교육을 받는다.[12] 비행기가 하이재킹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계속했다.[13] 이때 화이트호스에서 또 한 차례 주요 건물 폐쇄와 대규모 대피가 일어났다.[14] 기종은 085편과 같은 계열인 보잉 747-400F이다. 등록번호는 HL7462. 테러 다음날인 9월 12일에 촬영된 281편.[15] 당시에나 지금이나 대한항공은 기내통신이 안 되기 때문에 승객들은 영문도 모르고 검문받다가 9.11 테러에 대해 전해듣고 경악했다고 한다.[16] 허나, 당시 세계무역센터 2동과 펜타곤이 테러당했음에도 사령부에서는 UA93편의 납치 사실은 추락 4분 뒤까지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17] 이때 반미 감정은 정말 극에 달해서 월드컵 보러 온 미국인들이 양키고홈 소리 듣는 건 다반사였고, 길거리에서도 시위가 자주 열렸다.[18]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차이점이라면 007편은 뉴욕에서 앵커리지를 경유해 서울로 돌아오는 중에 사고가 일어났고 085편은 반대로 서울에서 뉴욕으로 가던 중에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19] 사실 미국인 탑승객도 절반 정도 되기 때문에 격추했으면 부시는 04년 재선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20] 대표적으로 후세인이 있던 이라크9.11 테러 때 그 천하의 북한이 사리는 상황임에도 "신의 응징"이라고 깠다가 요단강 익스프레스를 탔음에도 국제적 동정을 못 받은 바 있었는데 그게 뒤집어진다는 소리다. 미국과 원수졌던 나라들은 평시에도 미국을 깔 거리를 찾고 있고, 실제로도 미국이 무슨 일을 저질러도 득달같이 미국을 까는데 소위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대한민국의 민항기를 격추시켰다고 밝혀졌을 경우의 반응은 어떠하겠는가. 미국에 대한 비난은 말할 것도 없고, 9.11 테러와 관련한 음모론의 아주 좋은 떡밥이 되었을 것이다.[21] 말마따나 한국 정부가 미국에 책임을 물었을 경우 미국은 "야 니네 상황이 이랬으면 어쨌겠냐? 지금 본토는 개판됐고 굉장히 화나니까 성질 돋구지 말고 짜져있어라" 라며 강압적으로 나올 것이 분명했고 한국 정부 또한 별 말을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이성적으로 옳지는 않지만 당시 미국의 분노가 어느 정도였냐면 평소에 반미를 부르짖으며 미국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여러 과격단체와 국가들도 '야 미국아, 이거 우리랑 상관 없음... 이번엔 그냥 닥치고 있을게'로 일관하였으며 미국에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자본주의의 몰락이라고 농락하던 그 북한조차 '이번 일은 우리랑 상관 없고 우리는 그런 짓 절대 안 한다. UN 회원국으로서 유감을 표한다.'고 이례적으로 공식성명을 발표할 정도였다. 실제로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 착수하면서 파키스탄에 길 안 내주면 석기시대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협박하여 영공 사용권을 따냈다. 엄청나게 심각한 외교적 결례지만 미국은 그딴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고, 평소 같으면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냐며 태클 걸었을 나라들도 잠자코 있었을 정도로, 아니 그냥 닥치고 비켜주라며 권유할 정도로 미국의 분노가 컸다.[22] 단 이 당시 푸틴은 나토 가입도 고려하던 친미 정치인이었다.[23] 그 당시라면 이미 한국에 화력발전소와 원전이 잔뜩 있었고, 전기자동차도 일찌감치 90년대에 기아 베스타를 개조해서 시제품을 만들었던 적이 있고, 주요 간선철도의 전철화도 상당수 진행하기 시작하던 시점이다. 결정적으로, 강원도 등지에 탄광이 지금보다 더 많았고, 우라늄 광산도 있었으며, 석탄석유화 기술도 보유하게 된 시점이다. 즉, 효율성과 경제성이 떨어져서 상용화/도입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론적으로는 어차피 수출길도 막혔겠다, 원자재로 석유를 사용하는 중공업 일부분을 셧다운 시키고, (연료로써의) 석유 없이 사는 것도 아주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이어서 그렇지, 전시경제 수준의 응급상황이라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았던 시점이다. 실제로도 석유 문서에 가보면 알겠지만, "연료"로써의 석유는 전세계 어디서나 언제든 지금 당장 거의 대부분 대체 및 퇴출할 수 있다. 정치경제논리가 그걸 막고 있을 뿐이다. 화학제품 합성 등의 "원자재" 로써의 석유가 대체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 상황인데, 그 정도는 비축유를 아끼고 아껴 사용하면 10년은 버틸 수 있다. 당장 2023년 지금의 평시마냥 물쓰듯이 석유를 그대로 쓴다고 해도 전시비축분은 1년치 사용량을 커버할 정도가 된다. 그리고 연료로써 석유를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된다면(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시내버스와 기차를 전동화하고, 당장 내일부터 내연기관 자가용의 운행을 금지하면서 동시에 전기차 개조/대차 보조금을 지급한다면. 규모가 다르긴 하지만, 이미 영업용 버스의 CNG 의무화를 도입하며 디젤 버스 수만대를 정책적으로 강제 퇴출 시킬 때 했던 짓거리다. 지금은 그 외 자가용마저 5등급 디젤차량은 문제없이 정책적으로 탄압하고 있다.) 이 사용량 중 90%가 감축된다. 즉, 원자재로만 쓰면 최소 10년을 비축분만으로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24] 물론 중+러보다야 이스라엘을 적대하는 중동이 파워가 약하므로 묵인할 수 있지 않았냐 하겠지만, 석유문제가 엮여서 생각보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아예 인도+구소련과 적대하던 국가이다. 중국+러시아와 비교했을 때 만만한 상대였다고 보기 어렵다.[25] 이렇게 됐더라면 대만처럼 2010년대에 선진국 진입, 2020년대나 되어서야 국민소득 1만 달러에 도달했을 것이다.[26] 한국 현지시각 9월 11일 오후 6시 55분[27] 이때 해당 항공기는 클리블랜드 관제 센터의 공역에 있었으나, UA93편에 온 신경을 쏟던 클리블랜드 센터에서 교신을 무시해 버렸다.[28] 알래스카 현지시각 오전 9시[29] 트랜스폰더 기밀코드 7500은 납치 시 사용되며 7600은 무전기 고장, 7700은 운항 중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데 사용되는 코드이다. 사실 신지수 저 "나의 아름다운 비행 - 사냥 편"에 '1234'라고 적혀 있으나 보안상 실제 코드 대신 1234라는 숫자를 사용했다는 언급이 있다.[30] 알래스카 현지시각 오전 9시~10시 45분[31] 화이트호스 현지시각 11시 54분[32] 기기 조작 절차를 마치고 최종 확인 버튼을 누르기 전에 취소했다.[33] 실제로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대부분 대한민국 공군 출신인지라 엄청나게 좋은 조종 실력 대신 매우 나쁜 영어 발음을 가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많긴 하다.[34] 동계를 제외한 전 시즌[35] 동계시즌 한정[36] 이때 기종은 A380-861이었다.[37] 기장은 유도로를 10번 활주로로 착각하고 진짜 10번 활주로를 새로 만든 활주로로 착각했다.